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69화 (69/135)

〈 69화 〉 69. 진홍(?)의 카트리나

* * *

[ 69. 진홍(?)의 카트리나 ]

쿠구구궁 ­

어두운 밤하늘은 포격소리와 불타는 빛으로 인해 다홍빛으로 물들어 흔들렸고, 포위망을 펼치며 지독하게 조여 오는 프러겔군을 피해 구시가지로 피한 카로이 백작과 바실례스는 그 많던 병사들은 어디에 버렸는지, 단촐한 모습으로 더러운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 어떡하면 좋소?! 프러겔 군이 퇴로 끊어 버렸소, 이대로 가단 잡히는 건 시간문제요!!”

“...”

“아슈트로 경! 아버님께서 묻질 않소?!!”

빌헬미네로 갔던 카펠라와 쉐다의 기척이 사라지고,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로베르치마저 프러겔 군의 손에 떨어졌단 소식을 들었을 때, 아슈트로는 이곳에서 자기 일은 모두 끝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뒤에 있는 두 바보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고압적인 자세로 떼쓰는 어린아이마냥 계속 무언가 내놓으라 칭얼거리고 있었다.

“저기 있지.. 그만 갈라지지?”

“뭐.. 뭐요?!”

무슨 말이냔 듯 되묻는 두 부자(?子)를 권태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슈트로는 근처 나무상자에 걸터앉고는 조소와 함께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끝났다고. 당신들.. 이제 이거라고.”

“불경한!!”

스릉 ­

목을 날리는 아슈트로의 제스처에 발끈한 바실례스가 샤벨을 검집에서 빼려하자, 입가의 미소와 다르게 차갑게 가라앉은 아슈트로가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말했다.

“잘 생각하고 뽑는 게 좋을 거야. 거기서 조금만 더 나오면 얼굴과 땅이 만나는 신기한 경험을 할 테니까.”

“큭..”

단순한 허풍이 아님을 직감한 걸까, 바실례스는 식은땀과 함께 자기 샤벨을 뽑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이건 약속이 다르잖소?! 당신은 우리에게..”

“하.. 이거참 어이가 없네.”

카로이 백작의 말에 기가 찬단 듯 작게 비웃음을 흘린 아슈트로는 헝클어진 자기 백금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적은 여러 번 있었어. 하지만 그걸 모두 날리고선 약속? 당신은 내가 무슨 신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 난 이곳의 대지주요! 게다가 이곳에서 내 명망을 생각한다면 제국도..”

“웃기지 마, 백작. 당신들을 돕다 잃은 제국의 정예 씰이 두 명에 올만성국에 로비한 돈이 대체 얼만지 알아?”

“큭..”

“그건 자네 명망을 채우고도 남을 대가야.”

그렇게 그들을 비웃으며 땅에 짚었던 샤벨검집을 만지작거리던 그때, 그의 옆으로 제국 엘리트 씰 하나가 나타나더니, 그에게 속삭였다.

“그렇단 말이지..”

엘리트 씰의 보고에 씁쓸한 미소를 흘린 아슈트로는 만지작거리던 샤벨을 집어 일어서더니 길잃은 똥강아지처럼 자신만을 바라보는 한심한 부자를 향해 말했다.

“정말이지 안 될 놈은 운도 따르지 않나 봐? 당신들의 마지막 생명줄마저 끊어진 걸 보니.”

“그게 무슨 말이오?!”

놀라 되묻는 카로이 백작을 바라보던 아슈트로는 점점 진해지는 화약냄새에 때가 됐단 듯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올만성국이 프러겔과 평화조약을 맺기 위해 사절을 파견했다더군.”

‘..!’

“안 됐어, 올만이 좀만 버텨줬더라면 나도 이런 결정을 안내렸을 텐데.”

스윽.

그 말과 함께 어두운 골목 사이로 인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아슈트로 경!”

전쟁의 어두운 면일까, 낡은 식칼과 녹이 선 농기구를 든 토르디에르 신민들이 그들 주위로 모여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화려한 금은보화와 고급 실크천을 두르고 있는 카로이 백작과 바실례스에게 향해 있었다.

