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드러나는 꼬리
안휘성의 성도 합비 개방 분타.
분타주인 맹진이 땡감 씹은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러셔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진짜라고요. 근자에 운룡장에 무사들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확실하지만, 그놈들은 마공하곤 거리가 멀 다니까요!”
“진짜야? 애들 시키지 않고 네놈이 직접 확인했어?”
움찔.
살짝 몸을 떨었던 맹진은 내친걸음이라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하지요!”
물론 연화주선 화운의 눈은 속일 수는 없었다.
“어느 분 안전이라고 제가 허투루…….”
빠악.
“컥!”
“이놈의 자식, 내가 그렇게 네놈의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라고 신신당부까지 했거늘! 또 애들만 시켜놓고 넌 술이나 처먹고 놀고 왔단 말이지?”
빠아-악.
맹진의 머리를 후려갈긴 타구봉 소리가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울려 나왔다. 머리를 감싸 쥔 맹진이 죽는다고 고함을 질렀다.
“아, 말로 해요 말로!”
“지랄!”
빠악. 퍽퍽퍽.
“악! 컥! 흐억!”
매타작이 시작되었고 맹진은 이리저리 구르며 피해를 최소화하느라 바빴다.
“당장 다시 다녀와.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내가 말했던 것들 네가 직접 다 확인해서 보고해. 알았어?”
“옙!”
파바박.
맹진이 부리나케 일어나 밖을 향해 뛰었다.
그런 맹진을 노려보는 화운장로의 눈이 유달리 매섭게 반짝이고 있었다.
‘뭔가 냄새가 난단 말이지.’
용무린에게 운룡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부터 감이 팍 왔다.
이곳 합비는 전통의 명문인 남궁세가가 오래전부터 지켜온 터전, 그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운룡장은 절대검신의 후광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수준으로 가문을 키울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와의 전쟁을 할 것도 아니면서 무사들의 숫자를 그렇게 급격히 증가시킨다고?’
뭔가 구린 속내가 있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는 거다.
하지만 저녁나절 맹진이 들고 온 소식은 다시 한 번 화운장로의 속을 긁게 만들었다.
“뭐라고? 표국업? 운룡장에서 표국업을 하기 위해 무사들을 양성했던 것이라고?”
“그렇다니까요. 제가 다 확인했어요.”
“어떻게?”
“운룡장 주변 주루를 돌며 점소이 녀석들을 조금, 헤헤헤. 이해하시죠?”
원하는 말을 해 주지 않는다면 영업이 힘들 정도로 거지들을 보낼 것이라는 협박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야 뭐…….’
정도의 기둥 중 하나인 개방이지만 마공을 쓰는 암중의 적들을 추적하기 위한 일 아니던가? 그쯤은 충분히 눈감아줄 수 있었다.
“운룡장 무사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말들이 대부분 머지않아 시작될 표국업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합니다.”
“……!”
“그러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사숙. 운룡장은 마공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니까요. 당당한 신주오가의 일원이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요.”
“시끄럿!”
화운장로의 일갈에 맹진이 찔끔했다.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놈이 무능하고 멍청한 놈은 아니란 말이지…….’
직접 나서서 확인까지 했으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큼은 맹진의 보고가 맞다고 봐야 한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감이 팍 왔는데, 그 느낌이 정말 틀렸다는 건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났다. 왜냐하면 진정 마공과 연관이 있는 놈들이라고 한다면 술자리 따위에서 표시를 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똘똘한 녀석 다섯만 골라라.”
“예? 왜……?”
불안한 시선으로 던지는 질문에 화운장로는 그저 씨익 하고 한차례 웃을 뿐이었다.
***
선운루.
안휘성도인 합비에서도 꽤 알아주는 주루로써 특산물인 백주의 맛이 일품이라 언제나 많은 애주가들로 넘치는 곳이었다.
“크허, 시간이 벌써 많이 늦었네.”
“그래. 이만 들어들 가지. 이러다가 내일 아침 연무시간에 늦겠네 그려.”
“크하하. 고작 백주 두 동이 마셨을 뿐인데 무얼 그리 겁을 집어 먹나? 한 잔 더 하세. 응?!”
운룡장의 무사 셋이 거나하게 취한 채 선운루를 나섰다.
툭.
생각지도 못하게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거지를 건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고-오. 백주대낮에 아니 가만히 잠자고 있는 거지를 잡아 팬다. 동네사람드-을. 이 불한당들 좀 보소-오.”
슬쩍 건드렸을 뿐인데 거지가 데굴데굴 굴렀다. 멀쩡해 보이는 팔을 부여잡고 악을 썼다.
“뭐야?”
“무슨 일 났어?”
“어라? 운룡장의 무사들이잖아?”
“거 참, 그렇게 안 봤는데……. 운룡장도 별 수 없구만.”
“술 먹으면 누구나 다 개가 되는 법이여.”
가슴에 수놓인 운룡장의 표식을 알아 본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물론 노려보는 즉시 황망히 흩어졌지만 운룡장 무사들의 기분은 더러워졌다.
“이 거지새끼가 뭘 잘못 먹었나? 왜 스치기만 했는데 혼자 구르고 지랄이야?”
“뭘 얻어먹으려면 시비를 걸지 말고 구걸을 해 이 거지새끼야. 알아들어?”
“당장 꺼져. 경을 치기 전에.”
내공까지 끌어 올려 호통을 쳤으니 보통의 거지 같았으면 냉큼 줄행랑을 쳐야 맞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놈의 거지는 도망치는 대신 느물거렸다. 두 팔을 걷어붙인 후 본격적으로 도발을 했다.
