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01화 (101/135)

〈 101화 〉 101. 제국의 꽃

* * *

[ 101. 제국의 꽃 ]

페르티갈 로슈비치에서의 승전은 프러겔 왕국에게 있어 커다란 의미가 있는 전쟁이기도 했다. 하켄 제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조금씩 밀려 모쉘마저 빼앗긴 프러겔이었지만, 그동안 대륙 다른 왕국들에게 의심을 받으며 저울질 당하던 프러겔의 힘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알린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 프러겔의 전성기를 이끄는 세타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페르티안과 승리의 여신으로 추앙받는 샤벨리아는 다른 왕국들이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거대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존재감만으로도 강한 압박을 느끼게 하는 둘을 모두 가진 지금, 프러겔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했고, 영민한 프러겔의 여왕은 이 기회를 삼아 자기 왕국을 한 단계 높게 올리려 했다.

“대박..”

세타 강변을 따라 길게 도열해 있는 프러겔의 전열보병들은 그 웅장함에 장관을 이루었고, 그 들 가운데 푸른색과 흰색, 그리고 황금수로 꾸민 고풍스러운 그늘막 아래엔 옥좌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에스테리아 여왕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함께 바람에 나부끼는 프러겔 왕가의 깃발들 아래로 고위 귀족들 모두가 나왔는지 그 화려함이 대단했다.

턱.

여왕의 앞에서 말을 탈 수 없는 일. 나를 포함한 페르티안, 그리고 귀족과 장교 모두가 일제히 말에 내려서는 세타강 위로 설치한 부두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빠밤 ­!

‘어.. 엄마야..’

일전의 개선보다 그 분위기와 규모가 다른 여왕의 서프라이즈에 나는 갑자기 울려 퍼진 나팔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움찔 거렸고, 페르티안은 그런 내 모습에 ‘쿡’하며 웃음을 흘렸다.

‘우씨.. 저 새끼가 죽을라고..’

내 앞에 걸어가며 웃는 페르티안을 향해 눈깔을 뽑아버린단 듯 눈을 흘기며 손으로 제스처를 날리던 그때, 왕국 내 모든 군악대를 데려왔는지 엄청난 드럼소리와 함께 일제히 우리의 개선을 환영했다.

“신 셰이엔, 폐하의 명령에 따라 페르티갈 로슈비치를 평정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맨 앞에 있던 셰이엔이 여왕의 앞에 무릎을 꿇자, 뒤에 있던 페르티안과 나 그리고 이번 전쟁에 참전했던 귀족모두가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수고많았어요. 그대와 경들의 승전소식에 내 오랜 한이 말끔히 씻어내려가는 느낌입니다.”

어린 나이에 여왕으로 왕위를 계승할 때부터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던 하켄과의 투쟁에서 다시금 승리하자 그녀는 꽤 벅차오르는지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동생과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일전에 말한 제국의 올 라운드들 이군요.”

내 뒤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있던 프레데리카와 데브를 발견한 여왕은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단 듯 물었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제는 제국을 등진 몸이니 여왕 폐하께서 그들을 위로해 왕국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내 말에 여왕은 너무도 예뻐 죽겠단 듯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다가와 덥썩 내 손을 쥐어 올렸다.

“폐.. 폐하..?”

‘이 아줌마 또 왜 이래..? 사람 겁나게 시리..’

“샤링.”

“예.. 마.. 말씀 하시지요.”

“샤링!”

‘아씨.. 왜 자꾸 불러 싸는데..?’

부담스런 그녀의 눈빛에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에스테리아는 순간 나를 와락 끌어안더니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마워요, 당신이 있어 내가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가.. 감사합니다.”

“에구! 이 예쁜 것!!!”

꽈악.

‘아욱!!!!’

