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99. 제국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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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제국의 꽃 ]
“플로헤타 왜 그래..?”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오히려 나였다. 평소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그녀와 달리 진지해진 플로헤타는 내게 숙인 자세로 이렇게 말했다.
“데네브카이토스의 권능은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 당신을 처음 안 순간부터 우리의 인연이 가볍지 않을 거란 것은 알았지만, 당신이 플룩스라니.. 제 직감이 틀리지 않았네요.”
“플룩스라니.. 대체 무슨 소리들 하는 거야?!”
당최 알 수 없는 말만을 해대는 그들의 대화에 난 결국 참았던 화를 터트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들의 뒤에 있던 프레데리카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현자 토마 사무엘이 씰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으시겠죠..?”
“그야.. 유명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다른 자가 우리를 창조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뭐라고..?”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마나하트를 쥐고 있던 서지웅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놀란 눈을 들어 그녀를 응시하자, 프레데리카는 ‘역시나’하는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역시, 당신도 보셨군요.”
“어떻게 그걸..”
“그야 당신이 플룩스시니까요.”
“플룩스..?”
의아한 내 물음에 데브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아버지가 만든 최초의 쌍둥이 중 하나야.”
“쌍둥이..?”
“네, 태초의 씰이자 하나이면서 둘인 우리들의 시초이시죠.”
‘!!’
놀라운 그들의 말에 난 손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도 허황되고 터무니가 없으면 현실감이 떨어진단 말이 사실이었던가, 난 어이없단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웃기지 마, 난 샤벨리아야. 너희들이 말하는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플로헤타가 떨리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혼란스럽단 거 알아요, 샤링.”
“나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는 표정으로 해대다니, 난 내 손을 잡은 플로헤타의 손을 뿌리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말마, 또 무슨 계략을 꾸미는 거지? 내가 그런 말에 속을 것..”
“태초의 씰은 창조주인 아버지의 의지가 가장 많이 깃든 축복 받은 존재입니다.”
“뭐..?”
“과거의 순수함을 지키는 ‘플룩스’와 변화를 꿈꾸며 진화를 추구하는 ‘카스토르’가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기신 유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위대한 파편이라 불러.”
데브는 오렌지 빛 오른쪽 눈동자와 연두색으로 빛나는 왼쪽 눈동자를 깜박이며 해맑게 대답했다.
“그럼.. 파편속에 봤던 다른 녀석들은 뭐지? 그 녀석들도 내 형제란 말이야?”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존재들, 몇 번이나 나를 도와주고 살려주었던 그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프레데리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들..?”
“네, 불완전한 잔재들 말입니다.”
“뭐..? 불완전한 잔재..?”
떨리는 내 목소리에 플로헤타는 어두운 표정과 함께 프레데리카의 말을 이어받아 내게 설명했다.
“세상엔 완벽하게 창조되는 창조물은 없어요.”
“완벽하게 라니..?”
“아무리 아버지라해도 신은 아니란 이야기죠.”
‘..!’
“그럼..”
설마 하는 내 표정에 데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들은 그들을 불량품이라고 했어.”
‘!!’
“불량품이라고..?”
격하게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응시하며 프레데리카가 말했다.
“태초의 씰이 탄생하기 전 먼저 태어나고 죽어 갔던.. 불쌍한 존재들이죠.”
털썩.
“그럼 그때.. 내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그 말이..”
현실같았던 그 꿈속에서 나를 위로하듯 머리를 쓰다듬던 녀석이 했던 말.
[ 괜찮아, 너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야. 부족한 만큼 우린.. 너가 행복해지길 바라니까. 그것이 우리들의 소망이고 그에게 버림받은 우리들의 복수니까. ]
“젠장..”
대체 내 목숨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먼저 스러져 지나갔던 것일까, 다리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던 난 바닥을 짚었던 손을 강하게 말아쥐었다.
“샤링..”
“왜.. 나지? 왜 그들이 나한테만 보이는 건데?!”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데브에게 들려왔다.
“플룩스는 상냥하니까.”
“뭐..?”
“차갑고 이성적인 카스토르보단, 따뜻하고 인간적인 플룩스가 좋으니까.”
어린아이처럼 단순명료한 대답,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플로헤타를 비롯해 프레데리카마저 그런 데브의 말에 동의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왜 난 너희를 기억 못 하는거지?”
눈을 뜨던 그때부터 무엇하나 진실이 없던 내 기억 속에 난 어떠한 자각도 할 수 없었다. 무엇하나 뚜렷한 이유가 없이 난 이 몸에서 깨어났고, 내가 서지웅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건.. 당신이 스스로 원했기 때문이예요.”
“뭐..?”
플로헤타는 미소와 함께 떨리는 내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를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제일마냥 생생하단 듯 아련한목소리로 말이었다.
“사랑하는 카스토르님에게 육체를 양보한 당신은 그저 작은 마나하트에 봉인되는 것에 만족했으니까요.”
‘!!’
“내가 스스로 자처했다고..?”
