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위기 (26/104)

7.위기

두 사람의 입을 통해서 우려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무림맹이 나섰다.”

“비룡문에 주둔하고 있는 소림과 개방의 고수들을 복귀시키라는 맹주의 명이 떨어졌소이다.”

“예? 무림맹에서요?”

“그래, 무림맹. 그것도 맹주령이다.”

갈수록 이상했다.

“느닷없이 무림맹이 왜요? 뭣 때문에요? 대체 왜 맹주령까지 내려서 소림과 개방의 고수들을 비룡문에서 내보내라 마라 하는 것인데요?”

“한 곳도 아닌 여러 문파가 너무 오랜 시간 한곳에 뭉쳐져 있었던 것이 좋지 않게 보였던 모양이다.”

“무림맹을 제외하고 또 다른 세력을 만들 생각이 아닌지 하는 우려를 들먹였소이다.”

“예에? 겨우 그딴 이유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렸다는 말이에요? 이제 겨우 몇 개월밖에 안 됐는데요?”

화운장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창피한 일이지만 그건 큰 명분이 된다.”

“마공을 익힌 미지의 무리들로부터의 위협을 파헤친다는 명분이 우리에게 있다지만, 무림맹에게만 집중되어야 할 구파일방의 주력 중 일부가 비룡문에 뭉쳐 있으니 그들의 눈에는 좋지 않게 보였을 것이외다.”

“이것은 명백히 나와 일각의 실수다. 애초에 비룡문으로 떠나오기 전에 정식으로 무림맹에 안건을 제출하고 무림맹의 의사 결정에 따라 움직였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터인데…….”

“소림은 소림대로, 개방은 개방대로 따로 움직였으니 트집을 잡힐 밖에요.”

“무림맹으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을 테지. 소림과 개방과 신주오가의 하나인 비룡문과의 야합은 곧 커다란 무림세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

“정말 이해가 가질 않네요. 어째서 그 일을 그딴 식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용무린이 목소리를 높였다.

화운장로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평화가 길었던 게야. 신마대전 후 70년, 높았던 의기는 사라지고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살다보니 이런 상황도 오는 게지.”

“허허허, 창피할 노릇입니다.”

자신에게 책임이라도 있는 양 화운장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무림맹이라는 거대 무력 단체가 생겨난 이유는 바로 70년 전에 벌어졌었던 신마대전 때문이다.”

뜨끔.

‘젠장, 그것도 나 때문이었구나.’

전생의 자신이 벌인 일 때문에 무림맹이 생겨났다는 말에 용무린의 심장이 살짝 요동쳤다.

“당시 마교의 힘에 무림이 속절없이 밀렸던 이유가 바로 신속한 힘의 결집과 투입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무림맹이란다.”

“그러니 다른 거대 무림세력의 등장을 무림맹이 반길 이유가 없는 게요. 그런 세력의 등장은 곧 무림맹의 존재 이유에 대한 불신이니까 말이외다.”

그제야 상황이 분명히 이해가 되었다.

반면에 그만큼의 의심 또한 불쑥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지요?”

“왜 하필 지금이냐고? 너는 인석아, 지금까지 내가 쭉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

“그거야 비룡문에 소림과 개방의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던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이 아니겠…….”

길게 이어지려는 화운과 일각대사의 말을 용무린이 툭 잘라 버렸다.

“생각해 보세요.”

“뭘?”

“하북성도 인근에서 마공을 익힌 잡졸들을 드디어 찾아냈어요. 배후는 비록 알아내지 못했지만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한 때라고요. 그런데 왜? 어째서? 하필이면 지금, 소림과 개방을 비룡문에서 치워버리려는 것일까요?”

“……?!”

“……?!”

그제야 두 사람도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점점 더 표정들이 어두워졌다.

“듣고 보니 조금 그런데?”

“그렇습니다, 선배.”

“확실히 이상해.”

“다른 곳도 아니고 정도의 하늘인 소림과 개방이 누가 봐도 확실히 어려움에 처한 비룡문을 돕고 있을 뿐입니다. 그에 대한 처사로는 심한 편이지요.”

“그래. 물욕이 없기로 가장 유명한 두 문파의 움직임에 그토록 날카로운 잣대를 댈 필요까지는 없단 말이지.”

“뭔가 미묘한 입김이 작동한 듯합니다, 선배.”

