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그냥은 못가 (15/104)

6.그냥은 못가

본래 계획은 그것이 아니었다.

마음껏 무림을 활보하기에는 어차피 내공이 많이 부족하니 이참에 전력을 다해 불사신기 수련을 함과 동시에 무문으로써의 비룡문의 기틀을 잡을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수련도 돌봐드려야만 하고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에게도 가르쳐야만 하지.’

두 분 의숙들이야 비급을 넘겨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비룡무단에게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유성회류검법을 가다듬어 줘야 된다.

‘게다가 본문의 직계 식솔들에게 건넸던 상청무상검법 역시 미진한 부분을 짚어 줘야 한다고!’

솔직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나 자신과 비룡문 모두 잠을 줄여가면서라도 급격한 전력의 상승을 필요로 하는 시기다.

‘왜냐하면, 최후의 순간 언제나 믿을 수 있는 것은 외인의 힘이 아닌 나 스스로의 힘이기 때문이지.’

소림? 개방?

언제까지 그 두 곳의 힘에 기댈 것인가?

영원히?

‘흥! 웃기는 노릇이지.’

“소림과 개방의 도움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물론이다. 이 아비는 그래서 네게 더 고마운 것이다. 그토록 귀중한 시간을 네가 벌어준 것이 아니더냐? 이 기회에 내실을 다질 생각이다. 비룡문 전체의 기량을 끌어 올리는 데에 전력을 다할 참이다.”

나 참, 저렇게 말을 하니 더는 뭐라고 할 말도 없다.

‘당했다.’

거지와 땡중에게 완벽하게 졌다.

소림과 개방에서 고수들이 파견되어 나오는 것을 끝으로 천 뭐시기라는 박수무당에게 끌려가야만 한다.

‘오냐, 좋다. 이번엔 당해 준다.’

다음에는 어림도 없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제가 힘껏 돕겠습니다.”

“오! 그거 정말 고마운 말이구나.”

용대명이 반색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사신기 아니 호심결 수련에 대해 의문이 많았던 것이다. 용대명은 대뜸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궁금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호심결 수련할 때 말이다…….”

“예, 아버지. ……아! 그때는 말이죠, 이렇게 저렇게 하면 반드시 그렇게 되거든요? 그 순간에 요렇게…….”

“아하!”

부자간의 정겨운 담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

용대명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나오는 길.

‘이제 숙부님들과 사촌들 순서로 한번 쭉 돌아봐야 하겠지?’

용무린은 내원을 한 바퀴 쭉 돌 생각이었다.

그런데…….

“흘흘흘, 어딜 가려는 게냐?”

“허허허, 용 시주. 문주님께 이야기는 들으셨소?”

연화주선 화운과 일각대사가 불쑥 나타났다.

‘이 인간들을 확 그냥!’

한 차례 두 사람을 째려봤던 용무린은 이내 눈에 힘을 풀었다. 이미 용대명의 마음이 굳었기 때문이다.

“방금 들었습니다.”

“그래, 네 우려가 무엇인지 알기에 우리가 힘 좀 썼다.”

“머지않아 소림과 개방에서 제자들이 파견되어 올 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려하시던 비룡문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요. 그때 함께 천기자께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대답이야 고분고분하게 했지만 절대로 두 사람의 장단에 곱게 놀아날 생각은 없다.

“그럼 저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그래그래.”

“수고하시지요.”

그렇게 두 사람과 헤어진 용무린은 두 사람의 숙부와 사촌들의 방을 차례차례 방문했다. 다들 사무치도록 기다려 왔던 일이었는지 전력을 다해 용무린이 전해준 호심결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오, 고맙구나.”

“허허허, 이렇게 감사할 데가 있나?”

숙부님들께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용무린을 반겼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하게 강론되는 호심결을 오롯이 받아들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다행이다. 벌써부터 혈색이 좋아지고 있어.’

여타 신주오가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호심결이다.

용무린 자신이 익히고 있는 불사신기 원본에서 너무 과격했던 부분을 살짝 누그러뜨린 후 그로 인해 떨어지는 효율까지 보완했기에 충분히 음양쇠맥증을 누르고 내공을 쌓을 수 있는 놀라운 내공심법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일 년 안에 정말 가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내공수련도 좋겠지만, 없는 시간을 만들어 내서라도 상청무상검법의 초식을 몸에 익혀 놓으셔야만 해요. 마음이 이는 순간 자연스레 펼쳐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에요.”

“물론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사이 네 숙모가 흉을 볼 정도란다. 잠꼬대를 하면서도 검을 쥔 것처럼 손을 흔들어댄다고 말이다.”

“하하하. 마찬가집니다, 형님. 저는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그러다 어제 혼쭐이 났답니다.”

“허허허, 그러하냐? 우리 모두 마찬가지로구나.”

“맞습니다, 형님. 하하하.”

용대승 용대연 두 사람이 호탕하게 웃었다.

막연하게만 꾸었던 꿈이 현실로 이뤄진 듯 너무 행복하게 보였다.

‘됐어. 늦었지만 저만한 노력이라면 충분해.’

노력은 시간과 세월을 초월한다.

언제나 흘린 땀의 양만큼 대가를 내어 놓는다.

“그러면 초식의 숙지가 어느 정도나 되었는지 한번 보아 드리겠습니다, 숙부님.”

“정말 그래 주겠느냐?”

“물론입니다.”

“그러면 내가 먼저……. 잘 부탁한다.”

용대승이 가만히 목검을 들어올렸다. 최선을 다해 상청무상검법의 초식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용무린이 손을 보았기에 기수식 따윈 없었다. 시작부터 진짜 검초를 펼쳐내었다.

휙. 휘릭. 휘이익.

한숨이 나올 정도로 부족한 수준의 초식 전개였지만 그 안에는 집념과 부단한 노력의 결과가 가득했다. 적어도 순서와 방향성만큼은 완벽했다.

‘이대로 시간만 흐르면 되는 거야.’

내공의 부족과 살짝 틀어진 자세 따위 끝없는 노력과 교정으로 해결하면 되는 거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제 위력을 보이리라.

“자, 이 초식에서 검을 뻗어야 하는 각도는……. 다음 초식으로 넘어갈 때는 어깨를 부드럽게 이완시켜 힘을 빼셔야 해요. 그 이유는……. 사량발천근, 초식에 싣는 것은 내공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몸무게까지 적절히 실어야 해요 숙부님…….”

“아! 그렇구나. 내 그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고맙구나. 앞으로는 잊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

휙. 휘릭. 쉬이익.

열의가 대단했다. 듣는 즉시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이제는 내 차롄가?”

막내 숙부인 용대연이 앞으로 나섰다.

마찬가지로 열정적으로 초식을 펼쳐냈고 용무린의 자상한 가르침과 교정이 뒤따랐다. 친절하기 짝이 없는 가르침과 열정이 함께하니 용대승과 용대연 두 사람의 초식은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이야, 가르치는 일에 나도 꽤 소질이 있는걸?’

전생이었던 신마 시절에도 겪어 보지 못했던 일, 더불어 약간의 재미와 자부심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마교에 있을 때 제자라도 한번 키워볼 것을 그랬나?’

물론 그 시절이었다면 지금과는 가르치는 방법이 완전히 달랐을 것임은 생각지도 못하는 용무린이었다. 그때였다면 불사신기 배울 때는 이래야 한다며 전신의 뼈를 작신 부러뜨려 놓은 후 시작했을 거다.

“자, 이제 다음 차례는 사촌동생들인가?”

두 분 숙부를 시작으로 용무린은 사촌동생들까지 차례대로 방문했다. 그간의 성취를 확인한 후 마찬가지로 상청무상검법의 초식을 점검했다.

‘이제야 내 시간이로구나.’

