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의문의 적 (12/104)

3.의문의 적

무한에서 색주가로 이름 높은 홍적로의 끝자락.

꽤 너른 장원 하나가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흑야방의 본체였다.

씨익.

“제대로 찾아 왔네.”

눈앞에 보이는 흑야방 현판을 보며 용무린은 한 차례 서늘하게 웃었다.

찾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요화원에 들어간 후 다가오는 기녀에게 손톱만한 은 조각 하나를 내민 후 질문을 던지자마자 흑야방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들어가 볼까?”

용무린의 칼날 같은 시선이 제법 두텁고 커다란 흑야방의 정문으로 향했다.

은밀한 침투?

훗. 허접한 흑도 방파 한 곳 들어갔다가 오는 일에 무슨 놈의 눈치를 보겠나?

“후읍!”

용무린은 불사신기를 끌어 올렸다. 두 주먹에 모았다.

그리고 힘껏 내질렀다.

***

“크하하하. 마셔, 마셔.”

“예, 방주님.”

“으하하하. 오늘 정말 기분 최고다.”

“역시 우리 방주님은 화통하다니까?”

“흑야방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흑야방주 엽초웅을 시작으로 야차조장과 몇몇 간부 수하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오늘이 흑야방의 수금일이었는데 그간의 노력 때문인지 꽤 두둑했다. 앞으로 더 잘하자는 의미에서 벌이는 술판인 셈이다.

“크하하하. 뭣들 하는 거야? 마시자.”

“감사합니다, 방주님.”

“들어, 들어.”

“…….”

모두가 웃고 떠드는 가운데 부방주인 노백인만 유일하게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오늘도 엽초웅의 명대로 수하들은 비룡문이 운영하는 객잔과 시전상회 그리고 비룡문의 깃발을 걸어둔 곳들을 쭉 돌며 시비를 걸고 왔다.

비룡문의 대응은 여전히 단호했지만 침착했다. 아직까지 엽초웅이 원하는 수준의 인명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불안했다.

제 아무리 그곳에서 도움을 준다고는 했지만 어쩐지 토사구팽을 당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만 자꾸 들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면 차라리 스스로의 힘으로 전면에 나설 것이지 왜 우리를 내세우는 걸까?’

그 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들은 공공연히 무한의 낮과 밤은 앞으로 흑야방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 뒤에 숨어 시답잖은 음모나 꾸미는 자들이 진짜 그렇게 하도록 지켜보고만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토사구팽.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솥에 삶기는 신세가 되는 법이니까.

‘이쯤해서 멈추어야만 해.’

그렇지 않는다면 정말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본능이 요란하게 경고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멈추지?’

노백인의 시선이 방주인 엽초웅에게로 돌아갔다.

한껏 기세가 오른 엽초웅은 두려움 따윈 없다는 듯 호탕하게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 했어도 소용이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멈출 수 있는 거냐고!’

노백인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쿠와앙.

무엇인가 박살이 나는 굉음과 함께 살벌한 비명이 연이어 들리기 시작했다.

“웬 놈이…… 커헉!”

“치, 침입자……큽!”

“네가 죽고 싶어 환장을 했…… 크아악.”

쐐애액. 쉬가각.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사위를 휘감을 때마다 달려들었던 흑야방도들의 팔이나 다리가 툭툭 끊겼다.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크아악!”

“우와악!”

수하들의 비명소리가 내실에까지 파고들었다.

꿈틀.

엽초웅의 눈두덩이 무섭게 요동쳤다.

“킁, 술 맛 떨어지게스리…….”

“제가 나가 보고 오겠습니다, 방주님.”

야차조에서 잔뼈가 굵은 놈 하나가 말석에 앉아 있다가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하여간 눈치가 젬병인 것은 형님이나 저 자식이나 똑같구나.’

노백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비명소리가 저렇듯 연이어 터지는데도 같은 흑도의 방파 중 어느 한 곳이 영역 다툼을 펼치려 들어온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인가?

“썅노무 새끼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죄 모가지를 꺾어 버린다고 전해라.”

“예, 방주님.”

시원스런 대답과 함께 녀석이 문을 활짝 열었다.

뻐억.

하지만 녀석은 문을 열기가 무섭게 뒤로 튕겼다. 술상 한가운데에 보기 흉하게 나뒹굴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가 당당하게 들어섰다.

“엽초웅이 누구냐?”

용무린이었다.

흑야방의 현관문을 박살내고 들어섬과 동시에 이곳 내실까지 일직선으로 오며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뭉개고 온 것이다.

철렁.

노백인의 심장이 한 차례 크게 내려앉았다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박살이 나버린 현관과 걸레처럼 나뒹구는 흑야방의 조직원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피가 온통 흥건했다. 그 사이로 잘려나간 수하들의 팔과 다리가 널려 있었다.

‘저, 저 두터운 현관문이 박살이 났다.’

‘뭔가 박살나는 소리는 딱 한 번 들렸어. 그렇다면 아까 그 굉음이 우리 흑야방의 현관문이 한 방에 작살나는 소리였단 말이야?’

‘문을 부수고 침입한 것이 불과 반각, 그 사이 저 많은 수하들을 깡그리 베어 넘겼단 말인가?’

‘대부분의 야차조원들이 업소 관리에 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스물이 넘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 짧은 사이 전부 쓰러뜨렸단 말이야?’

‘고, 고수다.’

무지하게 켕겼지만, 그래도 일류의 완숙 경지에 들어서 있던 엽초웅은 용기를 쥐어짜냈다.

“귀하는 대체 뉘시…….”

“아, 그 자식들 진짜 사람 말 못 알아먹네.”

용무린이 대뜸 엽초웅의 말을 잘랐다. 살짝 짜증이 담긴 목소리를 높였다.

“됐고, 엽초웅이란 놈이 대체 누구냐고?”

“보, 본인이오만.”

“오! 네가 엽초웅이야?”

“그, 그렇소이…….”

“반갑다. 그럼 죽어라.”

