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 맞춰지는 조각 하나 (17/104)

8. 맞춰지는 조각 하나

비룡문으로 복귀한 용무린은 소가흔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평소처럼 조용히 그러나 여전히 격렬하게 지냈다.

“차아앗.”

“하앗!”

패애액. 피이잇. 쉬쉬쉭.

“바로 그거예요 우진 아저씨. 이제 초식의 연환까지 완벽해졌어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공자님.”

“임준 아저씨도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완벽에 가까워요. 다만 공격에서 방어로 넘어가는 초식을 펼칠 때 내공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잇는다는 느낌으로 해야 한다는 걸 자꾸 잊으시는 것 같아요. 그것만 조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공자님.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계속해서 공자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수련하고 있습니다. 곧 완벽한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용무린은 비룡무단의 수련을 도왔다.

비룡무단은 용무린의 보살핌과 개방의 정의개 그리고 소림의 무승들과의 실전 비무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했다.

용대명을 비롯한 직계와 방계들의 발전도 눈부셨다.

거의 매일 밤을 지새우는 내공수련에 이어 초식을 단련한 후 하루 내내 실전 비무로 보냈다.

수련 기간은 불과 달포 남짓, 아직 채 오십여 일이 되지 못했지만 벌써 무공 수위는 이류를 훌쩍 상회했다. 내공만 뒷받침이 되어준다면 오래지 않아 일류의 경지에도 오를 것이다.

‘시간이 문제인데, 걱정할 것 없어.’

비룡문을 노렸던 놈들의 꼬리를 잡은 셈이니 일단 그놈들을 지워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몸통이 드러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몸통이 드러나면 소림의 무승과 개방의 정의개뿐만 아니라 더 많은 정파들의 관심과 전력이 이곳을 향해 몰려들 거야.’

몸통이 어떤 놈들이든 쉽사리 비룡문을 향해 밀려들 수 없게 될 거다. 그 사이 비룡문은 한 발 또 성큼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밤에는 노백인과 독사를 앞세워 무한의 밤거리 평정에 나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루에 두 곳, 혹은 세 곳이 용무린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충성을 맹세했다. 보호비 상납을 약속했다.

불과 사나흘의 시간에 무한 인근에 무리를 지었던 흑도의 왈패들은 깡그리 정리가 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무한과는 한참이 떨어진 곳의 방파이거나 이름이 조금 높은 사파 정도였다.

‘어차피 나선 일, 이놈들 규율도 확실히 잡고 아예 비룡문의 방패막이로 만들어 버리자.’

비룡문이 먼저 자리를 잡게 한 후 적당한 시기가 오면 노백인을 비롯한 흑도 조무래기들에게 방패로서의 가치가 충분할 만큼의 무공을 나눠줄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비룡문의 방패막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모두 수고들 하세요.”

“예, 공자님.”

“항상 감사합니다, 공자님.”

비룡무단에 이어 직계들의 무공을 보아주기 위해 내원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였다.

“공자님!”

청지기 노인이 헐레벌떡 달려와 용무린을 불렀다.

“공자님. 지금 손님이 찾아와 계십니다. 아주 어여쁜 소저입니다. 허허허”

무엇이 그리도 좋은 것인지 청지기 노인이 기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피식.

‘왔구나?’

나흘 만에 찾아온 것이니 하오문의 소가흔일 거다.

“예쁘기는요, 그거 다 화장발이에요 할아범.”

“예에? 그, 그럴 리가요? 마치 월궁의 항아님이 세상에 내려오기라도 한 듯 아름다우신 분이었는데…….”

월궁의 항아님은 개뿔.

‘아직도 처음 마주했을 때 그 대책 없어 보이던 얼굴이 생생한데 무슨!’

“접객청에 있나요?”

“예, 공자님.”

용무린은 대답을 듣자마자 접객청으로 발길을 돌렸다.

‘흐흥, 오는구나.’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소가흔은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자연스레 상반신에 힘이 들아 갔다. 가슴 부위가 깊게 파인 붉은 색의 치파오가 위력을 발휘했다. 사내라면 절대로 눈을 돌릴 수 없는 요염함을 뿜어냈다.

