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77화 (77/135)

〈 77화 〉 77. 불완전한 혁명

* * *

[ 77. 불완전한 혁명 ]

드르륵 쿵 ­

“빨리빨리 옮겨라!!”

셀롱스크에서 사흘거리에 위치한 ‘코르치에나’항은 붉은 제복으로 상징하는 연합왕국의 군대가 보급품을 나르고 있었다. 수세에 몰린 페르티갈 로슈비치 공화국의 요청과 의회주의를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연합왕국은 2만의 정예군을 코르치에나 항에 상륙시켰다.

내륙으로 들어간 원형의 코르치에나 항구의 해안에는 에로우페 대륙 최강의 해군이라 불리는 연합왕국 7함대가 정박해 있었고, 그들의 동맹인 쥐른베르크 공국의 1만 5천의 병력이 속속히 항구에 도착해 들어왔다.

척.

“부대 상륙이 끝났습니다, 후작각하.”

붉은색 제복위로 고급스러운 검은색 외투를 걸친 검은 안대의 남자가 부관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흐트러진 자기 흑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제국군이 출병했다는 소식이다. 헌팅턴 백작에게 ‘엠블롱’언덕은 무슨 수를 써서도 방어하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항구 반대편 언덕 위엔 연합왕국기와 함께 대규모의 포대진지가 구축되고 있었고, 그의 명령에 부관은 장교모를 잡아 절도 있게 경례하고는 그의 말을 전하기 위해 말을 몰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이젤 후작 각하, 해군은 어떻게 할까요?”

회색 머리칼의 미남자가 말을 몰아 다가와 묻자 나이젤 후작은 미소와 함께 그를 맞이하며 말했다.

“버크셔 자작, 배멀미는 이제 괜찮은 겐가?”

“또 놀리시는 겁니까?”

“하하하, 놀리긴. 걱정돼서 그러지.”

“역시.. 놀리시는 거군요.”

버크셔는 나이젤의 말에 익숙하단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후작은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단 듯 미소와 함께 집게손가락 등으로 자기 턱을 비비는 특유의 버릇과 함께 말을 이었다.

“함대는 항구에 정박한다.”

“예? 육군을 지원하는 게 아닙니까?”

그의 말에 나이젤은 씨익 웃더니 이해할 수 없단 듯 쳐다보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코르치에나 항구를 보여주며 말했다.

“항구를 제외한 주변 지역의 지대가 높은 탓에 포격지원을 하기엔 시야가 제한적이라네. 기껏 해봐야 항구에 접근하는 적들에게 위협포격을 하는 것이 전부겠지.”

“확실히 그렇군요.”

“그리고 언제까지 해군에 기댈 것인가? 왕립근위군으로써 부끄럽지 않나?”

후작의 말에 버크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교모를 잡고는 그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번 전투로 제국군에게 연합왕국의 힘을 보여주죠.”

“그래야지, 하지만 방비는 게을리하지 말게. 그 여우같은 마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물론입니다.”

마벨의 명성은 연합왕국에까지 유명했고, 지금껏 그와의 전투에서 그리 좋은 추억이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그를 꺾기 위해 연합왕국 장교 모두가 이를 벼르고 있었다.

“어서 와라, 마벨. 내 너를 위한 특별한 여우사냥을 준비했다.”

***

미할리츠 후작의 동부방면군이 셀롱스크로 향하는 프러겔의 후방을 압박하는 사이 마벨의 남부방면군은 공화국의 보급항이자 연합왕국의 연결로인 코르치에나 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항구라니? 그 작은 항구가 뭐가 중요한데?”

나는 말을 몰아가는 마벨의 옆으로 붙으며 묻자 그는 은은한 미소와 함께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알고 싶어?”

‘이 자식..’

알려 줄까 말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놀리는 듯한 녀석의 얼굴을 보자 울컥한 나였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아.. 알려 줘.”

“흠.. 이거 알고 싶은 사람 태도가 아닌데?”

울컥.

말고삐를 잡는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나였지만, 녀석은 그런 내가 재밌는지 싱글거리며 내 속을 계속해 뒤집기 시작했다.

“뭔가 배우고 싶으면 사정을 해야지. 알려 줘가 뭐야? 알려 줘가.. 자, 따라 해봐. 알려주세요, 마벨님. 응? 목소리는 좀 더 애교를 섞어서 하고.”

빠직.

나도 모르게 허리춤에 매달린 샤벨로 향하는 손에 마벨은 더는 놀리면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곤 내게 말했다.

“카트리나, 넌 전쟁에서 중요한 게 뭐라 생각해?”

“뭐..?”

중요한 거라니? 갑작스러운 녀석의 질문에 난 화가 난 것도 잊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압박감이야.”

“압박감?”

“그래, 제아무리 완벽한 사람도 초조하고 긴장되는 상황에선 실수하는 법이야.”

그렇게 말한 마벨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형세가 반이고, 인화(人?)가 반이란 말이 있어. 나는 코르치에나를 점령해 혁명군을 고립 시킬거야.”