“술 처먹으니 세상이 다 너희들 것 같지? 덤벼 이 호랑말코 같은 종자들아. 이 나으리께서 몸소 참교육이라는 걸 시켜주겠다.”
그러면서 어쭙잖게 통통 튀었다. 요리조리 우습게 몸을 비틀며 주먹을 뻗는 시늉을 했다.
“하! 일진이 사나우려니 이런 더러운 꼴을 다 당하네.”
“저 거지새끼를 확 죽일 수도 없고…….”
“진짜 경을 치기 전에 빨리 안 꺼져?”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운룡장의 무사들은 쉽게 말려들지 않았다. 그런데,
“뭐래, 이 병신들이 퉤!”
거지가 가래침을 툭 뱉었다. 그 가래침이 운룡장 무사의 바지에 그대로 붙어 버렸다. 바지에 오물이 묻은 운룡장 무사의 눈이 뒤집혀졌다.
“이 개자식을 정말!”
타닷. 후욱.
한 걸음에 거리를 좁히며 운룡장의 무사라면 누구나 배우게 되는 산화장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헤죽.
“좋았어.”
거지가 눈을 빛내며 등 뒤로 돌려놓았던 타구봉을 꺼내들었다.
***
‘모두 다섯 번. 표본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거야.’
선운루가 빤히 보이는 골목 한 귀퉁이에 몸을 숨긴 연화주선 화운장로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솔직히 부담이 큰 작전이다.
운룡장은 신주오가의 일원, 제 아무리 개방이라지만 섣불리 일을 벌이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일단 운룡장 무사들이 시비를 먼저 건 것으로 만들어 두었으니 명분은 우리에게 있어.’
하지만 모두 다섯 곳에서 동시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급 무사들이야 고개 한 번 갸웃하고 지나가겠지만 수뇌부는 다르다. 개방이 운룡장에게 무엇인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
‘그래도 문제를 삼기엔 애매할 거야.’
정도의 한 축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신주오가이니만큼 명분이라는 측면에서 열세에 있으니 이번 한 번은 알면서도 눈을 감을 게 틀림없다.
‘자, 감춰진 것이 있으면 어서 꺼내 보아라.’
화운장로의 눈은 점점 더 맑은 빛을 뿜었다.
사소한 것 하나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하지만 바라던 것과는 달리 성과는 없었다. 운룡장의 무사들이 선화장법으로도 안되자 자신들의 독문무공을 펼치기 시작했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득.
‘내가 정말 틀렸나?’
화운장로의 얼굴에 안타까운 빛이 어렸다.
운룡장의 무사들은 자신들의 독문무공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수세에 몰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운룡장 무사들에게서 원하던 마공이 뿜어져 나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뻐어어억! 빠아악!
“커헉.”
“크아악!”
두 명의 운룡장 무사가 그대로 너부러졌다.
모르긴 몰라도 두어 달은 족히 정양해야 할 만큼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이이, 악독한 놈아-아.”
그럼에도 하나 남은 놈에게서는 마공이 펼쳐지지 않는다.
작전 실패다.
진짜 마공과는 상관이 없는 놈들이든지 아니면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비밀을 지킬 만큼 심지가 곧은 놈들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상대가 술까지 거나하게 마신 후이니 답은 전자에 더 가까울 거다.
‘어쩔 수 없지.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수밖에. 운룡장의 무사들이 급증한 것은 정말로 표국업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던 거야.’
화운장로는 씁쓸한 얼굴로 돌아서야만 했다.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찝찝함은 풀리지 않은 채 응어리가 되어 남았다.
***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만 하북의 성도에도 여러 흑도 방파들이 존재하고 있다.
말이야 거창하게 흑도방파라고 하지 사실은 여느 곳이나 다름없이 색주가와 주루 그리고 시전상회 등에서 보호비를 뜯어 먹고사는 왈패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세력이 큰 곳은 여럿이었지만 절대로 자신들의 구역 이상을 벗어날 만큼 크게 세력을 키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황제가 사는 북경도 그리 멀지 않아 군과 관의 위세가 큰 탓도 있긴 하지만 성도 한 복판에 신주오가의 하나인 상관세가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씨바. 돌아버리겠네. 손 하나가 아쉬워 죽겠는데 그 자식들은 대체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
흑갈방의 방주 마영풍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모종의 일로 파견을 보낸 아주 특별한 수하 다섯 놈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파를 떠난 것이 벌써 석 달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추진하려던 흑갈방의 확장사업은 멈춰진 채 정체되어 있었다.
“안평의 잔결방 접수하려면 이대로는 힘든데 말이야.”
다섯 수하들이 떠나가기 전까지 마영풍의 흑갈방은 확장일로를 걷는 중이었다. 북경과 가까우며 신주오가의 일원인 상관세가를 지척에 둔 흑도의 방파로서는 대단한 일인 셈이다.
평균 상주인원 백오십.
만들어진 지 이제 불과 삼 년밖에 안 되는 흑도방파의 규모가 그처럼 급격히 불어난 것은 불가사의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함부로 그 무공을 펼칠 수도 없고…….”
마공에 대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사신이 찾아온다.
그 날이 바로 자신의 제삿날인 거다.
“잔결방주와 부방주 놈을 내가 해결한다고 해도 나머지 조장급 놈들과 행동대원 놈들을 처리하려면 그놈들이 꼭 필요로 하단 말이지.”
세력을 확장하고 돈의 맛을 알게 되니 가만히 있기가 힘이 들었다. 어떻게 하든 다른 놈들을 짓밟고 세력을 넓혀 더 많은 것을 긁어 들이고 싶었다.