불사신기를 동공의 형태로 항상 운용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가부좌를 틀고 하는 정식 수련만은 못하다. 용무린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앉아 불사신기의 수련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

이레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하아, 이 녀석은 대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두 분 친숙부와 사촌들, 비룡무단까지 고루 돌며 점검하고 가르쳤지만 오직 한 사람 용설화만큼은 예외였다. 뭐가 그리 바쁜지 찾을 때마다 없었다. 코빼기 한 번 보기 힘들었다.

“아가씨요? 지금 방에 안 계시는데요?”

“어딜 가셨는지는 저도 잘…….”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대답을 해 주지 않는 것인지 시비들조차 용설화의 행방을 몰랐다.

“할 수 없구나.”

용무린은 그대로 조연옥을 찾았다.

하지만,

“설화? 걔는 왜?”

“왜는요? 그녀석도 우리 비룡문의 일원이잖습니까? 직계들에게만 베풀었던 상청무상검법을 배워야지요.”

조연옥의 고개는 대뜸 가로저어졌다.

“됐어. 가르치지 마.”

“예?”

“종 공자에 비해 지금도 너무 과격 아니, 강한 애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아서라. 그러다 정말 시집 못가!”

“……!”

용무린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실망한 용무린의 표정이 마음에 조금 걸렸는지 조연옥은 지나가듯 슬쩍 입을 열었다.

“걔 요즘 바빠.”

“대체 뭘 하는데 그렇게 바쁜 건데요?”

씨이익.

조연옥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뭐하긴? 종 공자가 퇴청하는 시간에 맞추어 나가 함께하느라 그러지.”

“……!”

용무린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어머니와 자신 앞에서는 그렇게 싫다며 앙칼지게 돌아섰던 녀석이 이제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그렇다 이거지?’

기분이 참 알쏭달쏭했다.

부러움과 대견함 그리고 걱정까지 한꺼번에 섞여서 올라왔다.

‘에라, 모르겠다. 다 큰 녀석이 혼삿말이 오가는 상대와 좋은 시간 보낸다는데 알아서 하겠지 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어쨌거나 상청무상검법은 가르쳐야 해.’

어머니께서 만류하신다고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마공으로 힘을 기른 미지의 세력이 노리고 있는 시기, 강제로라도 가르쳐 놓아야만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게 되는 거다.

‘좋아, 시간을 바꾼다.’

지금까지는 오전에 아버지와 숙부님들 그리고 사촌형제들 순서로 돌았다. 주로 가문의 굴레에 얽혀 있던 남자들을 먼저 배려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용설화는 항상 저녁나절로 시간이 밀렸다.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조연옥의 목소리가 사뭇 은근해졌다.

“아들.”

“예?”

“아들은 좋아하는 여자 없어? 안 생겼어?”

“아, 아직…….”

용무린의 목소리에 일말의 불안함이 담겼다.

‘어째 어머니께서 하실 다음 말씀이 꼭…….’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짐작은 사실이 되었다.

“말만 해 아들. 우리 아들 좀 만나게 해 달라고 매파들이 줄을 섰어.”

“제가 좀 바빠서…….”

용무린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망치듯 조연옥의 방을 벗어났다. 그런 용무린의 뒤통수에 뜨거운 조연옥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엄마도 이젠 손주 봐야지-이!”

스파앙!

드디어 용무린에게서 천마탄신의 경신법이 펼쳐졌다.

신마 진무량 사후 70년.

용무린의 나이 스물하나, 도합 91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이는 신법이었다.

“와, 놀랐다.”

하마터면 생면부지 여인과의 혼사 이야기를 할 뻔했다.

“쫓아오시면 곤란해지겠지?”

조연옥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불사신기의 수련과 비룡문의 기틀을 잡는 일에 모든 생각이 꽂혀 있는 지금으로서는 혼인 따위 눈곱만큼의 욕심도 없다.

“나가자. 오늘 밤은 어디 조용한 곳이라도 찾아서 불사신기 수련이나 하자.”

조연옥이 방까지 찾아오는 것을 피할 생각에 용무린은 비룡문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마? 어떻게 알고 마중을 다 나오셨어요?”

생전 처음 보는 미인이 용무린을 향해 아는 체를 했다.

날아갈 듯 아름다운 아미와 호수처럼 맑고 커다란 눈, 살짝 드러난 어깨는 그린 듯 선이 예뻤으며 살결 또한 희고 매끄러웠다.

‘우와, 허리 선 좀 봐.’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큼 유려한 허리까지!

그야말로 인세에 보기 드물 만큼 완벽한 미인이었다.

“누구지? 날 아나?”

냉정함을 가장했지만 용무린의 목소리는 꿀처럼 부드러웠다. 날카롭게 떠졌던 눈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둥그렇게 반달을 그렸다.

“호호호, 정말 저를 몰라요?”

그런 용무린이 너무 재미있다는 듯 여인이 입을 가리고 환하게 웃었다.

어찌나 어여쁜지!

마치 한 떨기 난초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만 같았다.

쿵쿵쿵.

용무린의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었다.

“저예요, 소가흔. 오늘이 벌써 이레 되는 날이에요. 잊으신 거예요?”

“소, 소가흔?”

용무린의 입이 쩍 벌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자꾸만 되물었다.

“진짜?”

“예!”

“정말?”

“그렇다니까요! 왜요-오? 내가 너무 어여쁜가요?”

소가흔이 말꼬리를 살짝 올렸다. 용무린을 놀리듯 눈꺼풀을 빠르게 깜박여 보였다.

용무린의 고개가 힘없이 흔들렸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야!”

어쩌면 미환공에 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핏기도 없이 창백하던 그 얼굴에 저렇듯 생기가 돌 수 있어? 눈도 저렇게 크지 않았어. 입술도 지금처럼 막 덮치고 싶을 정도로 요염하지가 않았단 말이야!”

용무린은 즉시 불사신기를 끌어 올렸다.

감히 미환공 따위 저급한 술수를 부리는 요녀라면 당장에 모가지를 꺾어 버릴 터였다.

“그리고 가슴도……?”

마지막 확인을 하듯 용무린의 시선이 소가흔의 가슴 부위로 향했다.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는지 그 부위만큼은 이레 전과 똑같았다. 보릿고개에 달라붙은 뱃가죽처럼 앙상하기 짝이 없었다.

“……!”

뭔가를 깨달은 듯 용무린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진짜 너 맞구나 소가흔. 이야, 나도 정말 깜박 속을 뻔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곳이 여전히 겸손한 상태라 속지 않았어.”

진짜다. 그곳만 풍만했다면 완벽했다. 깜박 속았을 거다.

“후-우.”

용무린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슥 훔쳤다.

“하마터면 사고 쳤네.”

정말 요녀가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다면 대뜸 모가지를 작신 부러뜨렸으리라.

부르르.

“야 이 나쁜 인간아-아!”

화가 치밀 대로 치민 소가흔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어찌나 분한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용무린의 얼굴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지난 이레간 조사했던 합비에서의 일을 적어둔 얇은 책자였다.

“이거나 처먹엇!”

맞을 리가 있나?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얇은 책자를 용무린은 가볍게 낚아챘다. 척 펼쳤다.

“그냥 말로 하지. 힘들게 책자로 적어오긴……. 하여튼 수고했다. 고마워.”

성질을 내든 말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용무린은 이내 책자에 빠져들었다.

“으아아!”

거친 포효를 쏟아내며 소가흔은 뒤돌아섰다. 쿵쾅쿵쾅 발자국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사라져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

묵묵히 책자에 빠져 있던 용무린의 시선이 돌연 매섭게 빛을 발했다.

“운룡장이라…….”

흑백의 구분에 상관이 없이 지난 삼 년 사이 가장 많은 무사를 끌어들인 세력은 오직 한 곳, 신주오가의 일원인 운룡장뿐이었다.

