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7화
“동시에 오다니, 한꺼번에 죽여야겠군!”
오히려 귀찮은 일을 줄여서 잘됐다는 듯, 운청휘가 미소 지었다.
퍼엉!
두 반절 인황경의 최후도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다가왔다. 운청휘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한 그들은 병기 한번 써 보지도 못한 채 단번에 쓰러졌다.
일격으로 반절 인황경을 쓰러트릴 수 있으니, 그 수가 하나든 둘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멍하니 서 있었지만, 운청휘는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막가의 반절 인황경 셋에게 마종을 넣었다.
일련의 과정을 행하는 운청휘의 기분은 무척이나 좋았는데, 본디 용오천의 체면을 살려 주려던 것이 뜻밖의 수확까지 거두었다.
상고 전쟁터에서 반절 인황경의 마종을 얻기 위해 들인 수고를 생각하면, 오늘은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다섯 개의 반절 인황경 마종을 얻었다.
어찌 콧노래가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오천, 사토 타케루를 어떻게 처리할 건가?”
마종을 거둔 후, 운청휘는 반절 인황경 셋의 목숨을 끊고 용오천을 바라보았다.
이때 용오천과 용어언은 그간의 원한을 담아 사토 타케루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뜻을 알겠군.”
고개를 끄덕인 운청휘가 사토 타케루의 아랫배에 손을 대고 그의 영해를 파괴시켰다.
무위를 폐한 뒤, 운청휘는 사토 타케루를 두 사람에게 던져 주었다.
“내가 있으니 뒷일은 염려할 것 없다. 마음 가는 대로 하도록.”
운청휘가 용오천에게 말했다.
“양양, 주명, 담운. 다른 생도들을 데려와라. 장소를 옮겨야겠으니.”
고등반의 다른 생도들은 구역을 봉쇄하고 다른 이들이 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운청휘가 양양 등을 보며 말하자, 그들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서 불러오겠네!”
주명이 나서더니 허공으로 훌쩍 솟구쳐 올랐다.
과연, 그는 촌각도 지나지 않아 주변을 봉쇄하고 있던 생도들을 모두 데려왔다.
“위경륜, 이쪽의 일은 끝났으니 돌아오도록. 함께 마시자꾸나.”
운청휘가 전송 옥석으로 위경륜에게 말을 전했다.
“음? 흙보살이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운청휘의 눈이 살짝 커졌지만, 예상치 못한 일도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천찬학관의 원장인데, 네 가문의 사람들이 온 걸 모르고 있겠는가.
“그런가. 다음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미리 알려 달라는 거로군.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전하도록.”
곧 운청휘는 뜻밖이라는 듯 미소를 머금었따.
흙보살은 이번 일에 대해 어떠한 문책도 내리지 않았다. 물론 문책을 했더라도 운청휘는 무시했을 터이지만.
하지만 아무 일 없이 넘어간다는 건, 은연중에 운청휘의 편을 들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떠날 채비를 하는 운청휘 일행 앞에, 금빛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장 먼저 떠나도록!
운청휘가 그 자리에 있던 생도들에게 음을 보냈다.
일행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운청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은 걸 보고 의아하게 여겼지만, 곧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막가의 가주가 납셨군.”
운청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며 허공에 몸을 띄웠다.
“뭐, 막가의 가주?!”
걸음을 옮기던 담운 등이 질겁하며 돌아보았다.
“저 중년인이 막가 가주였다니! 그는 인황경의 최강자잖아!”
“어쩐지 운 형제가 우리 보고 떠나라고 했더니!”
“어쩌지, 운 형제를 도와줘야 하나?”
“도와준다고? 바보 같은 생각이야. 오히려 도우러 가면 운 형제의 짐이 될 걸세! 그렇지 않다면 운 형제가 언질을 주었겠는가?”
저들끼리 수근거렸지만, 담운 일행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무인인 그들이 겁을 먹는 일은 흔하지 않지만, 강자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 앞에선 무력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가도록! 막가 가주의 목표가 나라고 해도, 너희까지 휩쓸릴 수 있다.
운청휘는 다시금 음을 보내 재촉했다.
비록 분신을 보냈으나, 분신이라도 인황의 분신이다. 운청휘라도 상대할 수가 없을 터였다.
그러니 담운 일행은 막가 가주 앞에서는 추풍낙엽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그래, 고(孤: 왕이 자신을 낮춰 부르는 호칭)가 바로 막가의 가주 막문천이다.”
용이 새겨진 황금빛 장포를 입은 막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곧 운청휘 쪽을 보았다.
“젊은이, 대단하구만. 양구, 막강, 원인도 그대의 손에 죽다니!”
“그들이 너무 약한 것이다.”
운청휘가 막문천을 보며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아니,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대가 강해서라네!”
막문천이 화를 내지 않고 운청휘를 칭찬했다.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데 반절 인황경 셋을 죽였다. 그대의 자질만 보면 그곳에 내놓아도 중상급에 속하겠군.”
그곳?
운청휘의 마음 속에서 작은 의문이 피어 오르는데, 곧바로 막문천이 말을 이었다.
