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되찾은 힘
이번에는 먹잇감을 빼앗길 수 없다는 듯 도마종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용무린을 향해 씽긋 웃었다.
“네가 도를 그렇게 잘 쓴다지?”
한 발 뒤에 있던 권마종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풀썩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흐. 나 이런……. 이번에는 내가 늦었군그래.”
그러면서 은근슬쩍 무당의 장문인인 자운진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어림없다는 듯 혈마종이 무뚝뚝한 목소리를 쏘아냈다.
“꿈도 꾸지 마. 저 말코는 내 거야.”
“킁!”
어쩔 수 없다는 듯 권마종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쉬움 가득 담긴 시선을 자영과 자성에게 보냈다.
“젠장. 오랜만에 나와서 떨거지들이나 상대하는 신세라니!”
현천옥허궁의 주인과 팔선관의 주인을 향해 떨거지란다.
하지만 자영과 자성 두 사람은 항변하지 못했다.
움찔.
자신들도 놀랄 만큼 크게 몸을 떨었다.
권마종이라는 이름과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세가 그만큼 거대했던 것이다.
그때였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용무린이 나섰다. 삼마종을 향해 한마디 툭 던졌다.
“끝났어?”
“……?”
도마종의 눈매가 가느다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무린은 다시 속을 긁었다.
“여인네 소개받으러 나온 자리도 아니고 뭔 말들이 그리 많아?”
휘이유우-웅.
말을 잇는 용무린을 향해 대자연의 기가 몰려들었다. 풍뢰에 걸린 은은한 빛이 점점 더 약해졌다. 이제는 검기도 안 되어 보인다. 평범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웅웅웅우-웅.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는 풍뢰에서 주변 전체를 떨어 울릴 만큼 강렬한 공명음이 흘러나왔다.
‘이것이 지금 내가 펼칠 수 있는 최대치. 저 노괴를 상대로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물처럼 고요한 도마종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는 앎이 있었다. 주변을 통째 장악한 듯 뻗어나간 불사신기의 기세가 도마종 앞에서 힘을 잃었다. 맥없이 주변으로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어? 부딪쳐야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파고들어 박살내는 거야.’
목을 길게 빼고 상대가 곱게 죽여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면 싸우는 거다.
“덤벼-엇!”
후욱.
말은 먼저 덤비라고 해 놓았지만 이번에도 먼저 선공을 펼친 것은 용무린이었다. 바람처럼 거리를 좁힌 후 풍뢰를 흔들었다.
버언쩍.
초승달에 이어 만월로 자라난 수라잔월의 초식.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만월로 떠오른 수라잔월이 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속도로 회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껏 한 번도 펼쳐내지 않았던 진천수라도의 초식 수라전광회륜.
씨이융. 씨융.
그 무엇이든 갈라 버릴 수 있는 거력이 도마종을 향해 밀려갔다.
꿈틀.
“건! 방! 진! 놈!”
딱딱 끊어지는 말로 분노를 표현한 도마종이 도병을 움켜쥐었다. 물 흐르듯 군더더기 없이 뽑아 짧게 두 번 끊어 쳤다.
쿠와앙! 콰아아앙!
그 단순한 움직임에 수라전광회륜의 초식이 박살났다.
무슨 특별한 초식을 펼친 것이 아니었음에도 너무나 가볍게 깨졌다.
‘초식의 경계를 이미 넘어섰다.’
더불어 밀려오는 저 끔찍한 파괴력을 보라.
마치 태산이 나를 향해 통째 밀려오는 듯하지 않은가?
“크흡!”
타다닷.
계속해서 밀려오는 여력을 해소하기 위해 용무린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야만 했다. 계속해서 풍뢰에 불사신기를 걸었다. 앞을 향해 뿜어냈다.
휘이잉. 휘스스슷.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그제야 도마종이 쳐낸 내공이 모두 해소되었다. 실로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이노-옴!”
노성과 함께 이번에는 도마종이 짓쳐들었다.
도를 회초리처럼 가볍게 내리 그었다.
후웅. 후우우웅.
도의 움직임을 따라 끔찍한 힘이 밀려들었다.
‘빌어먹을!’
용무린의 눈에 다급함이 어렸다.
천지사방이 피할 곳인데 어느 방위로 피한다 하더라도 도마종의 도가 따라올 것임을 직감했다.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하려다가는 내 자세만 흩뜨려져.’
그러면 끝이다.
다리를 잘리든 팔을 잘리든 치명상을 입게 된다.
‘별 수 없구나.’
맞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이야아하!”
용무린은 사력을 다해 진천수라도의 초식을 펼쳤다. 어느새 회초리처럼 나선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도마종의 도를 향해 풍뢰를 맞부딪혀 갔다.
“호오!”
도마종의 눈이 의외라는 듯 동그래졌다.
자신의 도를 피해 솟구쳐 오르다 다리나 팔 또는 허리가 갈라져 죽을 줄 알았거늘 되레 공격을 가해올 줄은 몰랐던 거다.
결국 도와 도가 맞부딪혔다.
쿠와앙. 콰아앙. 쿠콰콰쾅.
얼마만큼의 불사신기가 걸렸는지 도와 도가 부딪히는데 귀청이 찢어지는 굉음이 흘러나온다.
분명히 한 번 휘둘렀는데 폭음은 더 많이 울렸다.
하나의 궤적 안에 여러 노림수가 녹아 있었던 것이다.
용무린이 옳았다.
피하려고만 했으면 피하지 못했으리라. 다리나 허리 또는 팔에 치명상을 입었을 거다.