투웅. 쐐애액.

본인임을 밝히자마자 용무린은 엽초웅을 향해 번개처럼 짓쳐들었다. 풍뢰가 새하얀 빛을 뿜었다.

움찔.

엽초웅이 화들짝 놀라 곁에 놓아 둔 검을 잡아가는 순간,

서걱.

엽초웅의 목에 붉은 선이 쭉 그어졌다.

“이, 이런!”

“방주니-님!”

“죽어-엇!”

엽초웅의 머리가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목격한 야차조장과 야차조의 수뇌부들이 주제도 모르고 벌떡 일어났다. 곁에 놓아둔 무기를 동시에 집어 들었다. 용무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패애액. 튀잉. 쉬리리릭.

알아볼 수조차 없는 그 무엇인가가 날아와 야차조장의 심장에 콱 틀어박혔다. 그 옆에 있던 야차조의 수뇌부들의 목에는 그보다 더 은밀하고 질긴 것이 슥 감겼다.

쿵. 스각. 서걱.

바닥에 고개를 처박는 야차조장을 시작으로 야차조의 수뇌부 두 녀석의 목이 거의 동시에 미끄러져 내렸다. 소검비연의 위력이었다. 완전히 잘려버린 녀석들이 목에서 분수 같은 피가 길게 뿜어졌다.

덜덜덜.

‘사, 사신이다.’

노백인은 바들바들 떨기만 할 뿐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의 나이 열다섯에 뒷골목 세계에 뛰어들은 후 제법 많은 일을 겪었지만 지금과 같은 수준의 도살은 진정 처음 보는 것이었다.

씨익.

사신처럼 미소 짓던 용무린의 눈이 노백인에게로 향했다.

“넌 왜 안 죽인 줄 아냐?”

“…….”

노백인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저 사신이 트집을 잡아 자신의 목을 베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놈들은 다들 술 처먹고 웃고 떠들었는데 네 녀석만 얼굴에 걱정이 한 가득이더라고.”

피식.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저, 저는 잘…….”

“걱정이 한 가득이라는 말은 지금 네 놈들이 감히 벌이고 있는 짓거리에 너만은 회의가 있다는 뜻이라고 봤어 나는. 어때? 틀려?”

그 말에야 비로소 노백인은 상대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 비룡문이다. 비룡문에서 나온 거야.’

비룡문의 가장 강한 무력은 바로 추뢰검사 교진운과 소요일영 유백이다. 한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학식이 높은 사람들의 이름만 떠오를 뿐 저만큼 앞도적인 무력을 갖춘 신진고수의 존재는 떠오르지 않았다.

“흑야방 따위가 감히 단독으로 본문에 수작을 부리려 하지는 않았을 테고……. 어떤 새끼들이냐?”

꿀꺽!

용무린의 계속된 칼날 같은 질문에 노백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른 침을 집어 삼켰다.

“저, 그, 그것이…….”

“아! 이야기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런 놈들의 입을 아주 쉽게 열게 만드는 재주가 있거든.”

용무린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살벌한 말을 내뱉는 사이 외부에 나가 있던 야차조 세 놈이 복귀했다. 복귀한 야차조원 셋은 처참한 모습에 혼비백산했다.

“히익. 이, 이게 다 뭐야?”

“어, 어떻게 된 거야?”

“종흔! 왕호!”

세 놈은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탓에 정신을 잃은 동료들의 이름을 불렀다. 마구 몸을 흔들었다.

“도망가고 싶으면 어디 한 번 도망가 봐. 사냥감 쫓는 것도 나름 꽤 재미있거든.”

노백인을 향해 무책임한 말을 남긴 용무린의 입가에 흰 선이 쭉 그어졌다. 그 말을 끝으로 내실 밖으로 나섰다. 그대로 방금 복귀한 세 야차조원을 향해 짓쳐들었다.

“크크큭. 같잖은 놈들.”

“허억. 웬 놈이냐?”

“적이다!”

채앵. 챙.

주제 파악도 못하는 녀석들이 용감하게 무기를 뽑아들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쉬가악. 스각. 서걱.

“크아악!”

“커헉.”

“우와악!”

풍뢰가 허공에 그려낸 미려한 선에 스치자마자 그대로 팔다리가 툭툭 끊겼다. 목이 터져라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덜덜덜.

노백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자, 잔인한 인간.’

어떻게 된 게 비룡문에서 나온 사람 같지가 않다.

비룡문은 신주오가의 일원, 비록 진법과 기관지학으로 일가를 이루긴 했지만 당당한 정파다. 저렇게까지 잔혹하게 손을 쓰지 않는단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호의 이빨에 걸린 사슴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덜덜 떨기만 했다.

저벅저벅.

“안 튀었네? 혹시 성공할지도 모르는데 한번 튀어 보지 그랬어.”

나가자마자 셋을 처리한 후 바로 되돌아온 용무린은 실망이라는 듯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튀었으면 쫓아와서 죽였을 거면서.’

아직 죽지 않았지만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면 곧바로 죽는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발설해도 어차피 그들에게 죽겠지만…….’

노백인은 결국 결심을 굳혔다.

그들도 무섭긴 매한가지였지만,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다야 그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었다.

“성도 북문으로 나가 두 번째 마을인 유강촌 동쪽 끝에 외딴 장원이 하나 있습니다.”

“하여간 뒤가 구린 놈들은 어째 하나 같이 외딴 장원 같은 곳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라.”

“그곳이 그분들의 임시 거처입니다.”

“그분들?”

“아! 그, 그놈들…….”

황급히 말을 바꾸는 노백인을 보며 용무린은 풀썩 웃어 버렸다.

“정체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무공만은 정말 무섭습니다. 그, 그놈들이 엽 방주를 충동질했습니다. 시비를 걸어서 몇 사람 죽기만 하면 그 명분을 가지고 일을 도모하라고 말입니다.”

“명분을 세워 일을 도모하기만 하면 그 뒤는 자신들이 도와주겠다, 이 말이네?”

