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5. 제국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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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제국의 꽃 ]
“삼국회의?”
“그래, 곧 각 국 협상단이 올 거야.”
셰이엔의 말에 내가 무슨 말이냔 듯 페르티안을 쳐다보자 녀석은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이 페르티갈 로슈비치를 위한 협상이라 보면 돼.
“협상이라니? 수도를 점령한 건 우리잖아?!”
그러자 셰이엔은 옅은 웃음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그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네, 샤벨리아 경.”
“아니, 여기서 더 뭘 협상하는데?”
지금도 페르티갈 로슈비치 왕성 밖에는 프러겔과 타국에 대한 침입에 대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고, 치안시설을 습격하는 공화국의 잔존세력들의 기승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었다. 이에 살아남은 왕족 중 하나를 왕으로 앉혀 프러겔에 유리한 괴뢰정부를 세울 생각이었지만, 여우 같은 마벨의 선수에 그 정당성마저 옅어지고 말았다.
“페르티갈 로슈비치를 삼분할 생각이네.”
‘..!’
놀라운 그의 말에 내가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자, 셰이엔은 탁자에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제국에 포섭되지 않은 우리 쪽 페르티갈 로슈비치 귀족들이 자신들의 영지를 보전해 준다면 프러겔에 충성을 바치겠다 연락을 주었어.”
“뭐라고..?”
“플루스를 기반한 중앙귀족들 대부분이 우리 쪽으로 전향하겠다 했으니, 수도만큼은 지킬 수 있을 거야.”
외세에 의해 나라가 분할되는 것은 힘의 논리라 하지만 자기 나라를 그것도 귀족이라는 자들이 스스로 발 벗고 분할해 바친다니, 정말이지 어처구니없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것을 동의했다고..?”
“키프루스가 점령한 북쪽의 페르티갈 로슈비치 귀족들 또한 키프루스의 챠르에게 충성을 바치는 서약했다 했으니, 분할은 무리없이 진행될 거야.”
콰앙 !
“이런 개 같은 것들!”
아무리 영지가 탐나도 그렇지 자기 조국을 아무렇지 않게 타국에 잘라 넘긴다는 것은 욕지거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셰이엔을 포함한 고위귀족들은 갑작스레 테이블을 내리치는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분할은 결정났네, 그런데 왜 협상이 필요한 거지?”
빈정상한 듯 이죽거리는 내 말투에 셰이엔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세부적인 영토확정이 목적 아니겠어? 지금으로선 그 경계가 모호하니까.”
“진짜.. 시발것들이네..”
자기 신민들은 저 밖에서 무기도 없이 소리를 내지르며 피터지게 시위하고 있건만 이 나라의 실세라는 것들은 이미 자기 밥그릇을 챙긴 지 오래였다. 이런 나를 재밌단 듯 쳐다보던 셰이엔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샤벨리아경은 프러겔에 떨어지는 이익이 싫은가 보군.”
“으으..”
마땅히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난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셰이엔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싫지는 않군.”
“뭐..?”
“아니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말을 얼버무리는 셰이엔의 태도에 내가 ‘저 새끼 뭐야’란 표정으로 페르티안을 쳐다보자 그는 미소와 함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뭐야..’
그렇게 찜찜한 표정으로 볼을 긁던 그때, 전령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며 보고했다.
“보고드립니다, 하켄 제국, 마벨 후작 휘하 협상단이 플루스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빨리도 왔군.”
마벨의 도착 소식에 셰이엔은 껄끄럽단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전령을 물리쳤고, 페르티안 또한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만은 그들이 모를 다소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시위대가 보이는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
제국의 협상단을 시작으로 키프루스의 협상단까지 플루스에 도착하고, 그렇게 한 곳에 모인 삼국은 프러겔이 준비한 왕성 중앙홀에 마련한 협상 테이블로 모습을 들어내었다.
탕 – 탕
“하켄 제국, 마벨 후작이십니다!”
예식용 창의 두드림과 동시에 중앙홀 입구에서 금수로 화려하게 수를 놓은 검은제복의 마벨이 휘하 부관들을 데리고 입장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주위엔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아슈트로? 그리고 엘로이즈까지?’
안전을 위해서인지 그의 옆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은발의 미소녀 엘로이즈가 무정한 보랏빛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고, 언제 페르티갈 로슈비치에 왔는지 예의 권태로운 표정을 한 아슈트로가 허리춤에 샤벨을 쥐고는 마벨의 뒤에서 모습을 들어내었다.
씨익.
‘이 새끼가..’
그렇게 중앙홀을 들어오던 녀석은 페르티안 옆에 서 있는 날 발견했는지 재수 없는 미소를 그리더니 마치 총을 쏘듯 이전 상처 입었던 곳을 가리키며 ‘빵’하며 도발했다. 욱하며 앞으로 나서려던 나를 발견한 페르티안이 내 팔을 붙잡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 검은 바로 녀석의 목으로 날아갔을 것이었다.
“흐음.. 샤벨리아 경을 여기서 다시 보다니, 우리의 인연이 참 질기군.”
도발 할 생각으로 내게 그렇게 말했겠지만, 이전 엠블롱 언덕에서 다친 총상이 아직 낫질 못했는지 의자에 앉으려는 녀석의 미간이 모아지며 찌푸려졌다.
스윽.
“샤.. 샤벨리아경?”
왜 그랬을까,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다가오는 내 모습에 놀란 제국사람들이 날 경계하며 허리춤의 샤벨을 잡았지만, 난 그런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당황한 듯 쳐다보는 마벨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녀석이 의자에 편히 앉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고.. 고맙네.”
