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무림맹에 부는 바람 (33/104)

2.무림맹에 부는 바람

따앙. 따라랑. 따아-앙. 따라라-랑.

맑은 쇳소리는 마치 탄주를 하듯 조금씩 미묘한 변화를 보였다. 그 때마다 옥풍과 사마중극은 머리를 감싸 쥔 채 괴로워했다.

“크흑! 어, 어떤 빌어먹을 자식이냐?”

“어헉! 저, 적이다! 무엇들 하느냐-아!”

두 사람의 비명과 고함소리에 총관부를 지키고 있던 호위무사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북쪽이다!”

“빨리 움직여! 어디서 온 놈들인지 잡아서 밝혀야 한다.”

삐익. 삐이-익.

타닷. 타다다다닷. 휘익. 휘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와 함께 호위무사 수십여 명이 동시에 북쪽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미 탄주를 하던 미지의 방문자는 모습을 감춘 후였다.

“허억. 허억. 대, 대체…….”

“후-우. 머,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던 옥풍과 사마중극의 표정이 돌변했다.

“……?!”

“……?!”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이 홀연히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내,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게지?’

‘맙소사. 비룡문을 나눠먹기로 하다니!’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자신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을 정도다.

찌릿! 움찔!

혼란스러워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떨었다.

미지의 탄주에 영향을 받았던 혈고가 다시금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뭉클. 뭉클.

혈고가 알 수 없는 물질을 토해냈다.

두 사람의 뇌를 다시금 변질시켰다. 욕망으로 가득 채웠다.

‘젠장.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뭐가 어때서?’

‘무림맹은 맹주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나라고 언제까지나 총관의 자리에서 남 뒤치다꺼리만 해야 하겠어?’

복면인이 주입해 놓은 명령이 다시 작동했다.

“그,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네. 종남과 청성은 아무 걱정하지 말게나.”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부맹주님.”

다시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무림맹의 아침이 시끌시끌해졌다.

간밤에 총관부 주변에 의문의 침입자가 침입을 했기 때문인데 호위무사들과 순찰당의 무사들이 무림맹과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피리 소리가 들렸을 때는 그토록 잠잠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부산을 떨었지만 결국 손에 쥔 것은 미지의 존재가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만 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로 인해 맹주령이 발동했다.

무림맹에 미지의 적이 들어와 휘젓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정체조차 모른다는 것은 수치라고 외친 후 총순찰의 임명과 특무순찰조의 활동을 명령했던 것이다.

덕분에 용무린은 자연스럽게 무림맹 수뇌부를 돌며 인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부맹주님. 이번에 총순찰로 임명된 용무린이라고 합니다.”

“훗, 맹주가 정말 내려올 때가 된 모양이로군 그래. 한낱 애송이에게 총순찰의 지위라니!”

부맹주 천리검향 옥풍이 노골적으로 비아냥댔다. 무림맹주와 용무린 두 사람을 싸잡아 비난했다. 물론 용무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원래 구린 게 많은 사람들이 특무순찰조 같은 기관의 활동을 두려워하는 법이죠?”

“뭐, 뭐라?”

옥풍이 눈을 부릅떴다.

용무린이 코웃음을 치며 툭 말을 내뱉었다.

“부맹주님을 두고 하는 말도 아닌데 뭘 그렇게 눈을 부릅뜨시나요?”

“네 이놈! 그 알량한 총순찰 직위가 있기로 어딜 감히 내게 그따위 대거리라니! 네가 정녕…….”

“거 참, 총순찰은 부맹주님에게도 그런 말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걸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맹주령의 권위도 넘어설 권위가 부맹주님께 있다는 겁니까? 왜 말씀 중에 ‘감히’라거나 ‘그따위 대거리’라는 말을 하죠? 그런 말을 하면 제가 겁이라도 집어먹을 것 같나요?”

용무린이 중간에 말을 툭 자르고 들었다. 계속해서 빈정거렸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천리검향 옥풍이 이를 부드득 갈아 붙였다.

“이런 시건방진 애송이가!”

후우웅.

천리검향 옥향이 내공을 끌어 올렸다. 화산의 이름 높은 옥청신공이 용무린을 옥죄었다.

‘과연!’

화산의 장로다운 내공!

매화검법의 근간이 되는 내력에 휘감기자 전신이 찢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숨 쉬는 것도 버거울 정도!

‘화운장로님과는 또 다르군.’

같은 초절정의 고수였지만 상관세가의 상관엽과도 달랐다. 상관엽의 내공이 만년거암의 그것처럼 묵직하게 느껴졌다면 화산파의 내공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어디, 내 눈으로도 확인을 해 볼까?’

아침 내내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호위무사들과 순찰당 무사들의 움직임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늠은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용무린의 손가락이 팔목으로 향했다.

팔목에 감겨 있던 소검비연의 검 면을 가볍게 두들겼다.

따앙. 따라랑. 따아앙. 따라라라-랑.

소검비연이 맑은 종소리를 내었다.

불사신기를 가득 머금은 묘한 운율이 천리검향 옥풍의 귀에 정확히 빨려들었다.

움찔!

“커흑!”

옥풍이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불사신기가 가득 실린 탄주가 귓속을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머리를 붙잡았다. 괴로워했다.

‘확실히 효과가 있구나!’

