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5화
송서항이 이를 갈며 살기를 일으켰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패배는 자신이 정한 규칙 때문이었다.
운청휘가 공격 열 번을 피하면 자신의 패배라니, 생사결이나 일반적인 대련이었다면 가당키나 한 결과겠는가?
송서항은 규칙만 없었더라면, 그때 패배한 사람은 운청휘가 되었으리라고 확신했다.
쿠웅!
송서항의 몸에서 법원의 힘이 폭풍우처럼 몰아치며 운청휘를 향해 질주했다.
법원의 힘이 할퀴고 간 대지 곳곳에 깊은 균열이 일었다!
“대비라수!”
고함과 함께 송서항의 몸도 내달렸다. 공기 중에 일어난 마찰로 불꽃이 튀고, 그는 한 마리 포악한 화룡처럼 불꽃과 함께 운청휘에게 달려들었다.
“송서항의 원한이 깊긴 깊은가 보군. 저 한 방으로 죽겠어.”
“죽이다 뿐인가, 형체도 남기지 않을 작정인가 본데.”
정건, 만비, 문충 세 사람이 혀를 내둘렀다.
“응?”
바로 그때, 그들의 안색이 굳었다.
그들의 눈에는 운청휘가 가만히 서 있다가 송서항을 향해 일장을 날리는 광경이 보였다.
어찌나 빠르던지, 그마저도 희미한 궤적으로 보였지만.
퍼엉!
충돌이 일며 대지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이 진동했다!
한 번의 충돌이 만들어 낸 건, 시체도 남지 않은 송서항의 잔해였다.
정건, 만비, 문충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송서항의 잔해를 마주하니 온몸이 저릿하고 털끝이 곤두서는 듯했다.
물론 그들도 운청휘가 낙가기를 죽일 만큼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송서항을 상대로 이런 위력을 보일 줄은 몰랐다.
송서항은 낙가기보다 강했고, 숙련된 인왕경이 아니던가?
“도망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세 사람은 황급히 후퇴했다.
일격으로 송서항을 죽일 실력이라니, 저항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너무 충동적이었군.”
운청휘의 눈에 아쉬움이 스쳤다. 방금 송서항을 때려죽이지 않았더라면, 인왕경의 마종을 하나 얻었을 텐데.
“어딜 가려고!”
운청휘가 포효하자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온 힘이 긴 채찍처럼 구불거리며 날아갔다.
삼천 장도 날아가지 못한 세 사람은 법칙의 힘에 그대로 묶여 끌려왔다.
동시에, 운청휘는 세 개의 마종을 꺼내들어 세 사람의 몸에 각각 넣었다.
“우, 운청휘, 이렇게 강했단 말이냐!”
“저항조차 하지 못했어……. 우리는 셋이었는데도!”
“백택 정도는 되야 승산이 있었어!”
마종을 빼내자, 단번에 허약해진 세 사람이 두려움에 떨었다.
백택 따위가 뭐라고. 계속 우둔하게 굴면 네놈들과 같은 결말일 터.”
운청휘는 코웃음을 치더니 마종을 영라 반지에 넣었다.
“뭐, 반절 인황을 상대할 실력이 있다고?”
이쯤 되었으니, 운청휘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반절 인황경을 상대할 실력이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할까?
세 사람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물들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어쩐지, 일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된다 싶었다. 운청휘는 일부러 그들에게 맞춰주고 있었던 것도 모르고!
“이익에 눈이 멀어 개를 자처했으니, 일을 그르쳤을 때 각오도 하지 않았나?”
말을 마친 운청휘는 청연지심화를 불러 그들을 단번에 태워 버렸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더니, 잿더미를 쓸어 날렸다.
그 후 운청휘는 갈라진 땅 밑으로 뛰어들어, 땅굴 속으로 나아갔다.
깊이 들어갈수록 불길한 느낌이 점점 짙어졌고, 마침내 청연지심화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주인님, 여기는 너무 사악한 곳이어서 철수하는 것이…….
‘우선 지상에서 나를 기다리도록.’
운청휘가 명령을 내렸다.
도착하려면 아직 2만 장을 더 나아가야 했지만, 사실 운청휘도 소름이 돋고 숨을 쉬기가 버거운 지경이었다.
그조차도 이렇다면 청연지심화는 어떻겠나.
-주인님,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
청연지심화는 황급히 운청휘의 몸을 떠나 위쪽 지면으로 솟구쳐 올랐다.
운청휘는 계속 나아갔지만, 그의 속도도 차츰 느려지고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운청휘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5천 장을 남겨두었을 무렵, 운청휘는 땅속에서 거대한 장화를 발견했다.
초승달처럼 앞코가 휘어진 장화는 크기도 크기였으나, 두려울 정도의 위압을 발산하고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군.’
운청휘의 눈에 의혹이 스쳤다. 눈앞에 있는 장화가 무엇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참천, 이것을 삼킬 수 있나?”
운청휘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위이잉…….
참천신검이 가볍게 진동했다.
“너도 삼킬 수 없다고?”
뜻밖이었다. 세상의 모든 병기를 삼킬 수 있는 참천신검이 아니던가?
위이잉…….
“장화 자체는 평범하나, 후에 위력이 부여됐단 말이냐?”
운청휘는 참천신검과 대화를 나누며 마침내 5만 장 깊이의 지하로 내려왔다.
