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114. 서쪽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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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서쪽의 빛 ]
검은 긴 머리카락과 함께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어둠을 뚫고, 금이 간 마나 하트를 덮은 황금수가 놓여 검은 제복과 새하얀 고급 외투는 그녀가 하켄 제국의 올 라운드임을 상징하고 있었다.
레벨리스라 해도 태초의 씰 중 하나인 검성(??) 슈트렐리츠를 꺾은 카트리나의 명성은 이미 제국의 모든 이들이 알만큼 유명했다.
다그닥
“...”
“...”
‘가까워, 이건 너무 가깝다고.’
평소 자기 애마를 타고 이동하는 녀석이건만, 지금은 내 옆에 붙어 마차를 타고 있는 마벨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응..?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
“하하..”
‘필요한 거 말고, 덜어내고 싶은 거라면 있지..’
책에서 눈을 뗀 녀석이 묻자 난 난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건 뭐지..?’
눈을 떴을 땐 몰랐지만,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리고 난 뒤 내 오른쪽 위로 마법으로 생성된 작은 회중시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원래 본체로 돌아가기 위한 리미트 시간인 듯싶었다.
‘시간 내로 가져오라 이건가..?’
시각은 이틀. 하지만 녀석이 가져오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는 지금, 나는 굉장히 곤란해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세베랑스의 왕세자를 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란 판에 에스티올 행이라니 정말이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
그러던 그때, 우리 주위로 수상한 마력 수백 개가 감지되는 것이 느껴졌다.
“각하, 잠시 나오시지 마십시오.”
11기사단도 그 기척을 느낀 걸까, 마차 창문으로 다가온 미르파크가 긴장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곤 샤벨을 빼 들며 근위보병들을 통솔해 마차 주위로 단단한 방진을 만들었다.
스윽.
“넌, 가만히 있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내가 샤벨을 쥐자, 마벨은 오히려 움직이는 내가 더 걱정된단 듯 샤벨 손잡이를 잡은 내 손을 누르며 말했다.
“엘로이즈.”
끄덕.
마벨의 부름에 우리의 맞은편에 새초롬하게 앉아 있던 엘로이즈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마법을 영창하며 강력한결계를 생성시키기 시작했다.
슈우웅
콰아앙!!
“적.. 적습이다!!”
그와 함께 강렬한 폭발마법과 함께 숲에서 수많은 씰들이 기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바바방
서걱
“끄아아악!!”
제국 전열보병들의 플린트 락 사격을 가뿐히 튕겨 넘겨 돌진해 들어온 정체불명의 씰들은 제국군을 베어 넘기며 마벨의 마차로 향하기 시작했다.
스릉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쳐들어오느냐.”
광기의 붉은 눈을 번뜩이며 마르쇼스가 샤벨을 빼 들고 달려오는 적의 씰 둘을 베어 넘기지만 단단히 기습준비를 한 건지 수상한 마력체는 계속해 탐지되며 마벨의 마차를 중심으로 모여 들고 있었다.
타닥타닥
부우웅
콰지직!!
부우웅
콰드득!!!
‘!!’
그러던 그때, 메이드 복 차림의 두 명의 미소녀가 거대한 대검 두 개를 들고는 제국의 엘리트 씰들을 가볍게 베어 넘기며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긴 금발 머리카락이 서로 반대 눈을 가린 그녀들은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빛내며 가공할 공격을 펼치며 기습대를 이끌기 시작했다.
“베르니아의 쌍사자인가..?”
습격자들을 베어넘기던 클라비우츠는 인상을 찡그리며 손가락을 입에 넣어선 강한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익
그러자 근처에서 습격자들을 상대하던 호프슈어와 슈하일이 그를 바라보았고, 클라비우츠는 마벨의 마차로 향하는 두 미소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연합의 기습이다! 각하를 보호데 최우선으로 해라!!”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호프슈어와 슈하일은 몸을 돌려 마차로 향했고, 클라비우츠는 옆에 있던 아트리아에게 말했다.
“적의 연계를 막아야 한다, 당장 저 숲을 모두 태워 버려.”
씨익.
“이번 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야, 단장.”
그 말과 함께 주홍빛으로 물든 아트리아는 광역 마법을 영창하며 기하학 무늬의 마법진을 연성해 생성하기 시작했다.
휘잉 휘잉 휘잉
‘..!’
카아앙!!!
“누구냐?!!”
그러던 그때, 마치 아트리아의 마법을 방해하듯 거대한 도끼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고, 이에 클라비우츠가 아트리아 앞을 가로막아 무기를 튕기며 외쳤다.
“성(?) 에스티올 왕국 막시모, 블란카 데 라스타마가다.”
