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75화 (75/135)

〈 75화 〉 75. 불완전한 혁명

* * *

[ 75. 불완전한 혁명 ]

“오.. 올 라운드라고..?”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다른 것도 아닌 제국의 올 라운드라고? 훈장이란 생각에 가볍게 왔던 나는 생각지 못한 반전에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

씨익.

하지만 단 한 명. 마벨만은 미리 알고 있었는지 놀란 내 표정을 즐기듯 진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눈을 찡긋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 이 새끼가!’

벌떡.

그 모습에 내가 벌떡 일어나자, 순간 내 뒤로 엄청난 사람들의 함성을 울렸다.

“와아아아!!”

‘뭐.. 뭐야..?’

사람의 함성이 일제히 울리면 사람의 몸이 밀린다는 것이 사실인건가,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자, 하급장교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모자를 잡아 흔들며 내 올 라운드 진급을 축하해 주었다.

스릉 ­

“선혈(?血)의 여신 만세! 하켄 제국 만세!!”

“뭐..? 서.. 선혈?”

붉은 내 기운 때문에 생긴 별명인지, 병사들은 눈을 반짝이며 내게 환호를 보냈고 마벨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작게 속삭였다.

“뭐 해? 병사들을 위해 손을 흔들어야지?”

“너..!”

스윽.

‘..!’

그렇게 말한 마벨은 내 손목을 잡더니 예식용 미소와 함께 팔을 들어선 손을 흔들게 했다.

“와아아아아!!”

그러자 병사들은 더욱 환호를 내지르며 소리를 내질렀고, 생각지 못한 병사들의 반응에 난 더욱 눈을 빠르게 깜박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설원에서 병사들을 구한 네 일화가 퍼진 모양이야. 게다가 네가 포대진지로 달려간 것이 미화되는바람에 지금 아주 화제라고.”

“뭐..?”

“아무래도 전장의 여신이 있다면, 널 굉장히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이렇게까지 운까지 따르는 실력자는 흔치 않거든.”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단 듯 마벨은 재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곤 환호하는 병사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했다.

“올 라운드라니.. 후작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자기 씰이 제국 최고의 씰임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자식이 출세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명예였다. 많은 귀족들이 훌륭한 씰들을 가지고 있다지만 제국 역사상 올 라운드가 된 씰은 지금까지 전무했다는 것은 그 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르공 백작과 프레드릭 백작은 마벨에게 예를 표하며 그에게 축하인사를 전했고, 마벨은 자기 부관들에게 미소와 함께 답례로 고개를 숙이며 축하를 받아주었다.

“카트리나 경, 축하드립니다.”

“네..? 아, 가.. 감사합니다.”

올 라운드가 된 이상, 그녀의 위치는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비호를 받는 씰인 이상 고위귀족들도 그녀를 대우해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백작들을 비롯한 예하 귀족들의 축하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한 가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적에 엄격하고, 능력있는 자를 예우한다는 하켄제국의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고위귀족부터 모두가 나의 파격적인 진급에도 불만스런 말하나 없이 인정을 하며 축하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축하해, 카트리나. 아웅! 이 귀여운 것!!”

“켁켁.. 아.. 아트리아..!!”

올 라운드 외투를 입은 내가 대견스럽단 듯 눈을 반짝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아트리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꼬옥 껴안으며 흔들었고, 나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묻혀 숨을 쉬기 위해 버둥거렸다.

“흐윽.. 우리 형제 중에 올 라운드라니, 네가 대견스럽구나.”

“아.. 네..”

생긴 건 이십 대 중반인 주제에 클라비우츠는 마치 대학에 붙은 딸내미 보듯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궁상을 떨었다. 그렇게 늙다리 아저씨마냥 내 옆에서 훌쩍이는 클라비우츠를 난감하게 바라보던 그때, 내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응..?”

“다 컸어.”

“하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 흘리개였는데.”

뻔뻔한 말을 표정하나 바꾸지 않는 엘로이즈의 모습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그래, 니들 마음대로 해라’란 표정으로 해탈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흥, 올 라운드 됐다고 쪼개기는.”

‘뭐.. 뭐? 뭘 쪼개?’

뒤에서 삐죽거리며 서성이던 마르쇼스는 내 시선에 입을 쌜쭉거리며 다가오더니 내 등을 툭 한 번 쳐주고는 ‘흥’하며 단상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저건 뭔 또라이래..?’

정말이지 하나 같이 정상이 없는 11기사단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던 그때, 단상 아래에서 전령하나가 급하게 뛰어와 올라왔다.

