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15화 (115/135)

〈 115화 〉 115. 서쪽의 빛

* * *

[ 115. 서쪽의 빛 ]

공들여 준비했던 마벨 암살작전이 실패한 후, 록티아 산맥에 주둔해 있던 에스티올, 베르니아 수뇌부는 산맥 입구에 진형을 갖추며 본격적으로 전투준비하는 제국군의 위세에 꽤 흔들리고 있었다.

쾅!!

“정보가 다르지 않소?! 저게 무슨 수비군이란 말이오?!! 이건 우리 에스티올 왕국을 침공하려는 거로 생각할 수밖에 없소!!”

갈색 머리카락의 중후한 귀족장교가 계획과는 많이 다르단 듯 패닉에 빠진 얼굴로 노발대발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공작, 아직 국경선을 넘은 것도 아니니 진정하시죠.”

“피엔체스코 후작, 이 전쟁이 당신네 공국령이었다면 그런 말을 하겠소?!!”

에스티올 사령관 페르난도 공작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단 듯 지도를 바라보며 주먹을 말아쥐던 그때였다. 막사 안으로 작은 체구의 젊은 장교가 자신만만한 표정과 함께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게 군 일부를 빌려주시면 제국과의 서전(戰)에서 승리해 오겠습니다.”

“쯧..”

놀랍게도 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페르티칼 로슈비치 공화국 출신의 라인슈볼츠였다. 하지만 뼛속까지 귀족인 페르난도 공작은 평민출신인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대놓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라인슈볼츠 경, 무슨 좋은 생각이도 있소?”

베르니아 공국의 사령관 피엔체스코 후작은 무역국 출신답게 그런 것엔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지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라인슈볼츠는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정규군 절반만 빌려주십시오. 그러면 제국군을 50km 밖으로 밀어내 보이겠습니다.”

“뭐라?! 절반?!! 이자가 지금 무슨 말을 내뱉는 것인가?!!”

정규군의 절반이란 소리에 페르난도 공작은 그 무슨 미친 소리냐는 듯 테이블을 치며 그에게 소리치자, 그의 체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라인슈볼츠였지만, 전혀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자신감있는 눈빛으로 말했다.

“록티아 산맥 너머론 바스티오 반도의 대평야입니다. 여기서 기선을 잡지 못한다면, 성도(??) 페르폴라는 물론 성 산타필로 대성당 앞으로 개선하는 마벨을 보게 될 겁니다.”

쾅!!

“이.. 이놈이! 감히 신성모독을!!”

스릉 ­

독실한 일신교 신자이자 신정일체를 추구하는 에스티올 왕국 출신인 그에게 있어 라인슈볼츠의 도발은 신성모독과도 같았고, 이에 얼굴이 빨개지며 허리춤에 있는 샤벨을 빼든 공작이 그에게 달려들던 그때였다.

챙 ­!!

‘..!’

날카로운 샤벨하나가 언제 날아왔는지 공작의 명치 앞에 멈춰 있었고, 그와 함께 공작 옆에서 나타난 도끼하나가 그 샤벨을 가로막은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등품, 이게 무슨 짓이지?”

흰색 제복차림의 슈트렐리츠가 눈동자를 돌려 묻자, 그의 검을 막은 블란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상관에 대한 하극상은 총살입니다, 검 내려놓으시죠.”

“총살? 그전에 네놈의 마스터와 네놈을 갈라주마.”

살얼음판과 같은 긴장감이 막사를 뒤덮자, 이를 보다 못한 피엔체스코 후작이 두 씰을 말리며 그들의 마스터들에게 외쳤다.

“그만, 그만! 우리끼리 지금 무슨 짓인가?! 라인슈볼츠, 그리고 공작도 이쯤에서 그만하시죠!”

그의 중재에 라인슈볼츠가 손을 들자, 슈트렐리츠가 공작에게 겨누었던 검을 회수했고 블란카도 물러나란 공작의 고갯짓에 조용히 무기를 내리며 뒤로 돌아가 시립했다.

“절반이면 정말 제국군을 물릴 수 있겠는가?”

피엔체스코 후작의 물음에 라인슈볼츠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좋네, 내 공국 군 5만 줄 테니 어디 한 번 보여주게.”

척.

“감사합니다.”

후작의 말에 라인슈볼츠는 미소와 함께 경례를 붙이고는 막사 밖으로 향했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페르난도 공작은 못마땅한 표정과 함께 인상을 찡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오만한 새끼..”

***

히이잉 ­

록티아 산맥 아래에 진영을 세운 마벨은 부대를 재편성하며 행군으로 지친 병사들을 휴식케 했다. 훈련도가 높은 마벨의 제국군은 규율이 잡혀 있었고, 군의 기강 또한 다른 제국군에 비해 그 질이 달랐다.

‘프러겔 군도 훈련이 잘돼 있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애초에 마벨이란 네임드를 빼더라도 단순히 수개월 만에 만들 수 있는 군대의 질이 아니었다. 최소 수년은 훈련시키고 경험시켜야 탄생할 수 있는 숙련도란 것이 있었다.

특히나 전투 경험이 많은 숙련병들로만 이루워진 마벨의 제18 제국근위대만 보더라도 그 독한 행군과 기습에도 흐트러짐이 없이 그의 막사 주변에 주둔해 교대로 경계하는 것이 일반적인 징발병과는 확연히 그 질이 달랐다.

