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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심의 일격 (82/104)

5.회심의 일격

마교의 북진으로 인해 어느 곳인들 평화로울 수 있겠느냐만 안휘성과 강서성의 경계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남궁세가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였다.

‘휴우. 그나마 무림맹에서 재빨리 움직여 주어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힘만으로 마교와 상대를 할 뻔했구나.’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관은 강소성과의 접경지역인 적계현 외곽을 바라보며 남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마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만 없다면 승리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남궁관은 늠름한 태도로 서 있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한 번 돌아보았다.

든든했다. 일 년 전에 비하면 적어도 몇 배씩 성취가 늘어난 터라 자신감들이 넘쳤다.

‘나 역시 은공 덕에 그동안 난공불락으로만 여겨졌던 제왕검형을 구 성까지 성취해 냈으니 충분히 해볼 만 해.’

생각하면 할수록 고마운 일이었다.

용무린이 무림맹 총순찰로 있을 당시 둘째 아들인 남궁유룡에게 창궁무애검을 조건 없이 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자신감은 없었으리라.

‘무림맹의 풍운단, 오행단 각각 삼백 명에 경천당과 철권당의 무인 각각 사백씩…….’

거기에 더해 남궁세가 자체전력까지 합하면 벌써 일천오백여 명의 절정 무인들인데 하북의 팽가와 산서성의 황보세가까지 이미 합세한 후였다.

‘그렇게 모인 정파의 중추세력이 이미 이천오백여 명!’

거기에 더해 위기의식이 발동한 중소문파들까지 힘을 보태었으니 그 또한 일천여 명에 달한다.

“허허허. 전통의 명문인 우리 오대세가의 세 가문이 한 자리에 모이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소이다.”

남궁관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곁에 늘어 서 있던 황보세가주와 팽가주가 따라 웃었다. 동감을 표했다.

“하하하. 구파일방과 함께 언제나 무림의 한 축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던 우리 오대세가가 아닙니까?”

“제갈가주의 말이 참으로 옳은 것입니다. 구파일방과 한 배를 타고 있긴 하지만 역시 우리 오대세가끼리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궁관이 은근한 목소리로 내심을 밝혔다.

“마교와의 전쟁을 끝낸 후 용무린 부맹주님을 맹주로 추대하는 일에 힘을 쏟을 생각이외다.”

같은 생각인지 즉답들이 나왔다.

“이를 말씀입니까? 부맹주님이야말로 우리 오대세가의 큰 은공이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부끄럽지만, 부맹주님의 조건 없는 선행이 없었다면 우리 팽가는 오호단문도법을 영원히 사장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팽가주의 말에 황보세가주 역시 슬쩍 자신감 넘치는 말을 쏟아냈다.

“황보세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은공이 아니었던들 조사님께서 말년에 남기신 천왕신권 역시 그저 전설로만 남게 되었을 겁니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팽가는 오호단문도법을 그리고 황보세가는 천왕신권을 모두 일정 수준 이상 성취했다는 뜻이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남궁관 역시 슬그머니 허리의 창궁검을 두들기며 답했다.

“저 역시 마교 놈들에게 본가의 제왕검형이 어떤 무공인지 보여줄 생각입니다.”

“오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팽가주와 황보세가주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관이 의미심장한 말을 쏟아냈다.

“은공께서 맹주의 위에 오르게 된다면 우리 오대세가 역시 과거의 무위를 회복한 것만이 아니라 위상 역시 과거의 것을 모두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중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은공과 우리 오대세가와의 사이가 남다른 편이지 않습니까?”

“조건 없이 서로를 위해주는 사이니 당연히 맹주의 위에 오르게 되면 우리 오대세가의 이름이 더욱 빛이 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하하.”

용무린을 무림맹주로 올린 후 그의 이름을 등에 업고 그동안 신주오가와 구파일방에게 모두 빼앗긴 과거의 영화까지 모두 되찾을 심산인 것!

하여간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언제나 이렇게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한참을 기분 좋게 웃던 팽가주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적계현 외곽의 평원으로 시선을 보냈다.

“저곳으로 오겠지요?”

“갑자기 방향만 틀지 않는다면야 저 평원이 결전 장소가 될 것입니다.”

남궁관의 답변에 팽가주가 슬쩍 다른 말을 꺼냈다.

“이 주변 관이나 군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황보세가주 역시 궁금했던 모양인지 남궁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궁관이 픽 웃으며 답했다.

“칠십 년 전에도 그랬다고는 하는데, 마교 놈들이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런 일일수록 확실히 관과 무림은 별개라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드넓은 대륙의 특성상 관과 군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들이 허다하고 그 빈자리를 언제나 무림이라는 세력이 차지해 지켜왔기 때문일 것이다.

꾸욱.

황보세가주가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승리만 하면 되는 것이군요.”

저 멀리 순찰을 나섰던 오행단주와 오행단의 무인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많은 피가 흐르겠지만 은공께서 맹주의 위에 오르게 되면 오래지 않아 잃었던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듯 남궁관이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

투우우웅.

흠칫!

가녀린 풀잎 하나 흔들지 못할 정도의 미약한 파문이었지만 신마는 전신의 솜털이 송두리째 곤두서는 전율을 느껴야만 했다.

‘그놈이다!’

홱!

신마의 고개가 파문이 번져온 서쪽으로 향했다.

얼굴만 살짝 다른 쌍둥이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른 듯 같으며 비슷하지만 또 다른 힘!

불사마력은 분명히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닮은 힘에 불사마력이 용트림을 했던 것이다.

씨이익!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꼬리가 하늘로 삐쭉 치솟았다.

“푸흐흐. 과연 내 적수로다!”

절로 통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먼 곳에서부터 번져온 파동인지는 몰라도 느낌만큼은 선연했다.

광포하고 강렬했으며 흉험했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 본능이 발동할 정도!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이란 말인가?”

신교의 최상위 고수인 오마종이 한꺼번에 덤벼든다 하더라도 작정하고 한 번 힘을 쏟으면 깡그리 찢어죽일 자신이 있다.

그러니 더는 이런 자극을 받을 일이 없는 거다.

자신과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른 저 힘을 뿜어내는 적이 없다면 말이다.

“크크큭. 붙어 보고 싶구나. 지금 당장 저 힘을 맞이해 통쾌하게 모든 것을 이끌어내 맞부딪혀 보고 싶다!”

꾸욱.

저절로 주먹에 힘이 고인다.

불사마력이 용암이 끓듯 마구 끓어오른다.

당장에라도 터져나가 적을 짓밟고 갈가리 찢는 쾌감을 맛보고 싶다.

“아직은 아니야.”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채 신마는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 짜릿한 위기감을, 하늘과 땅을 통틀어 적수가 없을 것이라 자신한 신마의 솜털을 송두리째 곤두세우게 만드는 이 기대감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이대로 끝내기엔 솔직히 너무 아쉬워.”

너무나 달콤해 콱 깨물어 씹어 삼키고 싶지만,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당과를 그렇듯 허무하게 낭비해 버릴 수 없는 처지와 같은 거다.