“뭐하나 말코? 우리도 시작해야지!”
잠시 용무린과 도마종과의 싸움을 구경하던 혈마종이 자운진인을 향해 살기를 흘렸다. 꽤 재미있는 싸움을 보자니 몸이 근질거렸던 거다.
“무당의 장문인 자운이외다.”
자세를 고쳐 잡으며 자운이 자신을 밝혔다.
혈마종이 가볍게 웃었다.
“후훗. 말코답군. 이 판국에 무슨 놈의 인사치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 혈마종도 적절한 예의를 갖추었다. 상대가 무당의 장문인이니 자신에게 맞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혈마종이다.”
“먼저 가리다!”
휘슷.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운진인이 짓쳐들었다.
태극혜검을 펼쳐 혈마종의 목과 단전에 경유하는 태극의 문양을 그려내었다.
“흥! 이까짓 것!”
혈마종 역시 도마종처럼 간단한 동작으로 진신무공을 펼쳐내었다. 이름하여 혈룡신공. 손짓을 따라 뿜어져 나온 두 줄기의 시뻘건 강기가 마치 진짜 혈룡이라도 되는 듯 태극혜검의 태극을 따라 휘돌았다.
콰르르. 콰르르르.
용암의 흐름이 이럴까?
태극을 따라 휘돌다가 밖으로 흘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혈룡신공의 강기는 그대로 태극혜검의 중심을 파고들었다. 그대로 때렸다.
쿠와아앙. 콰아아아앙.
“크흡! 쿨럭. 쿠울럭.”
쿵쿵쿵쿵쿵.
답답한 비명성과 함께 자운진인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렸다. 굵은 핏덩이를 쏟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혈마종이 비릿하게 웃었다.
“크흐흐. 무극에서 음양이 나온 것을 표현한 것이 태극혜검이라지? 어떤 공격이든 무극으로 받아 음양으로 흘리거나 되돌려주는 검공이라던데, 언제까지 혈룡을 받아내는지 오늘 확인할 수 있겠군. 하아압!”
후욱.
혈마종이 자운진인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다시금 양손에서 혈룡 두 마리를 뽑아내었다. 심장과 단전을 향해 뿌렸다.
아득.
“이야아-하!”
자운이 악을 쓰며 태극혜검을 펼쳤다.
버언쩍.
다시 한 번 그려지는 태극의 도형.
그 안에는 혈마종이 익히 말했듯 무극에서 출발해 음양으로 나뉘는 깨달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씨이웅. 씨웅.
매섭게 태극을 그리는 검 끝을 따라 혈룡 두 마리가 음과 양으로 나뉘듯 쪼개졌다. 경로를 틀었다. 양 옆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흥!”
그 순간 혈마종이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그러자 밖으로 나가려던 두 마리의 혈룡이 다시금 머리를 틀었다. 태극혜검을 향해 맹렬히 짓쳐들었다. 그대로 중심을 후려쳤다.
쿠와앙. 콰아아아앙.
“커허억! 쿨럭.”
쿵쿵쿵쿵쿵.
다시금 덩어리 피를 쏟으며 다섯 걸음이나 뒤로 밀리는 자운진인!
“크하하핫. 이게 끝이냐, 말코! 이것이 정말 태극혜검의 끝이란 말이냐?”
콰르르. 콰르르르.
기세등등한 혈마종이 연거푸 혈룡강기를 뿜어냈다.
“크으윽. 크아아압!”
자운진인이 악을 쓰며 혈룡강기를 힘들게 밀어냈다.
사력을 다해 펼친 태극혜검의 검초로 쓰러지지 않은 채 겨우 버텨냈다.
“쩝. 다음에는 꼭 내가 먼저 나서야지.”
용무린과 도마종, 자운진인과 혈마종의 싸움을 번갈아가며 지켜보던 권마종이 입맛을 다셨다.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소면을 향해 젓가락을 드는 듯한 표정으로 자영과 자성 두 사람에게 돌아섰다. 서슬 파란 눈을 빛냈다.
“뭐하나 말코. 이번에는 우리가 어울릴 차례란 말이지. 사양하지 말고 한꺼번에 들어와!”
선수를 양보하겠다는 듯이 발을 뒤로 빼는 권마종.
슬쩍 앞으로 내민 주먹에 추측하기 힘들 만큼의 내공이 몰려들었다.
바로 그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더러운 말코 놈들!”
퍼엉.
자영과 자성 앞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다.
희고 검은 색이 뒤섞인 정체불명의 가루가 두 사람을 뒤덮었다.
“흡!”
“우웃!”
자영과 자성이 화들짝 놀랐다. 본능적으로 호흡을 차단했다. 뒤로 물러났다.
와다닥.
그 틈에 작은 그림자 하나가 두 사람 틈을 벗어났다. 냅다 달려 냉혈곡주 마관중 곁으로 왔다. 놀랍게도 그 그림자의 주인은 의성 신우량이었다.
“어, 어째서?”
“대체 왜?”
자영과 자성이 괴로운 얼굴로 신우량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을 향해 어째서 독을 썼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크흐흐. 잘 살고 있는 나를 왜 풀어준다고 난리야, 이 말코들아! 나는 여기가 좋아! 이곳에서는 상상만으로 그쳤던 온갖 실험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의성 신우량이 눈을 희번덕였다.
자영과 자성을 향해 독기 가득한 말을 쏟았다.
과거 천하에 이름 높던 의성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대 변신, 그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를 깨달았는지 자영과 자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고!’
