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91. 시계(??)제로(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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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시계(??)제로(ZERO) ]
댕댕 – 댕댕
“후퇴하라! 이 배가 마지막 배다!!”
“어서 승선해라!!”
불타는 코르치에나 항 가운데, 연합왕국 트리나디 급(2급) 전열함 갑판엔 부상자들과 항구에서 도망쳐온 연합왕국 전열보병들의 아우성으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선장님, 더 이상 태우면 승선초과입니다!”
“자리를 더 만들어라! 우리마저 떠나면 저들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아.. 알겠습니다.”
항구까지 날아오는 마력탄과 빗발지는 총탄에도 아직 배를 타지 못한 연합왕국 전열보병의 숫자는 많았다. 소수의 쥐른베르크 군과 동료들을 위해 남은 버크셔 자작의 2개 대대가 필사적으로 제국군의 진격을 막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식량과 식수외 모든 짐을 버려라!”
먼저 떠난 함선 중에 초과승선이 아닌 배가 없었으며 그렇게 연합왕국의 함대는 기함 로열 템베린을 따라 속속 코르치에나 항을 벗어나 후퇴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패전한 쪽의 비참한 말로였다.
저벅.
엠블롱 언덕, 다홍빛 머리카락에 불꽃같은 다홍빛 눈동자를 한 아트리아가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습을 들어냈다. 코르치에나항과 인근 바다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 그녀는 미소와 함께 조용히 눈을 감더니 나직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Aliis si licet, tibi non licet.(다른 사람에게 허락했다 해서, 네게도 허락한건 아니다)”
피잉
그녀의 스펠 영창에 따라 발 아래로 다홍빛 마법진이 생성되는가 싶더니 강력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Tecum vivere amem, tecum obeamlibens. (당신과 함께 살고, 당신과 함께 죽기를 원한다.)
우우우웅 – 피비비빙
엠블롱 언덕 위로 아름다운 다홍빛 마법진들이 꽃이 만개하듯 순식간에 생성되어 하늘 위로 그려지자 그것을 바라본 연합왕국의 마도사들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과.. 광역 마법이다!! 결계를 펼쳐라!!”
마도사들의 외침도 잠시 그들의 마력에 반응한 갑판 위 방어 결계진들은 일제히 푸르게 빛나는가 싶더니 함선들을 감싸 보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트리아의 스펠은 멈추지 않은 채 계속해 마력을 증강시키기 시작했다.
“Omnium rerum principia parva sunt. (모든 것은 작게 시작한다.)”
스륵.
화르륵
눈커풀이 천천히 올라가며,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그녀의 다홍빛 눈동자만큼이나 홍염의 붉은 불꽃들이 주홍빛 스파크를 일으키며 팽창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은 멀리서 보아도 장관일 만큼 환상적이었다.
“Noli metuere, una tecum bona mala tolerabimus. (걱정마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너와 함께 견딜테니)”
그녀를 중심으로 뜨거운 브레스를 품은 듯 붉게 달아오른 마법진들은 일제히 장전을 하듯 기하학 무늬가 그려진 소형 마법진들을 생성해 조준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파지직 화르르륵.
그렇게 모든 힘을 끌어모은 그녀는 후퇴하는 연합왕국 함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옅은 미소와 함께 나직히 스펠영창을 완성시켰다.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 Ego sum lux mundi. (나는 세상의 빛이다.)”
번쩍
순간 노을처럼 좌우로 퍼진 붉은 빛도 잠시, 그녀의 주위에서 저돌적이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붉은 화염줄기들이 주위 모두를 파괴할 기세로 바다위에 있던 연합왕국 함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피유우우우우웅 !!!!
“마.. 막아라! 버텨야 한다!!”
인간의 힘을 초월한 씰의 힘, 푸른 결계를 펼친 거대한 연합왕국 함선들의 측면을 일제히 강타한 그녀의 불줄기들은 순식간에 반대편 측면으로 빠져나와선 바다 속으로 떨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닌지 그녀의 불줄기 꿰뚫린 함선들은 일제히 중앙이 불게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일제히 배가 두동강이가 나며 터져올랐다.
콰과과과광 !!!
‘..!’
일부러 기함만은 공격하지 않았는지 패잔병들을 가득태운 연합왕국의 거대한 2급 전열함들만 일제히 붉게 타오르며 홀로 멀쩡히 항해하는 로열 템베린 함 뒤로 죽음의 끈처럼 하나씩 침몰하기 시작했다.
“마.. 맙소사..”
항구에 정박해 있었기 때문일까, 기함과 함께 유일하게 침몰하지 않은 트리나디 급 전열함의 선장과 병사들은 그 모습에 말문을 잃은 채 눈을 껌벅였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그들의 귀를 날카롭게 때리는 이명소리와 함께 수십명의 병사들 머리가 붉은 피와 함께 갑판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둑
그 모습에 놀란 선장이 두리번 거리던 것도 잠시, 거대한 뱃머리 키 위로 권태로운 황금빛 눈동자와 함께 은발의 미소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 누구냐?!”
그의 물음에 샤벨을 가볍게 휘둘러 피를 턴 아슈트로는 어느새 검을 그의 심장에 박아넣으며 속삭였다.
“너희들의 공포다.”
