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0화
고목지완진이 뒤덮은 범위 내에서는 시전자를 포함한 모든 생물과 사물이 1천 배나 느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운청휘는 소익의 공격을 받아쳐야 하는데, 반절 인왕경인 그가 어찌 인왕경을 상대할까?
지켜보고 있는 백택의 속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원장님께서는 대세를 뒤집을 가능성을 보셨다. 나는 그 가능성을 운청휘라 믿었건만…….’
백택이 지금까지 운청휘를 방치한 건 그가 흙보살이 말한 여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되니, 자신의 생각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법 안에 갇혔으니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더욱이 운청휘는 빠른 속도가 강점이었는데, 속도를 봉인당했으니 어찌 소익의 상대가 될까.
운청휘가 이 상황을 뒤집지 못한다면, 백택은 흙보살이 말했던 여지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야 할 터였다.
“고목지완진?”
운청휘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네놈 따위가 내 앞에서 진법을 논한다고?”
운청휘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그는 마치 진 밖에 있는 것처럼 몸을 움직여 소익의 공격을 피하고 팔을 치켜들었다.
짝!
소익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뺨을 맞았음에도, 소익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고목지완진의 본질도 모르면서 감히 나를 상대하려고 하다니.”
자승자박이란 지금 소익의 상황을 두고 일컫는 말이리라.
소익의 얼굴에는 손바닥 모양으로 빨간 자국이 남았다.
이 같은 결과에 당황한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소익이 운청휘에게 뺨을 맞았다고?”
“잠깐, 운청휘는 고목지완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아!”
“맞아, 운청휘의 속도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오히려 시전자 소익이 진법의 제한을 받아 속도가 느려졌어!”
짝! 짝! 짝……!
운청휘는 연달아 소익의 뺨을 때리며 말을 이었다.
“네놈 따위가 나를 죽이려 한 것도 모자라, 내 앞에서 진법을 논하니 우습기 짝이 없군.”
소익은 진법에 대한 조예가 진관해보다 못하면서, 감히 운청휘의 앞에서 진법을 논했다.
그것만으로도 가소로웠는데, 소익이 포진한 고목지완진이 어찌나 허술한지 운청휘가 단숨에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이제 고목지완진의 조종은 운청휘의 손아귀에 달린 문제였다.
더욱이 운청휘는 소익처럼 시전자까지 느려지는 반쪽짜리 진이 아니라, 완벽한 진을 설치했으니 이 안에서만큼은 신이나 다름없었다.
“가, 감히 내 얼굴을 때리다니!”
멍해져 있던 소익이 정신을 차리고 느릿느릿 얼굴을 찌푸렸다.
“죽게 되었는데 입을 놀리느냐?”
운청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시 손을 휘둘렀다.
짝! 짜악! 짝…….
어찌나 세게 때렸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익의 양쪽 뺨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그만!”
고목지완진 밖에서 왕무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익은 황실의 핏줄인데 네놈이 모두의 앞에서 그의 얼굴을 때렸으니 황실의 체면은 어디에 있는거냐?”
“우습군. 황실의 체면은 고작 두 학관의 대결에 무너지는 건가?”
운청휘는 곧바로 답하며 다시금 소익의 뺨을 후려갈겼다.
소익을 죽이지 않고 뺨만 때리고 있는 건 왕무성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왕무성이 규칙을 어기고 나선다면, 백택이 어찌 막지 않겠는가?
“본좌가 이미 말했다!”
왕무성이 고함을 지르더니 반절 인황경의 기세가 천지를 덮었다.
“멈추지 않는다면 본좌가 네놈을 제압할 것이다!”
“나와 소익의 시합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규칙을 깨고 개입하려고?”
운청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말을 마치자마자 소익의 뺨을 또 때렸다.
“응?”
왕무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반절 인황경의 기세로 눌렀건만, 운청휘가 그에게 맞섰다!
결국 그가 나서려는 순간, 백택이 왕무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왕 형, 당신의 신분을 잊지 마시오!”
백택이 나서니, 운청휘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소익의 몸에 마종을 넣고, 다시 꺼낸 후 화염으로 소익을 불태워 버렸다.
소익이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모든 이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운청휘가 소익을 죽였어……!”
“우리 영흥성원의 생도가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죽다니!”
“운청휘는 미쳤어, 소씨 성의 두 생도를 죽이다니. 그들 뒤에 영흥 황실이 있는 것을 모르는가!”
“영흥 황실은 둘째치고, 소연과 소익은 우리 영흥성원을 대표하는 생도들이나 다름없었다!”
영흥성원의 생도들이 일제히 분노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왕무성은 노기를 띤 얼굴로 백택을 노려보았다. 그가 막지만 않았어도, 진작 운청휘를 제압했을 터.
“백택, 나를 막는다고 녀석이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는가?”
왕무성이 차갑게 내뱉었다.
“시합에서 죽었다면 나서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가 시합과는 별개로 죽는다면 영흥성원 전체는 천찬학관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백택은 물러나기는커녕 운청휘를 위해 왕무성과 대립했다.
왕무성도 더는 따지지 않고 영흥성원의 둔천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성하(李星河), 자네 차례다!”
“네, 원장님!”
풍채가 당당하고 기질이 뛰어난 청년이 둔천사에서 날아왔다.
