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어서 와. 빈집털이는 처음 당해 보지? (18/104)

9.어서 와. 빈집털이는 처음 당해 보지?

이제는 작은 점이 되어가는 용무린과 화운, 일각 세 사람을 지켜보던 보부상 하나가 짊어지고 있던 봇짐을 급히 내렸다. 안에서 작은 먹통과 붓을 꺼내들었다. 쪽지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용무린, 화운, 일각 삼 인 하북을 향해 진로를 잡았음. 벽소추와 백리천월마저 남겨두고 은밀히 세 사람만 가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천기자를 향해 가는 것으로 사료됨.

-소가주님의 의식은 돌아왔으나 운신이 가능하기까지에는 시일이 많이 걸릴 듯함. 비무를 빙자한 무자비한 구타였다는 증언이 나왔음.

푸드득.

쪽지를 발목에 매단 비둘기 한 마리가 힘차게 어디론가 날아올랐다.

***

“저 자식, 저거 지금 전서구 날린 것 맞지?”

“맞아. 확실해.”

“드디어 잡았다.”

“새끼, 하도 자연스럽게 보부상 연기를 하기에 내가 잘못 봤나 한참을 고민했네.”

“이제 꼬리를 잡았으니 됐어. 저놈 뒤만 쫓으면 돼.”

“움직인다. 가자.”

“그래.”

개방의 추밀원 소속 이결 제자 두 명의 움직임이 한층 더 은밀해졌다. 다시금 완벽한 보부상이 되어 버린 밀전 소속 무사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모습을 숨긴 채 용무린 일행의 뒤를 쫓으려는 밀전과 그런 밀전의 뒤를 잡아 몸통을 밝히려는 개방 추밀원의 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밀전은 개방 추밀원으로 인해 용무린의 뒤를 계속해서 쫓지 못했고 개방의 추밀원은 밀전의 고수를 끝내 놓치고 말았다.

“이런 멍청한 놈들. 대체 수련을 어떻게 했기에 그 따위 놈들을 놓쳐?”

“에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세요?”

“그럴 수도 있긴 뭐가 그럴 수도 있어?”

단단히 화가 났는지 화운장로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돌아가기만 해 봐라. 지옥수련이 무엇인지 내 단단히 보여주도록 하겠어.”

화운장로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괜찮아요, 장로님. 어차피 가서 놈들을 조지면 몸통이 나오게 되어 있다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정말 그래 줄까?”

“믿어 보시지요, 선배. 용 시주는 그야말로 보기 드문 천재가 아닙니까? 게다가 합비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마졸의 꼬리가 이미 노출되어 있으니 기대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들었죠? 저만 믿어요, 저만.”

“끄응. 그래, 알았다. 네 멋대로 해라.”

그래서 화운과 일각 두 사람은 용무린의 뒤만 졸졸 따라 움직였다. 용무린은 두 사람을 이끌고 잘도 하북의 성도를 향해 이동했다.

그로부터 열흘.

용무린과 화운 그리고 일각 대사는 드디어 하북의 성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용무린은 성도의 중심을 가로질러 대뜸 하오문의 분타인 극락루를 찾았다. 화운장로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와하하. 좋구나, 좋아. 오늘 이 거지가 목의 때를 제대로 벗겨 보겠구나.”

“커흐흠. 저어기, 용 시주. 날이 저물었으니 쉴 곳을 찾는 것은 이해하는데, 그러면 적당한 객잔을 찾아 쉬는 것이 어떻겠소?”

화운장로는 모처럼 술을 마실 생각에 들떠 있었고 일각 대사는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용무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지금 쉰대요?”

“뭐야? 그럼 예까지 와서 술 한 잔도 못 마신다는 거야?”

“그러면 이곳은 어째서…….”

씨익.

용무린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모름지기 기습은 속전속결 아닙니까? 길잡이 찾아서 당장 놈들을 때려잡아야지요. 몇 곳인지는 알지만 그놈들 위치는 저도 모른다고요.”

“아하, 그래서? 그러면 이곳이 혹 하오문과?”

“아, 젠장. 좋다 말았네.”

피식.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후딱 다녀올게요.”

“무린아.”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며 화운장로가 용무린을 불러 세웠다.

“예?”

“올라갈 필요 없다. 놈들의 위치 따위, 우리 애들도 다 알아. 녀석들 앞세우면 돼.”

“누가 그걸 모르나요?”

“그러면?”

“어차피 이 일로 인해 하오문이 제게 빚을 지는 셈이잖아요. 그건 확실히 짚고 와야죠.”

정보료 퉁 치는 것 정도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 용무린이었다.

피식.

화운장로가 풀썩 웃었다. 단숨에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오늘의 일이 마무리가 되면 확실히 하오문은 용무린에게 큰 빚을 지는 셈이 된다.

“알았다. 빨리 다녀 오거라.”

“용 시주. 제발 빨리 좀…….”

“예, 알았어요.”

그렇게 용무린은 극락루 안으로 사라졌고 화운장로와 일각대사는 보기 드문 구경거리가 되었다. 두 사람을 향해 기녀들이 툭툭 장난을 걸었다.

“호호홋. 꽤 독특한 손님들이 오셨네?”

“스님. 스니-임. 어여쁜 제가 그렇게 보고 싶으셨어요? 잘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제가 극락이 어떤 것인지 오늘 확실히 가르쳐 드릴게요.”

“호호홍. 우리 거지 할아버지는 아직도 정력이 남아도시나 보다. 허리 꼿꼿하신 것 좀 봐. 거기도 아직 허리마냥 꼿꼿하시려나?”

끈적한 농담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제기랄! 지금쯤이면 우리 개방의 제자 놈들이 주변에 쫙 깔리기 시작했을 터인데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그냥 우리 애들 앞세워서 가자고 고집할 것을…….’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화운장로는 성질을 삭이느라 무지 애를 써야만 했고 일각은 그저 눈을 질끈 감은 채 염불만 외워댔다.

그렇게 이각쯤이나 지났을까?

“다 끝났어요.”

환한 얼굴이 된 용무린이 계단을 신나게 내려왔다. 그 뒤를 따라 하오문도로 보이는 사내 열댓 명도 함께 따라 움직였다.

“가시죠, 장로님 대사님.”

영겁과도 같던 인고의 시간이 드디어 끝이 났다.

“용 시주! 어, 어서!”

“그래. 빨리 좀 가자. 에잉, 고연 것들.”

인고의 시간이 너무 힘들었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바쁜 걸음으로 용무린의 뒤를 따랐다. 쓴 웃음과 함께 용무린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

부들부들.

상관초웅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다.

“이, 이런 멍청한 놈!”

그의 손에는 작은 쪽지가 들려 있었다.

밀전이 날려 보냈던 바로 그 소식이었는데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이 상관초웅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능력이 되지 않으면 피할 것이지. 왜 그놈과 비무를 벌여 결정적인 순간에 따라 나서지도 못할 지경이 되느냔 말이다.”

무엇 때문인지 개방의 거지들이 용무린과 화운, 일각의 뒤를 철저하게 차단했다. 하마터면 밀전의 고수가 잡힐 뻔했으니 그 흉험함을 잘 알 수 있었다.

“필시 천기자를 찾아 떠나는 길이었을 터인데…….”

비룡문까지 함께 동행했었던 벽소추와 백리천월조차 남겨둔 채 셋만 떠나는 길, 분명히 천기자와 관련이 있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고정하십시오, 가주님.”

부복하고 있던 매부리코 사내 손사욱이 나섰다.