화운장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맞아. 요사이 어떤 인물들이 무림맹에 드나들었는지 한번 제대로 살펴봐야 할 것 같아.”

“저는 이대로 숭산에 복귀해 봐야 할 듯합니다. 무림맹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만이라도 제자들을 다시 파견해 달라고 해 보겠습니다.”

일각대사마저 나섰다.

“감사해요.”

용무린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면 저는 지금 즉시 비룡문으로 돌아가 보겠어요. 그곳에서 봬요.”

“무린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겠지?”

“예, 장로님.”

“방비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마 지금쯤 소림과 개방의 고수들이 비룡문에서 모두 빠져 나왔을 게다. 오늘 밤부터 당장 위험해질지도 몰라.”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용무린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닐 거예요.”

“어째서?”

“어느 곳의 어떤 놈들로 위장을 하고 있든, 소림과 개방이 빠져나가자마자 움직이면 바로 걸려요. 최소한 개방의 눈이 비룡문에서 멀리 물러갈 때까지는 얌전히 기다려 줄 거예요.”

“하긴, 그도 그렇겠구나. 맹주령이고 뭣이고 간에 그동안 정든 곳을 떠나며 시선까지 한꺼번에 거둘 우리 개방은 아닐 테니까.”

“은밀하게 움직이려면 기일이 조금 더 걸리겠지요.”

그래봐야 역시 일시적인 평화일 뿐이다.

‘일어날 일이라면 언제고 일어나는 거야.’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일어난다고 가정을 하면 시간이 없는 거다. 이곳 제갈세가에서 비룡문이 자리한 무한까지는 말로 달려도 족히 이레는 걸리니까.

‘내가 없을 때 놈들이 쳐들어오는 꼴은 내가 또 못 보지.’

죽어도 함께 싸우다 죽을 거다.

“안되겠어요. 저 먼저 출발해야겠어요.”

용무린이 대뜸 밖으로 나섰다.

“힘내거라. 내 알아볼 것을 알아본 후 비룡문으로 바로 가겠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아니 되겠지만, 혹여 벌어진다면 무조건 버티시오 용 시주. 빈승이 무슨 수를 쓰든, 아니면 나 혼자서라도 도우러 갈 것이오.”

“감사해요. 두 분의 후의,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두 사람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해 보인 용무린은 즉시 밖으로 나섰다. 제갈영령이 있는 내원을 향해 잠시 시선을 던졌다가 그대로 신법을 전개했다.

스파아앙.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용무린의 신형이 호북성 무한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쉬이익.

온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신법을 전개하며 용무린은 다시 한 번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

‘조금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더 빠르게!’

타닷. 스파아아앙.

관도를 타고 달리지 않았다.

가장 빠른 경로인 일직선을 그리며 그저 무한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동공으로써의 공능까지 깡그리 끌어 올려 신법에 쏟아 부었다.

스파앙. 휘리리리릭.

천마탄신의 신법.

신교의 교주에게만 대대로 내려오는 신법이니 내공의 효율과 일보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의 효율이 지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디고 느리게만 느껴졌다.

3장, 4장, 5장…….

한 번 땅을 박찰 때마다 나아가는 거리가 쭉쭉 늘었다.

물론 그때마다 불사신기가 뭉텅뭉텅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거리는 많았다. 제갈세가에서 비룡문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허억. 헉. 헉. 이젠 진짜 바닥이다.”

불사신기가 고갈이 되면 그대로 주저앉아 운공에 들었다.

두어 시진 정도?

그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불사신기를 채웠다.

사력을 다해 자꾸만 반복하니 불사신기가 채워지는 시간 역시 점점 더 단축되고 많아졌다. 역시 불사신기의 발전은 가혹한 단련에 있는 듯했다.

“후우. 또 두어 시진이 지났겠구나. 빨리 가자.”

타닷. 타다닷. 스파아앙.

그런 후 다시 신법을 전개해서 전력을 다해 무한으로 향했다. 식사는 중간에 들린 객잔에서 산 육포를 씹는 것으로 대체했다.

수면은 아예 운공으로 대체했다.

불사신기가 바닥나면 두어 시진 운공 하는 것이 다였다.

작은 산과 강을 벌써 몇 개나 가로질렀는지 모른다.

