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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덕꾸러기 (5/104)

5.천덕꾸러기

“이이, 악독한 놈!”

그 사이 방계의 식솔들을 돌아보던 운전추의 눈이 확 뒤집혔다.

“대관절 본 운룡장과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이렇게 손을 독하게 쓴 것이더냐?”

뭐라는 거야 저 덜떨어진 자식은?

“확실히 말씀드리지. 나는…….”

“저 악적이 저희 형제들의 무공 수련을 몰래 훔쳐보다 들키더니 증거 인멸을 위해 갑작스레 공격을 해 왔습니다. 그 서슬에 형제들이 그만…….”

백리장천이 나선 덕에 아직도 멀쩡히 서 있던 녀석이 내 말을 툭 끊더니 되도 않은 말을 마구 쏟아냈다.

“뭐야? 타 문파의 무공 수련을 몰래 훔쳐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되레 공격을?”

“이런 악독한!”

운전추와 상관종명이 눈에 불을 켰다.

당장에라도 손을 쓰겠다는 듯 한 발 성큼 나섰다.

피식.

‘하, 돌대가리들 같으니…….’

상황 판단 능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녀석들이 대체 무슨 능력이 있어 이런 모임에 당당히 대표로 참여할 수 있었을까?

그때였다.

잠자코 지켜만 보던 용대명의 입에서 노성이 터졌다.

“이놈! 말을 바로 하거라!”

그야말로 추상같은 목소리다.

내공은 실리지 않았지만 장부의 기백이 감겨 있어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네가 감히 악적이라 입에 담은 이 아이는 너희 가문의 운적풍 손에 의해 전신의 뼈가 거의 모두 부러지다시피 했었던 피해자니라!”

“아!”

“맞다! 그랬었지?”

여기저기서 나직한 탄성이 터졌다.

“혼수상태에 빠진 지 열흘 만에 겨우 눈을 떴고 이제야 겨우 운신이 가능할 만큼 몸을 회복한 자가 너희 다섯을 상대로 급습을 했다?”

“저, 그, 그것이…….”

대답이 옹색해진 녀석은 말을 끌었고,

“이놈! 어서 바로 말을 하지 못할까?”

“신주오가의 성산 모임 주최자의 자격으로 말하거니와 각 가문들의 결속을 저해할 거짓은 결단코 용납하지 않겠다.”

지켜보던 벽운성과 백리장천의 목소리에 노기가 담겼다. 녀석의 눈을 매섭게 노려보며 압박을 했다.

“그, 그러니까 그게…….”

녀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해서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아우 답답해.’

결국 용무린의 입이 먼저 열렸다.

“변명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너희 다섯은 내가 백면서생인 것을 들어 실컷 비웃었으면서도 내공까지 동원한 대결을 시작했고 결국엔 다섯 모두가 다 덤벼들었다. 그 사실은 인정하냐?”

“……!”

입이 있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쯧쯧쯧.”

“이런 불한당 같은…….”

벽운성과 백리장천이 혀를 끌끌 찼다.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녀석의 입에서 대답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 태도로 미루어 단숨에 진실을 읽어낸 것이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

칼날 같은 눈으로 녀석을 한차례 노려보던 운전추가 바닥으로 떨어진 가문의 체면을 떠올렸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을 불쑥 따지고 들었다.

“놈! 네 말처럼 너는 백면서생이다.”

혹시 누가 도와줬느냐 이거지?

“대체 어떻게 너 혼자의 힘으로 이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었느냐? 혹시라도 방수가…….”

피식.

“저 애송이들은 춤을 추었고 나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홱!

무슨 뜻인지 단숨에 알아들은 운전추의 노기 가득한 시선이 다시 한 번 녀석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가시지요, 아버지.”

“……오냐, 아들아.”

용무린은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날카로운 송곳 수백 개가 동시에 온몸을 짓쑤시는 듯한 통증이 찾아들었지만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불사신기의 입문구결 하나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한 채 호흡을 다스리려 애썼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

“그때는, 보름 전 그 때는 어찌하여 네 능력을 드러내지 않았느냐?”

