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88. 시계(??)제로(ZERO)
* * *
[ 88. 시계(??)제로(ZERO) ]
“발사!!”
파바바바방
히이이잉
스릉
“2파를 준비해라! 1열은 장전, 2열은 발사준비!”
“장전!!”
“2열은 발사준비를 해라!!”
튜스의 명령에 보병초급장교들은 샤벨을 뽑으며 기병방진을 펼친 병사들에게 외쳤고, 공화국 전열보병들은 화약을 뜯으며 플린트 락을 장전하는 한편, 뒤 2열은 1열의 어깨사이로 플린트 락을 내밀며 발사준비를 마쳤다.
“대위님, 방진이 단단합니다!”
“다시 돌아 돌격한다! 나팔을 울려라!!”
“크윽.. 알겠습니다!”
튜스의 방진에 피해를 입은 뤼헬의 카블로보츠 기병대는 설원을 크게 도는가 싶더니, 다시 땅을 박차며 돌격을 감행했고 그들이 머스킷 사정권안에 드는 순간, 엄청난 총포소리와 함께 수많은 기병들이 설원에 고꾸라지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방
“3열은 플린트 락을 장전해 앞열로 전달한다, 2열 장전, 1열 발포준비.”
“2열 장전하라!!”
“1열은 발사준비를 한다!!”
두두두두
추운 날씨에 붉게 달아오른 전열보병들은 플린트 락을 앞열로 전달하며 총을 교환했고, 기병의 돌격위험에도 튜스는 샤벨을 들고는 맨 앞에서 보병들을 지휘했다.
“대위님, 더 이상 돌격은 무리입니다!!”
“콜록.. 말을 바꿔라! 다시 돌격한다!!”
투둑
2차 돌격이 실패한 뤼헬이 명령을 하던 그 때, 총탄 몇 개가 그의 몸에 박혔는지 그의 녹색 제복 아래로 붉은 피가 흘러 떨어졌다.
“세상에.. 언제 다치신 겁니까?”
“이정도 상처쯤이야.. 어서 말을 바꿔라, 서쪽을 뚫어야 한.. 으으..”
“대위님!!”
말안장 위에서 앞으로 고꾸라지며 피를 흘리는 뤼헬의 모습에 부관은 안되겠는지 뒤를 돌아보며 후퇴명령을 내렸다.
“후퇴다!! 전 부대 후퇴하라!!”
“알겠습니다,”
뿌부부부부
나팔병은 부관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후퇴나팔을 불렀고, 적의 반격에 피해를 입은 카블로보츠 기병대는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튜스는 샤벨을 높게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우리의 승리다!! 우리가 카블로보츠 기병대를 무찔렀다!!!”
“와아아아!!”
파바바방
공화국 병사들은 자신들의 공격에 등을 돌리며 후퇴하는 카블로보츠 기병대의 후퇴에 기뻐하며 장전된 플린트 락을 하늘 위로 발사했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프러겔 보병대의 사기는 한층 꺾이며 암울한 얼굴로 좀처럼 뚫리지 않는 셀롱스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그닥 히이잉
“남작님, 서쪽을 공격했던 뤼헬 대위의 기병대가 패퇴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전령의 보고에 발슈테인이 깜짝 놀라며 쳐다보았고, 페르티안은 어두운 얼굴로 한 숨을 내쉬더니 전령에게 명령했다.
“전 군.. 모두 후퇴시키세요.”
“페르티안님?!”
그의 빠른 후퇴명령에 폰이 반문하자 페르티안은 미련따윈 없단 듯 말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동쪽도 서쪽도 활로를 열지 못했어요. 이 이상의 싸움은 불쌍한 병사들만 죽일 뿐이에요.”
“하지만..”
스윽.
납득할 수 없단 듯 다시 묻던 그 때, 발슈테인이 폰을 제지하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고 뭐라 말을 붙이려던 폰은 입을 다물며 쓸쓸히 말을 모는 페르티안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듯 쳐다볼 뿐이었다.