그 사이 계속해서 펼쳤던 천마탄신의 신법이 완벽하게 몸에 배일 정도가 되었다. 두 시진 어림의 짧은 운공으로 불사신기를 최대치에 가깝게 채워 넣는 일도 이젠 손쉬운 일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달린 시간이 닷새.

서산 저편으로 해가 뚝 떨어져 갈 무렵.

“허억. 허억. 허억. 드, 드디어 효감현이다.”

무한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효감현이 지평선 넘어 눈에 들어왔다. 여동생인 용설화의 짝 종일명이 현승으로 있는 바로 그 현이었다.

“후우. 후우. 내공이 또 바닥이다. 여기서 잠깐 다시 운공 좀 하고 가자.”

지평선 저 멀리 가물거리듯 반짝이기 시작한 효감현의 번화가 불빛이 어찌나 반가운지!

“쓰으읍. 후우우. 쓰으으으읍. 후우우우우.”

불사신기를 끌어올리기가 무섭게 거칠기만 하던 호흡이 착 가라앉았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운공을 마친 후 다시 신법을 전개해 다시 한 시진 정도면 무한의 비룡문에 당도하게 된다. 아직도 마음은 급하지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지금부터는 내공의 관리에 들어가야 하는 거다.

휘이이-!

한 줄기 바람에 이끌려온 대자연의 기가 용무린의 몸 안으로 휘몰아치듯 빨려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진 후.

반짝.

용무린의 눈이 떠졌다. 겨우 한 시진 남짓의 운공으로 바닥에 가깝던 불사신기를 한계치에 가깝도록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놀라운 발전 속도였다.

흠칫.

눈을 뜨자마자 용무린의 몸이 살짝 떨렸다.

누군가가, 섬뜩하기 짝이 없는 적의로 불타는 눈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싸늘하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관엽!’

바로 그였다.

상관세가의 현 가주 상관초웅의 숙부이자 태상장로인 절대의 고수, 그가 용무린을 잡아먹을 듯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피식.

“용케 참으셨네요? 지켜보는 내내 일장에 쳐 죽이고 싶으셨을 터인데…….”

오줌을 지려도 모자랄 터인데 보자마자 빈정거린다.

꿈틀.

상관엽의 눈썹이 역 팔자를 확 그렸다. 더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버럭 질렀다.

“너 따위를 상대하는데 암습이라도 해야 한단 말이냐?”

“그래서 더 놀랍다는 거죠. 저 같았으면 그냥 때려 죽여 버렸을 거거든요.”

상상도 못했던 말이었는지 상관엽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사이 용무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벌떡 일어났다. 바지를 탈탈 털며 계속해서 이죽거렸다.

“하여튼 고맙네요. 참고할게요.”

“뭐, 뭐야? 네 이노-옴!”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계속해서 쫑알거리기만 할 건가요? 덤벼요. 잘 참고 기다려준 대가로다가 팔 한 짝, 다리 한 짝 씩만 가져갈게요오오-옷!”

버언쩍!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무린의 왼쪽 손목 어림에서 반투명한 빛이 튀어나갔다. 상관엽의 심장 어림까지 이르는 선을 환영인 양 쭉 그려내었다. 초절정 고수였던 상관혁련의 목숨마저 빼앗았던 바로 그 초식 비연일섬이었다.

그런데…….

“갈!”

화아악. 터어엉!

“큽!”

쿵쿵쿵.

상관엽이 주먹을 한 번 휘두르자 비연일섬이 속절없이 튕겨졌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여력에 용무린까지 뒤로 밀렸다. 세 걸음이나 물러나야 했다.

“퉤! 그 나이 자시도록 영약만 드셨나……? 꽤 세네.”

일격에 내상을 입었다. 입안에 고인 피를 거칠게 뱉어낸 용무린의 말이 점점 더 짧아졌다. 당연히 상관엽의 뚜껑이 확 열렸다. 완전히 열 받았다.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에이, 그건 아니다. 내가 어른들에게 얼마나 잘하는데. 내 덕에 우리 아버지 정력이 얼마나 훌쩍 높아졌, 아! 이 말을 못 들은 것으로 좀…….”

“오냐, 그래. 내 너에게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오늘 알게 해 주…….”

“거 참, 말 많은 노인네네. 덤벼!”

“……우와악!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리고야 말…….”

“싫어? 내가 갈까?”