마벨도 그들에 대한 예우로 다른 전열보병들과 다른 화려한 은색수가 노여진 검은제복과 함께 흰색 끈으로 치장된 근위대 모자를 하사했는데, 누가 보더라도 엘리트부대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와 대우는 일반보병들 사이에서도 선망의 대상이 되어 또 다른 동기부여를 주고 있었다.

시이잉 ­

‘..!’

그렇게 막사주변을 순찰하며 제국군을 염탐하던 그때였다. 순간 살기와 함께 검 하나가 빠르게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채애앵 ­!!

“누구냐?!!”

‘!!’

급히 샤벨을 뽑아 검을 막던 나는 공격한 상대를 보곤 놀라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너 따위가 우리와 같은 올 라운드라니, 인정할 수 없다.”

“아큐벤스..”

검은 단발에 회색 눈동자를 번뜩이던 녀석은 순간 사라지는가 싶더니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며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챙 ­! 채챙! 채애앵 ­

화려한 검술과 함께 부딪혀 청명하게 울리는 샤벨의 소리에 막사에 있던 병사들은 하나둘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우리를 둘러싸는 인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막사주변을 순찰하던 마르쇼스가 몰려든 병사들을 헤치며 묻자, 선임하사 하나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올 라운드 둘이 결투를 하고 있습니다.”

“뭐..? 결투?”

의아한 표정과 함께 맨 앞으로 나가자 카트리나를 매섭게 몰아쳐 공격하는 아큐벤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자식이..”

괴롭히는 듯한 모습 때문일까, 인상을 찡그린 마르쇼스가 샤벨을 쥐고 나가려 하자 언제 왔는지 클라비우츠가 그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가만 있어.”

“예?! 저걸 보고 가만있으라고요?!”

욱하며 발끈하는 마르쇼스의 손목을 더욱 강하게 잡은 클라비우츠는 카트리나를 눈동자로 쫓으며 중얼거렸다.

“뭔가 있어, 그녀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나둬.”

오리지널 아니랄까 봐 녀석의 검술은 꽤 정교하고 예리했다. 기습적으로 공격한 녀석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리며 나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는 듯싶었다.

채애앵 ­!!

그그그 ­

“겨우 이 정도인 주제에 올 라운드라 칭하다니, 낯짝 한 번 두껍구나.”

서로 맞댄 샤벨 사이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과 함께 비아냥거리는 아큐벤스의 도발에 조소를 흘린 난 순간 눈동자를 붉게 빛내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리 만만해?”

“뭐..?”

피잉 ­

나를 중심으로 일순 퍼진 붉은 원형 별빛과 함께 주변의 마력을 한 손에 빨아 쥔 나는 정지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을 향해 샤벨을 날렸다.

쩌적 ­

‘큭..’

하지만 망가진 마나 하트에 부담이 간 것일까, 금이간 내 마나 하트 아래로 작은 균열이 그어지며 멈췄던 시공간도 일순 풀렸다.

‘!!’

채애앵 ­!!!

“칫..”

어떻게 안 것일까, 순간 놀라던 녀석은 자기 목으로 날아오던 내 검을 정확히 돌려 막고는 작게 으르렁거렸다.

“어떻게 한 것이냐..?”

“아쉽네, 그 재수 없는 목을 떨어트릴 수 있었는데.”

스륵.

녀석의 물음에 아쉽단 듯 그렇게 말한 나는 순간 다리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땅에 털썩 주저앉았고, 아큐벤스는 식은땀과 함께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군, 시공간을 제어하다니..”

그렇게 한순간의 소동이 마무리되려던 그때였다. 순간 병사들 사이로 길이 갈라져 열리듯 누군가가 다급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마벨..?”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가 이토록 화가 난 얼굴은 말이었다.

찰싹!!

‘!!’

성큼성큼 걸어온 그는 어떤 말도 없이 아큐벤스의 뺨을 힘껏 때렸고,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그의 뺨대기에 아큐벤스의 얼굴이 획하고 돌아가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누가 내 진영에서 허락하지 않은 싸움을 하라 했나?!!”

“...”

그의 일갈에 아큐벤스는 조용히 입을 다물 뿐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마벨은 허리춤에서 자기 샤벨을 빼 들며 외쳤다.

“존엄한 군법 앞에선 올 라운드라 해도 예외는 없다!”

스릉 ­

“가.. 각하?!”

“비켜라!!”

그의 뒤로 따라온 카트브라 남작이 마벨의 행동에 깜짝 놀라며 가로막아 보지만, 남작을 옆으로 밀친 마벨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렇게 그의 검이 아큐벤스를 처벌하려던 그때였다.

타악.

“위험합니다.”

‘..!’

순간 고개를 든 아큐벤스가 마벨을 잡아 자신 쪽으로 당기는가 싶더니 자기 샤벨을 빼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공기를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제국군의 진영위로 무언가가 연발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벙 ­

채쟁 채쟁 채쟁 ­

작고 날카로운 쇠붙이들이 폭발과 함께 산발적으로 진영으로 쏟아져 내렸고, 아큐벤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수많은 피탄들을 샤벨로 튕겨 냈고, 나 또한 그 막지 못 하는 피탄들을 튕기며 최대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댕댕 –! 댕댕 ­!

“피해라!! 적의 포격이 또 온다!!!”

그렇게 마벨과 수뇌부들을 피탄에서 보호한 내가 땅에 박힌 익숙한 모양의 포탄조각을 줍던 그때였다. 다시금 다급한 경계병의 타종소리와 함께 하늘가득 메운 포탄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그리고 한 사람, 내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대륙에서 그놈, 한 놈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가르디오르, 이 미친 새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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