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102. 제국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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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제국의 꽃 ]
“와아아아!!”
“프러겔 만세!”
크리스티네 중앙, 이전 토르디에르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새롭게 지은 거대한 개선문 사이로 셰이엔의 프러겔 군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거리로 몰려나온 수많은 신민들은 다시 한번 제국에 승리한 자기 군대에 환호하며 손을 흔들었다.
행진하는 병사들 위로 화사한 꽃가루들이 날리고, 페르티갈 로슈비치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병사들은 열광적으로 맞이하는 신민들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가슴을 피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또각 또각.
잘 정돈된 제도의 도로를 두드리는 새침한 말발굽 소리들과 함께 이번 전쟁의 영웅, 샤벨리아가 화려한 푸른 제복 차림과 함께 금발을 휘날리며 제도의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승리의 여신이다!!”
“와아아아아!!!”
거대한 콘서트에 온 듯 그녀의 등장에 신민들은 엄청난 환호와 함께 거리를 통제하던 병사들을 뚫을 기세로 몰려나왔고, 인간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와 화사한 미소에 크리스티네 뭇 남성들은 오늘도 상상병에 사로잡혀 앓아 누울 기세였다.
“흠!”
그중 그녀의 옆을 호위하는 리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들떠 있었다. 제도의 모든 남성들이 선망하는 여신이 바로 자기 옆에서 자기 에스코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시샘에 가득 찬 젊은 남자들이 그런 리니를 향해 외쳤다.
“이 털보새끼야 얼굴 저리 안 치워?!!”
“누가 곰 같은 네 얼굴을 보러 온줄 알아?!!”
“너 어디 살아?! 아주 띠꺼워. 알어?!!”
귀에 피가 날 정도의 악담이 거리 곳곳에서 터져 왔지만, 리니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지 삐죽거리며 올라가는 자기 미소를 참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르디에르에서 갑자기 잠에 빠진 자기 여신이 오랜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얼마나 기쁘지 않겠는가?
난감한 웃음을 짓는 샤벨리아와 달리 그녀 주위엔 리니와 그녀의 친위대가 일반적인 프러겔 군과 다른 화려한 제복차림으로 그녀를 둘러싸 호위하고 있었고, 그 뒤로는 사달수드의 돌격대가 흰색 터번과 함께 이국적인 제복차림으로 샤벨리아를 따르며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 샤벨리아는 과도한 사람들의 관심 때문인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지금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 같은 엄청난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시.. 시발.. 수.. 숨을 못 쉬겠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이벤트에 평소보다 바스트를 졸라매긴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끝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눈들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박히며 따라오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프레셔를 주는지 멀미가 날 정도로 아찔했다.
“샤링, 어디 안 좋아요?”
하지만 자신과 다르게 플로헤타는 이런 관심이 아무렇지 않은지 청순한 미소를 지으며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어 주며 나를 살피는 여유까지 있었다.
“속이.. 안 좋아..”
“속이 안 좋다고요? 설마..”
“야..”
내 말에 흠칫 놀라며 아랫배를 바라보는 플로헤타의 시선에 울컥한 내가 째려보자, 플로는 ‘헤헤 넝담입니다 넝담’이란 표정을 지으며 데헷 거렸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장난을 치는 그녀를 향해 눈을 흘기던 그때, 우리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젊은 아가씨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머! 저기 플로헤타님도 계셔!!”
“세상에! 세상에!! 완전 저 둘 그림 아니야?!”
“꺄아아악!!사랑해요 언니들!!!”
남성 팬들도 모자라 여성 팬까지 있는지 플로헤타와 함께 나란히 말을 몰고 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엄청난 호들갑과 함께 열광적으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일부는 너무 좋아 미치겠단 듯 서로를 껴안고는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하하..”
‘미.. 미친..’
어색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드는 나와 달리 플로헤타는 어느새 대외용 얼굴로 변신해선 평소엔 볼 수 없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가련하게 연기를 하는데 정말이지 아까 전 그 팔불출이 맞는지 엄청난 프로정신을 선보이었다.
‘어쩌면 쟤가 제일 무서운 애일지도 몰라..’
***
엄청난 하루가 저물기 시작하는 저녁돼서야 나와 페르티안은 크리스티네 있는 우리의 저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황성에서의 간단한 해산식 후 녹초가 된 몸으로 돌아온 저택입구엔 시녀장인 마들린과 집사인 슈바이크가 우리를 마중나와 있었다.
“오셨습니까?”
인자한 인상의 슈바이크의 맞이에 난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고, 이제야 내가 집에 돌아왔음을 느꼈다.
“샤.벨.리.아 님!!!!”
움찔.
“머리가 이게 뭡니까?! 제가 숙녀는 항상 몸가짐을 바지런히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해야 한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아까 집에 돌아왔다는 말은 취소다. 순간적으로 들린 마들린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던 그때, 순간적으로 팔목을 낚아채는 우왁스런 그녀의 손에 붙잡힌 난 어떠한 악마보다 무서운 거대한 얼굴을 대면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꽈악.
“윽..!”
“어딜 도망가려고요?”
“뭐.. 뭐 하려고..?”
주눅 들어 쭈구리가 되어가는 내게 공포스런 미소를 짓던 마들린 자기 허리춤에서 빗 하나를 꺼내는 것이었다.
“각오하세요, 오늘부터 관리받지 못한 피부며 머리 모두 철저히 제가 책임지고 돌려 놓겠습니다.”
“아.. 아니야 나 괜찮아.. 나 하루 한 번 얼굴도 잘 씻었고, 봐봐 이빨 깨끗하지? 얼마나 청결..”
훼엑
“우웩..!!”
