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모처럼 만의 사냥
다음날 아침.
“아으 상쾌해.”
꼴같잖은 놈을 흠씬 패주고 난 다음날은 언제나 이렇게 기분이 좋았다.
“자, 슬슬 몸 좀 풀어 볼까?”
전생에 이어 새롭게 만나게 된 친구들을 손에 찰싹 달라붙게 만들어 놓을 차례다.
“반갑다, 풍뢰야. 내가 바로 네 주인이로구나.”
용무린은 허리춤에 걸린 도를 천천히 뽑아들었다.
스르릉.
풍뢰가 청명한 소리를 흘렸다.
“후후훗. 정말 좋구나.”
한눈에 봐도 보통의 도는 아니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부분의 크기만 해도 무려 석 자 여덟 치에 도병(刀柄)을 포함하면 다섯 자에 가까우며 일반적인 도와는 달리 칼날은 훨씬 더 넓었고 칼날 반대편에도 날이 서 있는, 도(刀)이면서 검과도 흡사한 녀석이었다.
타아앙.
손가락으로 검신을 살짝 퉁기니 맑은 종소리가 퍼져 나왔다. 완벽하게 잡힌 중심 덕에 풍뢰의 노랫소리는 은은하게 멀리 그리고 길게 울려 퍼졌다.
“딱 좋아. 완벽해.”
스스로를 공손위라 했던 노인이 도면 하단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도의 이름을 짓는 대가로 잔금을 포기할 만큼 풍뢰는 멋진 녀석이었다.
“운룡장의 다섯 애송이와 싸울 때 자꾸만 삑사리가 나서 애를 먹었었지. 곰탱이와 덩치 큰 냥이 녀석과 싸울 때도 처음엔 마찬가지였어.”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전생에 사용하던 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졌기는 하나 그 물건은 아니다. 그때와 같이 내 마음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려면 숙련만이 답이다.
“자, 어디 한번 시작해 볼까?”
용무린은 풍뢰를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저벅.
‘젠장. 또 이런다.’
막 수련을 시작하려던 용무린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백리소옥의 방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불사신기 수련을 온갖 사람들이 방해했었던 것처럼 또 방해꾼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면 그게 벽소추라는 사실이다.
“어? 왔어?”
반가운 마음에 용무린은 활짝 웃으며 벽소추를 맞았다. 풍뢰를 도집에 되돌렸다.
하지만 벽소추는 웃지 않았다.
짐작하기 어려운 묘한 시선으로 용무린을 바라보았다.
“왜?”
잠시 뜸을 들이던 벽소추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천재란 존재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믿지 않았었네. 오직 노력만이 정답이라 여겼었지. 하지만 어제 천재라는 존재를 직접 보게 되었네.”
“아, 어제 운가 애송이 패준 것 때문에?”
용무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풀썩 웃었다.
하지만 벽소추는 여전히 묘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나름 노력해온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도를 잡기 시작한 이래 하루도 수련을 걸러 본 적이 없었으니까…….”
“……!”
“한데 친구는 불과 석 달의 시간 만에 내 모든 노력을 어리석음으로 바꿔 놓았네. 나는 정말 혼란스럽네.”
용무린은 벽소추의 심정을 어느 정도 알 것도 같았다.
십수 년의 세월, 자신은 죽어라 노력해서 남부럽지 않은 경지에 올랐는데 용무린은 불과 석 달 만에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의 운적풍을 완전히 짓밟아버린 탓이다.
‘충분히 혼란스럽겠지. 암.’
하지만 그거 아냐?
‘나는 사물을 인식할 때부터 신교에서 자라났다. 세 살부터 검과 도를 잡고 놀았고 일흔의 나이에 그 망할 놈의 절대검신 독고황에게 죽는 순간까지 단 하루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그 깨달음과 경험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이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일단 나는 천재는 아니야.”
“천재가…… 아니라고……?”
벽소추의 표정은 더더욱 허탈해졌다.
용무린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대신 나는 지독한 노력장이라고는 할 수 있지.”
“……?”
“차차 알게 되겠지만 내 내공 수위는 현재 겨우 이류 정도야. 하지만 내가 무공을 펼치게 되면 그 파괴력은 단순한 이류가 아닌 일류를 상회하게 되지. 왜 그런지 아는가?”
“왜지?”
벽소추의 얼굴에 호기심의 빛이 돌아왔다.
스르릉.
용무린은 옅은 미소와 함께 대뜸 풍뢰를 뽑아들었다.
“일단 한번 부딪혀 볼까?”
“……설마, 장법과 권각술이 장기가 아니었던 것인가?”
씨이익.
“부딪혀 보면 알게 돼.”
“……!”
스릉.
잠시 용무린의 눈을 들여다보던 벽소추가 도를 뽑아들었다. 중단에 세웠다.
‘역시 자세가 좋군. 명문의 그늘 아래서 열심히 노력해온 것이 확실해.’
이런 때 조금만 가다듬어 주게 되면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발전하게 된다.
‘넌 내가 책임지고 이끌어 주마.’
애가 볼수록 마음에 든다.
지나가는 것처럼 말을 던졌지만 어제 운적풍에 앞서 마중 나온 것으로 자신이 뱉은 말을 지켰다.
“내 내공이 이류라고 했었지? 비무도 그렇겠지만 실전의 경우 모든 내공을 한꺼번에 다 써서 일격의 승부를 겨루는 일은 극히 적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야 물론.”
“절반 정도의 내공으로 일단 짧게 공격해 볼게. 한번 막아 봐.”
“후우, 이게 무슨 짓인지 원……. 알겠네.”
벽소추는 잠시 찾아든 혼란스러움을 바로 털어냈다. 가문의 도법인 뇌전도의 기수식을 취했다.
“간다-앗!”
타닷. 쉬이익.
한 걸음에 간격을 좁힌 용무린은 풍뢰를 짧게 끊어 쳤다.
카앙. 카카카카-앙.
“우웃.”
타닷. 주르륵.
방심하고 있던 벽소추는 생각지도 못했던 압력에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도 모자라 두 걸음만큼 다시 쭉 미끄러졌다.
“어때? 말했었던 것처럼 현재 내 내공의 절반 정도를 담아 뿌린 거야.”
“그, 그것이 정말인가?”
“그래.”
“어, 어떻게 이런 위력이 나올 수가 있지?”
벽소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깨를 한 번 살짝 으쓱여 보인 용무린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어깨와 골반의 송이라는 말 들어봤지?”
“그야 당연히…….”
“권장지각을 사용할 때는 진각이 바로 그 역할을 맡게 되지. 그 요체를 알게 되면 간단한 일이야. 검법이든 도법이든 장법이나 권법이든 뭐든, 무공을 펼치는 순간 파괴력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축’ 이라는 개념이 생기잖아?”
“……!”
“축이란 말은 곧 근육의 힘과 내공만이 아닌 무게까지 고스란히 싣는다는 것을 뜻하고 ‘송’은 연결고리를 말해. 고로 어깨와 골반이 충분히 단련되어 있으면서 부드럽게 이완이 되어 있어야 하지. 그 연결고리로 이어진 축을 이용해 스스로의 몸무게를 적절히 내공에 싣는 거야.”
“아, 어른들께서 줄곧 말씀하시던 사량발천근이란 것이 그러면 곧……?”
씨이익.
용무린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바로 그거지. 잘 알아먹네.”
“……!”
환하게 밝아졌던 벽소추의 얼굴이 다시금 순식간에 묘하게 바뀌었다.
‘아, 왜 또?’
녀석, 성격이 조금 계집아이 같은 면이 있다.
“친구는 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높은 무공의 이치를 알게 되었는가?”