“보고입니다, 페르티갈 로슈비치 남동부로 프러겔군이 국경을 넘었단 소식입니다.”

‘..!’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닌지 또 다른 전령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선 먼저 온 전령 옆에서 서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급보입니다! 페르티갈 로슈비치 북부방면으로 키프루스 군이 국경을 넘었다 합니다!”

프러겔에 이어 키프루스까지 국경을 넘다니, 갑작스러운 급보에 마벨은 표정이 굳어지며 물었다.

“정말 프러겔과 키프루스가 맞느냐?”

“네! 정찰병이 두 눈으로 문장을 확인했다 합니다!!”

“흠..”

비단 혁명은 제국만의 우려가 아니었는지 인접해 있던 두 국가 모두 군대를 파견해 페르티갈 로슈비치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듯싶었다.

“지휘관은?”

“키프루스의 지휘관은 쿠로조프 원수로 설원의 몽둥이라 불리는 카자크 기병대를 이끌고 왔다 합니다.”

“프러겔은 누구냐?”

“총사령관은 셰이엔 공작으로, 그의 휘하로 세타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페르티안 남작과 레벨리스인 플로헤타가 참전했습니다.”

“남작?”

페르티안이란 말에 마벨의 눈썹이 씰룩이는가 싶더니 다시금 묻자, 전령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번 토르디에르 원정에 성공해 프러겔 여왕이 그를 남작에 봉했다 합니다.”

“하하하. 대단하군, 벌써 남작이라니!”

웃음을 터트리는 마벨이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불타올랐고, 그와 반대로 나는 원정에 성공했다는 소식과 그가 남작에 올랐다는 것에 기쁜 내색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작 중요할 때 그의 곁에 없었단 사실을 떠올린 난 알 수 없는 속상함과 함께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이 왔다는 건, 예의 그 씰도 왔다는 거겠지?”

‘아..’

아직 내 소식을 모르는 마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전령에게 물었고, 나는 곧이어 실망할 그의 모습에 옅은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프러겔의 마녀 말씀이십니까?”

‘저게 죽으려고! 누가 마녀란 거야?!!’

전령의 말에 울컥한 내가 눈에 쌍심지를 켜던 그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말이었다.

“마..마녀라면 프러겔 군 선봉에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뭐..?!!’

“역시 왔군.”

말도 안 된다. 내가 여기 있건만 대체 누가 왔단 말인가?

타악!

“확실해?!”

“예..?”

"그녀가 확실하냐고!!!”

“카트리나!!”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든 나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전령의 멱살을 쥐며 소리쳤고, 전령은 우왁스런 내 멱살잡이 켁켁 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화.. 확실합니다. 황금빛 머리칼과 푸른 눈.. 분명 프러겔의 마녀였습니다.”

‘!!!’

***

다그닥.

“크흐.. 날씨 한 번 죽이네.”

하얀 설원 위로 프러겔 왕실을 상징하는 푸른 ‘다알리아’ 문양과 함께 푸른색과 흰색을 배색한 프러겔의 전열보병들이 그 모습을 들어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황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차가운 페르티갈 로슈비치의 바람이 좋은지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샤벨리아가 백마를 몰아 모습을 들어냈다.

화려하고 찬란한 태양의 빛을 머금은 황금빛 머리카락과 푸른 호수를 담은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고요한 설원 건너편에서 그들을 막기 위해 응전해 온 공화국군을 바라보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는 병사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스릉 ­

“뤼헬, 나팔.”

스윽.

“알겠습니다. 돌격준비.”

“돌격준비!!”

빠바바방­ 빠바바방 ­

샤벨리아의 명령에 뤼헬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자, 돌격을 준비시키는 간결하면서 위협적인 나팔소리가 들리더니 프러겔의 기마대들이 일사불란하게 샤벨을 빼 들며 진형을 갖추었다.

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샤벨리아는 백마를 몰아 길게 늘어선 병사들 앞을 갈로질러 달리며 소리쳤다.

“승리의 나팔을 불어라! 여기 신성 프러겔 왕국 제1성, 샤벨리아 폰 퓌러슈타트가 그대들 앞에 서겠다.”

고고한 자세로 샤벨을 뽑아 그녀가 외치자, 병사들은 그것만으로도 사기가 오르는지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며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와아아아!! 승리의 여신이 우리에게 있다! 샤벨리아 만세! 프러겔 만세!!”

그 말을 뒤로 돌격개시를 알리는 기마대의 나팔소리와 함께 대규모의 프러겔 기마대가 설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으로 샤벨을 빼든 샤벨리아가 미소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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