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거듭나는 비룡문
자금성의 황궁무고에서 챙겨온 영약들이었다.
“요건 삼왕, 이 녀석은 오행설란…….”
“……!”
의성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다물어 지질 않았다.
용무린의 소매에서 나오는 영약들이 하나같이 인세에 보기 드문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영약들을……?”
“이거요? 황궁무고 약재창고에 넘쳐나던데요?”
“……!”
의성은 다시금 할 말을 잃었다.
용무린이 꺼내 놓은 영약들은 모두 열다섯 가지나 된다.
‘하긴, 저런 영약들이 자금성 말고 어디 또 그렇게 흔하겠는가?’
더불어 역대 제왕들의 명이 그토록 짧았던 이유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영약을 저렇게 쌓아 두고 돼지처럼 많이 처먹어 왔으니 제왕들의 명이 그렇듯 짧았던 게지.’
의성은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영약이랍시고 그저 먹기만 하면 좋을 것인 줄로만 알았을 황제와 어의들이 웃겼던 것이다.
‘영약은 묵어온 그 세월만큼이나 약성이 강한 법, 그 약성을 잘 다스려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흡수가 되도록 이끌어야 하거늘 그저 좋다는 말에 상성도 안 가리고 처먹기만 했을 테니……’
그러니 역대 제왕들이 저런 영약들을 밥 먹듯 퍼먹으면서도 그렇듯 명은 명대로 또 짧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 처음 다뤄보는 약재라 하더라도 그 상성과 독성을 알아낸 후 조화롭게 단약으로 녹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단 말이야.’
문헌으로만 봐왔던 공청석유를 비롯해 삼왕, 천지구엽초, 삼선주엽구과, 오행설란, 인형설삼 등등 한 가지만 중원에 풀려도 큰 싸움이 날 만한 영약들.
그러나 단언컨대 저 영약들의 약효를 완벽하게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천하에 세 손가락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골라 오기도 힘들 텐데 영약들은 음과 양의 성질이 거의 비슷한 양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까지 한 상태다.
‘이 정도로 조건이 좋은데 내가 성공해내지 못할 리가 있나?’
보란 듯이 활생단 아니 소림의 전설인 대환단을 몇 배나 뛰어 넘는 희대의 성약을 만들어 보이리라.
“어때요?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요?”
“되, 되다마다요!”
두 말하면 숨 가쁜 거다.
의성은 누가 빼앗아가기라도 할까봐 두려운 모양인지 영약들을 온몸으로 덮듯 쓸어안았다. 다소 격동된 얼굴로 고함을 지르듯 외쳤다.
“반드시! 내 반드시 진정한 의미의 활생단을, 아니 희대의 무림 성약을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외다!”
목소리에 강한 집념이 어려 있었다.
마교 놈들의 혈고에 당해 활생단이라는 이름으로 혈고가 깃든 약을 빚어왔던 것이 어지간히 한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라고 용무린은 생각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천의당주님.”
“지금부터 열흘입니다, 패주. 부재료들은 이미 준비가 끝나 있으니 그 시간이면 활생단, 아니 전설에 남을 희대의 영단의 탄생을 보게 되실 겁니다.”
어찌나 흥분을 했는지 의성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용무린은 생각했다.
‘흠. 어떤 핑계를 대든 황궁무고에 한 번 더 들어가서 약재 좀 더 챙겨 와야 하겠구나.’
황제가 들었다면 다시 한 번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퍼마실 계획을 용무린은 잘도 떠올렸다.
“뭐 따로 도와드릴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열흘 동안 주변만 차단해주시면 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그리고요?”
“……마지막 순간에 고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의성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꼬리를 늘였다.
“고수의 도움? 어느 정도면 되지요?”
“노화순청의 순양지기를 운용할 수 있는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패주.”
그런 사람이 흔할 리가 있나?
하지만 용무린은 그저 한 번 웃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필요한 순간이 오면 말씀만 하세요.”
“감사합니다, 패주.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의성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영약을 대신할 희귀 약초들만 가지고 활생단을 만들어 냈던 자신이었다.
한데 지금은 주재료로 사용할 영약의 가짓수가 무려 열다섯 가지나 되며 노화순청의 순양지기를 운용할 수 있는 무인까지 대기하고 있다.
