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외롭지 않은 이별
꿈틀.
당가주 당현의 볼살이 거칠게 요동쳤다.
전면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비릿하고도 매캐한 내음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사갈분이다. 천독대가 전면을 막아라!”
“차아앗!”
“하아!”
당현의 외침에 천독대 일백여 고수가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사갈분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볍게 손을 흩뿌렸다.
피잇. 피시시싯.
그때마다 나직하며 섬뜩한 소리가 일었다.
“큭!”
“커헉!”
거침없이 담을 타 넘던 만독궁의 독마인들이 힘없이 픽픽 쓰러졌다.
“당가! 이런 시건방진 놈들이 어떻게 여길!”
만독궁주가 눈에 불을 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천에 있어야 할 당가의 고수들이 남궁세가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였다.
“궁금하면 지옥에 가 있거라. 곧 이유를 아는 놈이 찾아갈 것인즉!”
후우우우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힘이 만독궁주를 향해 쏟아졌다. 극성에 다다른 구환살이었다.
“이놈이 감힛! 차아아!”
감히 태연할 수 없었던 모양인지 만독궁주가 전력을 다해 만독장을 쳐냈다.
쿠와앙. 콰아아앙. 쿠콰콰콰-쾅.
당가주 당현이 쏘아낸 힘은 분명히 한 줄기였건만 놀랍게도 폭음은 아홉 번이나 연거푸 터졌다. 하나이자 아홉이고 아홉이자 하나인 구환살의 묘용 때문이었다.
“……!”
“큽!”
타닷. 타다닷.
당현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두 걸음만 물러났고 만독궁주는 짧은 신음과 함께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이런 빌어먹을!’
그 사실이 만독궁주의 자존심을 긁었다.
‘사천 촌구석 당가 따위의 무공에 나 만독궁주가 세 걸음이나 물러나다니!’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마교의 주력인 오궁의 주인이라면 정파무림의 세력 한 곳 정도는 가볍게 눌러줘야만 하는 법이다.
“이것도 한 번 받아봐라-앗!”
만독궁의 모든 것이랄 수 있는 만독대천공이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양손으로 모여들었다.
위이잉. 웅웅웅.
심상치 않은 공명음이 만독궁주의 주변으로 흘렀다.
“흡!”
“컥!”
놀랍게도 당가의 천독대 두 명이 만독궁주가 흘리는 기운에 접하자마자 중독 증상을 보였다. 독강에 내포된 독 기운 때문이었다.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피를 쏟아냈다.
‘전력을 다해 승부를 내려는 것이구나!’
한 번의 격돌로 끝나는 승부!
상대가 독강을 뿜어내는 만독궁주라면 당가주로서 내세울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절혼진을 편 채 뒤로 물러나라-앗!”
“충!”
타다닷. 스슷.
당가의 천독대원들이 일제히 사인 일조를 이뤘다.
십자 형태로 자리를 잡더니 방어와 공격을 유기적으로 돌아가며 퍼붓기 시작했다.
피잇. 패액.
선두의 일인이 공격을 퍼 부으면 좌우의 이인이 방어를 전담했고 음양이 회전하듯 유기적으로 돌아가며 후방의 일인이 전투에 가담하는 방식이었다.
“크아악!”
“커헉!”
숱한 비명소리를 남기며 천독대원들이 안전거리 뒤로 물러날 때였다.
“차아앗!”
쫘-악!
당가주 당현의 두 손바닥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당가의 힘이다!’
당가 내공심법의 모든 것이랄 수 있는 도반삼양귀원공의 힘이 당현의 두 손의 중심에 집중되었다.
후우웅. 웅. 웅. 웅. 웅. 웅.
당현의 주변에서 벌떼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욱. 화아악.
만독궁주의 숨결을 타고 쏟아져 나온 독강지기마저도 허무할 만큼 힘없이 뒤로 밀리는 순간.
아득.
“녹아버려-어-엇!”
자존심이 한층 더 심화된 만독궁주가 이를 갈며 지금껏 긁어모은 힘을 쏟아내었다.
화아아악.
내공의 힘도 힘이거니와 그 내공에 포함된 독의 지독함이 놀라웠다.
푸스슷. 푸스스슷.
도반삼양귀원공의 집중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방어막이 생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현의 옷이 누렇게 타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반짝!
그때까지 감겨져 있던 당현의 두 눈이 떠졌다.
화아악!
아직 초식이 완전히 펼쳐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당현을 태워 들어오던 만독대천공의 힘이 뒤로 밀렸다.
그 서슬에 텅 빈 공간이 생성됐다.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다는 듯 당현의 두 손이 부드럽게 전면을 향해 뻗었다.
투화아아-악!
작열하는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흰 색의 빛 한 덩어리가 튀어나갔다. 흰색 바탕에 검은 색의 무늬가 똬리를 감고 있는 형태였다.
바로 그때,
“만! 천! 화! 우!”
휘오우우우웅-! 파아아아-!
검은 줄무늬가 뒤섞인 빛 덩어리가 셀 수도 없을 만큼 가늘게 쪼개어 지기 시작했다.
피시잇. 피시시시시-싯!
우모침처럼 가느다랗게 압축되고 또 압축된 강기에 지금까지 쌓아온 독까지 섞어 낸 독강의 힘이 당가의 전설 만천화우가 되어 쏟아졌다.
이것이 바로 대성의 경지!
셀 수 없을 만큼의 강기로 이뤄진 침에 독까지 섞어 쏘아낼 수 있어야만 진정한 당가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비, 빌어먹을! 만천화우라니…….’