용무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간밤에 총관과 약주가 과하셨던 것 같은데요? 어서 좀 쉬세요.”

용무린은 즉시 돌아서 나왔다.

확인과 함께 미끼를 던졌으니 더는 머무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후욱. 후욱.”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던 천리검향 옥풍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튀었다.

“저놈이었구나. 바로 저놈이었어!”

뒤흔들렸던 양심은 이미 혈고의 움직임에 의해 되돌아섰다. 아니 그 이상이다. 위기감을 느낀 혈고가 독성을 뭉텅 분비했다. 옥풍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죽여야 해.’

그것도 빠른 시일 안에 죽여야 한다고 옥풍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회천대계마저 망쳐 버리기 전에 죽인다.’

결심이 굳었다.

천리검향 옥풍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만나고 다니기 시작했다.

“크크큭. 다음은 총관이나 한 번 더 보고 올까?”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용무린은 신나게 웃으며 총관부로 향했다.

따앙. 따라리-링.

잠시 후 흘러나온 탄주의 운율은 조금 변했다.

그 다음에 들렀던 부총관 운학의 집무실에서는 또 살짝 바뀐 운율의 탄주가 흘러나왔다.

씨이익.

‘좋아. 점점 더 완벽해지고 있어.’

찾는 곳마다 험악한 대접을 받고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용무린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신마 진무량 시절의 기억을 쥐어짜낸 후 응용했던 도박의 성공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후후훗. 이젠 모두 알겠지? 이대로 두고 보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라는 것을? 움직여라, 어서.’

위험이 커지는 만큼 도박의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따앙. 따라랑.

예상과는 달리 어떤 수뇌부는 불사신기의 탄주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용무린은 그 점까지 감안하며 영향을 받는 운율과 불사신기의 흐름을 기억해 나갔다.

***

“총순찰이 무림맹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고 있다고?”

무영의 보고에 풍연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예, 그렇습니다. 위험할 만큼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크크큭.”

풍연호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었고 화운장로는 좌불안석인 얼굴로 보챘다.

“그대로 둬도 되겠습니까, 맹주?”

“그대로 두지 않으면요?”

“말려야지요. 천리검향 옥풍 그 사람에게까지 가서 들쑤시다니! 자칫 부맹주의 비위를 거스르면 무슨 일이 생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단 말입니다.”

“아닙니다, 화운 장로.”

비천검제 풍연호가 정색을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잘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예? 잘하고 있다니요? 저렇게 무림맹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며 수뇌부들의 눈총과 분노를 한데 긁어모으고 있는 데도요?”

풍연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총순찰을 믿으세요, 화운장로. 총순찰의 별호는 삼절일학, 절대로 바보가 아닙니다.”

“……?!”

“우리는 그저 믿고 기다려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총순찰이 의도하는 순간이 도래하기를…….”

무림맹주 비천검제 풍연호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넘실댔다. 무영의 보고를 통해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간밤에 총관부를 뒤흔든 의문의 탄주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던 부맹주와 총관의 일을.

‘잘하고 있다, 총순찰.’

용무린이 방문하는 곳마다 의문의 금속성 탄주음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그것은 분명히 풍연호가 바라마지 않던 희망의 노래일 것이다.

‘미력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인 일이나 진정한 불사신기의 주인인 너는 가능할 터! 너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구워 먹든 삶아 먹든 그들의 목숨은 이제 오롯이 네게 달렸다. 나는 너를 믿는다, 불사신기의 주인이여…….’

용무린이 저만큼 파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혈고에 종속당한 자들 역시 살기 위해 하나로 뭉치려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무림맹을 돌며 만나는 사람마다 비윗장을 긁어 놓은 용무린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조용히 특무순찰조의 거처에 틀어박혔다. 좌정한 채 오늘 하루 얻은 것들을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혈고를 움직이는 법은 배교의 술법에서 유래한 거야.’

신마 진무량 시절 배교와 정말 지독하게도 싸웠다.

결국 배교를 멸망시킬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배교의 수많은 비급들을 흡수했다.

그 후 교주의 자리에 올라 무림 정복을 꿈꾸는 과정에서 배교의 비급들을 훑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혈고에 관한 것은 그때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규천마력이 아직도 내게 있다면 일은 간단해. 규천마력이 모든 종류의 마기를 압도하니 그저 혈고에 명령을 내리면 끝일 뿐이지.’

하지만 규천마력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다.

원수인 절대검신 독고황의 제자 중 하나가 세운 비룡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무슨 수를 써도 넘을 수 없었던 불사신기를 얻으려 포기했다.

‘그 불사신기로 제어가 가능할 줄이야…….’

규천마력은 모든 종류의 마기를 압도하지만 불사신기는 모든 종류의 마기를 흩어 버린다. 그 점을 노려 혈고의 힘을 흩어낸 후 혈적을 통해 제압된 심령을 탄주로 되돌리는 것이 도박의 핵심인 것!

‘오늘 사용해 봤던 운율을 한번 조합해보자.’

부맹주 천리검향 옥풍을 시작으로 무려 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다. 제각각 반응은 달랐지만 그 반응을 바탕으로 조합을 하면 꽤 효과가 있는 운율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

용무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백여 명에게 실험을 했었던 운율을 떠올렸다. 이리저리 조합해 나가기 시작했다.