“미안하지만 자네들과 우리가 엮여 있단 걸 프러겔에게 알려 줄 수 없어서 말이지.”

“뭐.. 뭐요? 당장 이 미친 짓을 그만두시오! 우린 당신네들의 동맹이란 말이오?!!”

“훗.. 맞아, 한때는 그랬지. 한때는..”

그렇게 말한 아슈트로는 어서 처리하란 듯 손을 내저으며 몸을 돌렸고, 그와 함께 옆에 있던 엘리트 씰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카로이 백작 부자를 둘러싸고 있던 토르디에르 신민들은 광기 어린 눈빛과 함께 그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들의 물건을 독차지 하기 위해서 말이었다.

“꺼.. 꺼져라! 이 미천한 것들!!”

“아버님!! 이 버러지들이 감히!! 으아아악!!”

그렇게 카로이 백작과 바실례스는 샤벨을 휘두르며 저항을 해 보지만, 굶은 아귀들에게 잡아먹혀 버리듯 점점 늘어나는 거대한 인파 속에 파묻혀 사라지는가 싶더니 붉은 피와 함께 그들의 물건을 두고 서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적날하게 있을 뿐이었다. 통합력 1745년 11월, 한 때 프러겔과 토르디에르 전역을 들썩이게 했던 카로이 백작의 내란은 그렇게 비참한 말로와 함께 종식되었다.

“...”

욕망이란 것이 없는 것일까, 아님 모든 것이 부질없다 생각하는 것일까, 불타오르는 류스텐빌을 배경으로 밤하늘에 걸린 보름달을 올려다보던 그때, 그의 옆에 나타난엘리트 씰 하나가 명령서를 내밀며 말했다.

“아슈트로 경, 본국에서 명령입니다.”

“명령?”

생각지 못한 명령인지 잠시 의아한 빛을 띠던 그는 이내 황제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를 확인하고는 엘리트 씰이 건넨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씨익.

재밌는 것이라도 찾은 걸까, 권태로웠던 그의 눈동자가 다시 생기와 흥미로움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곤 입가에 걸린 진한 미소만큼이나 기대가 되는지 생동감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페르티갈 로슈비치라..”

***

채애앵 – 채챙 ­!!

“슈하일!”

피유웅 ­

“응?”

번쩍 ­

콰아앙!!!

밝은 빛줄기 하나가 마르쇼스 뒤에서 날아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슈트렐리츠를 덮치며 폭발했다.

“빛..?”

“카트리나! 놀러왔어?! 너도 어서 도와!!”

“어? 으.. 응!”

마르쇼스의 외침에 샤벨을 빼든 나는 슈하일의 공격에도 멀쩡한 슈트렐리츠를 발견할 수 있었다.

“흐음~ 제법 재밌는 공격이었어.”

‘..!’

짧은 감상평과 함께 순간 모습이 사라진 녀석은 일순 마르쇼스의 앞에 나타나더니 미소와 함께 손을 뻗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비나(Binah).”

서걱 ­

‘..!’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무것도 없던 그의 손에 화려한 문양으로 세공된 샤벨 하나가 전송되더니 마르쇼스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크억..!!”

붉은 피를 토하며 그의 몸이 흔들리던 그때, 슈트렐리츠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법이군, 찰나의 순간이었을 텐데 내 검의 궤적을 읽고 흐트려 놓다니. 놀랐어.”

“찰나? 너무 느려 슬로우 모션인 줄 알았는데?”

“훗..”

내 도발에 작게 웃던 녀석은 왼손을 드는가 싶더니, 아까처럼 내리 휘두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게브라(Geburah).”

‘..!’

카아아앙 ­!!!

“큭!! 이 자식!!!”

쿠웅 ­!

일순 거대한 대검이 그의 왼손에 나타는가 싶더니 엄청난 중압감과 함께 나를 내리찍어 버렸다.

“카트리나!”

피유우우

검에 찔린 마르쇼스와 대검에 짓눌려 땅에 박혀 버릴 듯 짓눌리는 내 모습에 슈하일이 놀란 음성과 함께 빛의 속도로 그녀의 앞에 나타나더니 대검을 든 그의 손목을 날려 버릴 듯 빛의 잔상과 함께 반달 모양으로 갈라버렸다.

