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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04화 (104/135)

〈 104화 〉 104. 제국의 꽃

* * *

[ 104. 제국의 꽃 ]

저벅저벅.

에우로페 대륙 서쪽에서 가장 우아하다는 샹마르큐 궁전 앞은 피 흘려 쓰러진 세베랑스 근위병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고풍스러운 세베랑스 왕도 ‘블루아 루즈’는 곳곳이 흑연기와 함께 신민들의 비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끼이익 – 쿵 ­!!

“히익..”

거대한 궁전 문이 열림과 동시에 검은 제복의 제국 근위병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넓고 화려한 중앙홀을 포위하기 시작했고, 피처 피신하지 못한 세베랑스 국왕과 왕비는 겁에 질린 얼굴로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소수의 궁전 근위병들이 긴장한 얼굴로 샤벨을 빼든 채 자기 왕을 보호하지만 이미 전쟁의 승기는 넘어간지 오래였다.

척.

장전된 플린트 락을 들어 그들을 조준하던 그때, 물이 갈라지듯 병사들 사이로 넓은 길이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화려한 황금빛 수가 놓여 검은 망토를 두른 작은 인영이 모습을 들어냈다.

“오랜만이군.”

‘..!’

가면 아래로 지은 미소가 아름답긴 했지만, 세베랑스 국왕의 눈엔 그 미소는 사신의 미소였다. 놀람도 잠시 세베랑스 국왕은 단상에서 허겁지겁 내려와 황제에게 다가가선 사정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시오. 내 그대들과 협정을 맺겠소.”

그러자 그녀 뒤에 있던 베텔게우스가 세베랑스 국왕의 목덜미를 잡더니 그대로 발을 걸어 무릎 꿇게 만들었다.

쿵 ­

“끄윽!!”

“폐하는 너와 시선을 마주할 만큼 낮으신 분이 아니다.”

꽈악.

“으아악!!”

그러곤 왕관이 벗어진 그의 머리카락을 우왁스럽게 쥔 베텔게우스는 그의 머리를 잡아내려 대리석 바닥에 이마가 닿게 했다.

“사.. 살려주시오, 내.. 내 모든 걸 주겠소.”

“호오.. 모든 거라..”

클로비스는 비굴한 자세로 엎드린 세베랑스 국왕을 내려다보며 조소를 흘리더니, 그를 지나쳐 옥좌가 있는 단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카리스마에 위압감을 느낀 세베랑스 근위병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길을 비키며 길을 열었다.

스윽.

“비켜.”

“...”

하지만 왕비만은 그런 그녀의 행동을 용납하지 못하겠는지 옥좌로 향하던 클로비스의 앞길을 막고는 소리쳤다.

“제국엔 나라간의 법도가 없는 모양이군요! 이 무슨 무례입니까?!!”

꿈틀.

“법도? 무례?”

차갑게 목소리가 가라앉는가 싶던 황제는 당돌히 자신을 노려보는 왕비를 응시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다리만 잘라버려.”

“뭐라..”

서걱 ­

‘..!’

“예스, 마이 하이네스.”

어디서 나타난 걸까,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머리칼과 함께 차가운 회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나타난 미소년 하나가 세베랑스 왕비의 두 다리를 베어 넘기며 뽑았던 샤벨을 칼집에 넣었다.

쿠웅 ­

“아아아아악!!!”

두 다리가 잘려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는 왕비를 가뿐히 넘어 지나간 황제는 세베랑스 왕가의 옥좌에 앉아 다리를 꼬고는 경악스런 표정을 짓는 세베랑스의 왕과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법도와 예의를 따져서 그 옛날 우리에게 그런 치욕을 줬던가?”

추운 겨울 황무지를 무릎이 모두 까질 정도로 비굴하게 걸어가 세베랑스 왕과 프러겔 왕의 신발에 입맞춤을 하며 항복을 했던 프리티마셰의 치욕을 말하는지 클로비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그.. 그건 선대의 이.. 일 아니겠습니까? 부디 자비를 베풀어..”