히죽.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즐긴 후…….”

그때 통쾌하게 씹어 삼키리라.

“오늘은 그 대신 네놈들로 내 끓어오르는 피를 식혀야만 하겠다.”

신마의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다.

반나절 거리로 좁혀진 곳에 위치한 적계현의 평원.

그곳에 모여든 정파연합이라면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피를 어느 정도 식혀줄 수 있으리라.

“가자!”

신마가 성큼 발을 내디뎠다.

불사마력이 끓어올랐으니 직접 나설 생각인 것이다.

“충!”

신마의 뒤를 따라 마교 3로의 마인들이 바람처럼 따라붙었다.

***

마교의 진격으로 인해 많은 피가 흐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고 있을 무렵 자금성은 여러 의견들로 혼란스러웠다.

“더는 마교의 사특한 무리들을 두고 볼 수 없음입니다, 폐하. 백련교의 전례도 있사오니 하루 빨리 군을 일으켜 놈들을 징벌하소서.”

병부상서 황충이 목소리를 높였다.

기다렸다는 듯 많은 대소신료들이 동감을 표했다.

“황궁무고에 황상을 구금한 전례가 있는 놈들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놈들을 징치하소서 폐하.”

물론 반대 의견도 많았다.

“일개인의 무력이 백 인의 정병을 넘어서는 무리들이옵니다, 폐하. 이이제이의 대계를 따르는 편이 더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맞습니다, 페하. 과거 자금성을 혼란케 했던 상관세가의 악적들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북원이 아직 새파랗게 노려보고 있음인데 굳이 군을 움직여 경동시킬 필요는 없음입니다.”

말이 많았지만 결국 무림의 일이니 무림의 힘에 맡겨 놓는 것이 더 좋다는 의견이었다.

황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찌할꼬?’

생각 같아서야 지금이라도 대군을 동원해 마교의 사특한 무리들을 밀어버렸으면 싶다.

‘북원의 늑대들과 맞닿은 감숙이나 산서 하북 전장의 정예들을 빼지 않고 남부의 주둔군만 움직여도 될 듯싶긴 한데 말이야.’

남부의 각 성에 배치된 주둔군만 움직여도 삼십만 명 정도는 능히 동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이라면 마교의 기세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충분히 밀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총병관을 비롯한 양가장의 맹장들이라면 마교의 무리라고 해도 능히 대처할 수 있단 말이지.’

거기에 더해 황룡패주가 있질 않은가?

‘역사에 보기 드문 고수인 황룡패주의 빼어난 용력이라면 고가 조금만 도와줘도 사특한 마교 놈들을 빠르게 치워낼 수 있을 텐데…….’

황제가 고민하는 것을 감지하자마자 병부상서를 비롯한 징벌론 자들이 더더욱 목청을 돋웠다.

“관과 무림이 별개라는 말을 묵인해줘 버릇하니 자꾸만 마교와 같은 무리와 결탁을 해 반란을 도모하는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폐하.”

“통촉해 주시옵소서, 폐하.”

“통촉해 주시옵소서!”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반짝!

황제의 눈에 서늘한 빛이 돌았다.

‘맞아! 이참에 위엄을 보여야만 해.’

홍연왕이 무엇을 믿고 반란을 홱 책했겠는가?

마교의 무력을 등에 업고 필승을 자신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패주의 고언(苦言)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무림을 관이나 군의 힘으로 억압하면 반드시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충언!

상관세가와 운룡장의 역도들 몇몇을 감당하지 못했던 자금성의 무력을 생각해보면 용무린의 충고는 상당한 부담감이었다.

‘어찌하면 좋을꼬?’

답답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황제의 시선이 총병관에게로 향했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황제의 의중을 읽은 총병관 양문광이 묵직한 목소리로 생각을 밝혔다.

“이 하늘 아래 폐하의 신민 아닌 자가 누가 있사오리까? 이미 황상의 어지를 받들어 무림왕이 직접 움직이고 있는 와중입니다.”

“그렇지!”

추임새를 넣듯 황제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총병관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껏 실패를 모르던 무림왕이옵니다. 폐하의 손과 발이라 할 수 있는 무림왕이 직접 전선으로 향하였사오니 조금만 더 지켜보소서. 군을 움직일지 아닌지는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사옵니다, 폐하.”

바로 그 말을 기다렸다.

“참으로 옳은 말이로다.”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황명이 떨어졌다.

“총병관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 만에 하나 패주가 마교의 사특한 무리들에게 패퇴라도 한다면 그 즉시 나아가 마교를 정벌하라!”

“충!”

총병관 양문광이 어명을 받아 고개를 조아릴 때였다.

대전 문을 담당하던 수문위사가 급박한 어조로 안을 향해 외쳤다.

“저, 적색 봉화가 떴습니다-아!”

어찌나 당황했는지 황실규범에도 맞지 않는 어법으로 급보를 알려왔다.

“소오태산에 적색봉화입니다-아.”

대전에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수문위사의 어법을 탓하지 않았다. 그만큼 놀라운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오태산의 적색봉화!

그것은 곧 북원의 무리가 대대적인 침공을 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

감숙의 전장이 북원의 침공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갈 무렵, 사천성의 전투는 마무리가 되었다.

분노한 용무린이 풍뢰와 소검비연을 동시에 날린 후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권마종과 도마종은 물론이고 축융마궁의 궁주와 혈마궁의 궁주를 비롯한 수뇌부들이 한꺼번에 죽어버린 통에 마교의 마인들이 오합지졸로 변해 버린 것이다.

불과 한 시진.

그 짧은 시간에 마교의 마인 이천오백여 명과 한 몫 잡고자 나섰던 흑도의 무리 이천여 명은 거의 대부분 토벌을 당해야만 했다.

살아서 남으로 도주에 성공한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초인의 개입 앞에 머릿수는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투도 없었다.

대승을 거둔 무림맹 연합은 추격을 멈추고 부상자 치료와 주변정리에 힘을 쏟았다.

무림맹의 의천단과 대정단 그리고 검룡당의 무인들은 마교의 북진으로 인해 주인이 바뀐 중소문파들을 다시 수복해 나갔다.

그 사이 용무린은 계속해서 슬픔에 잠겨 있었다.

백리소옥이 아미파의 법도에 따라 여러 사저 사매들과 함께 다비식을 치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화르륵. 화르르르르륵.

장작더미의 불꽃이 덩치를 키워감에 따라 아미승들의 염불 소리 역시 높아져 갔지만 용무린에게는 이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다.

‘그냥 만금상단에 있을 것이지…….’

그 생각이 들자마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그대로 만금상단에 있을 일이지 도대체 왜 온 거야! 도대체 왜-에?!”

우르릉.

약산 중턱이 진저리를 쳤다.

홱.

용무린의 시선이 슬픔에 젖어 있는 아미파 여승들에게로 향했다. 혹여, 그들 중 누가 백리소옥을 이 싸움에 불러낸 것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백리소옥이 만금상단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임을…….

‘그래도 만금상단에 남아 있었다면 이렇듯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야.’