‘저 이도 혈고에 당한 것이로구나.’
의성 신우량으로부터 생명의 구함을 받은 사람이 오죽 많겠는가? 지금 눈을 희번덕이고 있는 의성의 모습은 혈고가 아니라면 설명을 할 방법이 없다.
‘하긴, 혈고에 당했으니 자신의 비전과 지식을 마교에 내어준 것이겠지.’
‘이해하오, 의성.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그대를 미워하지는 않겠소. 용서하리다.’
구해주려 했던 사람에게 되레 암습을 받았지만 두 사람은 그냥 웃었다. 오늘날 무당이 어째서 남존으로 불리는 것인지 잘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휘청. 흔들.
자영과 자성의 무릎이 크게 휘었다.
재빨리 호흡을 차단했지만 독 가루를 조금 들이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의성이 던진 독은 호흡뿐만이 아니라 피부로도 중독되는 종류의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그래도 곱게 목을 내밀 수야 없지.’
‘사제. 마지막으로 후련히 싸워보기라도 하세.’
‘당연하외다, 사형.’
말은 없었지만 오가는 시선 속에 자영과 자성은 서로의 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중독이 되어 죽느니 후련하게 무공을 펼치다 죽을 결심인 것이다.
그때였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잠자코 지켜보던 권마종이 느닷없이 의성을 향해 출수했다.
퍼엉.
“크아악!”
의성이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권마종은 용서 없었다. 계속해서 의성을 짓밟았다.
“네가 감히 내 먹잇감에 코를 빠뜨려!”
퍼엉. 와드득. 콰직.
주먹으로 후려치고 발로 짓밟았다.
팔다리가 꺾이고 한꺼번에 갈비뼈 여덟 대가 부러진 의성이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권마종이시여! 손속에 사정을! 의성은 마교의 백년대계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인재입니다!”
화들짝 놀란 냉혈곡주 마관중이 부르짖었다.
멈칫! 부르르.
번쩍 들렸던 권마종의 주먹이 그대로 멈춰졌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노기에 마구 떨렸다.
“알고 있다!”
권마종이 씹어 뱉듯 입을 열었다.
하긴, 의성이 일 권에 피떡이 되지 않은 것을 보면 권마종이 의성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첫 주먹에 의성은 잘 다져진 고기마냥 완전히 분해가 되었을 테니까.
“두 번 다시 본좌의 먹잇감에 손을 대면 인재고 나발이고 용서 없다. 알겠느냐?”
“크헉. 아, 알겠습니다. 끄으으…….”
의성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약!”
“예?”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의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권마종은 의성과 말도 엮기 귀찮다는 듯 발을 들어 무릎 어림을 짓밟아 버렸다.
콰직. 뚜두둑.
의성의 무릎이 박살이 났다. 주변의 뼈가 세 조각으로 나뉘었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든 말든 권마종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해약!”
“예! 여, 여기 있습니다.”
고통을 참느라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의성이 품에서 작은 환약 두 개를 꺼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권마종을 향해 내밀었다.
“흥!”
그 환약을 잡아챈 권마종은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자영과 자성을 향해 던졌다.
“나는 손을 쓰지 않겠다. 어서 몸이나 살펴라.”
정말 흥미가 사라졌는지 권마종은 주먹까지 거두었다.
하긴 산해진미를 앞두고 겨우 소면을 향해 젓가락을 들었는데 점소이가 그 소면에 코까지 빠뜨린 경우니 더 무슨 흥미가 있겠는가?
“아깝다. 내가 먼저 나섰어야 했는데…….”
권마종의 시선은 용무린에게 가 닿았다.
태극혜검을 펼치는 무당파의 장문진인보다도 용무린 쪽이 더 흥미로운 것이다.
그때였다.
쿠와아앙. 쿠콰콰쾅!
“커헉!”
거창한 폭음과 함께 용무린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도를 든 상태 그대로 바닥에 깊은 고랑을 만들었다. 삼 장이나 뒤로 쭉 밀렸다.
“크하하하! 그게 전부라면 너는 지금 죽는다, 애송아!”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용무린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도마종!
휘우우-웅. 버언쩍.
용무린을 향해 거창한 도강이 쏟아졌다.
씨익.
‘좋구나.’
죽음이 코앞까지 밀려오고 있음에도 용무린은 웃었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초식까지 넘어설 정도의 무공을 펼치는 상대의 뛰어남을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아쉽다. 내 상태가 최상이었을 때 만났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오직 그것만이 아쉬울 뿐!
그렇다고 해서 곱게 목을 늘어뜨리고 죽음을 맞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현재 상태가 어떠하든 최선을 다해 맞서 싸울 뿐이다.
“이야아하-!”
휘슷.
입가에 진득한 피를 흘리면서도 용무린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도강을 향해 나아갔다. 불사신기를 잔뜩 긁어모아 풍뢰에 주입했다.
버언쩍!
내상과 계속된 충격으로 인해 흩뜨려진 불사신기 때문인지 풍뢰에서는 도강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눈곱만큼의 낭비도 없던 제어력을 상실한 것이다.
용무린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풍뢰를 휘돌렸다.
콰아아-. 피이이잉. 쉬리리릭.
수라전륜아의 초식으로 전면을 틀어막았다. 비연무흔단을 펼쳐 도마종의 심장을 노렸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었다.
쿠와아아앙!
도마종이 뿜어낸 무식한 도강의 기운은 같은 초절정 무인이 펼친 무공을 순간적으로 갉아 없앴던 수라전륜아를 단숨에 으깼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리도 빛도 아무런 흔적도 없는 가운데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소검비연의 움직임과 천잠사의 가늠 못할 변칙적인 움직임마저도 통째 부숴버렸다.