‘..!’

“티파레트(Tipahreth).”

대검을 놓은 그의 왼손 위로 붉게 빛나오르는 샤벨 하나가 전송되더니, 그대로 슈하일을 향해 내리 휘둘러졌다.

“위험해!!”

범상치 않은 검의 기운에 놀란 내가 기운을 터트리며 그의 검을 맞받아 올렸다.

콰과과광 ­!!

“꺄아악!!”

하지만 엄청난 위력과 함께 검을 잡은 내 손이 폭발에 타오르며 마르쇼스와 나, 그리고 슈하일을 주변을 날려 버렸다.

덜덜덜.

‘큭.. 소.. 손이..’

일격하나에 만신창이가 된 손을 들어 보던 난 녀석과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윽.

‘..!’

“슈하일, 카트리나 데리고 마스터에게 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일이야.”

치유력 하나만큼은 뛰어난 지 슈트렐리츠에 당했던 상처가 어느새 아문 마르쇼스가 양팔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 혼자론..”

“알았어, 뒤를 부탁해.”

타악.

“마르쇼스!!”

말리기는커녕 알겠단 듯 고개를 끄덕인 슈하일은 부상을 당한 내 허리를 잡아채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흐음~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좀 힘들 듯싶은데?”

도망치는 슈하일에게서 시선을 돌린 슈트렐리츠는 여전히 여유로운 목소리와 함께 자신을 가로막은 그를 비아냥거렸고, 마르쇼스는 정말이지 재수 없단 표정과 함께 눈을 감더니, 붉게 빛나는 눈동자와 붉게 달아오르는 마나하트를 들어내며 말했다.

“걱정 마, 손 하나는 썰어 줄테니까.”

그렇게 마르쇼스가 슈트렐리츠를 상대하던 그때, 난 슈하일에게 잡혀 지엘로니츠로 가고 있었다.

“놔! 이거 놓으라고!!”

“...”

마르쇼스가 혼자 남겨진다는 건 스스로 자원해 자폭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슈하일은 모든 것을 감내한단 굳은 얼굴로 내 외침을 무시하며 그저 달릴 뿐이었다.

“내가!”

기우뚱.

“놓으라 했지!!”

“큭.. 카.. 카트리나.”

쿠당탕.

몸에 힘을 주어 나를 잡은 슈하일의 균형을 흐트린 난 빠르게 달리던 속도의 반동과 함께 설원 위로 냉동댕이 쳐지며 우린 굴렀다.

“무.. 무슨 짓이야?!”

“형제라며? 지금, 이게 형제로써 할 짓이야?!”

“마르쇼스의 뜻을 모르겠어? 녀석은 자신을 희생해..”

“알아, 아니까 더더욱 네 행동에 열 받는 거야!”

그렇게 말한 난 금이 간 내 마나하트를 소중히 쥐며 내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녀석의 피를 활성화 시켰다. 어느 때보다도 무한한하게 들어오는 마벨의 마력을 느끼며 말이었다.

피이잉 ­

콰과과과과 ­

‘큭.. 이게 카트리나의 힘이라고..?’

날카롭게 회전하는 붉은 섬광과 함께 진홍빛 눈동자를 빛내던 그녀는 화상을 입은 자기 팔을 재생하더니 그녀의 기운 만큼이나 아름답고도 치명적인 붉은 샤벨 하나를 만들어냈다.

“오리지널? 그 딴 거 상관없어. 넌 오늘 나한테 뒤질 줄 알아.”

순수하게 끓어오르는 분노, 만족할 수 없는 분노가 그녀를 불태우고 불태워 모든 것을 삼킬정도로 커져가고 있었다. 마치 격노(??)의 여신으로써 모든 것을 절멸시킬 듯 끝없는 오만함을 품고 말이었다.

그렇게 감출 수 없는 적개심을 들어내며 으르렁거리던 카트리나는 범접할 수 없는 속도와 함께 은은한 붉은 잔상만을 남기고는 아까 왔던 그곳으로 사라졌다. 마치 열분(??)에 쏘아진 붉은 총탄처럼 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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