“여어, 왔……?!”

접객청 안으로 들어서던 용무린의 몸이 덜컥 멈춰졌다.

휘둥그레진 용무린의 시선은 소가흔의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가슴 어림으로 흘러 내렸다. 결정적인 곳에서 그대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호호호. 어때? 정말 아름답지? 환상적이지? 이래도 내가 정주의 언니보다 나이 먹어 보이고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해 보여?’

소가흔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콧소리를 내었다.

“오셨나요?”

소가흔의 인사에도 굳은 듯 움직이지 않던 용무린의 눈이 돌연 반달이 되었다. 감히 여타 정파의 사내라면 도저히 입을 담을 수 없는 말을 불쑥 쏟아냈다.

“안에 뭘 잔뜩 넣었구나?”

흠칫!

소가흔이 살짝 몸을 떨었다.

피식.

그 반응을 직접 확인한 후 용무린의 입가에 미소가 되돌아왔다.

“그러면 그렇지.”

슬쩍 찔러 보았는데 미끼를 덥석 물었다. 용무린이 나지막하게 혼자 중얼거렸다.

“휘유, 하마터면 또 속았네. 과연 여인은 천변만화하는 존재란 말이야.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하던 가슴이 어쩜 며칠 만에 독기가 가득 찰 수가 있지? 시건방지게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어서 깜짝 놀랐네. 안에 헝겊 뭉치 같은 걸 잔뜩 집어넣었나?”

용무린은 계속해서 ‘우와. 놀랍다, 놀라워. 감쪽같잖아?’란 말을 중얼거렸다.

빠직.

“뭐, 뭐예요?”

소가흔이 발끈했다. 고함을 빽 질렀다.

“응? 갑자기 왜 신경질이지?”

“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요? 뭐가 어쩌고 어째요?”

“아, 그거? 그냥 혼잣말 한 건데 뭘 신경을 쓰고 그래? 신경 쓰지 마. 그리고 혼잣말이란 건 대체적으로 엿듣지 않는 것이 예의 아닌가?”

혼잣말을 다 들을 수 있도록 하면서 신경 쓰지 말라 하면 그게 말처럼 되냐 인간아?

‘거기다 예의? 예의-의?!’

그렇게 큰 소리로 지껄여 놓고?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부들부들 콱.

소가흔은 손아귀에 들려 있던 부채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정말 성질대로만 하자면 저 얄미운 놈의 면상을 백 번 아니 천 번도 더 넘게 후려 갈겼다.

“뭐, 그건 그렇고…….”

용무린이 손을 활짝 펼쳐 내밀었다.

“정보 도착했어?”

“에라, 이 나쁜 인간아. 이거나 먹고 떨어져 버렷!”

너무 화가 치민 나머지 소가흔은 눈물을 글썽이다 용무린의 얼굴을 향해 작은 책자 하나를 냅다 던졌다.

덥석.

당연한 말이겠지만 용무린은 소가흔의 반응 따윈 별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여유 있게 책자를 받아 들었다.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냥 말로 해도 되는데 꼭 책자로 만들어 주네. 하여튼 고마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용무린이 서책을 읽는 동안 소가흔은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애써 억누르며 생각했다.

‘내가 대체 왜 저 인간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거지? 대체 뭘 인정을 받고 싶은 건데?’

약 올라서?

그런 면도 솔직히 없지 않아 있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당연히 그런 욕심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아직 소가흔은 자각하지 못했다.

‘한심해. 정말 너무 한심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전투를 하듯 전의를 다지며 세안을 하고 화장을 했다. 한 시진 동안이나 세심하게 옷을 골랐고 장신구로 치장을 했다.

‘평소 안 하던 헝겊뭉치까지 찾아 안에 넣어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었는데…….’

저 멍청이는 그런 자신의 노력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 분하다. 분해서 정말 눈물이 날 정도다.