“애들을 빌려 갔으면 빨리 돌려줄 것이지. 킁.”
속이 타다 보니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담아보는 마영풍이었다.
그때였다.
마영풍의 등 뒤에서 냉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덩이가 부었구나, 마영풍.”
흠칫. 쿵.
“오, 오셨습니까, 은인이시여.”
화들짝 놀란 마영풍이 그대로 오체투지를 했다. 바닥에 깔린 청석이 터질 듯 머리를 찧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애들을 빌려 갔으면 빨리 돌려줄 것이지?”
후우우-웅.
등 뒤에서부터 검붉은 기운이 훅 솟구쳤다. 마영풍의 전신을 짓눌렀다.
“청사파 같은 허접들 손에 죽어가는 놈을 구해주고 무공까지 전수해줘서 이만큼이나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줬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검붉은 기운이 마영풍의 목을 옭죄었다.
“으, 은인이시여…….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흐으.”
마영풍의 얼굴이 금세 새카맣게 변했다.
곧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할딱였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은인이라 불린 사내는 이내 기운을 거두었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마영풍이 앉던 태사의가 자신의 자리라도 되는 것처럼 편안하게 앉았다. 마영풍의 고개가 그제야 살짝 들렸다.
매부리코에 쭉 찢어진 눈, 잔혹해 보이는 붉은 입술의 사내는 바로 무한의 외곽에서 용무린과 마주했던 바로 그 사내였다.
“함께 나섰던 다섯 중 둘만 복귀시켰다.”
“아,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나머진 셋은?”
“쓸모가 없어서 찢어 죽였다.”
흠칫.
“……!”
마영풍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씨바, 내가 어떻게 키운 놈들인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마영풍은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생각과는 달리 그놈들을 실제로 키워준 것은 바로 눈앞의 사내였고 사내가 진정 분노하면 자신은 바로 죽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 인간 앞에서는 내공이 시들시들해지지?’
사내가 화를 내거나 내공을 뿜어내면 자신의 내공이 맥을 못 췄다. 그러니 도무지 어찌할 방법이 없는 거다.
“복귀한 두 놈은 제법이더구나. 그간 네가 많이 애썼다.”
“헤헤헤. 밤이고 낮이고 무공 수련에 최선을 다하도록 소인이 독려했습니다.”
반짝.
매부리코 사내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런데 겨우 그 따위야?”
“……!”
“한심한 놈 같으니. 아직 멀었다. 무의 길로 들어섰으니 만큼 최소한 한 지역의 종주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은인.”
“쯧쯧쯧.”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던 매부리코의 사내가 돌연 품속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꺼내 던졌다.
“너와 오늘 살아 돌아온 두 놈 모두 지금부터는 그 안의 것을 수련하도록 하여라.”
“……!”
마영풍의 눈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둥그렇게 휘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매부리코 사내의 입가에 흰 선이 슬그머니 돋아났다.
“이번에는 열 놈을 선별해서 기존의 무공을 전수하도록. 아마 흑갈방의 세력 확장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쿵!
마영풍의 머리가 다시 한 번 청석에 처박혔다.
“감사합니다, 은인.”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매부리코 사내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형칠살검. 크크크큭.”
이름부터 범상치 않아 보이는 마공비급을 손에 쥔 마영풍이 기쁨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
흑갈방을 벗어난 매부리코 사내는 그길로 흑도문파 몇 곳을 더 들렸다. 그곳의 주인들 역시 하나 같이 마영풍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 설설 기었다.
매부리코 사내는 자신이 이끌고 간 수하들의 쓸모없음을 질타했고 마지막에는 마영풍에게 주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마공을 하사했다.
사내는 그런 후에야 비로소 성도의 중심을 가로질렀다.
성도의 관리들이 살고 있는 곳을 크게 휘돌아 아직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고루거각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상관세가.
신주오가의 당당한 일원이며 정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그곳을 향해 매부리코 사내는 제집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들어갔다.
***
등천각.
상관세가주인 상관초웅의 집무실.
상관초웅은 야반삼경을 훌쩍 넘긴 이 늦은 시각에도 잠에 들지 않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외롭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살짝 흔들렸다.
스르르.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고 검은 그림자가 쑥 들어섰다.
매부리코에 쭉 찢어진 눈을 한 사내, 하지만 깊은 수련에 빠진 듯 지그시 감긴 상관초웅의 눈은 도무지 떠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순간 놀랍게도 매부리코 사내가 부복을 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여전히 눈을 감고 있던 상관초웅의 입이 불쑥 열렸다.
“왔느냐?”
“예, 가주님.”
매부리코 사내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흑도 무리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충직함이 가득한 태도였다.
“그래, 보고는 받았다. 무한에서의 일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고?”
흠칫.
“송구합니다, 가주님.”
사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상관초웅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기지 않았다.
“자세히 이야기 해 보거라.”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용무린, 생각지도 못했던 비룡문의 소공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선제공격을 해왔습니다. 속하를 비롯한 마령들이 초개처럼 목숨을 던져 기회를 잡았습니다만, 소림과 개방의 난입이 있었습니다.”
반짝!
상관초웅의 눈이 떠지고 얼음장 같은 눈빛이 쏟아졌다.
“웅이 그 어리석은 놈은 대체 무얼 하고 있었기에 유강촌에 모인 너희를 기습하러 가는 것조차 알리지 못했다고 하더냐?”
“소림의 일각과 개방의 화운 두 사람이 항상 곁에 있기에 틈을 전혀 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흥! 만들어서라도 틈을 내야지!”
