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복수는 나의 것(8권) (70/104)

신마귀환 8권

서경 신무협 소설

1.복수는 나의 것

동창이 날린 비응은 반나절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두 일곱 곳, 용무린이 바라던 대로 승선포정사사와 제형안찰사사, 하북성도를 수호하는 도지휘사사와 예하의 위지휘사사, 그리고 세 곳의 천호소에 빠짐없이 전서가 보내졌다.

전서를 받은 곳은 하나같이 발칵 뒤집혔다.

성도의 행정 수반인 승선포정사사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제각각 집무실에서 향기로운 차를 마시던 좌, 우 포정사가 한 자리에 모였다. 특급을 알리는 동창의 전서에 적힌 내용에 입을 쩍 벌렸다.

“뭐, 뭐라? 만금상단 총단을?”

“만금상단을 어째서?”

좌, 우 포정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목소리를 높였다.

만금상단 총단을 포위하라니!

그동안 만금상단으로부터 받아 온 뇌물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지간하면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를 이어가는 좌우 참정과 참의의 태도는 단호했다. 아예 처음부터 자신들의 속내를 밝혔다.

“솔직히 저희 두 사람 역시 만금상단과는 불가분의 관계였습니다.”

“총관 구진기와 어울려 술자리도 여러 번 가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면을 몰수해야만 합니다.”

“동창입니다, 대인. 동창이 특급 전서를 내렸습니다. 이미 황상의 윤허가 떨어졌다는 내용입니다.”

“……!”

“……!”

좌, 우 포정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칠대 상단의 수좌라 하지만 그래봐야 일개 상단일 뿐인 만금상단을 포위하고 겁박하는 일에 어찌하여 황상의 윤허가 있었단 말인가?

종사품 좌, 우 참의가 불쑥 나섰다.

“이리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대인. 황상의 윤허도 윤허지만 황룡패주께서 친히 당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맞습니다. 며칠 전 감숙의 소식을 접하고 놀라지 않으셨습니까?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게 된다면 감숙처럼 총병관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두 분 포정사뿐만이 아니라 저희 모두가 위험해지게 됩니다.”

“전서의 내용대로라면 제형안찰사사와 도지휘사사 그리고 위지휘사사와 천호소에 이르기까지 성도의 중추적인 관군의 총집결을 명령한 것입니다.”

“늦는 곳들은 필히 문책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움찔!

늦는 곳에겐 문책이란 단어가 좌, 우 포정사의 귀에 작살처럼 파고들었다.

그제야 좌, 우 포정사가 정신을 차렸다.

“그, 그렇지.”

“당장 움직여야겠다.”

좌, 우 포정사가 부리나케 일어났다.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성내를 순찰하는 병사들을 깡그리 불러 모아라. 지금 즉시 만금상단으로 달려가 다른 기관들과 협조해 주변을 차단한다.”

“명심해라. 황룡패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물 샐 틈이 없게 하라셨다. 또한 패주께서 오시기 전까지 단 한 사람도 들어가거나 나갈 수 없게 하라 말씀하셨다. 그대로 이루어라.”

“명을 받습니다.”

좌, 우 참정과 참의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비상연락망이 가동됐다.

나라의 녹을 먹는 모든 관리가 동시에 움직였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후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바로 만금상단 총단을 향해서였다.

***

승선포정사사의 좌, 우 참정과 참의 4인이 병사 사천여 명을 무장시키고 휘몰아 달려왔지만 놀랍게도 만금상단 총단은 이미 완벽하게 차단당한 뒤였다.

빠른 기동력을 지닌 도지휘사사와 위지휘사사 그리고 각 천호소의 병력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어 만금상단 총단을 포위하고 있었다.

도지휘사사의 병력 일만에 위지휘사사 병력 오천, 천호소 세 곳이 더 동원되었으니 그 병력이 무려 일만 팔천여 명이나 된다.

그들만으로 만금상단은 이미 외부와 완벽한 차단이 이루어진 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형안찰사사 소속 즙포사신과 포두, 포졸 육천여 명이 그 뒤에 몇 겹으로 포위를 마쳤다. 거기에 더해 승선포정사사의 병력 사천이 더해졌다.

모두 합해 이만 팔천여 명이 만금상단을 봉쇄한 전무후무한 상황인 거다.

그래서 가장 늦게 도착한 승선포정사사 소속 병사들은 포위망 후미에서 몰려드는 양민들을 통제해 돌려보내는 일에 주력해야만 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그러게 말이야.”

“보라고. 도지휘사사의 정병은 물론이고 성도 주변의 가용 병력 전부가 몰려와 있어.”

“어디 그뿐이야? 제형안찰사의 즙포사신들과 포두 포졸은 물론이고 승선포정사사의 병사들까지 죄 몰려나와 있는 상황이라고.”

성도의 모든 활동이 중지가 되었다.

이만 팔천여 병력이 한 곳에 모여 살기를 돋우니 양민들로서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전 상인들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과 객잔 그리고 주점들이 혹시 모를 변고를 피해 문을 걸어 잠갔다. 삼삼오오 모여 만금상단 쪽을 힐끗거렸다. 쑥덕댔다.

그 중 누군가가 큰일 날 소리를 했다.

“호, 혹시? 만금상단이 역모라도 저지른 것 아니야?”

“어헉! 여, 역모?”

말을 꺼낸 사내조차 놀라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뜬 상태!

그런 상황에서 제민통제를 맡았던 승선포정사사의 병사들이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어이, 거기!”

“구경났어? 다칠지도 모르니 어서 썩 물러나!”

“뭐해? 잡아가기 전에 어서 썩 꺼지라고!”

파다다닥.