“언제부터 주변을 차단하면 되나요?”
“목욕재계 후 천지신명께 기도를 하고 연단에 들어갈 것이니 금일 자시부터 해주시면 될 듯합니다, 패주.”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용무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도 의성의 시선은 영약에만 꽂혀 있었다.
‘좋아. 아버지와 숙부님들은 열흘 후에 뵈기로 하고 그 전에 공손 어르신이나 만나 볼까나?’
아버지 용대명을 비롯해 한 분밖에 남지 않은 용대연 숙부와 두 명의 의숙들까지 모두 폐관수련에 들었다.
거기에 더해 직계는 형제들은 물론이고 비룡무단의 무인과 일반무사들까지 절반씩 나누어 침식을 잊고 폐관연공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룡문에 별다른 일이 없는 것은 오롯이 용무린의 위명과 관의 힘 덕분이었다.
황제의 어명과 황룡패주의 특명에 의해 주변의 도지휘사사는 물론이고 다섯 개소의 천호소들이 병사들을 차출해 주변을 지키고 있으니 감히 누가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용무린은 즉시 병기당으로 향했다.
땅. 따앙. 땅. 따앙.
악기처럼 맑은 쇳소리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규칙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좋구나.’
대체 뭘 만들고 있기에 저리 좋은 소리가 날까?
용무린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병기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병기당주님!”
“이, 이런! 오셨습니까, 소가주!”
공손위는 용무린을 황룡패주도, 무림왕도 아닌 비룡문의 소가주로 대했다.
“소가주님 오셨습니까?”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공손위의 아들인 공손남윤과 손자인 공손수광이 일손을 내팽개치고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이러시면 제가 얼굴 뵈러 여기 못 옵니다. 일손까지 던지면 어떻게 합니까?”
공손남윤과 공손수광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웃었다.
“괜찮습니다, 소가주님.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수련용 검에 불과합니다.”
“저도 대련용 막검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소가주님.”
“……!”
용무린의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세상에, 수련용이자 대련용 막검을 만들어내는데 저렇듯 소리가 맑고 규칙적이었다고?’
마무리 단계인 수련용 검을 슬쩍 보았는데 어찌나 정성이 많이 들어갔는지 한눈에 봐도 여타 문파의 무사들이 들고 다니는 검보다 좋아 보였다.
용무린의 표정을 읽은 천수신장 공손위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소가주. 우리 비룡문의 무사들이 사용할 진검을 만들 때는 옆에서 벼락이 쳐도 흔들리지 않고 만들고 있습니다. 하하하.”
어찌나 든든한지!
“저는 그저 병기당주님만 믿고 있습니다.”
공손위 일가가 직접 만들어낸 무기라면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쉽게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 무기들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가주. 기대에 부흥하여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공손위가 단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더 필요로 하신다거나 부족한 것은 없으시죠?”
“없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대우만으로도 사실 분에 넘칠 정도입니다, 소가주님!”
공손위의 아들인 공손남윤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래도 뭔가 필요한 게 있다거나 부족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바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염려 마십시오, 소가주님.”
훈훈한 가운데 인사를 마친 용무린에게 조연옥의 전갈이 들려왔다.
“소가주님! 식사 준비 다 되었다는 전갈입니다-아!”
“알았다.”
용무린은 오랜만에 맛보는 조연옥의 음식 솜씨에 잔뜩 기대하며 걸음을 옮겼다.
***
후루룩. 후룩.
어찌나 맛이 좋은지 용무린은 조연옥이 만들어 낸 사계미탕포를 정신없이 입에 가져갔다.
씽긋.
“그렇게 맛있어, 아들?”
“예, 어머니. 정말 너무너무 맛있어요.”
해 준 보람이 있는지 조연옥이 흐뭇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들!”
후루룩. 후룩.
“예, 어머니.”
“영령이와 아직도 첫날밤 안 보냈어?”
“컥! 푸우우.”
먹다 사레가 들린 용무린은 입 안 가득 집어넣고 있던 사계미탕포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뭐, 그런 걸로 놀라? 아직이야?”
조연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질문을 던져왔다.