만독궁주의 눈에 다급함이 어렸다.
지난 칠십 년 동안 사장되어 버렸던 그 흉측한 무공이 왜 이곳에서 튀어 나온단 말인가?
“흐아아아!”
절규하듯 악을 쓰며 독강을 더 뽑아 올렸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피시시싯. 피시시-싯!
봄눈 녹듯 셀 수 없는 숫자로 쏟아진 만천화우의 소나기에 만천대독강의 힘이 갉아 없어졌다. 어이없을 만큼 쉽게 사라졌다.
그 사이를 파고든 강기의 침들이 작살처럼 파고들었다.
퍼억. 퍼퍼퍼퍼퍽.
만독궁주의 몸에 틀어박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만천화우의 강기가 박힐 때마다 춤을 추듯 만독궁주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졌다. 내가 진 거야.’
개인 간의 대결에서는 졌지만 그래도 아직 전투까지 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만독궁주는 전투에서만큼은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크흐흐. 멋졌다, 당가의 애송이!”
“……!”
내상 때문에 당현은 입을 열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만독궁주는 여전히 웃음을 터뜨리며 이죽거렸다.
“마지막에 이기는 것은 그래도 만독궁이다-아-앗!”
악을 쓰는 목소리와 함께 변화가 일었다.
티딕. 쩌적. 쩌저저적.
만독궁주의 얼굴에 실금이 그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이리저리 얽히며 전신으로 퍼지는 것이 아닌가?
‘뭐, 뭐지?’
천하의 당가주조차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궁금증을 풀어주겠다는 듯 만독궁주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고함을 질렀다.
“만독대혈폭!”
독으로 충만한 자신의 몸을 터뜨려 주변을 휩쓸어 버리는 그야말로 최후의 동귀어진 한 수!
틱. 티딕. 티디딕. 투화아아악!
만독궁주의 몸이 같은 양의 흑색화약이라도 되는 양 맹렬히 터져나갔다.
‘맙소사!’
당가주 당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만천화우를 펼쳐낸 직후라 만독궁주가 펼친 동귀어진의 초식을 막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내가 정상이었어도 저것은 못 막겠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 역시 놈과 똑같은 마음으로 동귀어진을 펼치는 것뿐!
“피, 피해-에!”
“뒤로 물러서-어!”
만독궁주가 펼치는 동귀어진 초식의 흉험함을 직감했다는 듯 당가 천독대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딜 가느냐?”
“나와 함께 가자-아!”
죽음을 각오한 만독궁 소속 마인들이 천독대의 발목을 잡았을 때였다.
버언쩍! 스파아-앗!
한 줄기 광채가 만독궁주의 몸 위에 어렸다.
“어?”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만독궁주의 모습을 끝으로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만독궁주의 몸이 슬쩍 어긋난 것이다.
스르륵.
머리끝부터 사타구니까지 정확히 양단된 만독궁주의 몸 한 쪽이 미끄러지듯 스르르 흘러 내렸다.
쩌어엉!
어긋나는 공간을 따라 주변의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허무로 되돌아갔다.
후우욱. 휘이이-이!
만독궁주가 작심하고 펼쳐낸 동귀어진의 초식조차 유리처럼 부서지는 공간을 따라 허무로 돌아갔고,
후우우욱. 휘이이이이-잉!
퍼억. 퍼퍼퍼퍼퍽!
만독궁주의 뒤편으로 쭉 늘어서 있던 만독궁 소속 마인 오십여 명 정도가 피안개로 변해 흩어져 버렸다.
실로 놀라운 광경!
‘대, 대체……?’
꿀꺽!
만천화우를 펼쳐냈던 당가주 당현마저도 마른침을 집어 삼킬 때였다.
한 줄기 바람과 함께 반가운 얼굴 하나가 당현 앞에 나타났다. 용무린이었다.
씨익.
“조금 늦었습니다!”
용무린이 당가주 당현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당현과 남궁세가를 비롯한 정파인들에게는 활불의 미소였고 만독궁과 백골문이나 번천문과 같은 마인들에게는 사신의 미소였다.
“부, 부맹주!”
격정 어린 당현의 말을 용무린이 중간에 툭 잘랐다.
“대화는 저것들 좀 먼저 치워버리고 하지요! 차아앗!”
휘슷.
말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용무린은 폭풍처럼 전면으로 쏘아졌다. 언제 뽑아들었는지 모를 풍뢰가 섬뜩한 빛을 발하며 허공에 유려한 선을 그렸다.
피쉿. 스가각. 쫘아악.
“크악!”
“커헉!”
도대체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용무린이 스쳐지나간 주변의 적들이 픽픽 쓰러졌다. 목과 심장 혹은 단전에서 피를 뿜으며 잘도 넘어갔다.
“천독대-에! 반전!”
“와아아!”
“하아아!”
그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천독대원들이 절혼진을 편 채 앞으로 달려들었다.
피잉. 쌔액. 피피핏.
셀 수도 없는 숫자의 암기들이 하늘을 날았고,
“크아악!”
“커헉!”
적들은 쓰러지기에 바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승편에 당문 일절로 알려진 삼양신장과 적련신장이 하늘을 뒤덮을 듯했다.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나아가라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여!”
“철혈의 의지를 도에 담아라 팽가여!”
“일 권에 생과 사가 갈리는 법! 일 권에 목숨을 걸어라! 그것이 바로 황보세가 권의 핵심이다.”
“으아아아!”
“차아앗!”
