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72화 (72/135)

〈 72화 〉 72. 진홍(?)의 카트리나

* * *

[ 72. 진홍(?)의 카트리나 ]

아름다운 사막도시 빌헬미네는 종전이라는 기쁜 소식도 잠시 갑작스럽게 닥친 전보에 도시 전역은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30여 년 가까이 토르디에르를 다스리던 루트비히 남작의 병세가 심각해졌기 때문이었다.

스윽.

스윽.

말에서 내리는 페르티안을 본 토르디에르 장교들은 장교모를 잡으며 그에게 예를 표했고, 그는 오랜세월이 느껴지는 빌헬미네 중앙청 계단을 올라섰다.

무거운 표정과 함께 복도를 걷는 그의 뒤에는 부관인 발슈테인을 비롯해 폰, 헤인리, 뤼헬 그리고 페리츠가 뒤따르고 있었다. 화려한 그의 제복을 알아 본 걸까, 나프스 엘인 아티뤼크가 흰색 터번과 프러겔 장교복 차림으로 그에게 정중히 예를 표했다.

“오셨습니까.”

“남작님은?”

문밖을 지키고 있던 아티뤼크는 페르티안의 물음에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런가..?”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남작님께서 찾으십니다.”

시간이 없단 듯 그가 조용히 문을 열며 말하자 페르티안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 자작, 왔습니까?”

“남작님..”

노쇠한 남작은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호흡이 불안정한 모습이었고, 그의 곁에는 청록색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은 페트시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달려왔습니다.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하하.. 다 자연의 섭리입니다. 주어진 수명이 다 했으니, 돌아가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남작님은 아직..”

스윽.

그의 말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듣던 루트비히 남작은 페르티안의 손을 잡고는 놀라 바라보는 그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샤벨리아님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상심이 크시지요..?”

“...”

“자작께서 그 씰을 굉장히 아끼시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한다해도 위로조차 안 되겠죠.”

“아닙니다, 저는..”

세월의 차이일까, 그는 깊이 알 수 없는 인자한 눈길로 불안정한 페르티안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자작.."

"예."

“심적으로 힘드실 때 이 늙은이가 눈치 없이 부탁하나를 드려야겠네요.”

“무슨..”

“이 토르디에르를 맡아주시겠습니까?”

‘..!’

루트비히 남작의 제안에 페르티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 하나 섞이지 않은 평민출신인 자신에게 이 귀중한 땅을 넘겨 주겠다니, 귀족사이에서 있을 수 없는 제안을 자신에게 한 것이었다.

“폐하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당신만 허락한다면 이곳은 당신의 영지입니다.”

“어째서 저 같은 자에게..”

“모든 것에는 임자가 있는 법입니다. 이 늙은이 눈엔 당신이 이 땅의 적임자 같네요.”

그렇게 말한 루트비히 남작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시종에게 손짓하여 침대에 일어나 앉더니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페트시아를 응시하며 말했다.

“로팅겔 폰 루트비히의 이름으로 말한다. 페트시아, 너와의 계약을 파기한다.”

“마스터!”

피잉 ­

그의 말과 함께 페트시아의 마나하트가 작동하는가 싶더니, 닫혀 있던 결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마스터를 선택하는 것은 너의 자유지만, 나는 네가 페르티안 준작을 따랐으면 좋겠구나.”

“무슨 소리세요! 저는 아직 마스터의 씰입니다!”

완고하고 고집 쎈 씰. 융통성 하나 없이 바른 성격은 처음 봤을 때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변했다면 늙은 자신뿐이었다.

스윽.

“페트시아..”

젊었을 적부터 봐 왔던 그녀였다. 자기 첫사랑이자 아름다운 동반자인 그녀만 두고 가는 것이 마음이 걸리는 그였다. 같이 지냈던 많은 추억과 함께 그리움이 눈동자에서 지나치는가 싶더니, 자신을 원망스레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너만 두고 가는 날 용서해 주렴.”

“흐윽.. 마스터.”

그녀의 아름다운 청록샌 눈동자가 슬픔에 잠기며 눈물과 함께 자기 볼을 쓰다듬어 주는 그의 손길에 집착했다.

“난 네가 고통에 빠지는 걸 원치 않아.. 이것만이 너를 큰 슬픔에서 막아줄 수 있는 내 한계구나.”

그렇게 페트시아와의 계약을 해지한 남작은 페르티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부탁합니다, 준작. 그녀를 그리고 이 땅을.. 나 대신 잘 보살펴 주시오.”

“...”

“준작..”

부탁한단 그의 눈길에 페르티안은 어쩔 수 없단 듯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곤 토르디에르를 상징하는 그의 반지에 입을 맞추었다.

“고맙소.. 이 늙은이, 더 이상 여한이.. 없군요..”

“마스터!!”

“남작님!!”

페르티안의 수락에 행복한 미소를 짓던 남작은 작은 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스르륵 눈이 감기며 마치 잠이 들 듯 조용히 가 버렸다.