열심히 빈정대면서도 용무린은 은밀히 불사신기를 풍뢰와 소검비연에 밀어 넣었다. 상관엽이 흥분해서 큰 초식을 펼치다 빈틈을 보이기만을 바랐다.

“이야아-하!”

역시 ‘늙은 생강이 맵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상관엽은 막무가내로 덤벼들지 않았다. 상관혁련이 범했던 우(愚)를 범하지도 않았다.

화아아악!

순간적으로 휘돌린 진기를 끌어올려 자세를 잡는데 어떻게 치고 들어갈 빈틈이 없었다. 폭발하듯 쏟아져 나온 내력이 상관엽의 등 뒤에 후광처럼 맺혔다.

그런데…….

“어?!”

용무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광처럼 상관엽의 등 뒤에 맺힌 빛이 검은 색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것은…….”

어찌나 놀랐는지 용무린은 말을 채 잇지도 못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넘실대는 검은 색의 내력이 어떤 무공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축융마공!’

부분기억 상실 때문에 신마로서 사용하던 무공들과 불사신기 그리고 몇몇 중요 마공들 외에는 우습게도 정파의 실전된 무공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억 속에 또렷이 들어 있는 신교의 마공 중 하나가 바로 저것이었다.

‘어떻게 저 인간이 축융마공을……?’

반짝.

용무린의 머릿속에 섬광이 번득였다.

그 순간 용무린은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북성도 인근의 열다섯 흑도문파. 녀석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이레의 거리 안에 상주해야 할 터…….’

상관세가 역시 그 조건에 부합한다.

거기에 더해 상관엽이 마공을 뿜어내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바로 저놈들이었구나. 상관세가에서 우리 비룡문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죽어라아-앗!”

화아악. 콰르르르.

상관엽이 두 주먹을 뻗어내었다. 타오르는 검은 불꽃과도 같은 강기 덩어리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단숨에 용무린을 집어 삼키려 들었다.

“허엇!”

용무린의 입에서 기함이 튀어 나왔다. 너무나 놀란 탓에 선수를 빼앗긴 거다. ‘아차’ 하는 순간 감히 받아치기도 두려운 힘이 벼락처럼 심장을 향해 밀려들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고이 죽어줄 수는 없지!’

“차아아아-!”

버언쩍. 피이잇.

풍뢰와 소검비연이 동시에 전면을 휘감았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 일격에 모든 것을 건 듯 연거푸 수라잔월과 비연난무를 펼쳐냈다. 그러나…….

콰자작. 파캉! 터어어엉!

축융마공의 강대한 힘은 연거푸 펼쳐낸 수라잔월과 비연난무의 초식을 순간적으로 박살내었다. 야생 코뿔소처럼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용무린의 몸을 휘감았다.

우득. 와드득. 퍼퍼펑.

“커헉!”

용무린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터졌다.

주인 잘못 만난 갈비뼈가 다시 왕창 주저앉았다.

옆구리가 툭 터지며 굵은 핏물을 쏟았다. 허벅지 어림이 뭉개져 버렸다.

“어육을 만들어 주마! 차아앗!”

후욱. 콰르르르.

상관엽이 다시 짓쳐들었다.

다소 겉멋이 들었던 개인 연공실 출신 초절정 고수 상관혁련과는 달리 어떻게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짧게, 짧게 주먹을 뿌렸다. 딱 그만큼의 내공만 끌어 올려 초식을 간결하게 펼쳤다.

퍼엉. 타타타-앙. 퍼어억.

격렬한 타격음이 터질 때마다 진천수라도와 비연오식의 초식이 깨졌다. 용무린의 전신에서 붉은 피가 툭툭 튀어 올랐다.

하지만 용무린은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절정의 한계 수준까지 늘어난 불사신기 덕에 진천수라도와 비연오식을 몇 초식이라도 더 펼쳐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압!”

쉬각. 쉬가각. 패애액. 피리리릿.

끊임없이 풍뢰와 소검비연을 뿌려냈다.

무리를 해서 펼쳐내는 초식의 연속에 내공 역시 급격히 소모되어 갔지만 언제나 한계에 가깝도록 몰아붙이고 단련해온 불사신기였기에 겨우겨우 버텨냈다. 결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퍼어어억.

“크으으.”

뒤로 쭉 밀리면서도 용무린의 눈빛은 무섭도록 반짝였다.

‘맞다. 정말 축융마공이야!’