운적풍 그놈에게 전신의 뼈가 거의 다 부러졌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씨이익.

살짝 몸을 돌린 용무린이 하얗게 웃으며 답했다.

“그때는 싸울 생각조차 아니 하고 있었고 지금은 싸워야 하겠다고 작정을 했을 뿐입니다.”

“……!”

“싸움에 임하면 피하지 않습니다. 싸우면 반드시 이깁니다. 그것이 바로 제 영업 방침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용무린은 다시 몸을 돌렸다. 용대명과 함께 천천히 백리세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벽운성의 입이 나직하게 열렸다.

“임전무퇴에 대전필승이라……. 좋군.”

“나만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했던가? 기대가 되는군.”

곁에 서 있던 백리장천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동감을 표했다.

‘없다시피 한 내공. 채 회복하지도 아니한 육체의 힘만으로 저런 투지라니!’

‘내가 손목을 낚아챌 때 본능적으로 피하며 반격을 시도했었어. 놀랍군, 놀라워.’

더 놀라운 것은 보기만 해도 섬뜩할 정도로 마구 꺾여버린 용무린의 근골이다. 팔과 다리는 기괴하달 수 있을 만큼 심하게 꺾였다.

한데도 용무린은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당당히 두 발로 서서 이곳을 걸어 나갔다.

절대로 꺾이지 않을 의지와 투지.

두근두근.

진짜 무인을 본 것만 같은 느낌에 두 사람의 심장은 모처럼 고동쳤다.

***

백리세가를 나선 나는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우드득. 투득.

뼈마디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기도 했거니와 인적이 드물고 안전한 곳만 찾으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남의 성도인 정주의 외곽.

숭산의 지맥이 동쪽으로 달려 나와 맺힌 동백산 자락의 작은 모옥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이곳이면 되겠느냐?”

백리세가가 하남의 성도인 정주에 터를 잡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더불어 나의 가문인 비룡문은 산동성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역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예, 아버지.”

내 눈은 저만큼 뒤에 서 있는 아버지의 두 의제(義弟)에게로 향했다.

산동성에서 이름이 높은 검객의 하나인 추뢰검사 교진운과 장법으로 요명한 소요일영 유백으로 비룡문에 기거한 지 벌써 10여년이라고 한다.

‘내공 수위야 아직 내 힘으로 알 수 없지만, 자세만큼은 쓸 만하네.’

내 안목이 확실하다면 두 사람 모두 절정의 무인이다.

‘그 정도면 충분해.’

칠채보왕단을 복용하고 내 것으로 만들 때까지 충분히 호법을 맡겨도 될 정도다.

‘인정해 줘야지 뭐.’

팔자에도 없는 의숙(義叔)이 둘이나 생겼지만, 두 사람으로 인해 지금껏 비룡문이 외적의 침입과 도전을 실질적으로 받지 않았다고 하니 마땅히 대우해 줘야만 했다.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정중하지만 비굴해 보이지 않을 만큼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저로 인해 원행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추뢰검사 교진운과 소요일영 유백이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여 보였다. 과거에 알던 용무린과 완전히 달라진 기질이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다.’

이 허접한 육체가 무너지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움직였다.

“그러면 잠시 호법을 부탁드립니다.”

그대로 버려진 모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투드득. 우드득.

부실한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이를 악물고 가부좌를 튼 후 그 즉시 아버지께 받았던 칠채보왕단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자, 드디어 시작이로구나.’

불사신기. 어디 한 번 제대로 해 보자꾸나.

***

용대명과 용무린이 그렇게 떠나 버린 후 백리장천과 벽운성 상관종명과 운전추 네 사람은 다시금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차를 기울였다.

백리장천과 벽운성은 좋지 못한 일로 떠난 용대명의 부재가 못내 아쉬웠지만 상관종명과 운전추의 아쉬움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장손이 다쳤다 하여 성산의 10년 지약에 참여하지 않는다거나 초를 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운룡장의 다섯 방계 식솔이 저지른 일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그저 성산의 10년 지약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듯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옳다구나 하고 운전추가 나섰다.

