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113. 서쪽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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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서쪽의 빛 ]
메이틀랜드와 연합왕국의 씰들도 이번 세베랑스 왕세자 구출을 위해 지원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작전의 성공을 위해 연합은 해로와 육로를 통해 하켄을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바다에선 카펠 제독이 지휘하는 연합왕국 북해함대가 해안선을 따라 제국군을 괴롭히고 있었고 육로에선 남쪽의 독실한 신앙국가 에스티올 왕국 10만의 정규군이 록티아 산맥을 지나 세베랑스로 북진하고 있었다.
“그럼, 이곳 제국군이 분주한 것은 에스티올 왕국 때문이군.”
내 말에 메이틀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키프루스의 서방원정대도 페르티갈 로슈비치 제국령을 넘었다 했으니 제국도 쉽사리 군을 움지이진 못할 겁니다.”
“셰이엔 공작이 이끄는 프러겔군도 세베랑스 인근으로 이동한다 했으니, 총 네 군데라 보면 되겠군.”
끄덕.
세베랑스 왕세자를 구하는데 이 정도로 공을 들이는 이유는 제국이 세베랑스에 세우려는 괴뢰정부를 견제하는데 있었다. 온화한 기후와 윤택한 토지, 에로우페 대륙에서 가장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세베랑스가 온전히 제국에 편입이 된다면 전쟁향방은 연합에게 무엇보다 불리했다.
“왕세자는?”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발루아가 요새에 갇혀 있다 합니다.”
“발루아가라..”
블루아 루즈를 가로 지르는 르텔강 입구엔 정교하면서 거대한 요새가 하나 있었는데, 서쪽 대해에서 들어오는 적국의 함대를 막기 위해 건설된 방어시설로 그 견고함과 포격력은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요새였다.
게다가 블루아 루즈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을 만큼 높게 건설된 석벽의 요새는 평시엔 치안을 관리하는 중앙청이자 감옥으로 주요 정치범들을 가두어 관리하고 있었다.
“꽤 까다롭게 되었네.”
“방법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메이틀랜드의 말에 나는 별수 없단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저 멀리 작은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숨어.”
심상치 않은 인기척에 우리는 근처 숲에 조용히 몸을 숨기며 길을 훔쳐보았고, 잠시 후 후사르로 보이는 정찰병 수명이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지..?”
심상치 않은 경기병들의 정찰에 나는 눈에 마력을 불어넣어 저 멀리 능선을 쳐다보았고, 이내 놀라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엄청난 수의 병사들, 마치 전쟁하러 가는 듯 화려한 하켄제국의 깃발과 함께 익숙한 귀족의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마벨을 상징하는 그리핀 두 마리가 방패를 감싼 연대기가 펄럭였고, 엘리트 씰들과 함께 11기사단장인 클라비우츠가 말을 몰아 주변을 돌며 혹시 모를 마력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스윽.
샤벨을 쥐는 메이틀랜드에게 괜찮단 듯 손을 든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도로를 바라보았고, 이윽고 미르파크와 엘로이즈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모는 마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벨..?’
무엇이 그의 생각을 어지럽히는지 어두운 표정의 마벨은 화려한 제복 차림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는 턱을 쓰다듬고 있었고, 그의 근위대 전열보병들과 함께 마르쇼스와 호프슈어가 주변을 경계하며 걷고 있었다.
‘기사단 전체를 데리고 어디 출정이라도 가나..? 설마..’
지금 그가 가는 방향이라면 에스티올 왕국 군이 북진하는 록티아 산맥 쪽이었다. 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그가 동원한 군대의 규모였다.
저벅저벅.
10만은 가뿐히 넘을 대병력이었다. 이건 방어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닌 정벌하러 가는 침략군의 수준이었다.
“메이틀랜드.”
“네, 전하.”
“부하 하나를 셰이엔 공작에게 보내.”
“예..?”
무슨 말이냔 듯 쳐다보는 메이틀랜드를 돌아본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하켄이 에스티올을 먼저 칠 생각인 거 같아, 그러니까 셰이엔에게 군대를 돌려 에스티올을 지원해 주라 말해 줘.”
“알겠습니다.”
메이틀랜드가 수하 씰 하나에게 내 말을 전달하던 그때였다. 뭔가 그리운 느낌과 함께 그들의 행렬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마차 하나에 내 시선이 꽂혔다.
‘응..?’
마치 얇고 긴 실이 연결된 듯 내 마나 하트와 연결된 마력체에 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피이잉
“앗..”
순간 빛나오르는 내 마나 하트와 함께 마차 안의 그 마력체도 내 마력에 반응하듯 푸른빛을 빛내며 제국군을 술렁이게 했다.
꽈악.
“샤벨리아..?”
당황한 내가 가슴팍에서 빛나오르는 마나 하트를 급히 움켜쥐고는 놀라 다가온 페르티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빛으로 녀석들이 눈치챘어, 내가 따돌릴 테니까 약속대로 블루아 루즈 근교에서 봐.”
“하지만..”
“프레데리카.”
“네, 전하.”