***

용무린의 방문으로 위기감을 느낀 부맹주 천리검향 옥풍과 총관 사마중극은 대놓고 모임을 가졌다. 자신들과 뜻을 함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자자, 조용.”

천리검향 옥풍의 일갈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옥풍의 시선을 받은 총관 사마중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크게 열었다.

“무능력의 표상이던 맹주가 드디어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한낱 애송이에 불과한 용무린에게 총순찰이란 지위를 줘 전면에 세웠단 말입니다.”

사마중극의 말에 분통이 터진다는 듯 종남의 곡양도장과 청성의 서보도장이 거칠게 내뱉었다.

“지금껏 무림에 봉사한 대가가 겨우 이것이외다. 감히 약관을 넘긴 지 겨우 한두 해밖에 안 되는 애송이에게 총순찰이라니요?!”

“그 애송이가 내게 감히 뭐라 한 줄 아시오? 대 청성의 장로이자 무림맹의 호법인 내게 대놓고 불의한 일을 벌인 적이 있는지 없었는지를 조사한다 하였소. 이게 말이 되는 일이오?”

두 사람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불만 가득한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하나같이 현 무림맹주인 비천검제 풍연호와 총순찰인 용무린을 질타하는 내용들이었다.

총관 사마중극이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맹주가 저렇게 나온 것은 바로 우리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무언의 압박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 평생 무림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해 왔던 우리가 이대로 밀려나야만 한다는 말입니까?”

“흥! 무림의 정기를 바로 세울 때가 다시 온 게지!”

“아무렴, 한 평생 무림의 안위를 위해 노력해온 우리를 몰아내려고 하다니! 어림도 없는 일인 것이야!”

“옳소이다!”

“이 기회에 그동안 흩뜨려진 무림맹의 체계를 다시 추슬러야만 할 것이외다!”

모두가 원하는 것이 같음을 확인한 총관이 이때다 하고 운을 띄웠다.

“무능력하기만 한 무림맹주를 몰아내고 정녕 무림의 안위를 위한 맹주를 새로이 세울 때가 온 듯합니다.”

드디어 나올 말이 나왔다.

반짝.

서슬 퍼런 눈을 빛내던 천리검향 옥풍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 안건에 찬성하는 바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 역시 찬성이외다.”

“청성을 대표해 나 역시 찬성하는 바외다.”

“단목세가 역시…….”

“서문세가도…….”

부맹주 천리검향 옥풍을 시작으로 모두가 찬성을 했다.

총관 사마중극이 즉시 다음 단계를 밟았다.

“실질적인 무림맹의 주축인 여러분들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이제 결론은 내려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새롭게 거듭날 무림맹주를 어느 분으로 하느냐 하는 것인데, 추천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

사마중극의 말이 떨어진 순간, 마치 그렇게 하기로 합의라도 되어 있었던 듯 모두의 시선이 총관 사마중극에게로 향했다. 모두가 총관의 입만 바라보았다.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총관 사마중극이 입을 열었다.

“미력하지만 제가 한 분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사마중극의 예정된 별호와 이름 하나가 흘러나왔다.

“저는 무림맹의 살림을 총괄하는 총관의 직위를 걸고 현 무림맹의 호법 중 한 분이신 철수탈혼 운위영 대협을 차기 무림맹주의 자리에 추천하는 바입니다.”

철수탈혼 운위영.

신주오가의 일원인 운룡장의 중진으로 운룡장주인 운엽상의 아우이자 초절정 고수로 이름 높은 사내였지만 무림맹주에 추천받기에는 다소 손색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보다 훨씬 더 인망과 명성이 높은 천리검향 옥풍이 부맹주의 자리에 앉아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철수탈혼 운위영 대협이라. 지금 이 시간에도 마공을 익힌 무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비룡문의 자작극을 확인하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고 계신 분이니 차기 무림맹주의 자리에 오르기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놀랍게도 부맹주인 천리검향 옥풍이 먼저 찬성을 하고 나섰다.

“흠! 지금까지 무림맹의 여러 대소사나 이해관계를 풀어냈던 운 호법의 감각을 보자면 무림맹주라는 자리의 무거움 역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외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무림을 위해 애써온 여러 문파들을 어느 한 곳도 서운하지 않게 배려해온 운 호법이 무림맹주가 되면 우리 무림맹이 앞으로 한층 더 발전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일 것입니다.”

옥풍의 뒤를 이어 종남의 곡양 도장과 청성의 서보 도장까지 찬성을 하고 나섰다.

그 뒤부터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단목세가 역시 운 호법을 무림맹주의 보위에 올리는 일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서문세가도 동참합니다.”

“진주언가 역시…….”

투표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만장일치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철수탈혼 운위영이 차기 무림맹주의 자리에 추천되었고 통과가 되었다.

“자, 그러면 싸가지 없는 애송이 한 마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습니다. 좋은 생각이 있으신 분께서는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

“……!”

갑자기 모두가 입을 닫았다. 서로 눈치만 보았다.

모두가 아는 것이다. 용무린이 팔목을 손가락으로 튕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물론 그중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먼저 나서지 않았다. 눈치만 보았다.

‘다들 몸을 사리는데 공연히 내가 나서서 된서리를 맞을 수는 없지.’