용무린의 등장과 천독대원들의 파괴력에 남궁세가와 팽가, 황보세가의 무인들 역시 마음껏 무공을 펼쳤다.
마교 내원 소속 고수들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마도 칠문의 하나였던 백골문과 번천문 역시 마찬가지,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렸다.
***
비슷한 시간 혈마종과 장마종은 음양자 앞에 도착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어찌해서 너희가 이곳에 왔느냐? 어째서?”
음양자의 목소리가 사뭇 높았다.
혈마종과 장마종의 부재로 마교 3로의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길 것임은 불을 보듯 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혈마종과 장마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마의 명령을 전달했다.
“혹여 음양자께 어떤 일이라도 더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신마의 의지입니다, 음양자시여.”
“놈들에게 한 발 뒤로 밀려도 좋으니 음양자를 지키는 일에 전념하라는 명령이셨습니다.”
“허어…….”
장탄식을 발하는 음양자의 표정이 묘했다.
그만큼 자신을 생각하는 신마의 깊은 마음 씀에 감격하기도 했고 혈마종과 장마종의 공백이 가져올 마교 3로의 괴멸이 우려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어쩌면 저 두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그래.’
만에 하나, 용무린이란 괴물이 안휘성으로 향했다면 혈마종과 장마종의 목숨 역시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일 수밖에 없으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에는 대회전이 벌어지겠군.’
음양자는 혈마종과 장마종을 불회곡으로 되돌린 신마의 의중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혈마종과 장마종이 만독궁주의 후예와 핵심고수들 그리고 내원의 고수들 중 핵심을 이루는 고수들까지 몽땅 거느리고 내려 왔기 때문이었다.
“신마께서는 지금 어디에 왕림해 계시느냐?”
음양자의 질문에 혈마종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만겁문 인근에서 정파 떨거지들을 쓸어버리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이었다.
그 즈음 신마는 만겁문 인근에 도착한 후 무참히 빈집을 털고 있는 비천검제 풍연호와 불사수호대원들을 향해 눈을 희번덕이고 있었다.
***
호남성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석문현.
불과 하루 거리에 그 유명한 장가계가 있기 때문에 덩달아 발전한 곳으로 이곳의 터줏대감은 마도 칠문에 속한 만겁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 될 것이다.
뉘엿뉘엿 태양이 넘어갈 무렵 밀어닥친 비천검제 풍연호와 불사수호대원들 때문이었다.
풍연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손속에 사정 둘 것 없다. 이곳의 모두는 마도 칠문에 속한 마인들, 마교의 진격 소식을 듣자마자 중소문파 일곱을 무참히 도륙하고 부녀자를 겁간했으며 모든 재산을 빼앗은 놈들이란 말이다.”
“하아압!”
“차앗!”
카아앙. 차차차창. 스각.
“커억!”
“크아악!”
얼마 남지 않았던 만겁문의 마인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자빠졌다. 재산 따위 강탈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듯 불사수호대원들은 만겁문을 부수고 태우는 일에만 모든 힘을 집중했다.
화르륵. 화르르륵.
덕분에 크고 작은 전각 스물다섯 개로 이뤄진 만겁문의 모든 건물에 불이 붙었다. 중요한 것이 들어 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활활 잘도 탔다.
신마가 도착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크흐흐흐. 쥐새끼 같은 놈들이 마도칠문의 뒤통수를 잘도 치고 있구나.”
깡그리 죽는다고 해 봤자 마교 전체로 볼 때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바로 마도칠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으로 인해 기분이 더럽다는 것이었다.
“불쾌한 놈들 같으니…….”
더더욱 불쾌한 것은 놈들이 뿜어내는 기운이었다.
땡중들의 불문 내공이나 도가의 내공 역시 기분이 나쁘지만 놈들의 내공도 무척이나 신경을 긁어댔다. 어쭙잖게 내 흉내를 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불사마력.
마교의 모든 것인 규천마력과 더불어 가장 큰 줄기인 불사신공을 놈들이 흉내 내고 있었다.
까득.
신마의 주먹이 쥐어지며 묘한 소리를 내었다.
“깡그리 쳐 죽여주마!”
휘슷.
더는 참아줄 수 없다는 듯 신마의 신형이 만겁문을 향해 폭사했다.
만겁문을 지키고 있던 마도인들 역시 한결같은 목소리로 무림맹의 기습을 욕하고 비난했다.
“이 비겁한 놈들아-아!”
“기필코 상응하는 갚음을 해 줄 테-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영락없는 선의의 피해자다.
당연히 불사수호대원들의 목소리가 뒤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악의 종자들아!”
“중원 진출을 한답시고 너희가 먼저 선공을 해놓은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너희들 손에 멸문지화를 입은 중소문파가 몇 곳인데 피해자 행세야?!”
“두 번 다시 중원을 향해 눈길을 돌리지 못하도록 깡그리 짓밟아주마.”
“쳐라-아!”
차차창. 채챙. 스각.
“커헉!”
따아앙. 타탕. 서거걱.
“크아악!”
악다구니와 함께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비천검제 풍연호는 잔뜩 굳은 얼굴로 검법을 펼쳤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태연을 가장하고는 있었지만 내상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상을 어느 정도라도 다스리고 움직여야 할까? 아니면 여세를 몰아 마도 칠문의 빈집을 완전히 깨어 버리고 뒤로 빠져야 할까?’
스스로를 위한다면 당연히 전자다.
지금 당장에라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전력을 다해 운공요상을 해 내상을 다스려야만 후유증을 줄이고 미래도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마도 칠문의 나머지 다섯 곳을 짓밟을 수 없어.’
