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8화
“운 형제, 화, 화내지 말게, 말하겠네!”
용오천이 겨우 고개를 들며 말했다.
친구 사이에는 숨김없이 솔직해야 한다.
다만 그는 최근에 운청휘를 친구라기보다는, 우러러보는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얼굴은 어떻게 된 거냐?”
그가 고개를 든 순간 운청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용오천이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은 면목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얼굴에 남은 섬뜩한 채찍 자국 때문이었다.
운청휘는 단번에 그의 얼굴에 자국을 남긴 채찍이 현천급의 법보임을 알아차렸다.
그런 법보로 친다면, 수년간 자국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 사토 타케루(佐藤健)가 그랬다네!”
용오천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약혼녀 용어언(龙语嫣)이 있었는데, 18살에 반절 인왕경에 도달할 정도의 기재였다.
그 정도라면 영주뿐만 아니라 영흥제국에서도 보기 드문 기재였다.
더불어, 용오천과도 몹시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용어언이 반절 인왕경에 도달한 해, 그들은 혼사를 치르기로 약조하고 혼례식 날짜를 잡았다.
한데 혼례식이 보름 남았을 때.
그녀가 동영 난쟁이족에 납치되고 말았다.
그뿐인가, 난쟁이족 천황의 마차를 끄는 교룡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난쟁이족의 천황은 인황경의 고수인 만큼, 교룡족으로서는 그녀를 구할 수단이 없었다.
이 일로 뼈저리게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은 용오천은 억만리를 넘어가 영흥제국까지 도달했다. 스승을 만나 무예에 정진하고, 인황경에 도달하여 자신의 약혼녀를 되찾을 작정이었다.
물론 그 각오는 그의 가슴속에만 묻어 둔 채 살아갔지만, 일주일 전.
그는 천찬학관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을 마주치고 말았다.
동영 난쟁이족의 둘째 황자, 사토 타케루였다.
당초 용어언을 납치한 난쟁이족이 사토 타케루였다!
“사토 타케루를 보고 목숨을 뺏으려고 했군?”
운청휘가 여기까지 듣고 참지 못해 물었다.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면 나도 그리 성급하게 나서지 않았을 거라네. 하지만 내, 내가 사토 타케루와 마주쳤을 때……! 어언도 함께 있었네!”
여기까지 말한 용오천은 분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기 시작했다.
“어언은 어수권으로 억제되어 사토 타케루의 마차를 끌고 있었다네. 운 형제, 그녀의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는지, 상상도 못 할 걸세. 그 거대한 교룡의 몸체가 채찍 자국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네. 사토 타케루가 쓰는 채찍은 현천급의 법보라, 채찍을 휘두르면 오랫동안 그 흔적이 남지. 운 형제,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잠시 정신이 나갔네. 지금도 사토 타케루를 산산이 조각 내 버리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이라네…….”
“정말 참을 수가 없었네. 그리하여 사토 타케루의 손에서 어언을 구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네. 그의 눈빛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억압하는 힘이 있었네, 더욱이 기세 한 번만으로 나를 날려 버리고 기절시켜 버렸네.”
용오천은 분을 이기지 못하며 눈물을 뚝뚝 떨궜는데, 약혼녀인 용어언을 안타깝게 여기며 자신의 무능함을 원망하고 있었다.
남자로서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지 못했고, 다른 이의 마차나 끄는 가축 취급을 받는 연인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오천, 네 탓을 하지 않겠다. 사토 타케루는 인왕경이지만 너는 영변경이니, 그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용기가 충분했다는 뜻이다.”
운청휘가 용오천의 어깨를 토닥였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정 그에게 탄복했기 때문이다.
영변경과 인왕경의 차이는 헤아릴 수도 없건만, 그 앞에 나선 용오천의 용기를 어찌 비웃을 수 있을까?
