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0화
“운명을 추산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계산이 복잡해집니다. 나무 한 그루의 운명을 추산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운명을 추산하는 게 더 복잡하고, 한 국가의 국운을 추산하는 게 한 사람의 운명보다 복잡한 건 당연한 이치죠. 조 단위, 대륙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기초가 없는 사람이라면 한두 사람의 운명을 추산하는 게 고작인데, 국운이라는 차원은 어떻게 계산하겠나요?”
운청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의 운명을 예로 들자면, 필요한 수학은 천 자릿수 이내의 사칙연산만 이행하면 된다.
그러나 국운 차원으로 넘어가면, 이미 사칙연산의 수준을 넘어가는 식을 필요로 하는 데다 자릿수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수준 높은 찬명사일수록 수학에 대한 조예가 깊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한 사람의 운명을 추산하는 것과 한 국가의 국운을 추산하는 것의 난이도가 다르다고 하지 않았나?”
운청휘가 문득 흙보살의 말을 되짚더니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찬명사는 사람의 운명을 넘어 국가, 나아가 대륙의 운명을 추산하는 힘을 지녔다는 뜻인가?”
“맞아요!”
흙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만물은 모두 운명에 얽혀 있죠. 바꾸어 말하자면 극소수의 존재 외에는 찬명사의 추산을 벗어날 수 없어요!”
흙보살이 말하는 극소수의 존재를, 운청휘는 알고 있었다.
자신과 흙보살, 그리고 신들의 주인인 이염죽이 여기에 해당하므로.
“그렇다면 네게 천성대륙의 한 국가의 국운을 추산하라고 하면, 얼마가 걸리지?”
운청휘가 물었다.
“곧바로!”
흙보살이 단호히 말했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운청휘로서도 뜻밖이었다.
“무도에서는 보잘것없는 실력이나, 찬명술에서는 감히 말할 수 있어요. 나 흙보살이 두 번째 가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첫째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없지요.”
흙보살의 눈에 자신감이 돌았다.
이성적으로, 운청휘는 흙보살이 그를 속일 리도 없고 속일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국가의 국운을 순식간에 추산한다는 말은 운청휘를 거듭 질문하게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한 국가의 국운을 추산해 줄 수 있나? 개인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일이니, 마땅히 보은하겠다.”
“운 동포의 말이 사실인지요?”
흙보살의 숨이 저도 모르게 흐트러졌다.
이 천성대륙에서 흙보살의 흥미를 끄는 게 몇이나 되겠는가.
더욱이 평정심까지 잃을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운청휘의 보은이라면, 예외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흙보살은 알 수 있었다.
비록 흙보살은 아직 복제의 기억이 깨어나지 않았고 운청휘의 진정한 정체도 모르지만, 운청휘가 자신의 찬명술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신비한 인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운청휘의 보은은 당연히 가치 있고 중시할 만한 일이 아닌가?
“사실 운 동포께서 조건을 달지 않아도 기꺼이 해 드렸을 거예요. 지금 운 동포에게 찬명술을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물론, 약조하신 보은을 굳이 사양할 생각은 없어요.”
운청휘는 어이가 없었다. 언제 저런 인사치레를 배운 것일까?
확신하건대, 만약 보은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흙보살은 인과를 앞세워 부탁을 거절했으리라.
“국가의 이름은 천운왕조. 현 황제의 이름은 운현이다.”
“추산해 드리죠!”
흙보살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전신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운청휘마저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는데,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난 건 흙보살이 아니라 운명의 대리인이었다.
“천운왕조의 국운이 창성하여 5천 년 후에 절정에 이르고 제천만계를 통치할 수 있…….”
추산 결과를 말하던 흙보살이 눈을 부릅떴다.
“맙소사, 이 작은 국가가 5천 년 후에 천하를 통치하다니!”
흙보살은 전에 없이 놀랐다.
천성대륙을 통치하는 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천운왕조가 통치하는 대상은 제천만계였다.
제천만계란 무수한 장소, 무수한 대륙, 나아가 무수한 세계를 뜻한다.
“내 추산이 틀린 건가. ‘그곳’도 천성대륙에 세륙을 뻗지 못했는데, 세속의 작은 국가가 어떻게……?”
흙보살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운청휘도 뜻밖이었지만, 차츰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남들은 잘 모르는 천운왕조였지만, 이곳은 운청휘가 속해 있는 운가의 나라다.
운청휘가 그 안에서 점차 성장한다면, 제천만계가 아니라 온 우주를 통치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흙보살은 다시 추산을 하였는데, 속도를 늦추고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천년 안에 천운왕조에 두 차례의 위기가 찾아오는데, 모두 순조롭게 이겨내고 더욱 융성하게 된다. 다만, 제천만계를 통치하게 되는 과정은 나도 추산할 수 없어. 이 기간은 공백이라고 봐도 좋겠는데.”
흙보살이 말하며 운청휘를 바라보게 되었다.
“운 동포, 설마 천운왕조의 확장은 그대와 관련이 있는지?”
운청휘의 운명은 추산할 수 없다. 이곳에도 운청휘의 그림자가 스며 있다면, 공백으로 보이는 것도 설명이 되었다.
운청휘는 대답 대신 반문했다.
“내가 천년 후의 일도 예지한다고 보느냐?”
“그것도 그렇겠죠…….”
흙보살이 머쓱하게 웃었다.
천운왕조의 국운이 주는 놀라움이 너무 컸으니, 이렇게 어리석은 질문도 하는 것이다.
“이상하군…….”
조금 더 추산해 보던 흙보살이 추산을 멈추더니, 짙은 의심의 눈초리로 앞을 바라보았다.
