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초청
용무린 일행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비룡문으로 되돌아왔다. 산적들로 분장했던 흑도패거리들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가 자신들의 터전으로 잘 복귀했다.
“아들! 엄마랑 면담 좀 하지!”
용무린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어머니 조연옥이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덥석.
대뜸 귀를 잡아채 질질 끌고 내원으로 들어갔다.
불사신기고 나발이고 어머니의 손에 어떻게 대항을 할 수가 없었다.
“아야! 어, 어머니. 이, 이것 좀…….”
“시끄럿.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혼사 같은 중요한 문제를 사내들끼리만 나누고 말이야. 내가 계모니? 앙”
제갈영령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에게만 한 후 이자를 갚기 위해 바로 떠난 것 때문에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나신 듯했다.
“부인. 장도에서 돌아온 아이요.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는 것이…….”
찌릿!
“아, 아니오. 어서 데려가시오. 커흠.”
용대명이 나섰다가 조연옥의 눈빛에 질려 얼른 말을 바꾸었다. 먼 산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아버지! 어떻게 좀…….’
‘미안하다, 아들아. 이번만큼은 나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구나.’
부자간에 처연한 시선이 오고 갔다.
“어머니. 이, 이것 좀…….”
“시끄럿!”
철퍽. 철퍽.
“……!”
등짝 까지 두 대 연거푸 맞고 난 이후 용무린은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했다. 그대로 내원으로 끌려 들어가 조연옥의 잔소리에 두 시진 내내 시달려야만 했다.
뭐, 그래도 끝은 좋았다.
“고마워 아들. 그렇게 속 깊고 따뜻한 아이를 엄마 며느리로 맞이하게 해 줘서…….”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후 조연옥은 용무린을 품에 꼬옥 안아 주었다. 등을 토닥여 주었고 한동안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 따스함이란!
“그 조그맣던 녀석이 어느새 이렇게 훌륭히 자라 일가를 이룰 나이가 되었구나.”
“어머니…….”
용무린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고아로 자라 절대검신 독고황의 손에 죽을 때까지 제자 한 사람 없이 지내던 외로움까지 한꺼번에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툭툭.
“할 일도 많을 텐데 그만 나가 보렴.”
“예, 어머니.”
용무린이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조연옥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아들! 여인들의 화법에 대해서도 좀 알아?”
“여인들의 화법이요?”
조연옥의 눈매가 가느다래졌다.
“모르는구나?”
“여인들의 화법이 따로 있는 것인가요?”
“휴우.”
안되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쉰 조연옥이 한 가지 화두를 던졌다.
“너와 그 제갈세가의 아가씨가 객잔에 들었다고 치자. 이제 음식을 시켜야 하겠지? 여기서 문제 나간다. 아들이 ‘자기, 우리 뭐 먹을까?’하고 물었을 때 그 제갈세가의 아가씨가 ‘응, 나는 아무거나.’라고 대답했어.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할래?”
“……?!”
용무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거나!
불사신기 구결만큼이나 오묘하고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이 세상에는 없는 불가사의한 단어처럼 느껴졌다.
‘대체 뭐라고 해야 하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먹는 거 그냥 2인분 시키면…….”
“휴우.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길게 한숨을 한 번 내쉰 조연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잘 들어 아들! ‘아무거나’라는 말의 의미는 말이야, 내 입맛과 취향에 꼭 맞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이레 동안 먹었던 음식들과도 겹치지 않으며 보기에도 예쁘지만 살은 절대 찌지 않는 음식을 말해. 알겠어?”
헐! 그렇게 깊은 뜻이!
“……?!”
용무린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런 용무린을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바라보던 조연옥이 특명을 내렸다.
“쯧쯧쯧. 안되겠다, 아들. 오늘 밤부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술시 초에 내 방으로 와라. 반 시진씩 여인의 화법에 대해 특강 좀 받자.”
“예에? 반 시진씩이나요?”
화들짝 놀라 거부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소용없었다. 어림도 없다는 듯 조연옥은 단호한 얼굴과 목소리로 못을 콱 박았다.
“시끄럿! 그냥 오라면 와!”
“넵!”