“사사로운 일로 성산의 10년 지약을 그르친다고 하면 저희 운룡장에서 참지 않을 것입니다.”

죽이 참 잘 맞는 사이임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상관종명이 냉큼 뒤를 받쳤다.

“이를 말씀입니까? 무려 10년에 한 번 찾아오는 기회가 아닙니까? 그 기회를 무위로 돌린다고 하면 그야말로 같은 신주오가라 할 수 없을 테지요.”

살짝 눈살을 찌푸렸던 벽운성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염려 마시게나.”

“비록 무가는 아니지만 용대명 가주의 그릇은 그리 작은 게 아닐세.”

“나 역시 그리 생각하네. 사철 곧은 대쪽과도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백리장천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편을 들었다.

하지만 가주를 대신해서 온 상관종명과 운전추 두 사람은 혹시라도 벌어질지 모를 일에 대한 책임에서조차 완전히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대쪽 같은 분이라 하여도 자식 일이 걸리면 또 모르는 법이라 우려가 돼서 그럽니다. 나서는 모습을 보니 온전한 뼈가 없어 보여서 조금…….”

“약관의 나이가 다 되도록 글만 파던 서생 주제에 무슨 놈의 은원을 따지겠다는 것인지 원…….”

그런 용무린에게 방계의 식솔 다섯이 내공까지 총 동원한 차륜전을 펼치고도 차례차례 박살나 버렸지만 되레 용무린이 입은 피해만 돋보이게 말을 했다.

그게 다 그놈의 체면 때문이다.

“우리 풍아의 손속이 조금 과했다는 것이야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서생 주제에 감히 무인의 뺨을 때린 것은 화를 자초한 일 아닙니까?”

일방적으로 맞았건만 이곳에서는 용무린이 운적풍의 뺨을 때려 사달이 벌어진 것으로 둔갑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풍아가 손속에 사정을 많이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꿈틀.

‘시비의 입을 통해 들어 이미 다 알고 있거늘…….’

속이 슬쩍 뒤틀린 벽운성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아직 용무린 그 아이 입에서는 그에 관한 말을 한마디도 들어 보지 아니했네!”

이야기를 들어 보기에 따라 일의 전말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뜻하는 말인지라 운전추는 되레 자신의 체면으로 그 가능성을 덮고자 했다.

“벽운성 가주님께서는 지금 제가 거짓이라도 입에 담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 사람! 말씀이 과하네.”

백리장천이 은근한 책망을 하였다.

벽운성은 일가의 가주, 같은 신주오가의 일원으로서 이 자리에 참여한 운전추보다는 반 배분 위인 어른이기도 하거니와 무공 역시 운전추에 비할 바가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분수도 모르는 아해 하나 때문에 그렇게 과민하게 나설 것까지야 있겠는가?”

상관종명도 운전추를 만류하고 나섰다.

사실 그 역시 시비를 비롯한 아랫것들의 입을 통해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알고 있어서였다. 다만, 만류를 하면서도 책임은 용무린에게 넘긴 것이 백리장천과는 다를 뿐이었다.

“……!”

벽운성은 말없이 운전추의 눈만 쏘아 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막대한 기세란!

그제야 뜨끔한 운전추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이번에도 성산의 꿈이 무위로 돌아갈까 저어하는 마음에 그만…….”

꼬리는 말았지만 곧 죽어도 저나 운적풍이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성산의 10년 지약이 지금으로부터 꼭 100일 후가 아닙니까? 한데, 되지도 않게 은원 어쩌고 하며 석 달 후를 기약해 버렸으니…….”

그 점만큼은 모두가 인정을 하는 바였다.

석 달 후, 용무린과 운적풍의 일이 어떻게 벌어지느냐에 따라 비룡문의 문주인 용대명은 마음이 크게 상할 수도 있었다.

