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5화
“천지무극, 현문정법, 나 운제가 온 천하를 호령하니……”
말의 속도가 빨라 숨 한 번 쉬기도 전에 천자가 넘는 구절을 낭송했다.
그리고 운청휘의 두 손이 허공으로 향했다.
“공간 거꾸로 돌리기, 격공섭물 (隔空摄物)——”
허무한 진공 속.
운청휘의 두 손이 각각 그림자를 잡아냈다.
하나는 온통 칠흑 같은 옷에 검은 가면을 쓴 귀곡자.
다른 하나는 놀란 나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막문천.
물론, 놀라서 믿을 수 없는 것은 귀곡자였다. 그러나 그가 가면을 썼으니 외부인은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좁은 범위의 공간을 찢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막문천과 귀곡자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공간을 찢는 동시에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두 인황을 잡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다른 사람을 업고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것과도 같다.
“응?”
귀곡자와 막문천의 안색이 또 침울해졌다.
사토 겐야와 소진이 운청휘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을 본 것이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귀곡자와 막문천은 믿기지 않았다. 운청휘가 공간을 찢고 그들을 잡은 것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황은 황자다.
황자는 만령의 황제이다.
만령 위에 군림하며 천성대륙의 절정에 우뚝 선 자가 바로 황자다.
오직 같은 황자만이 황자와 교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황자는 천지간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데, 하물며 기타 생령에게는 어떠할까.
그런데 사토 겐야와 소진이 운청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전에 비할 데 없는 충격이 그들을 덮쳤다.
“시…… 신족의 시체!”
갑자기 귀곡자가 놀라 소리쳤다.
그는 지금 있는 곳이 거대한 시체 위라는 것을 알았다.
이 시체는 한눈에 봐도 죽은 지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시체에 잔류한 위압이 귀곡자를 두렵게 했다.
“신족의 시체가 아직도 세상에 존재했다니…… 게다가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을 줄이야!”
“응? ‘구천주선살진’ 10개가 하나로 합쳐져 포진되어있어!”
“심지어 신족의 시체 위에 있어.”
“어쩐지 운청휘가 공간을 찢어 우리를 사로잡더니!”
“그래서 사토 겐야와 소진이 운청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구나!”
귀곡자는 역시나 마수였다.
안목이 비범하여 단번에 운청휘의 수단을 알아차렸다.
“귀곡자, 내게 복종하면 죽이진 않겠다!”
운청휘가 막문천은 무시하고 귀곡자에게 말했다.
“네놈 따위가 뭔데 감히 나 귀곡자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인가?”
귀곡자가 냉소하며 갑자기 검은 안개를 뿜어냈다.
“마살음라진공!(魔煞阴罗真功)!”
귀곡자가 호통을 치더니 검은 안개가 운청휘를 덮쳤다.
검은 연기 속에서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우우우우……
에에에엑……
악귀 소리도 들렸다.
운청휘의 시선이 굳어졌다.
“마살음라진공을 수련한 것이냐!”
마살음라진공은 선계에서도 최절정에 속한 마수 공법이다.
품급으로는 ‘도심종마대법’과 견줄 수 있다.
“진이어, 침향장벽!”
운청휘는 의외라고 느꼈으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법을 이용하여 거대한 장벽을 만들었다.
우르르릉……
검은 안개가 거대한 장벽에 닿는 순간 진공을 완전히 폭발시켰다.
귀를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무수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이 지하 5만 리까지 닿아 큰 구덩이가 생겼다.
하늘은 빛으로 가득 찼다.
“대일고불신장——”
운청휘가 다시 폭발을 일으켰다. 그의 등에서 거대한 고불이 금빛으로 떠올랐다.
다섯 손가락이 귀곡자로 향했다.
세상의 절대다수 공법은 모두 상생상극이다.
절대무적의 공법도 없고 마찬가지로 절대로 약한 공법도 없다.
마살음라진공은 최절정에 속한 공법으로 마수 공법에서 도심종마대법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살음라진공 또한 무적은 아니다.
도심종마대법도 최절정의 공법이긴 하나, 순양진기를 수련한 사람을 만나면 도심종마대법으로 상대할 수 없고 도리어 순양진기로 반격을 당하게 된다.
마살음라진공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천성적으로 상극인 불교의 공법을 써야한다.
“대일고불신장, 이…… 이것은 불교의 공법인데?”
귀곡자의 눈동자가 수축되어 놀란 표정이었다.
동시에 다섯 손가락이 하늘을 덮어 내려왔고 우르릉 소리와 함께 귀곡자의 몸에 떨어졌다!
옆에 있던 막문천과 무릎을 꿇은 사토 겐야와 소진의 몸이 흔들렸다.
운청휘가 시전한 손바닥의 위력이 너무 강했던 탓이다.
그러나 운청휘는 지금 무위가 제한되어 있는 상태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일고불신장’을 쓰지 않았을 터였다.
지금은 대형 구천주선살진을 ‘신의 시체’ 위에 포진했으니 ‘대일고불신장’을 사용한 것이다.
“으헉……”
폐허 속에서 귀곡자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운청휘, 도대체 정체가 뭐냐!”
귀곡자가 소리치며 날아왔다.
그의 검은 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얼굴을 감싸던 검은 가면도 깨져 얼굴이 드러났다.
만물을 괄시할 아름다운 낯이었다.
