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90화 (90/135)

〈 90화 〉 90. 시계(??)제로(ZERO)

* * *

[ 90. 시계(??)제로(ZERO) ]

다그닥 히이잉 ­

“보고입니다, 마벨의 중앙군이 필립 경과 우리 중앙군 사이를 파고들며 아군의 좌익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뭐라?!”

마벨의 빠른 상황판단 능력에 당황한 나이젤은 망원경을 들어 안개가 걷히는 전장을 바라보자 제국의 중앙군이 슈트라우스 남작에게 묶인 필립 경의 군대 우측을 공격하며 그의 군대를 자그모치를 점령한 버크셔 경 쪽으로 몰고 있었다.

“어서 필립 경을 구원해야 한다. 여기서 좌익을 잃는다면 이 전쟁은 끝이다!”

“알겠습니다!”

다급한 나이젤의 명령에 부관은 모자를 잡아 고개를 끄덕이곤 정렬해 있던 전열보병들을 통솔해 움직이려 했다.

다그닥 히이잉 ­

“급보입니다!”

“또 뭐냐?!”

이번엔 북쪽에서 온 전령인지 꽤나 다급한 표정으로 나이젤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기병대가 아군의 기병대를 급습해 현재 전투중입니다.”

“어차피 수는 비슷하다, 피셔라면 능히 상대할 것이다.”

그렇게 북쪽의 기병대 보다 전황이 위급한 남쪽의 좌익을 향하려던 그 때, 다시금 전령하나가 말을 타고 달려와선 그에게 보고했다.

“큰일났습니다!!”

“큰일?”

“예! 적의 근위 기병대가 현대 우리 중앙군 측면을 향해 돌격해 오고 있습니다.”

‘..!’

예비 기병대가 있다는 전령의 보고에 나이젤이 망원경을 들어 자신의 군대 우측을 살피자 금색으로 도색된 검은 기병모자를 쓴 마벨의 근위 기병대가 샤벨을 빼들고는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놈! 마벨.. 부관!”

“예, 각하!”

“후방에 빼놓았던 왕립 근위기병대를 투입해라! 여기서 지면 전체 진형이 무너진다!!”

빠르게 무너지는 좌익의 모습에 초조해진 나이젤은 아껴두었던 자신의 근위기병대를 투입시키고는 자리를 잡은 마벨의 중앙 전열보병대와 배틀라인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파바바방 ­

서로 주고 받는 인내와 죽음의 시간도 잠시 마벨의 정예 씰인 11기사단이 나이벨의 보병연대 쪽으로 파고들며 진형을 부수려 했다.

“메이틀랜드!!”

“네, 마스터.”

“펨브로큰 기사단을 투입해 적의 씰들을 저지해라! 절대로 보병들의 진형이 무너져선 안된다!”

“알겠습니다.”

나이젤의 명령에 연보라 머리카락의 미소녀는 절도있게 살짝 무릎을 굽혔다 일어서고는 샤벨을 빼들며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마벨의 씰들을 상대하러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채앵 – 채애앵 ­!!

“비켜라!! 이 섬 떨거지들아!!!”

흰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한 미소년, 마르쇼스가 자신을 상대하러 달려온 펨브로큰 기사단 씰 두 명의 검을 받아쳐 날리고는 그대로 보병들을 향해 달려가던 그 때였다. 연보라 머리카락을 정갈히 묶어 올린 메이틀랜드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가 싶더니 샤벨을 돌려 잡으며 말했다.

“이 이상은 못 지나간다.”

“흥! 마나하트째 부서주마!”

광기넘치는 눈빛과 함께 핏빛과 같은 검기가 그의 샤벨에 맺히는가 싶더니 그대로 그녀의 목을 향하던 그 때였다. 냉정할 만큼 차분한 메이틀랜드가 샤벨을 날려 마르쇼스의 검을 막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카운터.”

피이잉 ­

‘..!’

퍼어어억!!!!