그 박력에 용무린은 냉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밤새 불사신기 수련으로 지샌 용무린이 눈을 떴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화운장로가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드디어 오셨구나.’
용무린은 즉시 용대명의 집무전으로 향했다.
“녀석. 오랜만이로구나.”
“장로님!”
어디까지 알아보고 왔는지도 궁금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반가움도 꽤 컸다. 지난 수개월 동안 계속해서 함께 돌아다니다 곁에 없으니 허전할 정도였다.
“그래, 몸은 괜찮으냐?”
“예. 지금은 거뜬합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한 번 붙어 볼까요?”
피식.
“됐다, 인석아. 네 녀석과 붙었다가 창피 당할까 걱정된다. 이제 더는 안 할란다.”
화운장로가 풀썩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무공에 입문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상관엽 그 인간을 넘어선단 말이냐?”
“운이 좀 좋았어요.”
사실이다. 상관엽이 그때 마공을 펼치지 않고 계속해서 본신무공만 사용했었다면 용무린은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엽은 진정한 의미의 초절정 고수였으니까.
‘내가 전생에 축융마공을 한 번 겪어 보았던 것과 불사신기의 힘이 마공에 특히 더 강한 면모를 보이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거야.’
몰리고 몰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동귀어진을 택했을 것이다. 물론 상관엽이 계속해서 마공 대신 본신의 무공만 적절히 펼쳤다면 그 마지막 시도 역시 무산되었으리라.
“운은 무슨! 진정한 초절정 고수의 손아귀에서 살아남는 것으로도 모자라 목을 베어 버리는 것은 운 따위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야.”
말을 끝낸 후 화운장로는 묘한 시선으로 용무린을 이리저리 살폈다. 볼수록 신기한 물건이란 말이야? 하는 속마음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였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크흠.”
침음과 함께 화운장로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상관종명이 무림맹에 다녀갔다.”
“상관종명?”
“그래. 상관세가주의 동생인 아이로 상관세가의 주요 사안에 언제나 등장하는 인물이다. 너도 잘 알 게다. 성산지약의 일로 백리세가에 있을 때 그 역시 있었으니 말이다.”
“예. 알지요. 꽤 눈치가 있던 인물로 기억이 됩니다.”
“하여간 그 상관종명이 무림맹의 총관을 만난 것까지는 알아냈다. 그런 후 오래 지나지 않아 소림과 개방의 고수들을 비룡문에서 철수시키라는 무림맹의 결정이 내려졌다.”
“결국 무림맹의 총관이 상관세가 아니 상관세가의 뒤에 있는 마공을 익힌 놈들과 손을 잡았다는 뜻인가요?”
“크흠. 실로 큰일이외다. 무림을 대표하는 무림맹에조차 마공을 익힌 놈들의 주구가 도사리고 있다니요?! 이걸 대체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용대명의 걱정 가득한 말에 화운장로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묘한 미소로 용무린을 보며 말을 이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만 물꼬를 터주면 이내 정화가 되는 법 아니겠소이까?”
“말이야 맞는 말입니다만…….”
그 말을 왜 지금 나를 보며 하느냐는 듯 용무린은 화운장로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화운장로가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맹주님께서 너를 보고 싶어 하신다.”
“예에? 맹주님이요?”
용무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목소리도 살짝 높아졌다.
“그래.”
“왜요?”
“네가 썩어가는 고인 물 신세인 무림맹을 정화시킬 물꼬가 되어주길 원하신다. 어떠냐? 도와주겠느냐?”
뭐라고 답하기가 애매했다.
‘그 양반도 참, 갑자기 왜 나를 걸고넘어지는 거람?’
무림맹을 정화시킬 물꼬가 되어 달라?
‘귀찮아! 내가 왜 그 짓을 하는데?’
나는 지금 큰 전투를 치른 비룡문을 건사하기만으로도 바쁘다. 방을 내서 무사들도 더 뽑아야 하고 아침저녁으로 아버지와 숙부님들 그리고 비룡무단과 일반무사들의 수련까지 도와야 하는 한편 내 수련까지 해내야 한다.
‘내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무림맹까지 가서 일을 돕고 오라고? 싫어. 안 돼. 못가.’