운전추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들 10년 전에 있었던 성산(聖山)행을 기억하시지요?”

“기억하다마다.”

“그동안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던 성산의 기문진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던 때이거늘 어찌 기억이 나지 않겠는가?”

그때다 싶었는지 운전추가 갑자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저희 가주님을 비롯해 모든 분들께서 다섯 가문이 한 자리에 모여 그러한 가능성이 펼쳐진 것이라 하였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으응? 다르다고? 어떻게?”

상관종명과 운전추의 다시 한 번 주거니 받거니가 펼쳐졌다.

“그 전에는 무가가 아니라 하여 조사님께서 말씀하셨던 의식을 주제만 하셨던 비룡문이 성산 지약에 참여함으로써 기문진이 반응을 보였던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러니까 아우의 말은 10년 전 반응을 보였던 성산의 기문진이 다섯 가문이 모두 모였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비룡문주 용대명 그분의 힘에 의해 그랬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비룡문은 아시다시피 진법과 기관지학을 사사한 가문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의 눈을 속이고 능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긴, 그때부터였었지? 무가가 아닌 비룡문에서 공공연히 무가로의 변신을 위한 속내를 드러냈던 것이?”

“어쩌면 비룡문에서는 나머지 가문을 모두 속이고 성산의 유산을 독차지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어허, 그거 정말 큰일이로군그래.”

그야말로 찰떡궁합인 두 사람이다.

상관종명과 운전추는 용대명을 나머지 신주오가의 일원들 모두를 속이고 음모를 획책하는 사악한 사람으로 몰아가 버렸다.

꿈틀!

잠자코 듣고만 있던 벽운성의 눈두덩이 무섭게 요동쳤다. 불쑥 입을 열었다.

“증거를 대시게 두 사람!”

“예, 예?”

“증거도 없이 다시 한 번 신주오가의 단합을 해하는 말을 한다면 내 단언컨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운전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우제(愚弟)는 아직…….”

“벼, 벽운성 가주님…….”

생각 밖의 전개에 두 사람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벽운성의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끌어 올린 기세를 점점 더 강하게 뿜어내며 두 사람을 압박했다. 경고를 했다.

“공연한 사람을 음모를 획책한 사람으로 폄훼할 만큼의 머리가 있는데 증거를 대라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

“……!”

“참으시게 벽 가주.”

보다 못한 백리장천이 나서고 나서야 벽운성은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비룡문의 사내가 음양쇠맥증을 타고 난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닌 터, 가주된 사람의 입장으로 그 병약함을 어찌 극복하고 싶지 아니할까?”

벽운성의 차가운 시선이 상관종명과 운전추 두 사람을 찬찬히 훑었다. 배분도 배분이고 저질러 놓은 말들이 있는지라 두 사람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자자, 이 이야기는 이만 접도록 하지.”

이만 접자고 하면서도 백리장천은 타이르듯 상관종명과 운전추를 향해 첨언을 했다.

“벽운성 가주가 말했듯 비룡문의 무가로의 변신 의지는 음양쇠맥증의 극복 선상에서 생각해야 함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네.”

“뭐, 누가 아니라고 했습니까?”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치고 빠질 때조차 상관종명과 운전추는 잘 맞았다.

피식.

풀썩 웃으며 백리장천은 조용히 말을 마무리 지었다.

“우리네와 같은 무가는 아니지만 비룡문 역시 절대검신 조사께 당당히 인정받은 신주오가의 일원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네.”

“물론입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대답은 막둥이처럼 했지만 속은 편치 못했는지 상관종명과 운전추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우제는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저 역시 그만…….”

함께 일어서던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둘이서만 따로 만나 한잔하자는 수작이었다.

가만히 앉아 차만 들이켜던 벽운성의 입이 다시 한 번 불쑥 열렸다.

“성산의 10년 지약, 백리세가와 우리 벽력도가에서 성산의 입산자가 나오게 되었을 때 저 두 가문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지 상상조차 아니 되는군요.”

“허, 허허허…….”