‘대관절 어떻게 된 조홧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다시 그 수법을 쓴다면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성질 같아서야 직접 나서서 비무를 핑계로 시원하게 목을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그 망할 놈의 탄주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렸다.

피식.

옅은 미소와 함께 사마중극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신 역시 같은 심정이었으니 굳이 꼬리를 마는 같은 편을 자극할 이유가 없는 거다.

“듣자하니 요즘 백마사라고 하는 살수의 무리가 무림의 동도들에게 해악을 끼친다고 하더군요.”

척하면 착이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라는 듯 숨죽이고 있던 모두가 일제히 입을 열었다.

“돈만 지불하면 상대가 누구든 지옥 끝까지 쫓아가 목숨을 빼앗는다고 하니 과연 무림의 패악이오.”

“맞소이다. 돈으로 사람 목숨을 빼앗다니!”

“흉측한 놈들이로고. 쯧쯧쯧…….”

모두가 욕을 하면서도 모두가 좋아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들을 보였다.

백마사.

몇 년 전부터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살수 집단.

자신들이 입에 담았듯 그 패악이 만만치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무림맹의 이름으로 징치에 나선 일이 없다. 왜냐하면 백마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살려둔, 아니 키우다시피 한 살수 집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의 이름과 무력단체의 압박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권다툼에는 어김없이 백마사의 살수들이 움직였고 해결을 보았다.

그랬기에 그 많은 문파들의 반발과 성토가 있음에도 화산과 종남 그리고 청성이나 서문세가와 단목세가 같은 거대 세력이 모든 것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백마사의 살수쯤 되면 우리 무림맹의 담도 넘을 수 있다는 뜻. 오늘부터 경계의 수위를 조금 더 높이는 것으로 조치하겠습니다.”

“좋은 말이네. 어제도 의문의 존재가 총관부의 담을 넘어 가소로운 수작을 벌이고 갔다고 하질 않은가?”

“맞습니다. 모름지기 경계는 평상시에 더 신경 써야 하는 법이니까요.”

만족스러운 해결책이라는 듯 모두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무림맹의 담을 넘은 백마사의 살수들 손에 총순찰 용무린이 죽임을 당한 후 미리 늘려 놓은 경계를 확 펼쳐 놈들을 잡을 셈인 것이다.

‘단물 다 빨아 먹은 백마사 정도야 이젠 버려도 되지.’

‘그동안 놈들만 너무 많이 부려먹었어.’

‘놈들도 이젠 정리할 때가 되었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겸사겸사 잘 됐네.’

백마사가 없어지면 다른 사냥개를 키우면 그만인 거다.

그 정도 살수단체야 늦어도 일 년이면 된다. 새로 길러내고도 남는다.

“내일부터는 한결 잠자리가 편안해 질 듯합니다.”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잠자리가 뒤숭숭했는데 마침 잘 되었습니다, 그려.”

용무린의 죽음은 그렇게 기정사실이 되었다.

상관세가의 초절정 고수 상관엽이 용무린의 손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보고가 올라오긴 했지만 그 누구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초절정 고수가 이제 겨우 무공 입문 1년도 안 되는 애송이의 손에 죽었다? 웃기는 소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설령 용무린이 운 좋게 상관엽을 이겼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백마사의 살수 100명이라면 초절정 고수라 해도 능히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면 철수탈혼 호법님께서 돌아오시는 날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마 그날 우리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철수탈혼 운위영의 복귀일이 바로 거사일이라는 뜻.

반짝. 반짝.

그곳에 모여 있던 모두의 눈이 욕망으로 물들어갔다.

***

하루 반나절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어느새 휘영청 달이 떠올랐다.

그 시간 내내 용무린은 석상처럼 좌정을 한 채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물론 소검을 이용한 탄주로 혈고를 제어할 운율을 정립하기 위해서였다.

휘잉. 사락.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서슬에 바닥을 뒹구는 낙엽 몇 개가 용무린이 좌정하고 명상에 잠긴 곳을 향해 밀려왔다.

‘낙엽인가?’

호법을 위해 전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점창의 현허가 시선을 완전히 돌렸을 때였다.

번쩍.

계속해서 감겨만 있던 용무린의 눈이 부릅떠졌다.

느닷없이 현허를 향해 신법을 전개했다.

스파앙.

“어엇!”

생각지도 못했던 용무린의 움직임에 현허가 화들짝 놀라는 사이 풍뢰가 전면을 훑었다.

쉬각. 타앙.

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비검 하나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모두 정신 차려! 암습이다!”

용무린의 외침에 암습은 틀렸다고 생각한 것일까?

어둠보다 더 어두운 야행복 차림의 복면인들이 용무린과 특무순찰조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쉭. 쉬쉬쉭.

소리조차 은밀한 협봉검이 작살처럼 파고들었다.

“우웃!”

“허엇!”

현허와 남궁유룡이 헛숨을 집어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황급히 검을 휘둘렀다.

쉬각. 패애애액.

카앙. 카라락. 타아앙.

겨우 겨우 암습자들의 협봉검을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현허와 남궁유룡의 몸 이곳저곳에서는 굵은 핏물이 쉴 새 없이 튀어 올랐다.

그 사이 용무린은 복면인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이고 말았다. 전후좌우 모든 공간이 복면인으로 채워졌다.

쏴아아아. 패액. 쉬가각.