“이번 정보료 계산은 내가 하오문 대신 그놈들 손봐줄 테니까 그냥 퉁 치면 되는 거지?”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눈물을 살짝 훔치며 돌아서 있던 소가흔의 몸이 팽이처럼 홱 돌았다. 뾰족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말이죠? 정보료를 그냥 퉁 치다니요?”

“당연한 것 아니야?”

소가흔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용무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북 성도에도 하오문의 분타는 있을 것이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지금처럼 정보도 주고받을 것이고.”

“그거야 당연한데 그게 지금 정보료 퉁 친다는 용 공자님 말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피식.

“당연히 상관이 있지.”

“……?!”

“여기 적힌 정보가 맞다면, 하북 성도의 하오문 분타 주변에 지난 이 년 사이 새로이 늘어난 신규 흑도문파가 무려 열다섯 곳이나 돼. 그리고 이미 잘 알고 있듯 그놈들 무공 수위가 장난이 아니란 말이지.”

소가흔은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허접한 호색한으로만 보이던 용무린이 맥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그 사실을 뺐는데……. 과연 삼절일학이라 이건가? 그걸 단숨에 짚어 내다니.’

실제로 하북성의 하오문 분타는 요즘 많이 힘들었다.

독사파의 일로 알게 되었듯 이 년 사이 새로이 늘어난 흑도 세력들 때문이었다. 놈들은 감히 하오문의 분타임을 알면서도 이를 들이밀었다.

“어디서 무공을 배워 온 놈들인지는 몰라도 천성은 변함없는 흑도의 잡배들이야. 개 버릇 남 못주는 법이지. 아무리 하오문의 분타라지만, 놈들의 숫자와 세력이라면 밀어내고 꿀꺽 먹으려 들었을걸?”

“……!”

“솔직히 말해 봐. 전면전을 펼치기에는 놈들의 뒷배 때문에 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보호비를 뜯기자니 하오문의 자존심이 상하고. 그렇지 않아?”

소가흔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어떻게 된 것이 용무린만 상대를 하면 꼭 이렇게 된다.

‘아유, 저 얄미운 놈.’

한 대 후려갈길 수만 있다면 속이라도 후련하건만 무위마저 훨씬 높으니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걸 내가 해결해 주겠다니까? 이야, 정기적으로 주고받는 정보 중 일부만 살짝 내게 제공해 줬는데 우환거리가 대뜸 사라져 버리다니! 거저 아냐? 거저?”

용무린이 ‘나는 정말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라고 주절대는 사이 소가흔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흥! 그게 어디 우리 하오문을 위해 나서는 일인가요?”

“나 이러다가 자선단체 하나 떡하니 차려 버리는 것…… 응? 뭐라고?”

“다 비룡문의 앞날을 위해서, 공자님이 그냥 먼저 나서는 일일 뿐이잖아요. 그런데 왜 하오문을 위해 나서시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죠? 하오문은 됐어요. 우린 우리대로 알아서 할 테니 공자님은 공자님 일이나 하시라고요.”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용무린에게 놀림감 신세로 전락해 버린 소가흔이라지만 그녀는 당당한 하오문의 분타주, 이 정도 사리분별은 할 수 있다.

피식.

용무린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풀썩 웃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정보료 주지 뭐.”

“흥.”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하려는 듯 소가흔이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오만한 시선으로 용무린을 보았다.

“급할 것도 없고, 어차피 누군지도 알고, 보아하니 놈들이 곧 하오문 분타를 덮칠 듯한데……. 잘됐네. 하오문이랑 싸워서 힘 좀 빠지면 내가 덮치지 뭐. 이야, 나 정말 머리 너무 좋은 것 아닌가? 천재네 천재.”

움찔.

소가흔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망할 놈의 인간.’

별 수 없었다. 분하지만 용무린의 말대로였으니까.

“이런 것을 병법이라고 하던가? 크아, 역시 책이란 건 많이 읽어두고 봐야 해.”

주절주절 떠드는 용무린의 주둥이가 너무나 얄미웠지만 소가흔은 별 수 없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분타주에게는 재량권이라는 게 있어요.”

“응? 뭐라고?”