“천기자가 진실로 천기를 읽을 수 있다면, 실상 소가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하더라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천기자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자리를 피해 버렸을 테니까요.”

“……!”

“함정을 파야 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천기를 살피는 그 능력으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로 짓쳐들어 단숨에 낚아채야만 합니다.”

천기자가 진정으로 천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 가정을 한다면 솔직히 손사욱의 말 이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휴우, 멍청한 놈.”

그래도 부글부글 끓는 속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인지 상관초웅은 한마디를 더 하고 나서야 노기를 삭였다.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마령단은? 놈들에게 배분했나?”

“예, 가주님. 열다섯 곳의 우두머리들에게 빠짐없이 지급 완료했습니다.”

“좋아. 이제는 그야말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그래.”

“그렇습니다, 가주님. 마령단 복용이 끝난 후 그분들을 모시고가서 심령대법을 펼치기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크흐흐. 드디어 지난 이 년 동안 공을 들여왔던 마령전사의 완성이 눈앞이로구나.”

자신 앞에 펼쳐질 황홀한 미래를 그려 보는 듯 상관초웅은 한참동안이나 홀로 미소 지었다.

***

꽤 커다란 장원이 빤히 보이는 모퉁이.

용무린과 함께 계단을 내려왔던 하오문도 중 하나가 몸을 숨긴 채 장원을 가리켰다.

“저곳입니다, 대협.”

“저게 흑갈방이야?”

“예, 대협. 요즘 들어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흑갈방의 근거지가 바로 저 장원입니다.”

“구성원은?”

“흑갈방주 마영풍. 부 방주 뇌혁기. 다섯 명의 사갈 조장 등등 위험한 놈들은 열쯤이고 나머지 150여 명은 그저 그런 잡놈들입니다, 대협.”

“열 놈이라…….”

그 열 놈이 마공을 익히고 있는 놈들일 것이다.

‘그때 내 손에 죽은 놈들을 빼고 계산해야 하나? 아니면 넣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불쑥 짜증이 일었다.

‘에라이 쌍, 계산은 무슨 놈의 계산?’

역시 아직은 신마 시절의 향수가 너무 짙다.

적을 앞에 두고 있을 때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는 것 자체가 싫다.

“안에 다 있겠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고만고만한 놈들은 자주 보이는데 수뇌부 놈들은 요즘 잘 보이질 않아서……. 솔직히 반반의 확률입니다.”

“그래? 확인해 보면 되지 뭐.”

어차피 두들기다 보면 다 튀어 나오게 되어 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끝내고 또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하니까.”

“혼……자 들어가십니까?”

“왜? 너도 할래?”

움찔.

“사양해도 되겠습니까?”

피식.

“귀찮아. 어차피 안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

공연히 데려가 녀석의 얼굴이 팔려봐야 하오문만 베일에 싸인 몸통과 원수가 질 뿐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

후우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무린의 신형이 흑갈방의 정문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흑갈방의 두터운 정문이 박살이 났다.

조각조각 나뉘어 밤하늘 높이 비산했다.

헤실.

용무린의 입가에 개구쟁이와 같은 미소가 걸렸다.

‘난 이렇게 문 때려 부수고 들어가는 게 정말 좋더라.’

조심조심 숨어들어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가 살수처럼 원하는 놈 하나만 콕 집어 달려드는 기습 따윈 정말 성질에 맞지 않는다.

“마! 영! 풍! 나와라! 면상 좀 보자!”

광포한 용무린의 외침이 흑갈방 전역을 뒤흔들었다.

***

그 순간 마영풍은 수뇌부들과 함께 흑갈방으로 복귀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흘 후에 거사를 치를 거면 오늘부터 준비를 빡세게 해 놓아야 하겠습니다, 방주님.”

부 방주 뇌혁기의 말에 마영풍의 고개가 깊숙이 끄덕여졌다.

“당연하지. 곧 죽어도 하오문이야.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몇 놈 감당하지 못한단 말이야. 특히 분타주로 있는 그 유하령이라는 계집과 그 뒤에 숨어 있는 곱추 노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늘 모인 다섯 방파의 연계가 특히 중요해.”

인근의 안면 있는 방파 다섯이 한데 모였다.

하오문의 분타를 완벽하게 세상에서 지우기 위해서였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살려두면 안 돼.’

어지간만 하면 그냥 얌전히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꼴에 정보단체라 그런지 자꾸만 자신들의 뒤를 파고들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공을 수련하는 장면을 들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지 암.’

자신들을 이끌어 주는 분의 말씀대로 한 지역의 종주가 되기 위해서는 시기와 준비 모두가 완벽하게 무르익어야만 한다.

‘새로 익히기 시작한 마공을 최소한 수월하게 펼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끌어 올리고 아우들 역시 어느 정도는 정파 놈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어야만 해. 그래야만 마음껏 세상을 질타할 수 있는 거야.’

마도의 가치가 하늘이 되는 세상.

그 세상에서 한 지역을 오롯이 차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영풍의 꿈이었다.

“하여간 연장들 꼼꼼히 챙겨라.”

“염려 마십시오, 방주님.”

“확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각자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내 방에 좀 들러라. 그분께서 내리신 단약이 있으니 하나씩 받아가. 나흘이나 여유가 있으니 그 사이 내공 좀 바짝 올려야지.”

지금 함께 있는 아우들의 내공은 모두가 일류의 끝자락이었다. 새로이 받아들인 다섯 놈들마저 영단 덕에 일류의 초입에 다다랐다.

하지만 어제 또 다른 단약이 내려왔다.

그 단약마저 복용하고 나면 나흘 사이 한층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어쩌면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내 몫은 두 개라고. 크흐흐흐.’

마영풍은 소리 없이 웃었다.

먹을 때마다 폭풍처럼 늘어나는 영단의 복용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오오오! 감사합니다, 형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형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감동을 잔뜩 처먹은 녀석들이 앞을 다투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좋으면서도 마영풍은 짐짓 투덜거렸다. 톡 쏘아 붙였다.

“방주님이라고 해 이 새끼야. 우리가 뒷골목 잡배냐? 하여간 자식들이 품위가 없어요, 품위가.”

“헤헷. 죄송합니다, 방주님.”

“명심하겠습니다, 방주님.”

그렇게 찧고 까불며 도착한 흑갈방.

“뭐야? 왜 이래?”

“이런 썅!”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흑갈방의 정문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훅 밀려드는 진한 피 냄새.

다 죽어가는 듯 희미한 비명 소리까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습격입니다, 방주님.”

“어떤 개자식들 짓이야?”

타닷. 휘리릭.

마영풍을 시작으로 모두가 흑갈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흠칫.

기세 좋게 달려 들어갈 때와는 달리 마영풍과 수하들의 몸은 그 자리에서 덜컥 굳었다.

업소 관리를 위해 밖에 나가 있는 놈들을 제외해도 근 칠십여 명이나 될 텐데 그 많은 수하들이 전부 핏물 속을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씨이익.

찰랑일 정도로 흥건한 핏물 속에 우뚝 선 채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어서들 와.”

용무린이 활짝 웃으며 마영풍을 반겼다.

“빈집털이는 처음 당해 보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크크크크큭.”

“……!”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핏물을 밟고 홀로 우뚝 선 용무린이 비릿하게 웃고 있었지만 감히 그 누구도 달려들지 못했다.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자신들 역시 일신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마공을 지니고 있었지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그 무엇인가가 용무린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 눈빛이…….’

어둠속에서도 새하얗게 빛을 발하는 용무린의 두 눈은 마영풍과 수하들로 하여금 사신의 강림을 직접 목격하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마영풍이 누구냐?”