‘그저 그런 흑도 방파의 이름 중 하나가 적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운룡장이 튀어나올 것이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운룡장이라…….”

오만가지 생각이 계속해서 스쳐 지나갔다.

운룡장이 진짜 마공을 익히고 있던 그 세력의 근거지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정녕 운룡장 이외에 다른 세력들 중 갑자기 인원이 늘어난 곳은 없나?’

하오문의 분타주가 직접 손을 써서 조사한 자료다.

신뢰해야 마땅하지만 선뜻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운룡장은 비룡문과 함께 당당한 신주오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짐작이 맞고 이곳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 비룡문을 노리고 있는 곳은 바로 운룡장이야.’

아니, 딱히 운룡장이 비룡문을 노리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마공을 익히고 있던 미지의 그 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운룡장 전체가 완전히 변질되진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가장 높은 수준의 수뇌부들 중 몇몇은 깊은 관계가 있어!’

비룡문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는 문주인 아버지 용대명의 집무실에 총관을 비롯한 모든 중요 요인들이 모인다.

‘운영하고 있는 객잔과 시전상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소작농들의 관리를 비롯한 모든 사안이 그때 논의되고 결정이 되지.’

인사적인 사안도 당연히 그때 안건에 오른다.

어느 객잔에 일손이 모자라니 사람을 더 뽑아야 한다는 등 결정과 조율을 하는 거다.

‘그때 봤던 놈들의 숫자가 무려 서른이 넘어.’

그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놈들을 한 개의 부대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어. 두 개 혹은 세 개의 부대가 더 있을 거야.’

수뇌부들이라면 자신의 휘하에 몇 명이 있는지 정도는 환히 꿰뚫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데 무려 백여 명이란 숫자가 늘었는데 모를 리가 없는 거다.

‘틀림없이 그 사실을 무마하거나 밀어붙일 능력을 가진 자가 수뇌부에 있을 거야.’

틀림없다. 이건 확신이나 같다.

‘물론 다른 경우의 수가 아주 없지는 않지.’

운룡장이 무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자 무사들을 많이 확보할 가능성도 있긴 하다. 안휘성에는 저 유명한 남궁세가가 버티고 있으니까.

‘문제는 남궁세가와 운룡장의 사이가 꽤 좋다는 거지.’

그에 관해서는 소가흔이 건네준 책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정주의 소가령이 현 무림의 정세에 대해 기록해 뒀던 책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생가문이 자신들의 오랜 근거지에서 떨쳐 일어섰지만 남궁세가는 전통의 명문답게 운룡장을 포용하고 배려했다. 함께 사이좋게 지냈다.

‘아무리 살펴봐도 운룡장 이외에 세력을 급격히 확장한 곳은 없단 말이야.’

더 조사해 봐야 정확해지겠지만 일단 현재로선 운룡장이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아이고 머리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조금 걷자.”

불사신기 수련도 급하지만 아무래도 이에 관한 생각을 먼저 정리해야만 했다.

***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어둠이 내려앉았다. 집집마다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치솟았다.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저마다의 집으로 향했다.

물론 연인들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일과를 마친 후 만난 연인들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들의 시간을 만끽했다. 연인과 함께 객잔이나 음식점들을 돌며 식사를 하고 강가와 호수를 돌며 사랑을 속삭였다.

쪼옥. 쪽쪽쪽.

“자기야 사랑해.”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자기야.”

으슥한 탓에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싶으면 여지없이 저딴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씨, 괜히 이쪽으로 왔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황학루가 코앞이었다.

누런빛의 장강과 푸른빛의 한수가 서로 만나 섞이는 이곳 어림은 그야말로 만남의 명소, 언제나 많은 연인들의 요람이 되어 주었다.

쪼옥. 쪽쪽쪽.

발길을 돌리는 곳마다 계속되는 소리.

‘미친다, 정말.’

생소한 감정이 용무린을 지배했다.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막연하지만 대단한 수준의 욕구불만이 감지되었다. 뭔가가 자꾸만 쌓이는 느낌이었다.

쪽쪽쪽. 쪼옥.

“아잉, 하지마-아. 거긴 너무 빨라.”

“자기, 오빠 못 믿어?”

“……믿어.”

“사랑해 자기야.”

“나도.”

아주 지랄을 한다.

‘오빠? 믿는다고? 이 세상에 믿을 빠는 오직 한 사람, 아빠밖에 없어 이 멍청아!’

뭘 어떻게 했기에 하지 마 거긴 너무 빠르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무린은 어둠속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미지의 여인에게 이렇게 외쳐주고 싶었다. 믿지 말라고, 남자는 다 늑대라고.

쪽쪽쪽. 쪼옥.

계속되는 입맞춤 소리.

“으아아!”

결국 용무린은 폭발하고 말았다.

“오빠-아? X까라 그래-애.”

그때였다. 어둠속에서 앙칼진 여인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용무린의 고함을 되받아쳤다.

“어떤 자식이 지랄이야? 뒈질래?”

“내가 나설게 자기. 자기는 내 뒤에 있어.”

바로 사내의 목소리가 뒤이었다.

웃기는 것은 앞서 튀어나왔던 앙칼진 목소리가 금세 코맹맹이 소리로 뒤바뀌었다는 거다.

“알았어, 오빠. 나는 오빠만 믿을게.”

“염려 마. 전엔 네게 기회를 빼앗겨서 그렇지, 이 오빠도 나름 한 주먹 한다고!”

“오호호홍. 알지 우리 오빠 강한 거.”

아주 잘들 놀고 있었다.

부르르.

용무린의 주먹이 힘껏 쥐어졌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내 지금껏 이유 없는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건만.’

오늘만큼은 그 전통을 깨뜨리게 될 것 같았다.

“어이, 자네. 나 좀 보지?”

계집이 등 뒤에 있어서인지 사내가 제법 대차게 나왔다.

“자네가 방금 X까라고 지랄한 장본인인가?”

두 팔을 걷어붙인 후 ‘오랜만에 힘 한번 써 볼까?’ 하는 동작으로 거들먹이며 나섰다. 눈꼴이 너무 셔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에라 이 썅!’

후욱.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힌 용무린의 주먹이 쭉 뻗어나갔다.

바로 그 순간,

“오빠 비켯!”

피쉬잇.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사내의 뒤에서 새하얀 빛이 쭉 솟구쳤다. 번개와도 같은 빠르기로 용무린의 손목을 노렸다.

‘쾌검?’

빠르긴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속도다.

‘싸가지 없는 계집, 혼쭐을 내준다.’

주먹은 바로 수도가 되었다. 직선으로 돌진하다가 변화하기 도저히 불가능한 각도인 횡으로 깔끔하게 그어졌다.

타아-앙! 탱강.

쇠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손목을 노리고 쏘아졌던 검은 어이없게도 중단이 툭 끊어져 버렸다.

“아악!”

쾌검일초를 출수했던 앙칼진 목소리의 주인공이 비명을 내질렀다. 반 토막이 난 검을 땅에 툭 떨어뜨렸다.

휘슷.

“감히 내 손목을 노려? 계집이니 살려는 주마. 딱 한 대만 맞자.”

쭉 펼쳐진 손바닥이 계집의 뺨으로 향했다.

뽀뽀 좀 요란하게 했다고 뼈를 부러뜨리기에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고 적당히 따귀 한 대 때리는 정도에서 봐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뚝!

용무린의 손은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설화야!”

“오, 오빠?”

어둠속에서 튀어 나왔던 싸가지 없는 계집의 정체는 놀랍게도 용설화였다.

“네, 네가 왜 거기서 튀어 나와? 그리고 저 덜떨어진 놈은 또 뭐고?”

“자, 자기 아니 설화 소저. 이분께서 소저의 오라버니 되시는 겁니까?”

