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98화 (98/135)

〈 98화 〉 98. 제국의 꽃

* * *

[ 98. 제국의 꽃 ]

“뭐..?”

갑작스레 나타난 녀석의 행동에 내가 당황하며 눈을 깜박이던 그때, 뒤에서 나를 훔쳐보던 오렌지 머리칼의 여자아이가 순간 반가움에 활짝 웃는가 싶더니 내게 안기며 소리쳤다.

“플룩스!”

‘엥..?’

묵직한(?)그녀의 달려듬에 순간 기우뚱하며 엉덩방아를 찧은 난 마치 오랜만에 만나 반갑단 듯 내 품을 파고드는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렇게 귀여운 작은 폭탄을 안고 당황하던 그때, 은발의 미소녀가 우리에게 다가와선 말했다.

“데브, 이 무슨 무례입니까?”

“하지만..”

“하지만이라뇨?! 어서 예를 갖추세요.”

“우우..”

그녀의 꾸짖음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여자아이는 내 품에서 나와선 정중하게 내게 예를 표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인사드립니다, 위대한 파편이시여. 올 라운드 넘버 파이브, 데네브카이토스 폰 벨켐부르크 입니다.”

‘이 아이도 올 라운드라고..?’

보기 힘든 오리지널을 그것도 둘이나 보다니, 난 당황한 눈동자를 빠르게 깜박일 뿐이었다.

“헤헤, 플룩스!!”

“윽..!”

꽤 어리광쟁이인지 내게 인사를 한 데브는 다시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내 품에 안기며 볼을 부비부비 거리기 시작했다.

“데브!!”

“싫어!!”

“아직 말 안 했어요!”

“그래도 싫어!!”

막무가내인 데브의 행동에 프레데리카는 죄송하단 듯 내게 고개를 조아리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난 제국의 오리지널인 그들이 내게 왜 이리 살갑게 구는 것인지 그것이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제국의 올 라운드가 내게 무슨 볼일이지?”

내 물음에 프레데리카는 아차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송구스럽단 듯 무릎을 꿇으며 내게 말했다. 그것도 엄청난 것을 입 밖으로 꺼내며 말이었다.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들의 왕이시니까요.”

‘..!’

그녀의 말에 나를 비롯한 페르티안까지 놀란 눈으로 프레데리카를 바라보았고, 고개를 든 프레데리카는 자기 허리춤에 매달린 샤벨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전 대(?) 시왕께서 부탁하셨습니다. 새로운 시왕(?王)을 보필해 어지러워진 세상의 균형을 맞추라고 하셨습니다.”

“시왕..?”

“네, 당신은 우리들.. 이 세상 씰들의 유일무이한 왕이십니다.”

‘!!’

씰들의 왕이라니, 나는 충격적인 그녀의 말에 놀람보다도 어이없는 헛웃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뭐..? 내가 왕이라고? 니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

“난 씰들의 왕도 아닐 뿐더러 니들 같은 건 처음 본다고!”

“아니야!!”

내 말에 품에 있던 데브가 화가 난 얼굴로 소리치더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날 응시하며 말했다.

“플룩스는 나도 알고, 프레데리카도 알아! 그리고 카스토르도..”

“데브, 그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그렇게 몰아치면 안 됩니다.”

알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였다. 순간 데브의 왼쪽 눈이 순간 연두색 눈동자로 빛나는가 싶더니 내 뒤에 있던 페르티안을 응시했다. 그러곤 뭔가에 홀린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헤에.. 너도 여기에 있었구나?”

“응..?”

신비한 그녀의 오드아이에 놀란 페르티안이 눈을 깜박이자 데브는 작은 팔을 뻗어 그의 옷가지를 움켜쥐고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너도 잊은 거야? 프..”

덥썩!

“읍..!!!”

엄청난 스피드였다. 순간적으로 뛰쳐나온 프리데리카가 데브의 입을 틀어막고는 바둥거리는 그녀를 봉쇄하며 죄송하단 듯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응석을 받아주면 정도를 모르는 아이라..”

“나야 상관은 없지만..”

프레데리카의 사과에 괜찮단 듯 말하는 나였지만, 발버둥 치는 데브를 곤란하단 듯 바라보는 그녀의 당황스런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엄청난 손님들의 등장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반가움이 가득한 플로헤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카! 데브!!”

“푸헤!! 플로!!!”

프레데리카의 손에서 풀려난 데브는 폴짝 뛰어 땅에 착지하고는 자신에게 웃으며 달려오는 플로헤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둘은 꽤 죽이 맞는지 플로는 데브를 살갑게 반겨 주며 손을 잡아 같이 깡충깡충 뛰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익숙한 마력 움직임에 혹시나 해서 왔더니, 프카랑 데브라니.”

역시 마력 감지만큼은 대단한 그녀였다. 눈을 반짝이며 묻는 플로의 물음에 프리데리카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새로운 시왕전하를 모시러 왔습니다.”

“새로운 시왕?”

무슨 소리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플로의 물음에 프레데리카는 안색하나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플룩스께서 다음 대 시왕으로 오르셨습니다.”

“샤벨리아가..?”

나처럼 당황할 거로 생각했던 플로헤타의 표정이 일순 진지해지는가 싶더니 데브를 잡았던 손을 놓고는 자기 드레스를 잡아 무릎을 꿇어 내게 정중히 예를 올렸다. 마치 신분이 다르단 듯 충성을 맹세하는 한 명의 기사처럼 말이었다.