내가 가질 수는 없지만 남을 주기에는 아깝다?

아니, 그런 이기적인 욕심 때문은 아니다.

‘전생에서도 나만 바라보다가 죽었어.’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전생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보지도 못한 채 이렇듯 떠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용무린의 마음을 짓눌렀던 것이다.

마치 화풀이 대상을 찾는 것 같은 용무린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인지 곁에서 염불을 외던 아미 장로 보연사태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의 결정이었습니다, 부맹주.”

“……!”

“다 인연인 게지요……. 누구도 그 아이의 합류를 청하지 않았지만 아미파와의 깊은 인연이 그 아이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 뭐라고 할 것인가?

무의식중에 백리소옥의 죽음에 대한 원망을 돌릴 곳을 찾던 용무린은 홀로 속앓이해야 했다.

“어찌 돌아왔느냐는 내 질문에 영화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영화!

백리소옥의 법명을 그제야 처음 알게 된 용무린이었다.

-사랑은 온유하니 강요하지 않는 법, 굳이 내 욕심을 차리기 위해 그의 마음을 힘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백리소옥이란 여인에서 아미의 영화가 되었으니 부맹주께서도 이제는 그만 놓으십시오. 언제고 때가 되면 영화는 다시금 아미일보 금정으로 돌아와 찬란한 연꽃으로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의 뜻이야 물론 안다.

하지만 말의 뜻을 안다고 마음까지 그렇게 쉬이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고 아미일보 금정으로 돌아와 찬란한 연꽃으로 피어나게 될 것이라고?’

그때는 사랑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진정한 아미파의 여승이 될 것이라는 뜻!

용무린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 돼. 나는 이미 맹세했어.’

죽어가는 그녀를 품에 안고 외쳤다.

다시 이 땅에 돌아오면 죽는 날까지 그녀만을 뜨겁게 사랑해 주겠노라고!

‘그녀가 나를 원한다면, 그때도 그녀가 나를 원한다면 말이야…….’

홀연히 불쑥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녀가 나를 원치 않으면 어떻게 하지?’

혹여 다시 이 땅에 돌아오게 된다면 그때는 그녀만을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러니 진짜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때는 백리소옥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면 백리소옥이 두 번의 생을 살며 받아왔던 냉대를 그녀만을 사랑하겠노라 맹세한 자신이 한꺼번에 돌려받아야 하는 것일까?

‘빌어먹을!’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날 정도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을 맨주먹으로 때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연거푸 그녀가 받았을 좌절과 슬픔과 비련은 어떠했을 것인가?

‘아니지! 이것은 모두 그 신마인지 뭔지 하는 그 죽일 놈 탓이야.’

그놈이 중원정복을 한답시고 북진을 해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다.

벌떡.

용무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진실은 바로 그거야!”

드디어 적정한 화풀이 대상을 찾았다.

“그놈이 불회곡을 나서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단 말이지.”

물론 신마가 진격을 하지 않았어도 백리소옥은 여전히 냉가슴만 앓아야 했겠지만 이미 화풀이 대상을 찾은 용무린은 그 사실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때였다.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신마의 행방이 전해져 왔다.

“무, 무림맹 3로가 괴멸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안휘성에 신마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잘 걸렸다!

“기다려라, 신마! 내가 간다아-앗!”

스파아아-앙.

용무린은 그 즉시 안휘성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아미타불!”

용무린의 뒷모습을 심유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아미장로 보연사태가 나직이 불호성을 외웠다. 어쩐지 다음 생으로 이어질 끈질긴 인연을 확인한 듯해서였다.

***

뜻밖의 소식에 자금성의 대전에 큰 혼란이 일었다.

적색봉화에 이어 전서를 통해 급보가 연이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마교의 북진으로 명 제국의 남부가 내란에 가까운 전투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오이라트 4부족 연맹을 이끄는 에센 타이시 대칸이 도베르트와 중가르 두 부족을 몽땅 감숙의 전장에 투입했다는 급보!

“조로스 칸이 적의 수괴라고 합니다.”

“도베르트 부족 태생의 아비와 중가르 부족 태생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지금 짓쳐드는 두 부족이 조로스 칸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수가 무려 이십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놈들의 파상공세에 하루가 다르게 전선이 뒤로 밀린다는 전언입니다.”

승전보는 하나도 없었다.

싸우는 족족 밀리고 있으니 어서 빨리 원군을 보내 달라는 소리가 주를 이뤘다.

“지금 당장 전군동원령을 내려라! 감히 이 땅을 침탈한 북원의 무리를 깡그리 쓸어버리도록 하라!”

무림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결단력이다.

황제는 즉각 양문광에게 전시총사령관의 지위를 제수했고 유격장군 양경홍을 비롯한 오군도독부와 양가장의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히 북원의 무리가 이 땅을 침범했다. 황제폐하께서 전시총동원령을 내리셨으니 각 성의 정병들은 오군도독부의 지휘에 따라 이동하라!”

총병관 양문광의 지휘에 따라 각 성의 주둔군이 최소한의 병력만 남긴 채 감숙의 전장으로 병력을 파견했다.

그 수가 무려 삼십여 만 명이나 된다.

그러니 장강 이남의 치안상태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때다 싶은 흑도들이 마교의 휘하에 들어 무림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시시각각 몰려들었다.

“놈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일거에 쓸려 나가게 된다!”

“우리도 뭉치자.”

“작게는 우리의 생존과 크게는 정파 무림의 안녕을 위해 우리도 뭉쳐야만 한다!”

어떻게 하든 전투에서 빠져 힘을 보존해 후일에 번성할 얄팍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소문파들까지 전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무림맹과의 연락을 통해 적극적으로 최대한의 고수들을 파견했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장강이남 지역을 향해 속속 모여들었다.

***

용무린의 개입으로 인해 마교의 1로가 괴멸했듯 전장에 직접 뛰어든 신마의 무위 때문에 무림맹 연합의 3로 역시 박살이 나 버렸다.

선전포고고 뭣이고 다 필요 없었다.

휘슷.

“크흐흐. 본좌의 먹잇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구나!”

무림맹 3로의 무인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남궁세가주와 팽가주 그리고 황보세가주를 발견한 신마가 지체 없이 떨어져 내렸다.

뭉클뭉클. 콰르르르.

후광처럼 함께 뿜어져 나오는 불사마력의 광휘!

신마와 시선을 한 번 마주친 세 사람은 그 끔찍한 기세에 주저 없이 합공을 택했다.

“이놈!”

“단숨에 목을 베어주마!”

“차아앗!”

남궁관과 팽가주와 황보세가주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저마다 갈고 닦은 절기를 펼쳐내었다.

“무! 적! 제! 와-앙!”

“대! 호! 단! 천!”

“천! 왕! 붕! 며-얼!”

그 이름도 찬란한 절기들이 신마를 향해 집중되었다.

버언쩍. 촤아아악!

제왕검형은 눈부신 빛과 함께 삼 장 어림이나 구체화된 엄청난 크기의 강기를 뽑아 신마의 목을 노렸고,

쿠르르르릉.