살짝 닿았을 뿐이었건만 순간 검을 내지르던 마르쇼스의 오른팔이 무언가 할퀴고 간 듯 뜯겨져 날아가는가 싶더니 엄청난 양의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마르쇼스의 비명에 주위에서 연합왕국의 씰들을 상대하던 슈하일과 호프슈어가 방향을 틀어 메이틀랜드에게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저 씰이 단장이다, 협공이다 슈하일.”

“오케이, 마르쇼스의 팔을 날리다니 참 터프한 아가씨군.”

호프슈어의 말에 미소를 지은 슈하일이 밝은 빛과 함께 샤벨을 날리자, 검이 닿지 않았음에도 메이틀랜드의 왼쪽 가슴 한켠이 그의 검기에 뚫리며 상처를 입혔다.

“크윽.. 빛..?”

반 물리적인 슈하일의 공격에 잠시 놀라던 메이틀랜드는 이내 상관없단 듯 손가락을 입에 넣어선 강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이익 ­

그러자 연합왕국 씰 수명이 그녀에게 달려와서는 슈하일과 호프슈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11기사단이라 해도 우리의 숫자를 이기진 못할겁니다.”

“치잇..”

생각보다 많은 연합왕국의 씰에 짧게 혀를 찬 호프슈어는 거대한 검은 창을 휘두르며 적의 검을 막기에 바빴고, 그것은 슈하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호기롭게 밀어붙이던 제국의 공격이 교착상태에 빠지며 조금씩 밀리던 그 때였다.

삐이이잉 ­

‘..!’

순간 울려퍼진 이명소리와 함께 11기사단 앞을 가로막던 연합왕국 씰들의 목이 붉은 피와 함께 순간적으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누구냐?!!”

놀란 메이틀랜드가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자신을 지나쳐 피 묻은 샤벨을 쥐고 있는 은발에 권태로운 황금빛 눈동자를 한 미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 훗.. 버러지 주제에 내 이름을 묻다니.”

휘릭 – 촤아악.

샤벨을 돌려 검신에 묻은 피를 털은 그는 살기 가득한 눈동자와 함께 조소를 그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하켄 대제국, 올 라운드 넘버 식스. 아슈트로 폰 켈뱀부르크다.”

‘..!’

올 라운드라면 지난번 만났던 그녀 이후로 두 번째이건만, 그의 존재감은 그 때와 달리 거대한 산이 가로막은 듯 거대했다.

“어이, 소개를 들었으면 너도 소개하는게 예의 아닌가? 응?”

황금실 수가 화려하게 놓여진 검은색 외투에 순백과도 같은 백색 제복을 입은 그는 천천히 자신의 샤벨의 끝을 들어선 메이틀랜드에게 묻자 그녀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을 소개했다.

“위대한 연합왕국, 왕립 근위대 소속 펨브로큰 기사단, 메이틀랜드 대위..”

“그래?”

삐이이잉 ­

그녀의 소개를 듣던 아슈트로 입가에 짙은 조소가 올라가는가 싶더니 아까 들렸던 이명과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 어디로..?’

놀라 그를 찾던 그 때, 자신의 귀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보고 있는거냐, 위.대.한 연합왕국의 씰.”

파직 –

“커억..”

언제 지나간것일까, 그녀의 가슴팍 위로 십자가 모양으로 베어진 검상과 함께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치이이익 ­

“커흑.. 커억..”

비틀거리는 그녀를 구경하듯 몸을 돌린 아슈트로는 몸이 기울어져 천천히 쓰러지는 메이틀랜드의 머리를 움켜쥐어 잡아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상대하려면 네 것들이 신성시하는 로얄원이 와야 할 것이다.”

‘..!’

“그래야 격이 맞는다는 것이다, 위.대.한 연합왕국의 씰이여.”

“커윽..”

“가서 킨라라에게 말해. 언제까지 섬에 숨어 있을 순 없을거라고.”

“어떻게 그 분의 이름을..”

메이틀랜드의 물음에 아슈트로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살기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의 올 라운드가 배반자 레벨리스를 모를 리가 없지않나? 응?”