“예! 그, 그렇습니다. 추뢰검사 교진운과 소요일영 유백 두 분을 그놈들이 알아서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비룡문을 칠 때 비룡무단을 전담할 고수 역시 보내주겠노라 약조를 했습니다.”

비룡문을 칠 때!

노백인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이것 봐라? 대체 어떤 놈들이지? 왜 우리 가문을 노리는 거야?’

용무린의 눈에서 진한 살기가 스쳐 지났다. 더불어 그만큼의 궁금증도 솟구쳤다.

누굴까? 어떤 놈들일까? 이유는 뭘까?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유강촌 동쪽 장원이라……. 지금도 있겠지?”

“예, 예 그렇습니다. 엽 방주가 지시를 받을 때나 보고를 할 때는 언제나 그곳으로 가서 하곤 했습니다.”

들을 것은 다 들었다는 듯 용무린은 미련 없이 뒤로 돌아섰다.

‘후우, 살았나?’

노백인이 내심 긴 한숨을 내쉬는 순간 용무린의 입에서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왜 네 놈을 죽이지 않는지 알아?”

“……!”

“내가 이 바닥을 조금 알지.”

용무린의 입에서 천만 뜻밖의 말이 흘러 나왔다.

“밟아도, 밟아도 다시 되살아나는 잡초. 너를 비롯해 나머지 놈들까지 싹 쓸어버린다고 해도 오래지 않아 다른 놈들로 대체만 될 뿐 똑같은 일이 벌어질 터!”

반짝!

강렬한 힘이 실린 용무린의 시선이 노백인을 노려보았다.

“네 놈은 그래도 눈치가 있어 보이니 기회를 주겠다.”

“기, 기회?”

“네놈에게 흑야방을 맡긴다. 감히 본문에 이를 들이미는 것을 제외한다면 지금껏 하던 일을 계속해도 좋다.”

“저, 정말이십니까?”

“쓰읍!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찔끔.

‘무, 무슨 놈의 눈빛이?’

용무린의 눈빛이 한층 더 강렬해지자 노백인은 움찔 목을 움츠렸다.

“너희들을 충동질했던 놈들은 깡그리 정리될 거다. 그러니 염려 말고 하던 일을 하면 된다.”

“가, 감사합니다!”

쿵.

노백인의 머리가 바닥을 소리 나게 찧었다.

용무린이 히죽 웃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야.”

“예, 예?”

“날로 먹을 생각이었다면 곤란해. 보호비는 내야지.”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용무린의 말에 노백인은 뜨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흑도 방파에게 보호비를 뜯어내는 정파라니?

“삼 할!”

참 애매한 금액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액수!

“네놈들의 수익금 중 삼 할을 매달 보름 금룡전장에 전표로 맡겨라. 수취인은 삼절일학 용무린.”

‘사, 삼절일학 용무린?’

노백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껏 자신이 알기로 삼절일학 용무린이라는 사내는 천생 문사였기 때문이었다.

“알겠나?”

용무린의 계속된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노백인은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삼 할이라면 꽤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지만 흑야방의 존속과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 것을 생각하면 거의 공짜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쿵.

복종의 표시로 노백인은 다시 한 번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크크큭. 좋아, 믿어 보겠어.”

휘슷.

노백인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용무린은 이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

축시 초.

용무린은 유강촌 동쪽 끝에 자리한 외딴 장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흐음…….”

흑야방 정문을 때려 부수고 돌진했을 때와는 달리 용무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안에 몇 놈이나 있으려나?”

날이 밝으면 흑야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할 터,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바로 찾아오긴 했지만 이놈들은 감히 비룡문을 노릴 만큼 자신들의 능력에 자신이 있는 놈들이었다.

“두 분 의숙님들을 감당한다고 자신했으니만큼 최소 절정 완숙의 경지가 둘에서 셋, 그리고 비룡무단을 맡기 위한 고수 역시 도와준다고 했으니 일류급 고수 열에서 열다섯 정도가 되려나?”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적지는 않으리라.

“어떻게 할까?”

이대로 돌진?

아니면 잠시 후퇴했다가 두 분 의숙님들과 함께 다시 와야 하려나?

그러다가 문득,

“훗. 자존심 상해서 이거야 어디 원.”

용무린은 그만 풀썩 웃어 버렸다.

“절정 어림 둘 또는 셋에 일류 떨거지들 다 합쳐봐야 열댓 명이나 될 텐데 고민하는 꼴이라니!”

겨우 그 정도 수준의 적을 앞에 두고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자신의 모습이 기가 막혔던 것이다.

“진천수라도와 비연오식만 마음껏 펼칠 수 있을 정도의 내공만 복구했어도 내가 이런 기가 막힌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텐데…….”

아직도 일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내공 때문에 진천수라도는 일곱 초식 중 겨우 두 초식을, 비연오식은 1초식 하나밖에 펼칠 수 없다.

물론 제 위력도 낼 수 없다.

진천수라도와 비연오식 모두 강기가 주가 되는 무공, 하지만 지금은 내공의 부족으로 인해 겨우 검사를 뽑아내는 정도가 한계였다.

바로 그때였다.

반짝.

“후후훗! 내가 이러면서도 전생에 신마였었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는 말인가?”

자책과 함께 용무린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다시 한 번 전생의 나 자신이 누구였었는지를 떠올렸던 것이다.

“팔다리가 다 부러지고 내공 역시 한 호흡밖에 남지 않았던 상태에서도 운룡장의 다섯 애송이들을 상대로 달려들었던 나야.”

지금은 그에 비하면 몸도 멀쩡한데다 내공은 무려 일류의 경지에 오른 상태다.

“크크큭. 좋아!”

용무린의 시선이 굳게 닫힌 장원의 정문으로 향했다.

“이 안에 있는 쥐새끼들에게 사나이의 근성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도록 하지.”

혼자 한다. 지금 당장.

“언제나 당당한 사내, 그것이 바로 신마.”

후웅.