온갖 공격이 용무린을 향해 쏟아졌다.

카랑. 쉬각.

풍뢰의 끝에 걸린 복면인의 목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하지만 복면인의 배를 뚫고 협봉검이 튀어 나왔다. 용무린의 심장을 노렸다.

“흥!”

따앙. 서걱.

용무린은 코웃음을 치며 원앙각으로 협봉검을 부러뜨렸다. 풍뢰를 가볍게 휘둘러 놈의 목을 날려버렸다.

쉬익. 쉬쉬쉭.

순간적으로 두 명의 동료가 쓰러졌지만 복면인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목숨을 도외시한 채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

‘살수들이다.’

제아무리 명상에 빠져 있었다지만 주변을 지키고 있던 특무순찰조원들에게 발각당하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나, 목숨을 잃은 동료의 주검에 가차 없이 손을 쓰는 것으로 보나 살수 말고는 답이 없었다.

‘피해가 크겠군.’

물론 자신이 아닌 특무순찰조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웬 놈들이냐?”

“감힛!”

“차아앗!”

뒤쪽을 지키던 당건과 팽도옥 그리고 황보패가 부리나케 달려 나왔지만 용무린을 향해 다가가지 못했다. 중간에 차단당했다.

카락. 푹. 푹. 푹.

“크흡!”

“헉!”

지닌바 무공의 수위가 모두 절정인지라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살수들의 맹공에 다섯 조장들은 정신없이 뒤로 밀려야만 했다.

“2인 1조로 진형 유지해! 쓰러진 놈에게서도 눈을 떼지 마라. 살수들이다. 공격과 방어를 서로 나누어라. 그래야만 살 수 있다.”

휘리릭.

고함을 버럭 지른 후 용무린은 오히려 살수들의 중심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사람 잘못 봤어!’

피이이잉. 쉬리리리릭.

소검비연이 큰 원을 그렸다. 손잡이 끝에 걸린 천잠사가 그 뒤를 따라 파도처럼 밀려갔다.

쉬각. 서걱. 서거거걱.

한 수에 다섯 명의 살수들이 두 동강이 났다.

‘나는 신마 진무량. 과거 배교의 살수들과 십 년을 넘게 싸웠음에도 살아남았던 존재다.’

버언쩍.

풍뢰가 잔인한 반달을 피워 올렸다.

수라잔월에 갇힌 살수 셋의 목이 동시에 투두둑 떠올랐다. 피보라가 일었다.

‘한두 놈도 아니고……. 일부러 길을 틔워줬겠지?’

무림맹이 어디 뒷골목 흑도문파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깊은 곳까지 이 많은 숫자가 들어올 수 없는 거다.

‘기필코 되돌려 주마.’

패애액. 쉬각. 쉬리릿.

풍뢰와 소검비연 그리고 천잠사의 움직임이 점점 더 난폭해져만 갔다.

***

부맹주 천리검향 옥풍의 침실.

잠자리에 눕는 대신 옥풍은 무복을 입은 채 검까지 옆에 차고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쯤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으렷다?’

어느새 시간이 자시를 향하고 있으니 지금쯤 출발하면 여러모로 좋았다.

‘푸흐흐. 감히 무림맹을 침범한 살수 놈들도 처리하고 그 빌어먹을 애송이의 목도 따고……. 좋구나.’

옥풍이 떨쳐 일어났다.

“가자!”

“충!”

휘하의 무사들이 한 목소리로 답하며 따라 나섰다.

부맹주만 떨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호법 중 하나인 종남의 곡양 도장과 청성의 서보 도장 그리고 서문세가와 단목세가 역시 외부 침입자의 흔적을 발견했다. 무사들을 독려해 추적에 나섰다. 일제히 특무순찰조의 연무장으로 밀어닥쳤다.

‘시건방진 애송이가 나자빠진 모습을 구경할 수 있겠군.’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잘 될까?’

미리부터 표정 연습을 해보기도 하며 다다른 곳!

“……!”

“……!”

부맹주 천리검향 옥풍을 비롯한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을 부릅떴다. 산처럼 쌓인 복면인들의 주검을 짓밟고 선 채 용무린이 섬뜩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크크크큭.”

피에 젖은 얼굴에 흰 선이 쭉 그어졌다.

어둠을 뚫고 새하얗게 번들거리는 두 눈이 천리검향 옥풍과 여러 호법들을 차례차례 훑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섬뜩한지!

우르르 몰려와 입만 쩍 벌리고 선 모두를 가만히 노려보던 용무린의 입이 불쑥 열렸다.

“현허!”

“예, 총순찰!”

점창의 현허가 똑 소리 나게 대답했다.

“무림맹 경계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지?”

“총관부 예하의 호위당입니다.”

“호위당이라……. 그러면 오늘밤 무림맹의 경계 실패에 대한 책임이 호위당에 있다는 거네. 그래?”

“그렇습니다, 총순찰.”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인 현허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더 정확히는 호위당주 조영에게 있다 할 것입니다.”

“그, 그게 지금 무슨 뜻이냐?”

“그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더냐?”

“이 침입자들의 정체는 뭐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었는지 천리검향 옥풍이 재빨리 말을 끊었다. 종남의 곡양과 청성의 서보 역시 한마디씩 거들었다.

