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6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과는 달리, 여천은 이번 대결로 운청휘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방금 운청휘의 진법을 접촉한 그는, 망망대해를 홀로 표류하는 사람처럼 막대한 기운에 억눌렸다.
여천이 보기에 운청휘는 단번에 삼광양회진을 파괴할 수 있었으나, 일부러 조금씩 진법을 침식해 왔다.
이는 단번에 파진을 할 경우, 그 여파로 여천이 부상을 입기 때문이었다.
-운 형제, 사람들에게 실력을 숨기고자 하는 것 같으니 협조하겠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어.
여천이 다시금 음을 전했다.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여천이 자신을 위해 해명을 하든 하지 않든 개의치 않았다.
그가 하는 일에는 누가 대신 해주는 해명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이해하든 오해하든, 운청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그를 자극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한 시진이 지난 후, 다른 대전에서도 결과가 나왔다.
11명이기 때문에 한 명은 부전승으로 처리되었고, 그 사람은 장한이었다.
장걸, 조뢰, 주봉도 각각 승리하여 다음 회전에 진출하였다.
2회전은 모두 6명이 참가하는데, 운청휘와 장한, 장걸, 주봉, 조뢰와 파랍오(巴拉吴)라는 개과 요족이었다.
“2회전, 운청휘와 파랍오!”
원소웅의 목소리가 울리자 30여 살의 중년인이 무대에 먼저 날아왔다.
“운청휘, 어르신이 네놈을 죽여 주마!”
파랍오가 무대에 오르고 험상궂게 운청휘를 쳐다봤다.
“어디서 온 어중이떠중이가 허풍을 떠느냐?”
운청휘도 지지 않고 외치며 무대에 올랐다.
“곤수의 진!”
운청휘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진법을 펼쳤다.
운청휘가 곤수의 진을 포진하는 순간, 파랍오도 진법을 펼쳤다.
그러나 파랍오의 진은 단번에 곤수의 진에 뒤덮여 버렸다.
구경하는 이들이 저마다 떠들기 시작했다.
“파랍오가 약한 거야, 운청휘가 강한 거야? 단번에 파랍오의 진법을 덮었잖아!”
“파랍오가 본선에 진출한 것 자체가 불명예스러운 수단으로 왔잖아!”
“1회전에서 개로 변신해서 상대를 물어 진법을 파괴한 걸 잊었는가?”
“그 말인즉슨, 파랍오가 수단은 훌륭해도 진법의 깊이는 평범한 수준이라는 걸세.”
“운청휘가 진법에는 조예가 깊다는 건 이미 명백한 일이지!”
“하지만 운청휘의 승리를 장담하기는 이르네. 운청휘가 우세라고 해도, 파랍오가 순순히 당해 주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파랍오가 본체로 변했다.
그는 거대한 투견의 형체를 지녔는데, 위협적으로 튀어나온 이빨로 으르렁거리며 굵은 발로 바닥을 긁었다.
“멍멍멍멍멍멍……!”
파랍오는 날렵하게 달려가더니, 마치 광견처럼 이빨로 운청휘를 물어뜯었다!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 박히는 광경은 지켜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운청휘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서더니, 파랍오가 자신을 무는 순간 곤수의 진을 이용해 긴 막대기를 만들어 냈다.
퍼억!
막대기는 곧바로 파랍오의 몸을 내리쳤다./
“멍……!”
거대한 몸뚱이는 막대기에 맞자마자 끙끙거리며 날아갔다.
“운청휘가 곤수의 진을 사용할 줄 알다니!”
원소웅과 장한, 장걸 등 진법의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경악했다.
곤수의 진은 요족을 억제하기 위해 연구된 진법이다!
특히나 요족 중 견족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곤수의 진은 소멸된 지 오래된 진법으로 천찬학관에서도 이 진법은 없었다.
“운청휘가 사용한 진법은 우리가 모르는 진법이거나 소멸된 지 오래된 진법이야!”
“어떤 수단으로 저리 다양한 진법을 포진한단 말인가?”
장한 등만이 아니라, 운청휘에게 살심을 품었던 원소웅마저 잠시 탐낼 정도의 실력이었다.
한편, 진법 안에서 운청휘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오직 진법의 힘만으로 파랍오를 공격해, 넝마에 가깝게 만들어 버렸다.
“멍멍……!”
일각여 뒤, 파랍여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인간으로 변할 여력도 없어 무대에는 개가 널브러진 상태였다.
“감히 짐승 따위가 나를 죽이겠다고 덤볐느냐?”
운청휘가 서늘하게 말하더니, 손을 휘둘러 파랍오의 몸에 빛줄기를 쏘았다.
“푸……!”
땅에 쓰러져 있던 파랍오가 별안간 피를 내뿜었다.
운청휘는 방금의 공격으로 파랍오의 무위를 폐했고, 이제 파랍오는 수련은커녕 인간의 몸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본질적으로 영수이자 요족이긴 해도, 남은 인생을 오직 짐승의 형태로만 살아가게 된 것이다.
구경하던 이들 중 파랍오를 동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천찬학관의 요족 생도는 10만 명이 넘지만 파랍오가 이런 취급을 받는 건, 그가 걸핏하면 다른 이들을 물어뜯는 사나운 성정을 지녔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파랍오에게 엉덩이를 물어뜯긴 사람도 있었다.
“2회전 첫 승부는 운청휘의 승리를 선언한다!”
파랍오가 완전히 전투력을 잃자 원소웅이 시합 결과를 선포했다.
“다음 대결은 장한과 조뢰……!”
