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100. 제국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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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제국의 꽃 ]
하켄제국의 제도(??) 뷰쉬발크는 징집된 많은 병사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번화가는 장교들과 숙녀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신민들은 이번 전쟁에서 제국이 다시 한번 승리할 것을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나라전체가 이번 전쟁을 묘하게 반긴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거리엔 황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외침과 선전으로 고무되어 있었다.
“얼굴이 어두우시군요.”
“...”
마벨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라스알게티가 침묵과 함께 그런 거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후작께서는 이번 전쟁을 그리 반기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꼭 그래야 하나?”
싸늘한 그의 목소리에 라스알게티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의자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
“멈췄던 위대한 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좀 더 즐기시는 게..”
“즐겨?”
순간적으로 공기를 누르는 그의 카리스마가 폭발하며 라스알게티를 노려보았다. 그러곤 꽤 맘에 들지 않는단 듯 무릎에 놓인 자기 지팡이를 강하게 틀어쥐며 말했다.
“나라가 강대해지면 신민들이 부유해지나?”
“그야 제국의 힘이 곧 신민들의..”
“나라의 땅이 넓어지면 신민들의 땅이 늘어나나?”
“...”
공격적인 마벨의 말투에 라스알게티는 무슨 뜻인지 알겠단 듯 작게 미소를 짓고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후작께서는 이 전쟁이 탐탁지 않으신가 보군요.”
“...”
말을 아끼는 마벨의 태도에 라스알게티는 차가운 붉은 눈동자를 굴려 그를 관찰하듯 살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 나라는 신민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
“유일무이한 황위 계승자이시자 고결한 블러드 라인의 적통자인 황제 폐하의 제국인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아름다운 마벨의 미간이 일순 미세하게 찡그려졌다면 착각일까, 라스알게티는 그런 마벨의 미묘한 표정을 즐기며 계속해 말했다.
“수많은 신민들을 이제껏 전쟁에 몰아넣으신 분이 이제 와 그들을 걱정한다? 이것만큼 아이러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마벨 원수(??)각하.”
그 말과 함께 라스알게티는 그의 가슴팍에 매달린 무공훈장들을 힐끗 가리켰고 마벨은 침통한 신음과 함께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을 태운 마차는 잘 닦여진 뷰쉬발크 대로변을 따라 황성 페트로뷔나로 향했다.
히이이잉
“워.. 워..”
웅장한 황성 앞, 마벨과 라스알게티를 태우 마차가 멈춰 서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과 궁성 장교가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마차 입구로 달려왔다.
척.
“클로비스 4세 만세!”
스윽.
“클로비스 4세 만세.”
전쟁에 대한 들뜸일까, 자긍심에 찬 궁성장교의 절도 있는 경례와 달리 마벨은 착잡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려 그의 경례를 받고는 마차에서 내려 자기 앞을 막은 황성을 올려다보았다.
“가시죠,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라스알게티의 에스코트와 함께 걸음을 뗀 마벨은 장교모를 허리에 끼고는 그녀를 따라 알현실로 향했다. 확실히 황성 안은 전쟁분위기가 물씬 나며 각지에서 모여든 고위 장교들과 귀족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웅성거리던 그들의 목소리도 마벨의 등장과 함께 거짓말처럼 고요해졌고, 그가 지나칠 때마나 함께 전쟁에 참여해 영광이란 듯 복도에 있던 그 수많은 장교들과 귀족들이 그에게 경례를 올리기 시작했다.
“과연 후작이시군요. 왜 폐하가 급히 찾으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황제 알현실에 도착한 라스알게티는 그 많은 장교들의 존경을 받는 마벨의 존재감에 놀랐단 듯 감탄하며 그를 쳐다보지만 마벨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차가울 뿐이었다.
“들어가지.”
“훗.. 분부대로.”
끼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며, 마벨의 입장을 알리는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탕 – 탕
“하켄 대제국, 마벨 폰 브라운슈파이크 볼펜뷔텔 사무엘 후작 입니다!!”
그의 입장에 옥좌 아래로 도열해 있던 수많은 문무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입실한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마벨을 발견한 클로비스가 손짓하자 문무대신들은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하나둘 알현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스윽.
“신 마벨. 폐하를 뵙습니다.”
옥좌 중앙으로 내려오는 레드카펫에 무릎을 꿇은 마벨은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고, 클로비스는 그런 마벨을 본채만채 하며 대신들이 놓고간 서류를 넘기며 입을 뗐다.
“정말 날 보려고 온 건가? 아님, 어쩔 수 없이 잡혀 온 건가?”
“...”
그녀의 물음에 마벨은 표정이 굳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던 그때, 서류를 바닥에 던진 클로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또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벨의 앞까지 내려왔다.
