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03. 제국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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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제국의 꽃 ]
승리에 대한 기쁨 때문일까,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저택 사람들은 정원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고 그 중엔 이 저택의 가주인 페르티안도 있었다.
“쯧쯧.. 아주 광란의 밤을 보냈군.”
커피와 달리 술에 있어선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난 바보같이 널브러져 있는 녀석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흐으으응~”
“...”
“자꾸 움직이지 마시고, 거기 고개 좀 돌려보세요.”
“아니, 저기..”
“샤벨리아님, 허리에 힘주세요.”
꽈악.
“윽..!!”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는걸까? 나야 잠이 없다 치지만 이들은 어디서 이런 열정이 나오는지 마들린과 어린 하녀 둘은 정원까지 따라나와 붉게 상기된 들뜬 얼굴로 내 치장을 마무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금발머리카락을 양갈래로 길게 나눠 묶은 머리 한쪽엔 작은 붉은 장미로 치장한 앙증맞은 모자가 비스듬히 씌여져 있었고, 내 귀와 목은 영롱한 붉은 색을 발하는 루비와 금으로 세공된 귀걸이와 목걸이로 치장되어 있었다.
게다가 귀여운 레이스가 여기저기 치장된 붉은 드레스는 타이트한 흰색 장갑과 함께 우아함을 뽐내며 안그래도 화려한 나를 더욱 화사롭게 만들고 있었다.
“마들린.. 이거 너무 과하지..”
“어머 어머! 세상에!! 완전 찰떡이에요, 샤벨리아님!!”
“뭐..? 뭔 떡..?”
“대~박! 저 있잖아요, 이렇게 붉은색이 잘 어울리는 분은 처음이잖아요!!”
“그.. 그러니..?”
이것들이 무슨 인형 꾸미기도 아니고, 젊은 하녀 둘은 아주 대놓고 꺄꺄 거리며 폴짝 거렸고, 마들린은 마치 인간 하나 갱생시켰단 뿌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가 싶더니 손가락에 침을 발라 떼서는 옆에 늘어진 내 옆머리를 파마하듯 말아 꼬아 놓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한 송이 장미 같아요!”
“근데 침..”
“돌아보세요, 리본이 잘 메어졌나 보게요.”
“아니 침..”
“아이, 빨리요! 자 엉덩이!!”
“으.. 응.”
왜 마들린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건지 나는 그녀의 말대로 수줍게 엉덩이를 빼며 검사를 맡았고, 어느때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내 위서부터 아래까지 검사를 한 마들린은 이보다 완벽할 수 없단 듯 벅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또.. 뭐가..?”
불길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치는 마들린을 보자, 그녀는 갑자기 내 드레스 안으로 훅하니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었다.
“뭐.. 뭐하는거야?”
“아이! 가만히 있어요!!”
아주 덩치는 곰같은 여자가 뭐이리 꼼꼼하고 세심한지 내 속바지까지 체크가 끝나서야 난 그녀에게서 풀려 나올 수 있었다.
찰싹!
“꺅!”
“다 됐어요.”
“마들린!!”
그녀가 때린 엉덩이를 두손으로 부여잡은 내가 얼굴이 빨개져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자 마들린은 파이팅이란 듯 주먹을 쥐며 내게 속삭였다.
“제가 속바지 풀기 쉽게 해드렸으니까 걱정마세요.”
“뭐.. 뭘 했다고?!!”
놀라 내가 버벅 거리자 마들린 씨익 웃으며 세상 모르게 골아 떨어진 페르티안을 눈짓하며 말했다.
“아무리 백작님이라 해도 여자 속바지는 처음이실거 아니에요.”
화악.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무슨 소리냐뇨? 게다가 오늘 특별히 승부 팬티도 입혀드렸으니까, 너무 빼지 마시고요.”
“마.. 마들린!!!”