불사신기가 용무린의 두 주먹에 가득 고여 들었다. 불사신기를 가득히 머금은 용무린의 주먹이 힘차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정문 중앙을 그대로 때렸다.

쿠와앙.

두터운 나무로 짜인 장원의 정문이 그대로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박살이 났다. 그 사이로 용무린은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크게 외쳤다.

“모두 나와라! 면상이나 좀 보자!”

“웬 놈이냐?”

“감힛!”

후욱. 타다닷.

외침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두 녀석이 튀어나왔다. 용무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룡문을 노렸던 적인지 아닌지를 떠나 죽을 죄다.

“크크큭. 좋았어.”

휘슷.

용무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처럼 공간을 좁히는 와중에 멈칫 속도가 줄었다가 번개처럼 다시 움직였다. 개방의 화운장로와 소림의 일각대사마저 칭찬해 마지않던 엇박자의 운신이다.

패액. 피이잇.

엇박자의 운신에 두 녀석이 뻗어낸 검격은 헛되이 허공만 가르고 지나갔다.

“일단 두 놈…….”

서걱. 카각.

왼쪽에서 짓쳐들던 녀석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 오른쪽에서 검을 쳐냈던 녀석의 가슴이 쩍 갈라졌다.

“적이다!”

“이놈!”

일어난 순서대로 죽으려는지 차례차례 잘도 튀어 나왔다. 나오기가 무섭게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그 사이를 용무린이 홀로 휘저었다.

휘슷. 멈칫. 투웅. 서걱.

“크아악!”

휘릭. 타다닷. 쉬가악.

“커헉!”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엇박자의 운신에 검과 도가 부딪히지도 않았다. 상대는 한 차례 크게 허공을 할퀴는 것을 끝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쌔애액. 스가악.

풍뢰는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가볍게 상대의 목숨을 끊어냈다.

“크악!”

“허억!”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나뒹구는 의문의 적들. 하지만 계속해서 늘어나는 숫자에 결국 풍뢰는 적들의 검과 부딪히며 요란한 불똥을 피워 올려야만 했다.

따당. 피슷.

“커헉!”

채챙. 서걱.

“큽!”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

한 번의 부딪힘에 자세가 무너졌고 드러난 허점에는 여지없이 풍뢰가 박히고 그어졌다.

‘젠장. 예상보다 숫자가 많은데?’

일류급을 열에서 열다섯 명 정도 예상했건만 대충 눈에 보이는 녀석들만 계산해도 삼십 명이 훌쩍 넘어간다. 그렇다면 절정의 숫자 역시 예상보다 많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 위기다.

“크하하하!”

용무린은 되레 크게 웃었다.

사나이 인생에 후회란 없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오너라!”

서걱! 쉬각!

“크아악!”

“커헉!”

사자후와도 같은 용무린의 고함이 밤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깡그리 짓밟아 주마!”

따당. 카각. 채채챙. 서걱.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계속해서 펼쳐지는 엇박자의 운신, 그 사이를 타고 멋들어진 선을 그려내는 풍뢰의 끝에 핏방울이 망울망울 흩날렸다.

“허억!”

“우와악!”

그건 차라리 폭풍이었다.

차차창. 피잇. 카라락. 푸욱.

“크아악!”

“크읍!”

사자처럼 날뛰는 용무린을 감히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멈추어라!”

웅혼한 외침과 함께 내실 깊은 곳에서 네 줄기 그림자가 환영처럼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 떨거지들이 뒤로 쭉 물러났다.

“……!”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용무린의 눈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무심한 듯 깊이 가라앉아 있는 그 눈빛에 흠칫 놀랐지만 그래도 수뇌부들답게 질문부터 던져 왔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도대체 무엇 때문에 본 장에 난입해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냐?”

“이놈! 어서 말을 하지 못할까?”

피식.

‘꼭 저런 놈들이 있단 말이지.’

용무린은 풀썩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위기 보면 몰라? 너희 돌대가리들이 감히 비룡문을 노린 순간 다 죽었다고 보면 되는 거야 이 멍청아! 덤벼. 대가리를 예쁘게 둘로 갈라 주마.”

후욱. 서걱.

“크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무린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뜸 옆으로 몸을 날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놈의 목을 뎅겅 베어 버렸다.

‘흑야방을 꼬드겼던 놈들이 확실하군.’

그렇지 않다면 방금 전에 비룡문을 입에 담았던 순간 다른 말이 튀어 나왔으리라.

따당. 쉬각. 채챙. 푹.

“으아악!”

“커헉!”

그 옆에 있던 녀석 둘의 가슴에서 굵은 핏줄기가 튀었다. 물 흐르듯 연이은 풍뢰의 움직임에 목이 두 쪽이 나버렸다. 심장을 푹 찔렸다.

“이이, 이노-옴!”

“차아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거드름을 피우던 절정의 고수 중 두 명이 짓쳐들었다.

하지만,

채챙. 서걱.

“하아, 저 양심도 없는 새끼들 좀 봐!”

카라락. 푸욱.

“쫄따구들 순서가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새치기를 하고 싶으냐?”

용무린은 달려드는 절정의 고수 두 명을 맞상대하지 않았다. 주변에 가득한 하수들 속에 숨었다. 일단 숫자를 먼저 줄이는 것이 순서라는 듯 그들을 마구 베었다.

“커헉!”

“큭!”

거침없는 풍뢰의 움직임에 일류급 고수들은 속수무책 쓰러져야만 했다. 내공은 자신들과 비슷했지만 나머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이이, 비겁한 놈아-아!”

“어서 썩 내 앞으로 나서지 못하겠느냐?”

절정의 고수 두 사람이 이를 박박 갈았다.

그러나 작정한 듯 수하들만 공격하는 용무린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옛다, 이놈이랑 놀아라!”

푹. 휙.

“크으아아!”

그냥 베는 것으로 모자라 심심하면 칼침만 살짝 놓은 후 자신들을 향해 잡아 던진다.