이 기회에 놈들을 모두 짓밟아 놓지 않는다면 마도칠문은 언제고 또 차오를 고름이 된다.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는 한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인 것이다.
‘구유마문과 만겁문은 이제 빼야 해. 나와 불사수호대가 완전히 짓밟았기 때문이지.’
아녀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아니, 아녀자라 하더라도 무기를 쥐고 덤벼들면 거침없이 베어버렸다.
그 후 불을 놓아 깡그리 태웠다.
집문서며 토지 문서 그리고 보유하고 있어야만 할 각종 채권들까지 한꺼번에 날아갔으니 놈들이 고스란히 돌아온다고 해도 다시 일어나기란 요원하리라.
물론 그래도 나머지 다섯 곳의 힘은 막강했다.
굳이 견주자면 과거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던 오대세가와 비슷할 정도? 그렇기에 비천검제 풍연호가 이렇듯 큰 고민을 하는 것이다.
‘역시 여세를 몰아 놈들을 짓밟아 놓는 것이 무림의 미래를 위해서 더 좋겠지?’
마도칠문을 모두 짓밟은 후쯤 되면 내상의 후유증이 훨씬 더 심각해질 거다. 지금도 비릿한 피 내음이 계속해서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될 수도 있다.
‘까짓것, 감수하지 뭐.’
자신의 희생으로 무림이 평안해질 수만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기꺼이 감수할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오싹!
‘뭐지?’
비천검제 풍연호의 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흠칫 떨렸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았다. 머리칼이 송두리째 곤두섰다.
홱!
본능에 따라 몸을 돌렸다.
“……!”
풍연호의 눈이 서서히 커다래졌다.
보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추측할 수 없는 어두운 힘의 근원 자체를…….
“와, 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역천자가 자신 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후우웅. 휘우우우웅.
심연보다 더 깊은 어둠이 그 사내의 전신에 후광처럼 피어올라 있었는데 보랏빛이 한데 섞인 어둠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한 쌍의 날개처럼 보였다.
“크흐흐. 이런 시건방진 놈들!”
목소리조차 유부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으스스하다.
그 존재감이 어찌나 큰지 전투가 아예 멈춰졌다.
몇 남지 않은 만겁문도는 이제야 구원군이 도착했구나 싶어 감격한 얼굴로, 불사수호대는 추측할 수도 없을 만큼 강대한 마기에 질식한 얼굴로 굳었다.
스윽.
신마의 시선이 비천검제 풍연호에게 닿았다.
“네놈이로구나!”
왜곡된 형태였지만 한 눈에 풍연호의 내부에 웅크린 불사신기를 감지했다. 하긴,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와 맞닿아 있는 호심결을 신마라는 존재가 어찌 몰라보겠는가?
“호, 혹시…… 귀하가 신마?”
풍연호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신마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푸흐흐흐. 본좌를 알아본 대가로 통쾌한 죽음을 내려 주겠다.”
신마의 오른손이 번쩍 들렸다.
어둠 자체를 슬쩍 손에 휘감아두는 것처럼 흔들어 보인 후 이내 가볍게 확 뿌렸다.
“모두 피해-에!”
풍연호가 벼락처럼 고함을 질렀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신마의 손짓에 주변에 자욱이 내려앉은 어둠 자체가 한꺼번에 훅 뭉쳐지더니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후우욱.
그 가볍기 짝이 없는 동작에 작은 동산 크기의 어둠이 뭉쳐졌다. 불사마력으로 치환되어 어둠속에서도 빛을 내는 강기 덩어리가 되었다.
휘우우웅. 웅웅웅웅웅.
그저 그런 강기 덩어리가 아니었다.
도대체가 얼마만큼의 힘이 걸려 있는 것인지 대기가 진저리를 쳤다. 트드드드. 하고 주변의 땅까지 몸살을 앓았으며 숨쉬기가 곤란했다.
‘내가 이럴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제아무리 호심결을 익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 무식한 거력에 대항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대로 있으면 허무하게 죽을 뿐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 역천자에게 회심의 일격을 먹이기 위해 적진 깊숙이 들어오긴 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갈 수는 없는 거다.
“이야아아-하!”
비천검제 풍연호가 악을 썼다.
내상이 커지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단전을 활짝 열었다.
호심결의 내공을 뭉텅 꺼내 검에 밀어 넣은 후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비! 천! 무! 량!”
자신의 성명절기인 비천팔황검법!
혜월과 천기자가 힘을 합해 만들어낸 검법의 마지막 초식이 호심결의 내공을 받아 힘을 냈다.
버언쩍. 파아아.
눈 속에 피어난 난초처럼 아니 어둠을 뚫고 빛을 발하는 등불처럼 풍연호의 검이 시린 빛을 흘리며 어둠의 중심을 향해 밀려갔다.
‘한 번이라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제자들이나 다름없는 불사수호대원들이 신마를 피해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아아-아!”
그래서 더더욱 악을 썼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단전을 쥐어짜 호심결의 내공을 이끌어내 초식에 보탠 순간,
콰르릉. 콰르르르르릉.
흑색화약 일천 근이 동시에 폭발하는 굉음이 터졌다.
동시에 일어난 희뿌연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터뜨리고 부쉈다.
“커헉!”
“크아악!”
몇 남지 않은 만겁문의 마도인들이 그 충격파에 직격해 칠공에서 피를 쏟아냈다.
“흡! 무, 물러나!”
“커흑. 피해라!”