정녕 저것이 사람의 힘이 맞단 말인가? 마들린은 내 말을 모두 들을 필요가 없단 듯 그대로 팔을 잡아당기고는 마치 짐짝에서 끌어내린 자루마냥 나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페.. 페르티안!! 나 좀!! 나 좀 살려 줘!!!”
“하하하..”
‘시.. 시발! 사람 좋은 웃음만 짓지 말고 뭐라도 하란 말이야! 새꺄!!!’
죽일놈, 썩을놈하며 발버둥 치며 저주하는 나를 향해 녀석은 잘 갔다 오란 듯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쯤 체념해 정원위로 질질 끌려가던 그때, 분수대 아래에서 곰돌이가 그려진 귀여운 컵을 들고는 볼록한 배를 태연히 깐 채 이빨을 닦고 있던 리니와 마주칠 수 있었다.
치카치카
“...”
치카치카
“...”
순진한 눈으로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녀석과의 아이컨텍도 잠시 난 진심이 섞인 말투로 녀석에게 말했다.
“넌.. 이따가 보자. 아주 도망치면 뒤질 줄 알아.”
“예..?!! 왜.. 왜요?!!!”
“그냥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녀석을 향해 눈을 파버리겠단 듯 손가락을 들어 경고를 날린 난 마들린의 손에 이끌려 돌아오지 못할 마왕성에 잡혀가듯 유유히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또옥 또옥.
“큭.. 시발..”
얼마만의 치욕이란 말인가? 또 그녀에게 내 몸을 능욕당하고 말았다. 아주 모든 때를 벗겨낼 생각인지 아주 바디타올로 온몸 구석구석을 문지르르며 닦아내는 데 그녀는 정말이지 자비란 것이 없는 악마였다.
그렇게 마들린에게 철저히 유린(?)을 당한 난 수분함유를 위해 머리 영양제를 듬뿍 바르고는 평소에는 하지 않을 젖은 머리를 말아 수건을 두르고는 뜨거운 욕탕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뜨거운 욕조물에 긴장이 풀리는 것일까, 나는 조금씩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며 등을 욕조에 기댔다.
“후우..”
얼마만의 휴식인지 그래도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토르디에르에서 페르티갈 로슈비치까지 정말이지 쉴새없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아름다운 별빛이 보이는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그때, 생각지도 않았던 녀석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마벨..’
왜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 걸까, 이제는 샤벨리아로 돌아왔건만 어딘가 초조하고 불안했던 녀석의 눈동자가 계속해 머리에 맴돌았다.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하고 와서 그런 걸까, 혹시 비어 버린 또 다른 내 껍데기를 안고 있을 녀석을 생각하자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에이.. 그럴 리 없어. 그 새끼가 뭐가 아쉽다고. 나 따윈..”
하지만 이 기분 무엇일까, 어딘가 그러지 않길 바라는 묘한 기대감이 잔잔했던 호수에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 듯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꽈악.
정말 여자가 되어버린 걸까, 두근대는 가슴에 난 나도 모르게 가슴팍 위로 주먹을 말아쥐고는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바보가 아니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 차려, 샤벨리아! 아주 주책이야 주책. 어푸!!!”
푼수같은 생각에 순간 부끄러워진 난 고개를 세차게 도리도리 흔들고는 욕탕의 뜨거운 물을 떠선 잡생각을 날리듯 세수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떨어지는 물방울만큼 내 마음은 이젠 예전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계약의 영향 때문일까, 내 마나하트 깊숙한 곳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녀석의 미세한 향기가 오늘따라 나를 감성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괜찮아, 모두 다 괜찮아질거야.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면 돼..”
그래, 지금은 집에 돌아온 것에 감사할 때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숨 쉬는 이 공간에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며 말이다.
***
모든 불이 꺼진 저택 안으로 유일하게 불이 들어오는 방이 있었다. 저택의 주인의 성향답게 그리 화려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단아하게 인테리어된 저택은 굉장히 깔끔하고 멋스러워 보였다.
그런 넓은 방 가운데, 고풍스러우면서도 편안해 보이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잠이 든 누군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미남자가 있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백금발 머리카락과 그리움에 잠긴 깊은 푸른 눈동자는 아름다운 예술품과도 같은 수려한 이목구비와 함께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지만 그를 감싼 슬픔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러울 정도로 처연해 보였다.
“카트리나..”
망가져 갈라진 마나하트와 함께 잠이든 자기 씰을 내려다보던 마벨은 작고 규칙적인 호흡과 함께 온기가 느껴지는 그녀의 볼을 조심히 쓰다듬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던 그녀는 떠날 때도 그녀답게 사라져 버렸다. 그 흔한 작별 인사도 없이 그렇게 말이었다.
“그날 너에게 그런 무리한 부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잠이 들지 않았을까..?”
대답 없는 그녀를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는 후회와 미련에 흔들리고 있었다.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주었던 그녀가 더 이상 눈을 뜨지 않는다 생각하니 그날의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와 닮은 씰이 있지.”
회담장에서 봤던 당찬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카트리나와 겹쳐 보이던지, 하마터면 반가움에 자신도 모르게 장난을 칠 뻔했다. 예전 그녀에게 했듯 적국의 씰인 샤벨리아에게 말이었다.
왜일까? 그녀를 볼수록 카트리나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되도록 가까이하지 않으며 차갑게 굴었지만, 그런 내 태도는 상관없단 듯 자신을 챙겨 주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몇 번이나 회담내용을 놓치는 실수까지 했다.
“너가 그녀가 아니건만, 난 너를 다른 씰을 통해 보려 하는구나.”
그렇게 말한 마벨은 조심스레 카트리나에게 다가가며 속삭였다. 자기 진심을 그녀 깊숙이 전달하려는 듯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을 포개며 말이었다.
“미안해, 그저 너가.. 보고 싶을 뿐이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