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74화 (74/135)

〈 74화 〉 74. 불완전한 혁명

* * *

[ 74. 불완전한 혁명 ]

페르티갈 로슈비치의 대도시 중 하나인 ‘카엘체’에는 공화국이 전역에서 동원한 자유국민군 20만과 공화국수비대 8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카엘체는 공화국 수도 ‘플루스’로 가기 위해 꼭 지나쳐야 하는 곳으로 공화국 처지에선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요충지였다.

게다가 공화국 북부 공업도시인 카엘체는 제국과 왕정파에 점령당한 남서부지역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남은 공업지대라 할 수 있었다.

척.

“통령과 의원들은?”

“안쪽에 계십니다.”

카트리나와의 싸움에서 도망친 슈트렐리츠는 피로 넝마가 된 흰 제복차림과 함께 근위병의 경례를 받으며 거대한 저택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슈트렐리츠 경이 오셨습니다.”

“오오.. 슈트렐리츠.”

응접실엔 페르티갈 로슈비치를 뜻하는 마젠타 색상의 옷을 입은 십여명의 사람들이 지도를 두고 심각한 얼굴로 회의하고 있었는데 그의 등장에 탁자 중앙에 있던 중년신사가 일순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통령께서 주신 병력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무슨 소릴..! 슈트렐리츠 경이 온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통령의 위로에 주위 의원들은 잠시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이에 질새라 그를 두둔하며 위로하기 시작했다.

“맞소, 이번 전투로 제국놈들도 우리 공화국의 힘을 느꼈을 겁니다.”

“암! 슈트렐리츠 경을 살릴 수만 있다면 고작 4만의 병력은 아무것도 아니오.”

그렇게 슈트렐리츠를 두둔하던 그때, 벽난로 근처에서 그와 의원들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젊은 장교하나가 붉어진 안색과 함께 와인잔을 바닥으로 던지며 통령과 의원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쨍그랑!

“지금 4만의 병력이 아무것도 아니라 했습니까?!!”

“저.. 저자가 미쳤나?!”

“지금 통령앞에서 예의없게 무슨 짓인가?! 라인슈볼츠!!”

검갈색 머리카락에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안광은 젊은 장교임에도 범상치 않았고, 다소 작은 키임에도 그의 존재감은 응접실 모두를 압도할 정도로 대단했다.

“슈트렐리츠! 패전한 것도 부족해 지휘관이란 자가 부하들을 버리고 혼자 살아돌아와?! 네 죄는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스릉 ­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대노한 라인슈볼츠는 허리에 찬 샤벨을 뽑더니 웅성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의원들 사이를 지나 성큼성큼 걸어가선 자신을 올려다보는 슈트렐리츠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네 행위는 모든 시민들을 기만한 것! 너를 죽여 법의 지고함을 알리겠다!!”

“...”

그의 일갈에 슈트렐리츠는 변명은 없단 듯 조용히 눈을 감았고, 라인슈볼츠는 주저없이 샤벨을 들어 그의 목을 내리치려 했다. 그러던 그때, 응접실 소파쪽에서 작지만 또렷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콜록.. 멈추게, 라인슈볼츠.”

움찔.

그 완강한 라인슈볼츠도 어쩌지 못하는 자인지 슈트렐리츠의 목 가까이 내리 떨어지던 샤벨이 우뚝 멈춰 섰다.

스윽.

병약한 자인지 그가 힘겹게 일어서자 어린 시종 둘이 그의 허리와 팔을 부축하고는 통령과 의원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콜록.. 그만하면 됐어.”

검청색 머리카락의 미남자가 하나가 창백한 안색과 함께 흘러나오는 기침을 손수건으로 막으며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미엘폴스카!! 아무리 자네의 씰이라도 공과 사는 구별하게!!”

“콜록.. 용서해주게, 지금 그가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보다 자네가 잘 알지 않는가?”

미엘폴스카의 말에도 라인슈볼츠는 성난 얼굴을 풀지 않고는 사자와 같은 성난 모습으로 그를 질책하며 열정적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법을 어기고 봐준다면, 이 나라에 법을 지키는 사람은 없을걸세! 공화국의 법전을 만든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부끄러운줄 알게!!”

“콜록.. 콜록.. 하하하.”