“또한 천기자와의 면담은 일각과 화운 두 사람만 했다고 하니 실상 소가주님께서는 자신이 무한의 일을 망치기 위해 가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상관웅 소가주님께서는 아직 유강촌의 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쯧쯧쯧.”
“피해가 상상 외로 컸지만 상황이 그러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소가주님께서 전서구를 숨겨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질 않습니까?”
“멍청한 놈 같으니…….”
“비룡문에 머물고 있는 지금은 소식을 잘 전해오고 있습니다. 비룡문의 대다수가 무공수련에 미쳐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니까요.”
더구나 화운장로마저 어디론가 사라졌다.
상관웅은 물을 만난 듯 그 틈에 비룡문 주변을 맴돌던 밀전과 수월히 만날 수 있었고 정보를 교환했다. 전서구도 그때 건네받았다.
“그래, 좋다. 상관웅, 그 멍청한 놈에게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하지. 어떻게 보면 더 잘 된 일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맞는 말씀입니다. 유강촌의 습격을 일각과 화운 두 사람과 함께 했으니만큼 서로간의 믿음이 클 터,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정보를 알려올 것입니다.”
피식.
“암. 그래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알량한 소가주의 자리에서도 밀려나버릴 테니 말이야.”
“……!”
그제야 상관초웅의 얼굴에 너그러운 기색이 살짝 돌았다.
“그건 그렇고, 지난 2년간 길러온 마령들의 품질은 어떠하더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왈패들이 불과 2년 만에 어지간한 일류고수 따위 발가락 사이 때처럼 여길 만큼 성장을 했습니다.”
“호오.”
“통제 역시 문제가 없었습니다. 뿌리가 같은 마공이었기에 저의 사심마뢰검의 내공에 버티지를 못했습니다. 즉시 복종을 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 수고했다.”
흡족한 듯 상관초웅의 입꼬리가 슬쩍 위를 향해 말려 올라갔다.
그때 매부리코의 사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응?”
“용무린, 비룡문의 소가주인 그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음양쇠맥증에서 벗어난 것이 이제 불과 반년여 정도, 하나 벌써 마령들을 마음껏 짓밟을 수 있을 정도에 달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소림의 일각과 개방의 화운장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용무린의 목을 벨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기회를 놓쳤다는 거야.’
백 수십여 일 만에 운적풍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을 만큼 놀랍게 발전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듣도 보도 못한 검법과 비검으로 마령들을 마구 베어 넘겼다.
“속하조차 진마단을 복용한 후 이레나 지나서야 겨우 몸을 회복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괴물 같은 놈에게 시간까지 넘치게 주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놈이 되어 있을 것인지 짐작조차 가질 않았다.
하지만 상관초웅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피식.
“염려할 것 없다. 그놈을 맡을 상대는 따로 있으니까.”
“아! 대공자님께서 드디어…….”
매부리코 사내의 눈이 동그래졌다. 격정 어린 목소리에 이어 얼굴은 환희로 가득 차올랐다. 상관초웅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졌다.
“대법의 고비를 완전히 넘었다는 소식이다. 이제 머지않아 연공실의 바위를 박살내고 나설 것이야. 그 후에는 걱정할 것 없다. 용무린? 훗. 소일거리 정도가 될 뿐이야.”
“감축 드립니다, 가주님.”
“허허허. 고맙다, 손 대주. 그 녀석이 출관하면 잘 부탁한다. 부족함이 없도록 보필하도록.”
쿵.
손사욱 대주의 머리가 바닥을 소리 나게 찧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속하, 불구덩이에 들어가 온몸이 활활 타오른다 하여도 그분을 따를 것입니다.”
“허허허. 그래, 그래야지.”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상관초웅의 입이 다시 열렸다.
“2단계는 차질 없이 진행했겠지?”
“그렇습니다, 가주님. 성도 인근의 흑도문파 열다섯 곳에 두 번째 비급을 뿌렸습니다. 머지않아 도착할 마령단까지 건네게 되면 마형검단 아니 마령전사로의 변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좋아.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무르익을 때까지 비룡문은 즐거운 꿈이나 꾸도록 내버려 두도록.”
“알겠습니다.”
상관초웅의 다음 질문이 바로 이어졌다.
“천기자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합니다. 상관웅 소가주님께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마령들과 함께 움직였사온데, 가 보니 이미 텅 빈 곳이었습니다.”
“후우, 역시 천기를 내다볼 수 있다던 그 말이 사실이었던가?”
“그런 듯합니다. 잡았다 싶으면 언제나 한 발 앞서 빠져나가니…….”
“비룡문이나 용무린 따위야 즐거운 유흥거리에 다름 아니지만 천기자는 다르다. 대법의 완성이 자꾸만 늦춰지는 게 바로 천기자 때문이라고 하니 무슨 수를 쓰던지 간에 찾아야만 한다. 반드시 제거해야만 해.”
“알겠습니다. 기필코 찾아내어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법을 완벽히 끝내고 출관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는 천기자의 제거가 가장 먼저 우선되어야 하는 일이다. 잊지 마라.”
“충!”
“합비에 알려라. 2단계를 시작했다고. 주변을 맴돌고 있는 개방의 떨거지들이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즉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야.”
쿵.
“충!”
바닥에 머리를 쾅 찧은 손사욱은 시원스런 대답을 끝으로 어디론가 다시 사라져 갔다.
씨익.
상관초웅의 입가에 섬뜩한 흰 선이 쭉 그어졌다.
“그 분, 아니 내 진정한 큰아들의 출관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콰악.