백리장천은 허탈한 듯 웃고 말았다.

따로 말은 덧붙이지 않았지만 벽운성과 같은 심정이었던 모양인지 그 웃음은 적잖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

비슷한 시간.

용대명과 두 의제 역시 백리장천이나 벽운성과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야말로 천덕꾸러기에 불과한 우리 비룡문에서 입산자가 나오게 된다? 그러면 아마도 신주오가는 뿔뿔이 흩어질 것일세.”

“신주오가의 단합력과 신의가 그것밖에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선뜻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형님.”

용대명의 말에 질문을 던졌던 교진운과 유백이 되레 더 놀라워했다.

“무가의 속성이란 본디 먹물을 인정하려 드는 법이 드물지 않던가?”

“저는 다릅니다만…….”

“저 역시…….”

“푸후후. 그거야 아우들이 이 우형의 덕을 그만큼 높이 쳐주니 그런 것이고…….”

용대명의 미소는 벽운성의 그것만큼이나 쓰디썼다.

“저 모옥을 박차고 나온 본가의 장손이 성산에 입산을 하게 된다……. 백리세가와 벽력도가는 조사님이 남기신 유훈에 따라 가신이 되어 도리를 다할 것이네.”

“두 가문만 그럴 것이라는 겁니까?”

“그러면 상관세가와 운룡장은요?”

피식.

용대명은 풀썩 웃으며 대답했다.

“빤하지 않은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네. 조사님의 유훈이고 뭐고 아마 두 가문이 되레 하나로 뭉쳐 독자노선을 걷는다고 나서겠지. 어쩌면 본가가 조사님의 유산을 훔쳤다는 핑계로 공격을 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야.”

“이런 발칙한!”

“어찌 감히!”

교진운과 유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용대명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비인부전. 어쩌면 조사님께서는 그래서 다섯 가문 모두에 진신절기를 전수해 주시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네.”

“아! 그래서……?”

“역시!”

교진운과 유백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세상에는 신주오가 아니 비룡문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문이 절대검신의 진신절기를 나눠 이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리세가나 벽력도가에서 입산자가 나오면 불안하긴 하지만 신주오가의 이름은 계속해서 하나의 세력으로 엮이어 불리게 될 걸세.”

“불안하다는 말씀은 역시 상관세가와 운룡장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시겠지요?”

“하여간 그 두 가문은 어찌 그러는가 몰라.”

“혼인이든 뭐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혈연으로 하나가 되려들 것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든 절대검신 조사님의 진신절기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받으려 들겠지.”

“어림도 없는 짓입니다.”

“출가외인에게 무슨 조사님의 진신절기란 말입니까?”

천부당만부당하다는 듯한 외침이었지만 용대명의 고개는 살며시 가로저어졌다.

“굳이 서시나 달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천하를 정복하는 것은 사내지만, 그 사내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여인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네.”

“……!”

“……!”

“당장에야 아우들 말이 맞겠지만, 글쎄……. 세월 앞에서야 장담할 수 없는 종류의 문제라고 생각하네.”

용대명의 시선이 모옥 안으로 향했다.

“천하의 보기 드문 군사(軍師) 가문인 제갈세가의 몰락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네. 문무는 겸전을 해야 완전해지지. 나는 그저 이 세상을 위해 조사님의 의지가 오롯이 이어지기만을 바라네.”

용대명은 홀로 애쓰고 있을 아들 용무린을 떠올렸다.

‘아들아. 네게 너무 무거운 짐을 맡긴 듯하여 이 아비, 마음이 편치 않구나. 고통이 심할 터인데 내색조차 아니 하던 네가 그저 고맙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천기까지 내다보아 신마의 앞을 막아설 능력을 지니신 조사님께서 어찌하여 호심결을 다른 네 가문에는 일단공까지만 베푸셨으면서 비룡문에는 삼단공까지 남기셨을까?

또 어찌하여 성산의 기문진은 호심결의 내공에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내 아들 무린아. 음양쇠맥증의 천형으로 인해 이 아비의 능력은 그것이 다였구나.’