정열적인 그의 일갈에 미엘폴스카는 오히려 기쁘단 듯 웃음을 흘리고는 씩씩 거리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콜록.. 불꽃 같은 내 벗이여, 자네의 말은 언제나 명확하고 직설적이군. 난 그런 그대가 좋지만, 세상은 명료한 수학처럼 논리적인 곳이 아니네.”

그렇게 말한 미엘폴스카는 그의 손에 들린 샤벨을 뺏고는 시종들의 부축을 받아 슈트렐리츠에게 다가가선 리본으로 묶은 뒷머리를 그대로 잘라버렸다.

‘..!’

“콜록.. 콜록.. 슈트렐리츠, 라인슈볼츠의 말에 틀린 것은 없다. 다만 나라의 사정이 어느 때보다 불안 하고 위급하기에 이번 실책은 이것으로 넘어가겠다. 그대를 지키기 위해 죽은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욱 공화국과 시민들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라.”

스윽.

“명심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슈트렐리츠는 머리를 조아리며 고객를 숙였고, 미엘폴스카는 손에 들린 샤벨을 원래의 주인인 라인슈볼츠에게 넘기며 말했다.

“그의 자존심과 같은 머리카락을 잘랐으니, 이번 한번은 용서해주게. 다음번에도 같은 실수를 한다면 내 그의 목이 떨어져도 상관하지 않겠네.”

“흥..!!”

미엘폴스카의 말에 라인슈볼츠는 어쩔 수 없단 듯 샤벨을 낚아채 검집에 넣고는 응접실을 빠져나갔고, 그런 그의 모습에 다행이란 듯 미엘폴스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냐오냐하니까, 하급 포병장교 주제에 아주 기고만장하군!!”

“맞소! 아주 근본도 없는 자를 받아줬더니, 이젠 검을 지맘대로 휘두르는 군!!”

라인슈볼츠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의원들이 너도나도 입을 열기 시작했고, 통령도 자기 앞에서 무례를 저지른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은 열지 않았지만, 탐탁지 않은 눈으로 그들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콜록.. 콜록.. 그의 무례는 제가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아무리 의원의 친우라지만, 이건 도를 지나쳤소!”

“콜록.. 맞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유능한 장교도 없지 않습니까?”

“크흠..”

혁명이후, 귀족으로 이루어진 대다수의 장교들이 군을 이탈하거나 외국으로 망명했기에 페르티갈 로슈비치를 이끌 노련한 장교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공화국 수뇌부들은 젊은 평민장교들을 대거 채용해진급시켰는데 그중 두드러지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가 바로 라인슈볼츠였다.

대담하고 뛰어난 그의 전술은 위태롭던 초기 전장상황을 호전시키는데 큰일조를 했다. 게다가 이번 지엘로니츠 기습작전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작전이었다.

“콜록.. 콜록.. 그리고 신분을 따진다면 우리가 그 옛날 귀족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흠흠..”

그의 말에 의원들은 입을 씰룩이며 헛기침을 했고, 어느 정도 진정된 응접실 분위기에 미엘폴스카는 은은한 미소와 함께 지도에 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콜록.. 군을 움직이죠.”

“어디로 말이오?”

통령은 어서 말해 보란 듯 그를 바라보았고, 미엘폴스카는 제국과 전선을 이루는 곳에 있는 도시, ‘셀롱스크’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이곳에서 결착을 지을 겁니다.”

***

스윽 스윽.

“에.. 엘로이즈, 나.. 수.. 숨 막혀..”

“참아.”

참으라고? 이건 참는 수준을 넘어 질식할 수준이었다. 지엘로니츠 전투의 공로로 오늘 황제로부터 훈장을 받기에 나는 엘로이즈에게 끌려가 예복과 함께 치장을 받고 있었다.

‘훈장이라니..’

제국의 씰도 기가차건만, 훈장까지 받으려니 정말이지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더욱 견딜 수 없는 건 사정을 봐주지 않는 엘로이즈의 손속이었다.

꽈악.

“으에엑!! 그.. 그만! 그만 엘로이즈!!”

“아름다움엔 고통이 따르는 법이야.”

시발, 그 고통 한 번만 더 받다간 그대로 요단강을 넘을 것 같았다. 얼마나 허리를 졸라 매는지 정말이지 ‘헉 헉’거릴 정도로 버거웠다.

“음.. 됐어.”

‘살았다..’

스윽 스윽.