“마벨.”
“예, 폐하.”
“내게 화가 났나?”
“어찌 제가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클로비스의 물음에 마벨은 더욱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대답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할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라.”
“그럴 수 없습니다.”
클로비스4세의 얼굴은 비밀에 싸여져 있었다. 혹자는 화상을 입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얼굴이 추해 가리는 것이라는 둥 많은 이야기가 호사가들 사이에 오갔지만 단 하나, 누구라도 그녀의 얼굴을 본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스윽.
‘..!’
그런데 그런 그녀가 마벨의 앞에서 자기 가면을 내린 것이었다.
“짐에게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할 셈인가? 마벨?”
잠시 눈을 지그시 감은 마벨은 이내 눈을 뜨고는 각오가 됐단 듯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순간 그의 눈동자는 놀람을 넘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
“왜 그러지?”
“아.. 아니..”
이토록 당황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마벨은 흔들리는 눈동자와 함께 황제를 응시했고, 클로비스는 미소와 함께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놀랄 것 없다. 이것이 진짜 내 모습이니까.”
***
다그닥 다그닥.
“으으..”
몸에 가위가 눌린 듯 힘이 든다. 이것이 이세계에서 느끼는 첫 가위인가? 나는 식은땀과 함께 인상을 찡그리며 뒤척이던 그때, 눈을 번뜩 뜨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일어났어?”
‘..!’
“일어나셨습니까?”
‘!!’
내가 왜 놀랐냐고? 혹시, 내가 마차를 타고 있어서? 훗, 내가 설마 그거에 놀랐을 것 같나? 그럼, 창밖으로 보이는 녹색 초원에 놀랐냐고? 노노노, 그런 것에 놀라기엔 내 내공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근데 그런 내가 이토록 당황하며 눈동자가 지진나는 것은 다름 아닌 데네브카이토스와 프레데리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천역덕스럽게 꼽살이를 끼고 있는 플로헤타 때문이라면 이해가 될까?
“왜 표정이 그러십니까? 혹시 멀미 하십니까?”
“저기..”
“왜? 토할 거 같아?”
“아니..”
“샤링, 내가 등 뚜들겨 줄까요?”
부들 부들.
정말 이것들이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걸까? 나는 천연덕스럽게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프레데리카와 내 무릎을 자기 베개처럼 누워 있는데브, 그리고 무엇보다 내 발을 민망하게 조물조물 거리며 마사지를 하는 플로헤타의 모습에 주먹이 말아 쥐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내 몸에서 안 떨어져?!!”
“으악!!”
“칫..”
“앗!! 젤리 같아서 기분 좋았는데..”
내 발버둥에 셋은 강제로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고, 셋 다 반응은 각기 달랐지만 꽤 아쉬워한단 것 같았다.
‘시발..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짓을 당한 거야..’
잠시 정신을 잃은 것뿐이건만 마치 돌다리 아래로 모여드는 부랑자마냥 녀석들은 아직 포기하지 못했단 눈빛으로 언제든 내게 달려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특히나 손을 꼬물거리며 내 발을 응시하는 플로헤타의 눈빛은 마치 변태의 그것과 같았다.
“페.. 페르티안은?”
“어딘가 있겠죠.”
‘뭐..?’
마치 털끗하나 관심도 없단 듯 심드렁한 프레데리카의 반응에 눈을 깜박이던 그때, 플로헤타가 눈을 찡긋하며 창밖을 가리켰다.
‘아..’
플로의 신호에 창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자 아직은 쌀쌀한지 외투를 걸친 페르티안이 내가 탄 마차옆을 맞춰 말을 몰고 있었다.
“응? 깼어?”
“어.. 어.”
“진짜 말투 한 번.. 아니다, 그래야 샤벨리아지.”
“뭐?!”
“아니, 예쁘다고.”
퐁
화악.
생각지 못한 녀석의 머리 쓰다듬에 난 얼굴이 빨개지며 또다시 고장이 났고, 페르티안은 그런 내가 착하단 듯 ‘옳지 옳지’하며 날 얌전하게 만들었다. 혹시 이 자식 날 다루는 법을 누군가에게 배운 거 아니야?
그렇게 기분 좋은 페르티안의 쓰다듬에 나른해질 즈음 전령 하나가 말을 몰아 급하게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남작님, 공작전하께서 샤벨리아 경과 함께 빨리 앞으로 오라는 전갈입니다.”
“선두로요? 왜죠?”
계획에 없는 셰이엔의 명령에 페르티안이 묻자, 전령은 들뜬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여왕폐하께서 세타 강 앞까지 마중 나오셨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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