진녹색 단발머리카락에 황동색 눈동자를 한 미소년이 에스티올 왕국을 상징하는 회색 제복차림과 함께 클라비우츠가 튕겨 날린 자기 도끼를 잡아 쥐고는 말했다.
“역시.. 연합 놈들이었구나.”
연합 중 하나인 에스티올 왕국과 베르니아 공국의 일급 씰들이 모두 동원된 것을 보아 그들의 목적은 마벨의 암살이 확실했다. 세베랑스와 에스티올의 국경선이 애매한 이곳이 그들에게 있어 최적의 암살장소로 선택된 듯싶었다.
한편, 마벨의 마차 주위는 한층 더 소란스러워지며 집요하고도 격렬한 전투의 장이 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증원하러 온 호프슈어와 슈하일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미르파크 조차 계속해 달려드는 습격자들과 베르니아의 쌍사자들의 공격에 혼전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사삭
‘응..?’
그때였다. 지금껏 느끼지 못한 엄청난 마력 감지와 함께 후드를 눌러쓴 무언가가 일직선으로 마벨의 마차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타악!
“카트..”
“숙이고 있어!!”
반사적으로 샤벨을 뺀 나는 마차 문을 박차며 아슈트로에 버금가는 신속으로 돌진해 오는 녀석의 검을 그대로 맞부딪혀 막아섰다.
카아앙!!
“오..”
키이이잉
휘날리는 주홍빛 샤벨의 마찰빛과 함께 녀석과 얼굴을 마주한 나는 후드 속으로 비친 녀석을 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슈트렐리츠..?”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페르티갈 로슈비치 내전이후 사라졌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연합 쪽에 있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킨라라를 아버지께 보내드렸는데, 잘 도착한 거 같군요.”
“뭐..?”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한 녀석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내게 속삭였다.
“하지만 여기서 마주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뭔가 계획이 있으신 겁니까?”
“그건..”
녀석의 물음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마차에서 걱정스레 날 바라보는 마벨에게 시선을 돌리자 슈트렐리츠는 짙은 미소와 함께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가 모르는 계획이 있으신 거 같군요.”
“아니..”
“습격대를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녀석은 곤란해하는 내 모습을 캐치하고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있던 마력 플린트 락 권총을 하늘 위로 쏘았고, 그와 함께 붉은 섬광이 터져 올랐다.
슈우우웅
퍼어엉!!
퇴각신호일까, 그 순간 마벨을 습격했던 습격대는 일사불란하게 몸을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고, 슈트렐리츠는 미소와 함께 몸을 돌리며 내게 말했다.
“그럼 또다시 뵙겠습니다, 나의 왕이시여.”
“응..”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라고 했던가, 베르니아 쌍사자의 호위를 받으며 빠르게 전장을 이탈하는 슈트렐리츠의 모습에 나는 복잡 미묘한 눈빛으로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슈트렐리츠라니..’
연합의 지휘체계는 여러 왕국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실타래와 같아 제국처럼 그 통솔력이나 제어권이 확실하지 않았다. 각국의 입장과 함께 숨기고 싶은 비밀 또한 있었기에 내가 알 수 있는 정보도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번 습격작전도 프러겔에게 전해주지 않은 것으로 봐서 제국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의 기여도를 올리고 싶은 에스티올 왕국과 베르티아 공국의 비밀협약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듯 마벨의 마차 주위엔 적의 습격대에 살해당한 수많은 제국 근위보병대의 시체들이 널러져 있었고 그와 함께 난전을 펼친 엘리트 씰 또한 그 수가 많이 줄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각하?!”
후발대를 지휘하며 엘리트 씰들과 병사들을 지휘했던 블뤼힐 백작이 카드브라 남작과 함께 말을 몰아 다가와 엉망인 된 마차의 모습에 놀라며 묻자, 마벨은 별거 아니란 듯 미소와 함께 나오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네. 다만 생각지 못한 피해를 받았군.”
그러던 그때, 적의 습격대를 추격했던 프레드릭 백작이 후사르들을 데리고 돌아와 저 멀리 보이는 록티아 산맥을 가리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각하. 아무래도 산맥 골짜기 너머로 도망친거 같습니다.”
“그 정도면 됐어, 더 깊이 들어갔다면 복병이 있었을지도 몰라.”
“역시, 전투 전에 각하의 목숨을 노린 습격일지도 모르겠군요.”
중앙군을 통솔했던 노르공 백작이 심기 불편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마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미소와 함께 록티아 산맥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합놈들.. 나를 이렇게 높게 평가해주니 내 몸둘 바를 모르겠군.”
그러곤 고개를 돌려 슈트렐리츠의 검에 살짝 생채기가 난 내 얼굴을 응시하던 녀석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를 조심스레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과 함께 살벌하고도 얼음장과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이었다.
“하지만..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든 대가는 치르게 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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