살짝 들어 올린 주먹이 거칠게 쥐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콱 움켜쥐는 듯 보였다.
“그 날이 오게 된다면, 천하가 우리 상관세가의 발아래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크크큭. 크흐하하하하.”
상관초웅의 거친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길게 울려 퍼졌다.
***
무한의 흑야방.
“크흠.”
용무린으로 인해 얼떨결에 방주가 되어 버린 노백인의 안색이 펴질 줄을 몰랐다.
“독사파 놈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릅니다, 방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차조의 평범한 조장이었다가 느닷없이 부방주로 신분이 수직상승을 한 철산의 표정 역시 좋지 못했다.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독사파에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열 놈이나 합세했는데 그놈들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고?”
“예, 형니, 아니 방주님.”
철산의 고개가 설레설레 가로 저어졌다.
입에 침을 튀며 말을 이었다.
“이미 야차조를 몇 놈 보내 봤는데 그냥 개박살이 났습니다. 독사 새끼가 느물거리면서 이랬다고 합니다. 이제 이 구역의 왕은 독사파니 기회를 줄 때 알아서 기라고요.”
아득.
“씨발, 한 번 쫄을 타니 이놈 저놈이 그냥 막 쑤셔대는 구나.”
“독사파는 그냥 이놈 저놈이 아니라니까요. 그놈들 진짜에요. 어디서 그렇게 제대로 배웠는지 우리 애들을 순식간에 막 썰어 버리더라니까요?!”
“……!”
노백인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속만 탔다.
‘그래도 옛날이 좋았는데…….’
전임 방주가 미친 짓만 하지 않았다면 좀 좋았을까?
‘공연히 괴물을 건드렸다가 박살이 나 버리는 바람에……. 휴우. 어떻게 하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데 말이야.’
들려오는 말대로라면 독사파의 야심은 흑야방을 넘어 무한의 밤 전체에 있다. 새로이 전력도 보강했고 경고까지 남겼으니 오래지 않아 쳐들어올 게 빤했다.
‘정말 지켜 줄까?’
노백인의 뇌리에 용무린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기억해라, 보호비.
그때 용무린은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다.
‘찾아가 볼까?’
생각과는 달리 발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엽방주와 야차조원들을 거침없이 학살하던 장면과 유강촌에 숨어 있던 미지의 고수들조차 가뿐히 상대하고 돌아왔던 섬뜩한 모습 때문이었다.
“방주님. 어떻게 해요? 이렇게 대책 없이 있다가 독사파 놈들 들이닥치면 그냥 끝나는 거라고요!”
“걱정 마 이 새끼야.”
결국 마음을 굳힌 노백인이 호기롭게 일어섰다.
“기다려. 천군만마를 모셔올 테니까…….”
흑야방을 나선 노백인의 발걸음은 비룡문으로 향했다.
‘씨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나서긴 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비룡문은 신주오가의 일원, 용무린은 그런 비룡문의 소가주였다. 색주가나 주름잡는 흑야방의 방주 따위가 찾아가 만나고 싶다고 청하기도 난감하고 또 소식을 들었다고 해도 무시해 버리면 답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오, 흑야방에서 사람이 왔다고?”
“예, 공자님. 노백인이라고 합니다.”
픽.
“지금 어디 있는데?”
놀랍게도 용무린은 소식을 듣자마자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접객청에 있습니다.”
“좋아. 나는 그곳으로 갈 테니까 모두에게 이렇게 전해 줘. 이제 거지들에게 한 번쯤 이겨보는 것도 좋지 않으냐고 말이야. 알았지?”
씨익.
“알겠습니다, 공자님.”
심부름꾼 소년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용무린은 즉시 접객청으로 이동했다.
‘진짜 와 줄까? 아니, 오더라도 정말 나를, 우리 흑야방을 도와줄까?’
노백인이 온갖 세상 근심을 혼자 떠안은 듯 어두운 얼굴로 서성이는 앞에 용무린이 떡하니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저, 그, 그것이…….”
이렇게 바로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듯 노백인은 말을 더듬었다. 답답한 듯 듣고 있던 용무린의 입이 먼저 열렸다.
“왜? 어떤 놈들이 쳐들어오기라도 한데?”
“예.”
기다렸다는 듯 노백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피식.
“어떤 놈들인데?”
“도, 독사파라고…….”
“독사파? 그 새끼들 몇 안 되잖아? 실력 있는 놈이라고 해 봐야 겨우 일류 나부랭이 한 둘이었고. 나머지는 죄 이류에 껄렁한 놈들뿐인데? 겨우 그런 놈들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야? 쯧쯧쯧.”
진짜 실망했다는 듯 용무린은 혀를 길게 찼다.
노백인은 너무 억울했다.
‘젠장. 네가 다 조져서 그렇잖아! 엽방주와 야차조의 조장들 그리고 야차조에서도 실력이 있는 놈들은 이제 불과 두어 명밖에 남지 않았어, 이 인간아!’
생각이야 굴뚝같지 노백인은 감히 대거리도 하지 못했다.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처박고 한숨만 길게 내리 쉴 뿐이었다.
“너무 걱정 마 인마.”
걱정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용무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앞장 서!”
“예?”
“독사파로 가게 앞장서라고.”
“예. 알겠습니다.”
노백인도 벌떡 일어섰다.
희희낙락한 얼굴로 독사파를 향해 움직였다.
‘새끼들, 다 죽었어.’
***
무한의 이름 높은 색주가 홍적로.
“우하하하. 보옥 누이, 영업 잘 하슈.”
“내일 또 보자고 누이. 와하하핫.”