꾸울꺽.

“나, 납니다.”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집어 삼킨 마영풍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대거리가 존대로 바뀌었지만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마영풍을 향해 용무린이 손을 살짝 뻗었다. 동네 똥개 부르듯 까딱였다.

“어떤 상황인지 알겠지? 들어와!”

“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피식.

“원한? 당연히 있지.”

“……?!”

“말하기도 귀찮다. 준비해라. 내가 먼저 간다-앗!”

스파-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무린이 공간을 접듯 마영풍 앞으로 쏘아졌다.

“우웃!”

스릉. 촤아아-악!

화들짝 놀란 마영풍이 대감도를 뽑아들었다. 본능적으로 한 가지 검초를 펼쳐냈다. 날카롭게 그어지는 대감도를 따라 검은 기운이 훅 뿜어졌다.

반짝.

용무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네놈들이 정말 맞구나.”

쐐애애액. 피이이이잉.

진천수라도 2초식 수라광망과 비연오식 1초식 비연난무가 동시에 펼쳐졌다. 마영풍은 물론이고 그 뒤에 늘어서 있던 놈들까지 한꺼번에 휘어 감았다.

***

“으아악.”

“커헉!”

“끄아악!”

무참한 비명소리가 피어오르는 곳.

흑갈방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흥 흑도문파인 독안파의 근거지.

“이놈! 그 저주받을 마공을 대체 누구에게서 사사했는지 어서 밝히지 못할까?”

화운장로는 독안파의 두목인 여겸을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쉬파앙. 퍼퍼퍼퍼퍽.

“크아악. 모, 몰라 이 거지야. 쿨럭. 모른다고-오!”

연화장법에 휘말려 연신 피를 게워내면서도 여겸은 용케도 고개를 흔들었다. 악을 썼다.

“우와악.”

촤아악. 촤촤촤아-악.

발악이라도 하듯 검을 마구 휘둘렀다. 여겸의 검 끝에서 검은 색의 기운이 흉험하게 솟구쳤다. 화운장로의 목과 심장을 향해 밀려갔다.

“이노-옴!”

휘슷.

취팔선보가 펼쳐졌다. 화운장로의 몸이 검은 기운 사이를 환영처럼 누볐다. 여겸을 향해 짓쳐들었다.

“껄렁한 마공으로 감히 누굴! 하앗!”

후우웅. 따아앙.

독한 마음을 먹고 뿌려낸 전광연화장력에 여겸의 검이 뚝 부러졌다. 그러고도 모자라 쭉 밀고 들어갔다. 여겸의 가슴에 그대로 쏟아졌다.

터어엉. 와드득.

그 서슬에 갈비뼈가 몽땅 주저앉았다.

“허으으.”

여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종이 인형이라도 되는 듯 흐느적이다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정신을 놓았다.

“이놈. 모든 사실을 바른대로 토해 내지 않고서는 절대로 버틸 수 없도록 만들어 주마.”

화운장로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여겸의 마혈을 짚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크게 고함을 질렀다.

“마공을 펼치는 종자들에게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도주하는 놈들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나머지 잡배들까지 모두 잡아 조사해야만 한다.”

“예, 장로님.”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하아아!”

뿌아악. 빠아악. 빠바바박.

“커헉!”

“크아악.”

“허으으.”

오래지 않아 괴이한 마검초를 뿌려대던 여겸의 직속수하 열 명 역시 정의개들의 타구봉법이 쓰러졌다. 그들 역시 화운이 직접 마혈을 짚었다. 개방의 분타로 끌고 가 한꺼번에 문초를 할 생각인 것이다.

화운장로의 시선이 동쪽 하늘로 향했다.

이십여 리 밖에 떨어진 곳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용무린을 떠올렸다.

‘일각이야 염려할 것 없고……. 그 녀석은 어떻게 잘하고 있으려나?’

굳이 홀로 싸우고 싶다는 것을 어른의 권위로 밀어 붙여 정의개 스물을 뒤늦게 붙여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끼는 녀석이다 보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

독안파에서 북쪽으로 100여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흑지주파에서도 치열한 전투, 아니 사냥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미타불!”

후우웅. 터어엉.

“크아악!”

백보신권 한 수에 피를 뿜어내며 나가떨어진 흑지주파 두목을 시작으로 개방의 고수들 협공에 마공을 익힌 놈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으아아, 이 거지새끼들아.”

“다 죽어엇!”

콰우우. 피이잇.

무한의 외곽에서 용무린을 위협했던 바로 그 괴이한 마검초가 매섭게 짓쳐들었지만 생각만큼의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마공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고 아직 마령전사로 거듭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한의 외곽에서 용무린에게 핵심 고수들이 한꺼번에 쓰러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들이 마공을 익히기 시작한 것은 이제 불과 1년, 애초에 죽음은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놈, 대가리를 예쁘게 내밀 거라.”

“여기도 있다, 마졸아.”

파아앙. 패애액.

퍼억. 빠바박.

개개인의 무위만 따져도 결코 밀리지 않는 수준의 정의개들인데 마졸 한 사람당 두 명 혹은 세 명씩 협공까지 하고 있으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크악.”

“커어억.”

마공을 익혔다지만 놈들은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빠른 속도로 쓰러져 갔다.

“배후를 밝혀야겠지.”

푸욱. 푹푹푹.

일각대사가 손수 나섰다. 마공을 사용하던 자들을 일일 찾아 직접 마혈을 짚었다.

“개방의 영웅들께서는 속도를 조금 더 높여 주시오. 이 밤이 가기 전에 두 곳을 더 돌아야만 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대사님.”

“이미 분타의 모든 거지들과 인근현의 거지들까지 모두 다 나섰습니다.”

“절대로 도망치지 못합니다, 대사님.”

정의개들이 목청을 돋웠다.

“허허허. 선재, 선재라…….”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일각대사의 시선 역시 동쪽 하늘로 향했다. 뛰어남을 알기에 더욱 아껴주고 싶은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용 시주.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그래도 부디 조심하시오.”

***

“용 소협!”

“손속에 사정을 두십시오-오!”

“살려야 놈들의 배후를 캐낼 수 있습니다!”

한 발 늦게 달려온 정의개들이 혼비백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쉬각. 쉬가가각. 피리리리릿!

너무 늦었다.

“……!”

“……!”

방주 마영풍과 부 방주 뇌혁기 그리고 두 명의 사갈조장이 작살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마영풍의 목에 붉은 색의 실금이 그어지는가 싶더니 붉은 피가 확 튀었다. 몸은 그대로 서 있었는데 머리만 옆으로 미끄러져 툭 떨어졌다.

뇌혁기는 더 심했다. 오른쪽 어깨 위로 들어갔던 풍뢰가 몸 안에서 반원을 그려냈다. 그 부위가 소리도 없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사갈 조장들의 몸은 아예 형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글자 그대로 부서지듯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비연오식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움찔!

도우려 달려왔던 정의개들마저 흠칫 몸을 떨 정도로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스윽.

“……!”

말도 없는 용무린의 시선이 정의개들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에는 사냥을 방해받은 것에 대한 일말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꿀꺽.

“요, 용 소협.”

“지, 진정 하시오 용 소협.”

마른 침을 크게 집어 삼킨 정의개들이 용기를 내었다. 용무린을 불렀다.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던 용무린은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이런! 내가 너무 흥분했구나.’

감히 비룡문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여쁜 여동생을 노렸던 놈들을 다시 마주했다고 생각하니 주체하기가 조금 힘들었던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던 정의개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대체…….’