역모라는 말에 이어 잡아간다는 말이 튀어나오기가 무섭게 양민들은 메뚜기 튀듯 이리저리 튀었다.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

만금상단 총단의 정문.

그 앞에는 미리 파견 나와 살피던 동창 소속 고수들과 도지휘사 허종, 위지휘사 장윤, 제형안찰사 위영인 등이 만금상단에서 나온 총관 구진기와 부총관 그리고 여러 수뇌부들과 더불어 대화중이었다.

“이,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말이 대화지 총관 구진기의 목소리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만큼 분위기가 죽여줬다.

“닥쳐라. 감히 뉘 안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냐?”

“나랏일이다. 일이 모두 끝이 날 때까지 만금상단에는 그 누구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다.”

“너희와는 볼 일이 없으니 어서 썩 들어가거라.”

하북성의 군 실권자인 도지휘사 허종에 이어 위지휘사 장윤 그리고 안찰사 위영인이 눈을 부라렸다. 여차하면 짓쳐들려는 것인지 허리에 걸린 검에 손을 가져가기까지 해 보였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

“……!”

총관 구진기를 비롯한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러시면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애원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향응을 받을 때나 뇌물을 받아 처먹을 때는 간과 쓸개까지 다 빼내줄 듯하더니 이제 와 내게 이런단 말이야?’

구진기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들이 어찌나 냉혹하던지, 자신이 뇌물 엇비슷한 말만 꺼내도 즉시 죽임을 당할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구진기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일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나, 만금상단을 포위함으로써 입은 본 상단의 손해는 따로 계산할 것입니다.”

상인으로서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흥!”

“시건방진 상인 놈 같으니…….”

“한마디만 더 하면 베겠다. 어서 썩 꺼져라.”

상단의 손해를 들먹이자 도지휘사와 위지휘사 그리고 안찰사가 서슬파란 눈으로 노려보았다.

“……!”

총관 구진기는 결국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들어와야만 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썩은 얼굴로 돌아선 구진기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설마하니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그 역시 짐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감히 무력으로 만금상단을 눌렀다 이거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집무실로 돌아온 구진기가 이를 갈았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금왕께선 침묵만 하고 계신단 말이야?’

그 말은 곧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지우겠다는 말과 같았다.

‘어쩐지 며칠 전에 내 면전에 대고 독한 말을 쏟아 내더라니!’

용대명과 제갈문군에게 적절한 교훈을 내려준 직후에 금왕 정관호가 찾아와 잡아먹으려 들었다.

목줄까지 잡아 채 살기를 돋웠다.

그 서슬에 아랫도리를 축축하게 적시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지.’

빤한 수작이었다.

자신은 쏙 빠질 터이니 알아서 다 책임을 지라는 뜻인 것이다.

‘나 혼자 죽을 수야 없는 일이지. 암.’

구진기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칠대 상단의 힘을 빌리려 했다.

그들의 연합된 힘이라면 중원의 경제를 붕괴시킬 수도 있었으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알려 거꾸로 황궁을 압박할 생각이었다.

구진기는 잽싸게 칠대 상단의 총단으로 보내는 전서를 써 내려갔다. 그런 후 전서각으로 달려가 비응 전부를 하늘로 날렸다.

***

만금상단 총단의 정문 앞.

하북 성도의 동창 고수들 책임자인 중감 엄당이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는 듯 급박한 목소리로 도지휘사 허종에게 협조를 구했다.

“놈들이 외부로 전서를 날릴 수도 있습니다.”

“아하! 그걸 깜박 잊을 뻔했군요.”

허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곁에 시립하고 있던 도지휘동지와 첨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염려 마십시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부리나케 뒤를 향해 명령을 전달했다.

“궁병들을 앞으로 포진시켜라.”

“황룡패주의 명은 분명하다. 만금상단에 들어오는 것도 나오는 것도 없어야 한다. 명심해라.”

“충!”

명령을 받은 부장급들이 재빨리 명령을 전달했다.

“궁병 앞으로.”

“시위에 살을 먹여 대기하라.”

“만금상단을 벗어나는 것은 그것이 설사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하더라도 차단한다.”

“전서응이나 전서구가 날아오를지 모른다. 보이는 즉시 떨구어라.”

“충!”

똑 소리 나는 대답과 함께 궁병들이 살을 먹였다.

번들거리는 눈을 빛내며 만금상단 위를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외쳤다.

“비응이다!”

“떨구어라!”

“쏴! 쏘란 말이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궁병들은 일제히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투웅. 투두두두둥. 씨잇. 씨시시싯.

엄청난 양의 화살이 떠올랐다.

비응이 비록 빠르고 강하다지만 수천 발이 넘는 화살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다.

퍼억. 퍼버버벅.

날갯짓 몇 번 하지 못하고 하나도 남지 않고 떨어졌다.

“발목에 전서가 매여 있습니다.”

“전서 확보 했습니다.”

“비응의 발목마다 모두 전서가 존재합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비응의 발목에 매여 있던 전서는 만금상단의 담을 넘기가 무섭게 중감 엄당의 손에 들어왔다. 모두 여섯 장,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됐다!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겠어.’

콱!

전서를 모두 읽은 엄당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만금상단 총관 구진기의 서명과 수결이 날인된 전서는 나머지 육대 상단의 총단으로 향하는 것이었는데, 그 안에는 구진기가 황궁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협조 요청의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무슨 내용이오, 엄 중감?”

“안색으로 보아하니 꽤 성과가 있는 듯하오만…….”

도지휘사 허종과 안찰사 위영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공이 있으면 나눠달라는 뜻이었다.

“허허허. 이런 경사가 있나요?”