“어, 어머니!”
“이상하네? 오가는 눈빛으로 보아 분명 혼례 전에 일을 저지를 기세들이었는데?”
조연옥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용무린을 몰아붙였다.
“아오! 내가 정말…….”
“왜 그래 녀석아? 엄마가 전에 뭐라고 했니? 기회가 오면 잡으라고 했었잖아? 그리고 또 뭐라고 했어? 혼례고 뭐고 분명히 손주를 먼저 보고 싶다고……?”
소나기처럼 말을 퍼 붓던 조연옥의 눈이 동그래졌다.
잘 익은 홍시처럼 발갛게 변해가는 용무린의 얼굴과 흔들리는 동공에서 무엇인가를 느꼈던 것이다.
“아들! 호, 혹시…….”
“잘 먹었습니다.”
화다닥.
더는 버틸 수 없었던지 용무린은 젓가락을 집어 던지고 일어났다. 밖을 향해 튀었다.
“아들! 진짜구나!”
“아, 몰라요!”
“오호호홍. 잘했다. 잘했어, 내 아들!”
조연옥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용무린의 뒤통수에 화살처럼 콕콕 박혔다.
***
자시가 되자 용무린은 천의당으로 향했다.
의성 신우량에게 자신이 직접 호법을 설 것임을 알려준 후 그대로 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버렸다. 열흘이란 시간 동안 겸사겸사 불사신기 수련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용무린이 직접 호법을 선다는 말에 의성은 다시 한 번 감동을 퍼먹었다.
‘기필코 전설로 남을 성단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굳은 의지와 함께 의성은 일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삼왕과 같은 뿌리 식물의 약성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간단하지만 고도의 집중력과 정성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먼저 첫 닭이 우는 새벽에 길어 낸 정화수를 한 번 끓이고 온도를 낮추어 바닥에 구슬만 일게 만든다.
그런 후 계속해서 약탕기 바닥에 구슬만 일게 만드는 온도를 유지해야만 하는데 온도가 너무 높으면 약성이 사라지게 되고 너무 낮으면 약성이 다 우러나오지 못하게 되니 그야말로 이것이 비법인 셈이다.
‘하루 반나절. 그 동안에 모든 약성을 뽑아낸다.’
극양의 약성을 지닌 약재들을 그렇듯 한데 모아 우려낸 것이기에 그 이름도 극양수가 된다.
다음으로는 반대 성향인 극음수를 뽑아내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성을 우려내는 일 역시 정화수를 필요로 했다.
이른 새벽 첫닭이 울 때 길어 놓은 정화수를 한 번 끓여낸 후 싸늘함이 감돌 때까지 완전히 식힌다. 그런 후 음한 성질을 지닌 약재들을 넣고 극양수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 자극하는 것이다.
극양수의 자극을 받은 음한 성질의 약재들이 제각각 반발을 하며 극음의 성질을 지닌 약성을 뿜어내는데 그 시간이 또한 하루 반나절이나 걸린다.
‘그 다음에는 조화수를 만드는 것이지.’
극음수를 뽑아내기 위해 극양수가 같은 양이 들어가 있지만 아직은 서로 상충이 되어 서로 반발을 하고 있다.
‘이때 나만의 비법이 필요한 게야.’
극양이나 극음이 아닌 미묘한 불의 세기가 있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지지 아니한 온도.
정확히 그 온도로 약탕기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극양과 극음이 완전히 하나로 조화가 되게 이끄는 것인데 그 시간이 무려 사흘이나 걸린다.
‘반드시 만들어낸다. 반드시.’
극양수에 하루 반, 극음수에 또 하루 반.
거기에 더해 조화수를 만들어 내는데 사흘, 의성은 무려 엿새 동안이나 뜬 눈으로 쉬지도 않고 약탕기와 화덕만 붙잡고 지냈다.
그리고 마침내 조화수까지 완성한 후 의성은 곧바로 나머지 부 약재들을 덖기 시작했다.
덖고 식히기를 무려 아홉 번.
그 사이 부 약재들은 흐물흐물 해지다 못해 고약처럼 변해 한 덩어리가 되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조화수.
의성은 딱딱하게 굳어가는 부 약재들에 조화수를 조금씩 부어 약성을 합일시켜 나갔다.
