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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93화 (93/135)

〈 93화 〉 93. 시계(??)제로(ZERO)

* * *

[ 93. 시계(??)제로(ZERO) ]

가지각색의 옷과 제각기의 플린트 락으로 무장한 이들이 차례차례 설원 위로 배틀라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규율이나 정해진 법규가 없는지 그들의 모습은 병사라기보다 건달에 가까웠고, 그 행동거지 또한 자유로웠다.

“저것들이 그 헌병군이야?”

설원 반대편 말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샤벨리아는 기가 찬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묻자 발슈테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렇게 보여도 4만입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흥.. 방심은..”

그렇게 말한 샤벨리아는 말의 배를 차 앞으로 나와서는 허리춤에 매달린 샤벨을 뽑고는 외쳤다.

스릉 ­

“검!”

“거어엄!!!”

그녀의 외침에 발슈테인이 샤벨을 뽑으며 기병대를 향해 외치자 그녀의 뒤로 일사정연하게 말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프러겔의 기병대들이 일제히 샤벨을 뽑았다.

“돌격준비.”

“예..?”

“돌.격.준.비!”

“이런..”

무작정 돌격준비를 명령하는 그녀의 말에 잠시 반문하던 발슈테인은 명확한 어조로 자기 뜻을 밝히는 그녀의 고집에 ‘미치겠네’란 표정과 함께 기병대에게 소리쳤다.

“돌격준비!!”

뚜두두 – 뚜두두 ­

그러자 짤막하면서도 절도 있는 나팔소리와 함께 기병대는 말을 구르며 돌격할 준비하기 시작했다.

“프러겔의 위엄을 보여라! 내가 너희들 앞에 서겠다!!”

“프러겔 여신 만세!!”

“돌격!!”

“와아아아아!!”

두두두두두 ­

망설임 없이 치달아 나가는 그녀의 돌격에 프러겔의 기병대는 엄청난 함성과 함께 설원을 박차며 그녀를 따라 쇄도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에 헌병군 장교로 보이는 이가 샤벨을 뽑으며 외쳤다.

“발사준비!!”

질서정연하게 돌격해 오는 푸른제복의 프러겔 기병대의 모습에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킨 헌병대는 일제히 플린트 락을 들며 쏠 준비했다. 그렇게 자신들의 사정거리에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때, 기병대 맨 앞에서 달리던 샤벨리아가 사악한 미소와 함께 작게 중얼거렸다.

“나와라, 용용이.”

피이잉 ­

앞을 내지른 그녀의 주먹사이 푸른 사파이어가 순간 빛나는가 싶더니 거대한 체구의 ‘스카브레오’ 용용이가 일순 몰아친 하얀 눈보라 속에서 엄청난 위용을 들어내며 설원위로 떨어져 괴성을 내질렀다.

콰아앙!!!

“크허어어엉!!!!”

“으.. 으아아아!!!”

처음 보는 거대 몬스터에 헌병군은 패닉에 빠지며 진열을 무너트렸고, 드래곤을 닮은 괴수답게 순간 입 안으로 엄청난 양의 빙결마력을 응축하는가 싶더니, 일순 브레스를 토해내며 헌병군이 있던 일대를 그대로 얼려 버렸다.

“드.. 드래곤이다!!!”

“실버 드래곤이다!!”

“크르르르..”

용용이의 위용에 겁에 질린 헌병군들이 흩어지며 등을 돌리며 도망치던 그때, 샤벨을 휘두르며 그들의 사이를 파고드는 황금빛 여신이 있었다.

“하하하!! 겨우 이 정도냐?!! 이래선 니들의 총통을 구할 수 없다!!”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그녀의 손속은 자비가 없었고, 샤벨리아가 지나가는 자리엔 오직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적의 시체만이 가득했다.

“악마야..”

“그러게요..”

그녀의 뒤를 따라 도망치는 헌병군을 공격하던 발슈테인과 폰은 미친 듯이 웃으며 적을 쓰러트리는 샤벨리아의 무용에 하나 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단 한 명 아티뤼크 만큼은 눈을 반짝이며 동경한단 표정으로 나직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멋있어.”

오합지졸이 되어 플루스로 다시 도망치는 병사들 가운데 그나마 공화국에 대한 사명을 가진 장교 몇이 자기 손에 끼워진 반지를 빛내며 외쳤다.

“저 마녀를 죽여라!!”

“모든 씰을 집중시켜라!!”

그러자 뒤에서 감정없이 샤벨을 들고 조용히 서 있던 수많은 씰들이 일제히 고개를 드는가 싶더니 여기저기 상처 난 푸른 마나하트를 빛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씰이다!!”

“와아아!! 우리 씰들이다!!”

공포에 빠져 뒤로 도망치던 헌병군들은 자신들을 지나쳐 샤벨리아와 거대 괴수를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아군 씰들의 모습에 도망치던 걸음을 멈추고는 플린트 락을 드러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그 모습을 굉장히 탐탁지 않게 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샤벨리아였다.

“이 개새끼들이..”

죽지도 못하고 다시 되살려져 전장에 내밀어진 씰들의 모습에 울컥 화가 치민 샤벨리아는 말에서 내리고는 자기 샤벨 검신 위로 위력적인 뇌전을 일으키며 차가운 얼음과도 같이 싸늘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파지지직 ­

“그 손목 모두 잘라주마.”

그렇게 천천히 걸어오는 그녀를 향해 수십 명의 씰들이 은빛 샤벨을 번쩍이며 달려들던 그때, 순간 황금빛으로 번쩍이던 그녀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들의 뒤로 빠져나와 샤벨을 털며 말했다.