‘학살? 아니 도살인가?’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입만 쩍 벌렸다.

마공을 펼치던 놈들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단순한 흑도의 잡배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도 역시 참혹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끄으윽.”

“사, 살려 줘-어.”

“흐으으.”

바닥을 뒹굴고 있는 놈들 중에 몸이 성해 보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팔 아니면 다리 혹은 두 곳 모두 툭툭 떨어져 나가 있었다. 무려 70여 명, 그 모두가 하룻밤 사이에 불구의 신세로 변해 버린 것이다.

“……!”

“……!”

정의개들의 시선이 용무린에게로 향했다.

꿈틀.

용무린의 눈꼬리가 슬쩍 위로 치솟았다.

‘왜? 뭐?’

정의개들의 시선이 솔직히 시답잖았다.

“그 시선은 뭐죠? 바닥에 흩어져 있는 대감도, 철퇴, 박도가 안 보입니까? 저런 것들 들고 달려와 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이었는데 그러면 혼자 둘러싸인 채 여러분이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어야 했습니까?”

“아, 아닙니다, 소협.”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정의개들 눈에는 용무린이 지독하게 패도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솔직히 저 정도 능력이 되면 적당히 제압만 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이, 뭐 어쩌겠어? 맘대로 생각해.’

용무린은 끝까지 성질대로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마공 따위를 믿고 감히 본문을 습격하려던 놈들에게 따끔한 본보기를 남겼을 뿐입니다. 죽은 놈들은 마공을 펼쳤던 놈들뿐, 나머지 놈들 중 죽은 놈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용무린은 그 말을 끝으로 뒤로 물러섰다.

본보기를 확실히 남겼으니 나머지는 너희들에게 맡긴다는 듯이.

“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들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멈추어라, 마졸아.”

후욱. 후우욱.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통에 마주 검을 쳐가지 못했던 사갈 조장 두 명이 슬그머니 도주를 감행했다. 물론 멀리가지는 못했다.

“어딜 가려고!”

“어떤 놈에게 배운 것인지 실토해라 마졸!”

“차아아!”

연쌍비 신법이 이은 개방의 일절 타구봉법이 도주를 차단했다. 바로 옭아매었다.

빠악. 퍼억. 뻐버버벅.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무린의 입가에 비웃음이 살짝 돋아났다.

‘저게 지금 1대 몇으로 싸우는 거야?’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정의개들은 마공을 뿜어내는 사갈조장들을 다수의 힘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들도 죽어라 패면서 왜 나만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건데? 어우, 저 사갈조장 놈은 뼈가 도대체 몇 개나 부러지는 거야?’

압도적인 무력으로 깔끔하게 팔다리만 잘라내고 말았던 자신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생각되었다. 정의개들의 모습이 그만큼 가식적으로 보였다.

완전히 잘라내지만 않으면 인간적이라는 건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깔끔하게 잘린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할 텐데?

‘하여간 정파 녀석들이란…….’

용무린은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하북 성도 외곽에 자리한 관제묘.

그 주변에 초막 오십여 호가 난립하고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개방의 하북 성도 분타였다.

어느새 환하게 떠오른 태양 아래 피범벅이 된 흑도의 무리 수십여 명이 분타 중앙 광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지난 밤 전격적인 기습으로 붙잡아온 마공을 익힌 흑도 무리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잔뜩 겁을 집어 먹어 가늘게 몸을 떨고만 있었다. 그런 사내들을 향해 화운장로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감히 무림의 금기인 마공을 익힌 놈들이니 단칼에 죽여도 무방하나 내 마지막으로 살 기회를 주겠다.”

“……!”

“……!”

절망적인 상황에 던져진 한 줄기 희망.

사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슬그머니 서로를 돌아보았다.

“네놈들에게 마공을 사사한 놈이 누구냐? 그것만 밝힌다면 다시는 무공을 펼치지 못하도록 조처만 한 후 놓아주도록 하겠다.”

쉽게 말해 단전을 폐하고 사지근맥을 자르겠다는 뜻.

어찌 보면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다.

하지만 ‘개똥밭에서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더 낫다.’ 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잡초 같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은 것이 본능인 것이다.

“이, 이름은 모릅니다.”

망설임 끝에 한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생존본능의 발동에 나머지 녀석들 역시 앞을 다투어 자신들이 아는 것들을 떠벌리기 시작했다.

“매달 초하루에 찾아오는데 두목이 은인이라고만 불렀습니다.”

“우리에게는 매달 초이틀에 찾아왔습니다.”

“저희도 이름이나 소속은 모릅니다. 두목만 상대한 후 돌아갔습니다.”

“무공도 영단도 모두 두목이 은인께 받아서 저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증언들이 튀어 나왔지만 딱히 배후를 특정할 만한 정보는 없었다. 비룡문을 노렸던 마공의 배후 그리고 성산의 기문진을 파훼하고 유진을 훔쳐 달아났던 존재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과연 배후가 누구란 말인가?’

‘정녕 마교의 종자들이 다시금 활동을 시작했다는 말인가?’

화운장로와 일각대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공을 익히고 있는 흑도방파를 열다섯 곳이나 박살내는 전공을 올렸지만 결국 우환거리는 해결되지 않았다. 배후를 찾아내 징치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또 이런 일들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마지막 녀석의 입에서 용무린을 비롯한 사람들의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말이 쏟아졌다.

“두목에게 잔뜩 향응을 받은 놈이 밖으로 나서는 모습을 우연히 한 번 본적이 있었는데, 매부리코에 눈이 쫙 째진 50대 중반의 사내였습니다.”

반짝.

‘그놈이다!’

‘무한의 외곽에서 봤던 놈인데?’

‘우리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긴 했구나. 과연 놈들과 관련이 있었어.’

용무린과 화운장로와 일각대사의 눈에서 거의 동시에 불꽃이 튀었다.

“그놈 이름 혹시 알아?”

“사는 곳은?”

“그놈이 소속된 문파가 뭔지 들었어?”

용무린과 화운, 일각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폭풍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저, 그, 그게…….”

녀석이 더듬거리며 입술을 떼었다.

“모, 모릅니다.”

허탈했다.

‘그 새끼, 뜸이나 들이질 말든지!’

“콱!”

용무린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화들짝 놀란 녀석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정말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정말? 진짜야?”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후우-우.”

“아미타불…….”

화운장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던지 지켜보고 있던 일각대사 역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지막이 염불만 외웠다.

“괜찮아요, 장로님. 대사님.”

오직 한 사람 용무린만이 천하태평으로 돌아왔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인석아?”

“배후를 찾아야만 합니다, 용 시주. 그래야만 성산의 일도 해결을 할 수 있습니다.”

“개방에서 제가 부탁했던 어젯밤 일에 대한 뒤처리만 제대로 해 놓았다면 틀림없다니까요!”

“뒤처리? 그거야 뭐…….”

화운장로의 시선이 분타주에게로 향했다.

하북 성도의 개방 분타주 나선웅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근 두 현의 거지까지 깡그리 불러 모아 풀었습니다. 전투의 흔적을 지우고 주변의 시선을 차단했습니다. 옷까지 놈들의 것으로 갈아입은 후 마치 놈들인 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입니다.”

씨익.

화운장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렇다는군.”

“그럼 됐어요, 장로님. 기다려 보자고요.”

“정말 배후에 숨어 있던 놈들이 생각처럼 와 줄까?”

“와요, 온다고요.”

“안 오면? 그때는?”

기다렸다는 듯 일각대사가 나섰다.

“그때야말로 천기자 어른께 갈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지.”