열 방울.
치이이. 치이이. 치이이.
그 열 방울의 조화수가 부 약재와 섞이며 굳어 가면 또 다시 열 방울을 붓는다.
치이이. 치이이. 치이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만 갔다.
열흘이라는 시간 내내 밖을 지키고 있던 용무린마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의성의 정신력이라는 것이 우리네 무인들 못지않구나.’
열흘 동안 흩뜨려지지 않고 날카롭게 곤두세운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무인들이라 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공도 없는 의성 신우량이 그 일을 보란 듯이 해내고 있었다. 모든 정성을 다해 날카롭게 세운 의식을 열흘 내내 유지하며 연단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이었다.
“순양! 순양의 기운이 필요해!”
불현듯 때가 된 것을 감지한 의성이 외쳤다.
“갑니다.”
용무린은 두 말 하지 않고 일어나 안으로 들었다.
대뜸 불사신기를 일으켰다.
“여기! 이곳에!”
의성이 급박한 어조로 단로를 가리켰다.
용무린이 보니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단약 오십여 개가 그 안에 들어 있었는데 냄새만으로도 정신이 번쩍 날 만큼 청아한 향이 그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후우웁!”
용무린은 대뜸 불사신기를 이끌어내 단로로 이끌었다. 열기에 보탰다.
“그렇지! 천천히 그러나 끊이지 않도록!”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원하는 것만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의성은 말은 날카로웠다. 용무린은 의성의 말에 따라 불사신기를 정확히 조절했다.
“조금씩 강하게. 조금씩. 그렇지. 조금만 더 강하게…….”
의성이 원하는 대로 순양의 불사신기를 강약 조절까지 해가며 단로에 퍼부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막바지에 다다른 듯 의성이 날카롭게 절규하듯 외쳤다.
“최대한 강력하게! 순양의 불길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불순물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후 싹 꺼버렷!”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웅. 화아악!
의성의 요구대로 해주었다.
불사신기가 한 순간에 폭발하듯 단로에 퍼부어졌다가 이내 씻은 듯 사라졌다.
“……서, 성공했다. 성공했어.”
글썽!
의성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혈고에 당한 상태에서 활생단을 만들고 그 활생단에 다시 혈고를 심어야만 했던 순간이 모두 씻겨 나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성.”
“허으으.”
지난 열흘간의 노고가 한꺼번에 밀려왔는지 의성 신우량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용무린은 빙그레 웃으며 의성의 몸을 안아 조심스레 뉘였다. 그리고 다시 불사신기를 끌어 올렸다. 의성의 몸에 추궁과혈을 베풀었다.
타다닷. 타다다닷. 치리리릿.
실처럼 새하얗게 구체화된 불사신기가 의성의 몸에 깃들었다.
“허억! 성공이다!”
오래지 않아 의성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며 고함을 크게 질렀다.
“하하하. 맞습니다. 의성께서 성공하셨습니다.”
“아! 패, 패주!”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듯 의성이 얼굴을 붉히며 멋쩍어했다.
“저것이 바로 활생단입니까?”
용무린의 질문에 의성 신우량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단로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약의 배합과 과정은 분명히 활생단의 그것이었으나 열다섯 가지의 영약을 한꺼번에 모두 녹여 냈으니 이미 활생단이 아닙니다.”
주재료 두 가지의 부재를 듣도 보도 못했던 영약 열다섯 가지로 채웠으니 어찌 저 단약이 자신의 비방인 활생단일 수 있겠는가?
“거기에 마지막 순간 더해진 순양진기도 보통의 것이 아닌 듯했으니 과연 저 성약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이름이 용무린의 머리를 스쳤다.
“불사활생신단이라 할 것입니다.”
“불사활생신단?”
의성이 말꼬리를 살짝 올렸고 용무린은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빙그레.
의성 신우량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활생이라는 단어를 굳이 넣어준 용무린의 마음 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사활생신단이라……. 좋습니다, 패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불사활생신단.
차후 소림의 대환단이나 무당파의 자소단을 뛰어넘는 희대의 성약으로 이름을 높일 불사활생신단이 오십여 알이나 단로에 있다는 것을 과연 누가 알겠는가?