“그래? 그럼 너도 똑같이 내 신발에 입을 맞춰라.”

“예..?”

“그리하면 너희가 그랬듯 나도 왕위만큼은 보전하게 해주마.”

황제의 요구에 세베랑스 왕은 떨리는 손을 잡아 쥐며 고민하는가 싶더니, 마른침을 삼키곤 천천히 무릎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아.. 내가 깜박했네.”

“네? 뭐.. 뭐가?”

갑작스러운 황제의 말에 세베랑스 왕이 놀라 쳐다보자 클로비스는 사악한 미소와 함께 그를 배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조건이 같아야 하단 걸 내가 깜박했지 뭐야.”

“무슨..”

딱.

두려운 표정으로 황제를 올려다보던 그때, 그녀의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황제와 자신 사이로 작은 마력 탄 몇 개가 떨어져 내리는가 싶더니 엄청난 폭발음을 일으켰다.

콰앙 ­! 콰아앙!!

“콜록.. 콜록..”

시야를 가릴 정도로 독하게 흩어져 퍼지는 흙먼지 사이로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과 함께 나타난 주베네하말리가 연기가 나는 자기 마력 탄 권총을 돌려 장전하며 말했다.

끼릭 – 철컥.

“이 정도면 괜찮겠습니까?”

‘..!’

마력 탄에 부서진 중앙홀 바닥과 계단은 그녀의 의해 날카롭게 부서져 칼날처럼 변해 있었고, 그 가운데 옥좌에 앉아 있는 클로비스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군.”

“감사합니다.”

황제의 칭찬에 황송하단 듯 살짝 무릎을 꿇으며 뒤로 물러선 주베의 뒤엔 세베랑스 왕은 공포와 두려움에 섞인 표정으로 가시밭길과 같은 그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마치 어느 쪽을 선택하든 상관없단 듯 차갑고 무심한 클로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세베랑스 왕이여. 너는 이곳을 기어올 용기가 있을까?”

***

후륵.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집기들로 꾸며진 넓은 방, 감옥소장 테이블 위로 흰색 스타킹과 함께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하이힐을 걸쳐 올린 샤벨리아 모습이 보였다.

“이.. 입맛엔 맞으십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으로 비굴한 미소와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비굴하게 웃는 괴르니히 자작이 있었다.

“뭐.. 마실만은 하네.”

“하하.. 감사합니다다.”

내 말에 한시름 놓았단 듯 작게 한숨을 내쉰 녀석과 그의 부관들은 내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근데.. 어인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신 겁니까?”

괴르니히는 내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커피잔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에 털어 넣고는 책상에 올려놓았던 다리를 내려선 하이힐을 신어 욱신거리는 내 발목을 주물러 돌리며 말했다.

“야.”

“예? 왜.. 왜 그러십니까?”

괴르니히는 혹시나 자신이 잘못 물은 건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난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이거 신으면 남자들이 좋아하냐?”

“예..?”

내 물음에 괴르니히는 무슨 말이냔 듯 눈을 깜박였고, 나는 드레스 밖으로 들어난 늘씬한 내 다리와 함께 하이힐을 녀석에게 들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정말, 예쁜거 맞아?”

“아.. 무.. 물론이죠, 하이힐 신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마다 하겠습니까?”

“그래?”

괴르니히의 말에 난 ‘그럼 좀 더 신어볼까’하는 생각과 함께 드레스를 들어 다시 살펴보았고, 반대로 괴르니히와 감옥의 간부들은 그걸 물으려 여기까지 온 거냐는 표정과 함께 울상아닌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 맞다.”

“왜 그러십니까?”

“여기 토르디에르에서 호송되어 온 범죄자들 있지?”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요만한 키에 검은색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를 한 남자애도 있냐?”

“남자아이 말씀이십니까?”

내 물음에 괴르니히는 턱을 집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손바닥을 탁 치며 내게 말했다.

“아! 로베르치에서 샤벨리아님 뒤통수쳤던 그놈 말씀이시군요!!”