얼굴이 빨개져선 빼액 하고 내가 소리를 지르자 마들린은 ‘괜찮아요, 처음엔 다 그래요’하며 부끄러워 하지 말란 듯 내게 작게 파이팅을 외치며 자신은 저택에 일이 널렸단 듯 총총 걸음으로 하녀들과 함께 돌아갔다.
“어쩐지, 입은 건지 안 입은 건지 민망한 그 천 조가리를 줄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당했다’란 표정으로 저택으로 돌아간 마들린을 원망해 보지만, 또 내심 그런 일이 생겼으면 하는 이 앙큼한 생각은 뭔지 난 싱숭생숭한 마음과 함께 세상 모르게 허벌레 거리며 자고 있는 페르티안에게 걸어가 드레스를 접어 쪼그려 앉았다.
꾸욱. 꾸욱.
“으에.. 샤벨리아 그만..”
“이 새끼, 뭔 꿈을 꾸는거야?”
막대기를 집어 볼을 꾹꾹 거리며 누르자 뭐가 좋은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야, 야.”
역사가 일어나려면 둘이 있어야지, 혼자서 일어나겠는가? 나는 조용히 페르티안만 깨울 심산으로 막대기를 던지곤 녀석의 볼을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은 몸을 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안 돼~, 내가 말했잖아. 거긴 위.험.하.다.고.”
빠직.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데? 나는 이마 위로 튀어나온 혈관을 누르며 녀석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 사랑스럽게 속삭였다.
“뭔데? 샤벨리아는 누르고 싶은걸~”
그러자 녀석은 부끄럽단 듯 ‘에흥’거리며 배배꼬며 말했다.
“에이! 짐승!! 알았어, 내가 특별히 샤벨리아만 누르게 해줄게.”
“정말? 내가 눌러도 돼?”
“그럼~, 여긴 샤벨리아만을 위한 특.별.한.구.역 인걸? 에이 짖궂어!”
빠직.
“흐응.. 그래?”
꽈악.
‘..!’
녀석의 말에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 길고 위험한 폭탄을 쥐었고, 순간 눈을 뜬 페르티안은 식은땀과 함께 사색이 된 표정으로 싸늘하게 식은 내 얼굴을 마주했다.
“괜찮아, 아픔은 잠시야. 곧 떼줄게, 그것도 영원히 말이지.”
“자.. 잠깐만 샤.. 샤벨리아!”
“왜? 나한테만 폭발하는 특별구역이라며?”
“아니, 그걸 어떻게.. 자.. 잠깐만! 잠깐만!!!”
내 움직임을 따라 다급하게 따라 붙는 페르티안에게 응징을 가하며 나는 다시는 그런 이상한 꿈을 꾸지 않도록 녀석의 아랫도리를 단속시켰다.
***
아직 이른 아침인지 크리스티네 거리는 한산했다. 페르티안의 위험한 폭탄(?)을 불발탄으로 만들어 준 난 이전 토르디에르에서 약속했던 기념비가 있다는 서쪽 광장으로 향했다. 슈베이크가 마련한 마차를 타고 얼마나 갔을까, 저 멀리 제법 웅장한 탑 하나가 모습을 들어냈다.
끼이익.
“다 왔습니다.”
“고마워요.”
마부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 내린 난 아직은 어색한 하이힐에 발목과 발이 나갈 것 같았지만, 꼭 신고 가라는 마들린의 무서운 눈길과 감시에 울며 겨자먹기로 리본이 달린 귀여운 흰색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또각 또각.
에스키세르를 넘었던 사람들의 이름과 토르디에르에서 희생되었던 모든 이들의 이름이 아름다운 조각상과 함께 빼곡이 적혀져 있었다. 거기엔 군인도 있었고 토르디에르 내전에 희생된 민간인들의 이름도 있었다.
승전 기념선물로 페르티안이 여왕에게 요청했다는 기념탑은 상상이상으로 잘 만들어져 있었고, 나 또한 그 날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다만 이전 기념탑과 다른 점이라면 일반신민들이 이 기념탑을 방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왕족과 귀족들의 이름이 아닌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념비에 새겨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주는 것 같았다.