“귀곡자가 여자였단 말인가……”
막문천 일행은 귀곡자의 얼굴을 보고 멍해졌다.
오직 운청휘만 알고 있던 눈치였다.
그는 일찍이 귀곡자가 ‘마살음라진공’을 사용할 때 귀곡자가 여자임을 알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살음라진공은 오직 ‘절음지체’만이 수련할 수 있는데 ‘절음지체’는 오직 여성의 몸에서만 나타난다.
채아의 ‘구음한맥’이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마찰녀 류연한!”
운청휘가 고개를 살짝 들어 허공으로 올라온 귀곡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그녀의 이름을 토해냈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귀곡자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던 공포였다.
“마란해(魔乱海)에서 내가 그대를 본 적이 있으니, 그대의 이름을 기억한다네.”
운청휘가 천천히 말했다.
마란해는 선계의 마수 성지다.
모든 마수들은 생전에 최소 마란해로 가서 성지순례를 해야 한다.
운청휘가 당시 초청을 받아 마란해에 간 것이다.
그는 모두가 숭배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당시 순례자 행렬에 있던 마찰녀 류연한과 운청휘와의 격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운청휘는 류연한을 보았을 때 신식으로 그녀를 훑었고 그 인상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류연한은 운청휘를 본 적 없었으니 당시 그녀의 지위가 운청휘를 볼 자격도 없을 만큼 비천했기 때문이다.
“다…… 당신은 운제!”
귀곡자는 비명을 질렀고, 힘이 빠진 듯 허공에 주저앉았다.
순간 귀곡자 내면의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녀는 운제를 그저 깊이 우러러볼 뿐이다.
선계에서 운제의 명성을 모르는 이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운제의 본명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귀곡자…… 아니 마찰녀 류연한은 마도의 인연으로 운제의 본명을 알게 되었다.
일찍이 운제도 마수였으니까.
어느 날 운제는 마도를 포기하고 선도로 향했으니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마수가 그를 마수로 여겼고 우상으로 숭배했다.
마찰녀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마찰녀 류연한, 운제께 충성하길 원하옵니다!”
귀곡자가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운청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귀곡자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제 아무리 오만하고 당당할지어도 운제 앞에서는 진실로 복종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선계의 사람만이 운제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마찰녀조차 그 어떤 말로도 운제의 위엄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운제는 감히 묘사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수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래서 그는 귀곡자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류연한이 이전에 그에게 저지른 잘못은 류연한이 해명하지 않아도 운청휘는 속으로 이유를 짐작했다.
류연한은 운청휘가 선계의 ‘그’ 운청휘라는 것을 몰랐다.
세상에는 동명이인이 많기 때문이다.
“운제, 저 조무래기들은 소인이 처리 하겠나이다!”
귀곡자가 땅에서 일어나는 순간 사라졌다.
“마살음라진공——”
귀곡자가 뿜어낸 검은 연기가 빽빽하게 하늘을 덮었다.
“아아아아……”
하늘에 비명소리가 가득했다.
소진, 막문천, 사토 겐야 이 세사람의 실력은 진법의 억제를 받아 전성기의 반도 안 되는 힘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귀곡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귀곡자에게 충성의 맹세를 받은 뒤, 운청휘는 초대형 구천주선살진이 귀곡자를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게 처리했다.
일각 후.
소진, 막문천, 사토 겐야 세 사람이 망신창이가 되어 운청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운청휘는 그들에게 말하는 것도 귀찮아 손을 휘둘러 마종을 심었다.
그리고 운청휘가 고개를 돌려 귀곡자를 보고 말했다.
“류연한, 원시형(元始兄)에게 그대가 마수 중에서도 걸출한 존재라고 들었다. 언젠가 그의 경지에 도달할 텐데 어째서 천성대륙까지 온 것인가?”
운청휘가 말하는 ‘원시형’은 원시마제라고 불리는 자로 선제경에 도달하지 않고 칭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강자 중 하나다.
원시마제는 마수 성지 마란해의 주인을 뜻한다.
그런 자를 친근하게 부르는 모양새에도 류연한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운청휘의 신분이 원시마제와 교류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기론 운청휘와 원시마제는 막역한 친우이다.
류연한이 쓴웃음을 지며 말했다.
“소인이 천성대륙에 온 것은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류연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어쩌다 천성대륙에 오게 되었는지 낱낱이 설명했다.
만신창이가 되어 무릎을 꿇은 소진, 막문천, 사토 겐야는 정신이 혼탁했다.
그들은 운청휘와 류연한의 대화로 운청휘와 류연한의 신분을 추측했다.
두 사람은 선계 출신이며 운청휘는 선계를 주제하는 운제였다!
류연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어떻게 천성대륙에 왔는지 말했다.
운청휘에게 있는 그대로 말했다.
운청휘는 말을 듣고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류연한도 공간 폭풍에 휘말려 천성대력에 온 것이다.
류연한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공간 폭풍이 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류연한의 무위로는 허공을 깨고 공간 통로를 열어 천성대륙에 올 수 없다.
운청휘조차 참천신검 덕분에 선계에서 천성대륙으로 가는 공간 통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
“그대가 천성대륙에 와서 어떻게 흙보살 세력에 가담하게 된 것인가?”
운청휘가 물었다.
운청휘는 흙보살의 세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세력인지 궁금했다.
“운제께서 그곳을 모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