변방의 군소조직에 불과하던 독사파의 조직원들이 자신의 앞마당인 양 홍적로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아유, 어떻게 날마다 봐?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만 오면 안 돼?”
요화루의 주인인 장보옥이 직접 나서서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돈 맛을 알아 버린 독사파의 조직원들은 대뜸 눈을 부라렸다.
“뭐야? 지금 우리가 귀찮다 이거야?”
“하아, 갑자기 좋던 기분이 팍 상 할라고 하네?”
“이봐, 누이. 우리가 대우해 줄 때 알아서 기어.”
“흑야방 따위 곧 박살날 거야. 그때는 아마 우리들에게 함부로 대한 죄까지 더해져서 보호비가 족히 다섯 배는 더 뛸걸?”
“아유, 내가 뭘 함부로 했다고 그래?”
“시끄럽고, 하여간 내일 또 봐.”
“보호비 잊으면 알지? 큭큭큭.”
한껏 느물대며 몸을 돌리는 녀석들 앞에 용무린이 불쑥 나타났다. 대뜸 턱만 까딱이며 물었다.
“이 새끼들이야?”
“쪼, 쫄따구들입니다.”
“그래?”
노백인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찰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퍽. 철퍽.
“누굴 보고 감히 쫄따구…… 커헉!”
“어이 노 방주. 간덩이가 부었는가 본…… 크아악!”
노백인을 향해 껄렁한 자세를 취하려던 녀석들의 얼굴이 그대로 함몰되었다. 가볍게 보이는 따귀 한 방씩에 코가 움푹 주저앉았다. 광대뼈가 오도독 부러졌다.
털썩. 털썩.
얼굴이 걸레가 되어 쓰러진 녀석들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 용무린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독사파 애들 근처에 또 없어?”
“여, 여긴 더는 없…….”
“그래? 그럼 가던 길 가자. 앞장 서.”
“예, 공자님.”
노백인이 다시 앞장섰다. 독사파를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걸었다.
잠시 후 독사파의 근거지가 눈에 들어왔다.
애초에는 흑야방과 쌍벽을 이루던 흑랑파의 것이었는데 얼마 전에 독사파에게 박살나서 빼앗겼다.
‘그것도 이젠 옛 말이지.’
확실히 그랬다.
콰아앙.
용무린이 대뜸 뻗어낸 발길질에 대문이 날아가 버렸다.
안으로 들어선 용무린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독사란 새끼 튀어 나와-아!”
정말이지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독사파는 이제 끝난 것이라고 장담해도 좋았다.
‘어휴, 저 괴물의 상대가 내가 아니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노백인은 새삼 용무린의 뒤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하늘에 감사했다.
“어떤 개자식이 감히!”
“넌 뒈졌어, 이 새끼야!”
자신들의 앞날도 모르는 독사파의 떨거지들이 여기저기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차아아!”
“이야아합!”
주제도 모르고 이를 드러냈다. 대감도를 비롯한 각종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피식.
짧은 미소와 함께 용무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악.”
“아악!”
온갖 종류의 비명소리가 한참동안이나 흘러나왔다.
독사파가 자랑하던 독사조 70여 명이 불과 일각 어림에 대부분 바닥을 나뒹굴었다. 팔다리와 목이 도저히 꺾일 수 없는 각도로 뒤틀어져 있어 한 번 쓰러진 사람들은 다시 일어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빠아악. 뻐어억. 퍼퍼퍼퍼퍽.
“커헉.”
“우와악!”
새로이 받아들였다던 무시무시한 실력자 열 놈도 거기서 거기였다. 노백인에게나 실력자인 것이지 용무린에게는 그저 그런 이류 잡배에 불과했다. 도를 뽑을 것도 없이 주먹질 몇 번에 전신의 뼈 대부분이 으스러졌다. 넝마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털썩.
“사, 살려 주십시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독사파의 주인이었던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조아렸다.
“너는 안 덤비냐?”
“사, 살려 주십시오.”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됐고, 일단 좀 맞자.”
내 걸 건드렸으니 당장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할 거다.
철퍽. 철퍽. 철퍽.
따귀를 마구 후려갈기며 용무린이 거칠게 외쳤다.
“그러게 가만히 있는 흑야방은 왜 건드렸어 이 멍청아!”
“악, 악, 죄송합니다. 악, 악, 아악.”
독사파의 주인은 비명과 대답을 동시에 해내는 놀라운 기술을 선보였다.
철퍽. 철퍽. 철퍽.
“또 건들래?”
“악. 악. 아닙니다. 아악.”
“믿기 힘든데?”
철퍽. 철퍽.
“악. 미, 믿어 주십시오. 하북 성도에서 조직 생활하던 어릴 적 친구 놈만 돌아오지 않았어도 제가 감히 그럴 놈이 아닙니다. 아악.”
“하북 성도에서 조직 생활하던 어릴 적 친구?”
용무린이 호기심을 보이는 듯하자 독사가 잽싸게 화살을 자신의 친구에게로 돌렸다.
“저, 저기 저놈입니다.”
꿈틀 꿈틀
자신의 친구가 이미 용무린의 손에 발 다리가 부러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젠장. 이러다 정말 죽겠다.’
용무린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폭력에의 의지로 생각했는지 녀석은 재빨리 변명을 시작했다.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가 어쩔 수 없어 인마?”
“저희들 터전에 느닷없이 새 조직들이 생겨났는데 대가리들이 전부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놈들이었단 말입니다. 검은 기운을 펑펑 쏟아내는데……. 죽지 않으려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용무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질문을 이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예?”
“방금 뭐라고 했냐고 인마!”