“비룡문에 보물을 내려 주셔서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의성.”
반짝.
용무린의 말에 의성이 눈을 빛냈다.
“약속해 주십시오, 패주.”
“무슨?”
“마교! 내 처와 자식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갔으면서도 결국 혈고를 몸에 심어 나를 죽음에 봉사하게 만든 마교를 영원히 이 땅에서 몰아내겠노라 약속을 해주십시오.”
“하늘에 맹세컨대, 마교의 멸망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 약속으로 되겠습니까?”
황룡패주이자 무림왕의 약속이다.
의성은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인지 스르르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패주의 말을 미, 믿소이다. 반드시……. 반드시-이……. 쿠울.”
숨 가쁘게 이어졌던 열흘간의 노고가 한꺼번에 밀려온 것인지 의성은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용무린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의성의 몸에 가만히 덮어준 후 불사활생신단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일단 아버지부터!’
용무린은 즉시 내원 깊숙한 곳에 만들어진 폐관 수련동으로 향했다.
“아버지. 무린입니다.”
용무린의 나직한 목소리에 수련동 벽 넘어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있다가 이제 막 다시 정신을 차리는 모양이었다.
“왔구나. 하지만 아비가 폐관을 작정하고 들어왔으니 이대로 밖으로 나서는 것도 우스운 일, 아들이 안으로 들어오거라.”
“예, 아버지.”
대답과 동시에 용무린은 안으로 들어섰다.
희미한 등불들이 안을 밝히고 있었는데 용무린은 어둠 따윈 아무렇지도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벽곡단 부스러기까지 죄 볼 수 있었다.
‘많이 헌앙해지셨네.’
얼마나 사력을 다해 수련을 해왔는지 용대명의 기상은 북경의 채시구 주선각에서 봤을 때와 벌써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검법에 살의가 담기기 시작하신 게야.’
번들거리는 눈빛과 호흡마다 담긴 싸늘함!
틀림없었다.
그 전까지는 그저 수련으로만 올라섰기에 유약한 면이 없지 않아 보였지만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실전과 형제의 죽음이란 경험에 그릇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아버지. 시간 단축을 할 길이 있습니다.”
“시간 단축! 하지! 하다마다!”
용대명이 눈을 희번덕였다. 시간 단축을 할 길만 있다면 죽음이라도 감수할 기세였다.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시간 단축 과정에 절대로 입을 열지 말아야 하며 움직이지도 말아야 합니다. 고통을 참지 못하여 몸을 움직인다거나 입을 열어 비명을 지른다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됩니다. 그래도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그까짓 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한들 형제와 식솔들이 속절없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할까?
‘내 아우 용대승이 나를 대신해서 죽었다. 창피하지만 그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을 수는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영원한 고통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도전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반드시 적을 박살내 식솔들과 형제들을 구할 것이다.
“물론이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아버지. 이것을 드십시오.”
용무린은 가지고 온 불사활생신단을 용대명에게 내밀었다.
“불사활생신단이라고 합니다. 의성께서 지난 열흘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만들어낸 영단입니다.”
“오오! 의성께서…….”
더 기다려 무엇 하겠는가?
용대명은 용무린이 내민 불사활생신단을 그대로 삼켰다.
꿀꺽. 스르륵.
입에 들어오자마자 물처럼 녹아든 불사활생신단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불사의 의지! 오직 그 불사의 의지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십시오, 아버지.”
“오냐! 흐읍!”
용대명의 눈이 부릅떠졌다.
실로 무지막지한 기운이 폭발하듯 치솟아 올랐기 때문이었다.
“불사의 의지를 담아 치솟아 오른 약성을 불사신공으로 유도하면 됩니다, 아버지. 나머지는 제가 맡지요!”
용무린은 가만히 용대명의 등 뒤에 앉았다.
가만히 명문혈에 손을 붙였다. 불사신기를 이끌어 낸 후 용대명의 몸 안에 휘몰아치는 불사활생신단의 힘을 단전으로 유도했다.
‘세상에……. 이런 정도의 힘이라니!’
단약 재련 시 불어 넣었던 순양의 기운이 불사신기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용무린도 마음대로 이끌지 못할 뻔했다.