“이번에는 정보료 주지 않아도 된다고 이 망할 놈의 인간아-아.”

피식.

‘봐주지 뭐.’

사내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 나왔다면 대뜸 목을 돌려 버렸을 용무린이지만 소가흔의 대거리는 어쩐지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럼 퉁 치는 거다?”

“알았어, 알았다고!”

쿵쾅쿵쾅.

눈썹을 두어 번 들썩이며 느물대는 용무린이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소가흔은 몸을 홱 돌렸다. 거친 발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제 거지 영감탱이만 오면 되는 건가?”

이번에는 혼자서 해결하기엔 숫자가 너무나 많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도 겸사겸사 그 영감과 소림의 이목을 달고 가는 게 좋아.’

그래야 계획대로 몸통이 드러나면 비룡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씨익.

용무린의 입가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걸렸다.

“어서 좀 오시오, 화운 장로. 함께 어딜 좀 갑시다.”

천기자에게?

천만의 말씀. 화운과 일각은 자신과 함께 하북 성도에 가야 한다.

“가서 화끈하게 몸 한 번 풀고 옵시다.”

그토록 귀찮게만 여겨지던 화운장로였지만 오늘은 무척이나 그가 보고 싶어지는 용무린이었다.

***

다시 하루가 훌쩍 지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운장로가 합비에서 돌아왔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나요?”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용무린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운룡장에 수상쩍은 놈들이 정말 있던가요? 몇 놈이나 되죠? 수준은요? 확실히 마공을 쓰는 놈들이 맞던가요?”

“아, 이놈아. 숨 좀 돌리자. 그리고 대답할 틈을 줘야 내가 알려주지 인석아!”

“…….”

“틀렸다.”

“예?”

용무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너랑 내가 틀렸다고 인석아.”

긴 한숨과 함께 화운장로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합비에서 어떻게 운룡장을 감시했으며 또한 어느 수준까지 확인을 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려 주었다.

마지막엔 개방의 행사임을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시비를 걸고 싸워보기까지 했다는 말에 용무린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마공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일단 운룡장의 무사들 중에 마공을 익힌 놈들은 없을 확률이 높은 거라고 봐야 한다.

‘거참 이상한 일이군. 표국업이라니. 말이야 아귀가 딱딱 맞는데, 이거 너무 생뚱맞지 않나?’

운룡장이 표국업에 나설 수도 있는 일이긴 하다.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여타 거대 세가들 역시 표국을 겸하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까. 전통의 명문인 남궁세가처럼 말이다.

‘안휘성 일대만 돌아다닌다고 해도 그 정도 숫자로는 표국업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터인데?’

운룡장의 모든 무력단체들을 다 표행에 투입하면 물론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 기존의 상회와 객잔 그리고 무엇보다 앞마당 관리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합비에서 가까운 현만 돌아다닌다고 해 봐야 표국업을 한다고 나서는 것조차 우스운 일, 기왕 시작한 일이면 안휘성 전체로는 돌아다녀야 세가의 위상에 걸맞지 않나? 그러려면 지금도 무사의 숫자가 절대 부족인데?’

그런 점을 생각하면 또 아귀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때 용무린의 뇌리에 한 가지 희한한 가정이 번득 스치고 지나갔다.

‘가만, 표국은 표행이 있는 곳은 어디든 자유롭게 그리고 공식적으로 무사들을 파견할 수 있단 말이야?’

그 표행에 쟁자수를 비롯해 사람들을 끼워 넣기란 식은 죽 먹기, 비룡장을 습격하려던 의문의 적이 한 곳이 아니라는 가정만 세운다면 운룡장에 마공을 익힌 놈들이 없는 것도 다 설명이 된다.

‘운룡장이 맡은 역할은 마공을 익힌 놈들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 그저 공식적으로 또한 자유롭게 그 어느 정보력의 눈에도 이상하지 않도록 원하는 인원을 원하는 곳에 파견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운룡장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말이 되는 거다.