어떻게? 70년 동안 죽어라 무공만 익힌 나다. 게다가 신교의 교주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 목숨을 건 실전을 치렀던 나야. 너도 그 정도 세월 동안 그만큼의 실전을 치러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젠장, 그렇게 말할 수도 없고…….’
결국 용무린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책!”
“채-액?”
벽소추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그래, 책! 무공 이론이 기록된 책에 다 나와 있던데? 난 그냥 그대로 단련하고 연습한 것뿐이야.”
“……!”
벽소추의 입이 쩍 벌어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안다. 내 대답 옹색한 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전생이 신마 진무량이었고 너희 신주오가가 조사로 모시는 절대검신 독고황과 싸우다 죽었는데 눈을 떠보니 용무린으로 환생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거다.
그때였다.
타다닥. 웅성웅성.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이리저리 눈을 돌리니 낯익은 시비 하나가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 반갑구나, 소월아.”
“아, 공자님? 코, 콜록. 콜록.”
그놈의 고뿔은 참 지겹게도 달고 사는 시비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냐? 주변이 조금 소란스럽구나?”
수작 대신 그 질문을 위해 부른 것임을 알자 시비 소월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아, 그거요?”
대뜸 기침이 사라졌다. 질문에 또박또박 잘도 대답하기 시작했다.
“지금 세가에 소림의 고승들과 개방의 어른들께서 오셨지 뭐예요?”
“뭐? 소림과 개방?”
꿈틀.
용무린의 눈두덩이 순간적으로 거칠게 요동쳤다.
소림과 개방이라고 하면 신마 시절 가장 먼저 박살내야 했던 주적들이었기 때문이다.
“예. 지금 대의청에서 가주님과 각 세가의 어른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계셔요.”
꾸우욱.
두 주먹에 저절로 힘이 고여 들었다.
이미 용무린으로 환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의가 불타오르는 것이었다.
“……친구? 어째 그러는가?”
벽소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 왔다. 용무린의 입에서 즉답이 쏟아졌다.
“어째서는? 한번 붙어 보고 싶어서 그러지.”
“……!”
벽소추의 입이 다시 한 번 쩍 벌어졌다.
하지만 용무린은 진심이었다.
‘뭐,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만 한번 대차게 붙어 보고는 싶다. 정말로.’
이젠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알고 싶었다.
절대검신 독고황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무림의 태산북두라 일컬어지는 소림을 넘어 무림을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인지를…….
“소월아. 지금…….”
“아, 갑자기 현기증이……. 콜록. 콜록. 코올로-옥!”
용무린이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자 소월의 태도가 갑자기 또 돌변했다. 이러다가 허파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격렬한 기침을 토해냈다.
“쯧쯧쯧. 그래, 알았다. 어서 가 봐라.”
“아, 그, 그럼……. 콜록. 콜록.”
연신 기침을 쏟아내며 소월은 마치 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마냥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저렇게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맡은 바 일을 위해 저토록 열심히 움직이다니, 참 성실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여인들이란 언제나 몸이 허약하단 말이야? 그놈의 고뿔을 항상 달고 살아요.”
용무린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벽소추를 향해 돌아섰다.
‘그게 정말 고뿔 걸린 것으로 보였나?’
벽소추는 그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어쩐지 그런 질문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팍 들었다. 그런 벽소추를 향해 한 번 씽긋 웃어 보인 용무린이 입을 열었다.
“친구, 대의청이 어딜 줄은 알지?”
“대의청? 당연히 아네만.”
“그러면 앞장서.”
“왜?”
“왜긴? 가 보려고 그러는 게지.”
벽소추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설마, 정말 소림과 개방의 어른들께 비무를 요청할 생각인 건가?”
씨익.
“그건 상황 봐서.”
곧 죽어도 아니라고는 하지 않는 용무린이었다.
“……이쪽이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인 벽소추가 돌아섰다. 대의청을 향해 앞장서 걸었다. 용무린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
그 시간, 대의청에서는 회의가 한참이었다.
“예에? 강호 칠악 중 하나인 염라옥수 요여립이 정주를 활보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백리장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무림공적으로 지목된 염라옥수 요여립이라면 색마로 이름이 높으면서도 무공이 높아 아직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는 악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림의 사대 금강 중 일인인 일각대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개방에서 직접 확인했으니 확실할 겁니다, 아미타불…….”
일각대사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코끝이 빨간 늙은 거지가 등을 벅벅 긁으며 앉아 있었는데 매듭이 일곱 개나 달린 끈을 허리에 걸고 있었다. 개방의 장로 중 하나인 연화주선 화운이었다.
“킁, 얼마 전 정주 외곽 마을 중 하나인 죽림촌에 사내와 부인이 동시에 간살당한 것을 발견했소이다.”
“허어, 사내와 여인을 동시에?”
“본방의 오의단이 면밀히 살핀 결과 요여립의 짓이 확실하다고 결론지었소. 보통의 주검과는 달리 쭈글쭈글한 것이 기력이 쭉 빠진 모양새가 너무 확연했거든…….”
사내와 여인을 동시에 간살한 데다 피해자 주검이 기력까지 쭉 빠져 있었다면 요여립의 짓이 확실했다.
채음보양을 통해 내공 수위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요여립만이 음과 양의 기운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서 사내와 여인을 동시에 간살하기 때문이었다.
“소림과 개방이 나섰으니 이제 요여립도 끝이군요.”
벽운성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일각대사가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인명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이렇게 백리세가를 찾았습니다.”
“인명 피해요?”
“그 대답은 내가 하겠소이다.”
귓밥을 훅 불며 연화주선 화운이 나섰다.
“피해자들을 확인한 후 본방의 거지들이 정주 일대를 쭉 훑었소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요여립의 인상착의와 흡사한 자를 찾았는데, 놀랍게도 혼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이 되었소이다.”
“허어, 무공까지 높아 독존하듯 홀로 무림을 휘젓던 요여립이 무리를 지었다니요?”
“그게 다 유유상종하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목격자들의 말을 듣자하니 이곳 하남성 일대를 무대로 패악질을 일삼던 혈견사흉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 같다 하더이다.”
혈견사흉.
네 쌍둥이로 하나같이 성정이 포악하며 무공 수위는 일류에서 절정까지 두루 포진해 있다. 대형인 막굉이 형제들을 이끌며 주로 중소문파의 분쟁에 끼어들어 돈을 받고 살인을 즐기는 악적들이었다.
일각대사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요여립과 혈견사흉이 하나가 되었으니 피해가 커짐은 불을 보듯 환한 일, 다행히 이곳 정주에는 신주오가의 하나인 백리세가가 있으니 이번 기회에 무림수호의 정의를 위해서 한번 나서 주셨으면…….”
“죄송하지만, 불가합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상관종명이 대뜸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 운전추가 그 뒤를 받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성산지약이 코앞입니다. 이번에야말로 기문진을 열고 절대검신 조사님의 유훈을 이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칫 신주오가 구성원의 인명 피해라도 생기면 막대한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허어, 하필이면…….”
“젠장. 재수도 더럽게 없지. 뭐, 어쩌겠어? 거지새끼들 죽어나자빠지는 것보다는 성산지약이 더 중요하지. 암.”
운전추의 말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백리세가를 찾았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연화주선 화운조차도 더는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신마대전 후 절대검신 독고황이 오래지 않아 쓰러지고 그의 진신절기가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성산의 기문진이 열리기만을 무려 70년 동안이나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내가 돕지요!”
시원스러운 대답과 함께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바로 용무린이었다.
상관종명과 운전추가 대뜸 노성을 발했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더냐?”
“석 달 전에도 그러하더니, 너 같은 애송이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썩 물러가라!”
