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대승(12권) (97/104)

신마귀환 12권

서경 신무협 소설

1.대승

봉신현 외곽의 관도.

감숙도 아닌데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씨잇. 씨시시시시.

좁은 공간을 새카맣게 물들일 정도의 쇠뇌 소나기라니!

“산개! 산개하라.”

“자신 없으면 엄폐물을 찾아 엄폐한 후 공격해.”

효정대사와 화운 태상장로의 일갈에 황급히 움직였지만 피해가 컸다.

산 쪽에서 튀어 나온 소림의 승려들은 몸을 숨길 나무와 바위도 많았고 실력 또한 출중한지라 쇠뇌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반면 개방은 그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퍼억. 퍼퍼퍼퍽.

“크헉!”

“끄으윽.”

개방의 걸개들 중 상당수가 쇠뇌에 고슴도치가 되어 갈대밭에 스러졌다. 어찌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갈대가 붉게 물들 정도였다.

“이놈들! 차아앗!”

스파아-앙!

제자들의 죽음에 눈이 뒤집힌 화운 태상장로가 신법을 펼쳤다.

“함께 합시다. 차앗!”

살계승 효정 대사도 역 팔자로 치솟은 눈을 한 채 금강부동신법을 펼쳐 쇠뇌병들에게로 향했다.

씨잇. 씨시싯.

두 사람을 향해 쇠뇌가 집중되었다.

하지만 쇠뇌 따위에 쓰러질 두 사람이 아니었다.

휘우우웅. 따라라랑.

효정대사가 풍차처럼 휘돌리는 선장을 뚫는 쇠뇌는 하나도 없었다. 깡그리 부러져 흩날렸다.

파가각. 파가가-각.

화운의 용음십이수 역시 한 몫 단단히 했다.

순간적으로 열두 곳의 방위를 점하는 놀라운 수공이 허공에서 쇠뇌를 잡아챘다. 지체 없이 쇠뇌병들을 향해 되 쏘아버렸다.

퍽. 퍽. 퍼퍼퍽.

“크악!”

“커헉!”

열댓 명의 쇠뇌병들이 쓰러졌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혈마종이 대뜸 대응하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런 멍청한 놈들! 누가 저놈들을 향해 쇠뇌를 집중하라고 했느냐? 너희들이 쏠 곳은 저 뒤편이다. 땡중들이 숨어 있는 숲 쪽은 피할 곳들이 많으니 내버려두고 오른쪽의 거지들을 노리란 말이다.”

“충!”

명령은 즉시 이루어졌다.

“목표 우현 갈대밭.”

“자유연사! 실시.”

피잇. 피피피핏.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다시금 개방의 걸개들을 향해 쇠뇌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효정대사와 화운 태상장로의 활약으로 벌어들인 시간을 이용해 개방의 걸개들이 쇠뇌의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났다는 점이었다.

“크아아-합!”

“아미타불!”

그 틈에 거리를 좁힌 효정대사와 화운 태상장로가 쇠뇌병들을 덮쳤다.

투확. 뻐버버벅.

사신의 낫질인 양 큰 호선을 그리는 무쇠 선장에 걸린 쇠뇌병들의 몸이 사정없이 뒤로 튕겼다.

파팡. 퍼퍼퍼퍽.

화운의 용음십이수에 걸린 쇠뇌병들의 가슴이 푹 꺼져들었다.

“크흐흐. 땡중. 너는 내 차지다.”

콰르르르.

으스스한 웃음소리와 함께 혈마종이 짓쳐들었다.

살아 있는 신룡의 움직임인 양 꿈틀대는 혈마멸천장이 그보다 먼저 쏟아졌다.

화운 태상장로에게는 축융궁의 마인들과 유령궁의 암살자들이 떼로 덤벼들었다.

화르륵. 화르르륵.

검붉은 열기로 타오르는 축융마공에 숨어 암수를 뻗어내는 유령궁 마인들의 조합은 화운 태상장로의 발을 충분히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즈음 쇠뇌의 소나기가 멈추었다.

지니고 있던 쇠뇌를 다 쏘아낸 것이다.

“이때다. 쳐라.”

“당한 것을 갚아줄 시간이다.”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소림의 승려들과 개방의 무인들이 신법을 전개했다.

벌벌 떠는 쇠뇌병들과 그 뒤에 숨어 있는 마교의 마인들을 향해 짓쳐들었다.

***

꿈틀.

음양신마의 눈두덩이 거칠게 요동쳤다.

용대명과 법정 그리고 불사항마승을 보자니 동정호변에서 놈들에게 당했던 부위가 새삼스레 아려왔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놈들. 다들 완벽하게 회복했네.’

용무린이 죽음에서 돌아온 사실을 몰랐다면 믿을 수 없어서 황당해하거나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충분히 이해한다.

용무린이 원인일 터였다.

‘놈이 그 불사신공인가 뭔가를 써서 내상을 치유시켜주었겠지.’

신마를 죽이고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자신에게 범상치 않은 일격을 먹였던 그놈의 힘이라면 충분히 저들을 완쾌시킬 수 있었으리라.

‘싹 다 죽여 버릴까?’