“주, 죽지 않으려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고…….”
“그 전에!”
“검은 기운을 펑펑 쏟아내는…….”
“검은 기운!”
마공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나와 싸웠던 그놈들인가?’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는 확실했다.
‘뜬금없이 왜 하북 성도에서 그놈들의 모습이 보여?’
조금 더 확인을 해 봐야 했다.
“너, 방금 새 조직들이라고 했지?”
“예? 예, 그렇습니다.”
“그놈들이 전부 검은 기운을 펑펑 쏟아내디?”
“그건 아닙니다. 몇몇 수뇌부 놈들과 간부급 놈들만 그랬습니다.”
“느닷없이 생겨난 조직들인데 검은 기운을 쏟아낸다? 몇 년 사이 그렇게 되었냐?”
“이, 이 년? 아무리 늦춰 잡아도 삼 년을 넘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사이 많은 조직들이 그놈들에게 잡아 먹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같은 놈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살아 남기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걸로 되었다.
‘충분해. 나머지는 이제 하오문이나 개방이 나서야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용무린은 미련 없다는 듯 그대로 돌아섰다.
“가, 가시는 겁니까?”
노백인이 볼일을 보다 중간에 끊은 듯한 얼굴로 물었다.
멈칫.
용무린의 몸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졌다. 모두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기회를 주마.”
“……?!”
“어차피 너희들은 모두 쓸어버려도 다시 생겨나는 잡초와 같은 놈들, 기왕 그럴 것이면 내 통제 하에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피식.
“지금까지 확보한 구역을 너희들 구역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분란은 용납하지 않겠다. 앞으로 무한의 밤에 더는 세력 다툼은 없다. 누가 되었든, 서로를 공격하거나 혹은 너희를 공격하는 놈들은 내가 직접 깡그리 박살내 버릴 테다.”
노백인과 독사의 얼굴 모두가 묘하게 변했다.
안도감, 씁쓸함, 까닭 모를 기대감 등이 계속해서 스쳐 지났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예? 예, 알겠습니다.”
독사의 입에서 선선히 수긍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 심정 내가 잘 알지.’
노백인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오늘 박살이 나버린 뒷수습만 해도 족히 서너 달은 걸릴 터, 흑야방이 그러했듯 그 좋은 기회를 다른 조직들이 그냥 두고 볼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씨익.
“뭐, 물론 공짜는 아니야.”
“예?”
“이익금의 삼 할. 보호비는 흑야방과 같은 조건이다. 대신 약속한다. 아무도 너희를 건들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마. 알겠나?”
독사의 시선이 노백인에게로 향했다.
‘이거 정말 사실이오?’
눈빛으로 물어오는 질문에 노백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해보고도 모르냐?’
독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매달 보름 금룡전장에 전표로 맡겨라. 수취인은 삼절일학 용무린.”
입을 쩍 벌리고 있던 독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들었다. 세상에 흑도에게 보호비를 뜯어내는 정파의 소공자라니.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던 거다.
물론 용무린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당연하게 앞으로의 일이 척척 떠올랐다.
‘이참에 아예 주변 정리를 좀 해 놓는 것이 좋겠구나.’
그냥 둔다면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터, 정리를 해 두는 편이 더 좋았다.
‘어차피 나는 일반적인 정파 나부랭이들과는 태생부터가 달라.’
여타 정파인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신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흑도?
‘그게 뭐 어때서? 어차피 다 사람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
혈교나 배교의 미친놈들처럼 사람 목숨을 장난감처럼 알고 있지만 않다면 충분히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는 거다.
‘그것이 일반 사람들에겐 차라리 더 좋아.’
흑도인들의 밥벌이라는 것은 인간의 말초적인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씻어내고 청소하려 들어도 되질 않는다. 그래서 치워도, 치워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누군가가 콱 틀어쥐고 관리를 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낫단 말이지.’
그 적임자는 바로 나다.
정파의 당당한 일원인 비룡문의 소문주이지만 전생에는 십만 마도인의 종주이자 신마로 불렸던 존재, 앞으로 무림을 통째 먹어 버릴 자신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 거다.
“노백인.”
“예, 공자님.”
“무한 인근 흑도를 깡그리 정리할 거다. 주변 조직과 계보도, 인원, 위치 등등을 정리해서 독사와 함께 찾아와라. 함께 정리 좀 하자.”
무한 인근의 밤을 아예 통일해 버리겠다는 뜻.
두근두근.
노백인은 자신의 심장이 기분 좋게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공자님.”
***
용무린은 독사파를 나서자마자 하오문 분타를 찾았다.
홍연루.
해가 중천에 있을 시각이니 벌써 문을 열었을 리는 만무하건만 용무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두들겼다.
쾅쾅쾅.
“거기 누구 있으면 문 좀 열지?!”
쾅쾅쾅.
“어이! 안에 누구 없어?”
끼이익.
어지간히 시끄러웠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사내가 곧 문을 열었다. 거친 목소리를 쏟아냈다.
“어떤 시러배 잡……. 떠헙. 오, 오셨습니까?”
단숨에 용무린의 얼굴을 알아 본 사내가 화들짝 놀랐다. 급히 말을 바꾸었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분타주 안에 있냐?”
“예? 아, 예.”
문을 열었던 사내가 잽싸게 옆으로 비켜섰다. 일전에 허튼 소릴 하자마자 코뼈가 내려앉았던 경험이 사내를 순한 양으로 만들어 준 거다.
“안에 기별을 할 터이니 잠시만 예서…….”
“됐어. 어딘 줄 아는데 뭐. 내가 올라갈게.”