그들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아는 중감 엄당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전서를 내밀었다.

“오!”

“해냈구려.”

전서를 받아 읽었던 허종과 위영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황룡패주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게 되어 두 사람 모두 뿌듯해했다.

“덕분에 놈들을 옥죌 좋은 증거가 생겼습니다.”

“하하하. 엄 중감의 고견이 빛을 발했습니다, 그려.”

“하하하. 맞습니다. 우리는 그저 엄 중감의 고견을 따랐을 뿐이오.”

허종과 위영인이 중감에 불과한 엄당을 높여 주었다. 그냥 환관도 아닌 동창의 중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을 잘 아는 엄당이 지나가듯 한마디를 흘렸다.

“그래도 비응을 잡아낸 것은 모두 두 분께서 제 부탁을 잘 들어주신 덕이지요. 제가 두 분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뭘 또 그렇게까지…….”

“허허허. 여하튼 좋은 일입니다.”

허종과 위영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갔다.

용무린이 계산했던 시간까지 만금상단은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이 되었다. 전서응이 아니라 그 무엇도 들어갈 수 없었고 외부로 나오지 못했다.

***

나흘째 되는 날 오시 무렵.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신법만 전개한 용무린이 드디어 하북 성도에 도착했다.

‘내 말대로 되어 있지 않는다면 다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 거다!’

내심 이를 갈며 용무린은 성문을 지키는 수문위사에게 신분을 밝혔다.

“화, 황룡패주시여…….”

성문 위에 올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수문장 정백호가 구르듯 내려와 엎드렸고 이내 용무린을 안내해 만금상단 총단으로 향했다.

한 식경이나 걸렸을까?

용무린은 만금상단 총단을 병사들이 십여 겹 이상 에워싸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잘 하고 있었군.’

흐뭇했다. 그 대가로 서릿발 같은 미소를 피워 올렸다.

그 미소가 어찌나 살벌한지!

“쉬이-! 물렀거라! 황룡패주 납신다.”

앞장섰던 정백호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낯간지러웠지만 어차피 관과 군을 동원한 이상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만류하지 않았다.

정백호의 외침에 이만 팔천의 포위망 한가운데가 거짓말처럼 갈라졌다.

“황룡패주를 배알합니다!”

무림왕 황룡패주 용무린의 등장 소식에 놀란 도지휘사 허종과 제형안찰사 그리고 승선포정사사의 좌, 우 포정사까지 달려 나왔다. 두 손을 모아 정중히 고개를 조아렸다. 도지휘사는 군례를 취했다.

“됐다. 모두들 일어나라.”

“명을 받듭니다.”

“명을…….”

용무린의 한마디에 몸을 일으켰지만 누구도 고개를 쳐들지 못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용무린은 시선을 만금상단 총단으로 향했다. 불쑥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봉쇄했지?”

중감 엄당이 가장 먼저 나섰다.

“나흘 전 전서를 받았사옵고 직후 도지휘사사, 제형안찰사, 위지휘사사와 천호소의 병력들과 더불어 승선포정사사의 병사들까지 달려 나와 봉쇄를 시작했사옵니다.”

누가 들어도 중감 엄당이 말한 순서가 선착순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딴 게 아니야.’

“안으로 들어간 것이나 나온 것은?”

“명령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특이사항으로는 봉쇄가 이뤄진 후 비응을 통한 외부와의 접촉 시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 그 역시 차단을 했나이다.”

말끝에 중감 엄당이 입수한 전서 아홉 장을 공손히 용무린의 손에 건넸다. 그 사이 전서 세 장을 더 입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전서는 깊은 밤을 노려 외부에서 안으로 날아들던 것이었다.

용무린은 말없이 전서를 읽었다.

내용이 마음에 들었는지 용무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

용무린의 시선이 만금상단 총단의 정문으로 향했다.

짧게 웃어 보인 용무린의 입이 불쑥 열렸다.

“내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봉쇄한다.”

봉쇄는 관에 일임했지만 후일을 위해서도 마무리는 자신이 해야만 한다.

“충!”

중감 엄당이 큰 소리로 복명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휘슷.

엄당의 복명소리가 신호라도 되듯 용무린은 만금상단 총단의 정문을 향해 신법을 전개했다.

불사신기를 끌어 올린 용무린의 주먹이 쇠를 덧대 만들어 놓은 만금상단 총단의 정문을 향해 쭉 뻗어나갔다.

‘아무래도 이건 중독 같군.’

그 생각을 끝으로 불사신기가 폭발했다.

쿠와아아-앙!

주먹질 한 번에 쇠를 덧대 만든 정문이 박살이 났다.

“오, 온다-앗!”

“우리의 터전은 우리가 지킨다!”

“상단을 사수해!”

“차아아-앗!”

결연한 표정으로 정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들었다.

이만 팔천여 군세가 지키고 있는 와중에 정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온 상대를 향해 공격을 개시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말이 된다.

충분할 만큼의 황금이 품속에 있다면, 남은 가족에게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부가 돌아갈 것이라는 보장을 받았다면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잠시만 막아!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조금만 버티면 충분히 담판을 지을 수 있을 거야. 그 대가로 일인당 황금 세 냥씩을 주겠다. 또한 일이 끝나면 반관을 주리라.

실제로 총관 구진기가 저렇게 무사들을 독려했다.

황금 세 냥에 이어 반관!

그야말로 눈이 뒤집힐 만큼의 거액에 잠시만 버티면 된다는 요구는 무사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푸흐흐. 좋아. 이래줘야지.”

스르릉.

용무린이 살기 가득한 웃음을 흘리며 풍뢰를 뽑아들었다.

그대로 가볍게 휘둘렀다.