“……예.”

질문은 용무린이 먼저 던졌지만 용설화는 덜떨어진 녀석에게 먼저 대답을 했다.

울컥.

그게 다시 한 번 용무린의 비위를 건드렸다.

“넌 빠져 이 새끼야.”

철퍽.

오지게 뺨 한 대를 얻어맞은 사내가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너부러졌다. 용설화가 호들갑을 떨었다.

“자, 자기야. 정신 차려 봐 자기야-아.”

그러다가 용무린을 향해 성질을 버럭 냈다.

“무식하게 왜 사람을 때리고 그래?”

“뭐? 무, 무식?”

기가 막혔다.

“친오빠에게 다짜고짜 칼질을 한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무시-익?”

용무린의 절규를 용설화는 듣지도 않았다.

겨우 뺨 한 대에 정신을 놓은 애송이를 흔들고 깨우고 요란법석을 떨었다.

“자기야. 정신 차려 봐 자기야. 내가 잘못했어. 응? 제발 죽지마-아.”

“헐.”

뺨 한 대 맞고 정신을 잃었을 뿐인데 죽지 말라고까지 하다니. 거기에 더해 본인이 잘못했단다.

‘친오빠에게 대뜸 칼질한 것이나 반성해라 이 녀석아.’

용무린은 어둠을 꿰뚫어 볼 만큼의 내공도 아직 안 된다는 사실이 새삼 아쉽기만 했다.

‘최소한 초절정 수준의 내공만 있었어도 어둠을 꿰뚫어 보고 저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

거기까지 생각하던 용무린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어둠까지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다면 아까 들었던 ‘거긴 너무 빨라’에 관한 짓거리를 목격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뺨 한 대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예 목줄을 끊어 버렸겠지.’

항상 아쉽기만 했던 내공의 부족이 지금은 되레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 준 셈이다.

그렇게 일다경이나 지났을까?

용설화의 정성이 갸륵했는지 더럽게 허약해 빠진 녀석의 정신이 곧 돌아왔다.

“끄응. 자, 자기!”

오만상을 찌푸리며 겨우 눈을 떴다.

“흐엉. 자기야-아. 난 자기가 죽는 줄 알았어.”

“내가 자기를 두고 죽을 리 있어? 못 죽어. 절대 안 죽어. 그러니까 울지 마 자기야.”

부글부글

지켜보던 용무린의 가슴이 터질 듯 끌어 올랐다.

‘그놈이 아니라 내가 속이 터져 죽겠다, 이것아.’

용무린은 하도 기가 막혀 두 사람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주섬주섬.

그래도 정신을 차리자 녀석이 제법 사내다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 용무린 앞에 무릎을 척 꿇더니 인사와 함께 자신을 밝혔다.

“형님. 이렇게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종씨 가문의 막내 일명이라고 합니다.”

“종일명?”

“예, 형님.”

들어 본 기억이 났다.

‘어머니께서 매파 이야길 하실 때였었지?’

벌써 세 사람이나 한림원의 학사를 배출한 무한의 명문 가문인 종씨 가문의 사내.

‘이 녀석 역시 현재 대과에 급제 후 5년 만에 인근 현인 효감의 현승(縣丞:현령의보좌관)으로 재직 중이었다고 했었던가?’

녀석에 대한 정보까지 좌르륵 떠올랐다.

‘아니,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따로 있지.’

“너희 그 안에서 뭐했어?”

움찔!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떨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용설화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새빨갛게 붉어졌고 종일명은 질끈 눈을 감았다.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 종일명의 눈 밑에 깊은 그늘이 생겼다.

“이런 썅!”

철퍽.

“허으…….”

“자기야-아!”

녀석은 한 번 더 기절해야만 했고 용설화는 다시금 ‘내가 잘못했어’를 연발했다.

***

어느새 휘영청 둥근 달이 떠올랐다.

용무린은 용설화를 앞세워 함께 집으로 향했다.

불사신기의 내공까지 실어 폭풍처럼 쏟아낸 잔소리에 용설화의 어깨는 땅에 닿을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어차피 성혼하기로 한 녀석들인데 내가 너무 심했나?’

오빠인 자신이 결혼을 하면 곧바로 잔치를 벌이기로 한 사이인데 너무 몰아붙였나 싶다.

툭.

용설화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좀 부실해서 그렇지 애는 싹싹하고 괜찮더라.”

용설화는 기가 막혔다.

‘아니 그럼 한 손으로 목을 쥐고 번쩍 들어 올렸는데 무공도 없는 평범한 사내가 싹싹해질 수밖에 없지. 그럼 거기서 개겨?’

그랬다간 단숨에 목이 꺾여 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검초를 펼쳤던 터라 내공을 많이 싣지는 못했다지만 적수공권으로 자신의 검을 부러뜨려버린 실력의 소유자가 아니던가?

‘그렇지 않아도 요사이 의숙부님들께서 수련에 바빠 얼굴도 보기 힘든데 이참에 오빠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 볼까?’

검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오라버니가 세상에서 말하는 천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면서생에서 무예의 길에 뛰어든 지 이제 불과 백 수십여 일, 자신의 오빠는 그 짧은 시간 만에 운적풍을 박살내 버렸다.

“오라버니!”

“응?”

“나 있지, 부탁 하나만 해도 돼?”

피식.

옅은 미소와 함께 용무린은 나만 믿으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렇지 않아도 ‘거긴 너무 빨라’ 와 같은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할 생각이었어.”

움찔! 화르륵.

용설화가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었다.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뭐해? 늦었어. 빨리 가야지.”

“휴우.”

깊은 한숨과 함께 용설화의 발이 겨우 떼어졌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용무린의 입이 다시 열렸다.

“조금 늦긴 했는데, 하여간 집에 가면 호심결과 상청무상검법 가르쳐줄 테니까 수련 좀 하고 자라.”

“알았어.”

기다렸던 일인데 용설화의 기분은 바닥이었다.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용무린 때문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지?’

성산지약을 위해 떠나기 전과 완전히 반대로 바뀌었다.

언제나 학처럼 고고하며 구름 속 신선을 연상케 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내가 되었다.

“……!”

용설화는 그런 자신의 오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용무린이 고개를 돌렸다.

“왜?”

“아, 아니야. 아무것도.”

피식.

“녀석하곤…….”

“…….”

“걱정하지 말라니까? 어머니께 ‘거긴 너무 빨라’ 같은 말을 들었다고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오빠가 바보니?”

울컥!

용설화의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엇인가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이 바보 멍청아-아!”

팍팍팍팍팍.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은 용설화가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

비룡문에 당도하자마자 용설화는 자신의 방으로 휭하니 들어가 버렸다. 늦었지만 집에 도착하면 수련부터 하자고 했던 말을 잊어버린 것이다.

“하아, 지금 하루가 급한데 왜 저런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용무린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화운장로와 일각대사가 득달같이 달려 나왔다.

“흘흘흘, 녀석아. 어딜 이렇게 늦게까지 쏘다니느냐?”

“오셨소이까, 용 시주.”

“……!”

용무린은 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화운장로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드디어 개방총타에서 연락이 왔느니라.”

“숭산에서도 소식이 도착했소이다.”

“개방의 대표 무력단체인 정의개 일개 조 삼십 명이 비룡문을 향해 출발했다고 한다.”

“소림에서는 삼십육방 출신의 무승 열여덟이 하산을 하였다고 합니다. 허허허.”

용무린이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강하게 압박을 가했다.

“그러니 이제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시지요. 천기자께…….”

참 학습 효과가 없는 인간들이다.

‘그냥은 절대로 못가지.’

내 대답은 한결같다.

“싫은데요?”

“왜왜? 도대체 왜 싫은데?”

“너무하오, 용 시주.”