대호의 울부짖음 소리와 함께 뻗어나간 오호단문도 최후의 초식은 신마의 심장을, 그리고 천왕신권은 단전을 향해 뻗어나갔다.

“크흐흐. 그래, 이 정도는 되어 주어야지!”

한 사람에게 집중되기에는 끔찍한 수준의 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 한 번 놀아볼까?”

불사마력을 한 움큼 뽑아내 가볍게 제왕검형의 끝을 때려냈다. 동시에 몸을 휘돌려 단전을 향해 밀려드는 천왕신권의 중심을 향해 파황퇴법을 날렸다.

휘리릭.

다시 한 번 허공에서 몸을 뒤틀어낸 후 팽가주가 펼친 오호단문도법을 향해 불사마력을 확 뿌렸다.

콰르릉. 콰릉. 콰르르릉.

거의 동시에 세 번의 파공음이 터졌다.

“크어헉!”

남궁관이 비명을 쏟으며 뒤로 훌훌 날렸다.

삼 장이나 되던 제왕검형의 검강이 주먹질 한 번에 깨어지더니 창궁검이 깨어질 듯 크게 뒤틀렸던 것이다.

와드득.

“우와악!”

작정하고 뿌린 천왕신권의 권강이 깨진 것으로도 모자라 밀려든 파황퇴법이 황보세가주의 주먹을 짓이겼다. 그 서슬에 무쇠보다 단단하던 주먹 뼈가 전부 두 조각으로 나뉘어 버렸다.

파카아-앙!

“크억! 쿠울럭!”

봄눈 녹듯 녹아 없어진 대호단천의 초식을 뚫고 들어온 불사마력에 하마터면 대대로 내려온 오호단문도까지 깨어질 뻔한 팽가주가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렸다.

“크하하하! 그 정도가 잔재주의 모든 것이라면 네놈들은 지금 이대로 죽을 것이다-아-앗!”

살기 가득한 눈을 번들거리던 신마가 작정하고 불사마력을 끌어 모았다.

화르륵. 버언쩍. 쿠드드드드드…….

신마의 등 뒤로 칠흑의 어둠이 떠올랐다.

더불어 번져 오르는 보랏빛 광채라니!

“가라-!”

투웅. 투투-웅.

검보랏빛 불사마력 덩어리가 세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우웃.”

“차앗!”

“위, 위험!”

타닷. 휘스스슷. 쐐애액.

세 사람이 불에 덴 듯 놀라 신법을 펼쳤지만 놀랍게도 불사마력 덩어리는 의지라도 지니고 있는 양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쫓아왔다.

속도라도 좀 느린가?

씨이융. 씨융. 씨이이이융.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세 가주는 이대로 피하기만 하다가는 반드시 등이 꿰뚫릴 것임을 직감하고 다시 공격으로 전환했다.

“으아아압!”

“죽어라-!”

“하아아! 천왕대폭며-얼!”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더해 마지막 절기를 펼쳤다.

하지만,

쿠와아앙. 콰아아앙. 쿠콰콰쾅.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한 폭음과 함께 세 가문을 대표하는 가주들은 사이좋게 불사마력에 휩싸였다.

파카-앙.

제왕검형의 검강은 물론이고 이번에는 창궁검까지 박살나 흩어졌다.

씨이웅. 퍼억.

뒤이어 파고든 불사마력에 심장 어림이 뻥 뚫렸다. 완전히 관통했는지 구멍 난 심장 너머 우수수 쓰러져가는 남궁세가 무인들이 보였다.

씨이유우우-웅. 콰아앙.

강인하기로 이름 높은 오호단문도가 불사마력에 뒤틀리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크아아악!”

그 서슬에 팽가주의 오른팔과 상반신의 절반이 지워진 것처럼 깨끗이 없어졌다.

그러고도 어찌 살 수 있으랴?

처절한 비명 한 번을 끝으로 팽가주 역시 고깃덩어리가 되어 거칠게 바닥을 구를 뿐이었다.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절명한 것이다.

씨이웅. 콰아아앙!

마지막 불사마력은 아예 황보세가주를 집어 삼켰다.

하나 남은 왼팔이 한 순간에 핏물로 화하는가 싶더니 이내 상반신으로 번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황보세가주의 머리까지 통째 지워졌다.

파아아아-!

거칠게 흩뿌려지는 핏줄기!

“크하하하! 죽어라-아!”

쏟아져 내리는 혈우에 흠뻑 젖은 신마가 광소를 터뜨렸다. 남궁세가와 팽가 그리고 황보세가의 수뇌부들을 향해 불사마력을 뿜었다.

콰아앙. 쿠콰콰콰-앙!

“크아악!”

“커헉!”

그 누구도 신마의 일수를 견디지 못했다.

풍운단주 남궁헌은 물론이고 오행단주와 경천단주 그리고 무림맹의 철권당주마저 신마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크하하하! 쓸어버려라! 무림은 우리 마교의 것이다!”

“우와아아!”

“죽여라!”

무차별 살상을 벌이는 신마에 뒤질세라 마교의 마인들과 흑도의 무리가 피에 취해 광기 어린 무공을 펼쳤다.

불과 한 시진.

살아서 북쪽으로 도망친 무림맹 연합 3로의 무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천성의 마교 1로가 그러했듯 수뇌부를 한꺼번에 잃은 상태라 완전히 오합지졸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

그 즈음 무림맹주 비천검제 풍연호는 광서성과 광동성 경계에 이르러 있었다.

‘드디어 십만대산 앞에 이르렀군.’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불과 일천 명의 무인들로 이뤄진 결사대를 이끌고 이렇듯 마교의 본산을 치기 위해 올 수 있다니!

‘성공하든 하지 못하든 오늘을 기점으로 마교의 거침없는 진격은 멈춰질 것이다.’

불회곡이 큰 타격을 입음으로 인해 더 이상 전선을 확장했다가는 또 뒤통수를 맞을 염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이니 멈출 수밖에 없다.

‘부맹주. 나는 그대만 믿소이다.’

칠십 년 전 신마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절대검신의 환생!

역천자를 막기 위해 다시 돌아온 절대자의 힘이라면 능히 자신이 마련한 기회를 살려낼 수 있으리라.

‘신마만 막아주시오. 그러면 무림의 저력이 반드시 이곳을 향해 밀려올 것이외다.’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무림의 저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신마만 없애준다면 반드시 마교가 주춤하는 사이를 뚫고 내려와 이곳을 불태워 없애리라.

“저기다! 남서쪽 골짜기! 저곳이 바로 마교의 근원인 불회곡이다!”

휘리리릭. 스파아앙.

불회곡을 향한 비천검제 풍연호의 신법이 갈수록 빨라졌다.

그 뒤를 따라 풍연호가 비밀리에 길러온 불사수호대 일천 명이 파도처럼 밀려갔다.

***

불회곡 외곽.

북쪽의 상황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온갖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아우, 졸려라.”

“푸흐흐. 이 지겨운 짓이 싫어서라도 신마대전에 참여할 것을 그랬나 싶어.”