스각. 서걱. 스가가각.

“크악!”

“커헉!”

“크으으…….”

달려들었던 만금상단의 무사들 중 다섯의 목과 심장 단전이 쩍쩍 갈라져 쓰러졌다.

무슨 특별한 초식을 펼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볍게 휘돌려냈을 뿐인데 풍뢰는 상대의 무기와 부딪히지도 않았고 목적을 달성했다. 애초에 수준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스각. 서걱. 피쉬쉬쉿.

“우와아악!”

“커헉!”

한 번의 휘두름은 직선만을 그려내지 않았다.

직선인 듯 사선이었고 또한 곡선이었으니 때로는 바람처럼 상대의 검을 휘돌아 스며들어 목과 심장과 단전을 마구 베었다.

피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만금각으로 향하는 길목이 피로 흠뻑 젖었다. 용무린은 그렇게 피의 길을 만들어내며 만금각을 향해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

담장 넘어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도지휘사 허종은 마른침을 꿀꺽 집어 삼켰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중감 엄당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역도들의 숫자가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녕 이대로 패주를 돕지 않아도 괜찮겠소, 엄 중감?”

허종의 우려에 중감 엄당은 샐쭉 웃어 보였다.

“황룡패주를 돕는다 하셨습니까? 후후훗. 이렇게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돕는 것입니다, 대인.”

황궁무고의 일이 벌어졌을 당시 중감 엄당은 똑똑히 보았다. 한 사람의 무력이 얼마나 거대할 수 있는 것인지를 말이다.

용무린은 당시 새카맣게 달려왔던 금의위와 경위지휘사사의 모든 병력과 동창의 고수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상관세가의 주력을 베었다.

황궁무고의 함정에서는 또 어떠했던가?

상관초웅과 마교의 종자들이 가동시켜 놓은 수많은 함정과 기관을 홀로 뚫어냈으며 수백의 마령인들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어 부렸고 좁은 공간을 노려 쏘아진 화포도 막지 못했으며 결국 모든 적의 목을 베어낸 후 황상의 옥체를 구해 나왔다.

‘감숙에서는 삼만의 정병 앞에서 혈교의 태상장로와 뭇 마인들을 홀로 베었던 분이 바로 황룡패주시지.’

“백만 대군 사이를 일기필마로 누볐던 상산의 조운 자룡이나 장판교를 막아선 연인 장비의 고사가 사실임을 대인께선 곧 알게 되실 겁니다.”

“……!”

엄당의 말에 허종은 말을 잃었다. 그저 경탄의 시선을 만금상단을 향해 던질 뿐이었다.

***

만금각 십층 창가.

“어, 어떻게 한 인간의 힘으로 저렇게…….”

총관 구진기는 입을 쩍 벌린 채 더는 말을 잇지 못했고 금왕 정관호 역시 검게 굳은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파죽지세.

마교와 혈교의 마인들을 상대로도 그와 같았는데 하잘것없는 상단의 무사들을 상대로 용무린이 무슨 힘이 들 것이며 지체되겠는가?

일보에 오 장 어림.

일직선으로 그리는 신법의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에 서 있던 무사들이 전부 목숨을 잃었다.

물론 도망치는 놈들도 많긴 했다.

하지만 겁에 질린 나머지 이미 이성을 잃은 무사 수백이 한 덩어리가 되어 공격을 퍼붓는 와중에 저렇듯 빠른 속도라니!

아득.

구진기가 이를 갈며 내심 외쳤다.

‘좋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죽여라! 마음껏 죽여! 그래야 나머지 육대 상단의 주인들이 자신들도 무력으로 모든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함께 나서게 될 테니까.’

구진기는 용무린이 최대한 많이 그리고 잔인하게 만금상단의 무사들을 죽이길 바랐다.

그의 기억 속에는 무사들을 현혹할 때 했던 담판에의 희망 따위는 이미 없었다. 그저 이 일로 인해 다른 육대 상단이 들고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보냈던 비응이 깡그리 용무린의 손아귀에 떨어진 줄 아직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 덧없는 희망이 어떻게 돌아오게 될 것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

총관 구진기와는 달리 금왕 정관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훌훌 날아오르는 용무린의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어어?”

총관 구진기가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스슷.

한 줄기 바람처럼 창가에 용무린의 모습이 보였다.

불과 일각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백여 장 남짓한 공간을, 수백의 무사들을 고혼으로 만든 후 십층까지 단숨에 날아올랐던 것이다.

씨익.

두 사람을 향해 한 차례 서늘하게 웃어 보인 용무린의 입이 불쑥 열렸다.

“항복해도 소용없다.”

“뉘, 뉘십니까?”

총관 구진기가 더듬거리며 물어왔다. 상대의 정체가 정말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용무린은 대답대신 질문을 던졌다.

“누가 정관호냐?”

“……!”

“……!”

다짜고짜 던져진 질문에 정관호와 구진기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더니 마른침을 꿀꺽 집어 삼킨 총관 구진기가 앞으로 나섰다.

“만금상단의 총관 구진기라 합니다, 대인. 먼저 어디에서 오신 뉘신지…….”

구진기가 주절주절 말을 이을 때 용무린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 자식이다!’

흑월회주 추담의 입을 통해 들었던 혈사의 주역!

아버지를 생사의 기로에 몰아넣었으며 장인어른을 중태에 빠뜨렸고, 숙부 용대승과 제갈세가의 일장로를 비롯해 비룡문과 제갈세가의 많은 인명을 손상케 한 장본인!

휘슷.

구진기라는 말이 튀어나오기가 무섭게 용무린이 움직였다. 한 걸음에 거리를 좁혀 놈의 목줄을 잡아챘다.