잠시 갈등이 일었다.

용대명의 불사신공과 법정을 비롯한 땡중들의 불사항마력 때문이었다.

‘하아, 자존심 상해.’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이기만 했다면 볼 것도 없이 달려들어 놈들의 목부터 베고 봤을 것인데 지금은 이렇듯 저절로 눈치가 보인다.

‘나 음양신마가 죽음을 내릴 것인지 아닌지의 고민이 아니라 싸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니.’

그게 너무나 자존심이 상한다.

생과 사의 주제자인 역천자 음양신마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 개방의 용두방주가 먼저 선택을 마쳤다.

“덤벼라, 음양신마. 먼저 간 용호단주와 용호단 걸개들의 피 값을 받아내야겠다.”

아이들도 인계를 마쳤겠다, 이제는 걸릴 것도 없는 거다.

개방 용두방주가 전의를 불태우자 같은 심정이었던 나머지 용호단의 걸개들 역시 내공을 끌어 올렸다.

피식.

음양신마가 풀썩 웃으며 한탄을 했다.

“나 해무광이 개나 소나 덤비고 보는 신세가 될 줄이야.”

그게 얼마나 한심하고 자존심이 상하는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목표로 했던 정혈의 불과 육 할 어림 흡수했을 뿐이었지만 이놈들 정도는 능히 짓밟을 자신이 있는 음양신마였다.

휘우웅.

터질 듯 뿜어지는 살기에 반응한 불사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나왔다. 양 손에 심검으로 솟구쳐 검보랏빛 신비로운 광채를 흘렸다.

“하아아-앗!”

“차아아!”

바로 그 순간 개방의 용두방주와 용호단의 걸개들이 필생의 공력을 끌어 모아 절기를 펼쳤다.

용두방주의 손에서는 용두방주에게만 전해진다는 천화봉법 십팔 초가 펼쳐졌고 용호단의 걸개들은 제각각 연화지법, 파옥권, 회선장법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버언쩌저적. 파스슷.

가온누리 칼벼락을 어찌하지 못했다.

연거푸 뿜어지는 고려의 옛 법에 초식들은 연거푸 잘려나갔고 바스러졌다.

“죽어-엇!”

음양신마가 불사마력의 수위를 높였음에도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까닭은 용대명과 법정 그리고 불사항마승의 힘 덕이었다.

“꺼져라, 마군!”

“불사항마-아!”

콰르르. 콰르르. 쩌저정.

얼핏 보면 말이 안 되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역천자라고는 하나 음양신마 한 사람을 에워싸고 온갖 공격을 쏟아내는 수백여 명이라니!

“흥!”

하지만 그 놀라운 일을 음양신마가 해냈다.

스가-악. 서거걱.

두 자루 심검을 따로따로 놀려 제각각 칼벼락을 쏟았다.

그 무지막지한 공간의 균열에 천화봉법도, 연화지법과 파옥지 그리고 회선장법도 모두 베어졌다. 바스러져 흩어져 버렸다.

휘우우웅. 투우웅. 콰아앙. 콰아아-앙.

힘에 부치는 것 같을 때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강력한 충격파는 용대명이 쏟아낸 상청무상검법의 초식도 단숨에 부쉈으며 법정의 불사항마력 역시 한 순간에 으깨어 놓았다.

“아미타불!”

“불사항마-아!”

불사항마승들의 수적 우위가 힘을 내었다.

지난 전투에서 많이 잃어 이제는 불과 이백팔십 명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그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쏟아내는 불사항마력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음양신마의 숨통을 콱 조였다.

쿠와앙. 콰아앙. 쿠콰콰쾅.

무쇠로 만들어진 선장이 한 번씩 춤을 출 때마다 쏟아진 불사항마력이 음양신마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뭉갰다.

“크흡. 쿨럭.”

덩어리 피를 연신 토해낸 음양신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핼쑥해졌다. 하지만 인상은 더할 나위 없을 만큼 표독하게 바뀌었다.

‘빌어먹을. 나 해무광이 이런 신세가 될 줄이야.’

아무리 정혈 흡수가 늦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약해졌다는 것은 정말 의외였다.

단숨에 압도를 할 수 없다니!

심지어 용대명과 법정 둘만의 하나 된 힘만으로도 칼벼락을 어느 정도 방어해 내기까지 했다.

‘좋아. 자존심이 살짝 상하긴 하지만 각개격파로 작전을 바꿔주지.’

이대로 이들을 상대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

둥실 하늘에 우뚝 선 채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남김없이 감당해 내던 음양신마가 돌연 밀려드는 초식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굼실. 휘스슷.

살포시 내딛는 발걸음에 춤을 추듯 공격을 비켜낸 후, 덩실 나래를 펴듯 뻗어낸 심검으로 역공을 취했으며.

파카아-앙.

“크헉!”

“끄아악!”

타닷. 후욱.

공간 이동을 하듯 한 걸음에 불사항마승 사이를 파고들어 심검의 나래를 폈다.

서걱. 서거걱.

“크아악.”

“으악!”

한 줄기 바람이었다. 아니, 폭풍이었다.

굼실. 휘슷. 스각.

“커어헉!”