“현허는 말을 삼가라! 내게 책임이 있다니? 침입자들의 흔적을 감지하고 무사들을 휘몰아 달려 나온 것이 자네 눈에는 안 보인단 말인가?”

뒤편에 있던 중년 사내 하나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용무린의 서슬 퍼런 눈이 사내에게로 향했다.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인지 시선이 마주친 중년 사내가 흠칫 몸을 떨었다.

“호위당주 조영이 대체 어떤 개자식이지?”

“말을 삼가시오! 개자식이라니!”

흠칫 몸을 떨었던 중년 사내가 사납게 짖었다.

“저 인간이 바로 호위당주 조영입니다, 총순찰.”

씨익.

싸늘하게 웃어 보인 용무린의 손에 맹주령이 들렸다. 불사신기를 주입했다.

버언쩍.

맹주령에서 오색 광채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맹주령의 권위로 즉결처분한다. 무림맹의 경계를 소홀히 해 백 명이 넘는 살수들이 침입하게 한 죄를 물어 호위당주 조영을 참한다!”

“총순찰!”

“지금 이게 뭣 하는 수작이…….”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황망히 외칠 때였다.

용무린의 왼손이 슬쩍 들렸다.

버언쩍.

반투명한 빛 무리가 용무린의 손끝에 어리는가 싶더니 이내 호위당주 조영의 미간까지 새하얀 선이 쭉 그어지는 환영이 일어났다.

비연일섬의 일초!

퍼억!

조영의 미간에 소검비연이 벼락처럼 틀어박혔다.

“……!”

“……!”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나직한 웃음소리와 함께 용무린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크크큭. 불만 있는 사람 나와!”

설마하니 이렇게 전격적으로 먼저 손을 쓸 줄은 몰랐다.

부맹주 천리검향 옥풍을 비롯한 여러 초절정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대뜸 호위당주의 목숨을 가져가 버릴 줄이야!

‘맙소사.’

‘체포 정도 할 줄 알았는데…….’

‘이, 이제 어떻게 하지?’

‘저, 저 인간들이 한꺼번에 덤벼들면 답이 없는데…….’

지켜보고 있던 특무순찰조원들 역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체포하는 줄로만 알았지 저렇듯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죽여 버릴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거다.

거기에 더해 불만 있는 놈 나오라고 도발을 한다!

“네 이노-옴!”

나오라니 정말 나왔다.

부맹주 천리검향 옥풍이 노성을 질렀다. 당장에라도 출수를 하려는 듯 옷소매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용무린이 비릿하게 웃었다.

“푸흐흐. 전투에 진 사람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격언도 모르는 인간이군.”

“……!”

옥풍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출수하고 싶으면 출수해보라는 듯 용무린은 옥풍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주변을 슥 돌아보며 외쳤다.

“더 없나?”

“……!”

“……!”

나올 리가 없다.

속이야 터질 것 같지만 경계에 실패한 사람이라고까지 규정을 했는데 토를 달자니 책임이 떠넘어 올 것만 같았던 것이다.

“경계에 실패를 해?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달려 나온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지?”

사마중극이 나선 후에야 다들 한마디씩 보탰다.

“맞아! 경계에 실패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놈들을 잡으러 달려 나온 것 아닌가?”

“옳소이다. 이건 맹주령의 위세에 기댄 월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징계위원회를 열어 호위당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피식.

용무린이 풀썩 웃었다.

“징계위원회? 맹주령을 직접 받아 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 나를? 그동안 나는 나대로 할 일을 하고 있을 테니 어디 한번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현허!”

“예, 총순찰!”

“남들이 뭐라고 하든 너희는 특무순찰조! 지금부터 진상조사를 하겠다. 저 많은 숫자가 어떻게 무림맹의 담을 넘어 이곳까지 기어들어 올 수 있었는지 철저하게 파악을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총순찰!”

“거동이 가능한 애들 전부 동원해서 지금 이곳에 몰려든 호위당 놈들 깡그리 잡아 가둬.”

“총순찰님의 명을 받습니다.”

“가자!”

현허와 당건이 앞으로 나섰다.

우두머리를 잃고 황당해하고 있는 호위당 소속 무사들을 압박했다. 그 모습을 보며 용무린이 크게 외쳤다.

“맹주령으로 명한다. 반항하거나 도주하려는 놈들은 살수와의 내통 혐의를 적용해 가차 없이 베어라.”

“충!”

“들었느냐? 얌전히 총순찰님의 명에 복종하도록!”

“움직여라! 당장!”

남궁유룡과 황보패 그리고 모용수가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강단 있게 나섰다. 조원들을 독려해 호위당의 무사들을 압박했다.

“……!”

“……!”

도움을 요청하는 듯 잠시 부맹주 옥풍과 사마중극을 바라보았던 호위당의 무사들은 결국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얌전히 특무순찰조원들을 따라 나섰다.

“백 명이 넘는 살수들이 이 깊은 곳까지 들어왔는데도 중간에 눈치 챈 놈들이 어떻게 하나도 없는지 더럽게 궁금하네, 정말!”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해보인 용무린은 소검비연의 검 면을 살짝 퉁겼다.

따아앙. 따라라랑. 따당.

불사신기를 가득히 머금은 독특한 운율.

움찔. 흠칫.