피식.
“두 분께 했던 말이 아닙니다.”
“뭐야?”
“저저, 버르장머리 하고는…….”
“더 늦기 전에 내가 내 의지로 소림과 개방 분들을 돕겠다는데 두 분께서 왜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상관종명과 운전추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출수를 해 피 떡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모양새가 역력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무린은 두 사람을 싹 무시했다. 소림의 일각대사와 개방의 화운장로를 향해 돌아섰다.
“미력한 힘이겠지만, 돕고 싶습니다.”
멋지게 포권까지 취하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비룡문의 용무린이라고 합니다.”
일각대사와 화운장로의 눈이 살짝 커졌다.
특히 연화주선 화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는데 용무린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호오, 얼마 전에 떼돈을 벌었다는 그 녀석이로구나.”
울컥.
‘저놈의 거지를 확 그냥.’
용대명과 두 의숙을 제외한다면 아직 신마로서의 의식이 새파랗게 남아 있는 용무린은 무지 애를 써서 성질을 억눌러야만 했다.
‘개방의 거지답게 내가 하오문의 무투장에서 돈 좀 땄다는 정보를 이미 접수했구나.’
하긴, 별호조차 삼절일학을 그대로 사용했으니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인 이곳 정주에서 개방이 무투장의 일을 모른다면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허허허, 선재라……. 비룡문이 가문에 드리워진 족쇄를 드디어 벗어 던졌구려. 반갑소, 용 시주.”
일각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방의 장로와 함께 다녀서인지 이미 용무린의 지난 행적에 대한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둥그렇게 반원이 그려진 눈이 된 화운장로가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그(?) 때와는 달리 깨나 위험한 상황이긴 하다만…… 좋다, 함께 하자꾸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화운장로는 나름 무투장에서 실전 수련을 쌓은 용무린이 진정한 실전을 겪기 위해 일부러 강호행에 나선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아니었다.
“좋은 경험 따위를 위해 나선 치기가 아닙니다.”
“……?”
“희한하게 까마귀가 날면 꼭 배가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색마의 활보라……. 그놈들 손에 걸리면 절대로 아니 될 어떤 여인이 생각나서 나선 것일 뿐입니다.”
백리소옥이 가출을 하게 된 것은 모두 자신의 충고 탓이었다. 물론 직접적인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백리소옥이었지만 용무린은 그녀가 잘못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었다.
“아!”
“우리가 그것을 잊고 있었군.”
은유로 이어진 말이었지만 단숨에 알아들었다.
모두가 파혼을 이유로 가출을 감행한 백리세가의 금지옥엽 백리소옥을 떠올렸다.
“……여식의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하느니 차라리 10년을 더 기다리는 편이 낫겠지.”
세가의 정예들을 모두 풀어두긴 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천추의 한을 남기지 않으려면 재빨리 움직여야만 하리라.
백리장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각대사와 화운장로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본 백리세가는 소림과 개방의 의인들과 함께 손을 잡고 염라옥수 요여립과 혈견사흉을 잡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약속드리는 바입니다.”
벽운성 역시 참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후 포권을 취하며 다짐했다.
“벽력도가 역시 이 일에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도록 하겠소이다.”
일이 그렇게 되니 상관종명과 운전추 역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백리세가가 나선 것만으로도 자칫 잘못하면 성산지약이 잘못될 것이 빤한데 벽력도가까지 함께 나선 이상 어차피 그 일은 물 건너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우라질 놈의 경우가 있나? 어떻게 기다려온 10년인데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직 풍아와의 파혼이 마무리되지 않았어.’
상관종명과 운전추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떠름한 표정을 재빨리 지워 버린 후 더없이 정의로운 얼굴로 크게 외쳤다.
‘아직 열흘이나 남았어. 그 안에 요여립과 혈견사흉을 정리하고 재빨리 성산으로 이동한다.’
“상관세가 역시 강호의 정의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배였다면 확인이라도 빨리 되었으면 좋겠군. 성산의 기문진에라도 희망을 쏟게 말이야.’
“본 운룡장 역시…….”
앞서 두 사람과 생각은 전혀 다르지만 상관종명과 운전추 역시 합류하게 되었다.
씨익.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낸 용무린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물건이군. 물건이야…….’
묘한 시선으로 용무린을 살펴보던 연화주선 화운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번져갔다.
***
하남성의 성도라는 말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정주는 무척 넓은 곳이다. 성도 안팎에 무려 일만 오천여 호나 되는 가구가 상주하고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당연히 숨을 곳도 많았다.
정주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객잔.
2층 창가에 앉아 방립을 깊이 눌러 쓰는 것만으로 변장을 대신한 백리소옥이 홀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탁.
“하아, 이제 어떻게 하지?”
젓가락을 힘없이 내려놓은 백리소옥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용무린의 충고를 좇아 가출을 하긴 했는데 솔직히 그 후 대책이 조금 막막했던 것이다.
“낙양의 외가에나 갈까?”
며칠 객잔에서만 죽치자니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다.
“가출한 주제에 한가롭게 구경이나 하고 돌아다니기에도 조금 뭣하고……. 하아, 어쩌지?”
백리세가라고 하는 거대한 온실에서만 자라왔다.
하남성 일대를 활보할 때도 있긴 했었지만 그때는 언제나 오라버니들과 함께하거나 가문의 어른들 혹은 세가의 무인들과 함께 했었다.
그런 것들도 없이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감당해 내야만 하는 시기가 오게 되자 미천한 경험이 이것도 저것도 두려워하게 발목을 잡은 것이다.
-운적풍 같은 애송이와 평생을 함께하느니 나 같으면 녀석의 목을 날려 버리겠다.
-운가 애송이는 야비한 승냥이의 머리에 뱀의 심장을 지녔다. 너완 어울리지 않아.
계속해서 용무린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메아리쳤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과감하고도 파격적인 말, 솔직히 충격적이었고 가슴 깊이 남아 오랜 시간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특히 그가 남겼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네 인생의 주인이 네가 아닌 다른 누구라면, 네 선택으로 만들어나가는 삶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명령과 압박으로 결정되는 삶이라면, 일찌감치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지.
그 누군가의 명령과 압박이 비록 아버지였었지만 변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래,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야. 내가 만들어 가야만 하는 거라고.”
그런 삶을 위해 집을 떠났다.
너무 늦은 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혼자 헤쳐 나가야 할 때인 것이다.
“그래, 좋아. 아미산으로 가겠어.”
치기 어린 생각으로 결정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마파의 고수였던 보현스님과의 인연이 아직도 생생했다. 보현스님은 그때 분명히 자신을 속가제자로 삼고 싶어 했었다.
“그 시절에도 이미 아미본산인 복호사의 계율원주이셨으니 지금쯤이면 충분히 나를 이끌어 주실 수 있을 거야.”
강한 내공과 근력을 필요로 하는 세가의 검법을 수련하는 자신을 향해 아미의 정묘한 검술이 더 맞을 것 같다며 제자 운운을 하셨으니 단번에 내치시지는 않으리라. 분명히 속가제자로 받아주실 것이다.
“가자. 아미산으로…….”
백리소옥은 우울함을 단숨에 떨치고 일어났다.
객잔을 나서 사천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
정주 외곽.
신밀과 신정으로 나뉜 이정표 앞에 오인의 사내들이 고민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어디로 가실게요, 요형?”
혈견사흉의 대형 막굉의 질문을 받은 요여립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자신들을 옭죄어 오는 소림과 개방의 눈을 떨치기 가장 손쉬운 경로를 찾았다.
“아무래도 신밀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 같소, 막형. 하남과 호북 그리고 섬서의 경계를 타고 사천성으로 스며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외다.”