“하나로는 부족하지? 여기 한 놈 또 간다!”

서걱. 휘익.

“우와아-악!”

다리 한 쪽이 허벅지 어림에서부터 뚝 떨어져 나간 수하가 날아 왔다. 방패가 되어 앞을 가로막았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대, 대체?”

“저놈 정말 비룡문에서 나온 인간 맞아?”

“어떻게 비룡문에 저런 놈이 있을 수가 있지?”

“믿을 수 없어.”

두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비룡문이라고 하면 분명히 정파에 속하는데 눈앞의 적은 그딴 것은 개나 주라는 듯 사파 혹은 마도나 흑도 문파의 닳고 닳은 인간들도 섣불리 하지 않을 짓을 잘도 하고 있다.

서걱. 휘익.

“으아아!”

푸욱. 휘익.

“크악!”

지금 이 순간에도 수하들 몸에 칼침을 놓거나 어디 한 군데 치명적인 곳을 벤 후 자신들을 향해 집어 던진다.

아득. 아드득.

“이노-옴!”

“으아아!”

파앙. 스파앙.

두 절정 고수가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쳤다. 공간을 접듯 거리를 좁혔다.

쉬이이익. 패애액.

용무린의 목과 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휘릭. 멈칫. 후욱.

생각지도 못한 엇박자의 운신에 베어버린 것은 결국 자신들의 수하들뿐이었다.

“크아악!”

“어, 어째서?”

척추가 둘로 잘린 수하는 길게 비명을 지르며, 허리가 두 쪽이 나 버린 수하는 자신들을 향해 원망하는 시선을 보내며 쓰러졌다.

“이, 이런!”

“으아아-아!”

미칠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바로 그 순간,

“알았다, 알았어. 상대해 줄게.”

적선이라도 해 주는 듯한 말과 함께,

버언쩍!

돌연 방향을 바꾼 풍뢰가 섬뜩한 빛을 뿜어냈다.

진천수라도의 첫 번째 초식 수라잔월이었다.

쫘아-악!

창공이 찢어지려는가?

허공에 하얀 빛의 선이 쭉 그어졌다. 그 선 뒤에 놓여 있던 두 절정 고수의 가슴과 허리에서 붉은 핏줄기가 툭 튀어 올랐다.

“크흐, 으아아-아!”

“커헉, 크아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을 직감한 두 절정 고수가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동귀어진이라도 하듯 내처 성큼 발을 내딛었다.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쌔애액.

허공에 피어올랐던 하얀 빛줄기가 돌연 급격한 각도의 초승달을 그려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두 절정 고수의 목을 거의 동시에 스쳐 지났다.

서걱. 서걱.

“……!”

“……!”

두 사람의 몸이 움찔하더니 그대로 굳었다. 몸통에서 머리가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빠박.

미끄러져 내리는 두 절정고수의 머리통을 용무린의 가차 없이 걷어차 버렸다. 머리통 두 개가 사이좋게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던 나머지 두 명의 절정 고수를 향해 날아갔다.

후욱.

용무린의 신형이 그 뒤를 따라 짓쳐들었다.

“다음은 네놈들 차례다-아!”

버언쩍.

다시 한 번 허공에 그려지는 수라잔월의 초식.

하지만 그 순간 용무린의 눈앞에서 검붉은 기운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쐐애액. 차차창!

“우웃!”

훌훌 뒤로 밀려나는 용무린의 심장 어림의 옷이 길게 갈라져 있었다.

‘마공!’

한데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뭐지? 왜 내 기억 속에 없지?’

잔혹하며 패도적인 검법이었다. 저 정도라면 절대로 이름이 없는 검법은 아닐 터, 신교의 교주이자 신마라 불렸던 자신이라면 틀림없이 알아차렸어야 하건만 단연코 기억 속에는 없었다. 그렇지만,

씨익.

“뭐, 좋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용무린은 풀썩 웃어 버렸다.

“이제야 제법 놀아줄 만하군그래.”

나는 옷이 잘렸지만 상대는 더 깊다. 가슴과 허리 어림 두 곳이 핏물에 촉촉이 젖어들어 있다.

‘문제는 가장 뒤에 있는 매부리코 놈이 아직도 검을 빼들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는 건데…….’

감히 이 몸을 앞에 두고 잘난 체라니!

설령 이 자리에서 콱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짓밟아 주고야 만다.

‘그것이 바로 신마의 자존심이지, 암!’

아끼고 아껴두었던 불사신기의 힘이 풍뢰에 가득히 고여 들었다. 벼락처럼 전면을 향해 뿜어졌다.

버언쩌저적.

진천수라도 두 번째 초식 수라광망.

풍뢰 끝에서 솟구친 검사는 촘촘한 그물이 되어 그대로 상대를 덮쳤다.

“키야아-압!”

후웅. 촤라락.

검붉은 기운이 다시 한 번 쭉 치솟았다.

하지만 수라광망의 초식에 휘말려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이겼……. 우읍!’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용무린의 눈두덩이 요동쳤다.

지금껏 움직이지 않고 있던 매부리코 사내의 전신에서 무지막지한 힘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타-앙! 휘류류-.

쇠로 만들어진 종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라광망의 초식이 깨어졌다. 용무린의 몸이 훌훌 뒤로 날렸다. 용무린의 움직임을 따라 섬뜩하리만큼 붉은 핏줄기가 길게 따라 붙었다.

용무린을 단숨에 튕겨낸 매부리코 사내가 만족스러운 듯 나직하게 웃으며 뇌까렸다.

“크흐흐. 너희 비룡문 같은 하찮은 곳을 어째서 그분께서 신경을 쓰시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왕 죽여 없애야 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는 것이 좋겠지.”

“킁, 내공 빨로 이득 좀 봤다고 잘난 척하기는! 퉷!”

용무린은 피가 섞인 침을 거칠게 내뱉었다. 풍뢰를 고쳐 쥐며 이죽거렸다.