덩실. 스파-앙. 서걱.

“크흡!”

누구도 춤사위를 펼치듯 공간을 넘나드는 음양신마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저, 저 움직임은?”

“맙소사. 맹주와 같은 무공이라니?!”

용대명과 법정은 음양신마가 펼치는 고려의 옛 법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는 그 신묘한 움직임을 즉시 알아보았다.

씨이익.

음양신마의 입술이 위를 향해 삐죽 말려 올라갔다.

스스로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펼치는 고려의 옛 법 비홍검의 경지가 점점 더 용무린에 근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검신이 내게 고려의 옛 법을 흡수당한 후 어떻게 그것을 더 발전시켰는지 알 것 같구나.’

뭐라고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느껴졌다.

어떻게 발전을 시켜나가야 대성지경을 넘어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를.

“크크크. 크흐하하핫!”

통쾌하게 터지는 음양신마의 웃음소리를 따라,

버언쩌저적. 촤촤촤아-악!

점점 더 예리하고 정교하게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

쌔애애애-액.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공간을 가르는 사내.

용무린은 전력을 다해 고안현을 향해 신법을 펼치는 중이었다.

여타 고수들처럼 땅을 박차지도 않았다.

음양신마가 그러하듯 천상제나 능공허도와 비슷한 신법으로 둥실 떠올라 의지를 발판 삼아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용무린의 신형이 멈춰졌다.

형언하기는 힘들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그 어떤 느낌이 그의 감각에 걸린 거다.

“이, 이건 분명히……?”

용무린의 눈이 점점 더 커다래졌다.

감각에 걸려든 느낌은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아는 존재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음양신마!”

맞다. 틀림없다. 역천자의 느낌이다.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음양신마의 느낌이 감각에 걸린 것만은 틀림없다.

“아니면 놈이 점점 과거의 힘을 되찾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나.”

흡혈괴마.

잠강 일대와 장강으로 들어가는 주변 수로의 유람객들 중 어린아이들만 골라 피를 빨고 사라진다는 흡혈괴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놈을 떠올렸다.

“그게 바로 그놈이야. 확실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놈의 존재감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이상, 이제 놈은 절대로 숨지 못한다.

“기다려라, 음양자. 내가 간다.”

스파아아아-앙.

용무린의 신형이 다시금 공간을 찢어발기듯 난폭한 속도로 쏘아졌다. 놈의 존재감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고안현 외곽을 향해서였다.

***

고안현 외곽.

쿠콰콰콰-아-앙!

“크흐하하……. 어엇!”

미친 듯 웃음을 터뜨리며 칼벼락과 우람별찌를 펼쳐내던 음양신마의 눈이 돌연 화등잔만 해졌다. 용무린이 그의 존재감을 느꼈듯 음양신마 역시 용무린의 접근을 감지해 낸 것이다.

“서, 설마?”

얼마나 놀랐는지 막 두 조각을 내려던 불사항마승이 사형제들과 함께 뒤로 빠져나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버릴 정도였다.

“상청무랴-앙!”

“불사항마-아!”

쩌렁쩌렁한 기합과 함께 피투성이의 용대명과 법정 두 사람이 짓쳐 들 때였다.

“……!”

후욱!

가만히 두 사람을 노려보던 음양신마가 어기충소와 같은 방법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용대명과 법정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이었다.

“온다. 놈이 오고 있어.”

그 상태에서 음양신마는 서남쪽을 향해 떨리는 시선을 보냈다. 불안한 목소리를 발했다.

“…….”

그리고 말을 잃었다.

용대명이나 법정 그리고 불사항마승 중 누구에게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럴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자신의 현재 상태와 지금 이 순간에도 놀라운 속도로 거리를 줄여오는 용무린의 존재감을 비교하며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도망칠 것인지를 가늠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반짝.

음양신마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좋아. 결심했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작전상 후퇴’였다.

몸이 완전한 상태라 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력한 적을 상대로 불완전한 몸으로 생사결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놈이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아이들의 정혈을 섭취해야만 해.’

그래야만 놈과 맞상대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도 질 수 있어.’

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놈을 통째 집어 삼키는 방법을 도모해 볼 수도 있으니까.

“운 좋은 줄 알아라.”

스파아-앙.

용대명과 법정을 비롯한 불사항마승들을 향해 나직하게 으르렁댄 음양신마가 잠강의 줄기를 향해 쏘아졌다.

“이, 이런!”

“놈이 갑자기 왜?”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언뜻 드는 생각은 한 가지였다.

용무린.

황룡패주이자 무림왕인 그가 오고 있기에 놈이 도주를 한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아들아. 네가 오고 있는 것이더냐?’

‘오고 계신 것이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마음 같기만 하다면야 지금 당장에라도 놈의 뒤를 쫓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재정비를 해야 할 듯싶습니다, 방장스님.”

“이를 말이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상대는 최상으로 몸을 유지하고 있어도 충분치 못한 괴물이외다.”

용대명과 법정을 비롯한 불사항마승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교대로 운공요상에 들었다.

***

타다닷. 휘스스슷.

한 번 땅을 내딛을 때마다 삼 장 어림씩 쭉쭉 나아간다.