***

“자네가 샤벨리아군.”

“...”

어느 막사보다 화려한 막사 안, 나는 검은 안대를 한 은발의 미남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의 제복은 그 어떤 고위장교들 보다 화려했고, 내가 보기에도 몸이면 몸, 키도 훤칠한게 소위 옷빨이(?) 잘받는 놈이었다. 그래서일까, 심통이 못되게 꼬일대로 꼬인 난 삐딱한 자세로 녀석의 물음을 들은 척 만척하며 귀를 파고 있었다.

나의 이런 불량한 태도 때문일까, 페르티안과 앙센은 ‘저 개버릇은 못 고치고 왔네’란 표정으로 초조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과연 소문대로 직설적이군. 아주 대담해, 왕족을 앞에 두고 이런 모욕을 주다니 말이야. 응?”

웃으며 사근사근 말하는 그였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사납게 변해있는 셰이엔이었다. 난 그런 녀석의 눈을 피하지 않은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거 죄송하게 됐소다. 내 워낙 거지같은 상관은 상관으로 보이지 않아서 말이죠.”

“샤.. 샤벨리아 경!!”

“그 무슨 망발입니까, 어서 공왕께 사죄하시오!!”

“아씨! 뭔 개가 이리 많이 짖어?!!”

내가 확 짜증을 내며 주변을 노려보자, 귀족들은 움찔하며 입을 닫았고 나는 ‘너야?’ ‘아님 네가 그랬어?’란 표정을 묻자 모두들 셰이엔이 보지 않는 아래로 작게 필사적으로 손사레를 쳤다. 특히나 요 여우같은 앙센은 그 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눈짓으로 평소 자신의 정적인 앙트 백작을 가리키며 ‘얘에요’라며 아주 맞을 짓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아주 걸작이야. 개라.. 그럼, 난 개들의 수장인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바로 그인걸까, 셰이엔은 결코 내 기세에 기죽지 않는 표정으로 오히려 화가난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셰이엔과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하던 그 때, 페르티안이 식은땀을 닦으며 나를 쿡쿡 찔렀다.

“아씨! 거 있어봐!! 나 지금 바쁘니까!”

그렇게 신경질을 내자 페르티안은 그게 아니란 듯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제발 샤벨리아, 너 성질 더러운건 여기 모두가 다 아니까, 본론으로.. 응? 공왕께 본론을 말씀드려.”

‘뭐.. 뭐? 뭐가 더러워?’

중간에 있어서 안될 페르티안의 말에 울컥한 내가 눈을 부라리며 볼을 잡아 당기려던 그 때, 페르티안의 속삭임을 들었는지 셰이엔은 흥미롭단 표정과 함께 턱을 괴며 내게 물었다.

“흐음.. 남작이 뭔가 내게 말하고 싶은 거 같은데. 샤벨리아 경, 그만 남자친구 좀 괴롭히고 나한테도 말해주지? 그 본론이란 걸 말이야.”

화악.

“나.. 남자치.. 친구라뇨?!!”

“호오.. 이거 보기보다 쑥맥이군, 의외야. 샤.벨.리.아 경?”

‘으윽..’

셰이엔은 내 약점을 알았단 듯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앙센보다 몇배는 능구렁이같은 셰이엔의 모습에 이를 갈며 속으로 외쳤다.

‘시발.. 프러겔엔 왜 이런 인간들만 있는거야?!’

그렇게 놀림 아닌 놀림을 받은 난 풋하며 키득거리는 귀족들을 다시 한 번 단도리를 하고는 목을 가다듬어 셰이엔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셀롱스크는 가감히 포기하시죠.”

“뭐라..?

놀라 바라보는 셰이엔을 내려다보며 자신만만한 표정과 함께 화사한 미소를 지어 올린 난 그를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날랜 말과 기병 일만이면 됩니다. 그리 해주신다면, 일주일 안에 이 페르티갈 로슈비치를 점령해 드리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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