***
두두두두
새하얀 설원위로 수많은 군마들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병들의 선두엔 황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독하게 아름다우면서도 오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채 말을 타고 있는 샤벨리아가 보였다.
“샤.. 샤벨리아 님.”
“왜?”
셰이엔에게서 어렵게 받아낸 기병 일만과 함께 이번 작전을 위해 발슈테인, 폰, 사달수드 그리고 아티뤼크를 징발했다. 왜 그들이냐고? 페르티안의 부관 중 그나마 말을 잘 탈줄 아는 녀석들을 순차적으로 끊다보니 이렇게 됐다.
특히나 내가 없는 사이 아주 살판이 났던 사달수드는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병사들 사이에서 사설 도박판을 운영하며 고리대금업까지 손을 댔는데 그 규모가 무슨 소도시 반년예산만큼이나 거대할 정도로 아주 도둑놈들 아니랄까봐, 죽지 않을정도만 살려둔채 병사들의 피를 쪽쪽 빨아대는걸 찾아내 반 죽여 놓았다.
“오.. 옷을 입고 싶습니다.”
“어쭈? 너 아래에 걸친것도 입고 싶지 않지? 응?”
“아.. 아닙니다! 아이고 시원타~!”
나한테 맞아 눈탱이 밤탱이가 된 사달수드는 얇은 속바지 하나만 걸친채 나를 따라 말을 몰고 있었고, 녀석의 뒤로 사달수드와 못지 않게 보랏빛으로 얻어터진 돌격대원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얇은 속옷바지 하나만을 의지한채 얼음장 같이 차가운 페르티갈 로슈비치의 명물인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음미하고 있었다.
“역시 악마네요.”
“으.. 응.”
사랑이 담긴(?) 나의 체벌에 질린 단 듯 발슈테인과 폰은 내 눈치를 보며 속닥거렸고, 난 살벌한 눈빛과 함께 고개를 돌려 녀석들에게 물었다.
“뭐? 니들도 아래에 땀 차? 엉?! 함, 쫄딱 베껴줘?!!”
“아.. 아닙니다!”
발슈테인과 폰은 내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두터운 자신들의 외투를 손으로 여미고는 내게서 슬금슬금 도망치기 시작했다.
“샤벨리아님.”
“응?”
나프스 엘인 아티뤼크가 앳된 얼굴과 다르게 능숙하게 말을 몰아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정말 기병 일만으로 충분하시겠습니까?”
걱정스런 녀석의 물음에 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샤벨리아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단 말이지?”
“예..? 아, 네..”
샤른보다 조금 나이를 먹었을까, 모든 나프스 엘들이 그러하겠지만 아티뤼크도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모습이었다. 난 그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기동전(??戰)을 펼칠거야.”
“네? 기동.. 전이요?”
“그래, 녀석들의 이점을 역이용하는거지.”
셀롱스크 뿐만 아니라 공화국은 수도인 ‘플루스’와 남부공업도시인 ‘카엘체’로 가는 여러 주요거점을 요새화한 녀석들이었다. 아무리 우리 군이 대군이라 하지만 일일이 녀석들을 상대해 가며 진군하기엔 많은 시간과 불필요한 인력의 피해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기동전이었다. 과거 병자호란때 여진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녀석들의 요새를 무시하며 총통과 주요의원들이 있다는 카엘체로 진격할 생각이었다.
셀롱스크과 키프루스를 막기 위해 주요 군대가 빠진 지금, 카엘체를 수비하는 병사들은 지금 얼마 없다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북진을 눈치 챈 적의 전령이 카엘체에 도착하기전 우리가 먼저 카엘체에 도착해야 했다.
왜냐하면 방어하기 좋게 축조된 플루스로 도망쳐 들어갔다간 기병뿐인 우리에겐 그것만큼 낭패인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번 작전은 어떻게 보면 무모하면서도 대담한 작전이었다.
“샤벨리아님.”
“응?”
“아무래도 저 앞 작은 마을을 지나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피해 돌아가다간 예정보다 몇 시간 늦어질 수 있습니다.”
후방에 있는 작은 마을인지 민병대로 보이는 어리숙한 치안군이 모닥불을 피우며 느긋하게 앉아 있는 것이 저 멀리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설원의 눈이 하얗게 뿌려지며 달려오는 우리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스릉
“주민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병사들만 빠르게 베고 지나간다.”
“알겠습니다.”
내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발슈테인이 뒤를 돌아 수신호를 보내자 병사들은 일제히 샤벨을 빼들며 말의 속도를 더욱 올리기 시작했다.
“응? 왠 기병대지?”
“에이, 카엘체로 복귀하는 기병대겠지. 목책이나 치우자고”
그렇게 웃으며 막아놓았던 목책을 치우려던 그 때, 맨 앞에 있던 민병대의 표정이 사색이 되며 외쳤다.
“프.. 프러겔이다!! 프러겔 군이다!!!”
“뭐..?”
놀람도 잠시 푸른 제복의 프러겔 기병대가 살벌한 은빛 샤벨을 번쩍이며 돌격해 들어오고 있었고, 그런 그들 앞엔 전장의 여신이 강림한 듯 아름다운 미소녀가 샤벨을 휘두르며 외쳤다.
“돌격!!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빠르게 통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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