“목과 가슴 그리고 하단전 부위에 갈라진 옷. 내공만 비슷했다면 넌 이미 뒈졌어 이 새끼야!”

꿈틀.

매부리코 사내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다. 주위를 돌아보며 씹어뱉듯 외쳤다.

“내가 허락한다. 그 무공을 써도 좋다.”

피식.

“하! 그 새끼, 뭐라는 거야?”

반짝. 반짝.

용무린이 풀썩 웃으며 이죽거리는 사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일류급 쫄따구들의 눈빛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오싹하리만큼 강렬한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기 시작했다.

“하아아!”

“차아!”

패애액. 쐐애액.

다시금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도살당하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차창. 피윳.

채채챙. 따다당. 스각.

진천수라도를 쓸 필요도 없이 빠른 속도와 무게까지 오롯이 실어낸 검격만으로도 흩뜨려지던 자세가 단단해졌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듯 맹렬해졌다.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이것 봐라?’

밀린다. 빠른 속도와 무게가 실린 칼질로는 빈틈조차 만들어낼 수 없다.

‘아까 저 두 놈이 사용하던 마공과 같은 건데?’

틀림없다. 그 마공이다.

‘내공 자체도 이상하고 검로도 기이해.’

어지간한 마공이라면 분명히 기억 속에 특징과 파훼법이 남아 있어야 하건만 전혀 없다. 대체 뭘까?

차창. 따다당. 피유윳.

용무린의 옷자락이 점차 걸레가 되어갔다. 그 사이로 핏줄기가 언뜻언뜻 보일 정도였다. 남아 있는 숫자는 아직도 열다섯을 넘어간다. 진짜 위기다.

그런데…….

“큿, 크하하하-하!”

용무린은 돌연 거친 광소를 터뜨렸다.

“……!”

“……!”

모두가 흠칫 몸을 떨 만큼 강렬하고 거친 광소.

얼음장 같은 외침이 뒤를 이었다.

“진짜배기를 보여 주지!”

후욱.

꺼지듯 사라졌던 용무린의 신형이 선두에 서 있던 녀석의 코앞에 환영처럼 나타났다.

수라무영보.

엇박자의 운신 이외에는 단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진신절기 중 하나.

“웃!”

“차앗!”

화들짝 놀란 녀석들이 재빨리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촤악. 서거걱.

한 발 먼저 목이 둥실 떠올랐다. 심장이 쩍 갈라졌다.

“이야아-하!”

“죽어엇!”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는 듯 적들은 계속해서 공격했다. 양 옆에서 검을 휘둘러 왔다. 예의 검붉은 기운이 훅 코앞으로 다가왔다.

흔들. 휘스슷.

다시 한 번 안개처럼 흐릿해지는 용무린. 가볍게 휘돌린 풍뢰 끝에서 새하얀 빛이 가느다랗게 뻗어 나왔다. 초승달을 닮은 선 하나를 그려냈다.

후두둑.

그 선에 걸린 모든 것이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이이, 이런!”

“대주님! 아이들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매부리코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뒤를 받쳐라!”

“알겠습니다, 대주님.”

훅. 후욱.

두 사내가 땅을 박찼다. 놀라운 속도로 용무린을 향해 짓쳐들었다.

“이노-옴!”

“목을 내놓아라!”

파아아. 쉬리릭.

검붉은 기운을 내포한 괴이한 검초가 용무린의 목과 단전 그리고 심장과 명치를 동시에 노렸다.

버언쩍. 촤아아-아.

순간적으로 방향을 뒤틀어낸 용무린의 풍뢰가 다시 한 번 새하얀 빛의 그물을 쏟아냈다. 진천수라도의 두 번째 초식 수라광망이었다.

씨익.

‘이 초식이 이놈의 밑천 전부인가?’

‘이것이 다라면 우리의 승리다.’

매부리코와 그 수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미 한 번 겪어 본 초식, 충분히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후욱.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코앞으로 밀려들던 초식이 꺼져버리듯 갑자기 훅 사라졌다.

‘뭐, 뭐지?’

‘초식은 살벌한 것에 비해 위력은 그저 그러던데, 내공이 다 떨어진 것인가?’

그런 생각이 스쳐가는 순간,

피쉬잇!

작살처럼 파고드는 새하얀 빛 하나가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비도?’

‘저런 바보 같은 놈!’

‘겨우 비도 하나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단숨에 튕겨낸 후 잘게 썰어 주마!’

두 사내가 내심 용무린을 비웃을 때였다.

투우웅.

마치 비파현 튕겨지는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무엇인가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주변을 통째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씨이잇. 씨시시시시-잇.

허초로 뻗어낸 수라광망의 자리를 메운 비연오식의 일초 비연난무였다.

‘위험하다. 비도 따위가 문제가 아니야!’

타닷. 후욱.

감히 맞받을 수 없음을 감지한 매부리코 사내가 그대로 신형을 위로 뽑아 올렸다. 크게 외쳤다.

“피해-애!”

움찔!

냉막한 인상의 사내는 피하지 못했다. 이미 너무 늦었다. 그냥 공격을 받아치는 쪽을 택했다.

“흥! 박살을 내어 주마-아앗!”

냉막한 인상의 사내는 초식에 내공을 더욱 집중했다.

따아앙!

소검 비연이 쏘아지던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위로 튕겨졌다. 하지만,

씨이잇. 씨시시시시-싯.

소검 비연 끝에 연결되어 있던 천잠사의 움직임은 전혀 멈춰지질 않았다.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그대로 사내를 스쳐지나 버렸다.

움찔!

“이, 이게 무슨…….”

후두둑.

사내는 말도 채 끝내지 못한 채 고기 조각이 되어 허물어져 내렸다.

튀이잉. 씨이웅. 씨이웅. 씨시시-싯.

튕겨 올라간 소검 비연은 그 탄력을 다시 추진력으로 삼아 매부리코 사내의 뒤를 쫓았다.

“흐아압! 꺼져랏!”

후우웅. 쉬각. 쉬가각.