역시 힘은 아줌마 힘이라고 했던가, 그 얄상한 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에스테리아의 과도한 껴안음에 일순 숨이 턱 막히며 짜부러지던 난 몇 번이나 빨래를 쥐어짜듯 나를 끌어안았다 흔드는 그녀의 격한 환영을 받고서야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오늘은 프러겔에 있어 큰 경사입니다. 내 오늘을 기념해 승전일로 선포하고 가벼운 죄에 한해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리겠습니다.”

“폐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모든 문무대신들은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고, 여왕은 그게 끝이 아니란 듯 당찬 목소리로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또한! 페르티갈 로슈비치를 평정한 셰이엔에겐 공석이 된 페르티갈 로슈비치 왕위를 내리고, 그를 도와 전쟁에 승전한 페르티안 남작은 백작을 수여하겠소.”

‘..!’

프러겔에 있어 왕은 한 명뿐, 두 명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셰이엔을 페르티갈 로슈비치의 왕으로 하사한다니 프러겔의 귀족들은 예상치 못한 여왕의 발언에 놀라 쳐다보자 에스테리아는 시종이 건네 올리는 화려한 샤벨을 뽑아들어 올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스릉 ­

“나, 신성 프러겔 왕위 계승자 에스테리아 폰 요제파 슈트로겐이 이 자리에서 모든 왕국과 나라들에게 선포한다!”

위엄있고 엄숙한 그녀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죽이는 순간 놀라운 말이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오늘부로 우리 신성 프러겔 왕국은 더 이상 왕국이 아닌 제국임을 선포하는바이며, 우리 제국의 천년불굴의 원수! 저 가증스러운 하켄과의 무제한 투쟁을 선포한다!!”

‘!!’

제국 선포. 그것은 에우로페 대륙이 이제 제국의 시대로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같았다.

스윽.

‘..!’

그녀의 엄청난 발표에 모두가 얼어붙어 있던 그 때,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있던 셰이엔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자기 허리춤에 있던 샤벨을 뽑아들어 올리며 귀족들을 깨우듯 이렇게 외쳤다.

스릉 ­

“에스테리아 폐하 만세! 신성 프러겔 제국 만세!!”

스릉 – 스릉 ­

그러자 귀족과 함께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수많은 장교들이 자기 허리춤에서 샤벨을 뽑아 은빛 칼날을 번쩍이는가 싶더니 새롭게 여황으로 등극한 에스테리아를 비호하듯 대지가 울릴 듯한 함성으로 외쳤다.

“에스테리아 폐하 만세! 신성 프러겔 제국 만세!!”

“와아아아!!!”

그녀의 제국 선포에 병사들은 플린트 락을 들어 올리며 환호를 했고, 귀족들은 벅찬 표정과 함께 뽑아든 샤벨을 시종에게 다시 건네곤 자신만만한 표정과 함께 손을 들어 화답하는 자신들의 여황을 우러러 보았다.

“샤벨리아.”

“네, 폐하.”

“그대가 차기 시왕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켄에서 끊어진 볼펜뷔텔의 맹맥을 잇는 것이 곧 대륙의 적통을 잇는 것. 나는 그 초석을 프러겔에 심어 새로운 볼펜뷔텔을 세울 생각입니다.”

‘..!’

나만 놀란 것이 아닌지 프레데리카와 데브, 그리고 플로헤타가 여왕의 결정에 놀라 쳐다보았다.

“그대를 프러겔의 볼펜뷔텔의 수장이자 씰들의 왕임을 선포하려 합니다. 부디 나와 우리 제국을 도와 이 대륙의 평화를 이루는데 그 힘을 빌려주세요.”

“화.. 황은이 망극합니다.”

뜻밖의 말에 난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에스테리아는 그런 내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가 싶더니 프레데리카와 데브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대들에게 신성 프러겔 제국 제1성의 칭호를 내리는 바입니다. 부디 새로운 시왕을 도와 하켄의 야욕으로부터 제국을 보호해주세요.”

“폐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새로이 프러겔의 기사가 된 프레데리카와 데브는 정중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모두가 새롭게 시작되는 제국의 역사에 벅차해했다. 다만, 그 당사자인 나만이 울상인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어떤 새끼야.. 내가 시왕이라고 알린 새끼가..”