***
한편, 셀롱스크 서전에서 크게 승리한 공화국군은 사기가 잔뜩 올라 모두들 흥분에 가득차 있었다.
“사령관님, 대승리입니다!! 프러겔의 마녀도 카블로보츠 기병대도 모두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습니다!!”
부관의 말에 미엘폴스카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셀롱스크 인근이 그려진 작전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콜록.. 콜록.. 기뻐하긴 아직 이르다. 이 기세를 몰아 오늘 밤 야습을 한다.”
“예..? 야.. 야습을 말입니까?”
전투가 끝난지도 얼마 안된 시점에서 야습이라니, 그의 부관들은 이해할 수 없단 듯 그를 쳐다보자 미엘폴스카는 프러겔 군 주둔지를 찝으며 말을 이었다.
“프러겔군에게 이곳의 겨울은 생소할터, 게다가 바람 또한 적을 향해 불고 있으니 지금 기회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콜록..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고 몸을 따뜻하게 해라.”
“옛!”
“그리고, 튜스에게 작전내용을 전달하고 집결할 수 있도록.”
그렇게 병사들을 준비시킨 미엘폴스카는 시종이 건네는 따뜻한 차로 기침을 삭히며 프러겔 군이 주둔하고 있는 설원 반대편을 응시했다.
“빨리 빨리 옮겨라!!”
돌격이 실패하고 총탄에 부상을 입은 기병대 병사들의 신음이 가득한 막사 안, 화려한 푸른 제복을 입은 페르티안이 무거운 얼굴로 천막을 들추고는 조심스레 들어왔다. 그런 그를 침상에 누워있던 부상장교 하나가 놀라 몸을 일으키더니 크게 구령을 부치며 외쳤다.
“부대 차렷!!”
척
그러자 의무장교를 비롯한 막사의 모든 병사들이 페르티안을 바라보며 경례를 했고, 그 모습에 페르티안은 이럴 의도가 아니었단 듯 난처한 얼굴로 편히 쉬라는 듯 말했다.
“격식은 필요없습니다, 모두들 편히 있으세요.”
그런 그의 말에도 병사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자세를 풀지 않자 페르티안은 자신을 발견했던 부상장교의 어깨를 잡아 침상에 누이며 말했다.
“혹시 내가 일일이 뉘여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요?”
그제야 장교들과 병사들은 자세를 풀며 치료를 하기 시작했고, 페르티안은 쉽지 않단 듯 작게 한 숨을 쉬고는 자신을 똘망똘망 쳐다보는 부상장교에게 물었다.
“뤼헬 대위가 어디있는지 압니까?”
“대.. 대위님 말씀이십니까? 대위님이라면 저 안쪽 병상에 있으실 겁니다.”
“고마워요.”
수많은 부상병 너머에 있다는 말에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그는 뤼헬이 있다는 병상으로 걸음을 옮겼고, 가는 중에도 자신에게 경례를 하는 병사들과 장교들의 행동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는 건 비밀이었다.
“잡아!”
“끄아아악!!”
“참으십시오! 총탄을 빼지 않으면 안됩니다!”
꽤나 고통스런 수술인지 병사들이 뤼헬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있었고, 혹시나 고통에 혀를 깨물까 싶은지 그의 입엔 작은 나무재갈이 물려 있었다.
나이가 있어보이는 외과의 는 검붉은 피가 흐르는 그의 가슴팍 총탄자국 사이로 긴 가위집게를 넣어 무언가를 찾듯 조심스레 주위를 휘젓고 있었다.
“으아아악!!”
“다 됐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그 말도 잠시, 의사의 가위집게 끝으로 동그란 납탄 하나가 모습을 들어냈다.
“후우.. 됐습니다, 총탄은 모두 제거했으니 큰 고비는 넘기거나 다름없습니다.”
“허억.. 허억..”
그렇게 말한 외과의는 고통을 줄여주려는지 소량의 아편이 든 독한 위스키를 그의 입에 넣어주었고 뤼헬은 식은땀과 함께 아까보다 편해진 숨을 내쉬며 침상에 누웠다.
“어떻습니까?”
“아.. 남작님.”
