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화
운청휘가 갑자기 알 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
무언가, 그의 마음을 끄는 것 같았다.
“저기다!”
운청휘는 십여 장을 걸어가 가장 가까운 무덤으로 향했다.
장신연은 신식을 차단하니 그로서도 이 느낌을 단번에 알아낼 순 없었다.
묘를 파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만약 이것을 파내면 이염죽이 그를 죽이려 들 터.
물론, 이염죽이 그의 목숨을 취하지 않더라도 운청휘는 그녀를 존중해 절대로 이 무덤을 훼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운청휘는 두 손을 가만히 무덤 위에 얹고, 눈을 감았다.
가만히, 무덤 안에서 그를 이끄는 느낌의 정체를 따라갔다.
잠시 후.
운청휘가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이럴 수가……!”
머릿속에 있는 추측을 검증하기 위해, 운청휘는 또 다른 무덤으로 향했다.
다시금 무덤에 손을 얹은 운청휘는 또다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숨을 참으며 다른 무덤에 손을 올렸으나, 그가 발견한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어, 운청휘는 다른 무덤에도 손을 대 본다.
또다시, 다른 무덤도!
“어찌, 이럴 수가……?”
계속해서 무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손을 얹는 운청휘에게서 실성한 듯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가 발견한 사실은 선제인 그마저도 동요하게 만들어 수만 개의 무덤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장신연의 절반을 탐사한 끝에야, 운청휘의 걸음이 멈췄다.
-주…… 주인님, 만약 이 소식이 전해지면 천성대륙의 모든 생령들은 미쳐 버리겠죠!
그가 탐사를 멈추자, 머릿속에서 청연지심화의 떨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운청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성대륙뿐일까, 온 우주의 생령들이 미쳐 버리겠지. 무덤마다 ‘신의 법칙’이 부활하고 있으니.”
“이제야 이유를 알겠군. 허원 노인의 사념을 만난 것도, 복제의 환생을 만난 것도.”
운청휘의 표정이 절로 복잡해졌다.
‘허원 노인과 복제 외에도, 다른 선제들도 포석을 깔아 두었겠군.’
운청휘가 속으로 추측해 보았다.
허원 노인과 복제 등은 신들의 무덤 안에서 신의 법칙이 부활함을 예측했을 터.
그리하여 허원 노인은 사념을 명계에 남겨두었고, 복제는 천성대륙에서 다른 몸을 환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제들은? 그들이 이 소식을 모를 수 없다.
‘하지만, 장신연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나다!’
운청휘는 내심 득의양양해졌다.
10대 선제들이 벌일 신의 법칙 쟁탈전에서, 우세를 점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운청휘는 장신연에 들어갔을뿐더러, 이미 완전한 신의 법칙을 얻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거둔 채, 운청휘는 다시금 전송진에 올랐다.
신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뒤, 운청휘는 곧바로 지상으로 가지 않고 전송진 위에 자신의 신식을 융합시켜 두었다.
누군가 이 전송진을 이용하려 한다면, 운청휘가 곧바로 감지할 수 있을 터였다.
지상으로 돌아온 운청휘는 기절한 백택을 들고 허공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3시진이면 따라잡겠어.”
시간을 가늠한 운청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흙보살에게서 세 번째 봉마비를 얻은 뒤 인왕경에 도달한다. 그 후 기령을 구하고, 염죽을 찾아 내가 발견한 것을 전부 알려 줘야겠군.’
운청휘가 비행한 지 한 시진 후.
백택이 마침내 눈을 떴다.
“운청휘, 나를 기절시키다니!”
백택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벌컥 화를 내었다.
물론 그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반절 인황으로서 남에게 맞고 기절했으니, 차라리 그를 죽일지언정 이런 치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 점은 사과하지.”
운청휘도 자신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났음을 알았기에 우선 사과한 후 말을 이었다.
“다만 상황이 특수하여 어쩔 수 없었다.”
“지, 지금 사과한 건가?”
백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그는 벌컥 화를 내긴 했으나, 곧바로 후회했다.
한비와 왕무성, 빙황위라는 반절 인황경 셋이 운청휘에게 죽었는데, 그런 운청휘에게 죄를 따져 묻다니.
한마디로 살기 귀찮아진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는데, 뜻밖에도 운청휘가 선선히 사과했다.
“문제라도 있는가? 도리에 어긋났으니 사과할 뿐.”
운청휘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답했다.
서둘러 신들의 무덤을 살펴야 하는데, 혼비백산한 백택을 설득할 시간이 없으니 강수를 둔 것뿐이다.
“하지만, 고작 인황경 하나에 그렇게 놀랄 일인가?”
운청휘가 물었다.
“그대는 정말로 인황경이 맞는가?”
백택이 운청휘의 말투에 놀라운 듯 말했다.
“인황경이 아닐뿐더러, 적수도 되지 않는다.”
운청휘가 솔직하게 말했다.