모여든 수뇌부들 중 많은 수가 몸을 떨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용무린을 피해 길을 열었다.

“알아내는 것이 있는 대로 발표를 할 터이니 기대들 하고 있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용무린은 현허의 뒤를 쫓아 사라졌다.

잠시 후,

반짝. 반짝.

천리검향 옥풍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수뇌부들이 섬뜩한 눈빛들을 뿜어냈다. 멀어져 가는 용무린의 뒤를 당장에라도 덮칠 듯 흉흉한 기세였다.

“철수탈혼 호법에게 연락을 취하게. 최대한 빨리 맹으로 복귀를 해야 한다고 전하게.”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나직한 옥풍의 말에 사마중극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

사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특무순찰조의 집중 취조에 결국 무림맹의 경계가 무너진 이유가 밝혀졌다. 호위당 무사들의 입에서 부분적이긴 하지만 일부러 야간 경계를 비웠던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일이 즉결처분당한 호위당주 조영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조영이 일부러 경계를 부분적으로 비운 덕에 살수들이 백 수십 명이나 침입해 무림맹을 종횡으로 휘젓고 다녔다는 소식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백마사라…….”

“그렇습니다, 맹주님. 사망한 살수들의 몸에서 백마사 특유의 문신을 이미 확인했습니다.”

무영의 보고에 풍연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훗. 놈들이 드디어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구나.”

“총순찰께서 전격적으로 움직인 것이 놈들을 자극한 것 같습니다.”

풍연호의 주먹이 콱 쥐어졌다.

“점점 때가 다가오는구나.”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3년이었다.

그 전까지의 무림맹은 이해타산의 무게추가 소속된 중요 문파들에게 기울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대놓고 몇 곳의 편을 들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3년 전부터는 완벽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챘을 때는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상식이하의 행동만 거듭하는 그들을 섣불리 쳐내려다가는 구파일방이 몇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여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백마사와 같은 살수단체까지 비밀리에 운용을 하다니!’

그 사실을 알아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맹주 직속의 무력단체를 파견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굳이 손을 쓰지 않았다.

손을 쓰게 되면 혈고에 당한 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 혈고에 당한 사람들을 돌이킬 가능성까지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자중지란이야말로 마교가 원하는 일이겠지.’

결국 이렇게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무영.”

“예, 맹주님.”

“호남성으로 보냈던 의천단과 풍운단의 조사는 마무리가 되었나?”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맹주님. 실종되는 아이들 중 몇몇은 부모가 일부러 노비로 팔아먹은 후 거짓으로 관가에 고변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아직도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잠시 침묵에 잠겨 있던 풍연호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별 수 없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야. 최소한의 준비를 끝내놓아야만 한다. 의천단과 풍운단을 비밀리에 맹으로 복귀시키도록.”

“알겠습니다.”

똑 소리 나는 대답과 함께 무영이 밖으로 나섰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무림맹을 반드시 정상화시켜 놓아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풍연호의 뇌리에 해일처럼 밀려오는 마교의 정예들 모습이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것인지 풍연호는 말을 삼갔다.

“불사신기의 주인이여. 그대가 예정된 그분이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소이다. 부디 다가올 환난에서 무림을 구해주시길…….”

풍연호의 간절한 기원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

안휘성 합비의 운룡장.

“휴우. 이제야 겨우 끝났네.”

운룡장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림맹과 연계가 된 상단들의 도움으로 만금상단이 황궁에 납품할 귀금속들을 겨우겨우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무림맹의 호법이자 운룡장주의 동생인 철수탈혼 운위영이 나직한 목소리로 책망을 했다.

“너무 방심하신 것 아닙니까, 형님?”

“…….”

운룡장주는 입을 열지 못했다.

운위영의 차가운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인해 일을 흩뜨리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위영아. 그 말은 지금 나더러 물러나라는 것이더냐?”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리는 것뿐입니다, 형님.”

“…….”

“운룡장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신교의 전사들을 천하곳곳에 무사히 이동시키는 것, 그때를 위해 운룡표국은 무탈하게 커져야 합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계신다는 분께서 쟁자수와 짐꾼 마부를 깡그리 마령전사들로 채웠단 말입니까?”

“…….”

운룡장주는 다시 침묵했다. 운위영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운위영의 말마따나 마령전사들을 깡그리 쟁자수와 짐꾼 마부로 위장시키는 바람에 무한에서 급히 사람을 뽑는 촌극을 벌였다.

당연히 그로 인해 용무린의 의심을 사게 되었고 현재 표국의 모든 행렬에 개방의 눈이 따라붙었다. 정말 숨 막혀 죽는 줄로만 알았다.

‘젠장. 마령전사들이 그렇게 쉽게 깡그리 죽어나자빠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

고함이라도 버럭 질렀으면 좋으련만, 운룡장주는 뱀 앞의 개구리라도 된 듯 운위영에게 기를 펴지 못했다.

“거지들이 지쳐 떨어지게 해야 합니다. 잊지 마세요. 더 이상의 기회는 드리지 않을 겁니다.”

“잘 알았네, 아우. 더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네.”

“어떤 놈들이 습격을 했는지 찾아냈습니까?”

“아직 추적 중이네. 의심스러운 꼬리를 몇 개 찾았으니 곧 밝혀낼 수 있을 것이네.”