“신성 프러겔 왕국 제1성, 샤벨리아 폰 퓌러스타트다. 진심으로 상대해 주마, 공화국의 쓰레기들아.”

퍼버버버벅 ­

‘...!’

신기루라도 보는 것일까, 그 많은 씰들의 마나하트가 깔끔하게 베어져 부서지며 설원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고 전율케 하는 그녀의 모습에 헌병군 장교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다.. 다 보내라!!”

“저.. 적은 하나다!! 우리가 질리 없다!!”

타다다닥 ­

그들의 명령에 무표정한 얼굴의 씰들이 샤벨을 쥔 채 다시금 그들을 지나쳐 샤벨리아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불쌍한 것들..”

수백은 될 듯한 망가진 씰들이 각자 움직일 수 있는 최대한 힘을 짜내며 샤벨리아에게 달려들었고, 그런 그들을 잠시 측은하게 바라보던 샤벨리아는 자신에게 샤벨을 내지르는 씰 하나의 얼굴을 그대로 잡아 설원에 처박아 내리누르며 으르렁거렸다.

콰앙!!

“키우던 개도 이런 대접은 하지 않는다, 인간들아!!”

번쩍 ­

그와 함께 섬광과 함께 사라진 그녀는 씰들의 마나하트만 깨끗하게 베어 넘기며 눈에 따라가지 못할 잔상만이 설원위에 남겼다.

서걱 ­

‘..!’

쩌적 ­

그렇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모든 씰들을 고통 없이 보내준 샤벨리아가 눈앞에 있던 장교를 향해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내지르던 그때, 마나하트가 금이 가 만신창이가 된 씰 하나가 몸을 일으켜 자기 마스터인 듯한 그를 보호하듯 막아서며 대신 검에 찔렸다.

그 모습에 놀란 듯 눈이 커진 샤벨리아는 자기 사명을 다 했단 듯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을 감는 씰의 모습에 일순 슬픈 눈동자로 변해 흔들렸다.

“바보 같은 것..”

그렇게 그녀가 지나간 자리 뒤에는 수백 명의 씰들이 설원 위에 쓰러져 있었고,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아군도 적군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크르르..”

쿠웅 ­

“으.. 으아아!!”

그녀 뒤로 다가오는 용용이의 모습에 샤벨리아에게서 겨우 살아남은 장교가 놀라 뒤로 넘어지자, 씁쓸한 표정의 샤벨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가.”

“뭐..?”

믿을 수 없단 듯 쳐다보는 그를 향해 샤벨리아가 미간을 찡그리며 그의 멱살을 움켜쥐어 잡아당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살려줄 테니, 그 쓰레기 같은 목숨 쥐고 꺼지라고.”

“으으..”

“네 씰의 희생에 고마워해라, 인간. 네가 오늘 살 수 있었던 건, 널 위해 죽은 씰 덕분이니까.”

타악.

그렇게 멱살을 놓아주자 헌병군 장교는 추한 모습으로 설원을 헤집으며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를 시작으로 수많은 헌병군들이 등을 돌리며 설원을 달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그닥 히이이잉 ­

“추격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놔 둬.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차가운 설원 위, 자신들을 위해 죽은 씰들을 삭막한눈에 내버려 두고 도망치는 그들을 바라보는 샤벨리아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슬프고 화가 나 보였다.

스스스스 ­

그러곤 잠시 뒤, 그녀에게 마나하트가 부서진 씰들의 시체가 검붉은 재가 되며 아름답게 하늘로 타올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다 쓴 도구의 말로일까, 샤벨리아는 그 검붉은 재 사이를 걸어 나오며 발슈테인에게 말했다.

“셰이엔에 파발을 보내. 페르티갈 로슈비치는 이제 프러겔의 것이라고.”

“알겠습니다!”

스릉 ­

“우리의 승리다! 프러겔 만세!! 승리의 여신 샤벨리아 만세!!”

그녀의 말에 벅찬 표정을 지은 발슈테인이 말을 돌려 샤벨을 높게 치켜들며 외치자 프러겔 병사들은 모두 샤벨을 높게 치켜올리며 그를 따라 감격의 환호성을 올렸다.

“프러겔 만세!! 승리의 여신 샤벨리아 만세!!! 와아아!!”

“...”

하지만 주인공인 샤벨리아만큼은 굳게 입을 닫고는 조용히 자신을 감싸 안으며 중얼거렸다.

“페르티안이 보고 싶어..”

***

탕탕탕!

“그럼, 모두 이의가 없으신 겁니까?”

화려한 중앙홀 가운데, 단상에 위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의결안을 묻는지 홀 좌우를 가득 메우며 앉아 있는 화려한 복색의 귀족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귀족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작은 헛기침을 하더니 암묵적인 동의를 표했다.

“찬성 121명, 반대 0명. 페르티갈 로슈비치 왕국과 제국의 합병을 승인하겠소.”

씨익.

박수를 치며 일어서는 귀족들이 내려다보이는 커텐 뒤 화려한 옥좌에 앉아 있던 마벨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뒤, 화려한 제국의 검은제복을 입은 부관들과 올 라운드인 아슈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이걸로.. 된 겁니까?”

단상 위에서 합병을 선언한 남자가 겁에 질린 표정과 함께 커텐사이로 들어와 묻자 다리를 꼬며 그를 바라보던 마벨은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주 잘하셨습니다, 전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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