쿠와아아앙. 퍼퍼퍼펑.
그러고도 모자라 남은 여력이 밀려들었다.
용무린의 전신을 마구 짓쑤셨다.
“크허억!”
콰드득. 콰드드득.
굳게 디딘 용무린의 두 발이 밭고랑을 파듯 땅을 후벼 팠다. 그 상황에 허리가 뒤로 꺾이면 끝이다. 여력에 난도질당해 죽는다.
“흐아압!”
용무린은 악을 쓰듯 풍뢰를 전면에 세웠다. 쏟아지는 여력의 중심을 갈랐다. 좌우로 흩어냈다.
그럼에도 이곳저곳이 갈라졌다.
그 사이로 뿜어지는 굵은 피!
가슴, 허리, 손목 등등 어느 한 군데 치명적이지 않은 곳이 없다.
목은 겨우 방어해 냈지만 가슴 어림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완전히 뚫리고 쪼개지지는 않았지만 도마종의 내공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심장까지 침투했다. 터뜨릴 것처럼 심장을 쥐어짰다.
그 고통이란!
“커흐…….”
풀썩.
결국 용무린의 한쪽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스슷.
그 앞에 가볍게 내려서는 도마종.
뭇 마공의 힘을 흩어내는 불사신기와 맞상대를 했으면서도 한 차례 도를 털어내는 것으로 끝이었다. 과거 어느 때 마공과 상극인 불문 내공과 겨뤄본 경험으로 극복한 듯싶었다.
“재미있었다, 애송아!”
진심이라는 듯 도마종이 헤실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데 너 말이다. 어째서 네 도법이 수라멸절단의 단주와 비슷하지?”
용무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잘한 상처도 상처였지만 가슴 어림의 상처가 너무 컸다. 심장을 옭죄고 드는 도마종의 내공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또한 흘린 피도 너무 많았다.
어찌나 현기증이 돌고 아찔한지 당장 정신을 잃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뭐 딱히 같은 무공인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닮아 있단 말이지.”
도마종이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수라멸절단의 단주가 어떤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 자신이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마가 남긴 무공을 익히며 어려워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으며 몇 해 전 진철산이 귀주지역의 흑살문주와 싸워 이기는 모습도 직접 봤으니 모를 수가 없는 거다.
그때였다.
쿠와아아앙. 퍼퍼펑. 스각.
저만큼 옆에서 강렬한 폭음이 터졌다.
“커헉!”
슬쩍 돌아간 도마종의 눈에 자운진인이 비명을 쏟으며 땅에 패대기쳐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자운진인은 오 장쯤 뒤로 쭉 미끄러졌다.
“이이익!”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던 자운이 발딱 일어섰다.
하늘 높이 곧추세운 검이 웅웅 울었다. 아직도 맑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호오! 역시 태극혜검이라 이건가?”
혈마종을 상대로 이만큼이라도 버티는 것이 놀랍다는 듯 도마종의 눈은 흥미로운 빛을 쏟았다.
“뭐, 상관없겠지.”
슬쩍 용무린을 돌아본 도마종은 아예 자운진인과 혈마종을 향해 몸을 돌렸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용무린 따위 더는 안중에도 없었다.
스슷.
자운진인 앞에 혈마종이 깃털처럼 내려섰다.
“계속해서 태극혜검인가? 그거 별 소용없을 텐데? 지금까지 겪어 보고도 몰라? 클클클…….”
혈마종이 뒷짐을 지고 웃었다.
용무린을 이미 죽은 사람 취급하는 도마종처럼 혈마종 역시 자운진인의 목숨을 주머니 안의 물건처럼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무극으로 받아 음양으로 흘리거나 되돌려주는 검공이라지만 내 혈룡강기를 상대로는 어림없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단 말이야? 쯧쯧쯧……. 무당의 장문인씩이나 되면서 어째 그걸 몰라? 뭐 다른 것 없어?”
경극 한 편을 감상하고 난 직후 더 재미있는 경극을 당장 보이라는 것과 같은 셈!
“……!”
본의 아니게 구경거리가 된 자운진인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묵직한 목소리를 발했다.
“맞소이다. 태극혜검은 상대의 무공이 무엇이든 무극으로 받아 음양으로 흘리거나 다시 무극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극의외다.”
자운진인의 검이 떨림을 멈추었다.
계속해서 뿜어지던 진동음도 동시에 사라졌으며 꺼지지 않을 것만 같던 맑은 빛 역시 사라졌다. 나뉘었던 음양이 무극으로 회귀를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흘리려고만 했소.”
스스로 부족함을 알아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 불가나 도가의 기본 소양이기 때문!
“뭐야?”
혈마종의 눈꼬리가 위로 치솟았다.
“감히 지금까지 나 혈마종을 상대로 봐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야?”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을 벌리는 혈마종.
후우우웅. 후웅.
하지만 혈마종의 전신에서는 분노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혈룡강기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운진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리 원하시니 내 지금부터는 고스란히 되돌려 드리리다. 오시오.”
말과 동시에 유려한 선을 그려내는 자운진인의 검.
휘리릭. 스아악. 사아악.
비단결이 갈라지듯 부드럽게 허공이 갈리며 태극의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시건방진! 하아앗!”
콰르르르. 콰르르르.
두 줄기의 혈룡강기가 폭사되었다.