그때 화운장로의 입에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말이 흘러 나왔다.
“맹주령이 발동했다. 근자에 비룡문에서 벌어진 마공을 익힌 무리들에 대한 조사를 위해 소림의 고수들과 개방의 정의개들이 비룡문에 상주할 것이다.”
“그 말은……?”
“그래. 소림의 일각이 다시금 삼십육방 출신의 무승들을 이끌고 비룡문에 합류할 것이다. 또한 개방의 정의개 역시 전과 달리 2개 조 60명이 파견될 터, 비룡문의 안전은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용무린의 걱정 대부분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다.
“약속한다. 예전처럼 비룡문도들이 죽을힘을 다해 수련을 할 수 있도록 실전 비무로 돕겠다. 함께 수련하며 싸우고 지켜주마. 어떠냐?”
그 정도라면 거부할 필요가 없다.
‘좋아. 비룡문의 안전만 확실하게 보장된다면야 나 역시 홀로 움직이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천기자가 약속했던 1년이라는 시간에서 벌써 두 달이 훌쩍 흘러갔다. 이대로라면 나머지 10개월여의 시간에도 별다른 발전이 없을 테지만 소림과 개방이 비룡문에 상주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리라.
씨익.
“좋습니다. 가죠 뭐.”
용무린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열흘 후 하남성 동남쪽 끝자락 나산현.
저 멀리 보이는 무림맹의 거대한 전각들을 보며 화운장로는 용무린의 옆구리를 한 번 툭 쳤다.
“어떠냐? 근사하지?”
“뭐,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네요.”
용무린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비교 대상은 역시 불회곡 안의 신교, 역사로 보나 건물 크기와 상주하는 고수들의 숫자로 보나 솔직히 무림맹은 신교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하여간 네 간덩이는 어떻게 생겨 먹은 게냐? 에잉, 어떻게 된 게 놀라는 맛이 없어 인석은…….”
“건물 크다고 고수들이 많고 사람도 좋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 거잖아요. 저는 저런 겉모습 따위 완전히 관심 밖이에요.”
“우문현답이로구나. 그래 내가 잘못했다.”
화운장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용무린을 한 곳으로 이끌었다.
총관부.
위풍당당하게 걸린 거대한 현판이 있는 전각이었다.
‘뭐야? 무림맹 총관부인데 왜 고수들 숫자는 별로 보이지 않고 상인 같은 사람들만 눈에 많이 띄지?’
주변을 둘러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용무린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는 듯 화운장로의 입이 나직하게 열렸다.
“사람 사는 곳이다. 정도 무림을 총괄하는 곳이다 보니 그만큼 이해타산도 많이 얽혀 있고 자잘한 분쟁도 많지. 모든 것을 무력으로만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인 게야.”
피식.
용무린의 입가에 옅은 비웃음이 걸렸다.
“말만 정파의 하늘 무림맹이지 실상은 기득권자들의 손익 계산을 하는 곳이라는 뜻이네요?”
“뭐, 그런 셈이지. 자 이쪽이다.”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한 화운장로가 용무린을 한 곳으로 이끌었다.
“화운장로님! 오셨습니까?”
“오! 운학. 잘 지냈는가?”
“저야 무탈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장로님. 그렇지 않아도 총관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맹주님을 찾아뵙기로 하셨다고요?”
말끝에 운학이라 불린 도복 차림의 중년인이 용무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도복 소매 끝자락에 수놓인 매화 세 송이. 저 유명한 화산파의 매화검수로군.’
용무린은 한 눈에 운학이란 도복 차림의 중년인이 화산파의 매화검수임을 알아보았다.
화운장로가 먼저 나섰다.
“서로 통성명이나 나누게. 비룡문의 작은 주인 용무린 공자라네. 오늘 나와 맹주님을 함께 뵐 것이네.”
“오오, 자네가 그 유명한 삼절일학 용무린이로구만. 반갑네. 화산의 운학이라고 하네. 미력하지만 이곳에서 부총관이란 중책을 맡고 있다네.”
“비룡문의 용무린이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포권을 취해 보이며 용무린은 생각했다.