생각지 못한 내 호의에 마벨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리 답하자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이리 말했다.
“쎈 척은..”
“뭐라?!!”
“지금 각하께 뭐라 했는가?!!”
내 말에 발끈한 노르공과 프레드릭 백작이 호통을 치며 따졌지만, 마벨만큼은 순간 묘한 표정이 되어 그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크흠..”
그렇게 분위기가 이상해지려던 그때, 살짝 뾰로통해진 페르티안이 헛기침하며 내게 돌아오란 듯 눈짓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마벨이 씨익 웃으며 페르티안에게 말했다.
“남작이 되셨단 말을 들었습니다, 토르디에르에서 꽤 훌륭한 무공을 세우셨다고요?”
그의 말에 프러겔의 귀족들은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며 토르디에르의 흉계를 꾸민 것이 제국이란 것을 안단 듯 쳐다보았지만, 마벨은 태연한 표정과 함께 미소로 페르티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운이라.. 그럼, 그 운이 언제까지 갈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마벨 경!!”
정도를 넘는 그의 말에 앙센을 비롯한 프러겔 귀족들이 발끈을 하자, 마벨은 장난이란 듯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장난입니다, 장난. 프러겔은 이런 조크도 못하나 봅니다? 하하하.”
그렇게 마벨의 말장난에 휘둘리던 그때, 조용히 그를 바라보던 셰이엔이 미소와 함께 말했다.
“페르티안 경의 운이 확실히 강하긴 강한가 보군요. 대륙 최고라는 마벨 경마저 이렇게 남작을 경계할 정도니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셰이엔의 도발에 마벨의 눈썹이 잠시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미소를 그린 그가 대답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셰이엔 전하.”
“나 또한 반갑습니다, 마벨 경.”
묘하게 불튀기는 둘의 신경전이 이어지던 그때, 다시금 시종의 예식용 창이 바닥을 두드리며 협상테이블의 마지막 손님 입장을 알렸다.
탕 – 탕
“키프루스 왕국, 쿠로조프 공작이십니다!!”
시종의 외침과 함께 화려한 짙은 올리브 색 제복을 입은 작고 통통한 노인 하나가 다리를 절뚝 거리며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변방에 위치한 키프루스는 에우로페 대륙의 왕국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변방 중 변방이었지만, 영토로 치자면 그 하켄제국보다도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다만, 영토의 절반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동토란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었다.
“고명하신 셰이엔 전하와 대륙 곳곳에 그 명성이 자자한 마벨 후작을 뵙게 되어 이 늙은이 영광입니다.”
정중하게 예를 표하는 쿠로조프 공의 인사에 셰이엔과 마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답례를 하며 인사를 건넸다.
“원수의 무공은 틈틈이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쿠로조프 공의 전공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셰이엔과 마벨의 환대에 쿠로조프는 감사하단 듯 고개를 숙이고는 자기 자리로 이동해 앉았다. 다만 특이한 것은 그의 뒤로 후드를 쓴 작은 인영이 쫄래쫄래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마력이 느껴져..’
겉으로 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만큼, 아니 플로헤타와 비견해도 부족하지 않은 강력한 마력의 움직임이 후드를 뒤집어쓴 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슈트로도 심상치 않은 마력을 느꼈는지 다소 긴장한 눈동자로 나와 같이 저 후드 쓴 정체불명의 존재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 내 뒤에서 ‘어?’하며 천진난만한 게 소리를 낸 플로헤타가 갑자기 몸을 돌려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
너무도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말릴 타이밍을 놓친 모두가 천역덕스럽게 걸어가는 플로헤타를 바라보던 그때, 쿠로조프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후드를 쓴 존재에게 살짝 무릎을 굽힌 플로헤타가 ‘우웅’하며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미소와 함께 이렇게 물었다.
“키탈파?”
‘..!’
그러자 순간 얼굴이 굳은 아슈트로가 자리를 박차서는 허리춤에 있던 샤벨을 뽑으려 했다.
철컥 철컥
‘!!’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의 샤벨이 검집에 걸렸는지 나오지 않았고, 순간 뛰쳐나온 올 라운드의 돌발행동에 키프루스의 수행원들은 일제히 샤벨을 빼 들며 쿠로조프 원수를 감싸며 보호했다.
“하하하!”
긴장감도 잠시 뽑히지 않는 샤벨을 놓은 아슈트로가 재밌단 듯 호탕하게 웃는가 싶더니 플로헤타 옆에 있던 그 존재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후드 벗어, 샤벨 없이도 네 목정도는 가볍게 부러트릴 수 있으니까.”
“쿡..”
그러자 후드를 쓴 작은 인영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후드를 잡아 뒤로 벗으며 아슈트로에게 인사했다.
“내 목을? 아슈트로, 너무 네 실력을 자신하는 거 아니야?”
은청색 머리카락과 은청색 눈동자를 한 미소녀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못마땅해 하는 아슈트로를 놀리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플로헤타는 그런 그녀가 반가운지 단숨에 껴안으며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역시 키탈파구나!! 우와아아!!”
“윽.. 프.. 플로가.. 여기 있을 줄은 예상 못했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난감해 하던 그때, 겨우 플로헤타에게 벗어난 은청색 머리카락의 미소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협상단을 향해 걸어나오는가 싶더니 당돌한 미소와 함께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고대한 키프루스 왕국의 벨리체스트벤니, 키탈파 세르윈 류리엘라입니다. 쿠로조프 공을 호위하러 온 오리지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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