단숨에 자운진인을 집어삼킬 듯 짓쳐들었다. 태극의 중심을 그대로 후려쳤다.
쿠와아앙. 콰아아앙.
“커헉!”
거창한 폭음과 함께 튕기듯 밀려나는 자운진인.
하지만 이전까지와 다른 점이 있었다.
“크흡!”
태산처럼 굳건하던 혈마종이 같은 속도로 뒤로 튕긴 것이다. 심지어는 그 한 번의 공방에 내상이라도 입은 것인지 입가를 타고 흐르는 핏줄기까지 생겨났다.
“어, 어떻게……?!”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 혈마종.
자운진인의 입가에 비로소 작은 미소가 걸렸다.
입가를 타고 흐르는 핏줄기가 더욱 굵어졌지만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오시오.”
“……!”
“태극혜검의 극의를 계속해서 보여드리리다.”
“이런 시건방진 말코가 정말! 크아아-압!”
훌쩍 날아오른 혈마종이 자운진인을 향해 짓쳐들었다.
후광처럼 피어난 혈룡강기가 태극혜검을 찢어발기기 위해 이를 드러냈다.
버번쩍. 쿠와앙. 콰아앙. 쿠콰콰쾅.
작열하는 빛과 폭음과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자운진인 만큼이나 혈마종 역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 정도?
“호오! 과연 말코들이 자신 있게 내세우는 검공이로구나. 꽤나 재미있겠는걸?”
콰악.
자신이 대신 싸우고 싶은 모양인지 도마종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용무린은 안중에도 없었다. 시선은 계속해서 자운진인과 혈마종에게로 향했다.
반짝.
용무린의 눈이 빛을 발했다.
‘크크큭. 나 따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거지?’
도마종이 내게서 시선을 완전히 거두었다.
천재일우의 기회!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용무린은 현재 자신에게 단 하나의 구명줄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양의신공!
‘그게 아니면 저 괴물들을 상대할 수 없어!’
무림맹에서 운위영을 상대로 죽음 엇비슷한 상황을 맞았을 때 홀연히 깨어났던 불사혼몽지검, 아니 불사대천검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 것인지도 생각해 봤다.
‘그건 불가능해.’
단숨에 고개가 흔들렸다.
그때는 정기신과 영육간의 조화가 완벽했었던 상황에 절대검신의 안배가 깨어난 것이었고 지금은 그 조화가 모두 깨어진 상태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그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영육과 정기신의 부조화만이라도 바로잡는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다.
무슨 선택을 하든 단숨에 절대검신과 신마 사이의 부조화를 완전히 가다듬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임시방편은 충분히 만들 수 있지.’
그것이 바로 양의신공이다.
‘양의신공을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어 절대검신과 신마의 의식을 따로따로 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물론 더 좋겠지만…….’
전투의 와중에 얻는 순간의 깨달음으로 승리를 한다?!
불가능이다.
그런 것은 이야기 속에서나 나온다.
손은 눈보다 빠르고 검과 도 끝에서 뿜어지는 검강이나 도강은 눈 한 번 깜박이는 순간에 수백 방위를 쪼갤 만큼의 속도를 지녔다.
그런 판국에 어떻게 생사의 순간에 무언가를 깨달아 상대를 박살낼 수 있겠나?
‘지금은 하나만 선택한다.’
양의신공을 방패삼아 두 개의 의식 중 어느 한 쪽을 가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완전한 성공도 필요 없어. 잠시만, 아주 잠시만이라도 둘 중 하나만 완전히 가리면 돼.’
그렇게만 할 수 있어도 잃어버린 힘을 쓸 수 있다.
어느 한쪽이 가려진 시간만큼…….
-무극에서 음양이 나왔으니 한 마음에서 어찌 두 마음이 나오지 못할까? 음과 양이 태극이라는 이름의 벽으로 갇혀 있듯 마음을 둘로 나누어 분심의 벽을 세우노니…….
용무린은 사력을 다해 양의신공의 구결에 빠져들었다.
양의신공이 말하는 음과 양의 조화를 택하지 않았다. 그저 초입에서 말하는 분심의 벽에 집중했다.
태극이라는 이름의 벽에 음과 양이 가로막혀 있듯 부조화를 이루는 절대검신과 신마 사이에 양의신공이란 가림막을 세웠다.
‘어느 쪽을 택하지?’
가장 좋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절대검신 독고황이다. 그래야만 불사대천검을 쓸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용무린은 내심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힘들어. 불사대천검의 수련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무림맹에서 보여줬다던 정도의 위력은 절대로 보여줄 수 없어.’
그때는 영육, 정기신의 조화가 완벽했을 때였다.
더불어 절대검신 독고황의 안배가 오롯이 쏟아져 나온 것이지만 지금은 그와는 경우가 다르다. 단 한 초식도 제대로 수련해 보지 못했는데 어찌 저런 강적을 상대로 꺼내들 수 있겠나?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신마 진무량의 의식!
진정한 나는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나와 가장 가깝고 간절히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의식이다. 그런 만큼 벽만 세워진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어검술과 신검합일까지만이라도 되찾는다.’
결심이 섰다.
그 순간 양의신공의 구결이 절대검신 독고황과 신마 진무량 사이에 가상의 벽 하나를 세웠다. 구결에서 말했던 분심의 벽이었다.
‘절대검신을 잠시 가린다!’
스르르.
벽이 세워짐과 동시에 자신의 전생이 절대검신 독고황이라는 의식이 씻은 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태극조차 분심의 벽에 갇혀 있기에 음은 음한 대로 차가운 성질과 어둡고 습한 성질을 가지게 되고, 양은 양한 대로 뜨겁고 밝은 성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노니 두 마음 또한 다를 바가 없으리라…….