‘거기에 들고 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흑도 소속의 인원을 쟁자수나 짐꾼으로 넣거나 뺄 수도 있잖아? 나라면 그렇게 하겠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조금 얍삽하긴 하지만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으면서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의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훌륭한 조직 체계가 한 눈에 보이는 듯했다.

씨익.

용무린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위를 향해 말려 올라갔다.

‘시간이 조금 걸려서 그렇지, 그야말로 완벽한 그림자 부대를 운용할 수 있겠구나.’

상관세가와 운룡장이 서로 손을 잡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다.

“화운 장로님. 일각 대사님.”

“응?”

“말씀하시오, 용 시주.”

여전히 얼굴 한 가득 개구쟁이 미소를 머금은 용무린의 입이 불쑥 열렸다.

“저랑 바람이나 좀 쐬러 다녀오시죠?”

바람을 쏘이자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후끈 달아올랐다.

“지금? 좋지. 당장 가자.”

“혹, 천기자 어른께 가시자는 말인 게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운장로는 엉덩이부터 들썩였다. 순수하기만 한 일각대사는 천기자를 떠올리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쩌면 그분께 갈 필요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갈 필요가 없다니?”

“……?”

씨익.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용무린은 자신이 새로이 알게 된 정보를 두 사람에게 알렸다.

무한의 밤거리에 새로이 유입된 흑도잡배들, 그들이 온 곳이 하북의 성도라는 것과 그들의 입을 통해 하북의 성도에 의문의 흑도 조직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그 수뇌부급들이 검은 기운을 펑펑 뿜어냈다는 것을 낱낱이 알렸다.

“뭐라고?”

“검은 기운을 펑펑 뿜어냈다면?”

화운장로와 일각대사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거기에 더해 하오문을 통한 확인까지 이미 거쳤다고 하니 두 사람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새로운 가능성, 즉 운룡장은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병력을 파견할 구실로서의 표국업을 내세우고 있고 하북성도의 흑도 무리는 슬그머니 그 사이에 숨어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마저 알리니 등골마저 오싹해졌다.

“네 생각은 그러면 하북 성도에 숨어 있는 흑도 나부랭이들이 주범, 운룡장이 종범이라는 뜻이냐?”

“에이, 그딴 놈들에게 주범 종범이 어디 있어요? 다 똑같은 놈들이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연계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지 않습니까?”

역시 일각 대사는 침착했다.

경솔하게 즉시 움직이기에 앞서 심증보다는 확실한 증거를 원했다.

“물론 증거는 없지요.”

“증거도 없으면서 무슨 큰일 날 소릴 하는 게냐 인석아?”

“그러니까 한번 가서 보자고요. 솔직히 운룡장에 대해서는 아직 저도 확신이 없어요.”

“…….”

“일단 하북 성도의 흑도 놈들이 마공을 사용하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으로 밝혀졌어요. 그러니 가서 한번 족쳐 보게요. 또 알아요? 그놈들을 시작으로 은밀히 이어져 있던 몸통이 굴비 엮듯 딸려 나올지?”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오문을 통해 이미 확인까지 마친 정보는 합비 때와는 달리 아주 명확했다.

‘근자에 들어 하북의 성도에 흑도 문파의 난립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나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

마공을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 개방의 장로로서 흑도의 난립과 다툼에 관련한 보고는 이미 한참 전에 받았다.

“에잉, 그래도 천기자 선배에게 가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듯한데 말이다.”

화운장로가 아직 미련을 다 버리지 못했다.

용무린이 급히 말을 이었다.

“천기자란 분께 가시려는 이유가 대체 뭔데요? 그게 다 성산의 유진이 없어진 초유의 상황의 배후에 마공의 소유자가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그거야 그렇지, 로 끝날 게 아니죠. 마공을 펼치는 놈들이 흑도 나부랭이로 위장해서 이미 열다섯 곳에 나누어 포진을 끝냈다니까요? 일단 그놈들부터 조져서 몸통을 끄집어내야만 해요.”

그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인지라 화운장로는 일각대사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잠자코 생각에 잠겼던 일각대사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좋아, 가자. 한번 가 보자.”

“알겠습니다, 장로님. 그럼 저는 준비 좀 할게요.”