몇천 장 바깥에서, 장화의 다른 한 짝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장화를 따라가니 위를 보고 누워 있는 시체 한 구가 있었다.
기이하게도 시체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조금도 썩지 않았지만, 운청휘는 그가 죽은 지 오래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역장은 이 시체가 만든 것이다!”
운청휘의 두 눈에 무거운 빛이 어렸다.
시체의 주위로 기의 장막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이 장막이 운청휘의 신식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온 천지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곳의 역장으로 변한 것도 이 장막 때문이리라.
“무상비경의 시체군!”
운청휘가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무상비경,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계를 가리킬 수 없다.
그러나 선제경을 초월한 존재만이, 무상비경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기이하군. 불길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다니.”
중얼거리던 운청휘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부릅떴다.
“이것은 신의 시체다!”
심마선겁으로 본 신의 시체이니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염죽과도 관련이 있지 않던가.
“죽은 신들은 모두 장신연에 묻혔을 터. 더욱이 아직까지 시체가 온전히 남아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 시체는 왜 상고 전쟁터에 있는 거냐.”
운청휘의 두 눈은 온통 의혹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가 보았던 심마선겁에서 이염죽을 제외하면 살아남은 신은 없었다. 더욱이 죽은 신들은 모두 이염죽의 손으로 장신연에 묻었을 텐데.
“응? 이것은 뭐지?”
시체를 살피던 운청휘의 몸이 우뚝 굳었다. 시체 안에서 미약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이다.
“신의 법칙!”
절로 운청휘의 숨이 가빠졌다.
이때 이염죽의 말이 뇌리를 관통했다.
무상비경에 도달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신의 법칙’을 수련하거나 그것을 빼앗는다.
멸세를 막았던 신들은 배신으로 인해 멸망했다.
모든 신이 신의 법칙을 지니고 있었기에, 배신당했다.
“신의 법칙…….”
운청휘가 격동을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그로서도 신의 법칙에 마음이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무상비경은 그가 꿈꾸던 경지였다.
운청휘는 자신이 무상비경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으나, 신의 법칙이 있다면 열쇠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시체는 죽은 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위압이 남아 있으니 가까이 다가갈 수 없군.”
운청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단순히 힘으로는 신의 법칙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운청휘의 생각은 신들의 주인인 이염죽에게 가닿았고, 이윽고 그녀가 주었던 파신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곧 영라 반지에서 희미한 빛이 나더니 묵빛 화살이 운청휘의 손안에서 나타났다.
“파신전은 염죽의 작품이니 그녀의 기가 남아 있을 터. 더욱이 그녀의 기는 시체에 남은 신의 법칙을 찾을 것이다.”
운청휘는 묵빛 파신전을 시체에 가까이 대었다.
별안간 시체 안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던 신의 법칙이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더니, 그대로 시체에서 튕겨나왔다.
“이렇게나 순조롭게……?”
운청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신의 법칙은 곧장 파신전을 향해 날아오더니, 파신전을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운청휘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니, 신의 법칙은 그의 손끝이 닿기도 전에 강력한 위압을 뿜어내 운청휘의 손을 내쳤다.
선제인 그가 다른 사람을 위압으로 누르면 눌렀지, 남의 위압에 눌리다니. 운청휘는 무의식적으로 좌절감을 느꼈다.
“파신전에만 친근감을 가지고 있군.”
어쨌든 신의 법칙을 손에 넣었다. 다만 수복할 수 없다는 게 그를 난감하게 했다.
‘파신전이 영라 반지에 들어가면 따라올지도 모른다.’
운청휘가 영라 반지를 열고 파신전을 반지 안으로 넣었다.
그는 반지를 열어 둔 채로 신의 법칙을 기다렸다.
신의 법칙은 공중을 몇 바퀴 돌며 한참을 배회하더니, 결국 영라 반지 안으로 들어갔다.
“성공했군!”
운청휘의 마음이 격동했다. 믿을 수 없는 기연을 마주친 것이다.
선계에서도 종적을 찾을 수 없던 신의 법칙을 천성대륙에서 발견할 줄이야.
그러나 운청휘는 곧바로 연화하는 조급함은 보이지 않았다.
“염죽을 만나고 그녀의 의견을 구해야겠군. 그녀가 동의한다면…….”
신의 법칙이 떠나자마자, 시체 주변의 기의 장막은 단번에 약해지기 시작했다.
운청휘는 시체가 발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를 숨기는 대진을 설치해 두었다.
더불어 온양진법을 설치해, 시체가 썩지 않도록 처리했다.
“이 시체의 처리는 염죽에게 맡겨야겠군.”
이 시체는 이염죽의 족속이니, 그녀가 아니라면 누구도 처분할 수 없었다.
운청휘가 지상으로 돌아오니, 청연지심화가 부리나케 날아왔다.
-주인님, 밑에서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두려운 느낌이 단번에 약해졌습니다!
“말해 줄 테니, 내 몸으로 돌아오도록.”
청연지심화가 몸으로 들어오자, 운청휘는 둔천사를 향해 가며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지하 5만 장 아래에 신의 시체가 묻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청연지심화는 운청휘의 발견과 수확에 잔뜩 흥분했다.
-신의 법칙이 있으니, 주인님께서 무상비경에 도달하시는 것은 시간문제군요!
운청휘가 강해질수록 청연지심화도 강해지니, 기쁠 수밖에.
한 식경 후, 운청휘는 마침내 둔천사로 돌아왔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생도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운청휘, 죽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