경계를 서던 외원 소속 마인 하나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자 함께 조를 이루고 있던 마인도 나른해 못 참겠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다들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그러게 말이야. 지금쯤 신나게 정파 놈들 멱을 따고 있을 텐데……. 우리만 이게 뭐야?”

내세울 만큼의 무공이 없어서 죽을까봐 일부러 어떻게든 전투에서 빠진 주제에 신세한탄만 할 때였다.

“내가 대신 놀아주지.”

놈들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벌써 교대 시간이 되었나?”

아무런 의심이나 불안함도 없이 놈들이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가, 경계를 서던 놈들이 놀라지도 않고 목소리의 주인을 동료로 아는 이유가 뭘까?

“교대는 무슨, 너희 죽이러 온 사람이야.”

스각. 서걱.

불쑥 나타난 사내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한 채 두 명의 마인의 목이 떠올랐다.

훅.

진하게 퍼지는 피 냄새.

삽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살기였지만 그 즉시 주변의 새소리와 풀벌레소리가 멈춰졌다.

“이런 놈들만 계속된다면 좋으련만…….”

무림맹주 비천검제 풍연호가 소박한 희망을 품는 사이 적막에 휩싸이는 공간이 점차 확산되었다. 불회곡 주변으로 번졌다.

경계들이 계속해서 제거되고 있다는 뜻!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누구냐! 커헉!”

“저, 적이다. 크아악!”

불회곡 가장 깊은 곳, 수백여 채의 전각이 시작되는 곳 앞에서 드디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들켰다.’

비천검제 풍연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비명이 터지는 시기가 예상보다 조금 더 빨랐던 것이다.

삐이익! 삐익! 땡! 땡! 땡! 땡! 땡!

즉각 반응이 일었다.

요란한 호각 소리와 함께 경종 소리가 불회곡 전체로 번져 나갔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호심결의 내공을 잔뜩 끌어 올린 비천검제 풍연호가 고함을 질렀다.

“계획대로 간다! 쳐라-아!”

우르릉!

풍연호의 사자후가 어둠속에 잠기던 불회곡에 다시 빛을 불러왔다. 마교 전역에 횃불이 올랐다. 잠자리에 들었던 마인들을 허겁지겁 뛰어나오게 만들었다.

어수선한 그 틈에 불사수호대의 무인들이 덮쳤다.

“이제야말로 대산을 무너뜨리자!”

“가자! 정파무림의 힘을 보여주자!”

“이야아아!”

“하아압!”

야간 기습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쉬리릭. 서걱. 쌔애애액. 카카캉. 스각.

“커헉!”

“크아악!”

적아 구분이 힘든 어둠을 틈타 퍼부어진 공격에 마인들이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

내원 중앙의 대전.

“뭐, 뭐라? 정파 나부랭이들이 기습을 해 와?”

대전에 홀로 앉아 북진하는 교도들의 지원에 고심하고 있던 음양자가 소스라치게 놀라 되물었다.

“그러합니다, 음양자시여.”

“대체 어떻게……. 불회곡을 둘러싸고 있는 운무대진과 환영미로진이 아직 건재한데 무슨 수로 그 진법을 뚫고 들어온 것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두르는 음양자에게 수하가 울분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정면이었습니다, 음양자시여.”

“정면?”

“그렇습니다. 놈들이 쳐들어온 곳은 진법이 펼쳐지지 않은 정면이었습니다.”

“……!”

어찌나 어이가 없었던지 음양자는 잠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어야 했다. 정면을 통해 들어왔다면 경계를 서던 놈들이 경계에 실패를 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육시랄 놈들이 나태했구나!’

신마가 거보를 내딛고 주변이 한가하니 방심을 했으리라.

그 결과가 바로 이렇게 나타났다.

세상에, 정파 무림의 대 마교 본산 침공이라니!

단 한 번도 이런 괴상망측한 상황은 염두에 두어 본 적이 없었다.

“상황이 급합니다, 음양자시여.”

수하의 채근에 비로소 음양자의 정신이 되돌아왔다.

아득!

“지금 당장 암흑사제들을 불러라. 내 친히 놈들을 도륙할 것이다.”

“충!”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음양자가 대전 밖을 향해 신법을 전개했다.

***

화르륵. 화르르르륵.

마교 곳곳에 화마가 치솟았다.

기습을 해온 정파 무림인들이 마교 본산 이곳저곳에 불을 놓아 버린 것이다.

“하아앗!”

스각.

성명절기인 비천팔황검법으로 마인의 목 하나를 허공에 날려 버린 비천검제 풍연호의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바로 이거야! 바로 이거라고!’

얼마나 이런 순간을 꿈꿔왔던가?

천기자와 혜월에게서 역천자에 대한 설명을 듣고 후일을 대비할 때부터 생각해 왔던 일이었다.

‘왜 우리 정파인들은 마교의 재림을 두려워만 하고 있을까? 어째서 두 번 다시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교훈을 내리지 못했는가?’

항상 마교가 진격을 해 빈집을 털리거나 뒤통수를 맞을 걱정만 해왔다.

‘그 모든 게 이놈들 역시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 거야.’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중원을 노린다면 우리는 역으로 너희 빈집을 털어주마!

그러니 두 번 다시 중원을 노리고 기어 나오지 마라, 나오면 너희 역시 이렇게 당할 것이다.

풍연호는 정말이지 그 점을 마교에 가르치고 싶었다.

너희 역시 치명적인 일격을 당할 수 있으니 앞으로는 중원을 노리고 몰려나오지 말라는 적절한 교훈을 내리고 싶었던 거다.

차차창. 카캉. 스각.

“크아악!”

쐐애액. 차차창. 푸욱.

“커헉!”

무려 일만 명에 가까운 마인들이 빠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불회곡 내부에는 아직도 엄청난 수의 마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서 그렇게 튀어 나오는 것인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나와 대항했다.

‘그나마 고수급들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로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마인들이 몽땅 중원정벌에 나선 탓에 불사수호대 일천 명으로도 이렇듯 파죽지세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 불태운 전각이 어림잡아도 오십여 채에 쓰러뜨린 마교도의 수가 일천오백여 명에 달한다.

이 정도면 대승이다.

‘좋아. 이제 그만 빠져 나간다.’

마음만 같아서는 이대로 끝까지 몰아쳐 마교의 본산을 아예 없애버리고도 싶다.

하지만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안다.

방심의 허를 찌른 불의의 기습에 이만큼이라도 전공을 올린 것이지 놈들이 태세를 정비해 일제히 반격에 나선다면 모두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하리라.

달을 보며 시간을 가늠하던 비천검제 풍연호가 벼락처럼 고함을 질렀다.

“지금이다-아! 모두 빠져나가-앗!”

회심의 일격을 먹여 주었으니 신마를 비롯한 마교 수뇌부들이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부맹주가 놈들이 혼란에 빠져 있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주길 바랄밖에…….’

이곳에 놈들의 가족이 있다.

가족이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놈들도 경동할 수밖에 없을 터, 용무린 부맹주가 그 기회를 살려 허겁지겁 퇴각하는 놈들을 친다면?