화운장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무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욱.

그런 용무린의 전신에서 강력한 기운이 물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석아, 벌써부터 힘 뺄 것 없어. 지금 당장 출발한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려면 최소 열흘은 걸려.”

“아무렴 제가 하북성도 생각에 벌써 힘을 줄까요?”

“그러면?”

“떨구고 갈 놈이 있어서 그래요.”

“떨구고 가? 누구를?”

“크크큭. 보시면 알아요.”

야릇한 미소와 함께 용무린은 대뜸 외원의 한 곳을 향해 움직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관웅의 방을 향해서였다.

***

“아으, 미치겠다. 대체 언제까지 이 좁아터진 곳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거야?”

답답해 죽겠다는 듯 상관웅은 방안을 계속해서 이리저리 서성였다. 이제 거의 두 달이 다되어가는 데도 안에만 있으려니 죽을 맛인 모양이었다.

“밀전 소속 무사를 만나도 이제 더는 할 말도 없어. 코딱지만 한 변화라도 있어야 뭐라도 보고를 하지. 이건 뭐 미친놈들처럼 다들 죽자고 수련만 해대고 있으니 원.”

초식 이름조차 생소한 무공이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은 이미 보고했다. 그 무공을 비룡문의 모두가 죽어라 익히기 시작한 것도 세가에 알렸다.

“화운장로가 사라진 것도 보고했으니 그 영감이 이제 돌아와서 용무린 그 개자식과 함께 다시 몸을 숨긴 천기자를 향해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그게 언제가 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용무린은 절대로 비룡문을 떠날 생각이 없는 것처럼 굴고 있었고 화운장로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일각대사조차 이곳을 소림으로 아는 듯 보였다.

“아, 미치겠다. 제갈상아 소저와 어서 빨리 혼인이나 하고 싶은데 말이야.”

혼삿말이 오가기 시작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결말이 지어지지 않고 있다. 그 아리따운 소저를 마음껏 품에 안고 싶어 몸살이 날 정도다.

“아이 씨, 모르겠다. 오늘 밤엔 요화루나 한 번 더 다녀오자. 오늘 새로운 계집이 들어온다고 했으니 일단 그 계집으로 급한 불이나 꺼야지 뭐.”

상관웅의 얼굴에 음흉한 기운이 물씬 번졌다.

피 끓는 청춘, 그나마 기루라도 근처에 있어 겨우 가라앉힐 수 있어 좋았다.

그때였다.

“어이, 곰탱이.”

밖에서부터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거야 산 거야? 나와라. 간만에 면상 좀 보자.”

용무린이었다.

꿈틀.

‘저 시건방진 자식을 그냥!’

상관웅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지만 뜻밖에 목소리는 호탕하게 흘러나왔다.

“하하하, 친구가 예까지 어인 일인가?”

짐짓 반가운 표정을 얼굴 하나 가득 지은 채 밖으로 나가 용무린을 맞았다.

피식.

용무린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방구석에만 있으려니 답답하지?”

“응? 으응, 그렇지 뭐.”

“내가 몸 좀 한 번 풀게 해 줄게 가자.”

“몸을 한 번 풀게 해준다고?”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대뜸 기루를 떠올린 상관웅의 표정이 밝아졌다. 헤벌쭉 웃었다.

“그래. 나랑 비무나 한 번 하자. 간만에 땀 좀 흘리면 몸이 개운해질 거야. 어때?”

“아, 그, 그게 말이지.”

상관웅은 몸을 사렸다.

‘내가 왜 너 같은 무시무시한 놈이랑 비무를 해야 하는 건데?’

요여립과 혈견사흉을 상대로 훨훨 날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한 유강촌에서 마공을 익힌 절정고수와 일류고수 수십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던 수라와 같던 모습 역시 너무 선명했다.

‘안 해. 아니 못해.’

죽어도 싫었다. 공연히 망신만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아, 사내자식이 겁은 왜 이렇게 많아? 야 이놈아. 상관세가의 소가주라는 놈이 비무를 마다해? 상관세가의 위신을 생각해 이 허우대만 멀쩡한 녀석아.”