분심의 가상 벽이 공고해졌다. 혼란에 빠졌던 신마 진무량의 의식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크흐흐. 이게 바로 나다!’
혼란이 사라지고 느낌이 되돌아왔다.
백리소옥의 방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스스로를 인식했던 바로 그 느낌!
절대검신 독고황이 내 진실한 전생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것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신마 진무량으로서의 충만함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신마였고 신마는 곧 나였다.
‘오라 불사신기여!’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 불사신기!
불사의 의지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분심의 벽 앞에서도 불사신기는 여전히 제 역할을 다했다. 상관혁련의 손에 쓰러지고 작은 깨달음을 얻어 급속히 불사신기를 끌어 모을 수 있게 되었을 때와 같았다.
“후으읍. 후우우-웁!”
단전에 무저갱이라도 열린 듯, 한 호흡 한 호흡에 대자연의 기가 빨려들었다. 단전에서 한 바퀴 휘돌아 불사신기가 되어 전신으로 퍼졌다.
투둑. 투두둑.
그 강력한 흐름에 어긋나고 부러졌던 뼈마디가 저절로 제자리를 찾을 정도!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용무린은 천천히 일어났다. 우뚝 섰다.
“좋군.”
씨이익.
용무린의 입가에 섬뜩한 흰 선이 쭉 그어졌다.
“음?!”
그때까지만 해도 혈마종과 자운진인과의 대결을 구경하고 있던 도마종의 고개가 홱 돌았다. 넋 놓고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위협적인 기운이 폭발하듯 치솟으니 살짝 놀랐던 것이다.
“어떻게……?”
도마종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틀림없이 다 죽어가던 상태였었는데 갑자기 위협적인 기운을 흘리며 일어나는 용무린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놀라긴!”
입가에 묻은 피를 슥 닦아내며 용무린은 다시 풍뢰를 앞으로 세웠다. 툭 내뱉었다.
“후반전 시작이야. 덤벼!”
“…푸흐흐흐. 좋아, 좋아.”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던 도마종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잃었던 흥미를 다시 되찾은 듯 용무린을 향해 도를 돌려 세웠다.
“과연 신교의 일에 그만큼이나 훼방을 많이 놓았던 애송이답구나. 좋아. 그래야 내가 신교를 나선 걸음에 보람이 있지, 암.”
어찌나 흡족해하는지 도마종의 얼굴엔 미소가 한 가득이었다. 그 미소를 보며 용무린도 마주 웃어주었다.
씨익.
“그 웃음, 비명으로 바꿔주지. 하아아-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무린의 발이 땅을 박찼다. 한 걸음에 도마종과의 거리를 좁혔다.
반짝.
풍뢰의 도신에 겨우 도기나 됨직한 빛이 맺혔다. 단 한 방울의 낭비도 없는 궁극의 도강이 걸린 것이다.
“애송이 놈! 꺼져랏!”
용무린의 자신감을 단숨에 부숴주겠다는 듯 도마종이 도를 내리 그었다. 초식을 넘어선 도의 움직임 끝에 거창한 도강이 다시 걸렸다.
화아악. 버언쩍.
하늘과 땅을 동시에 가르듯 밀려오는 도마종의 도강과 풍뢰가 맞부딪혔다.
쿠와앙. 콰아앙. 콰콰콰-앙.
격렬한 굉음 끝에 풍뢰가 어디론가 튕겨 사라졌다. 소검비연만 겨우 남아 전면을 틀어막았다.
“크하하하! 겨우 이것이더냐?”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연신 도를 그어대는 도마종.
쾅! 쾅! 콰앙!
그 서슬에 천잠사가 끊겼다. 소검비연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한마디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어 버린 것!
“으하하! 얌전히 목을 내밀어라! 으하하핫!”
도마종이 미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말로 시원스레 목을 베어 주겠노라 자신했다.
씨이익!
하지만 용무린은 시리게 웃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차가운지!
오싹!
도마종이 흠칫 몸을 떨었다.
‘뭐지?’
용무린의 손에는 이미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지만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선 무위가 본능을 통해 경고를 해줬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죽어엇!”
용무린이 피에 젖은 이를 드러내며 외쳤다.
버언쩌저적.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나타나는 빛줄기!
어검술 아니 어도술의 무리에 따라 펼쳐지는 수라비격일뢰의 초식이었다.
“허억!”
소스라치게 놀란 도마종이 던지듯 도를 쏘았다.
도마종의 손을 벗어난 도 역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듯 오 장 어림을 홀로 날아올라 풍뢰를 막았다. 무소의 뿔처럼 거칠게 들이받았다.
쿠와아-앙! 콰아앙. 퍼퍼퍼-엉!
참으로 놀라운 일!
어도술과 어도술이 맞부딪혔다. 풍뢰와 도마종의 도는 오 장 어림의 허공에서 함께 어우러지며 불똥과 폭음과 충격파를 연신 쏟았다.
‘어, 어떻게 갑자기……?!’
도마종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 죽어가던 용무린이 느닷없이 어도술을 펼쳐 내다니!
자신으로 하여금 지금껏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어도술을 다급히 펼쳐야만 겨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갑자기 변모하다니!
그때 용무린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내 소검이 어디로 갔게?”
오싹!
그 말을 듣는 순간 도마종의 전신에 다시 한 번 소름이 쫙 돋았다. 머리카락이 송두리째 쭈뼛 곤두섰다.