뒤늦게 페르티안을 발견한 외과의가 한시름 놓았단 얼굴로 그에게 설명했다.
“운이 따랐습니다. 조금만 늦게 왔어도 목숨을 장담하진 못했을겁니다.”
“그렇군요..”
아편에 취했는지 몽롱한 그의 눈동자가 페르티안에게 향하는가 싶더니 상처가 아물지 않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괜찮아요, 누워있어요 뤼헬.”
“죄.. 죄송합니다, 제가 좀더 분발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지금은 몸을 추스르는게 우선입니다.”
“크윽..”
그렇게 뤼헬을 침상에 눕힌 페르티안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통에 괴로워하는 그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를 잘 부탁합니다.”
“걱정마십시오, 제가 수시로 살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외과의 대답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돌려 막사를 벗어났다.
“후우..”
하얀 입김과 함께 차가운 설원바람이 몰아치고, 막사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발슈테인이 그를 발견해 다가와서는 가지고 있었던 외투를 어깨에 걸쳐주며 말했다.
“페르티갈 로슈비치의 밤바람은 찹니다. 어서 막사로 돌아가시죠.”
“네.. 그래야죠.”
어느새 칠흑같은 밤이 짙게 깔리고, 막사엔 병사들이 피운 모닥불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근데.. 샤벨리아님에겐 가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까?”
“...”
샤벨리아란 말에 페르티안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지는가 싶던 그는 더는 숨길 수 없단 듯 고개를 돌려 발슈테인에게 말했다.
“발슈테인, 사실 내가 한가지 숨긴게 있어요.”
“예..? 뭐를 말씀이십니까?”
“그게..”
미안하단 듯 머뭇거리는 페르티안의 모습에 발슈테인이 의아하단 듯 쳐다보던 그 때였다.
슈우우웅
콰아아앙 !!!
순간 폭발음과 함께 흙과 눈이 흩날리는가 싶더니 흰색 제복을 입은 슈트렐리츠가 미소와 함께 모습을 들어냈다.
“마스터! 뒤로 물러서십시오!!”
스릉
갑작스런 오리지널의 등장에 페트시아가 페르티안의 앞을 보호하며 샤벨을 빼들었고, 고고히 샤벨 하나를 전송시킨 슈트렐리츠가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는 페트시아를 돌아보곤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구나, 그 친구가 페르티안인가 보지?”
‘..!’
“이 많은 사람 중에서 찾기 힘들뻔 했는데.. 잘 됐어!”
파앗!
움찔.
산뜻한 미소와 달리 온 몸이 찌릿찌릿한 엄청난 살기를 발산하며 슈트렐리츠는 빠른 속도로 페르티안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피잉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마력으로 인해 마스터의 위치가 노출됐다는 실책에 입술을 깨문 페트시아는 연녹색 검기를 터트리며 그에게 달려갔다.
카앙 – 카앙
치이이잉 !!!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샤벨을 휘두르는 두 씰을 지켜보던 것도 잠시 주둔지 입구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경계병의 외침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콰과광!!!
댕댕 – 댕댕 – 댕댕
“기.. 기습이다!! 적이 쳐들어 왔다!!!”
‘..!’
그 소리에 놀라 페르티안이 주둔지 입구를 바라보자, 눈과 구별되지 않게 흰색 외투로 위장한 공화국 전열보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 들어왔고 순식간에 주둔지는 병사들의 비명소리와 총검이 부딪히는 소리로 아비규환이 되어갔다.
“야.. 야습이라니..”
갑작스런 공격에 패닉도 잠시 페트시아를 뒤로 밀어 떨쳐낸 슈트렐리츠가 품속에 있던 플린트 락 권총을 밤하늘 위로 올리더니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피유우우우 – 퍼어엉!!
‘!!’
마치 페르티안의 위치를 알리려는 듯 밤하늘을 순간 빛낸 섬광이 잦아듦과 동시에 샤벨을 고쳐잡은 슈트렐리츠가 페르티안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 네가 있는 곳을 모두가 알았다. 각오하는게 좋을거다, 프러겔의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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