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85화 (85/135)

〈 85화 〉 85. 시계(??)제로(ZERO)

* * *

[ 85. 시계(??)제로(ZERO) ]

“마력은?”

“정상입니다.”

“정상? 정말 체크한게 맞나?!”

“그.. 그렇습니다.”

총탄을 맞아 불편한 몸임에도 무엇이 그를 불쾌하게 하는지 마벨은 아름다운 미간을 찌푸리며 수명의 마도사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침상에 누워있는 카트리나 주변을 초조한 듯 서성이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들 틈을 파고들며 소리쳤다.

“비켜라!”

“가.. 각하?”

“내 직접하겠다.”

무리한 마력운용은 부상을 악화시키기에 만류하는 측근들이었지만, 당사자인 그는 그런건 아무런 상관없단 듯 손위로 엄청난 마력을 생성시키며 잠에 빠진 카트리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우웅 ­

“허허..”

“세상에..”

대륙최고의 마도사, 그 명성이 허언은 아닌지 마벨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빠른 마나배열을 완성시키며, 그녀의 마나하트를 하나씩 해제하기 시작했다.

미세한 마력공정의 집약체라 불리는 마나하트를 마치 시계를 살피듯 간단히 헤집는 그였지만, 그녀의 마나하트는 마도사들의 말대로 정상적으로 마력을 흡수하며 작동하고 있었고 육체 또한 완벽하게 재생된지 오래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카트리나의 의식만큼은 해답없는 문제를 풀듯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씰에 대해서라면 자신만큼 아는이가 없을진데 마벨은 난생처음 풀지 못하는 난제에 당황하며 세상고민없이 평온하게 잠이 든 카트리나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그 분이라면..”

순간 누군가를 떠올린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잠에 든 그녀를 안으려 하자, 이번엔 그의 주변에 있던 부관들이 깜짝 놀라며 마벨을 만류하기 시작했다.

“가.. 각하?!”

“그 몸으로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평상시와 다른 충동적인 그의 행동에 노르공과 프레드릭이 그를 말려보지만 마벨은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놔라! 당장 그 분을 뵈어야 한다!!”

“각하!!”

전쟁이 한창인데 대체 어딜 간단 말인가? 부관들은 필사적으로 막사입구를 막으며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씰 하나에 전쟁을 포기하겠단 말씀이십니까?!”

“대체 왜 이러십니까?! 이대로 후퇴한다면 저흰 황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젠장!!”

쾅 ­!!

차오르는 답답함과 울분을 이기지 못한 마벨이 애꿎은 탁자를 내리치자 노르공은 막사 한켠에 놓여져 있던 피와 진창으로 얼룩진 연대기를 가지고 와선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진정 카트리나 경의 노력을 져버리실 참입니까?”

“흐음..”

“그저 얻은 것이 아님을 각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부탁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몰핀에 취해 평소엔 하지도 않을 치기어린 부탁을 그녀는 정말로 들어줬다. 게다가 눈을 떴을 때 언덕위에 게양된 제국기를 얼마나 믿지 못하고 뚫어지게 봤던가?

“바보같은 것..”

그녀는 바보였다. 어떻게 말을 한다고 그것을 들어줄 생각을 한단 말인지, 세상에 바보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녀를 지목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싫지는 않았다. 무모하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그녀이기에 너무나도 소중했다. 백만개, 아니 천만개 언덕을 얻은들 그녀를 잃을 바엔 모든 것을 주는 것이 낫다. 그깟 땅한조가리가 단 하나인 그녀를 대체할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급보입니다!!”

“뭐냐?!”

막사안으로 급히 들어온 전령은 노르공의 외침에 모자를 잡아 경례를 하고는 다급히 말했다.

“연합왕국의 나이젤 후작이 항구를 벗어나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

“병력은 어느정도냐?”

“칠만정도 되는 대군입니다.”

“뭐.. 뭐라?!!”

항구에 박혀 방어전을 펼칠 거란 예상과 달리 온 병력을 이끌고 나온 나이젤의 전면전에 노르공과 다른 귀족장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조성된 공화국군과 달리 그들은 연합왕국의 정예군이었다.

그런 정예가 전면전을 하자고 치고 나오자 아무리 산전수전을 겪은 마벨의 부관들이라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다, 전군 전투준비를 해라.”

“가.. 각하?!”

카트리나가 누워있는 침상에 기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벨은 차갑게 식은 눈동자와 함께 흐트러진 백금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녀석도 결판을 원하는 것 같으니 응해주지.”

“정말 전면전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곁에 있던 카트브라 남작이 그에게 묻자 마벨은 아무 걱정없이 잠에 든 카트리나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바다를 건너는 놈들 중 성한 놈은 없을거다. 이 마벨의 이름을 걸고 보여주마, 누구라도 내 보물을 망가트린다면 성치 못한다는 것을.”

***

“쩝쩝쩝..”

얼마만에 먹어보는 햄버거인지 아주 꿀맛이다 못해 입에서 살살 녹고 있었다.

쪼륵 쪼르르 ­

“크흐!!”