불사수호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마의 공격을 받아친 풍연호 주변에 있던 상당수가 칠공으로 피를 쏟으며 무너졌다.
하지만 누구도 도망치지는 않았다.
사부이자 주군인 비천검제 풍연호와 최후를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
울컥! 쿠울럭!
십여 장이나 뒤로 쭉 밀린 풍연호의 입에서 희뿌연 덩어리와 함께 검게 죽은피가 쏟아졌다. 단 한 번의 접전에 내부 장기가 완전히 조각나 입으로 튀어 나온 거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으아아아! 모두 빠져 나가-아-앗!”
이제 마지막임을 직감한 비천검제 풍연호가 다시 한 번 크게 악을 썼다.
마지막으로 외치며 텅 빈 단전을 쥐어짜듯 내공을 끌어 올렸다. 천기자의 당부에 따라 놈에게 낙인을 찍을 사람은 자신 혼자면 충분한 것이다.
버언쩌저적. 휘우우웅.
평범함으로 되돌아갔던 풍연호의 검이 다시금 빛을 뿜어 올리기 시작했다.
“푸흐흐흣. 튀어봐야 벼룩이지. 아무도 도망가지 못한다. 깡그리 잡아 죽인다-아-앗!”
진득한 살소를 흘리며 신마가 말끝을 올렸다.
처음에는 한 번만 손을 흔들었지만 이번에는 연거푸 다섯 번이나 어둠을 휘감아 떨쳤다.
후웅. 후웅. 후웅…….
비천검제 풍연호를 절망에 빠뜨린 어둠의 장막이 송두리째 밀려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고오오오-!
다섯 번이나 중첩된 그 힘이 얼마나 큰지 그저 대기가 진저리를 칠 뿐이었다.
“제발, 피해! 피하라고 이 멍청이들아!”
풍연호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어째서 저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일까, 어째서?!
저런 무식한 거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피하라는데, 하나라도 살아서 돌아가라는데 어째서 고집을 피워 죽음을 자초하는 것일까?
그때였다.
“불사수호대는 하나다!”
“고아로 태어나 어버이와 같은 사부를 모셨으니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마음을 하나로 엮었으니 우리의 힘도 하나가 되리라!”
“차아아.”
“죽어라, 마졸-!”
후웅. 후웅. 후우우우웅.
놀랍게도 불사수호대원들은 도주를 택하지 않았다.
풍연호와 함께 죽을 각오를 한 채 호심결을 끌어 올렸다. 겁도 없이 신마를 향해 짓쳐들었다.
울컥!
비천검제 풍연호의 심장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치솟아 올랐다.
사냥당하며 비참하게 돌아가는 대신 사부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싶어 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의 뜻이 정 그렇다면 좋다. 우리 다 같이 함께 놈에게 낙인을 찍어 주자꾸나.’
낙인을 찍듯 호심결의 힘을 놈에게 침투시키면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믿는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까지 역천자를 대비해 왔던 절대검신과 천기자 그리고 혜월의 의지를…….
“하아아아-압!”
목이 터져라 지르는 고함소리와 함께 풍연호 역시 마지막 일 검에 모든 것을 담았다.
츠츠츠.
제자들이 함께하며 벌어준 그 작은 시간을 이용해 검과 하나가 되어갔다. 신검합일의 강력한 일 검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버언쩍. 콰르르르르릉.
눈부신 빛과 함께 고막이 터질 듯한 폭음이 일었다.
투화악. 투화아아악.
동시에 터져 나온 희뿌연 충격파가 만겁문을 휩쓸었다.
이백 년 남짓이나 그 자리를 지켜온 만겁문의 전각들이 와르르 부서져 나갔다.
“크아악!”
“커허억!”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불사수호대 일백여 명이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패대기쳐졌다. 놀랍게도 그 한 번의 공방에 일백여 무인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풍연호가 아직 건재했고 함께 만겁문의 담을 넘었던 불사수호대원들도 이백여 명이나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툭. 투툭.
신마의 주먹이 쩍 갈라져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
주먹뿐만이 아니었다.
거칠게 갈라진 상흔은 주먹을 따라 팔목을 타고 위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상처도 꽤 깊은지 신마의 주먹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 나왔다.
꿈틀!
신마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다. 자존심이 몹시 상한 것이다.
“이런 시건방진 것들이 정말!”
신마의 눈이 위로 확 찢어졌다.
“오냐, 이 시건방진 놈들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갈가리 찢어 죽여주마-아-앗!”
후욱.
신마가 한 걸음을 내딛자 거짓말처럼 거리가 줄어들었다.
훅 꺼지듯 사라지더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불사수호대 앞에 나타났다.
퍼어어억!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신마의 지근거리에 있던 불사수호대원의 몸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크흐흐! 크흐흐하하하-핫!”
진득한 살소와 함께 살육이 시작되었다.
퍼억. 콰앙. 푸스스슷.
신마가 움직일 때마다, 그가 일 보 걸음을 내딛거나 가볍게 손을 흔드는 순간마다 누군가의 몸이 폭죽이라도 되는 양 허무하게 터졌다. 피비가 되어 활활 타오르는 만겁문의 불길을 줄였다.
***
홱!
용무린의 몸이 남서쪽을 향해 돌았다.
신마가 그러했듯 용무린 역시 아득히 먼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끔찍한 수준의 마기를 감지해낸 것이다.
“신마. 이노-옴!”
저절로 주먹에 힘이 고였다.
신마가 저 정도로 힘을 쏟아낼 적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맹주와 부딪힌 거야. 틀림없어.’