“……밝혀주실 수 있…… 컥!”

주절대던 놈의 입이 즉시 막혔다.

용무린은 구진기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전해주지.”

“큽. 끄윽.”

점점 조여드는 숨통에 구진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핏줄이 툭 불거졌다.

“내가 방심했다. 마졸들의 손에서 비룡문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금성에서 일을 보고 계시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내 방심을 네 놈이 보기 좋게 깨뜨려주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관계된 친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허튼 짓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며 그만한 준비를 갖출 생각이었다.

“기대해!”

투드득. 투득.

목줄을 잡아 챈 손아귀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구진기의 목뼈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혀가 길게 빠져 나왔다.

“절대로 곱게 죽지는 않을 거야.”

“허으…….”

그제야 손아귀에 힘을 풀어주었고 구진기가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타다닷.

용무린의 손이 구진기의 몸을 훑었다. 마혈을 비롯한 서른여섯 개의 대혈을 제압당한 구진기의 몸이 그대로 나무토막처럼 굳었다.

쿠당탕.

방 한쪽 구석으로 구진기를 던져 놓은 용무린이 금왕 정관호를 바라보았을 때다.

타다닷. 벌컥.

경쾌한 움직임 소리와 함께 정관호의 수신호위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차차창.

“웬 놈이냐?”

“이놈!”

“차앗!”

수신호위라는 이름값을 하려는지 놈들은 대뜸 검부터 뽑아들었다. 용무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참 더럽게 눈치 없는 놈들이었다.

“머, 멈춰!”

정관호가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버언쩍. 촤아아악.

용무린의 허리에서부터 작열하듯 백광이 일었다. 한 일자를 그리며 횡으로 길게 그어졌다.

카캉. 스각. 서거걱.

“커헉!”

“흡!”

풍뢰의 이동 선상에 놓인 모든 것이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중단에 세웠던 검을 비롯해 무복 안에 받쳐 입은 경갑과 내장, 그리고 척추까지 깔끔하게 갈렸다.

후두둑. 털썩.

상하 두 조각으로 나뉜 수신호위 다섯이 고깃덩이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꾸울꺽. 파르르.

크게 침을 집어 삼킨 금왕 정관호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쏘아보던 용무린의 입에서 불쑥 뜻밖의 질문이 새어 나왔다.

“정관호는 어디 있지?”

“무, 무슨 말이오 대인? 내, 내가 바로 만금상단의 주인 정관호외다.”

용무린이 어이없다는 듯 풀썩 웃어 보였다. 말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너 따위가?”

그때 다시 열이 넘는 수신호위들이 몰려들었다.

“괜찮으십니까, 대인?”

“적이 안으로 날아들었…… 헉!”

“이, 이게 대체?”

하지만 감히 함부로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용무린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제발 들어와 검을 뽑으라고, 단숨에 죽여줄 테니 어서 공격을 하라고 말이다.

-검을 뽑으면 죽는다.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먼저 달려 온 놈들보다 조금 나은 놈들인지 마구잡이로 공격하던 놈들과는 그 격이 달랐다. 자신들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

정관호를 자칭하던 사내가 몸을 가늘게 떨었고 용무린은 그 사이 품속에서 아홉 장의 전서를 꺼내들었다. 하나씩 훑어 보다 필요한 것을 찾아냈다.

“보여?”

그 전서를 들어 올린 용무린이 정관호의 눈앞에 살짝 흔들어 보였다.

새롭게 추가된 석 장, 외부에서 만금상단을 향해 날아들었던 비응의 발목에 걸려 있던 것들 중 한 장이었다.

“보자, 여기에 뭐라고 적혀 있느냐 하면 말이야…….”

쭉 늘어선 수신호위들까지 들으라는 듯 용무린은 천천히 전서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북경 일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 섬서성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던 황룡패주가 모습을 드러냄.

위험 요인이 사라질 때까지 연락을 끊겠음. 대산으로 보낼 상납금의 부족분은 이쪽에서 채워 넣었음.

흑야 배상.

놀랍게도 그 안에 대산이라는 글귀가 명시되어 있었다.

대산이라는 말은 곧 십만대산을 의미한다. 그리고 십만대산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마교를 뜻한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인 셈이다.

용무린이 슬쩍 보여준 전서에 쓰인 내용을 읽었던 수신호위들이 헛숨을 집어 삼켰다. 수결까지 되어 있는 전서의 내용은 용무린이 읽었던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어헉! 대, 대산!”

“십만대산이라면 바로…….”

“마교! 마교에 보낼 상납금이라니……?”

수신호위들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만금상단이 마교와 진짜 연관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훌쩍 뒤로 물러났다. 무기를 거두고 지켜보기만 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자신들 역시 마교와 한통속으로 엮이게 되리란 걸 다들 직감했던 거다.

“그, 그게 대체……?”

정관호를 자칭하던 사내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전서는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것으로 항변하려 했다.

물론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 전서들은 용무린이 아닌 밖을 봉쇄하고 있는 군에서 입수한 것이었으니까.

“닥쳐!”

타닷.

“큽!”

용무린은 즉시 놈의 마혈과 서른여섯 개 대혈을 제압해 버렸다.

정관호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입술만 움직여 웃어 보인 용무린이 다시 한 장의 전서를 들어 올렸다.

“내용은 비슷한데 이것은 염야 배상이라고 적혀 있고 마지막 한 장에는 마영이라고만 적혀 있네?”

흑야와 염야는 대충 짐작이 갔다.

‘흑상과 염상까지 함께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더 정확히 알아봐야 하겠지만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마영은 대체 뭐냐? 결자해지라고만 적혀 있는데 말이야…….”

