소설리스트

선제귀환-332화 (332/430)

제332화

“공자께서 명부를 보라고 하셨고 그 외에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위경륜이 말했다.

“명부를 보도록!”

운청휘가 명부를 건네자, 위경륜이 그제야 명부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가 붉은 줄이 그어진 이름들을 유심히 살폈다.

“송서항, 정간, 만비…….”

위경륜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공자, 줄이 그어진 이들은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송서항은 공자를 적으로 돌렸고, 장건과 만비, 문충은 낙가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낙원과 낙병은 낙가의 직계자제로, 고등반의 생도였으나 30살이 넘으며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이 여섯 대천급 연단사는 과거 수석 연단사를 두고 다툰 적이 있으니, 공자에게 호의를 보이진 않을 겁니다.”

위경륜이 또 운청휘를 봤다.

“공자님, 운석 부원장에게 가서 명단의 수정을 부탁할까요?”

“됐다. 그럴 권한이 있었다면 굳이 줄을 그어서 보낼 리가 없을 테니.”

운청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낙가는 참으로 성가셨다. 낙휘와 낙건부터 낙가기까지 그를 귀찮게 하더니, 이렇게 늘어날 줄이야.

“아니면 스승님을 찾아갈까요?”

위경륜이 물었다.

“그럴 필요 없다!”

별안간 운청휘의 몸에서 굳센 기세가 뿜어져나왔다. 온 천하에 군림하는 듯한 패기가 서려 있었다.

“그들이 나선다면, 일격에 죽이면 그만이다.”

기세에 눌린 위경륜은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그 순간, 눈앞에 있는 운청휘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일찍이 영주에서도 얼마나 많은 인왕경의 무인들이 그의 손에 죽어나갔던가?

“용오천은 지금 어떤가?”

운청휘가 갑자기 물었다.

“천찬학관에 입학했습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이름을 바꾸고 들어오라 했습니다.”

위경륜이 즉각 답했다.

애초에 낙가를 자극하게 된 건 용오천으로 인한 일이었다.

용오천이 낙가에 품은 원한이 크니, 낙가의 일원을 만나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가 천찬학관에서 지내면서 어떠한 이변도 없어야 한다. 흙보살에게 그리 전하도록.”

용오천은 운청휘가 친구로 생각하는 요족인 만큼,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안연에게도 함께 전하도록. 내 인내심에 한계가 있으니, 낙가가 더는 물러서지 않는다면, 소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말을 하는 운청휘에게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애초에 천찬학관에 온 목적은 봉마비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어떤 사고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지만, 사고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를 계속해서 자극한다면, 낙가뿐만 아니라 막가도 바로 멸문시킬 자신이 있었다.

“공자님 걱정 마세요. 제가 전해드리죠!”

운청휘를 따른 이래 이런 모습은 처음이기에, 위경륜이 황급히 떠났다.

황혼 무렵, 위경륜이 다시 운청휘를 찾아왔다.

“공자님, 모두 전하고 왔습니다. 스승님께서 용오천의 안위를 보장하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막안연의 대답은…… 그녀와 막가는 함부로 낙가에게 명령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많아 봐야 중재를 요청하는 것뿐인데…….”

위경륜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공자님께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는데…….”

위경륜이 말을 잇지 못하자 운청휘가 먼저 말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도록.”

“공자께서 죽인 낙가기가 낙가의 고위층인 만큼, 공자가 낙가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 여파는 막안연도 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위경륜은 차마 운청휘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말을 맺었다.

막안연의 발언은 명백한 위협이었다.

낙가의 분노를 더 막아 줄 수 없을뿐더러, 그녀 자신도 화가 나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하하, 낙가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니. 나 운청휘의 분노는 두렵지 않은 건가.”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운청휘의 눈가에 서렸다.

구련허영화를 채집한 후, 낙가를 철저히 부수고 말 것이다!

“공자님, 막안연이 어떠한 연유로 영흥성원에서 천찬학관으로 넘어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녀의 무위가 낮지 않고 비범한 사람이니,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위경륜이 말했다.

“영흥성원 최절정의 생도 10명 중 과반수가 막안연의 추종자입니다. 백가의 후계자도 막안연에게 구애하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이걸 잊었습니다. 백택이 백가의 고위층이더군요.”

“백택이 숨은 가문 백가의 고위층?”

운청휘는 약간 의외였지만 곧 깨달았다.

‘어쩐지, 고등반의 생도들이 백택을 스승으로 모시려고 달려드는 이유가 있었군. 반절 인황경인 것도 모자라 숨은 가문 백가라……. 막안연은 예상대로지만.’

막안연의 추종자 중 백가의 후계자가 있다는 사실은, 운청휘로서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부터 ‘빙근철골공(冰肌彻骨功)’을 수련했다는 걸 알아챘으니까.

그녀가 익힌 무공은 일종의 ‘매공(魅功)’으로, 이성을 매혹하는 힘이 있었다.

단순히 반하는 수준을 넘어, 영혼 깊이 사랑하게 되니 백가의 후계자는 막안연을 위해서라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죽을 수도 있을 터였다.

“공자님, 어제의 일로 백택에게 미움을 샀을까 두렵습니다.”

위경륜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백택은 지위가 있으니 천찬학관에서 영향력도 큽니다. 또한 저희 스승님과 친분도 두텁죠. 공자, 그 명부에 줄을 그은 사람은 혹시 백택이…….”

“물론, 백택과 낙가가 함께 준비했을 가능성도 있다.”

위경륜의 의심은 합당한 것이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낙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번 일을 마친 후 낙가를 방문할 테니. 백택은 이 명부가 그와 무관하길 기도해야겠지. 그렇지 않다면…… 백가도 멸문을 피하지 못할 터.”