“잠깐!”
운청휘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이런 대결은 너무나 시시하군. 도전할 가치가 조금도 없다. 나 운청휘는 약자를 괴롭혔다는 평을 듣고 싶지 않으니, 다음 대결은 장한과 장걸, 조뢰, 주봉을 한꺼번에 상대하겠다.”
운청휘의 이 말은 잠잠한 벌집을 건드린 듯,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고, 넋이 나간 사람도 있었다.
이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가 입을 열었다.
“운청휘가 미친 게 아니라면, 내가 미친 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예선 4위권의 네 명을 동시에 상대하다니, 운청휘는 하늘을 거스르려는 것인가?”
“젠장, 하늘을 거스르기는 무슨,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야!”
“맞아야! 장한, 장걸, 조뢰, 주봉 네 사람 중 아무나 내놓아도 운청휘를 꺾을 수 있어!”
“게다가 오만해도 너무나 오만해.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막기 위해 동시에 상대한다니, 말이나 되는가?”
사람들이 일제히 들끓으며, 모두가 운청휘가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일부 사람들은 운청휘가 빨리 죽고 싶어서 장한 등을 자극한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이때 운청휘에게 지명된 장한 등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들이 보기에는 운청휘는 지금 자신들을 모욕하고 있었다.
“운청휘, 네놈의 진법이 대단한 것은 인정하마. 그러나 고작 그뿐이다!”
장한이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로 오만하군, 운청휘, 비록 정원동과 파랍오를 이겼을지언정, 이 장걸 앞에서 허세를 부리느냐?”
장걸의 두 눈에 한기가 가득했다.
“운청휘, 일각도 지나지 않아 네놈을 죽여 주마!”
“운청휘, 감히 네놈 같은 땅강아지가 나 주봉을 분노케 하는구나!”
조뢰와 주봉이 침착하게 말했다.
“말이 많은 놈들이군.”
운청휘가 고개를 돌려 장한 등을 바라봤다.
“거기서 떠들지만 말고, 나오너라!”
운청휘가 마음을 바꿔 네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기로 한 것은, 다음 대전자가 장한과 조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떨어져, 운청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운청휘는 네 사람 중 누구도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
“운청휘, 네 사람에게 동시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확실한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원소웅이 운청휘에게 물었다.
원소웅은 운청휘의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음이 분명했다.
“물론입니다!”
운청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곤 덧붙였다.
“다만 내가 동시에 네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 그들이 응전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
“운청휘, 건방지게 굴지 말거라!”
“운청휘, 정말 미쳤구나. 네놈 따위가 무엇인데 동시에 우리 넷에게 도전할 자격이 있느냐?”
“네놈을 상대하는 것은 나 주봉 하나로 족하다!”
네 사람은 모두 분노하며 말했다.
“그런가!”
운청휘가 주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주봉, 어서 나와 겨뤄보아라!”
“오냐, 나 주봉이 네놈을 겁낼 것 같더냐!”
노여움이 극에 달한 주봉의 기세가 폭발하여 운청휘를 향해 날아갔다.
“진이어!”
“자라협진(紫罗峡阵)!”
주봉이 발동한 것은 그도 할 수 있는 순발 진법 중 하나였다.
“자라협진? 나도 할 수 있는 진법인데 잘됐군!”
운청휘가 말함과 동시에 ‘자라협진’을 발동했다.
우르르릉……
두 진법은 바로 충돌하여 무수한 불빛과 충격파를 일으켰다.
자라협진은 미진에 속하는 것인데 미궁을 만들어 진내에 들어온 사람을 그 안에서 혼란하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자라협진에는 일정한 공격성도 있다.
물론 공격 특화 진법보다는 위력이 떨어진다.
“푸…….”
충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봉이 갑자기 피를 뿜었다.
운청휘가 포진한 자라협진이 주봉의 자라협진을 깨버린 것이다.
“나에게 대적하는 자, 강약을 막론하고 전부 소멸할 것이다!”
운청휘의 싸늘한 목소리가 떨어지자 그의 자라협진이 주봉을 뒤덮었다.
이내 대진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주봉이 무수한 고깃덩어리로 잘게 찢겼다.
“운청휘는 미친 거야. 자폭 대진을 써서 주봉도 죽이다니!”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운청휘의 수단에 겁을 먹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운청휘는 목숨도 아깝지 않은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자폭 진법은 적과 함께 자폭하는 공격이다.
포진하는 사람이 만든 결과나 반격, 심지어 정혈을 태워야하는 것도 있다!
“어쩐지 운청휘가 장한, 장걸, 조뢰, 주봉을 동시에 상대하겠다고 하더니 정말 미치광이였군!”
“맞아,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게야!”
“주봉이 죽긴 했지만, 운청휘가 자폭대진으로 그를 죽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소!”
“갑자기 생각난 말인데, 약한 것은 강한 것을, 강한 것은 횡포한 것을, 횡포한 것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어! 운청휘같이 목숨도 아깝지 않은 녀석을 누가 감히 상대할 수 있을까!”
“나도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올해 본선은 운청휘가 복병인데 우승까지도 노릴 수 있을 것 같소!”
“나도 동감이네. 장한, 장걸, 조뢰가 목숨을 아끼고 있는 와중에 우승하려면 운청휘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지 않나!”
운청휘의 자폭 대진으로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
옛말처럼 약한 것은 강한 것을 두려워하고, 강한 것은 횡포함을 두려워하고 횡포함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절대적인 실력으로 운청휘를 제압할 수 없다면, 누구도 운청휘와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