내 물음에 프레데리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런 기억도 없이 순수한 결정체로 남아 순수함이 가득한 과거를 윤회하고 싶단 것이 당신의 뜻이었으니까요.”
“하하..”
정말이지 과거의 나란 놈은 청승맞은 놈이지 않을 수 없었다. 순수함? 과거?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았다. 게다가 얼마나 미련할 정도로 멍청하면 자기 하나밖에 없는 육체를 형제에게 순순히 넘겨 준단 말인가? 지금의 나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묻자.”
“네?”
“왜 내가 이제 와서 깨어난 거지? 그 순수한 결정체인지 뭔지 하는 곳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뭣하러 이곳에 나왔냔 말이야!!!”
화가 난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터져 올라 나를 덮쳤다. 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 수많은 세월을 미련스럽게 혼자 뒤짚어 쓰고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고상한 척하더니 이제 와 현실을 자각하라고? 더군다나 자기들 편한 대로 꺼냈다 넣었다 하는 녀석들의 이기심을 느끼자 난 참아왔던 화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자 데브는 겁을 먹은 표정으로 쭈뼛쭈뼛 내 곁에 다가오는가 싶더니 불안한 듯 자기 옷 밑단을 주물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미.. 미안해, 플룩스.. 다 내 잘못이야.”
“뭐..?”
“카.. 카스토르가 도와달라며 내게 왔었어.”
“부탁이라고..?”
“응..”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표정과 함께 내 눈치를 보던 데브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플룩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했어.”
“좋은 일..?”
“응.. 플룩스를 어떤 육체로 전이시켜 달라고, 새로운 육체에 얼마나 적응을 잘하는지 직접 보고 관찰하고 싶다며..”
‘..!’
덥썩
“뭐?! 관찰?!!”
“아.. 아파! 이거 놔줘!! 아프단 말이야!!!”
“그 새끼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말해!! 말하기 전까진 널 놓아주지 않을 거야!!!”
데브의 양팔을 강하게 움켜쥔 난 그 어느 때보다 분개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고, 그런 내 모습에 겁먹은 데브는 울음을 터트리며 놓아달라며 울기 시작했다.
“흐에에엥!!”
“말하라고!!!”
“저.. 전하!”
“샤링!!”
그 모습에 놀란 프레데리카와 플로헤타가 다급히 내게 달려와 말렸지만, 이제야 나를 이 꼴로 만든 녀석의 정체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유도 없이 낯선 곳에 깨어나 나홀로 말도 못하고 떨었던 그 수많은 두려운 밤을 누가 보상해준단 말인가?
그저 재미로 나를 깨웠다면 아니, 단순한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라면 과거 내 형제라 할지라도 녀석을 몇 번이라도 찢어발길 것이다. 그렇게 눈이 붉게 충혈되어 감정에 지배되던 그때, 내 뒷목이 일순 따스해지는가 싶더니 플로헤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잉
“슬립.”
"제.. 젠장.."
***
“이 내용이 사실이란 말이냐?!”
본국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가문의 시종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마벨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져 갔다. 자기 시조이자 위대한 현자 토마 사무엘께서 건설하시고, 초대 황제부터 신성시 받아 대대로 자기 가문이 수호해왔던 볼펜뷔텔이 황제에 의해 하루아침에 폐쇄가 되었단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템플 기사단은 고사하고 신전에 있던 모두가 몰살되었단 소식입니다.”
“시왕전하는? 전하께서는 무사하시냐?”
마벨의 물음에 시종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템플이 폐쇄되던 날, 황궁으로 체포되어 끌려 가셔서는 그만..”
“빌어먹을!!”
콰앙!!
마지막 희망이었던 시왕마저 처형당하고, 신전을 비호했던 자신의 가문 또한 멸문이 될 수 있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다. 잠시 흥분했던 마음을 추스른 그는 조용히 턱을 쓰다듬어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어 나직이 말했다.
“마차를 돌려라.”
“네..?”
“제도로 가지 않고, 세베랑스로 간다.”
“진심이십니까?”
시종의 물음에 마벨은 방법이 없단 듯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멍청한자도 스스로 호랑이입으론 가진 않겠지.”
히이이잉 !!
그렇게 말을 하던 그때였다. 거친 말 울음소리와 함께 급하게 말을 세운 탓 때문인지 마차는 격하게 흔들리며 멈춰 섰다.
“무엇이냐?!”
갑작스러운 멈춤에 시종이 화를 내며 소리를 치자 잔뜩 겁을 먹은 듯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밖..?”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마차 문을 열고 나온 마벨은 얼굴이 굳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 앞으로 황제의 근위 기병대와 함께 올 라운드가 말을 탄 모습으로 자신을 가로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턱.
바다를 품은 듯 휘날리는 푸른 머리칼과 함께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소녀가 가뿐히 말에서 내리는가 싶더니 표정이 굳은 마벨에게 다가와 예를 표하고는 말했다.
“후작 각하를 뵙습니다, 올 라운드 넘버 에잇. 라스알게티 폰 벨켐부르크입니다. 폐하께서 각하를 황성으로 모셔오라는 명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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