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12화 (112/135)

〈 112화 〉 112. 서쪽의 빛

* * *

[ 112. 서쪽의 빛 ]

다그닥 다그닥 ­

세베랑스로 향하는 길을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 프러겔의 국경을 넘은 우리 마차는 멀지 않은 곳에서 세베랑스 국경수비대인 하켄제국 병사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멈춰라!”

히이잉 ­

수비대장으로 보이는 초급장교 하나가 손을 들어 우리를 정지하고는 병사 수명을 대동하고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기서부터는 하켄제국령인 세베랑스다. 무슨 연유로 국경을 넘으려는 것이냐?”

“헤헤, 수고가 많으십니다. 보시다시피 저흰 집시들입니다. 프러겔에서 장사가 시원치 않아 세베랑스로 가는 길입죠.”

사달수드의 말에 수비대 장교는 미심쩍은 눈으로 옆에 앉아 있던 아티뤼크와 작은 마차를 몰고 있는 몰트겐을 스윽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차 안을 수색하겠다, 협조해라.”

“물론입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가오는 제국군의 소리에 긴장한 듯 눈을 굴리는 페히메와 샤를, 그리고 미에의 머리를 쓰다듬은 나는 미소와 함께 작게 속삭였다.

“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끄덕.

삐끄덕 – 끼이이 ­

그와 함께 마차 뒷문이 열리며 밝은 햇볕이 들이쳤고, 사달수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수비대 장교가 의심의 눈초리로 마차에 앉아 있던 우리를 바라보며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스윽.

그렇게 마차를 살피던 녀석은 구석에서 아이들을 안고 있던 나를 발견하더니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것이 아닌가?

‘설마.. 알아본 건가..?’

전장에서 만났다면 못 알아볼일이 없을 터였다. 긴장한 내가 이슈발랑퀘가 봉인된 십자가를 조용히 움켜쥐던 그때, 사달수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 아이는 쟤 아이들 중 최고라 할 수 있습죠.”

‘뭐..?’

“크흠.. 뭐.. 그.. 그렇군.”

‘야..’

사달수드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더듬는 수비대 장교의 모습에 나는 ‘진짜 그거 때문에 쳐다본 거야?’란 부정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자, 수비대 장교는 그런 내 눈빛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더욱 얼굴이 새빨게 지며 마치 수줍은 시골총각처럼 마차에서 내렸다.

“아.. 아무 이상도 없군.”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어떻습니까, 죽이지 않습니까?”

“크흠.. 뭐.. 그럼, 저.. 저 마차엔 뭐가 있지?”

황급히 말을 돌리는 와중에도 힐끔 힐끔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눈빛에 나는 뭔가 ‘이건 아니지’란 표정으로 차라리 날 의심해 달 듯 마차를 나서려 하자 옆에 있던 프레데리카와 킨라라가 나를 부여잡아 낑낑거리며 속삭였다.

“제.. 제발 가만히 있으십시오.”

“놔봐, 잠깐만 내가 잠깐만 한 번 묻고 올게.”

“프.. 플룩스, 뭘 먹었길래 이리 힘이..”

그렇게 셋이 낑낑거리던 그때, 뒤에 있던 작은 마차로 간 수비대 장교는 기묘한 장식과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마차에 있던 키탈파와 데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뭐지?”

“점성술사들입니다. 점을 치는 자들이죠.”

“점?”

“예, 자기 미래나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같은 것을 알려 줍답니다.”

흥미로워 하는 수비대 장교의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은 사달수드는 할인표 하나를 그의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며 속삭였다.

“저희는 한동안 블루아 루즈 근교에 있을 예정입니다, 외박하실 때 한 번 와주십시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크흠.. 이.. 이런 건..”

“에이, 사양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아까 그 아인 꽤 인기가 많으니 요거..”

잠시 주위를 살며시 살핀 사달수드는 수비대 장교만 볼 수 있게 살짝 손을 내려 손가락을 말아 핀 돈을 뜻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두둑이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아.. 알겠네.”

사달수드의 말에 헛기침하며 제복을 정돈한 수비대 장교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상없다! 모두 통과시켜라!!”

그러자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길을 막았던 차단 봉을 치우며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 비켜 주었고 우리는 다시금 마차를 몰아 세베랑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국경을 들어서던 그때였다.

히이이잉 ­

“멈춰라!!”

어디선가 빠르게 달려온 기병대 한 무리가 국경을 넘으려던 우리를 막아서며 외쳤다.

스윽 – 타악.

말에서 내리는 사람을 알아본 구경 수비대는 일제히 발을 절도 있게 붙이며 시립했고, 수비대 장교는 황급히 그에게 달려와 경례를 하며 외쳤다.

척.

“클로비스 4세 만세!”

“클로비스 4세 만세. 소위, 전시 중에는 행정관의 허락 없이는 국경을 통과할 수 없을 텐데?”

“죄송합니다! 일상적인 집시 무리라 그만..”

“집시라고? 내 직접 살펴보지.”

소란스런 밖에 살며시 작은 마차 창을 열어 살펴보던 난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

왜냐하면 화려한 검은 장교복 차림으로 수비대 장교를 갈구는 녀석이 내가 잘 알고 있는 녀석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쇼스..?”

