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3화
“정원동은 결국 진안을 파괴하여 진법을 깨려 하는군.”
여천, 주봉, 조뢰, 장걸, 장한 다섯이 서로를 쳐다보고 말했다.
“진법으로 진법을 깨는 수법은 정원동으로서는 최고의 방법이었어. 우리였어도 정원동 같이 했겠지.”
“하지만 정원동은 실패했고, 우리들이었어도 별다른 결과는 없었을 듯하군.”
여천 등이 소근거리는 동안, 다른 생도들은 조용히 진 안을 살폈다.
특히나 진원의 생도들은 조금의 실마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진법 대사에게 있어, 지금의 대결은 무인으로 치면 반절 인황경의 대결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응? 무슨 일이지?”
여천 등이 별안간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정원동은 허공에서 몇 차례나 깃발을 파괴하려 했는데,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알고 보니,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던 깃발들은 모두 가짜였다!
“운청휘도 진법을 하나만 포진한 것이 아니잖아!”
여천 등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운청휘는 깃발에 또 환진을 포진했어!”
주봉도 굳은 얼굴이었다.
“저 깃발이 환상이라는 걸 우리도 이제야 알았어.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한 거야!”
조뢰도 말했다.
“우리를 속여넘길 정도의 환진이라면 보통이 아니군. 처음에 포진했던 진과 비슷한 수준일 거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십팔나생문을 알지 못했기에, 처음에 포진한 살기 넘치는 대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하하, 운청휘, 네가 감히 진안에 환진을 포진하다니!”
십팔나생문 안에서 정원동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노여움도 분노도 들지 않았다. 그저 화조차 낼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이 정원동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진안을 파괴해서 진법을 깨는 가장 쉬운 방법마저 실패했으니, 정원동이 절망할 수밖에.
가장 쉬운 방법마저 실패했다는 뜻은, 정원동에게는 가망이 없다는 말이었다.
“진안에 환진을 포진했다고?”
운청휘는 웃음만 나올 뿐이다.
“참으로 대단한 눈치로군.”
운청휘가 보기에, 정원동의 진법 조예는 참으로 형편없었다.
진안에 환진을 포진하는 것쯤은 운청휘에게 아주 간단한 일이었고, 환진을 여러 개 포진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운청휘는 애초부터 환진 따위는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원동의 공격이 실패한 건 깃발이 환영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공격 속도가 형편없이 느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환영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우습게도 정원동뿐 아니라 다른 생도들도 환진이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 운청휘는 기가 찼다.
정원동은 그 후에도 다양한 파진 수법을 사용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시간은 일각도 되지 않았다.
구경하던 이들은 이미 정원동의 패배를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파진 수법은 정원동이 모두 사용했군. 그런데도 실패야.”
“인정하기 싫지만 운청휘의 진법은 나 주봉도 깰 수 없다고 말해야겠어!”
“나도 할 수 없네!”
여천 등이 중얼거리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이 진법을 깨지 못하지만 우리의 진법 조예가 운청휘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지!”
“우리 다섯은 예선의 5위 안에 들었다. 운청휘는 다만 진법에서 우세를 차지할 뿐 아무것도 대표할 수 없어!”
“정원동의 패인은 상대를 얕잡아 본 것이다!”
“적을 얕잡아 본 것 외에 운청휘의 진법이 너무도 강했어!”
“시합이 끝나면 운청휘에게 이 진법을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볼 거야!”
“바꿔? 그가 원하겠어?”
“원하지 않을까? 그건 모르지!”
여천 등의 눈에 탐욕이 스쳤다.
연단사가 단방을 갈망하듯, 진법대사도 진결을 갈구하니 당연한 일이다.
다시 일 다경이 지나고, 줄곧 눈을 감은 채 느긋하게 서 있던 운청휘의 귀에 정원동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운청휘, 거래하지 않겠나!
“음?”
운청휘가 살짝 눈을 뜨고 정원동을 바라봤다.
-나는 반드시 본선에 나가야 하네. 그러니 자리를 넘겨주게! 그럼 기우이변의 진결을 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보은하겠네!
정원동이 음을 전했지만, 운청휘는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기우이변의 진결에 흥미가 있긴 해도, 이대로라면 운청휘의 승리니 자연히 손에 들어온다.
고의로 패배해 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정원동의 보은뿐인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심지어 운청휘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해도, 정원동의 보은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운청휘, 난 꼭 본선에 나가야만 한다네!
운청휘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정원동이 연신 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대가로 무엇이든 주마! 운청휘, 정말 고려해 보지도 않는 것이냐? 나를 우롱하지 마라!
정원동의 음은 점점 분노가 가득했다.
-본선 진출권을 양보하게! 대신 어떤 조건이든 좋아! 모든 것을 주겠네!
그러나 운청휘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운청휘, 나는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마찬가지로 본선에 참가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이든 쓸 수 있다!
마침내, 운청휘가 눈을 뜨고 정원동을 바라보았다. 희미하지만, 명확한 살기가 정원동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죽어라!”
정원동이 포효하며 짙은 살기와 함께 기세를 끌어올렸다.
“제일 간단한 파진 수법은 진안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진법 대사를 죽이는 것이지!”
공원의 힘을 일으킨 정원동이 허공을 가르더니, 운청휘를 직접 공격하려 들었다.
지켜보던 이들은 잠시 멍해졌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욕을 퍼부었다.