따악!!

“아악!!”

“짜식이 뒤통수는 무슨.. 아 있어, 없어?!”

내게 머리를 가격당한 괴르니히는 ‘우씨’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문지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페트시아경이 데려온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아마도 샤벨리아님이 찾는 아이와 인상착의는 비슷합니다다.”

“페트시아가?”

“예, 헌데 그 아이는 왜 찾으십니까?”

의아하단 듯 묻는 괴르니히의 말에 나는 새침하게 양 갈래 머리카락 하나를 뒤로 넘기며 이렇게 말했다.

“왜긴 필요하니까 만나러왔지.”

***

또각 또각.

퀴퀴한 냄새와 함께 지저분한 감옥안의 분위기는 정말이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 범죄자들을 잡아 가둔 곳이기에 꽤 흉흉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철컹 – 철컹 ­

휘유우우우

게다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들인지 내 모습에 흥분한 듯 이미 몇몇은 휘파람과 함께 창살을 흔들며 내게 음담패설과 함께 지저분한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일루 와봐, 오빠가 아주 키프루스까지 가게 해줄 테니까. 응?”

“어이 드레스 좀 올려 봐!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응? 헤헤헤!!!”

빠직.

적당히 참고 가려고 했건만, 감옥 간수들의 외침에도 녀석들의 음담패설은 더욱더 수위가 높아질 뿐이었다.

파직 ­

“샤.. 샤벨리아님?”

“비켜봐.”

이 감옥 중에 대빵인 듯 보이는 덩치 큰 놈이 침을 흘리며 자기 아랫도리를 잡은 모습을 본 나는 오른손에 황금빛 스파크를 일으키며 작게 중얼거렸다.

“헤헤!! 뭐야? 오빠꺼 보고 온 거야?”

싱긋.

가까이 다가온 내 모습에 더욱 흥분한 듯 아주 대놓고 모욕하는 녀석의 아래에 나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응축했던 뇌전을 아주 쪼금, 그래 아주 쪼금 맛보여 주었다.

콰지지지직!!!

“으아아아악!!!!”

콰아아앙!!!

강렬한 뇌전에 그 큰 덩치가 부웅 떠서는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고, 고기타는 냄새와 함께 내 뇌전을 맛본 녀석은 거품을 물고는 기절해 버렸다.

“꿇어!! 시발!! 한 놈이라도 건들건들 서 있으면 이 녀석처럼 거길 구워 버리겠어!!”

처척!

일순 정적과 함께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가뜩이나 없어서 짜증 나 죽겠는데, 누굴 놀리나? 아주 또 입 놀리기만 해 봐, 내가 작정하고 여기 있는 알들 모두 튀겨 버릴 테니까.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죄수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그리 외치곤 행여 내게 튀겨질까 다리를 모아 자기 소중이를 감추었다.

“쯧, 사람 착하게 살려고 마음먹었는데.. 이것들이 잊을 만 하면 아주 내 속을 뒤집어요.”

그렇게 말한 나는 내 뒤에서 죄수들과 같이 사색이 된 얼굴로 자기 아래를 가린 괴르니히를 툭 치며 말했다.

“넌 뭐 해? 안내 안 하고?”

“아.. 네.. 이리로 오시죠.”

식은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괴르니히는 나를 어느 독방으로 안내했고, 작은 창 하나밖에 없는 작은 감방 안에 손목이 채워져 있는 남자아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윽.

산발이 된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희망없는 눈동자, 내가 없는 사이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어린아이가 보일 눈동자가 아니었다. 처음 보았던 그 총명한 눈동자를 보길 바랬건만 아무래도 내가 조금 늦은 듯싶었다.

와락.

“샤.. 샤벨리아님?!”

‘..!’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간 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품에 안았다. 그러곤 미안하단 듯 작게 속삭였다. 늦었지만 더는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다정한목소리로 조금씩 들썩이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이었다.

“데리러 왔어, 미에. 내가 너무 늦어 미안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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