‘서, 설마……?’
설마가 아니었다.
쫘아아-악!
소리도 빛도 없는 가운데 거대한 무엇인가가 하늘과 땅을 통째 가르며 밀려드는 게 느껴졌다.
비연폭뢰의 초식.
‘맙소사! 어도술과 어검술을 동시에 펴다니!’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수준이다.
거기에 더해 저 은밀함이란!
초절정의 무위를 뛰어넘지 못했다면 감지하지도 못한 채 눈만 멀뚱하게 뜨고 있다가 당했으리라.
“이이익!”
스파앙!
도마종은 순간적으로 뽑아 올린 내공을 이용해 신법을 펼쳤다. 사력을 다해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감지한 순간 움직였음에도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이대로는 심장을 꿰뚫린다.’
급한 대로 한 손으로 장력을 뿌렸다.
그와 동시에 허리가 꼬여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몸을 뒤틀었다.
“일단 팔 하나 먼저!”
콰르릉!
거창한 폭음이 쏟아졌지만 도마종이 뿌려낸 장력은 헛되이 허공만 터뜨렸다. 어검술로 짓쳐들어온 소검비연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도마종이 뿌려낸 장력을 휘돌아 올랐던 것이다.
휘리리릭. 스각!
소검비연이 도마종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마종의 왼팔이 어깨부터 뚝 떨어져 내렸다.
“크흡!”
도마종의 입에서 억누른 비명이 나직하게 터졌다.
세상에!
신교의 감춰진 힘이라 일컫는 오마종의 한 사람이, 오궁이원의 주인들보다 윗줄의 고수로 알려진 도마종의 팔이 이토록 쉽게 떨어질 줄이야…….
“도마조-옹!”
스파-앙!
입맛을 다시며 구경만 하고 있던 권마종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힘껏 땅을 박찼다. 한 발 늦게 움직였지만 그 한 걸음에 도마종과의 공간을 단축했다.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도마종을 안아들었다.
바로 그 순간,
“하아앗!”
“끼야아-합!”
그동안 사력을 다해 해독에만 전념하고 있던 자영과 자성 도장이 바람처럼 몸을 솟구쳐 올렸다. 검을 뽑아 권마종과 도마종을 한꺼번에 휘감았다.
자영의 검에서는 태극십삼세의 검초가, 자성의 검에서는 아홉 방위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구궁연환검법이 펼쳐졌다. 권마종과 도마종의 목숨을 노렸다.
버번쩍. 촤아아악! 패애액. 쉬가가각.
이 한 수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건 듯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검강의 물결이 짓쳐들었다. 하지만 권마종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흥!”
슥!
아무렇게나 내밀어진 일 권!
보기에는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지만 벌어진 현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후욱. 그오옹. 콰아아아-!
권마종의 주먹 끝 허공이 살짝 비틀리는가 싶더니 이내 훅 꺼졌다. 그리고 그 한 점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비틀린 허공을 따라 함께 와류를 형성하며 앞으로 진격했다.
쿠와앙. 콰앙. 쿠콰콰쾅.
거침없이 나아가며 자신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뭉갰다. 태극십삼세의 초식과 구궁연환의 초식이 와류를 형성한 권력에 휘말려 그대로 사라졌다.
“커헉!”
“크윽!”
자영과 자성 도장이 비명소리와 함께 땅에 처박혔다. 구겨지듯 뒤로 쭉 밀렸다.
“껄렁한 말코들이 감히 암습을 해? 잠시만 기다려라. 내 친히 너희들을 짓이겨주마.”
타다다닷.
권마종의 손이 가볍게 도마종의 전신을 두들겨갔다.
혈도가 막힘에 따라 도마종의 어깨에서 뿜어지던 굵은 핏줄기가 멈추었다.
“쿨럭! 되, 되었네…….”
덩어리 피를 토해내며 도마종이 눈을 떴다.
“몸부터 보중하시게. 어서! 응?”
자영과 자성을 향해 눈을 부라리던 권마종의 고개가 반대쪽을 향해 홱 돌아갔다. 그쪽에서 미증유의 거력이 짓쳐들고 있었던 것이다.
용무린이었다.
도마종의 도를 두 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후 날아든 풍뢰를 받아 쥔 용무린이 자영과 자성이 벌어준 시간을 이용해 신도합일의 수를 펼친 것이다!
쫘아아아악!
흠칫!
권마종이 몸을 떨었다.
풍뢰와 한 덩어리가 된 채 날아드는 용무린의 신도합일의 수에 그대로 전신이 쪼개어질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한 손에는 도마종을 안았다. 그 팔은 이미 봉쇄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피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늦었다. 위험하다. 이대로는 당한다.
본능이 격렬하게 경종을 울렸지만 권마종은 일 권을 밀어내야만 했다.
“흐아아압!”
자영이나 자성을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권마종은 사력을 다했다. 순간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내공을 끌어내 주먹에 담았다.
후욱! 그오오옹. 콰아아아아-!
다시 한 번 권마종의 주먹 끝이 훅 꺼졌다.
반 바퀴 회전한 주먹을 따라 와류가 생성되는가 싶더니 이내 그 한 점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꺼지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앞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쫘아아악!
본능이 경고해 줬던 일이 고스란히 벌어졌다. 그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을 것만 같던 붕산와류권의 권력이 둘로 쪼개진 것이다.
스아아아악!
신도합일 상태에서 그어진 풍뢰는 붕산와류권력을 쪼개고도 모자라 권마종의 팔까지 휘감았다. 권마종의 팔이 뼈가 드러날 만큼 길게 갈라졌다.
