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92. 시계(??)제로(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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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시계(??)제로(ZERO) ]
셰이엔의 대공세를 훌륭히 막아 내던 셀롱스크의 미엘폴스카는 생각지 못한 샤벨리아의 북진소식에 화들짝 놀라며 소식을 가져온 전령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요새를 모두.. 무시했다고?”
“예! 카엘체 20km지점 밖에서 프러겔 마녀의 기병대를 발견했다는 급보입니다!”
어떻게 이런 무식한 전략을 쓴단 말인가? 상식을 벗어나는 그녀의 행동에 미엘폴스카는 셰이엔을 앞두고 군대를 물릴수도 카엘체를 구원하기 위해 군대를 나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키프루스를 막기 위해 북쪽으로간 라인슈볼츠를 불러들일 수도 없는 일.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총통과 의원들이 그녀의 침입을 눈치채고 빨리 플루스로 들어가 농성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총통께서는 이 사실을 아는가?”
“서둘러 카엘체를 벗어났으나 기병인 프러겔의 마녀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지는..”
“젠장!!”
프러겔의 마녀가 지금 카엘체에 있다면 저 앞에 있는 씰은 무엇이란 말인가? 미엘폴스카는 설원 위에서 슈트렐리츠의 공세를 막아내는 샤벨리아를 응시했다. 그러던 그때 하늘 위로 검청색 마법진이 무수히 발현이 되는가 싶더니 자비없는 수정비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몸을 숙이십이오, 사령관! 충격파가 옵니다!!”
콰과과과광 !!!
심상치 않은 마력을 감지한 마도사의 외침도 잠시, 설원을 강타한 수정비는 엄청난 땅의 울림을 전하며 멀리 미엘폴스카가 있는 곳까지 엄청난 강풍과 함께 몸을 숙인 그를 뒤로 밀어내는 충격을 선사했다.
투두둑.
“큭.. 대체 무슨 일이..”
‘!!’
엉망이 된 탁자를 짚고 일어선 미엘폴스카가 창문을 바라보자, 하얀 설원위로 검청색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미소녀가 자신보가 큰 화려한 지팡이를 쥐고는 셀롱스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오리지널..? 설마, 백야의 플로헤타란 말인가?”
프러겔의 수호신인 그녀가 왜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프러겔의 마녀만으로도 벅차건만 새로운 오리지널의 등장은 그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던 것도 잠시, 순진무구한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정확히 미엘폴스카가 있는 창을 응시하는가 싶더니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거대한 마법진을 발현시키는 것이었다.
“논 스펠..?”
파지직
순진한 모습과 달리 거침없이 없는 그녀의 엄청난 마력들은 순식간에 응집되며 다시금 위력적인 광역마법을 쓰려하고 있었다.
‘..!’
상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마법경지에 미엘폴스카를 비롯한 공화국 마도사들이 멍하니 플로헤타를 바라보던 그때, 하얀 설원속에서 눈을 뿌리치며 모습을 드러낸 슈트렐리츠가 자기 신기를 모두 꺼내며 외쳤다.
“플로헤타!!!”
시이이잉
채재재재쟁 !!!
엄청난 기세로 플로헤타를 향해 날아가던 슈트렐리츠의 샤벨들은 미소와 함께 손을 날려 발현시킨 그녀의 결계에 부딪치며 엄청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기 검을 손쉽게 튕겨 내는 그녀의 마법에 슈트렐리츠는 역시 쉽지 않단 쓴웃음과 함께 플로헤타에게 말했다.
“샤벨리아는 어디 갔지?”
“안 돼, 말할 수 없어.”
절대 말하지 않겠단 듯 입을 앙다문 플로헤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 슈트렐리츠는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그녀에게 물었다.
“너도 알고 있지?”
“뭐가?”
“그녀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걸 말이야.”
“...”
아버지란 말에 플로헤타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조용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네가 왜 그녀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
“나조차도 그녀와 있으면..”
그리움과 원망이 섞인 그의 눈동자가 무엇을 쫓듯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플로헤타만은 그것을 이해하는지 조용히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플로.”
“응?”
“우린 정말.. 인간들의 위해 태어난 걸까?”
그의 물음에 플로헤타의 눈동자 또한 흔들리며 답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이상이 잘못되어 나왔건만.. 내 손은 더욱 인간들의 피로 물들어가.”
“슈렐..”
“어쩌면 우리가 없어지는 것이 인간들을 위한 걸지도 몰라.”
“나는..”
슈트렐리츠의 말에 잠시 말을 주저하던 플로헤타가 입을 열었다.
“사.. 살고 싶어.”
“뭐..?”
“죽고 싶지 않아. 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 슈.. 슈렐도 샤링도.. 그리고 다른 형제들도..”
피식.
“그래, 그래야 플로헤타지.”
태어났을 때부터 순진무구했던 그녀였기에 슈트렐리츠는 너무도 앞서 나갔던 자기 말에 강하게 부정도 못한 채 우물쭈물 소심하게 반항하는 그녀의 태도에 미소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넌 착하구나.”
“슈렐..?”
“하지만 세상은 착하다고 되는 게 아니야. 플로, 난 고통스럽겠지만 인간들에게 보여 줄거야.”
“...”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우리 같은 씰이 아닌 인간들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걸 말이야.”