“위대한 파편께 인사드립니다. 올 라운드 넘버 쓰리, 플로헤타 폰 벨켐부르크가 당신의 방패가 되겠습니다.”

“플로..?”

“시초의 약속에 따라 우리의 충성은 당신의 것입니다.”

***

하켄 제국의 황성 페르로뷔나 중앙홀 가운데 흑십자 기사단에게 포박되어 교차된 예식용 창에 목을 늘어트린 카스토르의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홀 가운데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홀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올 라운드들이 검은색 외투에 황금수가 놓여 흰색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비어 있는 옥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적막만이 감돌던 그때, 대리석을 바닥을 두르리며 소리치는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탕 – 탕 ­

“하켄 대제국, 클로비스 발부르가 프리티마셰 페트로뷔나 폐하이십니다!!”

스윽.

황제의 입실에 그 오만하고 막강하다는 올 라운드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고, 열리는 거대한 문 사이로 화려한 검은 망토를 두른 하켄제국의 황제 클로비스 4세가 모습을 들어냈다.

슥.

“고개를 들라.”

화려한 옥좌에 오만하게 다리를 꼬은 황제는 생각보다 작은 체구였다. 게다가 가면을 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남자가 아닌 소녀의 목소리였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가면으로 가려져 있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마저 숨길 순 없었다. 호수를 담은 듯 맑고 푸른 눈동자와 햇볕을 머금은 듯 찬란한 윤기가 흐르는 황금빛 머리칼을 정성스레 말아올린 모습은 천상의 미를 옮겨 놓은 듯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그녀는 이 에우로페 대륙을 호령하는 유일무이한 제국 하켄의 황제였다.

“프레데리카와 데네브카이토스를 놓쳤다고?”

“송구합니다.”

그녀의 물음에 그 오만하던 홀슈타인의 표정도 긴장으로 굳어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것은 그만 그런 것은 아닌지 다른 올 라운드들도 긴장의 침을 삼키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실망이구나, 홀슈타인.”

처억.

“죄송합니다!!”

머리를 대리석에 박을 듯 고개를 숙인 그의 볼 위로 식은땀 하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황제는 그런 그의 사죄따윈 관심도 없단 듯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웅장하고 거대한 단상 계단을 내려와 결박되어 고개를 숙인 카스토르에게 다가갔다.

“카스토르.”

“폐하를 뵙..”

‘!!’

황제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인사를 하던 카스토르의 눈동자가 일순 커지는가 싶더니 놀람과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스윽.

“왜 그리 놀라는가?”

“당신이 어떻게..”

격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는 황제를 응시한 채 떨어질 줄 몰랐고, 그런 카스토르를 내려다보는 황제의 입가는 진한 미소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랬군요.. 그래서..”

놀람도 잠시 모든 것을 이해했단 듯 씁쓸한 미소가 그의 입가로 번져갔다.

“내가 없는 사이, 허락하지 않은 짓을 했더군.”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황제의 물음에 카스토르는 나직이 그렇게 답했고, 클로비스4세는 그런 그의 말에 표정이 굳어지며 손을 조용히 내밀어 그의 마나하트 위로 대었다.

피잉 ­

그러자 푸른빛과 함께 그의 마나하트 위로 기형학 무늬가 그려진 마법진들이 펼쳐져 올라왔다.

“내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네가 나를 배신할 줄이야.”

실망했단 듯 중얼거리는 황제의 말에 카스토르는 괴로운지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에게 답했다.

“그만큼 당신이 잘못되었단 걸 누구보다 잘 알지요.”

“카스토르..”

파지지직 ­

“끄아아악!!!”

마나하트를 파고드는 황제의 손속엔 자비란 없었고, 그의 깊고 안전한 곳에 봉인되었던 최초의 계약의 증거가 황제의 손에 잡혀 끄집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준 생명이니.. 내가 다시 거둬가마.”

“으아아아악!!!”

황제의 손에 빛나 오르는 저 빛은 카스토르의 생명과도 같았다. 그와 함께 홀에 있는 모든 올 라운드들의 표정이 두려움과 존경심이 물들어가며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에 몰렸다.

“내 오래된 벗이자 나의 씰이여, 잘 가거라.”

황제의 말에 초연한 표정으로 힘겹게 고개를 든 카스토르가 안쓰러운 눈빛과 함께 그녀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불쌍한 사람..”

파직 ­!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응축되어 있던 카스토르의 푸른 마력이 일순 모아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가 사라졌다. 그리고 검은 재가 되어 사라지는 카스토르의 육체를 뒤로하며 단상의 계단을 올라가던 클로비스4세가 몸을 돌려 올 라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치 더는 미룰 수 없단 듯 단호한목소리로 말이었다.

“전군에 동원령을 내려라, 내 친히 친정을 나가 멈췄던 대륙통일을 완수하겠다. 모든 것은 나 클로비스4세 발아래에 조아릴 것이고, 그것이 이 세계와 이 대륙의 운명이다.”

그러자 경외심과 흥분에 찬 올 라운드들이 주먹을 쥐어 자기 가슴에 대며 외쳤다.

“모든 건 당신 뜻대로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의 치세와 영광이 제국과 폐하께 영원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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