보기 드문 수준의 신법인 셈.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정도 수준의 신법을 펼치는 상대가 축융궁의 일개 조장 중 하나인 우문검이라는 사실이었다.

“아, 안전한 곳으로 가, 가야만 해…….”

무엇에라도 홀린 듯 멍한 눈을 한 우문검의 얼굴 어림에서 피처럼 붉은 색의 기하학적인 도형이 언뜻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그랬다. 우문검은 빈 껍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음양신마가 개방 용두방주의 유인책에 걸리기 전 몸을 싣고 있던 마지막 유람선에 있던 자가 바로 축융궁 소속 조장인 우문검이었다.

이미 검마종이라고 하는 최고의 껍질이 망가진 음양신마는 환혼대법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정혈을 흡수하기가 무섭게 우문검을 집어 삼켰던 것이다.

역천자 음양신마를 맞상대했으면서 용대명과 법정의 목숨이 지금까지 무탈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역천자의 운은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전력을 다해 전장을 벗어나 안전한 곳을 찾는 우문검의 모습이 용무린의 눈에 띄었던 거다.

‘저놈은 또 뭐야?’

용대명과 법정을 버리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음양신마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놈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사실을 묵과할 수 없지.’

운명적인 끌림이라고나 할까?

용무린은 녀석의 앞에 뚝 떨어져 내렸다.

반짝.

용무린의 눈에 맑은 빛이 뿜어졌다.

녀석의 얼굴 어림에서 피처럼 붉은 색의 기하학적인 도형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본 것이다.

‘검마종과 같다.’

쿵쿵쿵쿵쿵.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흥분이 되었는지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아, 안전한 곳으로 가, 가야만…….”

환혼대법을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우문검은 검마종과도 많이 달랐다.

검마종은 완성 직전이었던 터라 검마종이라기보다는 음양신마에 가까웠지만, 놈은 이제 막 대법이 시전된 터라 뒤죽박죽이었던 거다.

자신이 누군지, 또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모르는 듯 무작정 주입해 놓은 명령에 따라 안전한 곳을 찾아가기 위해 서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이놈 역시 안정을 찾은 후 천천히 빈 껍질로 변하겠지.’

그러기 전에 이렇게 발견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네 운이 다해간다는 증거다, 음양신마.’

그러지 않았다면 이토록 무리한 방법으로 빈 껍질을 늘리려 들지는 않았으리라.

최소한의 안전은 확보한 상태에서 환혼대법을 펼쳤겠지.

그랬다면 용무린 역시 놈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고 음양신마에게는 회심의 한 수가 되었을 터였다.

‘이젠 끝이다.’

콱.

용무린이 우문검의 목줄을 잡아챘다.

“우웁! 컥. 커헉.”

우문검이 발버둥을 쳤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다. 용무린이 서른여섯 개 대혈을 모두 제압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반짝.

용무린의 눈에서 ‘참나’의 황금빛 광채가 일렁였다.

“보인다. 보여.”

천안통과 비슷한 능력은 우문검의 의식을 열심히 집어 삼키고 있는 핏빛 존재를 똑똑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군.’

검보랏빛 생명체로 변해 검마종의 ‘참나’와 완벽하게 연결이 되었을 때와는 천지차이다.

이제 겨우 핏물로 이뤄진 진악의 의식체 조각은 우문검의 의식을 허겁지겁 집어 삼킨 후 음양신마의 기억과 합일을 시키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불쌍한 것!’

용무린에게서 이타심과 측은지심이 일었다.

버언쩍.

황금빛 찬란한 ‘참나’의 빛으로 일어나 우문검의 의식 안으로 스며들었다.

-쿠워어어-억!

생각지도 못했던 빛의 등장에 핏물로 이뤄진 진악의 의식체가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해서든 우문검의 의식 전체를 밝히는 빛을 피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어디로 피하겠는가?

용무린이 밀어 넣은 ‘참나’의 빛이 우문검의 의식을 밝힘에 따라 환혼대법으로 스며든 음양신마의 의식체 조각은 점점 더 흐려졌다.

소멸되어 가는 것이었다.

어둠은 빛의 부재이니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아!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속절없이 삼켜 없어지던 우문검의 의식이 되돌아왔다.

음양신마의 것으로 대체되어 재정립되던 것에서 완벽하게 분리가 되었다.

그런 우문검의 뇌리에 용무린의 의지가 깃들었다.

속삭이듯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네가 아닌, 너와는 완전히 다른 그 무엇이 될 뻔했다.

보아라. 저 핏빛 어둠을.

-쿠워어어-억.

음양신마의 의식체 조각이 두려움과 고통에 울부짖었다.

하지만 우문검의 의식을 밝히는 광채는 점점 더 밝아졌으며 절대로 멈춰지지 않았다. 마치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멈출 수 없듯이.

-너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려 했던 존재다.

전혀 다른 그 무엇으로 너를 다시 재정립해 꼭두각시로 만들려 했었지.

그것이 바로 너희가 말하는 구원의 진실이다.

영원한 것은 오로지 ‘참나’일 뿐, 스스로 그 길을 밝힐 수 있음에 진악을 섬길 필요가 있겠느냐?