두 사람이 용무린을 잡아먹을 듯 들들 볶았다.

화운장로가 짜증내는 거야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일각대사마저도 볼멘소리를 했다. 이번에는 정말 적지 않게 실망한 듯싶었다.

그래도 용무린은 한결같았다.

그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라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최대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툭 내뱉었다.

“당연한 것 아니에요?”

“……?”

“출발했으면 뭘 해요. 아직 도착 전이잖아요. 숭산과 개봉이 예서 하루 이틀 거리도 아니고……. 그 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요? 마공 익힌 그 시답잖은 자식들이 이때다 하고 몰려오면요? 그때는 어떻게 하고요?”

듣고 보니 너무 당연하고 나름 논리도 정연한 탓에 두 사람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그래도…….”

“아무리 그러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본문이 확실히 안전하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아무대도 안 갑니다. 놈들이 쳐들어오면 그놈들 깡그리 쓸어버려야 하니까요.”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린 화운장로의 말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 후 용무린은 매정하게 돌아섰다. 휘적휘적 내원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 저걸 콱 그냥!”

망연자실 서 있던 화운장로가 뒤늦게 분노를 터뜨렸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에라도 쫓아가 연화장법을 뿌리고 싶은 모양새였다.

“휴우. 어쩔 수 없지요.”

“뭐가 어쩔 수 없어? 내 이놈의 자식을 당장…….”

“참으십시오, 선배.”

“여기서 뭘 어떻게 더 참아? 일각 자네는 천기자 선배께서 당장 데리고 오라고 하셨던 말 생각 안 나?”

“잊을 리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때?”

“예.”

대답과 함께 일각대사는 품속에서 푸른 주머니와 붉은 주머니 하나씩을 꺼내 들었다.

“아하!”

탄성을 발하는 화운장로의 머릿속으로 천기자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어. 정말 지독한 어둠이야……. 하늘과 땅에 피 냄새가 가득해. 쓸 만한 놈이 있어. 그놈이 움직이면 바람이 불거야. 피 냄새를 씻어낼 강력한 바람이……. 당장 데려와. 망가지기 전에.

“그게 있었지? 푸른색부터 펼쳐보라고 했던가?”

“분명히 그랬었지요. 속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찾아들면 그 때마다 하나씩 펼쳐보라고 말이지요.”

“보자. 내 속이 지금 터지려고 해.”

“예.”

일각대사가 푸른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종이쪽지를 활짝 펼쳤다.

“……!”

“……!”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쪽지에는 용사비등한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즉순천(忍卽順天)

참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과연 천기자.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마치 내다본 것 같지 않은가?

화운장로와 일각대사는 천기자의 당부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젠장.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소림의 제자들과 개방의 의협들이 당도하면 용 시주도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늦어도 이십여 일, 그 정도만 기다리면 충분할 듯합니다.”

“그래그래.”

***

인고의 시간은 하루하루 잘도 지나갔다.

화운장로가 아무리 못마땅한 시선으로 노려보아도 용무린은 헤실헤실 웃으며 자신의 할 일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이뤄갔다.

“하아아!”

“이야아합!”

쌔액. 패패액. 휘릭. 휘리릭.

묘시 초. 아직 사위가 어둠에 휩싸여 있었지만 비룡무단 삼십 명 전원은 구슬땀을 흘리며 유성회류검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잘했어요. 에이, 그게 아니라니까요. 우진 아저씨는 왜 자꾸 거기서만 틀려요. 부드럽게 휘감은 후 짧게 툭 끊어 치는 거라고요.”

그 중심에 용무린이 존재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임준 아저씨. 각도가 틀렸어요. 그렇게 어정쩡하게 들어 올리면 방어도 공격도 안 된단 말이에요. 방어초식을 펼 때는 방패처럼 확실하게 세워주시고 공격으로 변환할 때는 부드럽게 사선으로…… 아셨죠?”

“예, 공자님. 감사합니다.”

용무린은 번득이는 시선으로 비룡문단의 연무를 도왔다. 잘한 사람에게는 칭찬을, 틀린 사람에게는 교정과 격려를,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두루 짚고 넘어갔다.

“하아아!”

“차앗!”

일류에서 이류까지 다양한 무위를 지니고 있던 단원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목이 터져라 기합을 발했다.

모두가 전심전력으로 수련에 임했다. 자신들 인생에 어쩌면 두 번 다시없을 기연을 맞이했음을 모두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앞으로 한 달. 그 정도만 더 바짝 가르치면 기초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다져지겠네.’

용무린은 불과 백 수십여 일 만에 절정을 바라보는 일류고수였던 운적풍을 박살을 내버린 천재, 그런 그가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전진의 검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한 달 뒤부터는 스스로에게 맡겨도 될 거야.’

마치 옛 전진의 장문인이 살아 돌아와 직접 사사하는 것처럼 검법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며 가르쳐주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패애액. 쐐액. 쉬가각.

피쉬싯. 피이잇.

바람을 가르는 검 소리가 점점 더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쾌검을 기반으로 하지만 부드럽고 아름다운 검로를 따라 하나둘씩 검기가 솟구쳤다. 조장들 중에는 벌써 검사를 뽑아내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하아아-아!”

“이야-아합!”

기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스스로의 성취에 흥이 오른 것이다. 검법을 수련하기 시작한 지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못한 시간이었지만 쏟아 부은 노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개별 수련에 들어가세요. 초식을 완벽하게 숙지하신 분들은 눈을 감고도 가볍게 펼칠 수 있도록 숙달에 초점을 맞추셔야 하고 아직 초식이 완벽하지 못한 분들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예, 공자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공자님.”

“감사합니다, 공자님.”

비룡무단의 연무가 끝나면 그 다음 차례는 아버지를 시작으로 숙부님들과 사촌동생들을 차례차례 방문했다.

“어휴, 아버지.”

“허허허, 왔느냐?”

“벌써 일어나신 것은 아닌 듯하고, 또 밤 새우셨어요?”

“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구나, 허허허. 괜찮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구나.”

용대명뿐만이 아니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용대명을 시작으로 두 분 숙부님과 사촌동생들 모두 호심결 수련에 밤 지새우기를 밥 먹듯 하고 있었다.

“자꾸 그러시면 저만 어머니께 혼나요. 그렇게 어머니를 외롭게 하시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그게 말이다…….”

“……?”

겸연쩍은 듯 살짝 얼굴을 붉히던 용대명의 목소리에 돌연 강한 자신감이 걸렸다.

“오히려 더 좋아한단다.”

“더 좋아하신다고요?”

“허허허, 호심결 수련 덕인 듯한데, 하여간 기운이 어찌나 넘치는지 어디 원……. 아침에 밥상이 완전히 달라졌단다. 하! 하! 하! 하! 하!”

헐! 호심결로 회춘부터 한 듯싶다.

덥석.

“고맙다, 무린아.”

용대명이 용무린의 두 손을 콱 움켜쥐었다. 뜨겁게 고마움을 표했다. 도대체 어떤 점이 고맙다는 것인지 이 시점에서는 살짝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뭐 궁금한 것은 없으셨어요?”

“그래. 네 말대로 마치 외공을 단련하는 것처럼 육신에 적절한 충격을 가하고 수련에 임하니 더욱 진전이 빠르더구나. 네 숙부들과 서로 번갈아가며 수련을 도와주는데, 네가 말한 단계를 착실히 돌파해 나가고 있다.”

모두 올곧은 선비들인지라 다들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은 달랐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철천지원수가 아닌가 싶을 만큼 박달나무 몽둥이로 사정없이 서로를 후려 팼다.

그것이 바로 비룡문의 직계들이 호심결을 수련하는 방법이었다. 용무린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효과가 너무 좋아 지금은 누구도 거리끼는 사람이 없었다.