다른 가문 모두 호심결의 내공을 기초공으로만 알고 깊이 익히려 들지 않았다. 다른 무공들과 달리 다섯 가문에 공평하게 베풀어 주신 뜻을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굳이 성산의 기문진을 돌파하지 않아도 좋다. 부디 가문의 천형의 끊고 문무겸전의 멋진 나래를 펼치거라.’

천형을 타고난 가문의 수장으로서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조카는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형님.”

“눈빛이 전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형님. 이번에는 한번 믿어 봐도 좋을 듯싶습니다.”

교진운과 유백이 기대감 가득한 시선으로 모옥을 바라보았다.

“고맙네.”

용대명의 뜨거운 시선 역시 모옥으로 향했다.

자신의 아들 용무린을 향해서…….

***

여느 영약과 다름없이 칠채보왕단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사르르 녹기 시작했다. 완전히 삼켰을 때부터 흡수되는 것이 바로 느껴질 정도였다.

‘자, 불사신기의 입문결부터 시작해 볼까?’

마음을 가라앉힌 후 즉시 입문구결을 떠올렸다.

-기경팔맥 12정경은 모두 잊어라. 그것들은 모두 작은 강줄기에 불과할지니 꼭 붙들고 바로 세워야 할 관념은 오직 하나 바다뿐이다.

처참하게 부러졌던 뼈가 아직 완전히 붙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불사신기의 본디 효능이 이런 것일까?

흡수되는 칠채보왕단의 기운과 약력은 단전으로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해백지로 치달아 전신에 골고루 확 퍼졌다.

‘이, 이거 제대로 되는 거야?’

시작하자마자 난관이다.

전생에서도 영약이란 걸 두어 번 먹어 봤었지만 그때와는 완전히 예후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약력과 기운이 단전으로 모이지 않지?’

보통 영약이라는 걸 먹게 되면 흡수함과 동시에 일단은 단전으로 내력 혹은 기운이 되어 모여든다.

그것을 임, 독맥으로 휘돌려 약력 혹은 기운을 고스란히 모으는 것이 기본인데 칠채보왕단의 약력과 기운은 불사신기의 영향 때문인지 그와는 정반대로 작용했다.

‘왜 모든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기만 하는 거냐고!’

결정을 해야만 한다.

시작부터 삐끗해 주춤했지만 어서 바로 잡아야만 주화입마를 면하고 음양쇠맥증도 고칠 수 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믿자.’

천마 조사께서 조사동의 바위에 각인해 두었던 ‘전신세맥의 타통에 관한 깨달음일 것이다.’ 라는 구절과 시도에 그쳤지만 백리소옥의 방에서 살짝 입문결의 맛을 보았을 때 역시 이와 비슷한 기의 움직임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바다는 모든 물줄기를 하나로 품는다. 마음이 바다에 이르면 장강과 시냇물의 구분이 없어지나니…….

그저 오롯이 구결에만 의지했다.

“쓰으읍. 후우우우우. 쓰으으읍. 후우우우우우우.”

들숨은 적당히, 날숨은 되도록 가늘고 길게, 한 가닥 의심조차 지우고 호흡과 구결에만 매달렸다.

-내공심법에 의한 운기도 결국엔 호흡, 우리가 평소 살기 위해 하는 것도 결국엔 호흡, 두 가지가 무엇이 다르던가? 바다는 바다일 뿐 그저 바다가 되어라.

입문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끝도 없이 계속해서 외우고 또 외우기만 했다.

‘뜻은 비록 깨우치지 못했지만, 충실하게 하나는 될 능력 정도는 내게 있다.’

의심과 같은 부정성을 깨끗이 지웠다.

뜻은 비록 알지 못하지만 심상에 오로지 구결 하나만을 세운 후 호흡조차 잊었다.