“흐음. 거 좋은 생각이오.”
막굉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니기미, 기왕 결정된 거 빨리 갑시다, 대형.”
“에혀, 천하의 혈견사웅의 꼬라지가 말이 아니지만 어쩌겠소? 사천성에서는 잘 해보십시다.”
“이렇게 떠돌아다니기도 솔직히 이젠 지겹소. 사천성에서는 아예 자리를 잡아 버립시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우, 셋째형. 적당한 문파 하나 잡아 빈객으로 들어가서 아예 싹 잡아먹어 버립시다.”
막굉의 세 아우들이 이름값을 했다.
도주하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사천성에 들어가서 벌일 악독한 짓부터 입에 담았다.
물론 그러한 것이 염라옥수 요여립과 너무나 잘 맞았다. 요여립은 통쾌하게 웃으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막굉의 아우들을 추켜세웠다.
“역시 호쾌한 형제들이란 말이야. 좋아, 사천성으로 들어가면 막형과 함께 상의를 해서 적당한 문파 하나 잡아 새로이 거듭나 보자고!”
“흐흐흐. 약속하는 거유.”
“푸헤헤헤. 거 좋소.”
“크크큭. 생각만 해도 좋구려.”
막굉과 그의 아우들이 눈을 번들거리며 좋아했다.
바로 그때였다.
움찔. 슬금슬금. 후다닥.
등에 커다란 봇짐을 짊어진 한 무리의 소상인들이 요여립과 혈견사흉을 스쳐 종종걸음으로 지나쳤다. 앞을 가로막아선 사내들이 보기만 해도 무서웠는지 소상인들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반짝.
요여립의 눈에서 묘한 불꽃이 튀었다.
소상인들 사이 숨어 있던 젊은 여인과 준수한 용모의 사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피식.
“요형, 거 욕심이 과한 거 아니우? 전에도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우리 형제들에게 양보해야 할 차례 아니우?”
막굉이 넌지시 요여립보다 먼저 나섰다.
요여립이 막굉과 비슷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나 혼자만 재미를 보았으니 당연한 일! 좋소, 막형. 이번에는 막형과 형제들이 먼저 재미를 보시구려. 나는 마지막에 나서는 것으로 하겠소.”
“푸흐흐. 고맙소.”
“크크큭. 감사하오, 요형.”
“다음엔 우리가 또 양보 하겠소이다, 요형.”
막굉과 아우들이 눈을 희번덕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사천성에 당도한다 해도 자리를 완전히 잡을 때까지는 마음대로 즐기지 못할 것이 빤하니, 우리 천천히 즐기면서 가십시다.”
“좋소. 뭐가 문제가 되겠소. 하하하.”
요여립과 막굉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듯 거만하게 웃으며 소상인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
“여기에서 신밀로 가는 것이 빠르겠지?”
강호주유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백리소옥은 사천성으로 향하는 최단거리를 잘도 뽑아냈다. 신밀을 거치는 것이 세가의 시선이 미치는 관도를 거치지도 않고 거리도 단축할 수 있어 좋았다.
바로 그때였다.
“아아악!”
“크아악!”
저 멀리에서부터 누군가가 내지르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움찔!
백리소옥은 대뜸 허리춤의 검부터 잡아갔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비명소리를 향해 바로 달려가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여자 혼자 몸이다 보니 함부로 나서기가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 도와야 하나? 아니면 그냥 무시할까?”
마음만 같아서야 당연히 돕고 싶다.
그러나 자신의 무공으로 과연 무사히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 역시 무탈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아악. 제, 제발…….”
죽음보다 더한 절박함이 가득 담긴 여인의 울부짖음을 듣게 되자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제길, 음적이로구나!”
같은 여인으로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일!
타닷!
백리소옥은 여인의 절규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
타다닷. 쉬이익.
한 줄기의 바람처럼 대지를 내달리는 사내들.
바로 용무린과 벽소추였다.
“무린, 그런데 정말 이쪽 방향 끝에 백리소옥 소저가 있을까?”
벽소추가 침묵 속에 뛰기만 하는 용무린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느새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는지 ‘친구’라는 어색한 단어 대신 이름을 불렀다.
“나만 믿어. 백리소옥 소저는 틀림없이 사천성을 향해 움직일 거야. 그리고 이쪽 방향이 사천성으로 가는 최단 경로야. 관도를 거치지 않지.”
용무린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하오문의 정주 분타에서 소가령에게 받았었던 요즘 무림의 정세에 관한 책 속에서 과거 백리소옥에게 관심을 보였던 아미파의 여승에 관한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외가를 찾아 낙양으로 움직였다면 벌써 백리세가 사람들 눈에 걸렸어. 미래를 꿈꾸며 나선 길이라면 아미파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테고 가출했으니만큼 관도는 피했을 거야.’
현재로서는 가장 정확한 형세 판단인 셈이다.
타다닷. 쉬이익.
여전히 한 줄기 바람처럼 평원을 함께 가로지르며 벽소추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한데 무린.”
“응?”
“기세 좋게 돕겠다고 나섰으면서 어째서 개방과 소림 혹은 각 가문의 주력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 겐가? 염라옥수 요여립과 혈견사흉을 잡기 위해서라면 정보력이 강한 개방과 함께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혹시 백리소옥 소저를 좋아해서 이러는 것인가?
그것이 궁금했다.
피식.
“백리소옥의 가출 말이야.”
“…….”
“그거 내가 충동질 한 거야.”
“충동질?”
벽소추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운적풍 그 멍청이와의 혼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자신의 방에 뉘인 것이라 하더라고.”
“아하! 그래서?”
“그 소릴 듣고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랬지. 혹, 그 멍청이 말고 좋아하는 사내가 있어 그러는 것이라면 차라리 사랑의 도피를 하라고 말이야.”
“떠헙. 사, 사랑의 도피?”
벽소추가 보기 드물 정도로 놀랐다.
물론 완전한 오해다.
“내 충동질 때문에 가출한 그녀가 홀로 돌아다니다 험한 꼴 당하는 걸 볼 수야 없잖아? 내 목적은 그저 그녀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해.”
혹여 자신이 나선 일로 인해 그녀가 다시 가문으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혼사를 계속 강행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가출로 인해 백리장천도 충분히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제야말로 본인이 사모하는 사내와의 행복을 위한 진정한 투쟁의 시작인 셈이지.’
용무린의 오해도 한층 더 깊어졌다.
벽소추의 입이 다시 열렸다.
“흐음. 그러면 우리 신주오가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이면에 숨은 생각도 어쩌면 무린과 같겠군.”
“당연하지. 성산지약이 코앞인데 뭐하러 무리를 하겠어? 백리소옥을 찾으면 가주님과 핵심 고수 몇을 제외하면 다들 백리세가로 되돌아 올 거야.”
“그렇군.”
벽소추가 고개를 크게 끄덕일 때였다.
카앙. 차차차차창.
거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저 멀리에서부터 은은하게 들려왔다.
꿈틀.
용무린의 눈두덩이 거칠게 움직였다.
‘젠장. 이거 어째 불길한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 먼저 간다-앗!”
타닷. 쉬이이익.
용무린의 신형이 벽소추를 훅 앞질렀다. 한 줄기 바람처럼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쏘아졌다.
***
카카캉. 퍼엉.
“아흑!”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백리소옥은 뒷걸음질을 쳤다.
염라옥수 요여립의 공격에 복부를 한 차례 얻어맞았기 때문이었다.
“푸흐흐. 이런 횡재가 다 있나? 어쭙잖은 시골 계집 하나 양보했더니 선녀 같은 계집이 자진해서 나타나주다니…….”