미안했다. 살짝 후회도 되었다.
‘내가 안휘성의 신마를 상대하기 위해 방향을 잡은 순간 놈은 남하를 한 거야.’
이제야 완전히 그 감각에 대해 알 것 같았다.
신마를 노리고 움직일 때마다 느낄 수 있었던 허무함이나 허탈한 기분은 신마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후회가 인다.
자신이 만약 신마의 움직임을 감지한 그때 방향을 바꿔 움직였다면 신마가 풍연호 앞에 나타나기 전에 가로 막아설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거야 솔직히 모르는 일이지.’
비천검제 풍연호는 처음부터 자신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암전이 되어 적진을 누비고 있었다.
풍연호가 마도칠문의 어느 곳을 향해 움직이는가에 따라 자신이 풍연호와 신마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지 없는지가 결정이 되는 것이다.
‘그랬다면 풍 맹주가 목숨을 걸고 벌어준 기회도 모두 사라지게 되지.’
신마의 부재!
그 기회에 수뇌부와 주력을 잃은 남궁세가와 팽가 그리고 황보세가를 구하고 마교 3로의 수뇌부를 깨뜨릴 수 있었던 기회가 날아갔을 거다.
‘남궁세가와 팽가, 황보세가가 멸문지화를 입었을 것이며 안휘성은 물론이고 강소성과 산동성까지 초토화에 가깝게 짓밟혔겠지.’
당가주 당현과 천독대의 도움만으로는 마교 3로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으리라.
‘그래도 아쉬워. 내게 상의 좀 해줄 것이지…….’
그랬다면 조금쯤은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맹주가 불회곡을 노릴 때 자신과 함께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마교 본산을 절반만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몽땅 불태우고 짓밟아 놈들의 근거지 자체를 없애 버릴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하든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 일은 이미 벌어졌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일은 바로 풍연호의 조언에 따라 놈들의 전력을 박살내버리는 것이다.
“고로 네놈들 중,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놈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적을 것이다.”
휘슷.
용무린의 신형이 일천 어림으로 줄어든 마교 내원 고수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파아아. 버언쩍.
풍뢰와 소검비연이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용무린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
나직한 웃음과 함께 신마는 끝도 없이 살수를 전개했다.
“크흐흐. 이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내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휘슷. 후우웅. 퍼어억. 퍼퍼퍼억.
“크아악!”
“커헉!”
신마의 손이 살짝 흔들릴 때마다 한 명 혹은 서너 명씩 폭발했다. 말 그대로였다. 폭발하듯 터진 후 피 안개가 되어 불길을 줄이는 데 한 몫을 했다.
“으아아아-아!”
어찌나 크게 부릅떴는지 비천검제 풍연호의 눈꼬리가 살짝 찢어졌다. 한 줄기 피가 눈물과 섞여 흘러 내렸다. 이른 바 피눈물이었다.
휘슷.
그대로 날아올랐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신마의 움직임 중간을 가로막은 채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비천팔황검법의 비천회륜이라는 초식을 펼쳤다.
버언쩍. 패애애액.
작열하듯 새하얗게 타오르는 검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을 하며 신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의 제자들아…….’
풍연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펼친 마지막 초식 역시 허무하게 깨어질 것임을.
‘절대로 외롭게 만들지 않겠다.’
신검합일의 수까지 단숨에 깨어졌는데 강기로 뿜어진 초식 하나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나도 함께 가겠다.’
그래도 마지막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거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죽는 법이었으니까.
“사부니-임!”
“이야아아-하!”
“죽어라, 마졸아!”
이제는 겨우 이백 남짓으로 줄어든 불사수호대원들 역시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신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하하하! 오너라!”
피에 흠뻑 젖은 채 신마가 광소했다. 미친 듯 웃어젖혔다.
퍼엉. 퍼버버벅. 투확.
“크아아악!”
“커흐윽.”
가볍게 휘두르는 손짓 하나에 폭발하듯 몸이 피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심장과 단전 어림에서 굵은 핏줄이 쭉쭉 뿜어지기도 했고 머리만 박살나기도 했다.
바로 그 순간 비천검제 풍연호의 마지막 초식이 신마의 손끝에 닿았다.
파카아-앙.
닿는 순간 너무나 큰 내공의 격차에 초식이 힘없이 깨졌다. 그 서슬에 풍연호의 입에서 검게 죽은 핏덩이가 왈칵 쏟아졌다.
신마의 손은 앞으로 쭉 밀고 나갔다.
결국 검 끝에 신마의 손이 닿았다.
튀잉! 와그작!
그 단단한 검이 뒤로 밀려 활처럼 휘더니 이내 유리처럼 허무하게 부서졌다.
휘우웅.
신마의 손은 그런 놀라운 이적을 보였음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파고들었다. 결국 비천검제 풍연호의 심장 어림에 와 닿았다.
투화아-악!
신마의 손끝이 닿은 풍연호의 심장이 함몰이 되듯 훅 꺼지더니 이내 사람 머리만 한 구멍이 뻥 뚫렸다.
‘이게 끝인가?’
풍연호의 의식이 흐려졌다.
하지만 후회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생각과 달리 자신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는 불사수호대의 제자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 사부님…….’
풍연호는 천기자를 떠올렸다.
제자들과 함께해서인지 더없이 확실하게 낙인을 찍었다.
신마의 내부에 호심결의 힘을 틀림없이 밀어 넣었다. 임무를 완수한 듯해 후련하기만 했다.