그러자 커다란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산들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사해백지로 쫙 퍼져갔던 약력과 기운이 기경팔맥과 12정경 모두를 통째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이리저리 지저분하게 뚫려 있는 조악한 길을 깡그리 지워 버리고 거대한 운동장을 만들어 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천마조사가 남긴 각주는 옳았다.’

확실히 불사신기의 입문결은 전신세맥의 타통에 관한 것이었다. 사해백지로 뻗어간 약력과 기운이 기경팔맥과 12정경을 동시에 휘감는 것을 느껴 보니 어째서 바다가 모든 물줄기를 하나로 품는다고 하는 것인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쏴아아. 쏴아아-아!

이해하기 시작하자 불사신기의 힘이 더 거세어졌다.

만년거암을 깎아내는 바람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토록 단단하게 굳어 쇠약하기만 하던 기경팔맥과 12정경을 통째 지워나갔다.

‘칠채보왕단은 곧바로 내공으로 변환해서 쓸 수 있는 종류의 영약은 아니로구나.’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약력의 힘과 불사신기의 조화라면 음양쇠맥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의원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바다로 가자, 바다로…….’

그나마 떠올랐던 잡념도 모두 지웠다.

불사신기에서 말했던 바다라는 구결 하나에 모든 것을 내던지다시피 매달렸다. 심상에 오롯이 바다로 향한 일념만을 채웠다.

‘바다에 도착하면 내공의 크고 적음이 무슨 소용이랴? 나는 그저 바다가 되겠다.’

쏴아아. 쏴아아아아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

***

반짝.

용무린의 눈이 뜨이며 맑은 빛을 뿜어냈다.

막강한 내공은 실리지 않았지만 한없는 순수함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호신(護身)까지 이뤘나?”

입문결은 물론이고 두 번째 단계인 호신까지 이룰 수 있었다.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어디 한 번 확인을 해 볼까나?”

즉시 단전에 의식을 집중했다.

부쩍 자라난 단전의 크기와 병아리 눈물만큼이던 내공이 큼직하게 불어나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

“그건 다행인데, 이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아직 잘 모르겠단 말이야.”

단전의 크기 자체가 불어나 있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전의 외곽이 어째 조금 흩뜨려져 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마치 겉에 잔뜩 녹이 슬어버린 무쇠 항아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일단은 조심해서 수련해 보도록 하자.”

신교 역사상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한 뿌리의 무공을 익혔을 것으로 짐작되는 절대검신 독고황이 직접 깨달음을 사사하지 않는 이상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 수밖에 없는 거다.

“내공은 확실한 이류 수준까지 확보한 셈인가?”

두 번째 단계인 호신까지 성큼 나아간 상태였다.

기대와는 달리 살짝 실망스러운 결과다.

엄청난 수준의 영약이었지만 내공의 증진보다 음양쇠맥증의 치료에 더 주안점을 두었던 약이었고 더군다나 불사신기 자체가 내공의 크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성향이 강한 터라 그러려니 싶다.

“일단은 써 보고 나서 결정하자.”

음양쇠맥증이 고쳐진 것만은 확실하다.

그토록 단단하게 굳어 곧이라도 부서질 듯 허약하던 기경팔맥과 12정경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깨끗하고 튼튼하며 커다랬다.

“다음 순서는 육체 단련이야.”

내공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그것을 담는 육체가 허약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약관의 나이가 되도록 단련다운 단련 한 번 하지 않았으니 그것 역시 시급한 일이었다.

“동시에 내 의지와는 달리 자꾸만 삑사리가 나던 문제 역시 해결해야만 해.”

망할 놈의 삑사리!

예상치도 않았던 그것 때문에 운룡장의 다섯 애송이와 싸울 때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머릿속에 그려냈던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선을 어째서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고 고쳐야만 한다.

“더는 방구석에서 해결할 수 없다. 나가자!”

육체 단련이 가장 시급했다.

그래야만 호신의 힘을 완성시킬 수 있으리라.

“그 후 삑사리를 고친다.”

벌컥.

“……!”

모옥을 나선 나는 그대로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한 발자국도 모옥 앞을 떠나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 용대명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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