요여립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반대로 허리끈을 질끈 동여매며 숲을 나서던 막굉의 얼굴은 팍 구겨져 있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만 더 양보할 것을…….”
허겁지겁 욕심을 채우고 나와 보니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대단한 여인이 제 발로 호구에 걸어들어 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나저제나 자신들의 차례만 기다리고 있던 셋째와 넷째도 같은 심정인지 함께 투덜거렸다.
“니미, 운수하곤…….”
“담엔 조금 더 기다려 보십시다, 형님.”
“킁, 그러자. 저 숲에 뒹구는 년 얼굴은 이제 보니 사람도 아니더라.”
“내 말이 그 말이오.”
혹여 빼앗길세라 요여립은 재빨리 백리소옥 앞으로 짓쳐 들었다. 강하게 손을 뻗어냈다.
후우욱. 스파앙.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여인의 치부를 노린 공격이다. 가슴 아니면 하복부. 그 간단한 공격을 백리소옥은 허겁지겁 막아야만 했다.
“이 악적! 감히 어딜! 꺼져랏!”
촤아아! 쌔애액.
백리소옥이 검이 둥그렇게 원을 마구 그렸다.
백리세가의 가전검법 중 하나인 육양귀일검의 일초 회륜단금이었다.
하지만,
따당!
회륜단금의 초식은 너무나 쉽게 깨어졌다.
아미의 계율원주 보현이 지적했듯 강한 내공과 근력을 필요로 하는 백리세가의 검법과 백리소옥과는 잘 맞지가 않았던 것이다. 검법이 가지는 본연의 위력을 모두 이끌어 낼 수 없었다.
퍼엉.
초식을 깨고 그대로 짓쳐든 요여립의 손바닥이 다시 한 번 백리소옥의 복부 어림에 닿았다.
“허억.”
주르륵.
백리소옥의 입에서 굵은 핏물이 툭 튀어 나왔다. 일 장 정도 뒤로 쭉 밀렸다.
“크크큭. 향기롭군.”
요여립은 손끝에 걸린 백리소옥의 옷 조각을 코로 가져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복부를 타격하는 순간 잡아 채 조금 찢어낸 것이다.
“아으, 감질나서 이거 어디 원!”
지켜보던 막굉이 우윳빛 속살을 드러낸 백리소옥을 보며 침을 질질 흘렸다.
“요형! 어차피 내 차지도 아닌 계집이지만 눈요기라도 실컷 하게 해 주시구랴!”
그쯤이야 뭐가 어렵겠나?
막굉의 요구에 요여립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내 막형과 아우들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 주도록 하겠소.”
타탓. 쉬이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여립은 다시 백리소옥을 향해 파고들었다. 거칠게 손을 흔들었다.
“자, 네 안의 것을 펼쳐 보이거라 계집아!”
“다, 닥쳐라 악적.”
파파팡. 투웅. 퍼억.
“아흑. 컥!”
짧은 비명과 함께 백리소옥의 상반신은 누더기가 되어 갔다. 분홍빛 내의가 고스란히 다 드러났다. 수치스러워 견디기 힘들었지만 백리소옥은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이렇게 무너질 수 없어.’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싸운다.’
-네 인생의 주인이 네가 아닌 다른 누구라면, 네 선택으로 만들어 나가는 삶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명령과 압박으로 결정되는 삶이라면, 일찌감치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지.
순간적으로 용무린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그래, 마지막은 내가 결정할 거야.’
최선을 다해 싸워도 어쩔 수 없다면 그때는 결정할 것이다. 저 악적 손에 원치도 않게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삶을 끝낼 것이다.
카앙. 채채챙. 퍼엉. 퍼엉.
“아흑. 큭.”
결정을 해야만 할 순간이 자꾸만 다가왔다.
절정의 무위는 마작으로 따낸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상대할 수 없었다. 상의에 이어 하의까지 누더기가 되었다. 요여립의 손에 마구 찢겨 속곳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크흐흐, 계집.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요여립의 눈에 기이한 열기가 뭉쳐졌다.
확실히 아껴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계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예로 단련이 된 까닭에 군살 하나도 없는 몸매와 우윳빛 피부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크하하, 이거 그야말로 돈 주고도 못 볼 빼어난 공연이구려.”
“아으, 저 뽀얀 살 좀 봐. 녹는다, 녹아.”
“와 미치겠다. 둘째 형님은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급해 죽겠고만…….”
막굉과 셋째가 몸살을 앓았다. 막내는 아랫도리를 붙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을 향해 요여립이 크게 외쳤다.
“잠시만 더 기다리시오. 내 형제들에게 방중술이 무엇인가 확실히 보여주도록 하겠소.”
이젠 끝낼 생각인 것이다. 요여립의 평소 행동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도 참은 거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백리소옥은 검을 들어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댔다.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럴 수 없을걸? 한 발만 더 가까이 오면 이대로 자결해 버릴 테니까.”
피식.
요여립은 싱겁게 웃고 말았다.
“계집, 자결이 어디 쉬운 줄 알지? 한번 해 봐, 쉬운지.”
저벅저벅.
요여립은 백리소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주춤 뒤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백리소옥은 확실히 자신의 목을 바로 긋지 못했다. 요여립의 입가에 떠오른 비웃음이 한층 더 진해졌다.
“너 같은 계집 정말 많이 봤지. 정절이 어떻고, 뭐가 어떻다면서 자결을 하겠다는 계집들……. 근데 그거 알아? 진짜 자결할 계집은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아. 그냥 긋고 보는 거지.”
움찔.
백리소옥의 뒷걸음질이 멈춰졌다.
확실히 그 말이 옳았다. 마음은 벌써 목을 그었는데 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자결을 입에 담는 계집들은 다 똑같아. 결국엔 무서워서 포기하지. 내 품 아래서 좋아 죽겠다고 교성을 지르게 돼. 염려 마. 너도 똑같이 될 테니까…….”
요여립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슬금슬금 다가왔다. 한순간에 백리소옥의 손에서 검을 빼앗을 수 있을 간격에 들어서는 순간 그대로 손을 쓸 생각인 것이다.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 나왔다.
“닥쳐 이 변태 새끼야-아!”
후우욱.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백리소옥의 머리를 훌쩍 뛰어 넘었다. 요여립을 향해 쏘아졌다.
쌔애액.
마치 번갯불과도 같은 광채 한 줄기가 요여립의 목으로 밀려들었다.
“우웃!”
화들짝 놀란 요려립이 목을 뒤로 확 젖혔다.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아직 간격이 한참 남아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였다.
피이윳! 투두둑.
본능의 경고를 따랐던 것이 옳았다.
다섯 자 정도나 되는 거리가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가 베었다. 굵은 핏줄기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패애액!
일도양단해 버리겠다는 듯 섬뜩한 공격이 머리를 향해 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차아아-!”
절정의 무인답게 본능적으로 반격이 이뤄졌다.
한 뼘이나 됨직한 손목의 팔찌로 공격을 퉁겨냄과 동시에 허공을 격하고 절정의 장법이 터졌다.
카아앙. 스파-앙.
염화옥수의 독문무공인 혈영소수공 의 일초 소수참혼이었다. 붉은 빛이 도는 기운이 이글거리며 모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일 장의 공간을 단축했다.
“크아압!”
타닷. 스스슷.
그제야 땅을 밟아선 그림자가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어지럽게 도를 흔들었다.
카락. 카라라락.
요여립이 뿜어낸 장력을 단숨에 잘라내지는 못했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어내듯 빠르고 연속적인 공격을 통해 결국 짓쳐드는 장력을 모두 흩어냈다. 뒷걸음질을 치며 소수공의 위력을 줄인 것도 한몫했다.