‘신마는 어떨지 몰라도 나머지 놈들이야 괴멸에 가깝게 쓸어버릴 수 있을 터!’

이차 신마대전 역시 정파 무림의 승리로 끝내게 되리라.

‘이곳을 벗어나도 할 일이 많아.’

수많은 중소문파를 멸문으로 몰아간 마도 칠문의 빈집을 차례차례 털어 줄 생각이었다.

“으아아! 이 찢어 죽일 정파 놈들아!”

“비겁한 놈들! 차아앗!”

“가증스러운 놈들아 죽어라-앗!”

입장이 뒤바뀌니 마교의 마인들이 풍연호를 향해 비겁하다느니 가증스럽다느니 하는 헛소리들을 내뱉으며 공격을 해왔다.

‘누가 할 소릴!’

“흥!”

비천검제 풍연호의 검이 경쾌한 호선을 그려냈다.

피쉬이이잇. 스각. 서걱.

“크아악!”

“커헉!”

검과 검이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짓쳐들던 마인 셋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의 성명 절기인 비천팔황검법의 회풍단혼이라는 초식이었다.

“푸흐흐. 잊지 말도록. 중원을 노린다면 너희 역시 이런 꼴을 당하는 것임을…….”

마지막 교훈을 내려줌과 동시에 신법을 전개하려던 풍연호의 얼굴이 확 바뀌었다.

콰아아아-웅!

솜털이 송두리째 곤두서는 파공성과 함께 섬뜩한 무엇인가가 심장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우웃!”

휘리릭. 스스슷.

한 줄기 바람처럼 흩어진 풍연호의 신형이 뒤를 향해 쭉 빠지더니 다시 뭉쳤다. 천기자와 혜월이 함께 만들어 낸 절기 풍연보였다.

하지만 모두 피해낼 수 없었다.

심장을 노리고 짓쳐들던 그 무엇인가가 바람이 된 풍연호를 따라잡았던 것이다.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 풍연호는 결국 비천팔황검법을 다시 펼쳐내야만 했다.

“하아아압!”

패애애액. 쉬가가가각.

심장으로 밀려드는 기운을 놓치지 않고 베어냈다.

쿠와아아앙.

“크흡!”

쿵쿵쿵쿵쿵. 콰드드득.

나직한 비명과 함께 비천검제 풍연호는 다섯 걸음이나 뒤로 밀리고도 모자라 바닥에 밭고랑 같은 긴 흔적을 남겨야만 했다.

스스슷.

그 앞에 내려앉은 검은 그림자들!

아득.

선두에 선 음양자가 비천검제 풍연호를 향해 이를 갈며 외쳤다.

“쥐새끼! 반드시 죽여주마!”

쿵쾅쿵쾅

위기감에 풍연호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

비슷한 시간 용무린은 전력을 다해 중경을 거쳐 호북성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다려라, 신마. 반드시 네놈을 끝장내주마.’

마교의 교주인 그놈이 절대검신과 더불어 천기자나 혜월이 그토록 우려하던 역천자인지는 이제 상관이 없다.

전생에 나를 바라보다 죽은 것 한 번, 현생에 내 품에 안겨 숨을 거둔 것 한 번…….

두 번 연속 백리소옥이 내 품에 안겨 죽은 이유가 바로 마교에 있으니 우두머리인 신마가 그 빚을 오롯이 갚아줘야 하는 거다.

‘그래도 지나치는 길이니 집에 잠시 들르자.’

혹시라도 놈이 무한을 향해 오고 있다고 하면 무턱대로 호북성을 가로질러서는 곤란했다. 한 번 들러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놈이 아직도 안휘성 쪽에 있기는 한 것인지 알아봐야만 했다.

용무린은 효감현을 단숨에 휘돌아 저 멀리 무한을 스쳐 지나는 수로가 보일 즈음에야 비로소 속도를 줄였다.

씨익.

용무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한 눈에 보아도 이, 삼만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군사들이 무한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폐하도 참……’

구진기 따위 하찮은 놈에게 놀라 두 번 다시 방심하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던 찰나 마교의 발호를 알게 된 황제가 먼저 배려해 준 결과였다.

저 정도라면 마교 아니라 마교 할아비라고 해도 무한 땅을 밟지 못한다.

‘치하라도 해 두어야겠군.’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병영에 들어섰다.

황룡패로 신분 증명을 하니 다시금 요란한 광경이 펼쳐졌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낯간지러운 천세 삼창을 했다.

“되었다.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음이니 지금부터는 간단하게 군례로 대신한다.”

“충!”

그렇게 천세삼창과 용무린의 명이 오고가는 찰나 진중에서 중군도독부의 좌, 우 도독 그리고 예하 제장들이 튀어 나왔다.

“황룡패주를 뵈오이다!”

“황룡패주를…….”

잔잔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받은 후 용무린은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황제폐하의 어명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 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또 다르다. 오늘 이렇게 보니 여러 제장들의 노고를 알겠다. 약속한다. 너희 모두를 내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말 자체가 미래의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저 감읍할 뿐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용무린은 군영 중앙의 가장 큰 군막으로 들었다.

확실히 총병관의 심복인 모양인지 들자마자 차 따위는 생략한 채 바로 보고가 이어졌다.

무한을 아예 에워싸듯 위지휘사사 열 곳이 빙 둘러가며 배치가 되었고 무한 성내에 자리한 비룡문 주변에 천호소 다섯 개소가 배치되어 있다는 보고였다.

‘더불어 중군도독부의 정병 이만이 다시 둘러싸고 있다고 했나?’

그야말로 든든했다.

마교의 진격이고 뭐고 자금성을 제외하면 천하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이곳 무한인 것이다.

게다가 소림과 무당파 그리고 개방의 정예들까지 사흘 전 도착해 지금 비룡문에 함께 있다고 한다.

‘다행이네.’

불사활생신단으로 인해 용대명을 비롯한 가문의 중진들이 모두 출관을 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소림과 무당파 그리고 개방의 정예와 무림맹의 고수들까지 함께하고 있다고 하니 염려할 필요가 없는 거다.

‘그래도 가서 인사라도 하고 갈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좌 도독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뭐, 뭐라고? 북원의 대대적인 침공?”

용무린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았을 텐데 삼십만 명이나 되는 북원의 대대적인 침공은 그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혹여, 패주께서 진중에 들르게 된다면 전하라는 총병관 대인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좌도독이 한 장의 전서를 용무린에게 내밀었다. 용무린은 잔뜩 굳은 얼굴로 전서를 받아 읽어 내려갔다.

-관과 무림은 별개라 하셨지요?

북원은 제가 맡겠습니다. 하니 황룡패주께오선 저 사특한 마교의 무리들이 더는 대역무도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십시오.

패주만 믿고 저 역시 저와 제 가문의 모든 역량을 걸어 북원의 무리들을 막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숙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감숙으로 파견할 삼십만 명이나 되는 증원군을 뽑으면서도 무한 주변의 병력은 손도 대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사특한 마교가 역심을 품지 못하도록 막아 달라고 할 뿐이다.