괴이한 검초와 함께 검붉은 마기가 뭉텅 쏟아졌다.

소검비연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한꺼번에 싸잡아 후려졌다.

타아앙. 타타타타타-앙.

범종을 두들기듯 강렬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소검비연에 이어 불사신기를 가득히 머금은 천잠사가 검과 부딪히며 내는 소리였다.

쿨럭!

용무린의 입에서 큼직한 피 한 덩어리가 튀어 나왔다. 몸이 휘청 흔들렸다.

‘이 괴물 같은 놈, 이제야말로 한계구나!’

단숨에 그 사실을 깨달은 매부리코 사내가 작살처럼 떨어져 내렸다.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패애액. 쉬리리릭.

모든 공간이 매부리코 사내가 뿜어낸 검초로 가득 찼다.

어디로도 피할 공간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씨익.

“누구 근성이 더 좋은지 한번 해 볼까?”

용무린은 시리게 웃었다. 즉시 몸을 솟구쳤다.

휘이우웅. 촤아악.

초식을 펼칠 내력도 되지 않는지 풍뢰의 끝에는 겨우 아슬아슬하게 검사가 맺혀 있었다. 그러나 용무린은 거침없이 풍뢰를 휘돌렸다.

카앙. 카카카-앙.

풍뢰와 매부리코 사내의 검이 격렬하게 얽혀들었다.

꽉 다문 용무린의 입술을 비집고 굵은 핏물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피잇. 피잇.

채 흘려내지 못한 여력에 용무린의 몸 이곳저곳이 쩍쩍 갈라졌다. 그때마다 굵은 핏방울이 툭툭 튀어 올랐다.

“크크하하하! 이게 단가?”

온몸이 쩍쩍 갈라지고 있었지만 용무린은 호쾌하게 웃었다. 쉼 없이 풍뢰를 그었다.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 반드시 상대에게 되돌려 주었다.

타타탕. 따앙. 쉬리릭. 스각. 피윳.

매부리코 사내의 전신에도 그만큼의 상처가 생겨났다. 두 사람의 옷은 이미 넝마처럼 변했다. 그 사이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말해봐! 이게 정말 다냐고?”

촤아악. 푹푹푹. 취릿.

“다, 닥쳐라 놈!”

카카캉. 채앵. 쉬릭.

주거니 받거니 오고가는 검과 풍뢰.

용무린의 말마따나 이건 어느새 근성의 대결이 되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름도 모르는 마검초의 위험 따위 용무린은 더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요혈 부위만 철저히 보호할 뿐 그 외 다른 부위는 그냥 몸을 내주었다.

스걱. 푸웃.

용무린의 어깨에서 굵은 피가 튀었다.

“받아라, 이자까지!”

촤악. 푹푹푹.

한 칼 먹으면 반드시 그 이상 상대의 몸에 바람구멍을 내주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매부리코 사내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렇게 고전을 하리라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거다.

‘구대문파의 장로라 하여도 능히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거늘…….’

마공의 내력이 담긴 검초에 맞으면 마치 독에 당한 것과 엇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마땅했다. 정종의 내공에 전혀 다른 성격의 내공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녀석의 내공 때문에 나 역시 내공이 툭툭 끊기긴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저 녀석의 내공은 바닥이 났잖아! 남아 있다고 해 봐야 겨우 코딱지만큼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잘도 버틸 수가 있는 거야?!’

정말 이해 불가다.

차차창. 따앙. 쉬릭. 피윳.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한 칼씩 주고받았다.

그런데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되레 자신 쪽이다.

‘원래부터 내 내공이 훨씬 더 위였어. 게다가 지금 저 녀석의 내공은 검사는커녕 검기도 맺지 못할 정도야.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펄펄 날뛸 수가 있는 것이지?’

작은 상처들이었지만 하도 많이 입다보니 흘린 피가 적지 않다. 손발이 점차 느려질 정도다. 가랑비에 젖듯 파고든 녀석의 기이한 내공에 내력의 수발이 툭툭 끊긴다. 정말 미칠 것만 같다.

‘이걸 정말 믿어야 해? 나의 내공이, 그분께 전수받은 그 강력한 기운이 저따위 녀석의 미약한 힘에 흐름이 끊긴다는 것을?’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나?

매부리코의 뇌리에 생각지도 않았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올랐다.

‘안되겠다.’

삶과 죽음 앞에 비겁이고 나발이고 따위가 어디에 있겠나? 매부리코 사내가 크게 외쳤다.

“뭣들 하느냐? 모두 쳐라!”

넋을 잃고 구경을 하던 수하들이 화들짝 놀랐다. 일제히 용무린을 향해 짓쳐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용무린은 더욱 과격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오너라!”

풍뢰에 이어 소검비연마저 풀려나왔다.

“깡그리 짓밟아 주마!”

촤아악. 패애액. 씨시시싯!

검사는 진즉 사라졌고 검기마저도 곧 사그라질 듯 희미해졌지만 움직임만큼은 거침이 없었다. 성난 파도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크흡!”

“윽!”

낮은 비명들이 연거푸 주변에서 흘러나왔지만 쓰러지는 적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피식.

그것을 잘 알면서도 용무린은 풀썩 웃었다.

‘한 놈도 놓치지 않는다. 최소한 이곳의 모두를 깡그리 데리고 간다.’

그 순간을 위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불사신기의 내공을 모으고, 모으고 또 모으는 중이다.

피윳.

용무린의 등과 허리를 누군지도 모를 녀석의 검이 할퀴고 지나갔다.

촤악.

“커헉!”

그 대신 녀석의 복부를 큼직하게 쭉 찢어 놓았다. 허연 내장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크크큭. 줄넘기해 버리기 전에 빨리 집어넣어라.”

피윳. 스각.

이번에는 허벅지와 어깨에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두 곱은 받아 가야지?”

카캉. 쉬각. 푸욱.

“끄아악.”

“허으…….”