“내가 왔다, 백리소옥.”
“……!”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내뱉은 말에 잠시 동그래졌던 백리소옥의 눈은 이내 반가움의 빛으로 물들었다.
용무린이었다.
자신을 스스로의 주인이 되도록 행동하게 만들어준 장본인, 비록 뒷모습에 불과했지만 살짝 드러나 보이는 턱 선과 특유의 말투 그리고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두근!
백리소옥의 심장이 아찔할 정도로 크게 뛰었다. 한순간에 얼굴이 훅 붉어졌다. 이런 순간에 용무린이 나타나 자신의 방패가 되어 줄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체 여길 어떻게 알고? 아니, 불과 석 달여 만에 저런 움직임이 어떻게 가능한 거야?’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였다.
내공은 영약을 복용하면 단기간에 급격한 상승도 가능한 법이지만 무공은 다른 법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연공을 해야 하고 그에 준하는 경험을 쌓아올려야만 빛을 발하는 법이었다.
“네 삶의 주인을 너로 정했다면…… 싸워라. 뒤는 내가 막아 주마.”
두근두근.
백리소옥의 심장이 점점 더 격렬하게 뛰었다.
용무린의 말이 의지가 되었다. 이 위기를 돌파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용솟음쳤다.
꿈틀.
“크크큭. 애송이 주제에 기습 한 번 성공했다고 기고만장 하는 꼴이라…… 우웃!”
눈두덩을 거칠게 씰룩이며 용무린을 비웃던 요여립의 안색이 돌변했다.
“죽어라, 악적!”
타닷. 쌔애액.
앙칼진 외침과 함께 백리소옥이 공격을 감행해 왔기 때문이었다. 백리세가의 육양귀일검 이 초식 육양추혼의 초식이 목을 노려왔다.
‘빌어먹을!’
살짝 당혹스럽다.
백리소옥의 공격 따위야 하품을 하면서도 손쉽게 깰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 뒤에 도사린 용무린의 공격만큼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앙. 따다당. 차창.
요여립은 팔목을 감싼 한철팔찌로 가볍게 백리소옥의 검격을 막아내며 용무린을 향해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야하-아!”
쉬리릭. 쉬릭. 패애액.
거침없이 펼쳐지는 육양귀일검법으로 인해 용무린을 공격할 틈을 전혀 낼 수 없었다. 내공은 비록 일천하지만 오늘날 백리세가를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준 육양귀일검법의 초식은 그리 허술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되겠다. 일단 이 거추장스러운 계집부터 눈앞에서 치워 버리자.’
“차아아!”
후우우웅. 파아아아-.
묵직한 장력이 붉은 기운을 넘실거리며 백리소옥을 향해 밀려들었다.
물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피이이-! 카라라락!
백리소옥 뒤쪽에서 불쑥 치솟아 오른 한 줄기 도광이 그 장력을 사납게 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죽엇!”
쉬익. 따앙.
“우웃.”
그 틈을 노려 뻗어낸 백리소옥의 검이 계속해서 심장을 노렸다. 요여립은 허겁지겁 그 검을 쳐내야만 했다. 짜증이 확 치밀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 요형, 고생하시는구려. 어떻소? 조금 도와드리리까?”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하던 막굉이 크게 웃으며 외쳤다.
아득.
요여립이 이를 갈았다.
‘이게 대체 무슨 창피람?’
범상치 않긴 하지만 새파란 애송이 하나 가세했다고 이렇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다니, 천하를 위진시켰던 7대 악적 요여립 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아아앗!”
요여립이 빠른 속도로 장법을 끊어 쳤다.
휘리릭. 파아아아. 따다당.
“웁!”
“아흑.”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용무린과 백리소옥이 저만큼 밀려났다. 공간이 확보되기가 무섭게 요여립은 두 손에 잔뜩 공력을 운집시키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놈의 애송이들! 본때를 보여주마-아!”
우우웅.
공력이 잔뜩 응집되어감에 따라 기이한 진동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걸려 있던 붉은 기운이 점점 더 핏빛을 띠어갔다.
바로 그 순간,
‘걸렸다.’
타닷. 쉬이이.
요여립이 작정하고 공력을 운집하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용무린이 한 줄기 바람이 되어 튀어나왔다.
패애애액!
미리 잔뜩 끌어 올린 불사신기의 내공을 머금은 풍뢰가 요여립의 백회를 향해 뚝 떨어져 내렸다. 공력을 원하는 만큼 완전히 집중시키지도 못했으며 그 덕에 즉시 움직이기도 뭣한, 참으로 절묘한 순간에 가해진 공격이었다.
꿈틀.
요여립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다.
‘빌어먹을…….’
잔뜩 끌어 올리던 내공을 중간에 끊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상을 감수하더라도 이대로 출수다.
“죽어랏!”
투우우웅.
쭉 뻗어낸 요여립의 손에서 선연한 핏빛의 손 그림자가 둥실 떠올랐다. 놀라운 속도로 용무린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었다.
‘믿는다, 풍뢰!’
검 자체의 강도도 훌륭하지만 불사신기까지 머금었다.
밀려오는 공격이 비록 절정의 내공이라지만 풍뢰의 예기에 불사신기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까지 한꺼번에 싣는다면 잘라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파카아아-앙!
무쇠로 만든 종이 둘로 쪼개지는 듯한 소리를 끝으로 풍뢰는 결국 요여립이 뿜어낸 절정의 소수공력을 잘라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화아악. 휘이이-.
한 점으로 뭉쳐든 절정의 공력이 파훼되며 일어난 여력에 의해 풍뢰도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아직 이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용무린의 한계였다.
우우웅. 웅웅웅.
풍뢰가 부러지기라도 할 듯 몸살을 앓았다. 뒤로 크게 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여립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빌어먹을, 공력을 더 집중시켰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저 빌어먹을 애송이의 도를 부러뜨리고 심장에 통쾌한 일장을 먹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정확히 그 순간을 노려 들어올 수 있었지?’
요여립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질 때였다.
피이이이-잉!
주변의 공기가 나직하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요여립의 목을 향해 무엇인가가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다.
요여립은 용무린의 최초 공격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본능의 경고를 이번에도 충실하게 따랐다. 즉시 한 발 성큼 옆으로 이동했다. 최대한 목을 뒤로 젖혔다.
피식.
‘어림없어, 이 새끼야!’
서늘하게 웃어 보인 용무린의 손가락이 허공의 한 점을 살짝 뜯었다. 마치 비파를 연주하듯 부드러운 조작이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투우웅. 피유융. 웅웅웅.
보이지 않게 일어난 파동은 물결이 되어 요여립의 목을 향한 광채에 주인의 의지를 충실히 전달했다.
피이잉. 쉬리리릭.
빛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직선에서 곡선으로 다시 곡선에서 난해함으로 바뀌었다. 도저히 다음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피윳!
빛은 결국 요여립의 목을 스쳐지나갔다.
“……어?”
황망한 듯 요여립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것이 요여립이 보인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요여립의 목에 붉은 실선이 쭉 그어지는가 싶더니 머리통이 허무하리만큼 쉽게 미끄러져 내렸다. 바닥에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휘리릭. 타악.
요여립의 목숨을 집어 삼킨 광채를 가볍게 받아들었다. 용무린의 눈동자에 따스한 빛이 어렸다.
“반갑다, 비연(飛燕).”
풍뢰와 한 쌍으로 만들어진 소검 비연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래를 편 순간이었다.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재미있는 구경을 하는 모양새였던 막굉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을 번들거리기 시작했고 셋째와 넷째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거라도 걸치자.”