“5천 년 후, 천운왕조는 이미 제천만계를 통치하고 있어요. 한데 하필 이때 멸망하게 되는군요!”
운청휘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사실인가?”
“네, 천운왕조의 국운은 이러하네요!”
흙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다만 이해할 수 없네요. 소국이 하루아침에 멸망했다면 대국의 침공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제천만계를 통치하는 선국(仙国)이 하루아침에 멸망할 이유가 뭘까요?”
운청휘는 말이 없었지만, 가만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선국을 와해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선제가 나타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국이 10개, 혹은 100개라도 하루아침에 멸망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운청휘가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5천 년 뒤라면 그의 실력은 이미 전성기의 힘을 되찾았을 터였다. 혹은 무상비경에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존재가 자신을 초월하여 천운왕조를 멸망시킨단 말인가?
침묵 속에서 일각여가 지나고, 흙보살이 추산을 멈췄다.
“운 동포, 1만 년 뒤까지 추산했으나 천운왕조는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는 건, 5천 년 후 천운왕조는 최고조로 융성하였다가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그 말은 운청휘에게 많은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했지만, 최종적으로 도달한 가능성은 하나였다.
무수한 별들이 파괴되고 은하수가 흩어지는데, 대기가 찢기며 그 사이에서 거수들이 비집고 나온다. 가공할 위력을 지닌 이 거수들이 모든 별을 파괴해나간다.
‘쓸데없는 생각을 했기를 바라야겠군.’
운청휘는 애써 머릿속에 떠오르는 광경을 지워냈다.
추산을 마치고 흙보살은 찬명술을 계속 설명했다.
“찬명술의 핵심 이론은 음양오행, 천간지기 및 태극팔괘예요. 그중 음양오행은 ‘음양’과 ‘오행’으로 나뉘는데, 상호보완하며 오행은 반드시 음양과 합쳐지고 음양은 반드시 오행과 겸해야 하죠. 음양은 세상의 모든 물질을 가리키지만 구체적으로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힘을 말해요.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 다섯 가지의 운행과 변화로 구성되지만, ‘풍, 빙, 뇌, 암, 광’ 등의 힘도 오행으로 보고 있어요. 천간지기는 성상과 관련이 있는데, 국운이나 대륙의 흥망성쇠를 추산할 땐 반드시 천간지기에 적용해요. 마지막으로 태극팔괘는 가장 복잡한 것으로, 음양오행과 천간지기에도 통달해야 태극팔괘를 이해할 수 있어요. 찬명사를 등급으로 나눈다면, 태극팔괘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찬명사야말로 정점에 서 있는 거예요.”
한 시진 동안, 운청휘는 묵묵히 흙보살의 설명을 들었다.
흙보살은 과연 영흥제국 제일의 찬명사라 할 만큼 지식이 풍부하였는데, 이론만으로도 운청휘는 그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운청휘도 찬명사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졌으니, 고마운 일이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운청휘가 찬명사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한층 더 멀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운청휘는 여전히 운명을 믿지 않았다.
만약 운명이 자신을 속박한다면, 운청휘는 망설임 없이 운명을 개척해나갈 사람이었다.
이 점은 운명을 믿고 나아가는 찬명사와 대척점에 서 있으니, 그가 어찌 찬명사가 될 수 있을까.
운청휘는 솔직하게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운 동포에게 준비한 건 보통의 찬명사가 되는 길과 다르죠. 나는 동포를 찬명사로 ‘만들’ 거니까요.”
흙보살이 시원스레 대답하자, 오히려 운청휘의 의혹이 깊어졌다.
“찬명사로 만든다?”
“네, 바로 찬명사로 만들 겁니다.”
흙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찬명사로 만들게 수련시킬 것입니다.”
흙보살이 말하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자, 그 끝에서 금빛 글자가 두둥실 떠올랐다.
“팔괘육효현결!”
글자를 알아본 운청휘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이걸 내게 전수하겠다는 건가?”
선계의 10대 선제는 모두 스스로 창안한 무공이 있는데, 운청위에게 선제진해가 있는 것처럼 허원 노인에게는 허원진해가, 지요여제에게는 천녀옥황심경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복제가 익힌 무공은 ‘팔괘육효현결’이다.
이는 무위를 수련시키는 동시에 찬명술도 포함하고 있어, 선제들의 무공 중에서도 특수한 무공에 해당했다.
과거 운청휘와 복제의 관계는 소도도나 진상상의 친분 못지않았음에도, 무공을 교환하자는 청을 몇 번이나 거절당했다.
심지어 복제는 팔괘육효현결은 그의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아들에게도 전수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긴 터였다.
“운 동포께서 팔괘육효현결을 아시나요?”
흙보살이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비록 흙보살이 팔괘육효현결을 익혔다지만, 그도 이 무공의 출처를 알지 못했다.
그저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그 속에서 팔괘육효현결이 나타난 것이다.
흙보살이 아직 ‘그곳’에서 지낼 때 그곳의 장서각을 전부 뒤져 보았으나, 팔괘육효현결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한 터였다.
한데 운청휘는 이 무공을 아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들어 봤을 뿐이다.”
흙보살은 아직 복제의 기억이 깨어나지 않았으니, 선계의 이야기를 자세히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팔괘육효현결의 구결을 기록한 뒤, 운청휘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귀중한 무공을 받았으니 답례를 하는 게 도리다. 법결을 하나 전수해 주마.”
운청휘 또한 허공에 금빛 글자들을 띄워 올렸다.
글자들은 선제진해의 3식을 뜻했는데, 흙보살이 팔괘육효현결을 3식만 전수해 주었기에 동등하게 답례한 것이다.
“신기하군요, 기묘한 무공이군요!”
흙보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팔괘육효현결 못지 않은 무공이에요!”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동등한 무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