화운장로가 쾌재를 불렀다.

‘젠장. 그놈의 천기 뭐시기라는 박수무당 참 더럽게 좋아하네.’

“걱정마세요. 옵니다.”

용무린이 고집스러운 얼굴로 잘라 말했다.

“에잉, 그 녀석 고집하고는…….”

“일단은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선배.”

“알았다, 알았어. 일단 며칠 기다려 보자꾸나. 하지만 영 감감무소식일 것 같으면 함께 천기자 선배에게 가는 거다. 알았지?”

“……!”

용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얼른 좀 와라.’

지금 마음만 같아서는 기다리던 마공의 배후가 찾아와도 너무 반가워 목을 베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내가 잘해 줄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 한 짝, 다리 한 짝씩만 가져가고 목숨은 살려줄 의향도 있었다.

‘이야, 거의 활불이네 활불.’

용무린은 자신의 이 자비롭고 은혜로운 마음이 흑도의 잡배들이 은인이라 부르는 놈들에게로 가 닿기를 바랐다.

‘알았지? 빨리 좀 와라.’

그 사이 마공을 익힌 녀석들을 상대로 약속했던 조치들이 취해지기 시작했다.

“제, 제발…….”

“크아악!”

단전을 폐한 후 사지근맥을 잘라 두 번 다시는 무공을 펼칠 수 없도록 만드는 작업이었다.

“닥쳐라, 마졸.”

“으아악!”

처절한 비명소리를 들으며 용무린은 풀썩 웃고 말았다.

‘차라리 깨끗하게 죽이는 게 더 낫지 않나?’

무인을 상대로 저런 형벌을 가하는 것과 죽이는 것 둘 중 어떤 것이 더 잔인한 것인지 도통 분간이 가지 않는 용무린이었다.

***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랐다.

모두가 잠든 시간, 상관세가주의 집무실 불은 아직도 꺼지질 않았다.

상관초웅은 내공수련으로 하루를 마치는 중이었다.

그런데…….

“쓰으읍. 호오오.”

어떤 내공심법을 수련하는 것인지 상관초웅의 얼굴에 언뜻 악마의 형상이 어렸다.

“쓰으으읍. 호오오오오. 쓰으으으읍. 호오오오오오.”

상관초웅의 호흡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검붉은 빛의 악마 형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숨결을 따라 흘러나온 검붉은 기운이 입으로 들락날락했다.

어느 한 순간,

“호오오오오-!”

내뱉는 숨결을 따라 흘러나온 검붉은 기운이 후광처럼 상관초웅의 등 뒤에 맺혔다. 나래를 펴듯 쫙 펼쳐졌다. 섬뜩하리만큼 무섭게 생긴 악마상이 완전한 형상을 갖추었다.

“쓰으으으으읍!”

마지막 들이쉬는 숨결을 따라 상관초웅의 몸에 남김없이 흡수가 되었다.

반짝.

상관초웅의 눈이 떠졌다.

놀랍게도 상관초웅의 눈에는 아무런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것처럼 순수하고 맑아 보이기만 했다.

“크흐흐. 드디어 반박귀진의 경지에 올랐구나.”

초절정 경지의 끝자락.

여기에서 한 발을 더 나아가야 극마지경에 오르는 셈이지만, 솔직히 이 정도만으로도 구파일방의 어느 누구를 상대로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응? 왔으면 들어오너라.”

상관초웅의 명이 떨어지자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매부리코에 눈이 쭉 찢어진 사내 손사욱이 조심스런 동작으로 안에 들어섰다. 상관초웅의 얼굴을 일별하더니 그의 눈에 아무런 흔적이 나타나지 않자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대공을 성취하심을 감축 드립니다, 가주님.”

피식.

“대공은 무슨.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머니라.”

“…….”

“그래, 연락은 왔느냐?”

“방금 도착했습니다. 여기…….”

손사욱이 붉은 색의 종이를 꺼내 상관초웅에게 내밀었다.

가만히 종이를 읽어 나가던 상관초웅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앞으로 늦어도 이레, 귀한 손님이 찾아오겠구나.”

“혹시 그곳에서……?”

“그래. 음양자가 휘하의 제자 둘을 출발시켰다고 한다. 손님맞이에 차질이 없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가주님.”

“이레, 그 시간이면 녀석들의 준비가 다 끝나 있겠지?”

“그렇습니다, 가주님. 광증을 유발하는 마령단에 혈고를 섞어 나눠줬으니 복용하기만 했다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무공에 목이 마른 녀석들인지라 다들 복용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래, 알겠다. 음양자의 제자들이 도착하면 즉시 이리 모시도록 하거라.”

“충.”

***

시간은 참으로 빠르다.

이레라는 시간이 벌써 스쳐 지나갔다.

마영풍의 방에 마치 자신이 주인인 듯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용무린의 애가 닳았다.

‘아, 젠장. 오늘도 안 오려나?’

예상과는 달리 아직도 오지 않는 배후 인물 때문에 용무린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슬그머니 짜증이 날 정도였다.

‘오늘도 안 오면 내일은 정말 안달복달할 텐데 말이야.’

화운장로가 볼 때마다 들들 볶았다.

기약도 없이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느니 어서 빨리 천기자를 찾아가 도움을 얻자는 것이었다.

슬슬 불안했다.

솔직히 배후의 인물 중 하나가 찾아오리라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판단일 뿐 예정된 사실이거나 확인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류무공도 아니고 마공이야.’

그럼에도 용무린은 믿었다. 머지않아 배후인물 중 한 놈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믿을 만한 놈들도 아닌 흑도의 잡배들에게 무얼 믿고 마공을 뿌려 놓았겠어?’

제어에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안했을 것이다.

‘모두 합해 열다섯 곳, 관리라는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이레에 한 번씩 몇 곳을 택해 돌아가며 방문을 해야만 제어가 가능할 것이란 말이지.’

그렇게 믿고 기다린 것인데 오늘이 벌써 그 이레가 되는 날이었다. 시간은 벌써 야반삼경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밖은 잠잠하기만 했다.

‘내 생각이 정말 틀렸나?’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오지 않는다고 하면, 천기잔지 뭔지 하는 그 박수무당을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말이야…….’

이제야 슬슬 용무린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비룡문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배후세력을 찾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필릴리리리. 피리리릭.

딸랑. 딸랑.

밤하늘에 괴이하리만큼 섬뜩한 피리 소리와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라?”

용무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거,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한 것 같은데?”

환한 미소와 함께 용무린은 자리에서 즉시 일어섰다.

***

피리리릭. 필리리리리-.

딸랑. 딸랑.

도사들이나 씀직한 검은 일색의 관모를 푹 눌러쓴 노인 두 사람이 흑갈방의 중앙 대청의 지붕에 올라 서 있었다.

한 사람의 손에는 뼈로 만들어진 피리가, 다른 한 사람의 손에는 쇠로 만들어진 작은 종이 들려 있었는데 피리와 종에서는 끊임없이 괴이한 음이 흘러 나왔다.

“……!”

그들 뒤에 매부리코의 사내 손사욱이 인상을 잔뜩 쓰고 시립해 있었다. 아무리 그라 해도 두 사람이 연주하는 괴이한 음악은 듣기 거북했던 모양이었다.

피리리릭. 필리리리리-.

딸랑. 딸랑.

얼마간 연주를 계속하던 두 노인이 서로의 눈을 한 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무엇인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어째서 아무런 반응이 없지?’

‘확실히 마령단을 복용한 놈들이 맞나?’

‘그렇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어?’