“용기가 있으면? 용기만으로는 그녀를 구하지 못하는 것을. 마차를 끄는 짐승 취급을 받으며 매일 굴욕 속에 살고 있다네. 운 형제, 어언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여인인지 모를 것이네, 한데 그녀는 하필 어수권에 묶이는 바람에, 주, 죽을 권리도 없었네!”
용오천은 완전히 절망에 빠져 흐느끼고 있었다.
“얼굴에 난 채찍 자국은 어제 생긴 것이군!”
운청휘가 말했다.
용오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제 부상을 회복하고 사토 타케루를 찾았는데 그는 기세를 쓰지 않고 채찍을 휘둘렀다네! 내 얼굴에 있는 채찍 자국이 바로 그것이라네!”
경과를 다 들은 후, 운청휘는 단약을 하나 꺼내 용오천에게 먹였다.
“이것은 벽원생골단(碧源生骨丹)으로, 전신의 뼈가 부서져도 전부 회복시켜 주는 단약이니 얼굴에 남은 자국은 하룻밤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이어서 운청휘는 사랑방 밖에 있는 위경륜을 불러서 말했다.
“흙보살이 이 일에 대해 어떤 말을 했나?”
위경륜이 운청휘를 감히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사토 타케루의 신분이 간단하지 않으니, 개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공자께서 돌아오기 전에 용오천의 생명을 지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운청휘의 눈에 깃들어 있던 불쾌감이 비로소 사라졌다.
흙보살은 이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반대로 운청휘의 개입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닌가.
“오천, 하루를 푹 쉬며 벽월생곤단의 약효를 연화시키도록. 내일 아침 얼굴의 자국이 사라지면, 함께 약혼녀를 되찾으러 가지.”
운청휘가 용오천을 보고 말했다.
“운 형제, 자네……!”
용오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하고 목이 메었다. 자신의 일에 운청휘가 또다시 나서주는 것이다.
“운 형제, 괜한 말은 하지 않겠네. 이제부터 나 용오천의 목숨은 그대의 것일세!”
용오천이 급기야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운청휘는 그를 위해 낙가를 쳤고, 이제는 동영 난쟁이족까지 적으로 삼았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까.
특히나 사토 타케루의 부친은 난쟁이족의 천황이자 인황경의 최강자인 것을!
새벽 무렵, 용오천이 방에서 나왔다.
벽월생골단의 약효 덕분에, 그의 얼굴에는 채찍 자국이 사라지고 얼굴마저 훤해졌다.
그가 운청휘의 방 밖에 왔으나, 차마 문을 두드리기 미안하여 밖을 서성였다.
운청휘는 이미 신식으로 밖에서 기다리는 용오천을 발견했지만, 그는 연단의 중요한 단계를 거치는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용오천을 일각여 정도 기다리게 했다.
“강천급(强天级)의 조화생골단(造化生骨丹), 마침내 성공했군…….”
마침내, 운청휘가 연단을 마쳤다.
강천급 단약은 현천급 단약보다 한 단계 높지만, 가치는 천 배 이상이었다.
이 조화생골단은 용오천의 약혼녀 용어언을 위한 단약이었다.
그녀의 몸에 채찍 자국이 빼곡하다고 했으니, 벽월생골단으로는 치유할 수 없어 이 단약을 연제하고 있었다.
벌컥!
운청휘가 방문을 확 밀어젖혔다.
“운 형제……!”
용오천이 갑자기 긴장하여 운청휘 앞으로 달려갔다.
“가죠, 사토 타케루를 찾아 당신의 약혼녀를 되찾죠!”
운청휘가 손을 휘둘러 용오천을 데리고 천찬학관 쪽으로 날아갔다.
한편, 천찬학관의 인왕경 생도들의 거주관.
호화로운 독채 밖에는 거대한 교룡이 풀숲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온통 채찍 자국으로 가득한 교룡은 목에 어수권을 찬 상태였다.
이때 교룡의 용머리 앞에는 키가 3척을 조금 넘는 청년이 서 있었다.