내용이야 셋 중 가장 간단했지만 뜻은 너무나 명확했다.

결자해지!

공연한 일을 저질러 용무린을 불러들인 것은 바로 만금상단이니 여하튼 대산 즉 배후에 버티고 선 마교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끔 알아서 해결하란 뜻이다.

“……!”

정관호가 눈만 멀뚱멀뚱 껌벅였다. 마혈과 삼십육대혈을 제압당한 까닭에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가짜 정관호를 물끄러미 보던 용무린이 볼을 씰룩이며 웃었다.

“하긴, 네가 뭘 알겠냐? 목숨 내놓고 대역이나 하는 놈인데 말이야.”

용무린이 성큼 가짜 정관호 앞으로 다가섰다.

아혈 하나만 풀어 주고선 그대로 손을 들어 녀석의 복부에 쑤셔 넣었다.

푹.

“커헉!”

통각신경을 송두리째 제압당한 가짜 정관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피는 얼마 흐르지 않았다.

용무린이 기가 막히게도 장기와 큰 혈관들을 피해 찔러 넣었기 때문이었다.

“자, 마지막 기회다.”

“커헉. 제, 제발…….”

“그래그래, 억울하겠지. 네 맘 다 알아.”

“……!”

“그런데 그거 아냐? 용서를 받기에는 너무 늦었어.”

용서를 받으려면 최소한 내 아버지는 건드리지 말아야지!

나지막이 으르렁대던 용무린이 가짜 정관호의 통각신경을 그대로 쥐어짰다.

“우와아아악!”

가짜 정관호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용무린은 여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흑야와 염야에 대해 불어.”

“크아아아악. 끄으으으윽.”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수준의 고통에 정관호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사력을 다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불기 시작했다.

“흐, 흑상은……. 아, 아편과 부녀자 그리고 아이들을 인신매매 하는 조직으로써…….”

일각도 지나지 않았지만 통각신경을 송두리째 제압하고 쥐어짜는 고통은 감히 인간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 염야는…… 크아악! 소, 소금 밀매 조직입니다.”

차례차례 잘도 불었다.

“대, 대산에…… 화, 황금을 보내는 방법은…….”

그래도 꽤 깊이 관여한 놈이었던지 녀석은 대산에 황금을 보내는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

“……!”

“……!”

정관호의 수신호위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멍한 표정으로 가짜 정관호가 밝히는 만금상단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들었다.

***

만금각 지하 깊은 곳.

“빌어먹을!”

대역을 내세워 용무린의 눈을 속이려 했던 금왕 정관호의 얼굴이 우악스럽게 구겨졌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예의 그 걸걸한 목소리가 물어왔다.

평소와는 달리 걸걸한 목소리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히 묻어났다. 설마하니 용무린이 저런 식으로 만금상단을 통째 봉쇄해버릴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귀어진이라도 해야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금왕 정관호가 톡 쏘아 붙였다.

“……!”

어이가 없었는지 걸걸한 목소리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정관호가 씹어 뱉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보고를 하지 않았을 것을…….”

다른 무엇보다 대산과의 연락을 전담한 마영각에 상황보고를 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답신으로 분명히 비응을 다시 보냈을 텐데 지금껏 아무 연락도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밖에서 차단당했겠지?’

수십 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군에 궁병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만 팔천 중 못해도 오천 명은 족히 넘어설 것이다. 그 숫자가 한 발씩만 쏘아 올려도 벗어날 수 있는 비응은 없으리라.

‘놈들 손에 들어갔을 텐데…….’

그 사실이 너무 뼈아팠다.

대산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증거, 만금상단이 마교와 관련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곱게 가져다 바친 꼴이라니!

‘미치겠군. 저렇게 통째 봉쇄당할 줄 알았다면 절대로 마영단에 보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내 대역도 세우지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미리 이곳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이곳을 비울 때마다 전면에 세우는 대역은 마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으로 택하고 세뇌한 후 몇몇 일들을 맡겨 왔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런 얄팍한 수는 통하지가 않았다.

“동귀어진이라……. 가능하겠습니까?”

“이곳으로 끌어들이면 돼.”

“이곳으로 말입니까?”

“그래.”

정관호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기둥 곁으로 움직였다. 기둥을 어루만졌다.

“아!”

그제야 알겠다는 듯 걸걸한 목소리가 탄성으로 바뀌었다.

정관호가 비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용무린과 함께 죽는 대가로 불회곡에 있는 우리 두 사람의 처자식들은 남은 평생이 보장된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죽느니 한 번 해 볼만 한 일 아닌가?”

“푸흐흐. 과연 그렇습니다.”

걸걸한 목소리가 기분 좋게 웃었다. 대산에서 자신들의 희생을 알아줄 것만 같았던 거다.

***

“음?”

용무린의 눈이 살짝 가느다래졌다.

아무도 느끼지 못했겠지만 만금각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던 것이다.

‘지하다.’

떨림은 열 번도 넘게 계속해서 이어졌다.

‘뭔가 시작됐어.’

그때마다 만금각 전체가 영향을 받았다. 건물 전체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마기야! 틀림없어.’

누군지는 몰라도 대놓고 마공을 뿜어 무공을 펼쳤다.

용무린은 만금각 지하에서 무엇을 위해 마공을 펼친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푸흐흐. 그래놓고 나를 부른다 이거야?”

자존심 문제다.

“안 갈 수가 없잖아?!”

용무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피떡으로 변한 구진기를 슬쩍 바라보았다.

‘싸가지 없는 놈!’

무려 한 식경 가까운 시간 동안 통각신경을 쥐어짰다.