‘지금쯤이면 몇 놈은 완전히 미쳐서 튀어나와야 하지 않나?’

‘거참.’

원래대로라면 피리소리와 종소리가 나자마자 흑갈방도인 양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개방의 방도들이 나설 것이었지만 용무린은 그것을 미리 막아두었다.

공연한 희생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대신 싸움이 벌어지면 최대한 빨리 연락망을 가동해 화운장로와 일각대사를 부르도록 말해 두었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놓치지 않게 하려는 안배였다.

“……?”

“……?”

두 노인의 시선이 손사욱에게로 향했다.

시선을 받은 손사욱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일 처리는 모두 확실합니다.”

저렇게 자신하는데 더 뭐라 하겠는가?

두 노인은 조금 더 해 볼 생각인지 연주에 사용하는 내공을 더 끌어 올렸다.

삐리리리릭. 필릴리리리.

딸랑. 딸랑. 딸랑.

기괴한 연주가 밤하늘 저 멀리 퍼져갈 때였다.

휘슷.

그들 앞에 누군가가 바람처럼 내려앉았다.

“여어, 왜 이제야 왔어? 한참 기다렸잖아?”

바로 용무린이었다.

움찔.

용무린을 일별한 손사욱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너는……?”

씨이익.

용무린의 입가에 흰 선이 쭉 그어졌다.

무한의 외곽에서 겨루어 보았던 손사욱의 얼굴을 곧바로 알아보았던 것이다.

스르릉.

용무린은 대뜸 풍뢰를 뽑아들었다.

“반갑다. 오랜 만이야. 두어 달이나 됐나?”

“……?”

“……?”

연주를 하던 두 노인의 시선이 설명을 요구하듯 손사욱에게로 향했다.

“이, 이놈! 네놈이 어찌 여길?”

손사욱이 황급히 두 노인을 향해 말을 이었다.

“저놈이 바로 무한에서의 일을 훼방 놓은 놈입니다. 비룡문의 소가주, 저놈을 잡는다면 비룡문은 그야말로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두 노인의 눈에 호기심의 빛이 어렸다.

용무린이 두 노인을 향해 이죽거렸다.

“내가 기습 따위를 싫어해서 아직 그 대가리가 붙어 있는 거야 이 영감태기들아.”

꿈틀. 파르르.

두 노인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물론 용무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 동네 똥개 부르듯 까딱였다.

“덤벼.”

“오냐,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애송이 녀석…… 우웃.”

“내 네 놈의 뼈마디로 마적(魔笛)을 만들어 네놈의 가문을 짓밟을 때 기쁜 마음으로 사용해 주……. 허엇!”

용무린을 향해 악담을 퍼붓던 두 노인이 화들짝 놀라 몸을 빼냈다.

패애액. 쉬각.

두 노인이 있던 자리에 섬뜩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덤비라던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든 용무린이 풍뢰를 그어 버렸던 것이다.

스파아앙.

피해 버린 노인 둘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용무린은 홀로 덩그러니 남은 손사욱을 향해 짓쳐들었다.

“크크큭. 젊은 놈이 먼저 나서야지 인마!”

쉬가아악. 피이잉.

풍뢰에 이어 소검비연까지 함께 풀려 나왔다.

“이놈잇! 차아아-!”

손사욱은 물러서지 않았다. 즉시 검을 뽑아들었다. 순간적으로 내공을 휘돌려낸 후 검에 실어 그었다.

후웅. 촤아아아-.

면도날처럼 얇게 응축된 검은 색의 마기가 쭉 솟구쳤다. 용무린의 전신을 난도질하려 들었다. 검강의 바로 전 단계인 검사였지만 용무린은 그저 즐겁다는 듯 웃기만 했다.

“크하하하. 좋아, 그 정도는 되어 주어야지.”

카각. 타타타-앙.

풍뢰가 짓쳐드는 검붉은 색의 검사를 마치 종이 베듯 마구 베어 버렸다.

피이이이-. 쉬리리릭.

그 사이 공간을 단축한 소검비연이 손사욱의 천령개를 노리고 뚝 떨어져 내렸다.

“이노-옴!”

“감히 우리를 무시하다니! 본때를 보여 주마!”

“귀령곡을 들려주마!”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필릴리리리-. 삐이이익-.

따라라라랑!

두 노인의 손에서 죽음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내공이 잔뜩 실린 음파가 용무린의 고막을 짓쑤셨다. 내부에 충격을 주었다.

움찔!

거침없이 떨어져 내리던 소검비연의 기세가 눈에 띌 정도로 약해졌다.

타아앙.

결국 손사욱이 휘돌려낸 검 끝에 걸렸다. 멀찌감치 뒤로 튕겨졌다.

‘끝이 아니야, 인마. 겪어 보았으니 알 텐데?’

튀이잉. 씨이잇. 씨시시시싯.

용무린의 손가락이 천잠사를 잡아 뜯었다.

소검비연 끝에 걸린 천잠사가 파도처럼 크게 출렁였다. 그대로 손사욱을 향해 부딪혀갔다.

“이야아-하!”

후웅. 패애액. 촤촤촤촤-악.

손사욱이 악다구니를 썼다.

얇게 응축된 검붉은 기운이 삼각형 두 개를 허공에 겹쳐 그려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언뜻 보면 육망성이 피어오르는 것 같아 보일 정도!

타앙. 타타타타-앙.

천잠사와 부딪힌 손사욱의 검사가 서로 상쇄되어갔다.

쇠 종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삐이이익. 삑삑삐이-익.

따아아-앙!

뼈로 만든 피리가 강렬한 음파를 쏟아냈다.

작은 쇠 종에서는 마치 범종이 울리는 듯 강대한 음파를 터뜨렸다. 그 모든 음파가 성난 파도처럼 용무린의 몸을 때렸다.

울컥!

용무린의 입에서 굵은 피가 튀었다.

‘이것들이 정말!’

내공에서만 밀리지 무공에서는 절대로 밀릴 생각이 없는 용무린의 자존심이 팍 상했다.

휘슷.

자신을 때렸던 음파에 몸을 실었다. 그 힘을 빌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쓰으읍! 쓰으으으읍!”

둥실 떠올라 허파가 터질 듯 숨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휘이이이-.

끝도 없이 숨을 들이켜는 용무린의 주변으로 불사신기의 힘이 눈에 보일 듯 소용돌이쳤다.

“이놈! 죽어라-아!”

손사욱이 따라 몸을 솟구쳤다.

쉬가악. 쉬가가각.

마공을 가득히 머금은 검 끝에서 면도날처럼 얇게 응축된 검사의 그물이 피어올랐다.

삐이익. 삐이이이익.

따아앙. 따아앙.

뼈로 만들어진 피리가 귀청을 찢어 놓을 듯 날카롭게 울렸다. 작은 쇠 종이 마치 범종이라도 된 듯 웅장하게 울렸다. 다시 한 번 모든 음파가 용무린을 향해 집중되었다.

바로 그 순간,

“쓰으읍!”

끝도 없이 들이켜던 숨이 드디어 멈춰졌다.

용무린이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때까지 끌어 모았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크아아아아-앙!”

불사신기를 가득히 머금은 사자후가 우레처럼 밤하늘 가득히 터져 나갔다.

적막한 밤에 소리는 제법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하물며 불사신기를 가득히 머금은 사자후야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으응?”

흑갈방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안파.

“이, 이 소리는?”

두목인 여겸의 방에서 뒹굴거리던 화운장로가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밖으로 튀어 나왔다.

삐이익. 삐이이이익.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소리 화살이 어지러이 날아올랐다.

