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116. 서쪽의 빛
* * *
[ 116. 서쪽의 빛 ]
퍼버버벙
‘..!’
피유우 – 피유우우
“젠장..”
공중에서 터진 포탄과 함께 엄청난 수의 자(子)포탄이 철의 소나기처럼 지면을 향해 떨어졌고,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난 샤벨을 움켜쥐고는 마벨만이라도 지켜야겠단 생각하던 그때였다.
피잉
“플레나리우스(plenárĭus) 데펜시오(dēfénsĭo).”
‘..!’
번쩍
새침한 목소리와 함께 나와 마벨 사이로 나온 엘로이즈가 빛나는 연보라 눈동자와 함께 마법을 영창 하자, 일순 벌집모양의 거대한 쉴드가 진영일대를 감싸며 결계를 펼쳤다.
태댕 – 태대대대댕
“엘.. 로이즈..?”
갑작스러운 구원에 놀란 내가 돌아보며 중얼거리자, 그녀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야 지방 덩어리, 언제까지 지켜볼 거야?”
“지방.. 덩어리..?”
무슨 말이지 하며 눈을 깜박이던 그때, 다홍빛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단추조차 채우지 못 할 정도로 엄청난 미드(?)를 자랑하며 걸어나온 아트리아가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내가 지방 덩어리면, 넌 영양실조구나 엘로이즈.”
꿈틀.
정곡을 찌른 것일까, 아트리아의 말에 엘로이즈의 이마에 작은 혈관을 솟아났고, 살기가 넘실 흐르는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보자 아트리아는 다홍빛 눈동자를 빛내며 마법영창을 하기 시작했다.
“Amicus certus in re incerta cernitur.(진정한 친구는 곤경에서 알아본다.)”
피이잉
우웅
다홍빛 기하학 무늬의 마법진이 일순 그녀 발아래에서 생성되어 펼쳐져 빛나는가 싶더니 일대의 마력들을 계속해 흡수하며 그 힘을 팽창시키기 시작했다.
“Cum vinum intrat, exit sapientia.(술이 들어오면, 지혜는 나간다.)”
‘엄청난 마력이야..’
우우웅
파괴마법에 특화된 아트리아답게 그녀를 감싼 마나폭풍은 엄청났고, 마력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들조차 그 떨림을 느끼며 당황해했다.
“Bibamus, moriendum est.(마시자, 언젠간 죽을 것이기 때문에.)”
피이이잉
쿠구구
당찬 미소와 함께 허공을 휘젓는 그녀의 손짓과 함께 천공까지 다다를 정도로 엄청난 수의 마법진이 공중에 펼쳐지며 광역 마법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Bibo Ergo Sum.(나는 마신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In vino veritas.(술 안에 진리가 있다.)”
우웅 – 우웅 – 우웅 콰과광!
“큭..”
아트리아를 중심으로 불어 닥치는 광풍에 주위의 사람들은 팔로 얼굴을 가리며 인상을 찡그렸지만, 정작 그녀는 고요하고 활기넘치는 표정과 함께 포탄이 날아왔던 산맥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Gloria in excelsis deo.(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Ego sum lux mundi.(나는 세상의 빛이다.)”
피유우웅 – 번쩍!!
‘!!’
일순 그녀의 손가락에서 발사된 다홍빛 에너지 줄기는 다시금 발사되어 날아오는 적의 수많은 포탄들을 그대로 허공에 불태워 터트리는가 싶더니, 그래도 허공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미친..”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놀라 중얼거리던 그때, 그녀의 마법에 적중한 산맥 일대가 엄청난 폭발과 함께 붉게 터져 오르는가 싶더니, 이윽고 거대한 후폭풍이 다시금 진영으로 밀려 들어왔다.
쿠구구궁 !!!
휘이이잉
“으아악!!”
“큭..”
츠즈즈
가공할 마법이었다. 주위의 마력을 흡수해 몇십 몇백 배의 힘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올 라운드라 해도 직통으로 맞는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겠어..’
아큐벤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인지 놀란 눈빛으로 아트리아를 바라보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많은 힘을 사용해 마나 하트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해롱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에.. 더 이상 못해..”
“역시 넌 쓸모없는 지방 덩어리야.”
비실거리는 아트리아의 미드(?)를 때리는 엘로이즈를 뒤로 한 나는 마벨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아?”
“뭐, 오늘은..”
피식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모습에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오래 쳐다볼 순 없었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무언가 어색해 질려던 그때, 불길한 포격소리와 함께 적의 포탄이 다시금 진영 밖과 안쪽에 떨어지며 공격을 이어갔다.
쿠구궁
피유우 – 콰과아앙!
산맥에 있던 적의 포대를 쓸어 버렸건만, 다시금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오는 적의 포격에 노르공 백작이 고함을 내지르며 외쳤다.
“어디냐?! 대체 어디서 날아온 포탄이냐?!!”
“모.. 모르겠습니다. 전 방위에서 계속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
“흐음.. 역시 마벨이군.”