그런 후 두 팔, 두 다리, 가슴, 머리 순으로 차근차근 발로 밟아 피떡으로 만들어 놓았다.

잔인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흥! 내 아버지, 내 친인을 건드린 이상 그에 상응하는 본보기를 보인 것뿐이야.’

두 번 다시는 내 가족을 건드릴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하도록 만들 생각이다.

‘네 놈은 그래도 모자라. 나는 네 놈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야겠어.’

이곳을 나서는 즉시 놈이 모아놓은 재산을 추적해 가족들까지 죄다 알거지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이제 초대에 응해주기만 하면 되나?’

저렇게 대놓고 마공까지 펼쳐가며 자신을 부르는데 피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좋아, 가주지.”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용무린은 가짜 정관호의 목줄을 잡아채 한 손으로 들어 올린 후 아직까지 지켜보고 있던 수신호위들을 향해 던지듯 건넸다.

“그놈 끌고 밖에 나가서 지금까지 듣고 본 사실을 가감 없이 전해. 그러면 너희들과 너희 가족들의 목숨은 구할 수 있다. 알아들어?”

“며, 명을 따르오이다.”

기다렸다는 듯 수신호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 정관호에 이어 총관의 진술까지 다 들었고, 그 무엇보다 이만 팔천 명이 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압박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은 끝이 났다.

버텨도 소용이 없으니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구하려면 협조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열 명의 수신호위들이 가짜 정관호를 들고 밖으로 사라져 갔다. 용무린은 그들이 허튼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이제 만금상단은 끝났어.’

중감 엄당과 도지휘사와 안찰사를 비롯한 승선포정사의 수뇌부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날아든 전서를 차단하는 성과를 거뒀다.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이미 모두가 아홉 장의 전서를 읽었고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다. 지하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든 만금상단이 마교의 하부조직이라는 사실을 털어낼 수 없는 거다.

“자, 그러면 초대에 응해볼까?”

용무린은 만금각 밖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불사신기를 끌어 모아 풍뢰에 전달했다.

버번쩍. 패애애액.

홀로 날아 오른 풍뢰가 낙뢰가 되어 내리꽂혔다. 만금각 아래 지면에 커다란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크크큭. 이쪽으로 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했을 거다.’

기관이고 뭐고 새로운 길을 내버리면 소용없는 짓이다.

전각을 통째 무너뜨린다고 해도 숨통을 뚫어 놓았으니 그곳을 통해 나오면 그만이다.

푸화학!

지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지하로부터 탁한 공기가 훅 치솟았다. 용무린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듯 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차아핫!”

“하앗!”

버언쩍. 피쉬쉬쉿.

기다렸다는 듯 파상 공격이 밀려들었다.

‘스물!’

용무린은 한 순간에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을 파악했다. 밝은 곳에 머무르다 어둠속으로 들어왔지만 아무 문제없이 파악할 수 있었다. 눈이 아닌 불사신기로서 마공을 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까짓 것!’

혈교 태상장로와 싸웠을 때와 비교하면 이런 것쯤 어린애 장난 수준이다.

파아앗!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풍뢰를 잡아채 부드럽게 한 바퀴 휘저었다. 무슨 특별한 초식을 펼친 것도 아니었다. 불사신기와 한 줄기 섬광이 일었을 뿐이었다.

‘이런 놈들에게는 어검술도 아깝지.’

하지만,

파캉. 카가가각. 스거걱.

휘돌린 선상에 놓여 있던 것들이 그대로 두 조각이 났다.

짓쳐들던 마공초식과 검 그리고 마인들의 육신까지 단숨에 갈라져 버렸다.

“크아악!”

“커헉!”

단 일 초식의 교환.

그 짧은 시간에 전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숨어 있다고 모를 줄 알고?”

휘슷.

활짝 열린 공간 사이로 용무린이 짓쳐들었다. 그 뒤에 제법 커다란 기운 두 개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놈들이겠지?’

대놓고 마공을 펼쳐 자신을 초대한 간 큰 인간.

십층에서 대역이 나를 맞이했으니 둘 중 하나는 만금상단의 주인인 금왕 정관호일 것이다.

“흐아압!”

“차아-아!”

두 번의 기합성과 함께 상당한 수준의 마기가 움직였다.

‘십층에서 느꼈던 바로 그 기운이다.’

그런데 마공이 노리는 상대가 내가 아니다. 두 줄기의 마공이 향하는 곳은 바로 만금각의 중앙!

어둠을 뚫고 똑똑히 보였다.

만금각 전체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고 있는 두터운 나무기둥을 향해 마공이 쏟아지는 것을…….

‘그럴 줄 알았어.’

계속해서 이어지던 미세한 흔들림.

유혹하듯 대놓고 뿜어지던 마공으로 보아 놈들이 이럴 생각이라는 것쯤 이미 짐작했다.

‘하지만 네놈들이 생각하지 못한 게 있어.’

그것은 바로 속도!

콰아앙. 퍼어엉.

두 마인이 쏟아낸 힘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중앙의 기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기둥 곁에 지켜 서서 두 손 가득히 마공을 운집한 후 용무린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야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스파아아-앙!

공간이동이라도 하듯 거리를 좁힌 용무린의 손아귀에 두 사람의 목이 잡히는 신세가 되어야만 했다.

“컥!”

“흡!”

중앙의 기둥을 향해 공격을 쏟아냈던 터라 방어를 할 여력도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무공 격차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놈들의 목을 잡아챔과 동시에 그대로 몸을 되돌렸다. 올 때보다 더 빠르게 물러났다. 용무린의 등 뒤에 파공음이 겨우 따라 붙었다.

와르르르. 후두둑. 쿠드드드득.