버언-쩍.

그 말을 끝으로 우문검의 의식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크워어어어-억!

그 빛에 휩싸인 음양신마의 의식체 조각이 비통한 울음을 터뜨리며 소멸되었다.

-네가 원한 일이 아님을 알기에 손을 쓰지 않겠다.

인세에 보기 드문 경험을 한 존재가 되었으니 앞으로의 인생을 오롯이 네 결정에 맡긴다.

잊지 말거라.

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 빛이 드러나면 어둠은 의당 사라질 뿐이다.

그것이 끝이었다.

용무린은 우문검의 머리에 얹어 두었던 손을 거두었다.

두 눈에서 폭발하듯 쏟아지던 황금빛 광채도 어느덧 사그라졌다.

“빛을 비추면 사라지는 허망한 어둠으로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빛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지. 선택은 네 것이다.”

선택.

그것은 바로 의지.

불사신공의 핵심 요결이 그러하듯, 바른 의지가 바른 존재로 이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휘슷.

마지막 당부를 끝으로 용무린은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멍하니 눈만 깜박이고 있던 우문검의 눈에서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우문검은 축융궁도임을 나타내는 옷을 찢어발겼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되려는 듯 얼굴과 가슴을 적시고 있던 핏물을 벅벅 닦아 냈다.

남겨진 것이라곤 치부를 가릴 작은 천 조각 하나뿐.

그 상태로 우문검은 전혀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훗날 버림받은 이들의 성자로 불리게 될 우문검의 시작은 이러했다.

물론 아직 먼 훗날의 일이다.

***

움찔!

“크아아악!”

막 십여 세 남짓한 소녀의 목줄을 틀어쥐었던 음양신마가 처절한 비명을 터뜨렸다.

“어, 어떻게 또…….”

재수도 더럽게 없지.

없는 살림에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려 기둥뿌리 뽑듯 겨우겨우 긁어모은 정혈로 만들어낸 껍질이었다.

그런데 또 놈에게 걸렸다.

“이런 멍청한 놈. 숨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해서 놈에게 걸리다니!”

정말 분통이 터져 참기 힘들 정도다.

아니, 그것보다 심령에 받은 타격이 너무나 크다.

환혼대법이 통째 녹아 없어지는 고통이라니!

“크흐으윽. 우와아아-악!”

참을 수 없어서 저절로 비명이 쏟아졌다.

“으아앙.”

그 서슬에 놀란 여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음양신마의 손톱이 목을 조금 파고들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반짝!

음양신마의 정신이 그제야 돌아왔다.

“크흐. 너마저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몸 상태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불사신기와 불사항마력은 얼추 몰아냈지만 연거푸 받은 심령의 생채기는 내공이나 육체의 회복과는 아주 거리가 먼 문제였다.

“오직 자시 생 동남동녀의 정혈로만 치료가 가능할 뿐. 고맙구나.”

서걱.

***

꿈틀.

용무린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을 따라 불길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수평선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또 한 생명이 스러졌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조금만,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생명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놈의 빈 껍질을 그때 놓쳤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졌을 테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분노는 다른 문제다.

심장 저 깊은 곳에서 치솟는 이 뜨거운 분노 역시 그저 하나의 경험으로써 스쳐 지날 뿐임을 잘 아는 용무린은 그 사실을 이용해 불필요한 감정을 다스렸다.

‘기왕 하는 경험, 제대로 하지 뭐.’

간단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결론이었다.

분노 역시 스쳐 지날 경험일 뿐인 것이다.

스스스파-아-앙!

용무린의 몸이 공간에 흰 선을 그리며 쏘아졌다.

***

“커흐. 좋구나.”

피에 한껏 취한 음양신마가 불콰한 낯으로 웃었다.

용무린 때문에 연거푸 찢기고 녹아 없어진 심령의 생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는 듯했던 거다.

바로 그때였다.

흠칫!

음양신마의 몸이 다시금 떨렸다.

절대적인 그 무엇인가가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 아직은 안 돼.”

최소한 열 명, 아니 다섯 명의 정혈이라도 흡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놈 앞에서 설 자격이 된다.

휘슷. 쐐애애애-액.

훌쩍 날아오른 음양신마가 다음 먹잇감을 찾아 황급히 이동을 개시했다.

***

음양신마가 절박하게 움직이는 만큼 용무린 역시 최선을 다해 놈의 뒤를 쫓았다.

그 만큼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

하지만 그 사이 늘어나는 자시 생 동남동녀의 희생만큼은 용무린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음양신마는 그야말로 대놓고 모든 것을 드러냈다.

본래 자신이 세워둔 계획에 따라 원하던 위치에 정박해 있는 유람선과 조각배를 덮쳤다.

누가 보고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착하는 즉시 목을 따 벌컥벌컥 피를 들이켰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흡수했다.

“커흐! 좋구나. 크크크큭.”

그렇게 피에 젖을수록 음양신마에게서는 점점 더 선연한 검보랏빛 마력이 넘실댔다.

그리고 다시 한 식경 후.

음양신마가 잠강이 장강과 합쳐지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용무린의 모습이 수평선 끝자락에 보였다.