‘매화 향 나리는 곳에 화산의 정기 역시 함께 깃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당과 함께 정파 무림의 양대 검문으로 칭송받는 화산파의 매화검수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지만 운학에게서는 정기보다는 장사꾼과 같은 기질만 보였다.
씨익.
“과연 삼절일학, 또래 중 명성이 높다 보니 허리도 그만큼 뻣뻣하군그래.”
뭐라는 거야 저 인간이?
용무린의 눈꼬리가 살짝 위로 치솟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학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좋겠지. 젊었을 때 한 번쯤 그래 보지 않으면 평생을 숙이고 살아야만 할 수도 있으니까…….”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화운장로는 어찌할지 보겠다는 듯 운학의 말을 차단하지 않았다. 그저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용무린의 눈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피식.
‘그렇다 이거지?’
내 판단에 맡길 것이라면 내 선택은 언제나 한결같다.
“됐고, 여기서 직접 한 번 대어 보실까? 누가 평생을 숙이고 살아야 할지?”
나는 저렇게 배배 꼬아 말하며 뒤통수 노리는 놈들 앞에 절대로 꼬리를 말지 않는다.
‘콱, 모가지를 비틀어 버린다.’
용무린은 즉시 불사신기를 뭉텅 끌어 올렸다.
휘이이-!
용무린을 중심으로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휘돌기 시작했다.
흠칫.
운학의 눈매가 가느다랗게 변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역시 장사꾼이 안에 들어 있었던 모양인지 금세 태도를 바꾸었다.
“하하하! 과연 삼절일학. 정말 대단하구만.”
호탕하게 웃으며 마주 포권을 취해 보였다. 살짝 비켜서서 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자, 어서 들어가십시다. 총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럽시다.”
화운장로가 성큼 발을 내디뎠다.
피식.
풀썩 웃어 보인 용무린이 그 뒤를 따랐다.
반짝.
손님을 접대하려는 듯, 한 발 뒤에 움직인 운학의 눈에서 서늘한 불꽃이 튀었다. 여차하면 뒤통수를 때릴 것만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오래지 않아 용무린은 총관 사마중극을 만날 수 있었다.
“장로님! 이게 대체 얼마 만입니까?”
“반갑소, 총관.”
“그간 적조했습니다. 자주 좀 찾아 주시지요.”
“거지 냄새 자주 맡아서 뭐 좋은 일이 있겠소. 인사나 하시오. 오늘 나와 함께 맹주님을 뵐 비룡문의 작은 주인 용무린 공자외다.”
‘아, 귀찮아. 내가 이래서 안 오려고 했었는데.’
거듭되는 통성명에 살짝 짜증이 일었지만 용무린은 용케 잘도 참아냈다.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반갑습니다. 비룡문의 용무린입니다.”
“오! 자네가 바로 그 유명한 삼절일학 용무린이로구만. 반갑네, 반가워.”
총관 사마중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용무린을 맞았다.
마주 포권을 취해 보이더니 자리를 권했다.
“자자, 앉읍시다. 오늘은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그에 걸맞은 귀한 차를 한 잔 대접하겠소이다.”
미리 끓여 둔 것인지 사마중극은 화운장로와 용무린에게 두 잔의 차를 손수 따라 주었다.
후우욱.
청아하면서도 묵직한 향기가 밀려들었다.
“어서들 드십시오. 원행에 손상당한 기혈 보충에 아주 좋을 것입니다.”
과연 그럴 법도 했다.
향기만 맡았을 뿐인데도 심신이 상쾌해지고 기운이 용솟음치는 듯 느껴졌다. 마치 영약을 곱게 갈아 차로 우려낸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평범한 차가 아닌데 뭐지? 이건 마치 소생환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잖아?!’
아니 더 정확히는 정주 하오문의 분타에서 소가령이 자신에게 쓰려 했던 용연향에 약재가 섞인 소홍주를 눈앞에 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감사하외다……. 커흠흠.”
막 찻잔을 향해 손을 가져가려던 화운장로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용무린이 보이지 않게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기 때문이었다.
“어째 그러십니까? 차가 다 식겠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총관 사마중극이 자꾸 차를 권했다.
씨익.
그 모습을 보며 용무린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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