“페르티안을 부탁해, 그가 나라 생각하고 보호해 줘.”
“알겠습니다.”
간결하지만 우직한 프레데리카의 대답에 옅은 미소를 지은 나는 내 마력을 느끼고 오는 제국의 엘리트 씰들과 마벨의 11기사단들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그들이 있는 숲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사삭
‘왜.. 반응을 한 거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육체건만 내 마력에 반응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호오.. 저거였구만. ]
내 목소리, 그건 바로 내 목소리였다.
“누구.. 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내가 중얼거리자, 내 목소리와 닮은 그것이 속삭였다.
[ 왜 결합이 안 되나 했더니, 저거 때문이었어. ]
“결합..?”
[ 그래. ]
츠즈즈
산비탈을 거칠게 미끄러져 내려온 난 다시금 뛰며 영문을 알 수 없단 듯 녀석에게 말했다.
“무슨 결합을 말하는 거야?”
[ 뭐긴, 나와 너의 결합이지. ]
그 순간, 크리스티네 근교에서 나이지만 내가 아닌 그때를 기억해낸 내가 중얼거렸다.
“설마 너..”
[ 이제야 기억해 주다니, 섭섭한걸? 샤벨리아. ]
나 자신과 대화하듯 너무도 똑같은 목소리에 기분이 묘해지던 그때, 녀석이 속삭였다.
[ 아버지의 봉인이 풀린 이상, 우린 다시 하나로 합해져야 해. ]
“봉인이라니..? 난 아무런 기억도 없단 말이야.”
[ 걱정 마, 기억은 조금씩 돌아올 거야. 지금은 네가 저 육체에 남기고 온 우리의 일부를 가져와야 해. ]
“뭐..?”
녀석의 말에 놀라 눈을 깜박이던 그때,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녀석이 내 뒤에서 나타나 미소와 함께 나를 감싸 안더니 말했다.
[ 카스트로가 희생되고, 알레나의 배신으로 되살아난 망령을 잠재울 것은 우리밖에 없어. ]
“망령..?”
[ 곧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빨리 갔다 와. ]
“뭐..? 뭘 빨리..”
티잉
콰아앙
‘꾸에엑!!’
팔을 푼 녀석은 마치 무언가를 쏘아 보내듯 나를 튕겨 보냈고, 마치 유체이탈을 하듯 내 몸에서 튕겨진 난 얄미운 미소와 함께 내게 손을 흔들며 달려 도망치는 녀석을 뒤로하고는 나와 이어진 마력실을 따라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슈우우웅
‘갔다 오란 게 이런 거였어?!!!’
절규하듯 소리 지르며 날아가던 난 이윽고 강한 충격과 함께 어디론가로 떨어졌다.
“큭..”
무거운 몸과 함께 천근과 같은 눈커풀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나를 안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온기..?’
마치 스폰지에 물에 젖은 듯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던 그때, 초점이 맞혀지는 시선과 함께 동요하는 눈동자를 숨길 생각도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낯익은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벨..?”
“카트리나.”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 응시하던 녀석은 순간 나를 와락 안으며 외쳤다.
“카트리나!!”
‘꾸엑..!’
엄청난 힘으로 날 안는 녀석의 행동에 난 단발마도 내뱉지 못한 채 품 안에서 버둥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날 안고 놓아주지 않던 녀석은 날 품에서 떼서는 어딘가 화가 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또다시 저번처럼 무리한 짓했다간,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알았어?”
‘아.. 그걸 말하는 건가..?’
연대기 사건을 말하는 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를 안고 있는 녀석의 손길은 누구보다도 따뜻했다.
두근.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던 그때였다. 마차 앞으로 누군가 걸어오는가 싶더니 날카로운 예기와 함께 무언가가 내 목으로 향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채애앵 !!
‘..!’
내 목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춘 샤벨 하나와 함께 그것을 막은 또 다른 샤벨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올 라운드라 해도 후작각하에 대한 무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굳은 얼굴의 미르파크가 검은 머리칼에 회색 눈동자를 한 미소년의 검을 가로막고는 말하자 그는 생각을 알 수 없는 덤덤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미안, 그저 소문의 올 라운드가 어느정돈지 궁금했을 뿐이야.”
샤벨을 거둬 검집에 넣은 녀석은 몸을 돌려 걸어가며 마치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런 쓰레기에게 슈트렐리츠가 졌다니, 재밌군.”
‘뭐..?’
울컥한 내가 일어서려 하자 마벨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앞뒤 안 가리고 욱하는 성격을 보니 카트리나가 맞기는 한가 보네.”
“뭐라고..”
쪽.
‘..!’
내 입술로 느껴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녀석의 얼굴이 내 바로 앞에 있었다. 놀란 내가 정신을 차려 녀석을 밀어내려 하자 마벨은 그런 내 손을 꽈악 쥐어 당기고는 더욱 깊이 키스하기 시작했다.
‘아..’
키스 때문일까, 얼굴이 붉어진 내가 당황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마벨이 속삭였다. 마치 깨어나줘서 고맙단 듯 따뜻한목소리로 말이었다.
“잘 돌아왔어, 카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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