그 정도로 불사활생신단의 힘은 무서웠다.
콰르르르. 콰르르르르.
장강의 둑을 무너뜨리고 주변을 휩쓰는 홍수처럼 비좁은 용대명의 단전을 벗어난 불사활생신단의 힘은 그동안 쌓았던 불사신기와 용무린이 직접 밀어 넣은 불사신기가 하나가 되어 단숨에 독맥을 활짝 열었다.
투확. 투확. 투확.
현추, 척중, 중추혈을 한꺼번에 격파하더니 파죽지세로 위로 밀고 올라갔다.
‘너무 강하기만 하면 뇌호혈이 상하게 되지.’
어찌나 그 기세가 강력하던지 용무린이 지그시 눌러 기세를 가라앉혀야만 했을 정도다.
투두두두둑. 화아악!
불사활생신단의 힘이 풍부, 뇌호, 강간, 후정을 지나 드디어 백회혈에 이르렀을 때였다.
투우우웅.
거침없기만 하던 불사활생신단의 힘이 처음으로 가로막혔다. 그러자 갑자기 내내 순응하던 불사활생신단이 버럭 화를 내었다.
화아악! 콰아앙! 후우욱! 콰아아아앙!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그 무엇이든 짓이겨 버리겠다는 듯 거칠게 백회혈에 부딪혔다.
움찔! 파르르.
그때마다 용대명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아버지. 불사의 의지! 그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부디 불사의 의지만 오롯이 세우고 계세요.’
그 흐름이 어찌나 격렬하던지 용무린조차 겁이 버럭 날 정도였다.
‘이걸 만들 때 내가 너무 불사신기를 몽땅 집어넣은 모양이로구나.’
약성도 약성이었지만 용무린이 작정하고 불어 넣었던 불사신기까지 하나가 된 성약의 힘이었기 때문에 이렇듯 강력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별 수 없어요, 아버지. 힘내세요.’
불사의 의지!
몇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불사신기의 핵심 요결을 용대명이 잊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부르르. 부르르르.
고통을 참아내는 것인지 용대명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용대명은 꿋꿋이 잘 버텼다.
용무린이 조언을 잊지 않고 불사의 의지에 모든 정신력을 쏟아 참았다.
콰아앙! 퍼어어억! 화아악.
마침내 독맥과 임맥을 가로막고 있던 가장 큰 관문이 허물어졌다.
휘이이. 휘이이이이-.
불사활생신단의 힘은 임맥을 차례차례 밀어 버린 후 단전으로 되돌아 와 완전한 불사신기로 치환이 된 후 다시금 임독맥을 휘돌았다.
씨이익.
‘이제 되었다.’
만족한 미소와 함께 용무린은 명문혈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쭈와아악! 쭈와아아악!
불사활생신단의 힘과 더불어 대자연의 기운까지 활짝 열린 용대명의 백회혈과 용천혈 속으로 파고들었다. 단전으로 밀려들었다.
둥실!
용대명의 몸이 허공으로 한 자 어림 떠올랐다.
투두둑. 투두두둑.
용대명의 몸에서 묘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높아진 내공에 걸맞도록 육체가 재조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하여 환골탈태였다.
‘됐어. 이제 된 거야.’
용대명이 눈을 뜨는 순간, 비룡문은 또 한 사람의 초절정의 고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내공을 지닌 초절정 고수가!
‘내공만큼은 초절정의 끝자락이 틀림없어.’
실전 경험은 아직 많지 않지만 내공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쉬이 밀리지 않을 만큼의 고수, 거기에 더해 죽을 각오로 실전 비무를 쌓는다면?
‘일 년으로 잡았던 폐관이 비약적으로 단축되겠지.’
얼마나 단축시킬 수 있을지는 이제 오롯이 용대명의 노력에 달렸다. 그가 나머지 식솔들과 함께 실전 비무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씨이익.
회심의 미소를 한 번 지어보인 용무린은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용대연 숙부의 수련동으로 움직였다.
용대연 역시 용대명과 같은 순간을 맞았다.
불사활생신단을 복용한 후 가부좌를 틀어 앉았고, 허무하게 죽어간 용대승을 떠올리며 불사의 의지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
그 결과는?