검을 쥐고 있던 팔 하나를 통째 잃은 녀석이 입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심장 어림이 뻥 뚫린 녀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노-옴!”

쉬이이익. 따아아앙!

쿨럭!

매부리코 사내의 검격이 용무린을 무던히도 괴롭혔다. 현격한 내공의 격차로 인해 충격이 훨씬 더 컸다. 한 번 부딪힐 때마다 굵은 핏물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오냐, 조금만 더 깊이 들어와라. 조금만 더 깊이.’

마지막 한 순간 폭풍처럼 모든 것을 갈라 주리라.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장부로 태어나 의와 협을 행하는 것을 무어라 책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느니라. 하나, 부디 순간의 충동으로 비롯된 너무 무모한 방법은 지양해 주었으면 한다.

요여립과 혈견사흉의 일로 인해 죽을 뻔했을 때 아버지 용대명이 해 주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헤죽.

용무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카캉. 피쉬잇.

그 사이 등허리에 한 칼 더 먹었다. 물론,

카라락. 스걱.

“크악!”

무인에게는 어쩌면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검을 들었던 팔 한 쪽을 통째 잘라내는 것으로 되갚아 주었다.

‘아직은 전생의 향기가 너무 짙습니다. 적을 앞에 두고 이것저것 재는 것이 죽을 만큼 싫습니다.’

새로운 삶을 인정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스스로를 신마라고 생각하는 면이 너무 강하다.

신마 진무량.

제 아무리 전생의 힘을 모두 상실했다고는 하나, 저런 허접 찌끄레기 같은 놈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죽어도 싫었다.

‘죽을지언정 등을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신마다.

“크아아앙!”

용무린의 입에서 사자와도 같은 외침이 터졌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불사신기의 힘이 폭발하듯 치솟아 풍뢰와 소검비연으로 흘러들었다.

‘깡그리 끌고 간다.’

수라광망과 비연난무를 동시에 펼칠 생각이다.

웅웅웅. 우우웅.

풍뢰와 소검비연이 가슴까지 서늘한 공명음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흠칫.

‘저, 저…….’

매부리코의 몸이 덜컥 굳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돌토돌 소름이 쫙 돋았다. 이제는 여덟 명밖에 남지 않은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 하나 같이 용무린이 뿜어내는 기세에 눌려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무린아! 뒤로 물러서거라!”

“용 시주! 보중하시오!”

“친구-우!”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몇 줄기의 그림자가 벼락처럼 달려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화운장로? 일각대사?’

거기에 더해 자신의 친구인 벽소추까지 보인다.

그 뒤로는 놀랍게도 백리세가의 장손인 백리천월과 상관세가의 말만 앞세우던 상관웅까지 있었다.

‘어, 어떻게?’

용무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꺼져랏!”

터어엉.

용무린의 앞에서 달려들던 녀석의 갈비뼈가 연화장력에 몽땅 주저앉았다. 낙엽처럼 훌훌 뒤로 날렸다.

즉사다.

화운장로가 용무린의 앞을 가로막으며 내려섰다.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괜찮으냐?”

“저, 저는…… 괘, 괜찮…….”

부끄럽게도 목소리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불사신기의 효용을 믿긴 하지만 상처가 너무나 많고 예상보다 깊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흘린 피도 놀라울 정도다.

“아미타불!”

파아앙. 스파파팡.

“크흡.”

“커헉!”

일각대사의 격조 높은 움직임에 휘말린 녀석들이 몸이 고무공처럼 뒤로 퉁퉁 튕겨졌다.

“이놈들! 감히 내 친우를 해하려 들다니! 차아아.”

벽소추의 도가 날카로운 기운을 줄기줄기 흩뿌렸다. 벼락처럼 사위를 휘감았다. 물론 그래 봐야 겨우 두 명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뿐이었다.

‘아, 그 새끼 낯부끄럽게 대사가 그게 뭐야?’

용무린은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 나 상관웅이 여기에 있다-아!”

퍼엉. 퍼퍼펑.

상관웅이 상관세가의 대표절기인 광풍십팔권을 정신없이 펼쳐냈다. 하지만 역시 입만 살아 있는 녀석이었다. 검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기이한 마검식을 사용하는 녀석들은 누구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피식.

‘에효, 주둥이만 산 놈 같으니……. 너는 인마, 화운장로와 일각대사만 아니었어도 바로 죽었어.’

그것이 정답이었다. 남아 있는 일류급 여덟은 누구도 상관웅의 아래가 아니었다. 용무린조차 처음 보는 마공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요오-오!”

“하압!”

따다당. 스팡. 퍼억.

차창. 퍼퍼퍽.

“크아악!”

“커헉!”

쇠 팔찌나 무쇠 수투가 없이도 검과 도를 수월히 상대하는 무식한 내공의 소유자 화운장로와 소림의 선장을 바람개비처럼 휘돌리는 일각대사의 손에 남아 있던 적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흔들.

그 모습을 보며 긴장이 풀린 것일까?

그간의 육체적 피로와 누적된 부상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용무린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무린아! 괜찮은 것이냐?”

“용 시주. 정신 차리시오.”

화운장로와 일각대사가 그 즉시 곁으로 다가왔다. 막 쓰러지려는 용무린을 부축했다.

휘슷.

그 사이 이미 틀렸음을 직감한 매부리코의 사내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저놈을 그냥!”

“용 시주가 더 급합니다.”

화운장로가 눈을 부라린 채 몸을 돌렸지만 일각대사가 만류했다. 목표로 했던 용무린을 무사히 구출했으니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삐이익.

어디선가 긴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차차창. 쉬가각. 후욱.

휘리릭. 타닷.

겨우 두 명 남아 있던 수하들 역시 호각소리에 맞추어 다급히 몸을 빼내었다. 벽소추와 백리천월 그리고 상관웅은 그들을 쫓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급합니다, 선배.”

“그래.”

화운장로가 즉시 용무린을 바닥에 뉘였다. 일각대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품속에서 마지막 하나 남아 있던 소생환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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