이미 상관웅과 비무를 벌이려는 이유에 대해 낱낱이 들었던 화운장로가 불쑥 나섰다. 가문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충동질을 했다.

“허허허. 비무는 하면 할수록 좋은 법이지요. 비룡문의 고수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제 겨우 두 달 어림이 되어 가는데 전에 비해 몇 배는 더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다 비무의 결과랍니다. 아미타불.”

일각대사까지 슬그머니 나섰다.

‘아, 씨바. 다들 왜 이러느냐고?’

내심 욕지기가 치솟았지만 드러낼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더 물러났다가는 가문의 이름에 크게 먹칠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몇 대 얻어맞고 끝내더라도 용감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좋지. 한 번 붙어 보자, 친구. 그렇지 않아도 요즘 몸이 많이 찌뿌둥했었는데……. 잘 됐네.”

피식.

“그래, 가자.”

풀썩 웃어 보인 용무린은 시간 없다는 듯 즉시 몸을 돌렸다. 대연무장을 향해 움직였다. 그 뒤를 겉으로는 당당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도살장 끌려가는 기분인 상관웅이 따라 털레털레 걸었다.

잠시 후.

후우욱. 퍼엉. 빠바바박. 퍼어억.

“크아악. 커헉. 우와악.”

상관웅이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가 한참 동안이나 대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

사뿐사뿐.

비룡문을 떠나는 용무린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아으, 상쾌해라.’

간만에 마음껏 누군가를 두들기니 그간 쌓여 있던 짜증이 모두 날아간 느낌이다.

“……!”

그런 용무린을 슬쩍 바라봤던 화운장로가 지나가듯 한 목소리로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데 말이다.”

“예?”

“요즘 무한의 밤거리 질서가 많이 개편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더구나.”

용무린을 바라보는 화운장로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흑야방을 시작으로 독사파, 흑운파 등등 중소 방파들이 속속 무릎을 꿇고 복종한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용무린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되레 당당하게 대꾸했다.

“벌써 소식 들으셨어요?”

“당연하지.”

“맞아요. 제가 그랬어요.”

“크흠, 비룡문은 신주오가의 일원이자 당당한 정파의 기둥 중 하나다. 네가 왜 그따위 흑도의 잡졸들을 상대하는지 모르겠구나?”

“후후훗. 불안하세요? 제가 갑자기 막 사마외도에 물들어 이상하게 변할까 봐서요?”

“그, 그거야…….”

말꼬리를 살짝 늘이는 화운의 얼굴이 슬그머니 붉어졌다. 아니라는 듯 표현은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조금 걱정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용무린은 내처 말을 이었다.

“어차피 잡초들이에요. 뽑아내도 그때뿐, 금세 다른 잡초가 자리를 잡지요.”

“그거야 그렇지. 언제까지나 바뀌지 않는 족속, 그것이 바로 흑도잡배들의 특징이니까.”

“그 말씀은 틀렸어요.”

“뭐야? 내가 틀려?”

“예.”

용무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호기심 때문인지 화운장로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그럼 네게는 그딴 놈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무슨 특별한 대책이라도 있다는 게냐? 있으면 어디 한 번 내놔 봐라. 부처님께서도 못하신 일을 네가 무슨 수로 해?”

“왜 못해요?”

“……?!”

“그놈들은 말이죠. 힘에 약해요. 하지만 힘이 있다고 마냥 공포로 짓누르기만 하면 그건 바로 같은 수준에 불과한 사람이 되는 거죠.”

당연한 말이다.

악을 악으로 누르기만 해서야 같은 수준일 뿐이니까.

“그 녀석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수준의 관리에요. 인신매매 사형, 부녀자 강간 사형, 힘만 믿고 다른 구역 쳐들어가는 놈들은 박살 등등 엄격한 규율을 세워 지키도록 하되 지금 하는 것들은 인정해 주는 거죠.”

“호오,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빈승은 이제야 알 것 같소이다. 용 시주께서는 지금 차악이라는 개념을 말씀하는 것 같구려.”