“그, 그래도…….”
“쓰읍. 나 바빠 인마.”
“예, 알겠습니다.”
분타주의 신분이지만 그래도 여인이니 시간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말려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용무린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섬뜩한 빛이 뿜어지자 사내는 바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쿵쾅쿵쾅.
‘니미, 이러다 내가 제 명에 못 죽지.’
사내는 최선을 다해 5층으로 뛰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인의 몸인 자신의 분타주에게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피식.
용무린이 슬쩍 걸음을 늦추었다.
소식을 접한 소가흔이 펄쩍 뛰었다.
“뭐라고? 용무린 그 작자가 여길 또 왔다고?”
“예, 분타주님.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으로 올라오고 계십니다.”
“이 바보야. 기다리라고 해야지.”
“했었습니다만, 소용없었습니다.”
“이런 멍청일 봤나? 몸으로라도 막았어야지.”
빠악.
“아이고.”
사내가 코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일전에 부서졌던 코뼈가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소가흔의 주먹에 또 박살이 난 것이다.
‘니미, 나보고 어쩌라고?’
일전에는 막았다고 부서지고 욕 처먹었다.
그래서 막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고 분타주가 직접 때린다.
‘엄니! 보고 싶구먼유…….’
오늘따라 유달리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는 사내였다.
‘내가 두 번 다시 낮에 근무를 서나 봐라.’
사내는 저녁 근무만 도맡아 하리라 돌아가신 어머니를 두고 하늘에 맹세를 했다.
“가만,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소가흔의 정신이 뒤늦게 돌아왔다.
“세안은 글렀고, 대충 찍어 바르기라도 하자.”
그 전에도 노안 어쩌고 소리를 들었다.
그따위 모욕적인 언사를 다시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파바박. 스슥. 휘리릭.
소가흔은 놀라운 속도로 연지와 분첩을 꺼내들고 동경 앞으로 달려갔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화장을 대충이나마 마쳤다.
‘되었어.’
촌각에 불과한 짧은 시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림은 되었다.
‘대충하느라 연하게 되었는데, 되레 이게 더 좋아 보이네.’
어찌 보면 한 듯 안한 듯 굉장히 청초해 보였다. 순간적으로 끝냈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화장이었다.
쿵쿵쿵
“소 분타주. 안에 있어? 나 왔어.”
마치 서방님 돌아왔다는 듯한 말투다.
‘망할 놈의 인간이 오늘은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지?’
생각은 그랬지만 말은 반대로 곱게 나갔다.
“안으로 드시지요.”
“화장 벌써 다 했어? 와아, 빠르네. 쾌검 계열의 무공을 익혔나 보지?”
용무린이 인사랍시고 하며 들어선 말이다.
‘저걸 그냥 콱!’
소가흔의 시선은 한철을 살대로 만들어진 자신의 부채로 향했다. 여인의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용무린의 면상을 한 방 제대로 후려 갈겼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이렇게 무례하게 찾아온 것이죠?”
“소가흔 분타주?”
대답 대신 용무린의 표정이 묘해졌다.
전혀 다른 생소한 사람을 대하듯 눈이 동그래졌다.
“예. 저예요.”
“와아, 오늘 화장 정말 잘 먹었다. 진즉 이렇게 하지 그랬어? 수수한 것이, 정말 대갓집 규수 같아 보여.”
“흥! 흰소리 마시고 용건부터 말씀하시죠.”
목소리는 여전히 쌀쌀 맞았지만 소가흔의 입술은 슬그머니 말려 올라갔다.
“정보 좀 사자.”
“말씀해 보시죠.”
“요즘 하북 성도의 흑도들 움직임이 조금 수상쩍다는데 말이야. 그거에 대해서 좀 알고 있어?”
“어, 어떻게 그 사실을?”
소가흔의 눈이 동그래졌다.
“훗, 짐작대로 이미 알고 있었구나?”
불과 이, 삼 년 사이에 새로 생겨난 신흥 조직들이 기존 조직들을 박살낸 후 흡수하는 상황이다. 하오문의 피해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거다.
‘기회다. 어쩌면 우환거리 하나를 이 밉상 맞은 인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겠어.’
용무린이 원하는 것은 비룡문을 노렸던 의문의 조직을 찾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하북성도의 흑도 조직에 대한 질문을 해온 것이라면 필시 그들이 의문의 조직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의문의 신흥 조직들이 하북 성도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아요. 한데…….”
소가흔의 입에서 용무린이 원하던 정보가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사흘만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이거지?’
하오문의 분타끼리 주고받는 정기적인 정보의 교환 시기가 사흘 앞이라고 한다. 그 날이 되면 하북 성도의 흑도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보다 확실하게, 손금 보듯 빤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좋아. 합비로 떠났던 개방의 화운장로가 돌아올 때도 슬슬 되었단 말이지.”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꼬리를 잡은 듯하다.
화운장로와 함께 교차확인을 한 후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준비를 한 놈들이라면 금세 흔적을 지우고 사라질 수는 없겠지?”
합비와 하북 성도.
최소한 둘 중 한 곳은 비룡문을 노리던 바로 그 의문의 마공을 익힌 놈들이라는 뜻이다.
“화운장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
녀석들 역시 암중에서 흑도의 세력을 양성하고 이용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봤자 소용없어.”
씨익.
용무린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한 번 내 가문을 노린 이상, 이제는 다 죽었다고 복창해야 하는 거야.”
상대가 누구든 싹 쓸어버릴 생각이다.
절대로 용서해 줄 생각은 없다.
“기대해라. 내가 곧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