축융재래로 시작해서 겁화천하로 끝나는 다섯 초식은 분명 축융마공의 전반부였다.

퍼퍼펑.

세 번의 주먹질이 다시 용무린의 가슴과 복부 그리고 어깨에 작렬했다.

쿵쿵쿵.

둔중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용무린은 정신없이 뒤로 밀렸다.

“크크크크큭.”

하지만 용무린의 입에서는 비명대신 나직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관엽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이런 시건방진 놈! 감히 웃어?!”

“축융마공!”

흠칫!

막 축융마공의 초식을 다시 한 번 쳐내려던 상관엽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바로 짓쳐들지 못했다.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 굳었다.

‘어, 어떻게 그 이름을 저 애송이가 알지?’

“축융재래로 시작해서 겁화천하까지 이어지는 다섯 초식을 계속해서 반복하더군. 전반부만 배웠나?”

“……!”

상관엽의 입이 쩍 벌어졌다.

씨이익.

용무린의 입가에 섬뜩한 흰 선이 쭉 그어졌다.

가볍게 한마디 툭 던졌다.

“덤벼!”

용무린은 소검비연을 거둬들였다. 축융마공의 파괴력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방어력이 강한 풍뢰가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박살을 내주지!”

할 수 있다. 이미 한 번 꺾어 보았으니까.

그때도 이랬다.

당시 축융궁의 궁주였던 고이격과 생사결을 벌였을 때도 녀석에 비해 내력은 많이 부족했었다.

‘그래도 내가 결국 이겼어.’

물론 그 당시에 비해 많이 악조건이다.

내공이 그때만 훨씬 더 못하다.

하지만 자신이 익힌 내공은 불사신기, 그때보다 내공 수준은 낮지만 한 번 이겨본 경험까지 합한다면 다섯 초식밖에 펼치지 못하는 축융마공 따위 넘어서지 못할 리 없다.

“……?!”

상관엽은 바로 덤벼들지 못했다.

가주인 상관초웅을 제외하면 세가 내에서조차 누구도 알지 못하는 독문무공의 비밀을 용무린이 불을 보듯 빤히 알고 있어서였다.

스으윽.

용무린의 자세가 살짝 더 낮아졌다.

“그때는 살려 주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용무린의 눈에는 자신의 발아래 숨을 헐떡이던 고이격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무, 무슨 말……?”

“반드시 죽인다아-앗!”

후욱. 스파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리를 좁힌 용무린이 풍뢰를 짧게 그었다.

스아악. 사아악. 쉬가가가각.

새하얀 초승달, 수라잔월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한 개가 아니었다. 두 개, 세 개, 네 개……. 모두 합쳐 열두 개의 초승달이 마치 하나의 초식인 듯 줄을 이어 짓쳐들었다.

“……우웃. 꺼져라!”

콰르르. 콰르르르.

화들짝 놀란 상관엽이 발작적으로 주먹을 뿌렸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넘실대던 검은색의 기운이 진짜 불꽃이라도 되는 양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흔들리며 전면을 틀어막았다.

파캉! 터어엉. 콰자작.

수라잔월의 초식이 차례차례 박살이 났다.

그때마다 뚫고 들어간 여력이 용무린의 몸을 스쳤다. 이곳저곳에서 피가 툭툭 튀어 올랐다. 하지만 상관엽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뭔가 달라졌어.’

강기로 펼친 초식을 완전한 강기가 아닌 초식으로 맞받는 것도 다 이해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어내듯 지속적으로 갉아내면 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야. 뭔가 정말 이상해.’

쉬각. 스아아악. 패애액.

풍뢰의 움직임은 놀랍게도 가장 아픈 곳만 찌르고 있었다. 위력이 큰 만큼 축융마공은 유려한 회절에 옆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데 용무린은 지금 그곳만 교묘히 공략해 갉아내고 있었다.

‘미치겠지?’

퍼억. 주르륵.

입술을 비집고 굵은 핏물을 흘려내면서도 용무린은 비릿하게 웃었다.

쉬각.

때로는 초승달이,

스아악.

다음에는 반달로 변해 휘돌았고…….

피이이이-잇!

순간적으로 바뀐 둥근 보름달이 상관엽의 옆을 노렸다.

파캉! 콰자작.