‘다 이루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만 같아 속이 편하지 못했다.
지금껏 무림을 위해 애써온 많은 명숙들을 제치고 자신이 맹주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어찌 편했겠는가?
솔직히 외로웠다.
숙명처럼 사부로 모신 분들의 의지에 따라 있는 듯 없는 듯 맹주로서 살아왔지만 온갖 시기와 질투와 폄훼에 적지 않게 마음을 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게도 나를 사부님이라 받들어주는 제자들이 수백 명이나 생긴 것이다.
‘저…… 이, 이제는 외롭지 않습니다.’
가물가물 흐려지는 풍연호의 눈에 불사수호대원들의 모습이 걸렸다.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오래 사제의 정을 나누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 자랑스럽고…… 미, 미안하…….’
툭.
풍연호의 의식이 그렇게 끊어졌다.
***
신마대전의 전황은 개전 초기와는 다르게 시시각각 마교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사천의 1로는 가장 먼저 괴멸이 되어 토벌당하는 수순으로 바뀌었고 안휘성의 3로 역시 용무린의 손에 의해 박살이 나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한 곳, 호북성의 2로였는데 그곳마저 각개격파를 당했다.
검마종이 살계승 효정대사와 무당의 장문인인 자운진인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 가장 컸다.
검마종의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소림과 무당 그리고 비룡문과 개방의 고수들이 환희궁과 유령궁의 마인들을 각개 격파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결국 검마종은 이를 갈며 후퇴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고 숱한 주검만을 남긴 채 다시금 동정호의 물길을 타고 호남성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남궁세가에서 적들을 쓸어버린 용무린이 여세를 몰아 명령을 하달했다.
“이제 진격입니다! 모두 불회곡을 향해 방향을 잡아 주십시오!”
용무린의 명령은 개방과 하오문 그리고 군 정보망의 힘을 타고 불과 사흘 만에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신마대전에 나선 전 무림인들이 호응을 했다.
무림맹 1, 2, 3로의 고수들과 모든 중소 문파들까지 일제히 대산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여세를 몰아 마교를 부숴버리자!”
“두 번 다시 중원에 발을 딛지 못하도록 싹을 자르자!”
연속된 승전보에 사기가 오른 무림맹의 고수들이 용기백배해서 움직였다.
추격과 토벌은 그대로 하되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용무린의 명령에 따라 광서성과 광동성 사이에 자리한 십만대산을 향해 이동했다.
***
후욱. 후욱. 후욱.
신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독한 새끼들!”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툭 내뱉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까지 했다.
“어떻게 마지막 한 놈까지 그렇게 악착같이 달려들 수가 있지?”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잘 알면서, 마치 부나방이라도 되듯 스스로를 불사르려 달려들었다. 기를 쓰고 한 칼이라도 먹이려고 애썼다.
“……!”
신마의 시선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보였다.
세상에, 신검합일의 수에 당했던 오른팔은 물론이고 전신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목과 심장과 단전을 포함해 하마터면 치명상이 될 뻔한 상처가 무려 열 곳이 훌쩍 넘어간다.
“기가 막혀서 원 참…….”
고만고만한 놈들 몇 백 잡아 죽이는 일에 천하의 신마가 이만큼이나 상처를 입어야만 하다니!
“모두 다 이놈 때문이야.”
신마의 눈에 비천검제 풍연호가 잡혔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운 채 차갑게 굳어 가고 있었지만 그가 보여준 투지는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세상에!
심장에 구멍이 뻥 뚫린 상태에서도 무려 세 초식이나 더 펼쳐 내다니!
그 놀라운 투지에 나머지 놈들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죽음을 도외시한 채 미친 듯 동귀어진의 초식을 펼쳤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자신이었다.
금강불괴라고 해도 좋을 육체에 끝이 없는 불사마력을 지닌 자신의 몸이 지금 걸레처럼 변해 있었다.
까득.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살짝 어긋났던 뼈가 맞춰지며 묘한 소리를 내었다.
“불사신공이 아닌, 그저 흉내만 낸 무공임에도 이 정도의 저력을 발휘하다니!”
투기도 좋고 의지도 좋지만 역시 자신의 몸에 이만큼의 상처라도 남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불사신공과 닮은 놈들 특유의 내공 때문이었다.
호심결!
절대검신이 사 할 정도로 약화시켜 혜월과 천기자에게 건네었던 그 내공이 아니었다면 비천검제 풍연호와 불사수호대원들의 의기만으로는 신마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는 시간을 줄 수가 없겠어.”
저런 놈들의 숫자가 더 늘어나 보라.
자신은 물론이고 마교의 마공들 중 어떤 힘도 맞서기가 힘들지 않겠는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내상이라니!”
놈들의 내공이 침습했다.
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재수 없는 놈들…….”
풍연호를 비롯해 불사수호대원들 얼굴에는 신마의 몸에 한 칼 먹였다는 자부심들이 가득했다.
그 사실이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신마로 하여금 생각을 완전히 고쳐먹도록 만들었다.
“단숨에 박살낸다.”
유희는 이제 끝이다.
더는 기다리지 않을 거다. 놈들을 죄 불러내 결판을 지어버리고 만다.
“대회전이 좋겠지.”
순수한 힘과 힘의 대격돌!
짧고 굵게 일전을 겨루어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휘슷. 스파아아-앙!
신마의 신형이 남쪽을 향해 쏘아졌다.
“일단 음양자부터 추슬러 놓고 진행하자.”