실제 나이는 30여 세였지만, 몸이 왜소한 데다 턱수염이 없어 약관의 청년으로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난쟁이족의 둘째 황자 사토 타케루다.
“용어언, 나의 요구를 생각해 봤나?”
사토 타케루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교룡은 묵묵부답이었지만, 거대한 두 눈에 증오심을 가득 담은 채 사토 타케루를 노려보았다.
“잊을 뻔했군, 어수권에 조종당하니 말을 할 수 없겠지!”
사토 타케루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입을 열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 변신도 할 수 없지, 에휴…….”
사토 타케루는 용어언의 인간 형태가 경국지색임을 알고 있었다.
하여, 그녀를 만지고 싶었고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용어언의 목에 있는 어수권을 떼는 순간, 그녀의 성격상 자결하고도 남는다.
“용어언, 너를 2년이나 기다렸고, 곧 3년이 된다. 너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널 복종시킬 방법이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지. 용오천이라는 쓰레기가 영흥제국까지 왔고, 천찬학관에서 마주쳤으니!”
사토 타케루가 냉소했다.
“위경륜은 내가 흙보살의 체면을 봐서 두 번이나 녀석을 살려 주었다고 생각하더군! 내가 녀석을 살려 둔 건 용어언, 네년을 복종시키기 위함인데!”
“용어언, 내 인내심은 이미 바닥났다. 어수권을 떼었을 때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고 인간으로 변하여 나와 한 달을 보내는 건 어때? 그렇게 한다면 천황 폐하의 이름으로 네게 자유를 준다고 맹세할 수 있다! 물론, 제안이 아닌 요구인 만큼 들어주지 않는다면 네 앞에서 용오천을 갈기갈기 베어 버리겠어!”
마지막 말을 하는 사토 타케루의 눈에 병적인 흥분이 깃들었다.
난쟁이족은 천성적으로 잔인하여 부자상잔, 형제상잔 등 골육상잔이 종종 발생할 정도였다.
용어언은 여전히 침묵했다.
거대한 두 눈은 증오심을 가득 담아 사토 타케루를 노려볼 뿐.
사토 타케루는 분에 못 이겨 고함을 내지르더니, 아공간 반지에서 흑색 채찍을 꺼내들었다.
“천한 것, 뻔뻔하게 구는 거냐!”
짜악! 짝! 짜악!
분노한 채찍질이 용어언의 몸에 날아들었다.
용 비늘이 갈라지며 핏물이 새어나오고, 찢긴 살점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건방진 것, 인간으로 변하지 않으면 이 몸이 정녕 방법이 없을 줄 알고? 지금 사람을 보내 용오천을 잡아오겠다. 네까짓 것이 여전히 도도하게 굴 수 있는지 궁금하군!”
사토 타케루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여봐라! 지금 당장 용어천을 잡아 와라!”
“네!”
허공에는 검은 옷을 입은 열 명의 사람들이 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두 눈만 빼꼼히 드러냈을 뿐, 전신을 검은 천으로 감싸고 있었다.
또한 하나같이 등에 가늘고 긴 곡도를 묶은 게 특징이었는데, 사토 타케루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일제히 사라졌다.
“열 명의 반절 인왕경이다. 영변경의 용오천이 어찌 될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검은 옷의 사람들이 떠나고 사토 타케루는 음흉한 눈빛으로 용어언을 봤다.
“용오천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때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으헝……!”
용어언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그래, 울부짖어라! 이 천한 것! 그럴 수록 통쾌해지니까!”
사토 타케루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인간으로 변한 후 네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지켜봐 주마! 그 뒤에는 어찌할 것 같나? 매일 널 유린해 주지! 하하하! 그러다 질리면 다른 이들에게 던져 주마! 교룡족의 절세 미녀인 만큼 탐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테지?”
사토 타케루는 기어이 낄낄거리며 추잡한 말을 내뱉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인간으로 변한 용어연을 범하는 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