쐐애애액.

펼치는 신법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용무린의 전신에 희뿌연 수증기가 응축이 될 정도였다.

스파-앙.

폭발하듯 격렬한 파공음과 함께 허공에 흰 선을 그려내며 용무린은 음양신마를 향해 짓쳐들었다.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다.

허공으로 훅 솟구쳐 오른 음양신마가 가슴을 폈다.

검보랏빛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들어 용무린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전력을 다해 불사마력을 끌어 올렸다. 양손에 집중시켰다.

버언쩌저적.

음양신마의 두 손에 심검이 하나씩 솟구쳤다.

용무린을 향해 겨누어졌다.

‘도망치지 않고 내게 맞선다고?’

그러면 고맙지.

용무린은 즉시 의식을 ‘참나’에 집중했다.

그러자 용무린의 전신에서 황금빛 찬란한 ‘참나’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심검 따위 만들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용무린의 모습은 오래된 사찰의 벽화에나 나올 법한 후광을 가득 뿜어내는 부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용무린의 입이 가볍게 열렸다.

일체의 적개심이나 노여움 혹은 살기 따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를 발했다.

“받아라, 역천자!”

버언쩌저적.

용무린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후광이 덩치를 키웠다.

단지 그뿐이었다.

심검을 만들어 공간과 함께 음양신마의 몸과 혼백을 가르려 들지 않았다.

“허억!”

그런데도 음양신마는 숨이 턱 막혔다.

더불어 양손에 뽑아둔 두 개의 심검이 저절로 쪼그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본능이었다.

용무린이 뿜어내는 빛.

적개심이나 미움과 악의를 완벽히 배제한 ‘참나’의 광휘, 그 앞에 맞선다면 자신의 진악 따위 하잘 것 없는 어둠으로 전락해 녹아 없어질 뿐임을 느꼈던 것이다.

‘맞설 수 없어.’

맞서면 그대로 녹아 없어진다.

글자 그대로 소멸이다.

환혼대법을 통해 사용할 수 있게 된 의식체를 자유자재로 옮기는 마선계의 능력조차 무용지물이 될 것이란 본능적인 앎이 위기감을 일깨웠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절대검신 독고황이었을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잖아!’

그때도 물론 굉장하긴 했었다.

힘없는 양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등선까지 거부한 존재의 힘이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소멸당할 뻔했었다.

‘마지막에 쫓겨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놈의 대부분을 삼켰어. 그 덕에 고려의 옛 법을 복사해 냈으니 결국엔 내가 이긴 셈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때와도 완벽하게 달랐다.

그때 절대검신이 뿜어내던 빛이 달빛이었다면 지금은 한 여름의 태양과 같은 밝음과 열기를 동시에 뿜어내고 있다고 해야 할 정도다.

‘못 삼켜. 삼키기 전에 내가 소멸당해.’

한 여름 태양 앞에 얼음을 내놓으면 그대로 녹아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환혼대법을 펼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정혈을 다시 흡수하긴 했지만 감히 펼칠 수 없었다. 놈을 잠식하기 전에 녹아 없어지리라.

그렇다면 이대로 얌전히 소멸을 당해야 할까?

‘그럴 수야 없지.’

놈을 삼킬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다.

교토삼굴.

언제나 최후의 피난처 한 곳은 따로 마련해 놓고 있었으니까.

정혈을 삼킬 때마다 기를 쓰고 빈 껍질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한 것은 오직 하나, 최후의 피난처를 사람들의 눈에서 숨기기 위해서였다.

‘진악환혼.’

쫙!

음양신마의 양손이 가슴 앞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오옴. 아라니 마라 아뇩마라니 샴마라. 오옴.”

버언쩍.

연원을 알 수 없는 진언이 계속됨에 따라 검보랏빛 광채가 폭발하듯 일었다.

“오오-옴!”

발악하듯 음양신마가 진언을 외웠을 때였다.

투화-악!

검보랏빛 광채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용무린을 향해 폭발하듯 뿜어졌다.

“쯧쯧쯧. 눈치를 채는 듯하더니 결국 대항하는 것을 택했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무린이 혀를 찼다.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엄청난 속도로 덩치를 키운 ‘참나’의 빛이 음양신마가 뿜어낸 검보랏빛 광채를 비추었다.

파스스. 파스스슷.

그러자 음양신마가 뿜어낸 검보랏빛 광채가 작열하는 태양에 봄눈 녹듯 녹아 없어졌다. 잠깐 사이에 소멸당해 사라져 버렸다.

흠칫!

음양신마의 몸이 부들거렸다.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듯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용무린을 향한 시선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충격 때문인지 살짝 흐릿하고 몽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어느 한 순간,

반짝.

음양신마의 눈에 독기가 되돌아왔다.

“황룡패주 네 이노-옴!”

새삼스럽게 용무린을 황룡패주라 불렀다. 분노를 폭발시키더니 그대로 짓쳐들었다.

투화악. 키이우우-웅.

검은 일색의 규천마력을 끌어 올린 후 심검을 만들었다.

용무린을 향해 천마삼검의 검초를 펼쳤다.

촤악. 촤촤촤-아-악!