아트리아의 광역 마법으로 초토화가 된 산맥인근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에서 거대한 망원경을 부관 어깨에 거치해서는 내려다보고 있는 라인슈볼츠가 보였다.
“너, 조금만 늦었으면 즉사였어.”
태평한 그의 모습에 슈트렐리츠가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말하자 망원경에서 눈을 뗀 라인슈볼츠가 별걸 다 신경 쓴단 듯 옅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그래서 네가 있잖아, 안 그래?”
“흥..”
자기 말에 슈트렐리츠가 콧방귀를 끼며 팔짱을 끼자, 작은 웃음을 흘린 라인슈볼츠는 자기 부관 중 하나인 젊은 장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귀앵, 페르티갈 예거들을 보내라.”
“지금 말씀이십니까?”
세베랑스 평민출신의 초급장교인 귀앵은 라인슈볼츠가 아끼는 신예장교 중 하나였는데 총명함이 느껴지는 그의 눈빛을 보건대 그의 뜻을 몰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마벨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마라. 우리의 목적은 제국군을 밀어내는 거지, 이기는 것이 아니다. 무슨 뜻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무슈.”
옅은 미소와 함께 절도 있게 경례를 한 귀앵은 장교모를 쓰고는 자기 말에 올라타서는 예거들이 매복해 있는 산맥 아래 숲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단하군. 이런 편성은 어떻게 생각한 거지?”
씨익.
그들의 아래로 라인슈볼츠로 인해 새롭게 편성되어 제국군을 압박하는 베르니아 공국 군을 내려다보던 슈트렐리츠는 흥미롭단 눈빛을 빛내며 묻자, 라인슈볼츠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뭐.. 아직은 완벽하진 아니지만, 대륙의 네임드를 꺾으려면 나 또한 비장의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흥..”
라인슈볼츠의 편성은 기존 에로우페 대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편성과는 다른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보병대, 기병대, 포병대를 거대한 한 축으로 운영하던 기존 운영방식과 달리 그의 편성은 각 연대별로 보병대, 기병대, 포병대를 쪼개어 편성시켜 각 연대가 하나의 군대처럼 빠른 기동성과 함께 적절한 화력을 지원할 수 있게 유연히 배치시킨 점이 기존 군대와는 달랐다.
한마디로 대응에 느릴 수밖에 없는 거대한 마벨군을 각 병과의 장점을 극대화 시킨 라인슈볼츠의 새로운 편성군이 지금의 제국군에게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다만 새로운 운영방식을 급하게 이식시킨 탓에 이곳저곳에서 삐긋거리는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벨을 정신없게 만들어 이 진영을 포기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뮈랑!!”
“예, 사령관.”
라인슈볼츠의 부름에 거대한 체구의 장교 하나가 나왔는데 귀앵과 마찬가지로 세베랑스 초급기병장교 출신으로 상남자와 같은 짙은 갈색의 구레나룻와 함께 쩍 갈리진 턱이 인상적인 마초같은 남자였다.
“지금 당장 기병 3천을 줄 테니, 밖으로 나오려는 제국의 기병대를 꺾어라.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사령관.”
“어디 한 번 프레드릭을 혼쭐내봐.”
씨익.
“옙, 사령관께 승전을 바치겠습니다.”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걸어 나가는 뮈랑을 바라보던 슈트렐리츠는 다소 걱정이란 듯 다시 망원경으로 전장을 살피는 라인슈볼츠에게 말했다.
“정말 이들을 믿어도 되겠어?”
“훗..”
슈트렐리츠의 걱정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페르티갈 로슈비치에서 항복해 키프루스에서 기생하다 떨어져 나와 하켄에게 패배한 세베랑스에서 모집한 의용군 천 명과 함께 연줄도 끈도 없는 세베랑스의 평민장교들을 선발해 곁에 두고 있는 그의 생각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기회는 소중한 거야, 슈트렐리츠. 나도 저들도 이 빌어먹을 시궁창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라고.”
“...”
“나 또한 세베랑스의 피가 절반 섞여 있으니,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모두 이용해야겠지. 더구나 이론 혼란기엔 더더욱 말이야.”
야심이 넘치는 그의 눈빛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친애하는 미엘폴스카가가 인정한 인간이라면 그가 부탁한 이상 또한 실현시켜 줄 힘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당히 해, 자네가 뛰어나단건 인정하지만 간혹 지나칠 때가 있으니까.”
“훗.. 그래서 자네가 내 곁에 있는 거 아니겠나? 난 달리고 자넨 그런 날 당겨 주는 거지.”
“흥.. 말은 참 잘한다니까.”
라인슈볼츠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린 그의 시선은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대담하고 대단히 모험적인 작전이라 걱정했지만, 전략을 모르는 그의 눈에도 제국군이 꽤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름도 명성도 없는 페르티갈 로슈비치의 시골뜨기에게 유린당하는 제국을 말이었다.
* * *