아무리 때려 부숴도 계속해서 한 발 한 발 착실히 거리를 좁혔다. 풍뢰의 끝에서 뿜어지는 예기가 피부에 직접 느껴질 거리까지 어느새 다가간 거다.

‘축융마공은 그 강력한 힘 때문에 중거리 이상을 항상 유지해야 하지. 짧은 간격에서는 완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어. 유려한 회절에 옆을 내어줄 수밖에 없지.’

쉬가각. 패애애액.

유려하게 휘돌려낸 풍뢰의 끝에 드디어 상관엽의 옷자락이 쩍 갈라졌다.

‘바로 이렇게 말이야.’

씨익.

용무린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철렁!

심장이 쫄깃해진 상관엽이 내공을 뭉텅 끌어내었다.

“이노-옴!”

콰르르. 콰르르.

빤히 알고 있는 축융재래의 일초를 연거푸 밀어냈다.

당연하고도 영리한 선택이었다.

굳이 공을 들여 위력이 큰 초식을 뿜어내기보다 내력 소모도 적고 속도도 빠른 축융재래의 초식을 적절히 구사하는 것만으로도 용무린의 전신을 어육으로 만들기는 이미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정말 미치겠군. 자꾸만 왜 이러지?’

상관엽의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내력이 잘 이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면면부절 이어져야만 할 내공이 자꾸만 중간에 툭툭 끊겼다. 어느 사이엔가 내부로 파고든 용무린의 내공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거다.

‘저놈이 익힌 내공이 대관절 무엇이기에 신교가 자랑하는 10대 마공의 하나인 축융마공조차 운용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란 말이냐?!’

솔직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한 번 안으로 침투한 용무린의 불사신기는 축융마공의 강대한 힘으로도 밀려나거나 움츠려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반대였다. 놀랍게도 축융마공의 힘이 용무린의 미약한 내공에 쫓겨 이리저리 밀려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러다가 자칫 축융마공의 내공을 운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올지도 몰랐다.

‘빨리 끝내야만 해.’

언제 느껴 보았는지조차 모를 공포라는 단어가 불현듯 떠오르는 상관엽이었다.

“흐아아아-압!”

미꾸라지처럼 자꾸만 좌우로 휘돌며 가까이 접근하는 용무린을 멀찌감치 밀어내기 위해 상관엽은 처음으로 살짝 무리를 했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한 내공을 끌어내기 위해 한 호흡, 정확히 한 호흡의 시간을 더 쓴 것이다.

반짝.

‘걸렸다!’

용무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휘릭. 쉬가각. 후우욱.

그 순간만을 노리고 있었던 용무린이 득달같이 거리를 좁혔다. 풍뢰를 쭉 앞으로 찔러 넣었다.

“꺼져라-앗!”

콰르르르. 터어엉.

풍뢰가 부러질 듯 뒤틀어졌다가 겨우 되돌아왔다.

정말 무식하리만큼 강력한 기운이었다. 그 서슬에 용무린의 팔에 금이 쩍 갔다. 내상이 더 깊어졌다. 겨우 누르고 있던 피를 울컥 쏟았다.

하지만,

“쿨럭. 쿠울럭. 너나 꺼져 이 새끼야-아!”

연신 피를 게워내면서도 기를 쓰고 안으로 파고든 용무린의 손바닥이 쭉 펼쳐졌다. 상관엽의 심장 어림에 정확히 가 닿았다.

투우우웅.

그 순간만을 기다려 긁어모았던 불사신기가 뭉텅 상관엽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었다.

“크흡!”

상관엽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이 터졌다.

움찔 몸을 떨었다. 한 발 크게 뒤로 물러났다.

“이젠 내 차례다-아!”

후욱. 스아악. 사아악. 피이이잇!

안으로 파고든 용무린의 손이 눈부시게 움직였다.

상관엽의 코앞에 풍뢰가 새하얀 선을 쭉쭉 그려냈다.

따앙. 따다다당. 카캉.

“흡. 흐읍.”

상관엽은 연신 신음소리를 흘리며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반격은 꿈도 꾸지 못했다.

적절한 간격을 완전히 상실한 탓에 내공을 운집한 손으로 풍뢰의 예기를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물론 일반적인 무인이었다면 그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용무린은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었다. 과거 축융마공을 완전하게 펼치던 전대 축융궁의 궁주 고이격과 생사결을 겨뤄 이겨낸 무인인 거다.