용무린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대사님 말씀대로에요. 어차피 뽑아도, 뽑아도 계속해서 돋아나는 잡초 같은 놈들이니 아예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를 하자는 것이죠. 저는 녀석들에게 극악을 포기하게 하는 대신 차악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게 한 거예요.”

“킁, 뜻이야 다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당당한 정파의 일원이 흑도 나부랭이들 관리나 하다니, 나는 정말 못마땅하다 인석아.”

계속해서 트집을 잡는 화운장로를 향해 일각대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적당한 수준의 통제가 필요하다! 그 말에 동감을 표합니다, 용 시주. 그로 인해 홍적로의 많은 사람들이 평안을 찾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지요.”

“이봐, 일각! 흑도의 잡배들이야. 당당한 정파의 일원이 흑도 잡배 따위 관리나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다른 정파의 거대 문파들 역시 저와 같은 방법을 쓰고 있지 않나요?”

“누가? 대체 어떤 놈이?”

고함을 버럭 질렀지만 용무린은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그간 속에 품어왔던 생각을 그대로 밝혔다.

“개방도 그렇고 소림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지요.”

“뭐야?”

“생각해 보세요. 개방의 총타가 자리한 개봉에는 흑도의 잡졸들이 아예 없나요?”

“……!”

화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를 펴지 못해서 그렇지 개봉부 주변에도 흑도의 잡졸들은 어지간히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있잖아요. 그 이유가 뭐죠? 없애도, 없애도 또 나타나니까 그냥 적절히 관리, 아니 큰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그냥 눈감아 주는 거잖아요.”

“…….”

“적극적인 관리를 하느냐, 짐짓 깨끗한 체 뒤로 물러나 있느냐의 차이일 뿐 제가 생각하는 것이나 다른 정파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그래도 그것은……. 당당한 정파가 공공연히 그런 일에 나선다는 것은…….”

지지 않으려는 듯 화운장로가 목청을 돋웠다.

그때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던 일각이 불법을 설파하듯 입을 열었다.

“지장보살께서 그러셨지요.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랴?’ 맞습니다. 모두가 해탈을 하지 않는 한 흑도의 잡배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해서 생겨나지요. 차라리 곁에 두고 너무 악한 짓은 하지 못하도록 하는 편이 민초들을 위해서는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선배.”

“허어!”

더는 뭐라고 트집을 잡지 못하겠는지 화운이 입이 굳게 닫혔다. 그런 화운장로를 향해 용무린은 쐐기를 박았다.

“화운장로님은 지금 무한의 밤이 얼마나 조용해졌는지 아세요?”

“……!”

“홍적로를 비롯해 흑도 녀석들이 있는 주변은 활기만 돌지 악다구니는 없어요. 왜냐?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저에게 박살이 날 걸 잘 알기 때문이죠.”

“……!”

“그놈들이 걷는 보호비 문제도 그래요. 제가 확 깎아서 동결을 시켜 버렸어요. 그래야 상생을 하게 되니까요. 한 덩어리로 묶어 놓은 통에 이제는 주루나 객잔 그 어느 곳도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어요.”

“허허허. 대단하시오, 용 시주.”

실제 요 며칠 사이 무한의 밤거리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용무린의 말대로 되었다. 그러니 험한 일을 하는 기녀들이나 점소이 작은 규모의 객잔 등 모두가 마음 편하게 장사를 했다.

“이제는 웃을 일만 남았어요. 흑도 놈들에게도 좋아요. 비록 수입이야 조금 줄어들었지만 싸울 일도 습격당할 걱정도 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제는 되레 안정감을 느끼고들 있을 거예요.”

그것 또한 사실이었다.

“커흐흠. 되었다. 흑도의 잡졸들 따위 구워먹든 삶아 먹든 네가 알아서 해라. 정파 위신에 먹칠하는 짓만 하지 말고. 알아들었냐?”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화운도 적당히 선을 그었다. 뒤로 물러났다.

“예, 장로님. 후후훗.”

사뿐사뿐.

용무린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