거기에 더해 황제도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마음이 가지 않겠는가?

‘하아. 나로 하여금 어서 빨리 마교를 정리한 후 돕도록 만드는구나.’

결정했다. 관과 무림이 별개인 것은 이제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최대한 빨리 마교를 정리한 후 북원까지 치워버리리라.

“안휘성의 정보도 들어오는가?”

“그렇사옵니다, 패주.”

우 도독이 대답과 함께 수십여 장이나 되는 보고서들을 내밀었다. 하나 같이 안휘성 인근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군정보망의 보고서였다.

“크흠…….”

용무린의 입에서 우려 가득한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무림맹 3로의 괴멸!

그 놀라운 소식 앞에 탄식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남궁세가주 사망, 팽가주 사망, 황보세가주 사망…….’

사망자를 알리는 소식이 끝도 없었다.

보고서가 확실하다면 오대세가의 주축이던 남궁세가와 하북팽가 그리고 황보세가는 거의 전멸을 당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림맹의 풍운단과 오행단, 경천당과 철권당의 무인 일천여 명도 거의 괴멸되어 목숨을 부지한 채 후퇴를 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마교의 손에서 가문과 식솔들을 보호하겠다고 한데 뭉쳐 합류한 중소문파 고수들의 인명손실은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실로 크나큰 패배였다.

용무린의 합류로 사천 인근에서 거둔 대승이 완벽하게 상쇄될 정도인 거다.

‘생존한 무인들이 이곳 무한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고?’

다행인 사실은 마교가 지금까지와 같이 느긋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도주하는 무림맹 연합의 무인들을 어떻게든 뒤쫓아 죽이려 하는 대신 안휘성 일대에 자리를 잡고 세력을 확산할 심산으로 보였다.

‘문제는 신마 그놈이네.’

놈이 계속해서 안휘성의 마교 3로와 함께 행동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과 같이 홀로 움직여 힘이 모자란 곳을 도울 것인지가 관건인 것이다.

‘놈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선도현에 들러야만 하려나?’

소림과 무당파와 개방이 무림맹의 전력과 함께 그곳에 뭉쳐 있다고 했으니 그곳을 찾아가보면 놈들의 상세한 움직임을 알 수 있으리라.

“이만 가보겠다.”

일어서는 용무린을 따라 좌, 우 도독과 제장들이 우르르 따라 일어났다.

용무린은 좌, 우 도독을 향해 내심을 밝혔다.

“총병관에게 전해라.”

“하명하소서, 패주.”

“하명하소서!”

단단한 용무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대한 빨리 갈 것이라 전해라. 힘들어도 버티고 있으면 내가 반드시 찾아가 도울 것이라고 말이야.”

“명!”

동시에 고개를 숙여 보였던 좌, 우 도독이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때는…… 저희도 함께 데려가 주시는 것입니까?”

“응?”

무슨 소린가 하여 되돌아보니 좌, 우 도독이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천상 군인, 마교로부터 양민들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역시 전장에 나아가 싸워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저희도 함께 데려가 주소서 패주.”

“오직 그것만 바라오이다.”

씨이익.

용무린의 입가에 보기 좋은 미소가 걸렸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이다! 함께 가자! 칸이라는 놈 모가지 날아가는 구경을 시켜주마!”

“와하하하! 감사하오이다, 패주.”

“하하하!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패주.”

좌, 우 도독과 예하 제장들의 군례를 받으며 진중을 나선 용무린은 곧장 신법을 펼쳤다.

***

쿵쿵쿵쿵쿵.

비천검제 풍연호의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포위라도 하듯 둘러 선 검은 일색의 괴인들에게서 풍기는 기세도 흉험했지만 자신 앞에 당당히 선 사내는 아무리 봐도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누구지?’

무림맹의 정보망에 의하면 마교의 주축인 오궁이원이전의 수장을 비롯한 중추 세력은 이미 3로를 따라 북상해 자리를 비웠다고 알고 있었다.

한데 저런 정도의 고수가 아직도 남아 있다니!

대체 마교의 저력은 얼마만큼 크고 깊은 것이란 말인가?

“크아아악!”

“커헉!”

“모두 계획대로 움직여…… 컥!”

“다음 집결지로 움, 커헉!”

그 순간에도 불사수호대의 무인들이 쓰러져가고 있었다.

물론 마교도들의 피해 역시 그 이상이었지만 더 이상 피해를 입었다가는 마도칠문의 빈집을 털지 못하게 되니 어떻게 하든 빨리 활로를 열어줘야만 했다.

‘이 상황에 그 일을 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비천검제 풍연호가 호심결을 뭉텅 끌어내었다. 비천검에 남김없이 주입했다.

버언쩍. 치이이잉. 웅웅웅.

호심결을 가득히 받은 검이 빛을 발하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검강이었다.

하지만 여타 무인들처럼 외부로 무턱대고 뿜어내지 않았다. 용무린이 그러했던 것처럼 검에 단단히 붙여 강화시킨 정도였다.

과거 절대검신이 불사신공의 일부를 호심결로 바꾸어 혜월에게 건네 줬을 때 그와 같은 운용법 역시 함께 넘겨줬던 것이다.

반짝.

음양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너! 그걸 누구에게서 배웠지?”

모를 리가 없다. 음양자가 단박에 알아보았다.

한 차례 픽 하고 웃어 보인 비천검제 풍연호가 이죽거렸다.

“알아 맞춰봐-아-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공이 이뤄졌다.

스파아앙. 버언쩍. 촤아아아악!

성큼 내디딘 풍연보에 이은 회풍단혼의 초식이 펼쳐졌다.

빛 덩이를 고스란히 머금은 비천검제 풍연호의 검이 한 줄기 유려한 호선을 그리며 전면을 쓸었다.

휘슷. 휘슷. 파아아-!

동시에 암흑사제들이 움직였다.

겁도 없이 적수공권으로 풍연호의 검에 맞섰다.

하지만 누가 암흑사제들의 손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비웃을 수 있겠는가?

뭉클 뭉클 콰르르.

그들의 손에 어둠이 뭉쳐졌다. 심연과 같은 어두운 색의 손 그림자가 만들어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따앙. 파카카카캉.

적수공권임에도 불구하고 풍연호의 비천팔황검법을 막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아아아!”

강렬한 기합성과 함께 풍연호의 초식이 변화했다.

어째서 검법에 비천(飛天)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 나풀나풀 움직였다. 마치 대붕 자체가 된 듯 유려한 검의 나래 짓을 보여주었다.

스가아악. 촤아아악.

검로를 따라 암흑사제들이 뿜어낸 심연의 어둠이 쩍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굵은 핏줄기가 튀어 올랐다. 음양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 힘! 그 내공! 어떻게 네가 그 망할 놈의 내공을 가지고 있어?! 어떻게?”

놀랍게도 호심결의 내공을 알아본 것이었다.

대관절 음양자는 어떻게 호심결의 내공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최소한 전전대의 거마로구나…….’