“고립?”

“연합왕국이 적의 요청에 그럴싸한 명분으로 참전했다지만 나는 녀석들이 얼마나 철저한 기회주의자들이란 걸 알지.”

그들을 다루는데 익숙하단 듯 마벨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결코 작은 항구가 아니야. 오히려 이번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게 될 중요한 전투가 될 거야.”

“셀롱스크보다 더?”

“셀롱스크? 카트리나, 영리한 자는 중요한 것을 대놓고 지켜지 않아. 오히려 평범한 듯 교묘히 숨겨 놓고는 상대를 기만하지.”

묘한 녀석의 말을 이해하려 보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며 끙끙거리는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녀석은 순간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할 거 없어. 곧 알게 될 거니까.”

나를 놀리는 듯한 녀석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잠시 후 난 저 멀리 푸른 바다와 함께 노을지는 아래로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코르치에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가..’

감상도 잠시, 어두워지는 주변과 함께 코르치에나를 바라보던 마벨은 손을 들어 군대를 멈추었다.

“후작 각하, 물러서십시오. 항구 반대편에 적의 포대진지가 있습니다.”

노르공 백작의 보고에 마벨은 망원경을 들어 분주히 전투 준비를 하는 ‘엠블롱’언덕을 살피더니 제법이란 듯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적의 사령관은?”

그의 물음에 카트브라 남작이 다가오더니 껄끄럽게 됐단 듯 그에게 보고했다.

“연합왕국의 나이젤 펄렛 후작입니다.”

“나이젤이라..”

잘 짜인 방어진 지가 이해가 된단 듯 작게 중얼거리던 마벨은 생각을 알 수 없는 묘한 미소와 함께 도시를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재밌군, 그 도전 받아 주지.”

***

“하아암, 도시 순찰이라니.”

계엄령이 내려진 코르치에나 거리는 거리를 밝히는 불빛만이 있을 뿐 사람 하나 없는 것처럼 을씨년 스러웠다. 그런 거리 가운데로 붉은 제복의 연합왕국 전열보병 두 명이 플린트 락을 어깨에 맨 채 순찰을 하고 있었다.

“제국놈들 깜짝 놀랐겠지? 안 그런가?”

“암암, 아마 쳐들어올 염두도 못 낼걸?”

견고한 자신들의 요새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두 병사는 낄낄 거리며 거대한 함선들이 정박된 항구를 내려다보며 걷던 그때, 정박된 함선 하나가 붉은 섬광과 함께 폭발해 올랐다.

콰아아앙 ­!!

“뭐.. 뭐야..?!”

갑작스러운 폭발에 놀라 뒤로 넘어진 것도 잠시 곧이어 폭발음과 함께 함선 두척이 앞서 폭발한 함선처럼 붉은 섬광과 함께 반파되어 온 도시를 깨웠다.

콰과과과광 ­!!!

댕댕 – 댕댕 ­

폭발을 확인한 경계병의 종소리가 급박하게 울리고, 타오르는 함선 위로 검은 인영하나가 항구 아래로 착지했다.

“저.. 적이다!!”

폭발에 놀라 넘어졌던 두 순찰병은 플린트 락을 들어 침입자를 향해 겨냥하며 소리쳤다.

“머.. 멈춰라!!”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러자 검은 후드 아래로 거대한 검은 창이 내려와 잡히더니 단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켄 대제국, 마벨 후작 휘하 11기사단. 호프슈어 중위다.”

‘..!’

“11기.. 기사단..?!”

뒤집어쓴 후드를 뒤로 넘기자 짙은 갈색머리에 푸른 눈을 한 차가운 인상의 미소녀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정예 씰임을 파악한 순찰병들은 싸울 전의를 잃었는지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놓치지 않는다.”

파밧 ­

“히익.. 왜.. 적의 기사단이 여기에 있는 거야?!”

도망치는 그들을 응시하던 그녀의 모습이 잔상과 함께 사라지던 것도 잠시 거대한 검은 창이 순찰병의 가슴팍을 뚫고는 하늘 위로 나왔다.

콰직 ­

“커허어억!!”

“으아아아악!!!”

파앙 ­

그런 그녀의 모습에 놀란 다른 순찰병이 플린트 락을 들어 쏘던 그때였다. 일순 나타난 핑크빛 머리카락의 미소년이 그가 발사한 플린트 락 총탄을 낚아채 잡더니 그대로 그에게 되돌려주었다.

퍼억 ­

“커흑..!! 어.. 어떻게..”

믿을 수 없단 듯 스르륵 쓰러지는 순찰병을 향해 미소를 짓던 그는 찔렀던 창을 회수하는 호프슈어를 돌아보며 말했다.

“호프슈어, 곧 몰려 올 거야. 어서 이동하자.”

“그레조우, 저기.”

움직이려는 그레조우를 멈춰세운 호프슈어는 무언가 발견했는지 밤하늘을 가리켰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가던 그레조우는 이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맙소사..”

밤하늘 위로 떨어지는 붉은 혜성, 그것은 바로 카트리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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