“이성하다!”
“점점 알 수 없는걸!”
“이성하마저 나오다니, 영흥성원은 운청휘를 죽이려는 것인가!”
천찬학관 생도들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 버렸다.
이성하는 소익보다 명성이 자자한 데다, 영흥제국 전체를 보아도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인왕경 중 한 명이 아닌가.
이윽고 왕무성이 노기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이성하, 운청휘를 죽이도록!”
“원장님, 걱정 마세요.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운청휘를 죽일 테니!”
이성하가 입술을 날름 핥으며 답했다.
운청휘가 소익을 죽였을 때, 백택은 흙보살이 가리킨 여지가 운청휘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성하가 나오니 그는 저도 모르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운청휘가 속도의 강점을 이용하여 소연을 죽였고, 운으로 소익을 죽였다고 생각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백택을 포함한 다른 이들도 운청휘가 고목지완진을 역으로 조종해 소익을 죽였다고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이성하가 나왔는데, 무엇으로 그를 상대하겠는가?
백택은 운청휘에게 더 숨겨둔 패가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별안간 이성하가 기세를 폭발시켰는데, 마치 하늘에서 신이 강림하는 듯했다.
백택과 왕무성마저도 주춤할 기세였다.
이 기운만 본다면 이성하는 이미 그들에게 무한히 근접해 있었으니까!
영흥성원의 생도들은 놀랐지만 감탄했다. 1년 넘게 잠잠히 있더니, 이런 수법으로 사람을 놀라게 할 줄이야.
천찬학관의 생도들은 비통한 웃음을 머금었다. 영흥성원은 어찌 내보내는 생도가 점점 더 강해진단 말인가?
무엇보다 저 이성하는 혼자서도 무원의 고등반 생도들을 다 쓸어 버릴 수 있을 터였다.
모두의 머릿속에, 한 가지 결말만이 떠올랐다.
운청휘는 이성하의 손에 죽는다!
“전투력은 쓸만하나, 땅강아지로군.”
그때, 운청휘가 천천히 이성하를 훑어보더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비웃기 시작했다.
“운청휘, 정말로 미쳤구나, 이성하를 땅강아지 따위라고 하다니?”
“흥, 어차피 죽을 녀석이야!”
“이성하는 일격만으로도 승리를 쥘 수 있어! 녀석을 언제 죽일지는 이성하의 마음에 달린 거라고!”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비웃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운청휘의 신형은 용처럼 긴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이성하의 목을 틀어쥐었다.
콰득!
이성하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운청휘는 마종을 넣고 회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쿵!
목이 부러진 이성하의 시체는 그대로 허공에서 추락하여 지면에 부딪혔다.
하필 머리부터 떨어진 까닭에, 그의 최후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이…… 이럴 수가!”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넋을 놓았다.
영흥성원과 천찬학관의 생도들, 왕무성과 백택도 이 광경을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운청휘가 이성하를 일격으로 죽였다.
이 사실은 그들이 아는 상식을 깨트렸고, 심지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니 부정할 수도 없었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
별안간 백택이 통쾌하게 웃었다.
“역시 원장님께서 나를 이유도 없이 괴롭히실 리가 없지! 원장님의 말씀이 옳았다! 하하하……!”
이제야 그는 흙보살이 말한 대세를 바꿀 여지가 운청휘라고 확신했다!
“이겼어, 운 형제가 이겼어, 하하하……!”
담운의 흥분한 웃음소리도 같이 들렸다.
“하하하, 운청휘가 이겼어. 우리 천찬학관과 영흥성원은 이제 3 대 4야!”
“비록 한 판 뒤지고 있긴 하나, 이성하마저 운청휘에게 죽었으니 내보낼 사람도 마땅치 않겠어!”
어느새 천찬학관의 생도들은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물론 낙원과 낙병, 천단탑의 대천급 연단사 여섯 명의 표정은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운청휘의 전투력이 이렇게나 강하다니!”
“이제 보니 송서항, 정건, 만비, 문충 등은 운청휘의 손에 죽은 거야!”
어느새 영흥성원의 생도들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하마저 운청휘에게 죽었으니, 그들 중 누가 운청휘를 대적한단 말인가?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왕무성마저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뜻밖에도 이성하가 죽었으니, 다른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한비(韩飞), 그대가 운청휘와 싸워라!”
왕무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네!”
곧, 영흥성원의 둔천사에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둔천사를 빠져나와 훌쩍 날았다.
‘반절 인황경!’
둔천사에 숨었던 두 반절 인황경 중 한 명이다. 운청휘는 단번에 확신했다.
“한비?”
천찬학관 생도들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백택이 준 명단에는 한비라는 이름은 없었으므로.
‘원장님께서 주신 종이에 한비라는 이름이 있나?’
백택마저도 의혹이 가득 담긴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명단을 꺼내 100여 개의 이름을 재차 확인했고, 한비라는 이름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보다, 이상하군. 어찌 내가 알아볼 수 없는 거지?’
백택이 미심쩍은 눈빛을 보낼 때, 천찬학관의 생도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 이성하도 운청휘에게 단번에 죽었잖아! 아무리 강해도 똑같은 결과일 텐데?”
“잠깐……!”
한비가 나서려고 할 때 백택이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