입에 터지는 탄산과 시원하고 달콤한 콜라는 힘들었던 아침알바의 피곤함을 날려주는 선물이었다. 나는 어느새 다 마신 음료를 내려놓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돌아왔구나.”

평범한 일상과 특이할 것 없는 세상의 평온함이 온 곳에 만연했다. 하지만 너무도 조용한 일상은 알 수 없는 씁쓸함과 함께 조금은 외롭단 생각을 들게 했다.

“다들 잘 있겠지?”

그렇게 싫었던 시끌벅적함도 어딜가나 괴롭히던 다른 이들의 관심도 이젠 과거가 되어 이젠 그 누구도 내게 상관하지 않았다.

스윽.

게다가 마치 한 순간의 꿈 마냥 그 곳에서의 생활은 찰나의 시간이었던 듯 시간은 하루만이 지나있었다. 그래서일까, 정신을 잃었던 그 때도 꿈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정도로 모든 것이 붕뜬 느낌이었다.

‘이걸로 정말 된 거겠지..?’

꿈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인사는 하고 오고 싶었다. 사람이란게 이렇게 간사한 것일까, 막상 혼자가 되니 여러 미련과 함께 조금은 서글프단 생각이 들었다.

“응..?”

그렇게 다 마셔버린 음료수의 빨대를 가지고 이리저리 꺾던 그 때, 창밖으로 아까 봤던 그 단발의 여자가 많은 인파사이로 나를 정확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일까, 묘한 그녀의 눈빛에 고정되던 그 때 작고 탐스러운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벌떡 ­

놀란 내가 자리에 일어나자 그녀는 아까의 미소와 함께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다려!!”

급히 패스트푸드점을 열고 뒤쫓아가 보지만 무수히 많은 인파 속에 증발한건지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걸로 된거라니.. 대체 그게 무슨 뜻인데?!”

내 외침에 놀란 사람들의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만의 비밀을 그리고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그녀가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딸랑 ­

“응? 어서와, 지웅아. 오늘은 일찍 왔네?”

“네? 아.. 네. 별일 없죠?”

그렇게 찜찜한 마음을 잠시 뒤로 한 채 오후알바를 하기 위해 일하던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컵을 설거지하던 사장님이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오늘 배달주문이 좀 있네, 미안한데 바로 도와줄래?”

“그럴게요, 근데 추가수당은 챙겨주시는 거죠?”

“짜식.. 알았어, 내 꼭 챙겨줄테니까, 언능와.”

“헤헤.. 바로갑니다!”

생각지 못한 벌이에 ‘아싸’하며 앞치마를 둘러맨 나는 바로 들어와 배달앱으로 밀려든 음료와 디저트를 준비했고, 그렇게 아까의 일은 잊어버린 듯 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기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배달원에게 마지막 음료 꾸러미를 넘긴 나는 생각보다 고되었던 일에 작게 숨을 내쉬고는 널부러져 있던 집기와 기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 이거 마셔.”

“올~ 왠 서비스래요?”

“새끼.. 누가 알면 너 막 부려먹는 줄 알겠다.”

“아니에요?”

“죽을래?!”

“헤헤..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건넨 달콤한 스무디를 빨던 그 때, 그가 말했다.

“너 민정이 알지?”

“네?”

“있잖아, 앞 타임 알바. 같이 오후 러시 빼기도 했잖아? 기억 안나?”

“에이~ 알죠, 걔..”

사장의 말에 웃으며 대답하던 그 때, 난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아는 애인데 얼굴이 마치 안개에 낀거 마냥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저쪽에 있었나..?’

잠시 당황하던 것도 잠시, 미소를 지으며 사장님을 바라보던 순간, 난 다시금 굳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익숙한 얼굴이건만 나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하는 사장님의 얼굴이 왠지 낯설다 느꼈다.

‘왜.. 이러지..?’

하나가 낯설게 느껴지자, 순간 내가 있는 이 카페도 알 수 없는 낯설음과 함께 내 기억과 다른 묘한 괴리감을 주었다.

쨍그랑.

“왜 그래, 지웅아? 너, 어디 아파?”

사색이 된 얼굴과 함께 음료를 놓친 내 손은 사시나무 떨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런 내 모습에 걱정스레 바라보며 묻지만 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기억이..”

분명 떠올라야 하건만, 내 머릿속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하나같이 뿌연 안개에 갇힌 듯 떠올려지지 않았다. 너무도 평범하고 익숙한 생활이라 무심코 신경쓰지 않았던 것들, 하지만 그 무엇도 확실치 않았다.

“아니야.. 분명..”

‘..!’

당황한 내가 핸드폰을 꺼내 살피던 순간 난 경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연락처와 비어있는 사진파일들. 마치 모든게 거짓인 듯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그럴리 없어.. 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다이얼판에 손을 올려보지만, 아무것도 터치할 수 없었다. 가족도 그리고 친구도 머릿속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뜬구름 속에 남겨진 것인 듯 난 어떠한 것도 떠올리지 못했으니까 말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단 듯 나는 비어있는 다이얼판을 황망히 내려다 볼 뿐이었다. 그저 절망스럽게 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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