용무린은 뒤로 돌아섰다. 자신의 겉옷을 벗어 백리소옥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고, 고마워요.”
백리소옥이 두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감사를 표했다.
타닷.
“무린. 백리소저 찾았…… 으응?”
그제야 도착한 벽소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다 정리가 된 거야?’
백리소옥에게 다정하게 겉옷을 감싸주는 용무린과 그 앞에는 목 없는 시체가 있었고 다시 그 뒤에는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이 있었다.
‘죽은 놈은 뭐고 저놈들은 또 뭐지? 호, 혹시?’
벽소추는 대충 짐작이 갔다.
그래서 바짝 긴장을 한 채 은밀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전투를 대비했다.
그런데…….
“어디 크게 다친 데 없지?”
“네? 아, 예. 많이는…….”
백리소옥이 다소곳이 대답했다.
요여립의 소수공에 몇 차례 얻어맞았지만 어디가 찢어지고 부러지고 터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다 요여립이 혈견사흉과 더불어 즐기려 한 덕이다.
“그럼 됐어. 가자.”
용무린은 백리소옥의 어깨를 살짝 감싼 채 뒤로 이끌었다. 그대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화들짝 놀란 백리소옥이 입을 열었다.
“……저, 용 공자님.”
“……?”
“저쪽 수풀 안에, 저 악적 중 하나에게 당하고 있는 불쌍한 여인이 있습니다. 구해 주심이…….”
“왜? 잘 아는 애야?”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저 새끼들도 너 때렸어?”
“저들은 아직…….”
“그럼 왜 내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구해 줘야 하지?”
“……!”
백리소옥의 말문이 턱 막혔다.
설마하니 용무린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반응은 다른 곳에서 튀어나왔다.
“크하하하. 현명한 놈이로구나.”
“이런 깜찍한 놈! 그래 튀어라. 살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튀는 게 맞다.”
“크크큭. 아, 그 새끼도 참, 눈치 한번 더럽게 빠르네.”
막굉과 셋째 그리고 막내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꿈틀!
타닷. 패애액.
용무린이 느닷없이 막굉을 향해 날아들었다. 풍뢰로 심장을 노렸다.
“우웃!”
카앙.
막굉의 허리춤에 달려있던 대감도가 거짓말처럼 빠른 속도로 뽑아졌다. 풍뢰를 쳐냈다.
휘리릭. 스가악.
이미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라도 하다는 듯 풍뢰는 막굉이 휘두른 대감도의 힘까지 고스란히 무게에 실어 옆으로 그어졌다.
써걱.
그 옆에 서 있던 셋째의 팔 하나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셋째야!”
“형님!”
“이, 이노옴……. 컥!”
그림처럼 휘돌아 오른 풍뢰가 노성을 지르던 셋째의 목을 시원하게 몸통에서 분리해냈다.
‘아으, 속이 다 시원하네.’
나와 내 주변인에게 검을 들이대지만 않는다면 공연히 나서진 않는다. 하지만 신마로서의 의식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나를 저 시건방진 흑도의 조무래기들이 폄훼한다면 그대로 죽는 거다.
물론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백리소옥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하! 일부러 방심을 유도한 것이로구나.’
너무나 협의와는 거리가 먼 용무린의 태도에 적잖이 실망한 표정을 하고 있던 백리소옥의 고개가 그제야 살짝 끄덕여졌다.
‘정말 대단한 사내야.’
백리소옥의 심장이 다시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죽어엇!”
막굉과 막내가 그대로 짓쳐 들었다.
후우웅. 화악.
막굉의 대감도가 용무린의 머리를 향해 뚝 떨어져 내렸다. 막내의 삼절곤이 허리를 휘감아 왔다. 용무린은 재빨리 풍뢰로 둥그런 원을 그렸다.
타아앙. 따앙. 타다닷. 쭈우욱.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용무린의 몸은 뒤로 쭉 밀렸다. 내공의 차이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풍뢰를 쥔 손아귀가 찢어질 듯 아려 왔다.
“여기도 간다. 차아앗!”
벽소추가 전투에 합세했다. 가문의 도법인 뇌전도를 펼쳐 혈견사흉의 막내를 압박했다.
카앙. 카카캉. 따다당.
대감도와 풍뢰, 벽소추의 도와 삼절곤이 서로 얽히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불똥이 튀었다.
“이런 쓰벌, 뭐가 이렇게 시끄러…… 어엇!”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허리춤을 추켜세우며 나오던 혈견사흉의 둘째가 화들짝 놀랐다.
“셋째가? 이런 개자식들. 다 찢어 죽인다. 하아아.”
둘째가 바로 전투에 가담했다. 독문무기인 철퇴로 용무린의 머리를 노렸다. 한 대만 맞아도 그대로 될 것만 같다. 철퇴를 따라 공기가 무겁게 일렁였다.
‘하아, 빌어먹을 이류의 내공.’
타앙. 차차창. 따당!
피슷. 쉬각.
철퇴 때문에 동작이 자꾸만 커졌다.
부족한 내공을 보충하기 위한 힘과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싣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환장하겠네.’
문제는 그 틈을 비집고 대감도가 짓쳐들어와 자꾸만 몸에 생채기를 낸다는 것이었다. 한 수 한 수에 몸무게까지 깡그리 실었지만 내공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휘릭. 스아악.
허벅지 어림에 또 한 칼 먹었다.
‘크흠.’
대뜸 움직임이 둔해졌다.
“내공은 별 것 아닌 놈이다. 둘째야, 저 계집을 노려! 셋째의 복수를 해 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형님. 차아아.”
카아앙.
“큽!”
강하게 흩뿌린 철퇴를 막느라 용무린의 동작이 커진 틈을 비집고 둘째가 몸을 날렸다.
“이 빌어먹을 계집! 각오해라. 절대 쉽게 죽진 못하게 만들어 주마. 네년을 끌고 다니며 마음껏 짓밟아 셋째의 영혼을 위로하겠다.”
타앙. 타앙.
“아흑! 큽!”
요여립에게 입은 부상에 이어 철퇴를 방어하자니 백리소옥은 죽을 맛이었다. 철퇴를 한 번 막아낼 때마다 손아귀가 터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분명 몇 합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사로잡히리라.
‘저 싸가지 없는 자식을 그냥 콱!’
용무린의 눈썹이 매섭게 위를 향해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카앙. 카카캉. 스가악.
“크하하. 어딜 가느냐 애송아. 네 상대는 바로 나다.”
휘리릭. 패패패-액!
몸을 돌리지는 못했다. 용무린의 자세가 백리소옥을 향해 살짝 틀어졌을 뿐인데 대감도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폭풍처럼 떨어져 내렸다.
카카카캉. 피윳. 스각.
‘젠장. 미치겠군.’
이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내공이 아쉬워 미칠 지경이다.
내공만 넉넉했다면 벌써 막굉의 목을 베고 둘째의 심장을 찢었으리라.
‘아니 요여립 그 자식에게 내공 낭비만 하지 않았어도 충분했는데…….’
그나마 모자란 내공이 이제는 간당간당했다.
바로 그때였다.
타닷. 휘리릭.
“꺼져랏!”
후웅. 뻐어어억!
“크아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혈견사흉의 둘째가 뒤로 훌훌 퉁겨졌다. 그 자리에 연화주선 화운이 내려앉았다.
“아미타불…….”
화운장로 옆에 일각대사도 함께 늘어섰다.
이제 백리소옥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피이이잉.
내내 쥐고만 있던 비연이 다시 한 번 힘차게 날아올랐다. 풍뢰로 목을 쳐감과 동시에 단전을 노렸다.
“둘째야-아!”
다급해진 막굉이 거칠게 대감도를 흩뿌렸다.