비록 반절 인황경을 일격에 때려잡는다고 해도, 전투력 자체는 인황경과 거대한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나를 기습해 기절시키지 않았나!”
백택은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비록 인황경의 적수가 되진 않지만, 억지로 상대한다고 하지 않았다. 인황경과 마주친다면 어찌할 것 같은가?”
운청휘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걱정하지 말도록. 도망치더라도 데리고 가 주마.”
“운청휘, 이전에 세상 물정을 모르고 그대를 제자로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백택이 갑자기 입을 열어 말했다.
“그렇군.”
백택의 사과에는 진심이 깃들어 있었기에, 운청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하늘에 맹세하건대 그대가 도심종마대법을 수련했다는 일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네!”
백택이 맹세까지 하자, 운청휘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이지?”
운청휘가 백택을 신경 썼다면, 자신이 도심종마대법을 수련한 일을 발설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거나, 억지로 맹세를 받아낼 수밖에.
한데 운청휘가 손을 쓰기도 전에 백택이 스스로 맹세를 한 것이다.
“운청휘, 나, 나는…….”
백택이 말끝을 흐리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해 있었기에, 운청휘는 예상한 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말하지 말거라!”
“아닐세. 자네 앞에선 참으로 초라해지는군!”
백택이 숨을 들이쉬며 무릎을 꿇었다.
“백택, 운 선배님을 뵈오니 운 선배님의 제자로 받아 주소서!”
운청휘는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 것도 있었지만, 백택이 그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천찬학관에서 자신이 제자가 되기를 거절했을 때, 백택이 뭐라 했던가?
【운청휘, 네놈이 앞으로 세 번 절을 하고 나에게 제자로 받아 달라고 말해도 내가 들어줄 것이라고 꿈도 꾸지 말거라!】
이렇게 상황이 역전될 줄은 운청휘도 몰랐기에, 어처구니없는 한편으로는 실소가 나오려 했다.
다만 운청휘는 안색을 정중하게 바꾸고,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백택, 듣기 싫겠지만 돌려 말하지 않겠다. 너는 아직 이 운청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
운청휘가 누구인가?
선계에서도 최강의 존재나 다름없는 선제다.
어찌 백택이 모시고 싶다고 하여 사부가 될 수 있을까.
진관해가 운청휘를 사부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진법에 깊은 조예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운청휘에 대한 깊은 충성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충성심에 감동한 운청휘가 진관해를 진짜 제자로 받아들였던 것이고.
백택은 운청휘의 대답을 듣자 별안간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
“맞아, 운청휘 같은 고수를 내가 어찌 사부로 모실 수 있겠는가…….”
동시에 백택의 마음에는 짙은 후회가 깃들었다. 자신이 무지했던 까닭에 운청휘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고, 그의 분노를 사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백택은 비행하는 내내 대화를 이어갔지만, 운청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꿋꿋이 말하던 백택이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별안간 소리쳤다.
“운 선배, 급한 일이 있습니다!”
“음?”
운청휘가 백택을 바라봤다.
“구련허영화는 채취한 지 3시진 이내에 인왕단으로 연제해야 합니다. 벌써 반나절이나 지났습니다!”
백택이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애초에 여기까지 온 것도 구련허영화 때문인데, 힘들게 얻은 것이 시들어 버린다면 헛걸음을 한 게 아닌가.
“지금에야 생각났으니, 어쩔 수 없군!”
운청휘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곧 영라 반지에서 인왕단 여섯 개를 꺼냈다.
운석과 약속한 몫이였다.
한 송이의 구련허영화로 현천급 연단사가 인왕단 아홉 개를 만들 수 있으니, 자신이 요구한 세 개를 빼고 천찬학관에 줄 셈이었다.
백택이 황급히 자신의 아공간 반지를 뒤졌다. 역시나, 구련허영화가 사라져 있었다.
운청휘가 자신을 기절시킨 틈에 반지에서 구련허영화를 빼낸 듯했기에, 백택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운 선배, 당신 현천급 연단사인가요?”
“그렇게 생각하나?”
운청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번 천찬학관의 대열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연단사도 대천급 연단사일 뿐인데, 운석과 흙보살이 그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겠는가?
백택은 이제서야 운청휘가 인왕단을 연제할 수 있음을 알았으니, 어리석다 할 수 있겠다.
“당신은 정말로 다재다능한 이로군요!”
절세 무위로 단번에 반절 인황경을 해치우고, 소익이 포진한 고목지완진마저 조종했다.
이제는 현천급 연단사이기까지 하니, 백택은 더할 나위 없이 탄복할 수밖에.
“운 선배. 우리 학관의 둔천사를 누구에게 맡겼죠?”
백택이 갑자기 물었다.
“영흥성원의 소효여를 잡아 주명과 양양에게 넘기고, 담운에게 둔천사의 운전을 맡겼다.”
운청휘가 그에게 당시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게 전부라고요?”
백택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낙원과 낙병은 처리하지 않나요?”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운청휘의 대답에 한숨 돌린 것도 잠시, 백택은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