검은색의 실선이 하늘과 땅을 뒤덮듯 용무린을 향해 밀려왔다.

천마제천의 초식.

후우우웅. 트드드드드.

그 초식에 걸린 거창한 힘 때문에 장강으로 합쳐지는 잠강의 물결 중앙에 둥그런 원이 그려졌다. 보이지 않는 구슬이 누르듯 아래로 짓눌렸다.

***

흠칫!

용대명과 법정을 비롯한 불사항마승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북동쪽 아득한 곳.

잠강의 물줄기를 따라 장강으로 내려가는 곳 어림에서 강대한 힘의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곳입니다.”

“맹주께서 음양신마와 싸우기 시작한 듯합니다.”

“저는 갈 것입니다.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내 아들이 싸우는 모습을 저는 지켜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 아들이니까요.”

“마찬가집니다. 작게는 맹주이지만 사사로이는 제게 태사백조가 되시는 분이시니…….”

법정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쏟아졌지만 용대명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용무린의 전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시죠.”

“가십시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파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신법을 전개했다.

휘스스슷.

그 뒤를 따라 불사항마승 이백여 명이 신법을 펼쳤다.

***

천마삼검 제 일초 천마제천.

다른 사람이었다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릴 만큼 위력적인 무공이었지만 용무린에게는 그저 그런 정도에 불과한 무공일 뿐이었다.

‘불사마력은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모양이로구나.’

자신이 뿜어낸 ‘참나’의 광휘 아래 소멸되던 검보랏빛 광채를 분명히 느꼈다.

그래서 고려의 옛 법은 펼치지 못하는 걸까?

불사마력의 부재 때문에?

그렇다고는 해도 규천마력에 이은 천마삼검이라니!

가련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두 번 다시 환혼대법을 펼칠 수 없도록 녀석의 의식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진악’의 본체를 잡아 소멸시키는 일뿐이다.

버번쩌저적. 촤촤촤촤-악.

천마삼검의 초식이 연거푸 용무린을 집어 삼키려 들었지만 용무린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파사삭. 파사사삭.

접근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힘없이 바스러졌다. 바람결에 흩어졌다.

“으아아-아!”

음양신마가 발악을 하듯 규천마력으로 뽑아 올린 심검으로 천마삼검을 연거푸 펼쳤다. 하지만 결코 용무린의 의지를 막거나 멈출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버언쩍.

용무린에게서 뿜어진 ‘참나’의 광휘가 음양신마의 몸을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다.

“커헉!”

작살에라도 맞은 듯 음양신마가 몸을 퍼덕였다.

“미안하구나. 너는 잘 모르겠지만 고통을 줄 의도는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무린은 음양신마에게 적개심을 가지지 않았다.

진악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음양신마가, 이제 곧 소멸되어야 할 처지에 놓인 그가 그저 측은하고 불쌍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보인다.’

음양신마의 의식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녀석의 진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심하게 오염되지는 않았는데?’

검마종에 비해서도 덜할 정도다.

아니, 확실히 더 깨끗하다.

용무린을 향한 끝없는 증오와 적개심에 의식이 온통 흉흉한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질적인 기운이 점과 같은 형태로 진법을 그리듯 배치되어 있기는 한데…… 그래도 이건 너무 미약한데?’

그러니 더더욱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새 발의 피?’

그것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인 듯싶다.

‘완전한 회복 전에 아버지와 법정 스님을 비롯한 불사항마승에 고초를 겪었고 나를 만난 탓이겠지.’

거기에 더해 껍질 하나를 더 부쉈다.

또한 발악하듯 쏟아내던 불사마력도 떠올랐다.

불사마력이 한 순간에 녹아 소멸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아마 그것이 놈이 할 수 있던 마지막 회광반조 같은 불꽃이었으리라.

“음양신마. 해무광. 역천자여 이제 그만 가거라.”

버언쩌저적.

음양신마의 의식 깊은 곳을 파고들었던 용무린의 의식체가 ‘참나’의 빛을 뿜었다. 검은 빛으로 오염되고 물든 음양신마의 ‘진악’을 비추었다.

-캬아아아-악.

음양신마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진악’이 고통 어린 비명을 쏟았다. 어떻게 하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파사삭. 파사사삭.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바스러졌다.

용무린이 뿜어낸 빛에 휘말려 소멸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후욱.

끈 떨어진 인형처럼 음양신마가 떨어져 내렸다. 피로 물든 유람선에 위를 나뒹굴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무린의 입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본체인 ‘진악’이 소멸했으니 껍질만 남은 것인가?”

불회곡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의 의식체 조각을 심어 무명인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음양신마인지라 조금 뭣했다.

음양신마의 모습은 자신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상징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별 수 없지.”

녀석의 진악을 소멸시켰으니 껍질 또한 함께 소멸시켜 주는 것이 예의일 터였다.

버언쩍.

그제야 용무린의 손에 심검이 빛으로 솟아났다.

굼실. 덩실.

가볍게 내딛는 한 걸음과 휘어져 감기듯 내쳐지는 심검에 음양신마의 빈 껍질이 자리한 공간이 통째 갈라졌다. 길게 찢어졌다.

쩌어어어-억!