내내 싸늘하던 운위영의 얼굴이 그제야 풀렸다.

“찾아낸 즉시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제가 직접 손을 쓸 것입니다.”

“알았네, 아우.”

“풍아의 수련은 어떻게 됐습니까?”

“풍아?”

주눅 들어 있던 운룡장주의 표정도 그때 밝아졌다.

“한 번 보겠는가?”

“……!”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운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즉시 일어났다. 운룡장주가 특별히 마련한 지하 연무동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거대 세가에는 금지가 존재한다.

가주를 비롯한 직계존속들이 생활하는 내원과 가문의 선조들을 모신 사당, 그리고 무공의 비급들을 모아 둔 비밀 장소가 바로 금지에 속한다.

당연히 운룡장주와 직계존속들이 폐관수련을 하는 곳 역시 금지에 속하는데 지금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서너 달 전 새롭게 금지로 지정된 곳으로 운적풍의 개인 연공실이었다.

후우우웅. 쿠르르르. 콰앙.

어둠보다 짙은 마기가 화산처럼 폭발해 사방을 뒤흔들고 있었다. 파도처럼 일렁이다 때로는 칼날처럼 응축되어 연공실의 흑오석을 두부처럼 마구 갈랐다.

“크흐흐. 죽인다, 용무린. 반드시 죽여버린다아-앗!”

콰아우웅. 쉬가각. 쉬가가각.

운적풍의 손에서 뿜어진 농도 짙은 마기가 유형의 검으로 화해 흑오석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가 않는지 운적풍은 계속해서 흑오석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었다.

진마묵검(眞魔墨劍).

신마단을 통해 얻은 마기로만 펼칠 수 있는 마교의 진산절기 중 하나가 운적풍의 손에서 끝도 없이 펼쳐졌다.

짝. 짝. 짝.

갑자기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운룡장주와 함께 연공실을 찾았던 운위영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반짝!

운룡장주와 운위영을 확인한 운적풍의 눈빛이 그제야 평범하게 돌아왔다.

“구성의 경지. 이제야 쓸 만해졌구나. 애썼다.”

“숙부님을 뵙습니다.”

운적풍이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

하지만 운룡장주와는 달리 운적풍의 눈에는 운위영을 향한 두려움 따윈 보이지 않았다. 기특하다는 듯 운위영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사내라면 그 정도의 배포는 있어야지!”

“……!”

“내공의 수위는 이미 초절정의 그것, 하지만 반박귀진에 올라 완전히 안으로 감출 수 있을 때까지는 아직도 부단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숙부님.”

“그래, 그래야지.”

“얼마나 시일이 더 걸리겠는가?”

운룡장주의 질문에 운위영의 눈매가 가느다래졌다.

“시일이 문제가 아닙니다, 형님.”

“그러면?”

“거지들의 눈이 점점 더 매서워지고 있습니다.”

“…….”

“풍아의 연공으로 인해 지금도 밖에서 은은히 진동이 느껴지고 있지 않습니까? 자칫 놈들이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하면, 어떻게 하지?”

운위영의 시선이 운적풍에게로 향했다.

“상관세가주와 이미 이야기가 다 되었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대지로 가거라.”

“……!”

“회천대계가 마무리가 되면 천하는 우리 두 가문의 것이 될 터, 운룡장 역시 그 대지에 기반을 잡을 때가 되었다. 그 대지에서 힘을 키워라.”

반짝.

“알겠습니다, 숙부님.”

운적풍의 눈이 희망으로 번들거렸다.

“나가자, 아들아. 출발하기 전에 이 아비와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하자꾸나.”

“예, 아버지.”

세 사람은 나란히 가주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계획처럼 함께 술잔을 기울이지는 못했다. 흑수리 한 마리가 가주전 창턱에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흑수리 발목에 매여 있던 전서를 읽자마자 운위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무능력한 인간이 애송이를 데려와 꼼수를 부린 모양입니다. 지금 즉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운위영은 급히 밖으로 나섰다.

스파앙.

무림맹을 향해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쳤다.

***

용무린은 특무순찰조의 조장 다섯을 전용 연무장으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하명하십시오, 총순찰님.”

기합이 팍 들어간 다섯 조장이 용무린의 말을 기다렸다.

용무린은 잠시 침묵했다.

‘하아, 어떻게 설명을 하지?’

백마사의 살수들이 침입했을 당시 다섯 조장은 정신없이 뒤로 밀렸었다. 용무린이 대처법을 일러주지 않았다면 죽었을 가능성이 높을 정도!

‘녀석들 가문이나 문파의 절기를 되돌려주면 잃어버린 연결 고리를 되찾아 단숨에 발전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녀석들 가문이나 문파의 절전된 절기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오롯이 들어 있다. 문제는 그것들을 넘겨주며 대체 어떻게 출처를 밝히느냐 하는 거다.

‘헌 책방에서 샀다고 말하면 절대로 안 믿겠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별 수 없다.’

용무린은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핑계를 입에 올렸다.

“내가 동백산 자락에서 수련을 할 때 말이야. 절벽에서 떨어진 적이 있거든?”

“……!”

다섯 조장들의 눈이 살짝 가느다래졌다.

‘믿어라.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앞에 웬 동굴이 떡하니 있대?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말이야…….”

용무린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누구도 믿지 않을 이야기를 잘도 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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