스윽.
“응..?”
이른 아침 이 기념탑에 온 사람은 나만이 아닌지 익숙한 인영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너희 둘, 언제 나왔어?”
“어? 누나!”
“아..”
꾸벅.
내 말에 고개를 돌린 샤를은 그대로 내게 뛰어들 듯 안겼고, 페히메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손을 모아 내게 고개를 숙였다.
“몸은 괜찮아?”
“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내 물음에 페히메는 의수를 장착한 자신의 오른팔이 부끄럽단 듯 옷깃을 잡아당기며 대답했고, 난 기가 죽은 페히메 모습에 속상함을 느끼며 감추었던 의수를 다시 밖으로 들어내며 말했다.
“왜 감춰? 이건 부끄러운게 아니야. 자랑스러운거지.”
“...”
“내가 아는 페히메는 이런 거 따윈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걸?”
내 말에 페히메의 큰 눈동자 아래로 눈물이 맺히자 나는 그런 그녀를 다정하게 끌어안아주며 속삭였다.
“왜 울려고 그래, 언니 속상하게. 울지마, 나중에 크리스티네에서 가장 예쁘고 당찬 아가씨가 될 사람이. 응?”
그렇게 내 품에서 조용히 우는 페히메를 다독이던 그 때, 눈치없는 샤를이 페히메의 등을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누~ 나처럼.. 은 힘들겠지만, 괜찮아! 두 번째론 가능성이 있어.”
내 동생이지만 어쩜 이리 섬세하지 못한지, 샤를의 말에 페히메의 주홍빛 눈동자가 일순 빛나는가 싶더니 보이지 않는 마력과 함께 샤를을 그대로 저 멀리 던져 꽂아버렸다. 나는 ‘왜?!!’하며 벌떡 일어나는 샤를을 바라보며 녀석을 죽일 듯 째려보는 페히메의 심정을 이해한단 이렇게 말했다.
“어쩜 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 하나같이 여자 맘을 모르는지..”
그렇게 예정엔 없었지만 중간에 샤를과 페히메를 마차에 태운 나는 사실 방문해야할 목적지가 따로 있었는데 바로 토르디에르 전범자들을 데리고와 가두었다는 캠니츠 감옥이었다.
“멈추시오!!”
히이잉
감옥답게 경계가 삼엄한지 성처럼 생긴 감옥입구를 지키던 전열보병 하나가 플린트 락을 매고는 우리 마차를 정지시켰다.
“여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허가서를 보여주십시오.”
“아.. 맞다, 허가서.”
왜 그걸 생각 못한걸까, 멍청한 내 모습에 머리를 손바닥을 딱 친 난 초조한 표정과 함께 엄지 손톱을 물던 그 때, 감옥 책임자가 앙센의 사위인 괴르니히 자작임을 떠올리고는 사악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끼익
“내리시면 안 됩니다, 허가서 없이는..”
“야, 가서 책임자 나오라 해.”
“헛..!”
마차에서 걸어나오는 나를 발견한 병사의 표정이 일순 놀라는가 싶더니 발을 붙이며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경계를 붙였다.
“추우웅~~~~생!!! 근무 중 이상무!!!”
“그.. 그래..”
화차를 씹어 먹었나, 뭔 놈의 목소리가 이리 큰지 내가 놀라 눈을 깜박이던 그 때, 초소조장으로 보이는 초급장교가 놀라 나오는가 싶더니, 내 모습에 헛바람을 삼키곤 다시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우렁찬 목소리로 내 속을 뒤집었다.
“추우웅~~ 새애앵!! 근무 중 이상무!!!”
“미치겠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던 걸까, 도미노처럼 한 놈, 두 놈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그놈의 ‘충생’ 경례를 릴레이로 받던 난 결국 부글거리는 화를 참지 못하고 성벽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폭발하듯 소리쳤다.
“시발!!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책임자 데리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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