“정원동이 미친 건가, 진법의 대결에서 감히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무력으로 이 대결에서 승리하면 앞으로 진원에서 고개를 들 생각도 하면 안 된다구!”
“정원동이 이렇게 파렴치한 녀석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정원동을 사형이라 부르던 이들마저도 이름을 부르며 경멸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여천 등도 두 눈에 짙은 경멸과 혐오를 담고 있었다.
지금, 정원동의 행동은 진원 전체에 먹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원동과 운청휘의 대결에서 시합 규칙을 따로 명시하진 않았으나, 암묵적으로 진법으로만 대결해야 한다는 규칙이 생성되어 있었다.
무인들을 천하다 여기는 진법 대사들에게 무력 싸움은 하등 가치가 없었고, 지금 정원동은 바로 그 무력으로 운청휘를 꺾으려 한다.
이는 진법 대사 간의 대결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빨리도 공격하는군.”
운청휘는 화를 내기는커녕 담담하게 웃었다.
“네놈과 시간을 낭비하느니, 이편이 낫구나.”
“그런가……!”
정원동이 모멸감 섞인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구겨진 체면이니, 이젠 거리낄 것도 없었다.
정원동의 공격은 허공을 쳤지만, 그 충격파는 하늘을 덮으며 운청휘에게 몰아쳤다.
그 광경을 본 진원의 생도들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진법의 조예로는 예선에서 11위에 그친 진원동이지만, 무위를 보자면 진원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 인재였다.
콰르릉!
거센 충격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운청휘를 감쌌다.
“참으로 약하군. 이런 공격으로 다칠 성싶으냐?”
모든 사람이 운청휘의 부상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연기 너머에서 운청휘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뭐라고……?!”
자욱한 연기가 흩어지자, 진원의 생도들이 한 곳을 가리켰다.
“운청휘가 대진을 치고 막아냈어!”
주봉이 무거운 어투로 말했다.
“진법의 조예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깊은 듯하군. 저 진법은 탐랑탈원진(贪狼夺元阵)과 같은 등급으로 보이네. 장한, 자네가 우리들 중 가장 먼저 탐랑탈원진을 수련했지. 저 진법이 자네가 보기엔 어떠한가?”
장한은 이번 예선 1위로, 진원이 인정한 일인자였다. 그가 익힌 탐랑탈원진은 진원의 생도들 중에서도 오직 그만 수련한 진귀한 진결이었다.
“능가하는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탐랑탈원진과 동급인 건 확실하네!”
장한이 작은 소리로 말했는데, 눈에는 탐욕이 보였다.
다른 네 사람은 장한의 대답을 듣고 숨이 턱 막혔다.
‘운청휘의 진법, 반드시 얻어야 한다!’
‘운청휘의 진법이 있다면 모두 상상 이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진원의 생도인 이상, 그가 진법을 스스로 바치게끔 해야 한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천은 말이 없었고, 주봉, 조뢰, 장걸의 눈에도 탐욕이 돋았다.
“하지만 그 진결을 얻으려면, 운청휘가 정원동에게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네.”
장한이 쐐기를 박았다.
“약한가? 방금 그 공격은 고작 삼 할의 힘만 사용한 것인데?”
정원동이 냉소하며 운청휘를 몰아붙였다.
“이번에도 받아낼 것 같으냐!”
운청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런 공격으로 자신이 다치겠는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도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운청휘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십팔나생문에서 흙담이 솟구치더니 그대로 정원동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어서 땅이 갈라지고, 쿠르릉 하는 진동과 함께 토룡이 하늘로 솟구쳤다.
토룡은 거대한 꼬리로 정원동을 내리찍었고, 정원동은 단번에 피를 토하며 추락했다.
구경하던 이들은 모두 멍해졌지만, 진원의 생도들은 눈을 부릅떴다.
운청휘가 손을 휘두르는 동작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진법의 일종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운청휘는 진법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정도까지 왔어!”
“진짜 인왕도 운청휘의 적수가 될 수 없겠어!”
“어쩐지, 예선도 치르지 않고 본선에 진출한 이유가 있었던 거군! 너무나도 강한 거였네!”
“만약 예선에서 그가 이 진법을 사용해서 장한과 붙었다면, 예선 1위가…… 달라졌겠지!”
진원의 생도들은 이제야 운청휘가 예선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들의 눈에 비친 운청휘는 장한에 비견될 만했는데, 장한도 바로 본선에 오를 자격이 있었으나 굳이 예선에 참가하여 1위를 얻어낸 것이다.
“그럴 수가. 운청휘, 네, 네놈이 이렇게나 강한 거냐!”
정원동이 악을 쓰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허무한 발악일 뿐이었다. 운청휘는 진법을 자유자재로 조종해 정원동의 공격을 막아냈고, 결국 정원동이 숨이 차 비틀거렸다.
“운청휘, 네놈이 배짱이 있다면 진법을 포기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젠장, 정원동이 이렇게나 뻔뻔하네!”
“우리 진법대사가 진법을 의지하지 않는 거냐? 설마 저런 무식한 놈들처럼 완력으로 싸우는 거야?”
“게다가 정원동과 운청휘의 시합은 원래 진법이었어!”
“정원동, 감히 진원 전체에 망신을 주다니!”
정원동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져나왔다.
물론 야유를 퍼붓는 이들 중 누구도 운청휘가 대답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기다렸다는 듯이 운청휘의 목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