“젊은이, 고는 젊은 천재를 좋아하는데 우리 막가에 합류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네.”
운청휘는 거절도 대답도 하지 않고 물었다.
“합류라는 것은?”
“간단하네, 항복 문서를 쓰면 된다네.”
막문천이 시원스레 답했다.
막문천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운청휘의 신식은 항복 문서를 말하는 순간 그의 눈에 스치는 탐욕을 읽었다.
“인황경의 막 가주가 있는 막가에 합류할 수 있다면, 보통의 무인에겐 더 바랄 것이 없는 일이겠군.”
운청휘가 이어서 말했다.
“다만 항복 문서에 써야 하는 내용은?”
“하하, 어려울 것이 없네. 도심종마대법을 고에게 전해주면 된다네.”
막문천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간단한가?”
운청휘가 놀랍다는 듯 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선명한 기쁨이 서려 있었다.
“대답한 거냐?”
선뜻 응하는 반응이 돌아오니, 오히려 막문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만한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막가에 충성하고 무공을 바치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운청휘가 그럴싸하게 치켜세우자, 막문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도심종마대법은 첫 번째 조건일세. 그다음은…….”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지. 고가 도심종마대법을 수련하면, 그대의 몸에 마종을 심겠다. 거절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대의 천부적인 재능이라면 고를 뛰어넘는 건 시간문제이니, 제약이 없다면 어찌 그대를 수족으로 삼겠는가?”
운청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과연, 마종을 심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군.”
운청휘는 납득이 된다는 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짙은 살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막문천은 주제도 모르고 도심종마대법을 넘본 것도 모자라, 운청휘에게 마종을 심겠다 선언했다.
그가 늘어놓는 감언이설은 죄다 헛소리에 불과했다.
일단 마종을 심게 된다면 운청휘는 그저 막문천이 기르는 가축으로 전락할 테고, 언젠가는 그의 자양분이 될 게 뻔했다.
운청휘는 살기를 억누르며 영라 반지에서 고서적 한 권을 꺼내들었다.
막문천에게 던져 주려 했으나, 별안간 생각이 바뀐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무공은 직접 전해주는 게 낫겠군.”
“하하하……!”
막문천은 운청휘의 조심스러운 몸짓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대처럼 조심스러운 젊은이는 많지 않아. 키울 만하구나, 키울 만해!”
“과찬이로군.”
운청휘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고서적을 들고 막문천의 곁으로 다가왔다.
“영흥제국사? 고를 놀리는 거냐?”
흡족해하는 것도 잠시, 고서적의 표지를 읽은 막문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주위의 눈을 속이기 위해 평범한 책으로 위장했을 뿐이니, 조급해하지 말도록.”
운청휘가 그를 달래며 고서적을 건네주었다.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면 되지 않나?”
조금 전 운청휘가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막문천은 그 말을 믿었다.
이윽고 고서적을 손에 쥔 그가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도심종마대법이라니, 그와 같은 경계의 무인에게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얻고 싶은 무공이었다.
“영흥제국은 소백하(萧白河)가 창립하여…….”
고서적의 첫 장을 읽어내려가던 막문천이 별안간 말을 멈췄다.
그의 얼굴에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사방을 압도하는 기세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는 운청휘에게 보기 좋게 조롱당했다.
더욱이 운청휘는 그가 기세를 일으키자마자 참천검집을 꺼내 막문천의 명치를 찔러 왔다.
“고작 인황 분신 따위가 감히 허세를 부리는 거냐?”
만약 막문천의 본체가 왔다면, 운청휘는 이리 조롱하고 시간을 끄는 대신 도망쳤으리라.
설령 기습하더라도 막문천에게 조금의 부상도 입힐 수 없음이 자명했으니까.
그러나 눈앞에 있는 막문천은 분신이고, 전투력이 비록 운청휘의 위에 있다고 하나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니었다.
콰득!
검집은 단번에 막문천의 명치를 관통했다.
“분신에는 마종을 심어본 적이 없는데, 어떤 효과가 있을까!”
운청휘가 호기롭게 외치며 번개같은 속도로 막문천에게 마종을 밀어넣었다.
“분신도 무위를 흡수할 수 있군.”
이윽고 막문천의 몸에 들어간 마종이 힘을 흡수하자, 운청휘는 뜻밖의 발견에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반절 인황경 셋을 모은 것과 동급이로군.”
이때, 막문천의 입장이 어떻겠는가.
비록 분신이라고 하나 운청휘를 참살할 수 있는 절대적 우위를 점한 그였다.
그러나 운청휘가 비열한 방법으로 그의 신뢰를 얻고 기습할 줄은 몰랐던 터였다.
무위를 가진 자는 무위를 맹신할수록 허점이 늘어나는 법이었다.
분신의 생명력은 급속도로 약해지며, 그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되었다.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군. 하지만 네놈과 어울릴 시간은 없다. 내 짐작대로라면 네놈의 본체는 인황경 1단계의 정점이겠군.”
운청휘가 두 눈에 웃음을 담은 채 막문천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먼 천찬학관까지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마종을 선물해 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