타앙. 카앙.
풍뢰와 비연을 한꺼번에 옆으로 튕겨냈다.
타닷.
“정신차려-엇!”
그대로 신형을 날려 둘째를 품에 안아 들었다.
‘오냐, 나도 기다렸다.’
대감도의 내공까지 고스란히 받아 안은 용무린이 발을 옆으로 굴렀다. 벽소추와 팽팽하게 겨루고 있는 막내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피이잉. 푸욱.
“크흡!”
벽소추를 상대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혈견사흉의 막내가 비명을 쏟았다. 비연이 허벅지를 꿰뚫고 자세를 무너뜨렸기 때문이었다.
“차앗!”
스각.
벽소추의 뇌전도가 삼절곤을 들고 있던 팔을 날려 버렸다. 그 뒤를 이어 짓쳐든 풍뢰가 막내의 목을 마저 허공에 띄웠다.
“막내야!”
선지피를 쏟아내는 둘째를 품에 안은 막굉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일은 이미 모두 끝난 후였다.
“걱정하지 마라. 너도 보내 줄 테니…….”
타닷. 쉬이익.
막내의 목을 날려 버린 용무린은 그 여세를 몰아 막굉을 향해 짓쳐들었다. 풍뢰에 모든 내공과 몸무게를 실어 천령개를 쳐갔다.
‘오늘 우리 형제가 한 날 한 시에 모두 죽는구나.’
대체 어떻게 해서 일이 이지경이 되었는지 막굉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요여립과 함께 사천에서 자리를 잡고 즐겁게 살기로 했었는데…….
“개자식!”
막굉의 눈에 짓쳐드는 용무린이 걸려들었다.
“오냐, 좋다. 내 무슨 일이 있다 해도 너는 데리고 가겠다. 차아아아.”
막굉이 대감도를 고쳐 쥐었다.
자세를 낮춘 후 무턱대고 내공을 끌어 모았다.
‘죽인다.’
셋째에 이어 막내도 저놈의 손에 죽었다.
‘기필코 죽인다.’
어느 한 순간……
버언쩍.
막굉의 대감도가 화려한 빛을 머금은 채 용무린의 목을 향해 쭉 그어졌다.
피잉. 푸욱.
소검 비연이 막굉의 복부를 그대로 파고들었지만 막굉의 행동을 멈추거나 늦추지는 못했다. 일부러 그냥 맞아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역시 숙련이 필요해.’
용무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소검 비연은 막굉의 복부가 아니라 심장에 꽂혔어야 한다. 그랬다면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막굉은 죽었을 테니까.
“이놈!”
“멈춰라!”
타닷. 쉬이익.
개방의 화운장로와 소림의 일각대사가 크게 놀라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개자식아-아!”
막굉이 뻗어낸 대감도는 그대로 전면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풍뢰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따아아앙.
마치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종이 깨어지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용무린의 몸이 훌훌 뒤로 날렸다. 풍뢰가 살짝 뒤틀어지는가 싶더니 뒤로 크게 휘었다. 곧이라도 깨어질 것처럼 웅웅 거칠게 몸을 떨었다.
“커헉!”
감당할 수 없는 내공에 용무린의 입에서는 굵은 핏덩이가 튀어 나왔다. 마지막 한 수에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어 버린 것이다.
‘흐으으. 넌 끝났어, 이 자식아.’
하지만 핏물 가득 머금은 용무린의 입술은 슬쩍 벌어졌다. 고통을 무시했다. 오히려 웃었다.
튀잉.
손가락이 허공의 한 점을 살짝 뜯어내자 비연과 이어져 있던 지극히 얇은 무엇인가가 다시 기력을 되찾았다.
휘리릭!
다행히 이번에는 원하던 것처럼 막굉의 목에 착 휘감겼다. 뒤로 훌훌 날려가던 용무린은 자신의 몸무게와 속도에 살짝 힘을 더했다.
스각!
막굉의 목에 휘감긴 그 무엇은 지극히 날카로운 병기가 되었다. 그대로 막굉의 목을 통째 베어 냈다. 막굉이 눈을 부릅떴다. 그 부릅뜬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처, 천잠사?!”
도저히 믿을 수 없는지 손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목을 살짝 매만졌다. 그것이 막굉이 이 세상에서 보인 마지막 행동이었다.
스르르. 툭. 터얼썩.
막굉의 목이 미끄러져 내렸다. 바닥에 떨어졌다. 이내 막굉의 몸뚱어리까지 옆으로 쓰러졌다. 혈견사흉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막굉의 최후였다.
씨이익.
“가, 감히 흑도의 조무래기들이 ……한 벌이다.”
풀썩.
마지막으로 희미하게 웃어 보인 용무린의 무릎도 힘없이 꺾였다.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용 공자니-임.”
백리소옥이 화들짝 놀라 앞으로 달려 나왔다. 쓰러지는 용무린을 그대로 품에 안았다.
벽소추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소림의 일각대사도 개방의 화운장로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용무린과 백리소옥을 보았다.
“보기 좋구려. 아미타불.”
“위험을 무릅쓰고 회의장에 나섰을 때부터 내 알아봤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러는 사이 뒤늦게 도착한 개방의 고수들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풀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싸늘하게 식어버린 소상인들과 막굉과 둘째에게 연이어 몹쓸 짓을 당한 여인이 차례차례 앞에 뉘여졌다.
특히 여인은 충격이 컸었는지 두 눈을 부릅뜬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주변 상황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듯 반응이 없었다.
“에잉, 쯧쯧쯧. 가엽게도…….”
“아미타불.”
화운장로는 연신 혀를 찼다. 일각은 나직이 반장의 예를 취하며 불호를 외웠다. 짧게나마 희생자들의 성불과 여인의 쾌유를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주변 정리가 끝이 났다.
일각대사의 입이 불쑥 열렸다.
“헌데, 용 시주가 마지막에 무슨 말인가 입에 담았던 것 같은데 말이외다.”
“감히 흑도의 조무래기들이……까지만 들었는데, 뭐 뒤야 빤한 일 아니야? 내 여자를 건드린 벌이다. 뭐, 그 엇비슷한 말이겠지?”
“호오, 역시…….”
일각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가문에 드리워진 천형을 단숨에 잘라낸 비룡문의 신성과 백리세가의 금지옥엽의 결합이라……. 잘 어울립니다, 그려. 아미타불.”
용무린이 들었다면 펄쩍 뛸 소리를 태연히도 하는 두 사람이었다.
힘이 다 빠져서 그렇지 용무린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감히 흑도의 조무래기들이 신마를 폄훼한 벌이다.
달라도 너무나 많이 다른 말!
화운장로와 일각대사가 미처 알아듣지 못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화르륵.
화운장로와 일각대사의 말을 듣고 있던 백리소옥의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두근두근. 쿵쾅쿵쾅.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때 화운장로가 살짝 삐딱한 말을 쏟아냈다.
“그건 조금 힘들걸?”
“어째서요? 저렇게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를 누가 훼방이라도 놓는다는 말씀입니까?”
화운장로의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가 걸렸다.
“운룡장.”
“……?”
“내 알기로 저 처자는 운룡장의 적풍인가 뭔가 하는 아해와 태중혼약이 되어 있지 아마?”
“허어, 이거 참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려.”
“그래, 곤란하지.”
반짝.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화운장로의 말을 듣고 있던 백리소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 삶이야.’
백리소옥의 시선은 용무린에게로만 향해져 있었다.
‘두고 봐. 기필코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겠어.’
두근두근. 쿵쾅쿵쾅.
그 결심을 축하해 주듯 백리소옥의 심장이 커다랗게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