그렇게 말한 슈트렐리츠는 자기 양손으로 샤벨을 전송시키고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엄청난 마력을 응집하며 그녀에게 외쳤다.
“그러니까 너도 확실히 정해야 할 거야, 그렇게 우줄쭈물있다간 네가 사랑하는 것과 함께 흔적도 없이 스러져 사라질 테니까!”
***
두두두두두
서걱
“끄아악!!”
무방비로 노출된 카엘체로 쇄도한 프러겔의 기병대는 남아 있던 소수의 공화국군을 도륙하며 총통과 의원들을 찾느라 분주했다.
히이이잉
“샤벨리아님, 한 시간 전 총통과 의원들이 황급히 도시를 벗어났다는 걸 봤다합니다.”
“칫.. 폰!!”
“네, 샤벨리아님!”
“지금 당장 경기병 이천을 데리고 플루스로 가는 길목을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총통을 잡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럇!!”
샤벨리아의 명령에 장교모를 잡아 고개를 끄덕인 폰이 말을 채찍질을 하며 크게 휘파람을 불자 주위에 있던 경기병들이 일제히 말머리를 돌리며 그를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발슈테인.”
“네, 샤벨리아님.”
“카엘체에서 볼일은 끝났다. 지금 당장 병사들을 불러모아 추격한다.”
“알겠습니다.”
왕정국가 아닌 만큼 권력이 불안정한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역사가 짧은 공화국으로써 그 권력의 정당성도 경계도 모호한 지금 주축이 되는 행정부 수뇌와 주요의원들이 갑자기 붙잡힌다면 아슬아슬하게 이어 붙어 있던 공화국도 공에 맞은 유리창마냥 잘게 부서져 떨어질 것이었다.
그렇게 병사들을 모아 다시 추격을 하던 그때, 척후병으로 먼저 보냈던 카블로보츠 후사르 두 명이 내게 달려와 보고했다.
“페르티갈 로슈비치 총통을 발견했습니다!”
“어디냐?!”
“인근 폴슈틴 산으로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지도!!”
“여깄습니다.”
내 외침에 발슈테인이 지도를 펼쳐 내 앞으로 보였고, 난 총통의 군대가 방향을 틀었다는 폴슈틴 산을 찾기 시작했다.
“여깁니다.”
“흐음..”
폰에게 길목이 끊긴 적은 수도인 플루스로 들어가지 못하고 급한 대로 인근 폴슈틴 산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농성할 생각인 것 같았다.
“수는?”
“전열보병 이천정도입니다.”
“급하긴 급했나 보군.”
길목을 막아선 폰까지 불러 폴슈틴 산을 공략하려던 그때, 폰이 보낸 척후병인지 급하게 말을 몰아 내게 다가온 병사는 다급히 내게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뭐냐?”
“적의 수도 플루스에서 대략 4만의 헌병군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헌병군?”
“아마도 도시 치안군일겁니다.”
내 물음에 발슈테인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조직 민병대로 병사들의 질은 떨어지지만, 수를 무시할 순 없겠습니다.”
“씰은?”
“아마 5급이하 저급 씰들이 다수 있을 겁니다.”
5급이하라면 감정이 없는 씰들로 그들의 마나하트가 전쟁에서 폐기된 씰들에게서 몰래 떼어온 블랙마켓 거래품이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수도의 치안을 지켜야 할 그들이 이곳으로 온다는 것은 페르티칼 로슈비치 공화국이 꽤 위기에 몰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달수드.”
“네, 샤벨리아님.”
“돌격대와 기병 일천을 줄 테니 여기서 총통이 나오지 못하게 길목을 조이고 있어.”
“진짜요?”
“근데.. 너, 너무 좋아한다? 응?”
반색하며 밝아지는 녀석의 표정에 묘한 빡침을 느낀 내가 묻자, 녀석은 ‘좃댔다’란 표정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슬금슬금 내 눈을 피했다.
“이걸 진짜 이 씨..”
“아 진짜..”
팔을 들어 올려 때리려는 시늉을 하자, 녀석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더니 자신도 쪽팔리는지 소심하게 구시렁거렸다.
“진짜? 진짜 뭐? 뭐어 새꺄?!”
“아.. 아니예요, 잘 다녀오시라고요.”
“어디 한 번 또 기어오르기만 해 봐, 수염을 확 다 뽑아버릴 테니까 말이야. 알았어?!”
“아씨.. 알았다고요.”
“아씨?”
“누가요? 제가요? 에이 설마요.”
내 물음에 마치 자신은 아니란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녀석을 잠시 째려보던 난 ‘뒤진다’라며 작게 중얼거리곤 새침히 고개를 돌려 발슈테인에게 명령했다.
“병사들 집합시켜, 폰과 합류한다.”
“예? 정말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여기서 총통을 먼저 생포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확실하게 기를 꺾어 줘야 할 필요가 있겠어, 저들도 믿을 구석이 있으니까 이렇게 농성하는 거 아니겠어? 아주 건.방.지.게 말이지.”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내 미소에 발슈테인은 움찔하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하나를 매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어떻게 처리할 수 없을까 고민했는데, 아주 고맙게 이렇게 제 발로 나와주다니 나도 참 운이 좋단 말이지.. 그 답례로 아주 재밌는 걸 보여 줘야겠어. 아주 재밌는 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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