“아아악!!”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는지 이제는 내 머리칼을 쥔 그녀는 빗으로 사정없이 빗는 것이 아닌가?

“머리.. 머리 빠.. 빠지거 같아!”

“참을성이 없는 아이구나.”

“잡아당기지 마!! 아아악!! 하.. 항복!! 항복!!!”

그녀의 빗질과 함께 왜 내 오른쪽 눈이 위로 딸려가는지 나는 그녀의 허벅지에 급하게 탭을 하며 신호를 보냈지만, 엘로이즈는 무표정한 얼굴만큼 미용에 있어 냉정했다.

‘흑.. 당해 버렸어..’

모진 고통과 시련을 넘긴 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훌쩍였지만, 엘로이즈는 어느 때보다 눈을 반짝이며 만족스럽단 듯 그 변화없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다 됐..”

그렇게 꽉 끼는 허리와 예식 제복을 살피던 그때, 방으로 들어오던 마르쇼스가 내 모습을 보더니 놀란 눈동자와 함께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곤 잡은 방문손잡이를 잡아당겨 자신이 들어온 방문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와 씨발.. 쟤가 카트리나라고?”

움찔.

“이거 완전 사기아냐? 대체 얼굴에 뭘 쳐 발랐길래 얼굴이 완전..”

퍼억!!

정말이지 예쁜 구석이 없다. 사람 얼굴을 손가락질을 하며 정말 전 재산 사기당한 인간처럼 핏대를 세울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울컥한 마음에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마르쇼스의 안면에 꽂아주고는 내 뒤에 서 있던 엘로이즈에게 말했다.

“가자, 흥!!”

“응.”

그렇게 ‘저건 가짜야.. 가짜라고’하며 끝까지 사람 속을 뒤집는 마르쇼스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행사장이 있는 지엘로니츠 중앙청 광장으로 향했다.

“기립!”

척.

내 등장에 광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과 장교들은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차렷을 했고, 단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마벨은 미소와 함께 몸을 돌리는가 싶더니, 치장한 내 모습에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리며 놀랐단 듯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흥..’

새로운 녀석의 모습에 묘한 우쭐거림을 느낀 난 도도한 표정과 함께 새침하게 단상에 올랐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마벨은 그런 내 모습에 풋하며 웃음을 터트리며 날 에스코트했다.

“오늘, 너무 예쁜거 아니야?”

‘뭐.. 뭐래는 거야..’

사람 신숭생숭거리는 말을 내뱉는 녀석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단상 중앙에 선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황제의 칙사와 마벨의 부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마벨의 11기사단이 날 대견하단 듯 바라보고 있었다.

스릉.

“카트리나 폰 브라운슈파이크 볼펜뷔텔 사무엘은 무릎을 꿇라.”

칙사의 말에 나는 다소곳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는 황제에게 하사받은 예검을 들어 광장모두에게 소리쳤다.

“오늘, 짐은 괴뢰국의 잔당들과 제국의 반역자, 레벨리스 중 하나를 격퇴했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아무리 레벨리스라 해도 제국의 오리지널. 그런 그를 물리친 그대의 공은 무시 못 할 공적이다. 이에 짐은 그대에게 그에 걸맞은 치하를 하려 한다.”

그렇게 말한 칙사는 검을 내 양어깨를 차례로 내리누르며 예식을 이어가는가 싶더니, 나를 포함한 광장 모두가 놀랄만한 말을 큰소리로 공표했다.

“클로비스 요제파 발부르가 에르미아 하켄이 말한다. 카트리나 폰 브라운슈파이크 볼펜뷔텔 사무엘, 그대를 제국의 올라운드 포틴으로 임명하며, 제국을 배신한 레벨리스를 처단한 것을 명한다!”

“..!”

‘뭐..?’

놀란 내가 칙사를 올려다보자, 그는 올라운드를 상징하는 황금수가 놓여 흰색 제복외투를 내 어깨를 둘러 주고는 놀라쳐다보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황제께 무한한 충성과 피의 승리를! 올 하일 하켄! 올 하일 클로비스 4세!!”

그러자 마벨을 비롯한 부관 그리고 광장의 병사들 모두가 일제히 차렷을 하더니 칙사가 든 황제의 예검에 경례를 하며 외쳤다.

“올 하일 하켄! 올 하일 클로비스 4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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