“잘하셨어요, 아버지.”

“허허허. 고맙구나.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단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서 곧 한계에 부딪힐 거예요. 충격만으로는 호심결의 내공이 본래의 효용을 발휘할 만큼의 상처를 입지 않을 테니까요.”

“오오, 그렇구나.”

“그때는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직접 도와드릴 테니까요. 아셨지요?”

“당연하지. 그런데…….”

용대명의 눈이 살짝 가느다래졌다.

“대체 어떻게 돕는다는 게냐?”

용무린의 조언을 좇아 강한 충격을 주느라 지금도 두 아우들과 함께 서로의 몸을 몽둥이로 두드리는 중이다. 그런데도 호심결이 본래의 효용을 발휘하지 못할 만큼의 상처를 입지 않을 순간을 돌파하려면…….

씨이익.

“당연히 더 강한 충격을 필요로 하겠지요?”

움찔.

용대명이 흠칫 몸을 떨었다. 용무린의 목소리가 대수롭지 않게 이어졌다.

“하지만 적절하게 세기를 조절해야만 하는데 그건 저밖에는 알지 못해요.”

“그, 그러냐? 아, 알았다.”

수련의 진도를 조금씩 늦추어 볼까?

용대명의 뇌리에 슬슬 요령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 줄 용무린이 아니었다.

“기대하세요, 아버지. 제가 반드시 아버지와 숙부님들 그리고 조카들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게끔 만들어 드릴게요.”

그것이 용무린의 최종목표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비룡문, 비록 이제야 무가로의 변신을 시작했지만 오래지 않아 결국 이뤄낼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반드시.’

10년, 늦어도 그 정도면 된다.

“자, 가시죠. 아버지. 상청무상검법의 초식과 운용 점검해야 할 시간이에요.”

“그래, 알았다. 가 보자꾸나.”

용무린을 따라 용대명도 벌떡 일어났다.

용무린의 미소가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거부할 리는 없었다. 언제나 바라 마지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룡문의 웅비는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

아침 식사 후에는 벽소추의 수련도 도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오늘은 반드시 네 옷깃을 길게 찢어내고야 말겠다.”

도를 뽑아든 벽소추의 얼굴에 대단한 결의가 엿보였다.

“훗. 벽력십이도의 깨달음이 조금 더 깊어졌나 보지?”

“네가 한번 겪어 봐라.”

“좋지.”

스릉.

풍뢰를 뽑아들자마자 까딱였다.

“들어와. 언제든.”

“타핫!”

허례허식 따위 필요 없음을 진즉 깨달은 벽소추가 그대로 땅을 박찼다. 벽력도가의 성명절기인 벽력십이도의 초식을 뿌렸다.

쐐애액. 피시시시싯.

도기를 잔뜩 머금어 마치 정말 뇌전으로 보이는 도초가 용무린을 향해 뚝 떨어져 내렸다.

씨이익.

시린 미소와 함께 용무린은 벽소추가 뿌린 도초를 하나하나 받아쳤다. 일부러 그러는 듯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깡그리 쳐냈다.

타앙. 차차창. 카캉. 카-앙.

‘좋군. 정말 많이 좋아졌어.’

용무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처음 도를 맞댔을 때의 벽소추와 지금의 벽소추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허례와 허식 따위 이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카앙. 카앙. 카아-앙.

가볍게 흩뿌리는 듯한데도 한 수 한 수가 묵직하다.

내공의 증가 때문이 아니었다. 사량발천근의 묘리, 용무린이 알려주었던 그 묘리를 오롯이 채득한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직도 너무 정직해.’

허례와 허식만 사라졌을 뿐 초식 자체는 너무나 고지식하다. 때에 따라 적절히 허초나 시간차 전개와 같은 노림수가 있어야 하지만 고집스럽게 대학을 달달 외우려는 학사의 성정처럼 올곧기만 했다.

그 결과는?

차창! 퍼억.

“큽!”

오래지 않아 다시 두들겨 맞는 신세가 되었다.

“오늘의 교훈!”

카앙! 빠바박.

“큭. 크윽.”

“정직한 놈은 세상 살기가 힘들다! 허초와 시간차 초식 전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오늘부터는 그걸 염두에 둬야 해.”

퍼엉. 퍼퍼펑. 퍼억.

“제, 제엔장. 커헉!”

원앙각에 이은 섬전퇴 연환에 벽소추는 다시금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오늘 수업 끝! 수고해 친구,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우라질!”

털썩.

바닥에 너부러진 벽소추는 바람처럼 사라지는 용무린에게 인사 대신 욕설을 쏟아냈다. 벽소추 정말 많이 달라졌다.

‘백리천월은 오늘도 내공수련인가?’

벽소추와는 달리 백리천월은 아직 용무린을 향해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나이가 두어 살 위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비룡문의 분위기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침식을 잊을 정도로 내공수련에 매달렸다.

‘허구한 날 기루나 찾아다니는 상관웅 그 멍청이보다야 백번 잘하는 짓이지 뭐.’

백리천월에게는 신경 끄기로 했다.

용무린이 그 다음에 찾아간 것은 바로 용설화.

호심결을 점검한 후 상청무상검법의 초식을 교정하고 실전비무로 바로 넘어갔다.

‘크흐흐. 감히 이 오라버니에게 다짜고짜 검을 뿌렸겠다?’

벌써 이십여 일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용무린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곱씹었다.

“덤벼!”

“흥! 오늘은 만만치 않을걸?”

타닷. 패애액.

비룡문의 직계와 방계인 사촌들 중에서 무공수위만 따지자면 단연코 용설화가 발군의 실력을 지녔다.

차차창. 따땅. 카라락.

교진운과 유백 두 분 의숙에게 어려서부터 사사한데다 재능 또한 충분한 덕에 상청무상검법의 묘용을 벌써부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타닷. 휘슷.

‘오호, 훨씬 더 매서워졌는데?’

용설화의 검을 가볍게 젖히고 있었지만 용무린은 내심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공의 수위만 아직 일류에 머무르고 있었지 초식의 운용과 전투감각만 놓고 따져본다면 능히 절정수준은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 좋아. 이제 수위를 조금 더 높여도 되겠다.”

탓. 타닷. 멈칫. 휘스슷.

느닷없이 전개된 엇박자의 운신, 용무린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놓칠 수밖에 없었다. 용설화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오, 오라버니! 나 오라버니 동생이야. 친동생. 잊었어?”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신경 쓰는 거잖아 이 녀석아!”

왼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어 그곳을 향해 검을 돌렸더니 느닷없이 오른쪽에서 공격이 밀려들었다.

따앙. 따다당.

풍뢰에 한층 더한 무거움마저 실렸다.

용설화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손아귀도 찢어지는 듯했다.

“아악. 오, 오빠-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진짜라니까? 여자가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응? 아악.”

사뭇 연약한 체 해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시끄럿!”

카앙. 카앙. 타타탕. 퍼억.

“컥.”

“허리도 비었어!”

뻐억.

어느새 들어 올렸는지 풍뢰의 도집이 용설화의 허리를 냅다 후려갈겼다. 여동생이고 뭐고 당최 인정해 주지 않는 용무린이었다.

퍼억. 빠악.

“아악. 커헉.”

“끝나면 잊지 말고 호심결 수련으로 마무리 해. 그래야 진전이 빨라. 알았지?”

뻐억. 퍼억.

“커헉!”

용설화의 비명소리는 그 뒤로도 한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흐흐흐. 이자는 언제나 몇 곱으로…….’

용설화와의 계산은 아직도 끝이 나질 않았다.

***

드디어 약속했었던 시간이 도래했다.

비록 사흘의 시간 차이가 있긴 했지만 개방의 대표무력단체인 정의단 소속 정의개 삼십 명과 소림의 산문을 나선 36방 출신의 무승 열여덟 명이 드디어 비룡문에 도착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에요. 저는 지금 못 가요.”