칠십 년 전 벌어졌던 신마대전에서 절대검신의 무위를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호심결의 내공을 알아차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불사신공은 아니었지만 그 특색만큼은 분명히 비슷한 위력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피해라! 놈의 내공은 본교의 내공에 상극이다!”

음양자가 화들짝 놀라 외칠 때였다.

촤아아악. 스가가가각.

섬뜩한 파공음이 한 차례 흘러나온 후 암흑사제들의 팔과 다리가 후두둑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동시에 다섯 개의 목도 둥실 하늘로 떴다.

놀랍게도 풍연호가 암흑사제 다섯의 목숨을 동시에 취해버린 것이다.

쿨럭!

“큽!”

덩어리 피를 뱉어낸 풍연호의 입에서 짧은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암흑사제 다섯을 동시에 베어 내며 그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정명한 빛을 발하며 계속해서 비천팔황검법의 초식을 연거푸 펼쳤다.

촤아악. 휘스스슷. 파아아아-!

다시금 나래를 활짝 편 비천팔황검법이 나머지 다섯 암흑사제들의 목숨을 노릴 때였다.

휘슷.

“이야아아하!”

절대검신에게서 비롯된 상극의 내공임을 잘 알면서도 음양자가 풍연호를 향해 짓쳐들었다.

콰르르르르.

조금 전 풍연호를 뒤로 밀어 버린 그 암흑마기가 쏘아졌다. 단숨에 박살내어 주겠다는 듯 목과 심장과 단전을 동시에 노렸다.

반짝.

풍연호의 눈에 결연한 빛이 맺혔다.

‘시간 없다. 이 한 수에 모든 것을 건다.’

“이야아아-하!”

그야말로 모든 것을 검에 끌어 모았다.

버번쩌어억!

호심결을 가득히 받은 검이 서릿발과 같은 빛을 뿜어내었다. 물론 여전히 검에 단단히 휘감겨 있는 상태, 외부로 뿜어내는 강기보다 세 배는 더 강하다.

쿠와아아앙. 콰아앙. 쿠콰콰쾅.

“크아악!”

“커헉!”

고막이 터질 듯한 폭음과 함께 답답한 신음성을 흘리며 두 인영이 제각각 반대 방향을 향해 튕겨졌다.

무림맹주 비천검제 풍연호와 음양자였다.

놀랍게도 풍연호와 음양자가 동수를 이뤄낸 것이다.

휘리릭.

뒤로 훌훌 날리던 풍연호가 허공에서 몸을 뒤틀어내더니 망설임 없이 살수를 전개했다.

“비켜라-아!”

촤아아악. 스가각.

“크아악!”

“커흐…….”

그의 검이 스쳐 지날 때마다 마인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없던 길이 새로 생겼다. 활로였다.

“퇴각! 퇴각하라-아!”

“목적 달성이다!”

“빠져나가-아!”

풍연호가 뚫어 놓은 활로를 통해 불사수호대의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놈들을 잡아라!”

“절대로 빠져 나갈 수 없다!”

“죽여. 다 죽여버려-엇!”

기습을 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마교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뒤쫓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만큼의 성과를 거둬낼 수는 없었다.

“커흐…….”

풀썩.

나직한 비명과 함께 음양자가 한쪽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었다.

“음양자시여!”

“어서 보중하소서.”

다섯으로 줄어든 암흑사제들이 추격을 포기하고 음양자의 부상을 살폈던 것이다.

“……!”

부릅뜬 눈동자가 파르르 떨어 보이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할 뿐 음양자는 입을 열어 추격을 명하거나 사태 수습을 하지도 못했다.

격돌의 순간 파고든 호심결의 내공 때문이었다.

용무린이 직접 펼쳐낸 불사신기도 아니었지만 절대검신으로부터 전해진 호심결의 힘은 확실히 마교의 상위 마공에도 치명적이었다.

‘비, 빌어먹을…….’

어찌나 화가 치밀어 오르던지 음양자의 심장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떻게든 파고든 호심결부터 외부로 밀어내고 봐야 했다.

‘반드시 죽인다. 반드시…….’

버언쩍.

음양자의 눈에서 검은 빛의 광채가 튀었다.

***

마교 본산에서 벌어진 일은 정기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비응의 발목에 매어 불과 이틀을 넘기지 않고 안휘성의 신마에게까지 전해졌다.

급할 것 없다는 듯 수하들이 주변의 중소문파부터 착실히 접수한 직후였다.

이제는 슬슬 빈집이나 다름이 없는 남궁세가를 짓밟아 줄 차례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던 신마가 분노를 터뜨렸다.

“이런 시건방진 놈들이 정말!”

-신교에 정파 무인 침습.

전각 오십여 채가 불에 타 전소되었으며 교도 천팔백여 명이 사망하였음. 음양자께서 직접 나서 적의 수괴를 물리쳐 냈으나 부상이 심각함.

넋 놓고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세상에 신교 본산에 정파 무인 침습이라니!

마교 역사 이래 한 번도 없었던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관절 어떻게 했기에 그런…….”

마교는 결코 호락호락하지가 않은 곳이다.

많은 교도들이 오가는 정면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삼면은 대자연진세라고 할 수 있는 절진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하위 마인과 그 가족들만 해도 무려 오천여 명이 넘게 있기 때문이었다.

중하위 마인이라고 해도 무림에 나아가면 한 문파를 대표할 만한 무력을 갖춘 자들, 그 가족들 역시 한 가락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어찌 그런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단 말인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였다.

“놈들의 정체와 현 위치는?”

신마의 노성에 마교 3로의 책임자인 만독궁주가 더듬거리며 답했다.

“시, 신마시여. 아, 아직 연락이…….”

연락이 그것밖에 없다는데 더 뭐라 할 것인가?

‘이대로 있을 수가 없군.’

신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직접 가 봐야만 해!’

음양자의 무위는 오마종 개개인보다 훨씬 위다.

오마종 두 사람이 있어야 겨우 맞설 수 있고 셋은 되어야 평수를 이룰 정도였기에 자신이 흔쾌히 믿고 뒤를 맡겼던 것이다.

‘그런 음양자가 큰 부상을 입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정파 무림이 숨겨둔 그 회심의 한 수를 파악해내지 못한다면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내 손으로 직접 잡아 밝힌다.’

음양자가 깊은 부상을 입어 직접 전서를 적을 정도가 안 될 정도라면 누구를 보내봐야 똑같다. 아니, 다음에는 아예 본산 전체가 불에 타 없어질 수도 있는 거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전선의 고착화나 자신의 공백으로 인해 커질 피해까지 고스란히 감수하며 직접 움직이려는 것이었다.

‘네놈이 뭔가 수작을 부린 것이겠지?’

버언쩍!

서쪽으로 향한 신마의 눈에서 서슬파란 살기가 튀었다.

애꿎은 용무린에게 화살이 돌아간 셈이다.

‘즐기는 일 따위 이제는 끝이다.’

아껴 먹으려 했더니 감히 수작을 부려 신교 본산을 침범하고 가장 아끼는 음양자에게 중상을 입히다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신교에 침범한 쥐새끼를 잡아낸 후 바로 너를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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