커다랗게 입을 벌린 곳으로 빈 육신이 빨려들었다.

밀전병 바스러지듯 부서져 사라졌다.

그것으로 끝!

“……!”

마침내 음양신마까지 모두 해치운 용무린의 눈빛이 묘해졌다. 계획했던 것을 모두 이뤄냈으니 다시금 고민이 찾아든 것이었다.

‘이대로 경험을 멈출까?’

다시금 선계로 돌입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거다.

“……!”

꽤 심각한 고민이었다.

용무린은 허공에 둥실 뜬 상태로 한참을 침묵에 잠겨 있었다.

촤아악. 촤악.

그런 용무린을 향해 몇 무리의 유람선들이 몰려왔다.

“아들아!”

“허허허. 세존이시여…….”

용대명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용무린을 불렀고 음양신마가 소멸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던 법정은 석가세존을 향해 연신 감사를 올렸다.

빙그레.

용무린의 입가에 미소가 되돌아왔다.

잠시 갈등을 하긴 했지만 아직 겪어보기로 마음먹었던 경험 몇 가지가 남아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아들.’

그래. 아버지가 나를 그리 부르듯 나 역시 그렇게 부를 존재가 세상에 탄생을 했었지.

‘세상을 위한 즐거운 경험이 될 거야.’

결정은 끝났다.

언제고 적당한 때가 오기 전까지는 두 번 다시 이런 고민은 없으리라.

스르르.

용무린의 신형이 용대명과 법정이 타고 있는 유람선으로 내려앉았다.

활짝 웃으며 선언했다.

“끝났어요, 아버지. 역천자는 소멸했어요.”

“그래. 장하다.”

“허허허. 고생하셨습니다, 태사백조님…….”

용대명은 연신 용무린의 등을 두들겼고 법정은 용무린을 태사백조라 불렀다.

“절대검신 독고황은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 그저 예전처럼 대해주시면 됩니다.”

“선재, 선재라……. 허허허.”

용무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는 법정은 그저 좋은 듯 계속해서 웃기만 했다.

“마무리를 짓고 올게요.”

“마무리?”

“예, 아버지. 아직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어요.”

살계승 효정 대사와 화운 태상장로가 혈마종을 비롯한 신교의 잔존 마인들과 싸우고 있는 곳을 말함이었다.

“그래. 다녀오너라.”

“무림에 드리웠던 암운이 이제야 완전히 사라지는구려. 허허허.”

둥실.

용무린의 신형이 바람에 민들레 씨앗 날리듯 부드럽게 떠올랐다.

“무한으로 돌아가 계세요. 완전한 마무리를 지어 놓은 후 돌아갈게요.”

“알았다. 조심하거라.”

“보중하시오, 맹주. 허허허.”

용대명의 애정 어린 염려와 너털웃음을 쏟아내는 법정의 환송을 뒤로 한 채 용무린은 소리도 없이 전면을 향해 나아갔다.

봉신현 외곽.

일천 명에 달하는 전군도독부 소속 병사들과 혈마종 등이 얽혀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곳을 향해서였다.

***

용무린이 봉신현 외곽을 찾고 난 후 오래지 않아 전투는 끝이 났다.

혈마종이고 뭣이고 용무린의 일수를 견디지 못했다.

간단한 일수에 고꾸라졌다.

전신 서른여섯 개 대혈을 제압당해 쓰러졌다.

굳이 살생을 할 이유도, 필요도 더는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불사신공을 심어 금제를 한 후 풀어주는 파격적인 마무리가 뒤따랐다.

하지만 누구도 뒷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음양신마의 소멸!

만악의 근원이며 ‘진악’인 음양신마가 소멸 당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녀석들이 불회곡으로 돌아가 다시금 재기를 꿈꾸겠지만…….’

어림없는 짓이었다.

불회곡은 이미 오독문의 소궁주인 진화연이 성녀의 자리에 올라 모든 것을 틀어 쥔 상태였다.

‘들어가기가 무섭게 혈고에 종속되겠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겠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다. 불회곡의 핵심 무력 전부에 외원의 가족들 역시 태반이 종속되어 있는데 더 뭘 어쩌겠나?

그러니 적당히 놈들을 몰이를 해 최대한 빨리 불회곡으로 돌아가 혈고에 감염되도록 이끄는 것이 더 나았다.

‘피도 흘릴 필요도 없고 좋지 뭐.’

그래서 용무린은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신교의 잔당들을 추격했다.

황제를 참칭했던 호남성 성도 장사 방문이 시작이었다.

그동안 황제를 참칭한 음양신마에 붙어 온갖 감투를 쓰고 호가호위하던 모든 이들을 황룡패주의 이름으로 깡그리 끌어 내리고 옥에 가두었다.

총병관과 연락을 취해 큰 피를 흘리지 않고 수뇌부의 교체가 이뤄졌다.

물론 작은 혼란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일체의 피 흘림 없는 물갈이를 통해 음양신마의 그림자들을 지워나갔다.

어찌나 좋은지!

황제를 참칭하던 음양신마의 소멸과 역적들의 물갈이 소식에 크게 기뻐하던 황제가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 호사다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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