대회전이고 뭐고 다 좋은데, 모든 일에 앞서 부상이 깊다던 음양자의 몸을 다시금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일이 급선무였다.
***
그 사이 용무린은 또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감각이 이끄는 방향을 향해, 바로 신마가 있는 곳을 향해서였다.
타다닷. 쌔애애액.
‘이쪽으로 쭉 가면 호남성인가?’
동정호 어림.
개방을 통해 얻은 정보와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마도칠문 중 두 곳인 구유마문이나 만겁문이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내게 될 거다.
‘맹주님. 바라셨던 것처럼 놈들의 예봉을 완전히 꺾어 놓았습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비천검제 풍연호 생각만 하면 기분이 묘했다.
어째서 상의도 없이 무모하게 암전을 자처했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상의를 했다면, 그랬다면 최소한 내가 퇴로를 열어줄 수 있었을 텐데…….’
풍연호가 상의도 없이 스스로 암전을 자초한 이유가 바로 천기자 당부 때문임을 지금의 용무린이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지금 내가 간다고 해도 이미 너무 늦은 후겠지요?’
비천검제 풍연호가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자신이 느꼈던 신마의 움직임이 사실이라면 풍연호는 놈과 일전을 겨뤘을 것이고 장렬히 산화했을 것이다.
‘주검이라도 수습해 드리고 싶네요.’
덕분에 거침없이 북진을 하던 마교의 전력을 단숨에 무위로 돌리고 놈들 세력권 아래로 밀어 내렸다.
풍연호가 날린 회심의 일격이 주효했다.
물론 거기에 더해 감히 맞상대를 할 존재가 드문 자신의 힘이 가장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풍연호의 업적은 작지 않다.
‘늦었다고 너무 화내지 마세요. 맹주님 부탁 충실히 들어 주느라 그랬으니까요.’
용무린은 이미 가고 없는 풍연호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며 호남성 북쪽 동정호를 향해 신법을 펼쳤다.
***
비슷한 시각 신마는 불회곡에 당도했다.
멈칫!
“……!”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신마는 잠시 멈춰선 채 불회곡의 참상을 감상했다.
절반이나 됨직한 전각들이 완전히 불에 탔다.
불회곡 주변을 맴도는 시취로 보건데 죽어 나간 숫자가 못해도 기천은 되어 보인다.
세상에!
마교 본산 불회곡이 이렇게 될 줄이야!
‘내 잘못이다.’
슬며시 자책이란 생소한 감정이 스며드는 신마였다.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기 때문이야.’
절대자의 허무와 고독을 피하기 위해 용무린을 너무 오래 설치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풍연호 같은 인간이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시, 신마시여!”
“크흐흑. 신마시여-어!”
신마를 목격한 불회곡의 마인들이 다가와 다투어 무릎을 꿇었다. 목 놓아 울었다.
울컥!
왜 이제야 왔느냐는 그 흔한 책망의 말도 없이 그저 무릎 꿇고 울기만 하니 지존으로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필코!”
우르릉.
신마의 목소리가 불회곡을 울렸다.
“중원무림을 넘어 세상을 통째 집어 삼키리라-아!”
그제야 상처 입은 마음이 치료가 된 것일까?
“신교 천세천세 천천세!”
“신마군림! 천세천세 천천세!”
우렁찬 천세 삼창이 되돌아왔다.
신마는 그대로 풀리지 않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음양자가 기다리고 있을 대전으로 향했다.
“시, 신마시여-어!”
대전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음양자가 부복했다.
아직도 내상이 채 낫질 않았는지 핼쑥한 얼굴을 한 채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조아렸다.
“죽여주시옵소서!”
“……!”
잠시 음양자를 내려다보던 신마의 입이 불쑥 열렸다.
“그것이 어찌 네 잘못이겠느냐?”
“……?”
“내 잘못이다.”
“시, 신마시여. 그런 말씀을 어찌? 절대로 아닙니다. 거두어 주소서!”
천부당만부당하다는 듯 음양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신마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본 좌의 실수가 맞다. 아직 완전히 쥐어지지도 않은 세상을 이미 다 거머쥐었다고 생각했기에 절대자의 고독과 허무 어쩌고 한 거야…….”
“……!”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던 음양자는 잠자코 신마의 말을 듣기만 했다.
“아껴먹지 말 걸 그랬어. 처음부터 놈을 향해 직진을 해서 결판을 냈으면, 그랬다면 무림맹주라는 놈이 어떻게 제멋대로 이곳으로 올 수 있었겠느냔 말이지.”
그야말로 현실을 직시한 발언인 셈!
음양자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격동하며 답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나이다, 신마시여. 신마께서 이렇듯 건재하신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시시각각 전해지는 급보를 종합해보면 피해는 실로 컸다.
하지만 음양자나 신마 누구도 패배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 정도 세력의 열세쯤 단숨에 뒤집을 자신이 있었던 거다.
“짧고 굵게 갈 것이다.”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회전을 끝으로 천하를 거머쥔다.”
“충! 그렇게 알고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신마시여.”
음양자가 소리 높여 외쳤지만 신마의 고개가 가만히 가로저어졌다.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슨……?”
음양자가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뜰 때였다.
슥.
신마의 손이 음양자의 명문혈에 붙었다.
“시, 신마시여…….”
음양자의 목소리가 감격에 겨워 떨렸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신마의 목소리가 담담히 이어졌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걸맞은 몸으로 만들어 주마!”
후우우우웅.
추측하기 어려운 수준의 불사마력이 음양자의 내부로 깃들기 시작했다.
신마귀환 9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