“이런 젠장. 또 왜-애?”

“휴우-.”

용무린은 당연하다는 듯 당장 떠나지 못한다고 버텼고 화운장로는 다시 한 번 폭발을 했다. 일각대사는 대놓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물론 그래 봤자 소용없었다. 용무린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당당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마공을 익힌 놈들이잖아요. 그놈들이 미친척하고 소림과 개방을 향해 덤비면요? 여러분 모두 여기서 그냥 죽치고 계시진 않을 것이잖아요.”

“아니, 그놈들이 느닷없이 왜 개방에 덤벼드는데?”

“소림을 향해서? 허허허, 겨우 그 정도의 무리들이 말이오? 다들 불가에 귀의하기로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어디 원…….”

“그러게 제가 ‘미친 척’이라는 단서를 달아두었잖아요. 하여간 그래도 비룡문에 가만히 계실 건가요? 당장 달려가야 마땅하지 않나요?”

“뭐, 그거야 그렇지.”

“저 무도한 신교라 하여도 감히 소림을 넘을 수는 없소이다. 하물며 듣도 보도 못한 마졸들 몇십 따위야…….”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던 일각의 목소리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신념이 담겼다.

“빈승은 소림의 저력을 믿소이다.”

“그래서 진짜 그런 일이 벌어져도 스님께서는 안 가시겠다고요?”

말도 되지 않는 가정이긴 하지만 자꾸만 계속되는 질문에 일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휴우, 가긴 해야겠지요. 나무아미타불…….”

씨익.

회심의 미소와 함께 용무린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면 비룡문은 또 알몸뚱이가 되요. 그때 기다렸다는 듯 놈들이 덤벼들면 어떻게 해요? 이를 테면 양동작전인 거죠. 하여간 정말 음흉한 놈들이라니까요?”

“너,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너무하오, 용 시주.”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는 두 사람을 향해 용무린은 은근슬쩍 미끼를 던졌다. 기꺼이 물을 수밖에 없는 아주 먹음직한 미끼를…….

“대신 제가 단서 하나를 알려드릴게요.”

“단서? 무슨 단서?”

“무슨 단서는요? 당연히 그 마공을 익히고 있었던 시답잖은 놈들에 대한 단서지요.”

“……!”

“……!”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는지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

용무린에게서 운룡장이라는 단서를 전해들은 화운장로가 떠난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었다. 어째서 운룡장을 지목했는지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자 화운장로는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사실 확인을 위해 먼 길을 떠나갔다.

“하아압!”

“차앗!”

“이야아-하!”

패애액. 쐐애액. 피윳. 피피핏.

버티고 버텨 얻어낸 시간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연을 놓치기 싫어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비룡무단원들은 전력을 다해 수련에 힘썼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쑥쑥 늘었다.

“허허허, 불과 한 달이란 짧은 시간에 불과하거늘, 비룡무단의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구려.”

화운장로에게 가려져 있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인지 일각대사가 화운장로의 몫까지 했다. 내내 점잖다가도 시야에 용무린만 들어오면 득달같이 달려와 수다를 떨어댔다.

‘훼방꾼이 하나로 준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그래야 정신 건강에 이롭다. 용무린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 예. 다행이지요, 뭐.”

피이윳. 쉬가악. 쌔애액.

“차아앗!”

“하아아-!”

담 넘어 들려오는 파공성과 기합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듯 일각대사의 고개는 연신 끄덕여지고 있었다.

“허허허. 사별삼일이면 괄목상대라더니 딱히 선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님을 요즘 들어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오.”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하네요.”

‘아직 소림의 무승들에 비할 바도 아닌데 뭐.’

용무린의 실제 평가는 야박한 편이었다.

전에 비해서야 확실히 전혀 다른 사람들로 바뀐 셈이지만 자신의 기준에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먼 것이다.

‘최소한 신교의 무력단체 중 하나와는 맞장을 떠서 가볍게 짓밟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신교 교주 직속 무력 단체인 수라멸전단.

그들을 여유 있게 상대할 수 있는 것, 그 정도의 무위가 바로 용무린이 원하는 최소한의 목표였다.

“허허허, 그런데 가끔 들려오는 초식명이 범상치가 않게 들리오.”

“……!”

“유성회류단, 유성탄적하…….”

반짝.

일각대사의 눈이 맑은 빛을 뿜었다.

“소승이 과문해서일까요?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초식들인 것 같소만…….”

답을 요구하듯 일각의 시선은 줄곧 용무린에게 향했다.

‘아, 그 양반도 참.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 뭐 그런 뜨거운 시선을 보내나?’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용해 먹을 방법은 금세 떠올랐다.

‘이번에도 먹힐까?’

용무린은 즉시 실행에 옮겼다.

“삼십육방을 돌파하신 스님들께서는 실전 비무를 어떤 식으로 하시나요?”

자신의 질문과는 전혀 생뚱맞은 역질문이었지만 일각은 정성껏 대답해주었다.

“팔대호원이라든지 아니면 나한전 같은…… 삼십육방을 돌파하기 전 소속된 곳의 사승을 따라 주로 이뤄진다오. 여러 사형제들과 사부님들께서 수고해 주시고 있소이다.”

“흐음, 그러니까 소림의 무술 이외에는 다른 무술과 손을 섞어 볼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뜻이네요?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걱정이 있겠는데요?”

“뭐, 딱히 걱정은 없소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천하공부출소림. 검, 도, 장, 권, 봉, 창을 비롯해 추, 편, 필, 조 등등 현존하고 있는 모든 무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각기 연마하고 있는 무승들이 허다하니까 말이오.”

그러니까 말인 즉은, 소림의 무술들로만 실전 비무를 치러내도 능히 다른 모든 무공을 감당할 수 있다는 실로 오만한 말에 다름 아니다.

‘저놈의 주둥이에 규천마력을 한 방 콱…….’

아니, 아니지.

용무린은 내심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자신은 이미 불사신기를 택했다. 규천마력을 펑펑 뿌려대던 전생은 이제 완전히 잊어야만 하는 거다. 게다가 비룡문의 소공자로서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이상 성질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버릇 또한 이제는 고쳐야만 한다.

‘이제는 정말 잊자.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잖아.’

저 얄미운 절대검신 독고황의 불사신기로 신주오가를 발아래 꿇린 후 무림을 통째 집어 삼킬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인 것이다.

“도가의 무공 역시 깊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무당의 무공은 어떤가요?”

“대단히 깊소. 세인들이 북숭소림 남존무당이라는 말을 공연히 하는 것은 아니외다. 삼봉조사 이래 확실히 무당은 도가 무공의 종주가 되었소.”

“무당보다 역사가 더 깊은 곤륜은요?”

“곤륜이라…….”

어떤 의도에서 던져지는 질문인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굳힌 일각대사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무공의 난해함과 사승의 엄격함 때문에 곤륜은 수많은 절기들이 사장되었다고 알려져 있소이다. 지금은 완전히 쇠퇴한 곤륜이지만, 언제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면 진정 무당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것이오.”

“그러면 북송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었던 옛 전진의 무공은 어떤가요?”

“전진파는…….”

일각대사가 말꼬리를 늘였다.

자신이 아무리 소림의 사대금강의 하나라지만 솔직히 옛 전진의 무공을 논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는 바도 거의 없었다.

일각대사가 반장의 예를 취했다.

“빈승의 과문함을 용서하시오, 용 시주. 빈승은 전진파의 무공에 대해서는 무어라 평을 할 깜냥도 되지 못함을 인정하겠소이다. 너무 오래 전에 멸절되어 사라져 버린 비운의 문파인지라 아는 바가 전혀 없소이다.”