그렇게 구시렁 거리던 그때, 마치 팬클럽 사생팬 마냥 셰이엔에 뒤에서 호들갑을 떨며 내게 손을 흔드는 이가 있었으니. 제국 최고의 수호 씰이자 천하의 주둥이 플로헤타였다.

***

콰아앙!!

“끄아아악!!”

“마.. 맙소사..”

한편, 하켄제국과 세베랑스 왕국 인접 국경지대인 ‘믈링’은 제국의 대대적인 공격에 아비규환으로 물들고 있었다.

“무슈! 제국의 두 개 사단이 ‘로미엥’ 방어선을 돌파했다는 전갈입니다.”

“뭐라?! 아뤼드 백작의 군대는?!!”

“이미 패퇴하여 수도 인근 ‘클렝몽 주랑’으로 이동했다 합니다.”

그저 매해 일어나는 가벼운 서전이라 생각해 군대를 이끌고 왔건만 아무래도 안일했던 건 자신이었던 것 같았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 나라를 집어삼키기 위해 전쟁을 걸어 온 것이었다.

“여기서 주력군을 잃을 순 없다. 수도로 가는 길을 확보하며 사단 내 여단들을 후퇴시켜라.”

“알겠습니다, 이랴!!”

세베랑스 왕국의 원수(??) 부르에 듀몰리 후작의 명령에 전령은 말 채찍을 휘두르며 급히 달리기 시작했고, 후작은 제국의 공격에 무너지는 자기 전열보병들을 보며 초조한 듯 망원경을 만지작거렸다.

“대체..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거란 말인가..?”

세베랑스를 상징하는 백색 제복을 입은 병사들은 훈련의 질이 좋은 제국군의 총탄에 하나둘 쓰러지며 전열이 붕괴되고 있었고, 세베랑스 왕실 최고 근위 기병대인 ‘메종 드 루아’를 보내 시간을 끌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순 없었다.

서걱 ­

“끄악!”

그러던 그때, 저 멀리 샤벨로 병사들을 베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경악스런 외침이 그의 귀로 들려왔다.

“제.. 제국의 오.. 올 라운드다!!”

“뭐..?! 올 라운드라고?!!”

이곳에 오려면 자기 엘리트 씰 기사단을 뚫어야 하건만, 제국의 올 라운드는 무슨 재주를 부린 것인지 자기 코앞까지 다가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산만해지는 병사들의 분위기 속에서 부관 하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말을 몰아 다가오며 외쳤다.

“가.. 각하! 어서 후퇴 하십시오!!”

“후퇴라니?! 아직 병사들이 싸우고 있는데 어떤 장군이 후퇴한단 말이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적의 올 라운드가 후작각하를 찾고 있습니다!!”

“뭐라?!!”

시끄럽게 부딪치는 냉병기 소리도 잠시 저 멀리 총탄의 폭발 소리와 함께 근위대 여러 명이 뒤러 쓰러짐과 동시에 사랑스럽게 웨이브 진 장미빛 붉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자신을 응시하는 초록색 눈동자의 미소녀가 보였다.

“찾았다.”

움찔.

한 손엔 플린트 락 권총을 다른 한 손에 독특하게 휘어진 샤벨을 쥔 그녀는 후작을 응시하며 귀엽게 무릎을 굽히며 자신을 소개했다.

“하켄 대제국, 올 라운드 넘버 투엘브 주베네하말리입니다. 당신의 목을 폐하께 바쳐야겠습니다.”

스릉 ­

“무엄한!!”

“각하! 어서 뒤로!!”

노골적인 그녀의 선전포고에 부관들이 샤벨을 뽑으며 후작을 가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베는 살인적인 미소를 지어올리며 비어 있는 자기 마력 권총을 빙글돌려 장전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잘 생각했어요, 그렇게 꿈틀거려야 줘야.. 밟아주는 맛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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