루트비히 남작의 별세. 그것은 갑작스럽고도 토르디에르에 있어 큰 슬픔이었다.

***

그그그 ­

“이렇게 빨리 오다니..”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한 마벨군의 속도에 인상을 찡그린 슈트렐리츠는 클라비우츠와 미르파크, 그리고 마르쇼스를 뒤로 밀어 떨쳐 내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모른 척하실 셈입니까?”

‘응..?’

“아님, 그렇게 위장하면 제가 모를 거로 생각하신 겁니까?”

“무슨 말을..”

알 수 없는 녀석의 말에 내가 눈을 깜박이자, 슈트렐리츠는 너무한단 눈빛과 함께 경멸한단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끝까지 모른 척을 한다면, 강제로 불러서라도 이야기를 나눠야겠네요.”

“뭐..?”

“코쿠마(Cochma).”

파앗 ­

녀석은 사(?)검처럼 구불진 샤벨 하나를 전송하더니, 소름 끼치는 어둠의 기운을 터트리며 내게 쇄도해 들어왔다.

“카트리나를 노린다! 막아!!”

그를 놓친 클라비우츠의 외침에 근처에 있던 슈하일과 아트리아가 샤벨 검신위로 기운을 개방하며 내 앞을 가로막으며 보호했다.

“오리지널, 감히 카트리나를 해코지하려고 해?!”

화륵­

아트리아는 뜨거운 화염이 흐르는 샤벨을 고쳐 잡고는 달려오는 슈트렐리츠를 맞이하며 슈하일에게 외쳤다.

“내가 앞을 맡을 테니까, 넌 녀석의 측면을 공격해!”

“오케이!”

순간적으로 빛과 함께 사라진 슈하일은 쇄도하는 슈트렐리츠의 옆에 나타나더니 샤벨을 휘둘렀다.

채쟁 ­!

하지만 그의 검을 막은 듯 보였던 슈트렐리츠의 샤벨은 순간 빛나오르는 슈하일의 검신에 흘려지듯 빠져나가더니 이내 그의 검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끝이다, 오리지널!”

“...”

부우웅 ­

‘..!’

회심의 미소와 함께 샤벨을 휘두른 순간, 아무런 느낌도 없이 베어지자 슈하일은 자신이 본 것이 허상 속 잔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서걱 ­

“커흑..!!”

‘당했다’란 표정도 잠시 어느새 그의 뒤에서 나타난 슈트렐리츠가 뒤에서 검을 찔렀고, 슈하일은 자기 가슴팍을 뚫고 나온 슈트렐리츠의 사검에 붉은 피를 토하며 괴로워했다.

“슈하일!!”

슈트렐리츠의 모습에 분개한 아트리아가 주변을 모두 불태울 듯 이글거리는 샤벨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그는 검으로 꿰뚫었던 자기 사검을 회수하고는 피를 흘리는 슈하일을 그녀에게 던졌다.

휘익 ­

“이 자식이..!”

날아오는 슈하일을 잡던 그 순간, 그 뒤로 날아온 슈트렐리츠가 검을 내질러 무방비로 노출된 그녀의 배를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

서걱 ­!!

‘..!’

“커억..”

투둑.

그렇게 무너지듯 쓰러지는 두 씰을 지나친 녀석은 오직 나만을 응시하며 쇄도해 왔다.

‘이판사판이다..’

피할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나는 다시금 붉게 빛나 오르는 마나하트와 함께 모든 힘을 개방했고, 차오르는 힘과 함께 샤벨을 돌려잡았다.

“싸움이 뭔지 보여주마.”

콰앙 ­

땅을 박찬 나는 빠른 속도로 녀석에게 향했고, 슈트렐리츠는 재밌단 듯 미소를 지으며 내게 샤벨을 휘둘렀다.

“그 육체로는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아버지!”

시이잉 ­

츠즈즈즈 ­

“그건, 해 봐야 아는 거야!!”

작은 몸을 이용해 설원위로 미끄러져 녀석의 검을 흘린 난 몸을 박차 뒤가 비어 있는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마르쿠트(Malchut).”

피이잉 ­

“이미 본 기술이야!! 라비에스(Rabies)!!”

파지직 ­

다시금빛나오르는 녀석에게 쇄도한 난 맹렬히 쏟아지는 단검을 기꺼이 온몸으로 받아내고는, 그대로 슈트렐리츠의 목을 움켜줘선 설원 아래로 떨어졌다.

꽈악.

“무슨..!”

콰아아앙 ­

“끄아악!!”

전투의 광기 덕분일까, 난 녀석의 팔을 무릎으로 찍어 눌러 눕히고는 섬뜩한 진홍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놀란 녀석에게 말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즐겁단 듯 실성한 광인처럼 말이었다.

투둑.

“너도 피는 흘리겠지?”

그렇게 하얀 설원위로 떨어지는 피와 함께 키득거리며 웃던 난 광기 어린 붉은 기운을 터트리며 그에게 속삭였다. 마치 지옥의 끝을 보여주겠단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처럼.

“폭살(??).”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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