운청휘는 본래 성격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일단 맞붙게 되면 상대의 세력이나 됨됨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위경륜은 그를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도 운청휘의 성격을 알고 있었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한번 격노하면 반드시 무수한 피를 흘려야 잠잠해질 터였다.

다음 날 새벽, 운청휘는 저택을 떠나 집결지로 향했다.

보다 일찍 도착한 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백여 명에 육박했다.

무원 고등반의 생도 52명, 천단탑의 연단사 15명, 나머지는 모두 무원의 생도들이다.

운청휘는 천천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연단사들의 무위는 평범한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인왕경이었다.

운청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운청휘를 주시했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살기를 뿜어내는 자들도 있었다.

적의를 품은 시선은 10개나 되었는데, 대천급 연단사 6명과 송서항 등이었다. 개중 살기를 뿜는 자들은 아마 낙원과 낙병이리라.

-운 형제, 이번 임무 조심하시길!

담운이 음을 보냈다.

-송서항뿐만 아니라 정건, 만비, 문충은 낙가에 매수되었네. 낙원과 낙병은 낙가기의 조카들일세!

-충고 고맙군. 주의하지.

운청휘도 음으로 답했다.

담운은 낙가를 두려워하기에 감히 그들 앞에서 운청휘에게 친근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을 써 주었고, 운청휘는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저기 보게, 운석 부원장과 백택 선생님이야!”

누군가 소리를 질렀는데, 허공에 두 개의 그림자가 천천히 내려왔다.

잔잔하지만 기세를 떨치는 백택과 아름다운 용모가 돋보이는 운석이었다.

-운청휘. 자네가 수석 연단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잠재워 두었네. 이번 임무는 아주 막중하니 실수가 없도록 하되, 절대로 연단사라는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네! 우리 천단탑의 연단사들도 주의하고 있을 테니. 무엇보다 대천급 연단사 여섯 명은 영흥성원의 주의력을 돌리기 위함이네.

운석이 곧바로 음을 전해왔다.

그녀도 이번 여정으로 매우 고심했다. 천찬학관이 구련허영화를 손에 넣더라도, 인왕단을 만드는 건 연단사의 손에 달렸다.

영흥성원이 이를 두고 보겠는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천찬학관의 연단사를 죽이려 할 터. 그리 되면 잡초 한 포기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

운청휘의 신분을 위장해 보낸다면, 영흥성원은 반절 인왕경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테니 운청휘는 안전할 터였다.

‘음?’

운청휘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어쩐지, 담운이 음을 보낼 때 연단사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니. 아마 담운은 운청휘가 연단사가 된 사실을 몰랐을 터였다.

-다만, 놀랍군. 아직도 무원 고등반의 생도란 말인가?

운석이 뜻밖이라는 듯 다시 음을 보냈다.

-백택을 조심해야 할 텐데? 그가 이번의 인솔 교관이지. 더욱이 내가 준 명부에 줄을 그어놓은 사람이 백택일세.

-인솔 교관?

운청휘의 의아함이 커졌다.

-백택이 참여할 수 있다면, 생도들 외에 교관도 보낸다는 뜻인가? 전에 말한 것과 다르군.

운석의 눈에 냉기가 스쳤다.

-그랬지. 하지만 조금 전, 영흥성원이 조건을 바꾸었네. 상고 전쟁터가 워낙 위험하니, 각자 반절 인황경의 인솔 교관을 대동하여 생도들을 보호하자는 내용일세. 다만 인솔 교관은 상대가 지정하자는 요청이 있어, 백택은 영흥성원에서 교관으로 요청했네.

운청휘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터무니없는 조건을 받아들였군. 백택이 영흥성원의 사람일 수도 있다. 상고 전쟁터에 도착하여 백택이 배신하기라도 한다면, 구련허영화는 둘째치고 생도들을 잃게 될 텐데?

-그 점은 걱정할 것 없지. 백택은 진정으로 천찬학관에 충성하는 자라네. 게다가 영흥성원이 그를 지명한 건 우연이네. 사실 누굴 지명하든 의심스러운 건 매한가지겠지만.

운석은 대수롭지 않게 음을 보내다, 곧 한마디 덧붙였다.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백택이 단독으로 그대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네!

“사람이 다 왔으니, 출발해도 되겠다!”

장내를 둘러본 백택이 큰소리로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찬학관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둔천사가 떠올랐다.

둔천사는 하늘에서 자라난 산처럼 거대하게 자리를 잡고 떠 있었다.

-둔천사가 왔군. 부디 조심하게. 더욱이 상고 전쟁터에 들어서면 연락할 수단이 없으니, 돌발적인 상황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할 걸세.

운석이 마지막으로 음을 보내자, 운청휘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 둔천사로 향했다.

이 둔천사는 성능이 좋았지만, 운청휘가 명계에서 얻은 천영어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천영어가 어떤 물건인가. 인황경의 극한 속도에 준할뿐더러, 방어도 탄탄한 둔천사였다.

“이틀간 상고 전쟁터까지 가야 한다! 또, 그곳에서 사흘을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둔천사에 오른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게끔, 백택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대들은 쟁탈전까지 열심히 단련하게나!”

모든 생도들은 둔천사 내에서 방을 배정받았다.

무작위로 뽑았다고 하나, 공교롭게도 운청휘의 방은 낙원과 낙병의 방 사이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맞은편에는 송서항이 묵게 되었다.

정건, 만비, 문충의 방도 근처에 있었다.

어떠한 배치든, 운청휘는 개의치 않았다. 한 방을 썼더라도 운청휘가 신경이나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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