엄청난 하중을 홀로 견디던 중앙기둥이 파괴되자 십층에 달하는 만금각이 빠른 속도로 주저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너지는 속도는 용무린을 결코 따라 잡을 수 없었다.

퍼엉. 휘리리릭.

미리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용무린은 지하를 벗어났다.

양손에 정관홍과 걸걸한 목소리를 내던 마교 고수의 목 줄기를 잡아챈 채였다.

***

“맙소사…….”

“만금각이 무너지고 있어.”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을 하던 양민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하니 만금상단을 상징하는 만금각이 통째 무너지는 날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성도에 지부를 세워둔 나머지 육대 상단 소속 정보담당자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바로 흑상과 염상 그리고 마영각이라 불리는 마교의 정보담당자들이었다.

‘만금상단이 무너진다.’

‘어서 빨리 이 소식을 전해야 해.’

‘흑상과 염상도 위험해. 어서 빨리 숨어들어야만 해.’

‘대산에 이 급보를…….’

제각각의 목표를 가지고 성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

스스슷.

양손에 한 사람씩 두 사람의 목줄을 잡아채고도 바람처럼 움직인 용무린이 만금상단 정문 앞에 내려섰다.

철퍽. 철퍼덕.

그들 앞에 정관호와 마교의 고수가 거칠게 패대기쳐졌다.

목줄을 잡아채는 순간 이미 혈도를 제압당한 것인지 바닥에 패대기쳤음에도 정관호와 마교의 고수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보자, 내가 잘 잡아 왔나?”

용무린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씨익.

“맞네. 아까 봤던 그 얼굴…….”

용무린이 만족한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만금각 십층에서 봤던 정관호의 대역과 자신이 잡아 온 인물의 얼굴이 같았던 것이다.

“감축 드립니다, 패주.”

중감 엄당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감축 드립니다, 패주.”

“승리를 감축 드립니다, 패주.”

도지휘사 허종을 비롯해 안찰사 위영인과 승선포정사사의 좌우 포정사가 고함을 지르며 허리를 조아렸다.

‘하, 내가 이 꼴 보기 싫어서 관이나 군을 동원하기 싫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일단 동원했으니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어야만 한다. 어쨌거나 이들 덕에 전서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성과를 거두지 않았나?

“모두들 수고했다. 오늘 보여준 너희들의 노고를 내 절대로 잊지 않겠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리가 났다.

천하의 황룡패주에게 그 정도 공치사를 들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감동을 한껏 퍼먹은 허종과 위영인 등이 무릎을 꿇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황룡패주 천세천세 천천세!”

“황룡패주 천세천세 천천세!”

오그작.

용무린의 손아귀가 살짝 오그라졌다.

저런 종류의 찬사는 정말이지 체질에 맞지 않는다.

“됐어. 됐다고! 됐으니까 어서 빨리 일어나!”

그래서 용무린은 잽싸게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감사하옵니다, 패주.”

“황공하옵니다, 패주.”

일어나는 것까지 감사를 하고 지랄들이었다.

‘내가 그냥 마교 놈들하고 싸우고 만다.’

아부 따위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용무린의 눈이 질끈 감겼다. 그런 모습을 동창의 중감 엄당이 신기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다시 눈을 뜬 용무린이 물었다.

“여기 제형안찰사가 누구지?”

“찾아계시옵니까, 패주. 하북성도 안찰사 위영인이라고 합니다.”

위영인이 냉큼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아까 정관호의 수신호위 몇 놈에게 대역을 하고 있던 녀석을 내보냈는데 말이야. 그놈 지금 어디 있지?”

“제형안찰사의 지하 뇌옥으로 이송조치 했습니다.”

“좋아. 여기 이 두 놈까지 나란히 뇌옥에 쳐 넣어놔. 내가 직접 신문을 할 테니까 말이야.”

“충!”

위영인이 똑 소리 나는 대답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용무린의 명령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좌, 우 포정사!”

“예, 대인!”

“하명하십시오, 대인.”

승선포정사의 수장인 좌, 우 포정사가 고함을 지르듯 대답했다.

“전서 모두 읽었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러면 이야기가 쉽겠군.”

용무린의 입에서 파격적인 명령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관군을 공격해서라도 트집거리를 만들어 나머지 육대 상단에 이 나라의 경제를 무너뜨리라는 경고를 발송한 놈들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만금상단의 해체 작업에 돌입한다.”

“충!”

“명!”

당연한 수순이었다.

황금으로 무사들을 독려해 관군의 난입 시 공격을 한 후 그 결과를 폭압으로 규정, 이 나라의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 황금을 통해 황제마저 길들이려던 내용이 육대 상단으로 보내진 전서의 중요 골자였다.

그런 만큼 만금상단의 해체는 필연적이다.

차후 공개될 전서의 내용을 듣는다면 육대 상단도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나머지 육대 상단의 수장들에게 일제히 연락을 취해라. 나 황룡패주와의 독대를 위해 지금 즉시 이곳으로 튀어오라고 해!”

“명을 따릅니다.”

“명을…….”

용무린의 명령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도지휘사.”

“하명하소서, 패주시여.”

도지휘사 허종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대는 지금부터 승선포정사와 함께 움직여 만금상단의 해체 작업을 돕는다.”

“명!”

“반항이 꽤 있을 거야. 만반의 준비를 한 채 함께 움직이다가 반항하면 가차 없이 짓밟아! 알겠나?”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허종이 똑 소리 나게 복창했다.

“자, 그러면 나는 뇌옥으로 가 볼까?”

용무린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제형안찰사의 지하 뇌옥을 향해 움직였다.

“……!”

그 뒤를 중감 엄당이 조용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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