그 순간,
“흐압!”
콰앙!
도마종이 하나 남은 팔로 장력을 쳐냈다.
표독스럽게 권마종의 어깨를 탐하던 신도합일의 힘이 그제야 사나운 바람이 되어 흩어졌다. 아마 도마종이 마지막 힘을 짜내지 않았다면 권마종의 팔마저도 속절없이 떨어졌으리라.
“크흐…….”
권마종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기가 막혔다.
먹잇감의 숨통만 끊으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이런 신세가 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끝이다. 마졸들아-아!”
“이야아-하!”
버번쩍. 후우웅. 후우우웅.
바닥을 뒹굴던 자영과 자성이 그 틈에 마지막 힘을 이끌어 내었다. 사력을 다해 태극십삼세의 검초를 다시 펼쳤다. 구궁연환검법을 쏟았다.
“이런 빌어먹을!”
치솟는 분노에 권마종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후퇴!
꼴사납고 부끄럽지만 목숨을 구하고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는 없었다.
쾅! 쾅! 콰아-앙!
“커헉!”
“크흡!”
무당의 장문인인 자운과 싸우고 있던 혈마종의 상태 역시 자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쿨럭. 크흐으……!”
자신의 공격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혈마종은 연신 덩어리 피를 쏟으며 비틀거렸다.
창백한 얼굴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하고 있는 자운진인의 모습이 그나마 위안이랄까?
“……!”
무엇 때문인지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용무린의 공격이 멈춰진 이 틈을 놓친다면 더는 몸을 빼낼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혈마종!”
스파아-앙!
그 한마디를 끝으로 권마종은 도마종을 품에 안은 그대로 몸을 빼냈다.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쳤다. 자영과 자성이 펼친 검법의 범위를 벗어났다.
패액. 패패패-액!
자영과 자성이 펼친 초식이 허무하게 권마종의 발밑으로 흘렀다.
휘슷.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혈마종도 도주를 감행했다. 냉혈곡 밖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다음에도 오늘과 같은 요행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말코!”
후일을 기약하는 혈마종의 목소리가 뒤늦게 흘렀다.
“어? 어어?”
홀로 남은 냉혈곡주만 다급해졌다.
다 이긴 줄로만 알고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거다. 몸을 뺄 기회를 놓쳤다.
“이놈!”
“네놈이라도 베어야겠다.”
상대를 잃고 하릴없이 떨어져 내리던 자영과 자성의 검이 냉혈곡주 마관중을 향해 쏟아졌다.
“으아앗!”
냉혈곡주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신법을 펼쳐 도망치려 했다. 물론 어림없었다.
버번쩍. 촤촤촤촥!
“커헉!”
자영과 자성이 펼친 검법에 고스란히 노출된 마관중의 육신은 그대로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흩뿌려졌다.
“장문사형!”
“상세가 어떠십니까, 장문사형!”
자영과 자성은 재빨리 자운진인을 향해 다가왔다. 급한 대로 품속에서 요상단과 금창약을 꺼냈다.
“아니야.”
자운진인의 고개가 가만히 흔들렸다.
가늘게 떨리는 손을 들어 죽은 듯 움직임이 없는 의성 신우량을 가리켰다.
“아, 아직 숨이 붙어 있네. 저, 저 이를 먼저 살피게.”
“장문사형!”
“어찌…….”
자영과 자성의 얼굴이 바로 찌푸려졌다.
“부탁하네. 의성이 살아야만 하네.”
“하지만 의성은 혈고에 당해 있지 않습니까?”
“저런 자를 살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영과 자성이 완곡하게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자운진인의 태도는 확고했다.
“혈고는 방법이 있네.”
자운진인의 시선이 용무린에게로 향했다.
“아!”
“그렇군요.”
자영과 자성의 고개가 그제야 끄덕여졌다.
무림맹과 황궁에서 단숨에 혈고를 몰아낸 용무린의 능력이 이제야 떠오른 것이다.
“알겠습니다.”
“말씀을 따르지요.”
자영과 자성은 의성 신우량 곁으로 다가갔다.
입을 열어 요상단을 복용시켰고 잘 퍼지도록 추궁과혈까지 베풀었다. 물론 불의의 기습에 대비해 마혈을 제압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허허허. 무림의 홍복이로다…….”
용무린을 바라보는 자운진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혈마종과의 격렬했던 싸움 와중에도 어검술과 어도술을 자유자재로 펼쳐냈던 용무린의 무위를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사숙! 사숙의 심모원려가 빛을 발했습니다.’
용무린을 바라보는 자운진인의 눈 속에는 하늘과도 같았던 사문의 어른 천기자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그 역시 소림의 장문방장인 법정처럼 선대로부터 이어진 유지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용 대협의 무공이 수라멸절단의 단주와 비슷하다고? 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충분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도마종의 말이었지만 이미 천기자의 유지를 통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던 자운진인에게는 눈곱만큼의 의심이나 저어함이 없었다.
“이겼습니다!”
“승리했습니다, 장문인!”
“수라멸절단과 냉혈곡의 마인들을 모두 쓰러뜨렸습니다. 승리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태극검수들과 정의개들이 밀려왔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피해는 다소 컸지만 수뇌부들이 모두 사라진 수라멸절단과 냉혈곡의 마인들을 무당과 개방의 연합된 힘이 훌륭히 감당해 낸 것이다.
“……!”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무린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천신이라도 된 듯 풍뢰를 비켜 들고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