용무린의 공격은 풍뢰가 전부가 아니었다.

“내 주먹맛도 봐야지!”

퍼어억.

상관엽의 턱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풍뢰인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주먹이 불쑥 들어왔던 거다.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어 주마!”

후욱. 스걱.

상관엽의 가슴 어림에서 붉은 피가 툭 튀어 올랐다.

주먹으로 때릴 듯 해놓고 이번에는 풍뢰로 확 그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사기꾼…….’

속이 터질 노릇이었지만 상관엽은 뭘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심장 어림을 파고들었던 불사신기의 내공이 놀라운 속도로 내부를 잠식해 왔던 거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이렇게 당황해 보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장강의 흐름과 같던 강대한 축융마공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 남아 있는 여력이야 아직도 충분했지만 불사신기에 밀려 흐름이 툭툭 끊기니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간격까지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니…….

퍼억. 퍼퍼퍽.

스각.

상관엽의 갈비뼈가 몽땅 주저앉으며 폐를 쿡 찔렀다.

동시에 옆구리도 깊게 베었다.

“크아악!”

“입 닥쳐 이 새끼야!”

와득.

꼴 보기 싫다는 듯 용무린이 상관엽의 무릎을 옆에서 콱 짓밟아 버렸다. 도저히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접혀진 무릎 때문에 상관엽의 몸이 휘청 옆으로 숙여졌다.

쩌어어억!

아래로 툭 떨어지는 상관엽의 얼굴에 용무린의 무릎이 작살처럼 틀어박혔다.

“……!”

이번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하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텅 비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허우적대기만 했다.

스각!

그 사이 화끈한 무엇인가가 목을 스쳐 지났다.

움찔!

격렬하게 몸을 한 번 떨어 보인 것이 상관엽의 마지막 움직임이었다. 미끄러지듯 스르르 떨어져 내린 상관엽의 머리는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미, 믿을 수 없어. 어, 어떻게……. 어떻게에에…….’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상관엽의 의식이 툭 끊겼다.

“이번에는 반드시 죽인다고 했지!”

아직까지도 상관엽의 얼굴에 당시의 축융궁주의 얼굴이 겹쳐 보였던 모양이었다.

“퉤! 주제도 모르고 감히 본좌에게 덤빈 벌이다.”

피가래 섞인 침을 거칠게 뱉어낸 용무린은 이내 시선을 효감현 뒤를 향해 던졌다.

‘저 인간이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곧 상관세가의 주력 역시 가까운 어딘가에서 비룡문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겠지?’

생각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입술이 바짝 타들었다.

“아버지. 어떻게든 버티세요. 제가 곧 갈게요.”

이럴 때 보통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훗날의 복수를 기약하며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고 둘은 함께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용무린은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죽어도 우리 함께 죽어요.”

적을 앞에 두고 등을 돌린다?

내 가족이 적들에게 죽어가고 있는 순간에?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나는 싸울 것이다.

내가 받아들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지만, 여의치 않는다면 밀려든 놈들만이라도 몽땅 지옥으로 끌고 함께 갈 테다.

“쓰읍. 후우우. 쓰으으읍. 후우우우-우.”

아직도 감기지 않은 상관엽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무린은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똑똑히 지켜보라는 듯 당당하게 불사신기를 끌어올렸다.

우드득. 트드득.

주저앉았던 갈비뼈가 불사신기의 힘을 받아 제자리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

날이 이미 저물어 성문이 닫힌 지 벌써 반 시진이다.

한데 무한 성 북쪽 문 앞에 나타난 상단 하나는 은자 주머니 하나를 건네는 것으로 가볍게 성문을 열었다.

“내 운룡장의 영웅들이라는 말에 상부의 문책을 각오하고 열어주는 것이오.”

“감사합니다, 정운 부 백호님. 오늘의 일은 정말 잊지 않겠습니다. 가끔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올 때마다 두둑하게 챙겨주겠다는 말에 정운 부 백호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하하하. 뭐, 그럴 것까지야……. 피곤하시겠소이다. 어서 들어들 가시오.”

“예, 그럼……. 가자!”

정중히 포권을 취해 보인 운룡표국의 표두 운위상이 뒤를 향해 크게 고함을 질렀다. 안휘성의 물산을 가득 실은 상단의 행렬이 무한에 가뿐히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반짝. 반짝.

쟁자수와 짐꾼들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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