흰색 머리칼에 반항적인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소년, 바로 마벨의 11기사 중 하나인 마르쇼스였다.

‘설마, 이 지역 담당자가 마벨이야..?’

하필 들어와도 마벨의 구역에 들어오다니, 다른 지휘관에 비해 유능한 녀석의 일 처리를 알고 있는 나로선 재수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 증거로 마르쇼스의 등장에 느슨해 보였던 국경수비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군기가 바짝 들어선 치웠던 차단 봉을 다시 설치하며 우리를 막아섰다.

저벅저벅.

플로헤타의 도움으로 우리가 씰임을 눈치챌 수 없게 마력의 기척을 지우는 안티매직 아이템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내 얼굴을 아는 녀석과 마주하는 순간 마력이고 뭐고 다 틀렸기에 나는 이곳으로 걸어오는 녀석의 인기척에 허둥지둥 상자를 열어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플룩스?”

“누나, 뭐 해?”

“뭐 하긴, 분장하려고 하는 거지! 어.. 어떡하지, 뭔가 가릴 것이.”

그렇게 허둥지둥 옷가지를 걸치며 얼굴을 가리던 그때, 녀석의 성격답게 활짝 마차 문을 열어젖히며 녀석이 등장했다.

“흐음..”

프레데리카와 킨라라, 그리고 샤를과 페히메, 미에를 살핀 녀석은 마부인 페르티안까지 스윽 훑어보더니 구석에 쭈구리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내게 고정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거기.”

움찔.

“거기 너 말이야.”

‘아씨..’

일반병사들과 달리 그는 씰이었다. 한 줌의 마력조차 감지되지 않는 우리에게서 다소 경계감은 사라진 모습이었지만, 녀석은 얼굴을 가린 채 구석에 있는 내가 아무래도 수상했던 모양이었다.

스릉 ­

“얼굴 들어라, 안 그럼.. 죽는다.”

살의가 느껴지는 녀석의 목소리에 난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나와 마르쇼스를 지켜보았다.

“으음..”

얼굴을 천으로 칭칭감은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박거렸다.

‘휴.. 플로헤타의 안약이 제대로 퍼졌나 보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플로헤타가 챙겨 준 안약은 바로 눈동자 색을 바꿔 주는 약이었다. 일순 푸른색에서 에메랄드빛으로 변한 내 눈동자는 이전과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렇기에 마르쇼스도 어딘가 본 듯하면서 아닌 듯한 내 분위기에 머리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스윽.

“붕대를 풀..”

“기.. 기다려 주십시오.”

“뭐지?”

옆에 있던 사달수드는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으로 그의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매.. 매독 환자입니다.”

“매독?”

“예.. 얼마 못사는 아이라 마지못해 데리고 있습니다만, 접촉은 피하시는 게..”

그의 말에 미간을 좁히며 나를 지그시 노려보던 마르쇼스는 침을 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재수 없는 게 있었군.”

‘뭐.. 뭐라고?!’

울컥하는 나였지만 그의 뒤에 있던 사달수드가 제발 참아달란 듯 애절한 눈빛으로 작게 고개를 저었다.

“병사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도록. 만약 발생된다면 여기있는 모든 이들을 모두 죽여 버릴 것이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책임지고 관리하겠습니다.”

집시의 역할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마르쇼스는 마차를 나와선 긴장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수비대 장교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통과시켜라.”

“옛!”

마르쇼스의 허락에 국경수비대는 다시 차단봉을 풀며 우리를 통과시켜 주었고, 마르쇼스는 그런 우리의 마차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쓰읍.. 저 재수 없는 눈빛,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말이야..”

***

조용한 세베랑스의 시골 길을 달린 우리는 블루아 루즈로 가는 길을 살짝 돌아 해안선이 보이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바로 수도로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먼저 만나야할 사람들이 있었다.

깜박 깜박.

어두운 길 너머로 깜박이는 불빛에 마차를 조용히 멈춘 우리는 풀벌레 소리만이 잔잔히 들려오는 숲속으로 걸어갔다.

“사과.”

그러던 그때, 수풀 너머로 암구호가 들려왔고, 옆에 있던 킨라라가 작게 속삭였다.

“파이.”

그러자 모습을 숨기고 있던 붉은색 제복의 연합왕국 씰들이 일제히 모습을 들어냈고 놀랍게도 그들 중엔 내가 아는 씰도 있었다.

“로얄 원.”

“메이틀랜드!”

와락.

연보락 머리카락을 귀엽게 묶어 올린 메이틀랜드를 안은 킨라라는 어린아이 마냥 기뻐했고, 그 딱딱한 메이틀랜드도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간만의 해후를 마친 킨라라는 뒤에 있던 나를 소개했다.

“예를 차려 인사드리세요, 메이틀랜드.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왕이신 플룩스님이십니다.”

“아..”

그러자 그녀를 포함한 모든 연합왕국 씰들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어 정중히 가슴에 손을 올려 고개를 숙이더니 내게 인사했다. 이전과 달리 겸손하디 겸손한 자기소개를 내게 올리며 말이었다.

“위대한 성좌 중 하나이자 모든 씰들의 왕이신 시왕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작은 섬의 보잘것없는 씰, 메이틀랜드 인사드립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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