용대명과 마찬가지였다.
훌륭히 임독 양맥을 타통해냈고 불사활생신단의 모든 약력을 단전으로 이끌어 불사신기로 치환해 냈으며 환골탈태까지 이뤄냈다.
그렇게 용무린은 직계의 혈족들을 차례차례 방문했다.
끝으로 추뢰검사 교진운과 소요일영 유백 의숙부들까지 잊지 않고 찾았다.
‘비룡무단도 내 식솔이야!’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돌릴 수 있을 정도로 불사활생신단의 숫자가 많은 것이 아니라 용무린은 불사활생신단 열 개를 물에 희석했다.
‘자소단도 이런 식으로 썼었잖아?’
냉혈곡에서 무당파가 쉬이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이 달랐다.
그때 사용되었던 자소단은 겨우 두 개밖에 아니 되었지만 지금 희석한 불사활생신단은 무려 열 개나 된다.
거기에 더해 불사활생신단은 자소단보다 그 효력이 몇 배나 월등하지 않던가?
“소문주! 이렇게까지 저희들을 믿어주시는 것입니까?”
“비룡무단 단장 종우진! 이 한 목숨 소문주와 비룡문에 바칠 것입니다!”
“거, 참! 우리가 남입니까? 직계 혈족은 아니지만 비룡무단도 우리 비룡문의 식구입니다. 뭐 대단한 것이라고 그래요? 시간 없어요. 어서 빨리 복용하고 내가 전수한 무공으로 흡수해요. 빨리요!”
“명을 받듭니다, 소문주님!”
“명을 받드오이다!”
비룡무단의 단주 종우진을 비롯한 무인들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하긴, 삼백 명이나 되는 숫자에게 고루 영향을 미칠 영약을 내리는 소가주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것도 이미 엄청난 절기까지 전수해 줬는데 또 퍼주는 것이라 감격의 정도가 더 컸다.
‘비룡문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리!’
‘소문주님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아낌없이 내어 드릴 것이다.’
하나같이 격동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용무린이 희석한 불사활생신단을 한 잔씩 받아 마셨다.
“어헉!”
“헉!”
마신 직후 하나 같이 눈을 부릅떴다.
범상치 않은 수준의 약성이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었다.
“모두 좌정한 채 내가 전수한 무공구결을 떠올려요. 최대한 흡수하도록 해요. 어서요!”
이런 때 입을 열어 대답하는 것은 바보들이다.
“……!”
“……!”
비룡무단의 단주 종우진을 비롯한 삼백여 명의 무인은 즉시 눈을 감고 예전에 용무린이 전수했던 유성회류검법의 근간인 유성뇌신류의 내공심법을 끌어 올렸다.
파지직. 파지지직.
유성뇌신류 특유의 내공이 최고조에 이르렀는지 비룡무단의 무인들 주변에 실낱같은 뇌신류의 내공이 작열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삼백여 명이 전신으로 뿜어내는 뇌신류라니!
‘푸흐흐. 어지간한 마교의 무력단체라 해도 단박에 태워버릴 수 있겠네.’
기억 속의 마교 무력단체들을 떠올리며 용무린은 기분 좋게 웃었다.
‘황궁무고의 약재 창고. 반드시 한 번 더 털어 온다.’
황제가 들었다면 그야말로 코가 석 자나 빠질 생각을 용무린은 잘도 하고 있었다.
***
이레 후.
한결 편안해진 얼굴을 한 용무린은 손님을 맞이했다.
아버지 용대명과 숙부인 용대연, 그리고 교진운과 유백 두 의숙과 혈족들은 물론이고 비룡무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대공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보자, 이제는 폭발하듯 늘어난 내공에 마음먹었던 모든 것을 펼쳐낼 수 있으니 초식들이 손에 익을 정도로 수련한 후 실전 비무만 거치면 되겠지?’
용대명은 일 년을 예상했지만 불사활생신단으로 인해 백일 정도면 족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예서 버틸 생각이었는데 저 여시 같은 것이 왜 찾아왔담?’
앞에 앉은 홍연루주 소가흔을 바라보는 용무린의 눈은 곱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어쩐지 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