정의개들의 것으로 들리는 호각 소리도 계속해서 한쪽 방향에서 들려왔다.

“왔다! 놈들이 온 거야!”

위치는 동쪽.

스파아-앙!

화운장로가 땅을 박찼다. 개방 비전의 비천무영신법이 펼쳐졌다.

삐이익. 삐이이익.

호각 소리가 동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정의개들 역시 호각 소리를 따라 신법을 펼쳤다.

***

불사신기를 가득히 머금은 사자후가 뼈 피리와 작은 쇠 종소리를 단숨에 부숴버렸다. 아니, 그러고도 모자라 파고들었다. 두 노인을 덮쳤다.

“커헉!”

“큽!”

두 노인이 눈이 부릅떠졌다.

마공을 기반으로 펼치던 음공이 깨지며 꽤 심각한 타격을 입은 듯했다.

“크으으.”

부들부들.

사자후는 손사욱에게 마저 영향을 미쳤다.

그의 내공 역시 마공의 하나, 불사신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후우욱!

그들 위로 용무린이 떨어져 내렸다.

한꺼번에 너무 막대한 양의 내공을 쏟아냈던 터라 불사신기의 운용마저 곧이라도 끊어질 듯했지만 자신의 위치는 하늘, 자연스레 떨어지는 힘에 기댔다.

‘이런 때 필요로 한 것이 바로 근력이지.’

곰탱이와 덩치 큰 냥이를 상대로 단련한 근육이 순수한 힘을 뽑아 올렸다. 풍뢰에 전달했다.

패애애액.

내공의 부족 때문에 진천수라도나 비연오식은 펼치지 못했다. 삼재검법에서 비롯된 단순한 검초였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신이 직접 손을 쓰는 듯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뭉클. 뭉클.

갑자기 두 노인의 전신에서 폭풍과도 같은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낙뢰처럼 떨어져 내리던 풍뢰를 거칠게 들이받아 버렸다.

따아아앙.

풍뢰가 곧이라도 깨어질 듯 뒤로 크게 휘었다.

그 서슬에 열린 공간으로 나머지 마기가 짓쳐들었다.

퍼퍼퍼-엉.

“커헉!”

짧은 비명과 함께 용무린의 몸이 뒤로 훌훌 날렸다.

입에서는 굵은 핏물이 쭉 뿜어졌다.

“이, 이노-옴!”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 선택을 하게끔 만들다니!”

마기는 두 노인의 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껏 들고 있던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와 쇠 종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십 년의 적공을 부어 만들어낸 혈적을 포기했다.”

“감히 마혼령을 깨뜨리도록 만들다니!”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용무린의 공격 때문이었는지 뼈로 만든 피리와 쇠 종이 망가져 있었다. 뼈 피리는 반으로 뚝 잘려 있었고 쇠 종은 소리를 내는 추가 어디론가 뜯겨 사라졌다.

후우우웅. 콰아아-.

완전히 망가져 버린 뼈 피리와 쇠 종에게서 실로 엄청난 수준의 마기가 뿜어졌다.

아드득.

“내 기필코 네 놈의 뼈로 다시금 혈적을 만들어 내리라.”

빠드득.

“본좌 역시 마찬가지, 네놈의 골통으로 마혼령을 만들어 비룡문의 처마에 걸어 놓고야 말겠다.”

두 노인이 이를 갈며 손을 흔들었다.

휘이이이. 휘이이우우웅.

혈적과 마혼령에 깃들어 있던 검붉은 기운이 두 노인의 손으로 뭉쳐들기 시작했다.

불사신기의 힘에 휩쓸린 영향을 아직도 받는 듯 속도는 무척 느렸지만 지금의 용무린으로서는 감히 맞받을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수준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무린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피식.

“그거 내가 할 소리야, 이 영감탱이들아!”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쓱 닦아낸 용무린이 풀썩 웃어 보였다.

“덤벼, 대가릴 예쁘게 잘라 준다.”

얼마 남지도 않은 불사신기의 운용이 조금 더 힘들어졌지만 피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 맞부딪힐 거다. 기분 좋게 갈라 버릴 작정이었다.

‘내공은 부족하지만 정신력은 차고 넘치지.’

용무린은 자신의 모든 의지를 풍뢰에 담아갔다.

‘나는 곧 풍뢰고 풍뢰는 바로 나야.’

무인이라면, 검을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비슷하게 알고 있는 신검합일의 법문!

그것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뤄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바로 깨달음과 경험으로 결정이 된다. 그리고 검이나 도에 관한 깨달음과 경험이라면 천하에 용무린만큼 높은 사람은 거의 없다.

휘이이-잉.

용무린의 전신에서 바람과도 같은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았던 불사신기의 힘이 함께 따라 매섭게 휘돌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삐이익. 삐이이익.

소리 화살과 호각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낭패한 얼굴이 된 손사욱이 다급한 목소리로 두 노인을 일깨웠다.

“함정입니다. 저놈과 함께 다니던 소림의 땡중이 오고 있을 것입니다. 사대금강의 하나인 일각이란 놈입니다.”

꿈틀.

두 노인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다.

‘이런 빌어먹을.’

‘하필이면 소림의 땡중이…….’

개방의 거지야 신경 쓸 것도 없다.

하지만 소림의 일각은 다르다. 마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 불가의 내공과는 서로 상극인 것이다.

‘혈적이 멀쩡했다면 그래도 괜찮을 텐데.’

‘하필이면 소림의 땡중이 오고 있는데 마혼령이 이 모양이라니!’

솔직히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혈적과 마혼령에 깃들어 있던 힘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슬그머니 끼어 든 불사신기의 힘 때문이었다. 믿기가 힘들었다.

‘대체 이 기운의 정체는 뭐야?’

‘어떻게 이렇게 약한 힘이 마혼령의 막대한 힘 안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주인을 닮았는지 끝이 없는 투지를 지니고 있는 듯 불사신기는 지칠 줄을 모르고 혈적과 마혼령에 깃들어 있던 힘을 공격했다.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자신들의 마지막 보루로 믿고 있던 마공 역시 펼치기가 곤란할 정도, 이 상태로 소림의 땡중과 화운장로까지 도착한다면 정말 천추의 한이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

두 노인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무언의 합의가 내려진 듯 두 노인의 고개가 보일 듯 말 듯 살짝 끄덕여졌다.

바로 그 순간,

휘슷. 휘스슷.

두 노인이 동시에 신형을 뽑아 올렸다. 도주를 감행하는 것이었다.

번쩍!

내내 감겨 있던 용무린의 눈이 떠졌다.

스파-앙.

벼락처럼 몸을 날려 두 노인과 매부리코의 사내 손사욱을 향해 풍뢰를 그어냈다.

버언쩌저저적.

딱히 어떤 초식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간결한 삼재검법의 한 동작에 불과했다. 가볍게 일필휘지로 한 일자를 그어내듯 풍뢰가 그어내는 미려한 선의 끝에 두 노인과 손사욱이 걸렸다.

“이놈이 끝까지! 크아아아!”

“꺼져라! 우와악!”

화들짝 놀란 두 노인이 손을 흩뿌렸다.

화아악! 콰아아아!

불사신기의 힘 때문에 원하던 형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두 노인의 손을 떠난 혈적과 마혼령의 기운은 안개인 듯 바람인 듯 용무린을 향해 밀려들었다.

그 안에 깃든 섬뜩함이란!

‘어림없다, 노괴! 내 의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그따위 기운으로는 절대로 막아낼 수 없어.’

용무린의 장담대로였다.