사대금강의 일인 일각.

정말 대단한 승려가 아닐 수 없다.

지천명의 나이에 소림의 사대금강의 하나에 오를 만큼 높은 무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강호초출에 불과한 용무린에게 언제나 반 존대를 한다.

그런 겸손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다시 스스럼없이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인정할 수 있다니!

‘실력도 실력인데, 사람됨은 더욱 진국이로구나.’

솔직히 대충 둘러대도 되는 문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깔끔하게 인정을 한다.

용무린은 새삼 소림의 저력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느껴지는 듯했다.

‘킁, 그래도 이대로 5년이면 다 따라잡아.’

아무리 늦추어 잡아도 10년이다.

그 세월이면 불사신기와 전생의 경험을 하나로 묶어 소림조차 넘볼 수 없을 만큼 높은 경지로 훌쩍 날아오를 자신이 있다.

‘비룡문 역시 마찬가지, 규모도 지금보다 최소 열 배 이상으로 키워놓고야 말 거야.’

저 신교조차 감히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놀라운 고수들의 집단, 용무린이 꿈꾸는 비룡문의 모습이었다.

‘그건 그렇고…….’

상대가 미끼를 물었으니 이제는 확 잡아당길 차례다.

“그럼 옛 전진파의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서 그들과 실전 비무를 나눌 수 있다면 소림의 무승들에게도 좋은 일이겠네요?”

“……!”

일각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때요? 한번 해 보실래요?”

“서, 설마?”

입을 쩍 벌리는 일각대사를 향해 용무린은 활짝 웃어 보일 뿐이었다.

같은 날 오후.

일각 대사의 특명에 의해 삼십육방 출신의 무승 열여덟 명은 비룡문의 모두와 번갈아가며 실전 비무를 벌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승리의 대부분은 소림의 무승들 것이었다.

하지만 소림의 무승들 역시 옛 전진파의 무공을 상대하며 깨닫는 바가 컸다. 어째서 자신들의 사형인 일각이 실전 비무를 종용했는지 다들 깨달을 정도였다.

특히 교진운과 유백을 상대할 때 그러했다.

이미 절정의 경지에서도 가장 높은 단계에 머물러 있던 두 사람은 불과 달포 남짓한 사이에 초절정의 경지로 훌쩍 도약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의 무공은 소림의 무승들을 되레 압도할 정도였다.

퍼퍼펑. 파파아-앙.

투웅. 휘릭. 휘슷.

격렬하게 얽혀 들었던 소요일영 유백과 무승 일명이 멀찌감치 거리를 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일명 스님.”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조금만 더 어울렸다가는 소승이 며칠 앓아누워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하하.”

유백과 일명은 서로에 대해 진심으로 탄복한 얼굴로 마주 포권을 취했다.

“과연 천하공부출소림, 단순한 일 권이 전부인 백보신권이 어찌하여 강호일절인지 이 유모, 오늘 안계가 크게 열리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허허허.”

“그 무슨 겸양의 말씀을, 소승이야말로 옛 전진파의 무공을 상대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덕분에 귀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무슨 말씀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극찬한다.

이와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그리고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쾌검과 환검의 조화로움이 놀라운 절기로 알려져 있는 천수여래칠검을 익히고 있는 일송과 겨루었던 교진운 역시 비무를 마친 후 서로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오늘 따라 교 시주님의 비검이 참으로 살아 있는 듯 느꼈습니다. 다만 중간에 툭툭 끊기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할까요? 초식에 막대한 양의 내공을 필요로 하는 듯합니다만…….”

“허허허. 스님께서 이 못난 사람의 얼굴에 금칠을 해 주시는군요. 내공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운용의 미숙 때문입니다. 한평생 쾌검 위주의 내공 운용에만 익숙해 있었더니 장중하고 정교한 내공의 운용은 아직…….”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실전 비무를 마친 후 서로의 장단점에 대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교류, 그로 인해 비룡문의 고수들은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날이 가면 갈수록 소림의 무승들과 비룡문 고수들 사이의 교류는 깊어만 갔다. 웃는 얼굴로 만나 실전 비무를 벌인 후 서로 느낀 점을 나누었다. 그렇게 서로 배려하면서 눈에 띄게 발전해 나갔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개방의 정의개들 역시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젠장. 놀고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까까중들이 저렇게 이를 악물고 수련을 하고 있는데 개방의 얼굴이랄 수 있는 우리 정의개들이 계속 놀고먹기만 한다는 게 말이 돼?”

“우리도 한다. 어때?”

“좋지.”

“오늘부터 당장 시작이다.”

소림의 무승들이 비룡문의 고수들을 상대하며 얻는 것이 많아 보이자 자신들 역시 비룡문 고수들과의 실전 비무에 참여했다.

이번에도 역시 교진운과 유백 그리고 비룡무단의 조장들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패배를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은 경험은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였다.

무(武)의 길에 들어선 지 이제 겨우 달포를 조금 넘긴 비룡문의 직계들이 특히 그 수혜를 많이 받았다.

퍼억. 빠악. 빠바바박. 퍼퍼펑.

“크억. 더, 더, 강하게……. 크으윽!”

뿌아악. 빠아악. 뻐버버벅.

“허억! 이야아-아. 크으읍!”

오랜 세월을 홀로 고련을 한 후 강호를 출도하고 다시 오랜 세월을 주유해야만 어쩌다 한 번씩 실전 비무를 벌이는 보통의 경우와는 완전히 달리 검법의 형을 익히고 운용에 대해 알게 되자마자 대뜸 완벽한 실전 비무로 단련을 했기 때문이었다.

“크하하하. 이거 참,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정말 괜찮은 것이냐 애송아?”

“크흐으, 개방의 영웅께서는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계, 계속하십시오.”

용무린의 사촌들은 사력을 다해 불사신기의 호심결을 운용하는 것으로 버텼다. 평생 바라왔던 무인의 길에 들어선 고통을 기쁘게 웃으며 반겼다.

“거, 참……. 그러면 그렇게 알고 다시 간다.”

“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아.”

휘슷. 퍼억. 빠바바박.

“크윽.”

스스로는 아직 잘 모르고 있었지만 비룡문의 직계들은, 보통의 다른 무인들이 일 년을 강호주유해도 얻을 수 있을까 말까한 경험을 불과 하루 만에 얻고 있었다.

불사신기의 호심결로 인해 신체는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하게 단련이 되어 갔으며 소림과 개방의 고수들과의 비무로 인해 초식의 운용 수준 역시 급속도로 높아졌다.

눈만 뜨면 개방의 정의개와 소림의 무승들과의 비무로 하루를 보내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좋아, 좋아. 잘 되고 있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용무린의 입가에 미소가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런데…….

푸드득.

한 마리 비둘기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 용무린의 눈에 들어왔다.

“요것 봐라?”

반짝.

용무린의 눈에 서늘한 빛이 튀었다.

비둘기의 다리에 검은 색의 작은 통이 매달려 있는 것이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

“저 방향은 외원의 영빈각 쪽인데?”

소림의 무승들과 개방의 정의개들 그리고 벽소추와 상관웅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소림과 개방의 고수들은 모두 이곳 대 연무장에 있고, 벽소추 녀석마저 저기 한쪽 구석에서 교진운 유백 두 분 의숙부들과 대련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며 오랜만에 백리천월도 비무 상대를 찾아 나와 있으니 남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인가?”

픽.

용무린의 입술을 뚫고 낮은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상관웅. 곰의 탈을 쓴 여우인 줄로만 알았더니 사실은 쥐새끼였단 말이지?”

투득.

용무린의 주먹에서 섬뜩한 소리가 흘렀다.

“어떻게 할까?”

조져 버릴까?

아니면 잠시만 더 두고 볼까?

용무린은 그렇게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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