쫘아아악!

안개 바람처럼 밀려들던 검붉은 기운이 쭉 갈라졌다.

“커헉!”

“크흡!”

두 노인의 입에서 기어이 붉은 핏덩어리가 튀었다.

울컥.

물론 용무린의 입에서는 더한 핏줄기가 뿜어졌다.

내상이 한층 더 심각해진 것이다.

‘지지 않아. 절대로.’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불사신기의 내공은 이미 바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무린은 다시 검을 휘돌렸다. 불사신기의 내공은 비록 바닥일지언정 정신력은 절대로 마르지 않는 불굴의 것이었으니까.

촤아아아아!

풍뢰의 움직임을 따라 검붉은 안개가 다시 한 번 쭉 갈라져 갔다.

“커으윽.”

“흐읍!”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두 노인의 복부와 허리에서 굵은 핏줄기가 툭 튀어 올랐다.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좋아해도 부족하련만 용무린의 인상은 펴지질 않았다.

‘젠장. 얕았나?’

아니, 불사신기의 내공이 부족했을 뿐이다.

내공도 거의 없는 마당에 펼쳐낸 신검합일의 수가 그 이상 더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겠는가?

휘리릭.

가장 먼저 도주를 감행했던 매부리코의 사내 손사욱이 담을 넘어가는 모습이 용무린의 눈에 걸렸다. 그 뒤를 복부와 옆구리를 꾹 누른 두 노인이 따라 넘었다.

‘빌어먹을. 또 놓쳤네.’

마음은 뒤를 쫓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공이 완전히 바닥이 나 버린 것이다.

‘어떻게든 만년삼왕이라도 한 뿌리 구해서 먹어야지 어디 원…….’

분했다. 아쉬웠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잘도 그런 귀물을 구해 당과마냥 처먹는데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아서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놈들! 어딜 가느냐-아!”

“아미타불!”

화운장로와 일각대사의 것으로 들리는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다.

피식.

용무린은 풀썩 웃어 버렸다.

‘봐요, 내 말이 맞죠?’

용무린은 안심하고 운공요상에 들었다.

‘잡아요. 내 대신…….’

화운장로와 일각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잡을 능력이 될 것이다.

‘그래도 놓친다면?’

사력을 다해 호흡을 가다듬는 용무린의 뇌리에 천기자라는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그때는 정말 그 박수무당에게 가 봐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

담을 넘었던 두 노괴는 결국 도망치지 못했다.

용무린에게 입은 부상도 부상이지만 내공이 턱턱 끊기게 만든 불사신기 탓이 훨씬 더 컸다.

신법마저 잘 펼쳐지지 않았다. 비천무영신법을 펼쳐 날아든 화운과 금강부동신법을 극도로 펼친 일각에게 따라 잡힐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생길 수 있어?’

‘내공이 수월하게 이어지지가 않아!’

‘그 애송이만 아니었어도…….’

‘대체 그 내공의 정체가 뭐야? 대관절 그 내공이 무엇이기에 천마께서 허락한 나의 내공을 턱턱 끊어지게 만드느냐 말이야.’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었다.

신교의 머리랄 수 있는 음양자의 제자들인 자신들이 이렇게 이름도 없는 곳에서 하찮은 놈들을 맞아 곤란한 지경에 처하다니…….

“멈추어라, 마졸!”

“아미타불!”

파옥권으로 발출된 강기 덩어리와 달마십팔수의 일초 혼원일기세의 권력이 작살처럼 날아들었다.

꿈틀.

두 노괴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다.

“크아아! 너희 모두를 길동무로 삼아 주마!”

“꺼져라, 땡중. 하아아-압!”

두 노괴가 형상화되지 못한 마기를 최대한 뭉쳤다. 화운과 일각대사를 향해 집어 던졌다.

‘이, 이럴 수가…….’

십여 장 밖에서 먼저 달아나던 매부리코 사내 손사욱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도무지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신교에서도 이름 높은 음양자의 두 제자가 겨우 이런 곳에서 추살당할 위기에 처하다니!

‘틀렸어. 빠져 나오기 힘들어.’

개방의 화운과 소림의 일각이 길을 막았다.

그리고도 모자라 저 멀리에서 개떼처럼 달려드는 개방의 거지들도 보였다. 호각 소리로 보나 소리 화살 소리로 보나 적어도 이, 삼백여 명은 가뿐히 넘을 것이다.

‘피, 피해야 해.’

그들은 그들이고 자신은 자신이다.

싸우다 죽을지언정 잡힌다고 입을 열 사람들은 아니니 자신이라도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타닷. 후우욱.

손사욱은 신법에 내공을 더욱 보탰다.

하지만 여전히 내공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두 노인과 마찬가지로 불사신기의 영향 때문이었다.

‘대관절 그놈이 어떤 무공을 익혔기에 이런 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최초의 격돌을 제외하면 신교에서 나온 두 노인이 용무린을 상대했다. 두 노인에 비하면 아주 조금 침습을 받은 셈, 그럼에도 이 모양이라니!

‘분명히 무한에서 그놈과 부딪혔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도대체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힘든 것일까?

저놈의 내공이 그때와 비교해 조금 더 높아졌기 때문에?

아니면 어떤 수준이 있어서 그 정도는 되어야만 이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인가?

‘그게 무엇이든 이 사실을 알려야 해. 빨리.’

손사욱은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 모았다. 신법에 힘을 보탰다. 겨우겨우 신법이 제 속도를 냈다.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손사욱이 빠져나간 후에야 비로소 개방의 포위망이 완전히 구축되었다.

“저쪽이다.”

“탈출자가 있다.”

“쫓아라!”

기척까지는 완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개방의 이목에 손사욱이 잡혔다.

삐이익. 삐이이익.

호각 소리와 소리 화살이 어지러이 들려왔다.

하지만 분타주를 비롯한 핵심 고수들이 모두 흑갈방에서 두 노괴를 상대하고 있었던 까닭에 손사욱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

다음 날 아침.

신교에서 나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두 노괴를 잡아 죽이는 전공을 올렸건만 화운장로는 오전 내내 용무린에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내가! 그 인간들! 내장까지 꺼내 놨잖아요! 한데! 겨우 사로잡는 걸 못해서 때려 죽여요?”

“미, 미안하다 무린아.”

“……!”

화운장로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고 일각대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모르쇠 전략을 구사했다. 다만 화운의 편에 서서 두둔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어쩌다 보니 노괴 중 하나를 선장으로 때려 죽였던 것이다.

“시끄러워요! 그 노괴보다 한참 떨어지는 매부리코 놈은 왜 놓친 건데요?”

“그, 그게 말이지. 놈의 신법의 경지가 예상보다 더 높았다더구나. 어찌나 빠른지 애들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쫓았는데 결국 종적을 놓쳤대.”

“그걸 말이라고 해요?”

용무린은 계속해서 씩씩댔다.

물론 아무리 신경질을 부려 봐야 한 번 쏟아진 물 다시 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너무나 어이가 없잖아. 아무리 마교에서 나온 늙은이들로 보인다고는 해도 분타주를 비롯해 이곳의 핵심 고수들이 싸움 구경에 정신을 팔려?’

물론 고수들의 대결을 보면 얻는 것이 크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결과가 너무 아쉽고 결국 놈을 놓쳤기에 짜증이 날 뿐이다.

“매부리코가 움직인 방향은요? 최소한 어디로 도망쳐 갔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요?”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 화운장로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그거야 당연히 알지.”

“어딘데요?”

“그게 말이지…….”

화운장로의 말이 의기양양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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